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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북 예성남 정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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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북 예성남 정맥

임진북 예성남 정맥(臨津北禮成南正脈)은 해서정맥 명지덕산(910.9m)에서 분기하여 판문군 임진강 하구까지 이어지는 산맥이다.[1]

개요[편집]

  • 임진북 예성남 정맥강원도 이천군의 화개산(華開山)에서 황해도 및 경기도의 임진강 북쪽과 예성강 남쪽으로 뻗어 개성의 송악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의 옛 이름이다. 한반도 13정맥의 하나로, 북부 지방과 중부지방의 경계를 이루는 해서정맥(海西正脈)의 화개산에 갈라져 서남으로 뻗으면서 화개산·학봉산(鶴峰山)·수룡산(秀龍山)·천마산(天摩山)에서 송악산에 이르러 한강의 강구(江口)를 마주하며 끝난다.[2] 해서정맥 명지덕산 분기점에서 예성강 하구에 이르는 임진북예성남정맥의 총 길이는 도상거리 약 137km, 실제 거리 약 182km에 이른다.
  • 임진북 예성남 정맥은 원산만의 서쪽으로 흘러든 백두대간의 두류산(頭流山)에서 갈라져 황해도 서쪽 장산곶까지 한반도의 북부지방과 중부지방의 자연스러운 경계를 이룬 해서정맥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임진강과 예성강을 동서로 갈라놓은 산줄기의 옛 이름이다. 조선 시대 산줄기에 대한 인식은 하나의 대간(大幹)과 하나의 정간(正幹), 그리고 이로부터 가지친 13개의 정맥(正脈)으로 되어 있다. 이들 산줄기는 10대강의 분수산맥을 이루고, 강 유역을 경계를 짓는다. 『산경표(山經表)』에 따르면 개련산(開蓮山)에서 비롯하여 기달산(箕達山)·천개산(天蓋山)·화개산(華蓋山)·학봉산(鶴峰山)·수룡산(首龍山)·백치(白峙)·우이산(牛耳山)·성거산(聖居山)·천마산(天摩山)·송악(松岳)·진봉산(進鳳山)·백룡산(白龍山)·풍덕치(豊德治)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현대 지도의 산 이름에서는 대체로 화개산(華開山, 1,041m)·화개산(華蓋山)·학봉산(664m)·수룡산(秀龍山, 717m)·천마산(762m), 개성의 송악산(488m)에서 한강의 강구(江口)를 마주하고 끝이 난다. 중북부 해안평야지방의 예성강 유역과 내륙산간지방의 임진강 유역의 서로 다른 자연환경과 이에 상관되는 인문지리적인 차이를 뚜렷하게 구분하는 산줄기이다.[3]
  • 임진북 예성남 정맥은 황해도의 오른쪽 울타리를 이루며 북쪽으로는 임진강, 남쪽으로 예성강의 분수령이다. 해서정맥의 화개산에서 시작하여 학봉산(664m), 수룡산(717m), 천마산(762m), 송악산(488m)을 지나 정맥의 끝은 임진강과 한강의 합수점 즉 개성의 남산인 진봉산(310m)이다. 글자 그대로 온전한 임진강 북쪽 울타리를 치고 예성강 남쪽 울타리를 이루고 있다. 임진강과 예성강 사이에 있는 산줄기로 강원도 이천(伊川)의 개연산에서 시작하여 서남쪽으로 흘러 황해도 신계의 화개산, 금천의 백치와 성거산, 경기도 개성의 천마산과 부소압(송악), 풍덕(豊德)의 백룡산을 거쳐 풍덕읍치에 이르는 산줄기이다.

산경표[편집]

  • 지금까지 전하는 대표적인 『산경표』의 본(本)은 세 가지, 규장각 『해동도리보』(海東道里譜) 중의 『산경표』, 장서각의 『여지편람』(輿地便覽) 중의 『산경표』, 영인본으로 조선광문회 최남선이 1913년에 간행한 『산경표』가 있으나 모두 같은 내용으로 전국의 산줄기를 하나의 대간, 하나의 정간, 13개의 정맥으로 규정하고 여기에서 다시 가지 쳐 뻗은 기맥을 기록하였고 모든 산맥의 연결은 자연 지명인 산 이름, 고개 이름 등을 원본대로 족보 기술식으로 정리하였다. 전국의 산경을 바탕으로 작성된 산경표는 백두대간으로 알려진 한반도의 산줄기들을 분수계를 기준으로 대간(大幹)과 정간(正幹), 정맥(正脈)으로 나타냈다. 현재 1913년 활자로 만들어진 책들이 여러 권 있다.
  • 산경표(山經表)는 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인 신경준이 쓴 도표로 한반도 산줄기의 발원지와 분포를 강물의 수계를 따져 가계도처럼 그림으로 표시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산경표의 가치는 산줄기의 표현을 족보(族譜) 기술식으로 정리하여 어떤 유역들을 거느리며 변형되고 생성해 왔는지를 상세히 밝히고 있고 표의 기재 양식은 상단에 대간(大幹)·정맥(正脈)을 산경을 바탕으로 옆에 거리(이수(里數))를 부기해서 이를 펼치면 조선의 옛 지도에 나타난 산맥들을 산줄기와 하천 줄기를 중심으로 모든 구역의 경계가 나오도록 도표화했다는 데에 있다.

