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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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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산

개화산(開花山)은 서울특별시 강서구 방화2동(개화동)에 있는 산이다.

개요[편집]

  • 개화산은 서울특별시 강서구 방화동에 있는 산으로서, 원래 이름은 주룡산이라고도 하고 개화산(開火山), 개화산(開化山), 봉화뚝이라고도 한다. 산 전체가 강서구 근린공원 16번 개화산근린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강서둘레길 중 제1코스인 개화산 숲길이 조성되어 있다. 산 북동쪽에는 약사사가, 남서쪽에는 미타사가 있다. 신라 때에 주룡(主龍) 선생이라는 한 도인이 이 산에 살면서 매년 9월 9일에는 동자 두세 명과 더불어 높은 곳에 올라가 술을 마시며 구일용산음이라 하였으므로 주룡산이라고 하였다. 선생이 돌아간 후에 그 자리에는 이상한 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개화산이라 일컬었다. 선생이 살던 곳에 언제부터인지(고려 때) 절이 생겼고 절 이름을 개화사라고 하였다고 한다. 개화사 절에는 약효가 좋다고 하는 약수 때문인지 조선 말기쯤에 절 이름이 약사사로 바뀌었다. 산 정상에는 조선시대 사용했던 봉화대가 있었다. 한편 산의 형상이 꽃 피는 형국이라 하여 개화산이라고 한다. 전라도 순천에서 오는 봉화를 받아 남산 제5봉수에 전하였다.[1]
  • 개화산은 서울특별시 강서구 방화동에 있는 이며 행주산성과 한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높이는 약 128m이며 신라시대 주룡거사(駐龍居士)가 이곳에서 득도하기 위해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그의 이름 때문에 한때 개화산을 주룡산이라고 불렀는데 그가 이곳에서 사망하고 그 자리에 꽃이 피어나자 그 이후로 열개(開), 꽃화(花)를 사용해서 개화산(開花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산 정상에는 두 곳에 봉수대가 있는데 서쪽과 남쪽에서 봉수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더구나 한강 건너 행주산성이 있기 때문에 임진왜란 당시에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으로 여겨진다. 이곳의 봉수대가 있기 때문에 불화(火)를 사용해서 개화산(開火山)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1977년에는 이 일대를 개화근린공원으로 지정하였으며 현재 개화산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서쪽 강서구 개화동 방면에 고려 시대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미타사(彌陀寺)가 있는데 한국전쟁 당시에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다시 지었다. 그리고 북쪽 사면에 신라시대 창건되었다고 추정되는 약사사(藥師寺)가 있다. 약사사는 개화사(開花寺)라고도 부르는데 주룡거사가 머물렀던 곳에 지어진 사찰이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인천에서 연합군이 한강을 건너면서 북한군과 격전을 벌였던 곳이다. 산허리에 당시 사망한 용사들을 기리는 추모비가 있다. 북쪽 능선으로는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가 산을 관통하여 터널로 지난다. 서쪽에는 서울지하철 9호선 종점인 개화역이 있다. 그리고 풍산심씨 묘역이 있다. [2]
  • 개화산은 강서구 방화동에 위치한 산이며 행주산성과 한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둘레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 산책하기에도 안성맞춤 명소이다. 어려운 코스가 아니라 쉽게 걸을 수 있으며 서울등산 초보 코스로도 편리하다. 개화산 전망대에서는 시원하고 탁 트인 전망을 볼 수 있으며 또한 헬기가 착륙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강서구의 개화산은 신라시대 이곳에 머물렀던 주룡거사가 사망하자, 그 자리에서 꽃이 피어났다고 해 개화산(開花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산 정상에 봉수대가 있어 불 화(火)자를 써 개화산(開花山)이라고 불렸다. 개화산은 자연과 그 속에 터잡은 사찰, 그리고 행주산성과 북한산, 가양대교, 월드컵공원 등 탁 트이는 전망으로 어우러진 둘레길이기도 하다.
  • 개화산은 유일하게 서울시 경계 내에 논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며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 근처 개화동, 발산동, 방화동 일대를 내려다 볼수 있는 곳이다. 이 산은 한강을 끼고 있다.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계절, 개화 들판의 논에도 누런 들판이 노출되어 있다. 서울의 서쪽 끝자락, 이곳은 농촌 냄새가 물씬 난다. 서울 강서구의 개화산은 한강을 사이에 두고 행주산성이 있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의 덕양산과 마주 보고 있다. 해발 100여m의 두 산은 한강의 목을 조르는 형상이다. 전략상 두 산은 서울 방어의 요충임을 알 수 있다. 개화산 일대는 행정구역상 서울의 서쪽 경계로, 서울 지하철 5호선, 9호선의 종착역이고, 아래뱃길의 출발지다. 이곳에서 산으로 올라가면 6·25전쟁 때 국군 1,100명이 전사한 개화산 전적지가 나온다. 개화산은 지금도 군사상 중요한 거점이다. 유사시엔 작전지역으로 서울 방어의 진지로 활용된다. 이 일대는 1977년에는 개화 근린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개화산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원래는 군부대 훈련장으로 사용하던 곳이다. 지금도 곳곳에 폐타이어 방공호를 볼 수 있다. 공원 조성은 민관군의 합동으로 이뤄진 것이다. 총혼탑 바로 아래에 미타사(彌陀寺)가 있다. 고려 시대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한국전쟁 당시에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다시 지었다.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석불입상이 서 있다. 높이 3.2m의 입상은 현재 위치보다 높은 곳에 흙 속에 묻혀 있었으나, 이곳으로 옮겨졌다. 머리 위에 원반형의 천개(天蓋)가 올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개화산의 풍경지[편집]