임진북 예성남 정맥 주요산[편집]

  • 임진북예성남 정맥은 추가령에서 장명산 까지를 말한다. 원산만의 서쪽으로 흘러든 백두대간의 두류산에서 갈라져 황해도 서쪽 장산곶까지 한반도의 북부 지방과 중부 지방의 경계를 이룬 해서정맥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임진강과 예성강을 동서로 갈라놓은 산줄기이다. 주요산은 화개산, 수룡산, 천마산, 천봉산, 장명산이다. 중북부 해안 평야 지방의 예성강 유역과 내륙 산간 지방의 임진강 유역의 서로 다른 자연환경과 이에 상관되는 인문지리적인 차이를 뚜렷하게 구분하는 산줄기다. 그러나 지금은 남, 북으로 갈라져 갈 수 없는 산행 구간이다.

임진강[편집]

  • 임진강(臨津江)은 강원도 법동군 두류산 남사면 마식령 근처에서 발원하여 한반도 중부를 거쳐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에서 한강과 합류하는 한강의 지류이다. 한강과 합쳐진 뒤 한강하구를 이루며 김포반도를 거쳐 황해로 흐른다. 임진(臨津)은 다다른 나루, 즉 강의 제일 하류에 있는 나루라는 의미이다. 토박이말로는 "더덜나루", "다달나루"라고 불렸다. 삼국 시대에는 고구려의 진임현(津臨縣)이 있었고 다른 말로는 오가홀(烏呵忽)로 불렸다. 신라가 이 지역을 지배한 뒤 임진현으로 개명하였고 조선시대까지 존속하였다. 임진현은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폐합 때 군내면에 편입되었고, 이후 오늘날 문산읍이 되었다. 강의 이름은 이 임진현에서 유래한 것이다.
  • 임진강의 발원지는 마식령 또는 두류산으로 소개되고 있다. 둘 다 강원도 법동군에 속하는 같은 지역을 가리킨다. 임진강은 길이 254.6km로 연천군에서 가장 큰 지류인 한탄강과 합류한 후 신천천 문산천 등의 지류가 유입되고 개성시를 통과하는 설계천까지 합류한 다음 김포반도 북쪽에서 한강 하류로 유입된다. 임진강은 연천군과 파주시의 상수도 수원이자, 농업 용수 공급을 담당하고 있다. 이 때문에 수질 오염에 대한 단속과 관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임진강과 그 지류인 한탄강은 많은 구간에서 추가령 구조곡의 용암대지를 침식하며 발달하였다. 추가령 구조곡은 분수계가 복잡하여 남대천, 북한강, 임진강, 한탄강의 수계가 어지러이 섞여 있다. 특히 한탄강은 기반암의 침식으로 생긴 하천 위를 오리산에서 발원한 용암대지가 완전히 덮은 뒤로 다시 침식이 일어나 좁은 현무암 협곡이 발달하였다. 이에 비해 임진강은 대보 조산운동 등에 의해 형성된 화강암과 용암대지가 차별 침식을 겪으면서 형성되어 지역마다 지질 구조가 다른 특징을 보인다.

예성강[편집]