개화산숲길 코스는 강서구의 강서둘레길 3코스 중 첫 번째 코스로 약사사, 미타사, 호국충혼위령비 등이 있어 강서구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고 개화산전망대, 아라뱃길전망대, 하늘길전망대가 있어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힐링 숲길 코스이다.

방화근린공원[편집]

  • 방화공원은 사시사철 꽃향기가 퍼지는 개화산 옆에 있는 동네라는 뜻인 방화동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1996년 12월에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공원 내에는 원형무대를 비롯하여 광장, 연못, 분수대, 물레방아 등이 설치되어 있다. 산책로를 따라 벚꽃나무 등 각종 수목들이 식재되어 있으며 울창한 산림으로 둘러싸인 개화산과 꿩고개근린공원에 연접하고 있어 가족 단위의 피크닉 장소로도 알맞은 곳이다.

개화산 전망대[편집]

  • 개화산 정상 헬기장에 위치한 전망대로 2011년 5월 근교산 환경개선사업의 일환으로 설치되었으며 방화대교와 한강, 행주산성, 서울N타워, 월드컵 공원까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서울시 선정 조망명소이다.

약사사[편집]

  • 개화산의 울창한 숲과 한강변을 비롯한 빼어난 주변 경치로 인해 겸재정선이 그림의 소재로 즐겨 찾았던 약사사, 겸재의 「개화사」라는 그림에서도 볼 수 있는 이 절은 냉천이 있어 병자가 목욕을 하면 오랜 병도 낫는 약수터로 불렸다. 또한 이 절에는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석불과 약사사 3층 석탑이 있어 고려 시대 역사의 흔적을 감상할 수 있다. 절의 창건은 삼한 시대 후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래된 고찰이다. 이 코스를 걷다 보면 자연스레 거치게 되므로 볼만한 곳이다.

봉화정[편집]

  • 개화산 정상에 위치한 육각 정자로 조선시대 봉수대가 설치되어 전라도 순천에서 오는 봉화를 받아 남산 제5봉수에 전하였던 곳이므로 봉화정이라 명칭을 제정하였다. 정상까지 올라와서 잠시 담소를 나누며 쉬어가는 휴게 공간이다.

아라뱃길 전망대[편집]

  • 인천 앞바다와 한강을 직접 연결시키는 아라뱃길과 김포시가지, 일산신도시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이다. 아라뱃길은 800여 년 전 고려 고종 때 최초 시도된 이래 조선시대를 거치며 끊임없이 뱃길을 열기 위해 시도하였으나 시대적 상황과 기술력 부족으로 실패하다가 드디어 2009년 착공하여 2011년 친환경 내륙 뱃길을 열게 됨으로써 홍수조절 기능 아니라 관광/레저 기능까지 겸비하게 되었다.