  • 황해북도 수안군 언진산에서 발원하여 황해남도 배천군과 개성시 개풍군 사이에서 황해로 흘러드는 강이다. 예성강의 길이는 187.4㎞, 유역 면적은 3,916.3㎢로서, 북한에서 15번째로 큰 강이다. 황해북도 수안군 언진산(彦眞山, 1,120m)에서 시작되는 언진천 및 강원도 이천군의 장재덕산(長在德山, 752m)에서 시작되는 지석천(支石川)을 합류하여 한강 하구로 흘러든다. 예성강은 고려에서 중국의 송나라와 교섭할 때 이곳에서 모든 배를 띄워 예절 있게 맞아들이고 다시 바래다주었던 강이라 예성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고려 시대 송나라 상인들의 왕래가 많았을 때의 사실을 노래한 「예성강곡(禮成江曲)」도 있었다. 상류 지역은 현무암대지이고 중류지역(평산∼금천 일대)은 탄산염암석이 화학적풍화작용을 받아 형성된 두꺼운 점토풍화각이 침식되어 이뤄진 골짜기가 있고 여기에 충적지가 있다. 상류에서 수안·신계·평산 분지의 연안 농경지를 관개한다. 강 하류 유역에는 연백평야가 펼쳐진다. 하계는 나뭇가지 모양이며, 하천망 밀도가 비교적 높고 하천망이 발달된 편이다. 예성강에는 약 88개의 하천이 흘러든다. 유역의 연 강수량은 1,352.7㎜ 정도로 유역평야의 관개용수로서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한다. 4계절에 걸쳐 수량이 풍부하고 하구에서 100리 거리인 한포(汗浦)까지 선박의 항행이 자유로워 수운이 발달하였다.
  • 역사적으로 예성강 유역은 고대 낙랑군에 속하였고 뒤에는 대방군에 예속되었다. 백제에 병합되었다가 광개토왕 당시에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 고구려의 멸망 뒤 당나라의 영토가 된 적도 있으나 곧 신라의 영토가 되었다. 예성강은 안북하(安北河) 또는 북하(北河)라고도 불렸고 고려 초에 왕건이 송악(松岳)을 본거지로 해상에서 후백제의 견훤과 싸울 때 이곳이 수군의 근거지가 되었다. 예성강의 수운은 벽란도(碧瀾渡)가 고려 송도의 배후 관문 구실을 담당하여 번영을 누렸다. 연안에는 여러 곳에 포구가 있었고 그 중 연백군 유곡면의 금곡포(金谷浦)는 유명한 포구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부근에 금곡연이 있고, 또한 금곡포창이 있어 연안·배천은 물론 해주·신천·풍천·장연·문화 등 여러 고을의 전세 양곡을 이곳에서 수납하여 서울로 조운하였다.”고 한다. 점차 수운이 약해지고 경의선 철도가 예성강 수로변을 따라 지나가게 되면서 수운은 더욱 보잘것이 없어졌다. 예성강은 개풍군과 연백군의 경계를 이루며 황해로 흘러든다. 하구 가까이는 조류의 역류가 심하며, 또한 휴전선이 지나고 있다.

백두대간[편집]

  • 백두산에서 북포태산(北胞胎山)을 지난 백두대간은 백사봉 아래에서 두만강 하구 서수라(西水羅)까지 이어지는 장백정간을 갈라놓는다. 장백정간은 함흥까지 주맥이 복판으로 내려온다. 거기에 두만강 안쪽 서수라까지 뻗어가고, 서쪽으로 뻗어나간 백두대간은 마대산에서 청북정맥과 청남정맥을 내려보낸다. 압록강 남쪽으로 이어진 마대산에서 함흥을 굽어다보고 내려뻗은 백두대간은 철웅산, 거치령을 지나 두류산으로 이어진다. 두류산에서 해서정맥과 임진북예성남정맥을 내려보낸 백두대간은 추가령에서 다시 경기도 고양시 장명산으로 이어지는 한북정맥과 나뉘며, 백두대간은 추가령에서 철령으로 이어진다.
  • 평안도의 백두대간은 청천강의 남쪽과 북쪽을 막론하고 모두 함흥의 서쪽에서 뻗은 청남정맥과 청북정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황해도와 경기 북부의 고원(高原)ㆍ문천(文川) 사이를 따라서 뻗은 해서정맥, 임진북예성남정맥 사이에 위치한다. 또한 안변, 철원, 포천, 서울 등은 추가령에서 시작된 한북정맥 사이에 위치하고, 한북정맥은 고양의 장명산에서 그 정맥을 마무리한다. 백두대간은 다시 오봉산과 금강산 그리고 무산을 지나 향로봉으로 이어지고, 설악산ㆍ구봉령ㆍ오대산을 지나 대관령과 백복령 등으로 이어지다가 태백산에서 좌우로 갈라진다. 낙동강 동쪽에 자리한 낙동정맥은 동해를 바라보며 부산의 몰운대까지 이어지고, 백두대간은 선달산(先達山)을 지나 소백산으로 이어진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임진북예성남정맥〉, 《위키백과》
  2. 임진북 예성남 정맥〉, 《두산백과》
  3. 임진북예성남정맥(臨津北禮成南正脈)〉,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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