숲속 쉼터[편집]

  • 개화산 서측 방향 데크 산책로 중간쯤에 설치된 쉼터로 숲속에 위치하여 숲 향기를 맡으며 쉴 수 있는 공간이다. 특별한 역사적 사실이나 장소성은 없으나 산림욕 하기에 적당한 장소이다.

신선바위[편집]

  • 개화산 북서 방향에 위치한 바위 위 쉼터이다. 이곳의 바위는 개화산 산신이 내려오는 바윗길이라 하여 신선바위라고 명명하였으며 아라뱃길, 김포공항, 김포평야, 계양산까지 조망되는 개화산에서 가장 시야가 넓은 전망대이다.

호국충혼비[편집]

  • 개화산은 6.25 한국전쟁 당시 국군과 인민군이 치열하게 전투를 벌인 곳으로 당시 북한군 대병력이 물밀 듯이 내려오자 김포지구에서 후퇴한 육군 1사단 소속의 장병 천여 명은 김포비행장을 지키기 위해 개화산에 진을 치고 마지막 전투를 벌였으나 탄약과 식량 보급이 끊긴 상황에 결국 북한군에 패해 모두 전사하였다. 조국을 지키다 꽃다운 나이에 죽어간 무명용사들이 애국충정을 기리기 위해 1993년 12월 31일 충혼비를 세우고 해마다 6월에 호국위령제를 올리고 있다.

미타사[편집]

  • 서울의 서쪽 끝 김포평야와 행주나루 끝에 걸쳐 있어 도심 속에 있는 사찰이면서도 평온함과 한적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미타사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법당 옆 커다란 바위 위에 우뚝 솟아 있는 미륵불입상으로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미륵부처님은 하나 같이 땅에서 솟아났다'라는 이야기 등 무수한 일화를 남기고 있다.

하늘길 전망대[편집]

  • 개화산 서측 방향에 위치한 전망대로 특히 김포공항에서 비행기가 이착륙 하는 모습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바위 위 휴게공간과 소나무가 잘 어우어져 멋진 경관을 연출한다.

심성 쉼터[편집]

  •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한성부 판윤/형조판서에 오른 심정(沈貞)과 그 일가의 분묘 500여 기가 있는 곳으로 그 중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6기의 분묘와 묘비, 상석 등을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둘레길 옆에는 야외탁자와 벤치 등을 설치하여 산책하는 도중 숲속에서 사색하고 쉴 수 있는 정적인 공간이다.

개화산역[편집]

  • 한국에서는 이례적으로 출구 2개 모두 지상에 건물이 있다. 물론 지하로 연결되기 때문에 지하철 출구로 가고, 지하 1층으로 내려가서 교통카드 찍고 지하 2층 승강장으로 내려가면 지하철을 탈 수 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도 지상에서 바로 승강장까지 데려다준다. 지상에 건물이 있는 이유는 바로 개화산 기술사업소가 있기 때문이다. 심도는 8.18m로 지하 2층에 승강장이 있는 서울시 지하철역, 그리고 구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 관할(5~8호선) 지하역 중에서 제일 얕다.
  • 역 이름은 인근에 있는 개화산에서 따왔다. 개화산이라는 이름에는 여러 가지 유래가 있다. 먼저 신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주룡선생(駐龍先生)이라는 도인이 이 산에서 도를 닦다가 늙어 죽은 자리에 이상한 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하여 사람들이 개화산(開花山)이라 불렀다고 한다. 한편 임진왜란, 병자호란 전까지는 이 산에서 봉화를 피웠다 하여 개화화산(開火花山)이라 하던 것이 다시 바뀌었다는 설도 있고, 산의 모양이 꽃피는 형국을 하고 있어서 붙여졌다는 설도 있다. 개화산역 이름은 이 역이 가져갔지만, 개화산 정상은 서울 지하철 9호선 개화역이 좀 더 가깝다.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개화산〉, 《위키백과》
  2. 개화산(開花山)〉, 《두산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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