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령 (지형)
노령(蘆嶺)은 전라북도 정읍시 입암면과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순우리말 명칭은 갈재이다. 노령산맥을 가로질러 호남평야와 나주평야를 잇는 주요 교통로이다.
목차
개요[편집]
- 노령은 전북 정읍시와 전남 장성군 북이면(北二面) 사이의 도계(道界)를 이루는 고개이다. 높이는 276m이다. 갈재라고도 하며, 예로부터 노령산맥을 가로질러 호남평야와 전남평야의 두 곡창지대를 잇는 주요 교통로의 몫을 해왔다. 현재 서울~순천 간 고속도로와 호남선(湖南線)이 각각 터널을 통하여 이 고개를 통과한다. 그 동쪽에 내장산국립공원이 이어져 있으며, 고개 남쪽의 백양사역(白羊寺驛)은 국립공원의 남쪽 출입구가 되고 있다.[1]
- 노령은 대한민국 전라남도 장성군과 전라북도 정읍시 사이에 있는 높이 276m의 고개이다. 흔히 갈재, 혹은 장성갈재라고 부르며, 전남과 전북의 도 경계를 이룬다. 도보로 이동하던 시절부터 교통의 요충지였다. 입암산을 거쳐 방장산으로 연결되며, 노령산맥을 가로질러 곡창지대인 호남평야와 전남평야를 이어주기 때문이다. 전북 정읍시 대흥면에서 전남 장성군 북일면 원덕리 목란마을 사이에 있다. 갈재라는 이름은 갈대가 많다 해서 붙은 것이나, 일제강점기에 지명이 한자식으로 변경되었다. 노령산맥이라는 이름도 노령에서 나온 것이다. 노령의 동쪽은 내장산으로 이어진다. 고개 남쪽에 있는 호남선의 백양사역이 내장산국립공원의 남쪽 입구이다.[2]
- 노령은 전라북도 정읍시 입암면과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높이 276m이며 일명 '갈재'라고도 한다. 지명의 기원은, 전설에 의하면 기생 노아(蘆兒)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옛날부터 노령산맥을 가로질러 호남평야와 전남평야를 잇는 주요 교통로 구실을 하였다. 현재는 호남선철도와 호남고속도로가 각각 터널을 통하여 이 고개를 넘어간다. 특히, 호남고속도로가 통과하는 호남터널은 694m로 우리나라 고속도로에 있는 터널 가운데 가장 길다. 호남터널과 호남선이 지나는 갈재굴 부근에는 장성댐이 있고 내장산국립공원도 가까이 있어, 남쪽의 장성 백양사와 북쪽의 정읍 내장사를 잇는 관광교통로 구실을 한다. 또한, 노령은 장성 일대의 평야에서 산출되는 쌀과 보리 등의 농산물 유통로로도 이용된다.[3]
노령의 역사[편집]
- 노령은 높이에 비해 험한 고갯길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위령(葦嶺)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도적이 떼를 지어 살면서 백주에 살육과 약탈을 하는 요해(要害)의 땅이라고 적혀 있다. 과거 이 고개는 유배 가는 선비들이 많이 넘었다. 남도의 관문으로 전남 지역에 부임하는 관리를 비롯해 봇짐장수나 과거 보러 가는 선비들이 넘어 다니던 장소라 여러 전설이 전해져온다. 목란마을 앞산의 능선에 있는 미인바위 또는 갈애바위에 얽힌 이야기가 유명하다. 주막집 딸인 미인 갈애가 조정에서 보낸 선전관의 칼에 얼굴을 맞은 뒤 미인바위의 오른쪽 눈썹에 해당하는 부분이 칼에 맞은 것처럼 찌그러졌다는 전설이다.
- 한국 전쟁 중에는 조선로동당 전남도당의 일부가 이 부근에 파르티잔 병력으로 은거했다. 전북도당이 입산하여 근거지로 마련한 회문산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조선인민유격대는 노령을 차지하기 위한 전투를 필사적으로 벌였다. 두 차례 공격을 통해 한 번은 노령을 점령했으나 나머지 한 번은 실패했다. 이후로는 군경의 방어선이 완강하여 노령에 접근하지 못했다.
- 도보 시대에 사용되던 고갯길은 인적이 끊겨 자취가 없어졌고 숲이 울창하다. 대신 도로로 된 고갯길이 국도 제1호선 구간 중 하나이며, 서울과 순천시 사이의 고속도로와 호남선 철도가 통과하는 터널이 각각 뚫려 있다. 이 가운데 호남터널은 길이가 694m에 달하여 한국에서 가장 긴 터널 중 하나이다.
노령의 명칭[편집]
- 蘆嶺(갈재)은 전라북도 정읍시와 전라남도 장성군 사이에 자리한 고개이다. 한자어로 노령이라 하고 우리말로는 갈재라고 일컬어진다. 노령의 이칭으로 葦嶺ㆍ葛嶺ㆍ荻嶺 등의 용례가 확인되니 이는 모두 갈재의 '갈'에 해당하는 '갈대'의 의미를 취한 이름이다. 조선 후기 '노(갈대)'라는 이름의 여인과 관련된 설화가 유행하며 그 유래가 정착되었다. 노령은 湖南의 대표적인 고개로 회자되었지만 역사와 인문학적 가치에 주목한 연구는 부재한 실정이다.
- 노령은 고개에 갈대가 많다는 데에서 갈재라 불렸다고 한다. 또는 이 고개를 기준으로 북쪽과 남쪽의 말씨 및 풍습 등이 갈린다는 데에서 갈재라 불렸다고도 한다. 갈재라는 명칭이 한자화하면서 노령으로 변화했다. 노령이라는 한자어 표기가 일제강점기에 생겨났다는 의견도 있지만, 이미 조선시대부터 노령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조선시대에 제작된 고지도에서 노령을 확인할 수 있다. 일부 고지도에서는 노령을 세분해서 소노령(小蘆嶺)과 대노령(大蘆嶺)으로 구분하기도 했다.
- 노령의 이름은 고려 시대 顯宗 대의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이후 남북을 왕래하는 고갯길로 활용되었고 호남을 구분하는 상징으로 여겨졌다. 이곳을 넘나들었던 조선시대 문인들의 시문에서 당시 노령의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다. 노령을 지난 이들은 그 높이와 험준함에 압도되었고 경물을 통해 남방과 북방을 구분 짓는 경계로 인식했다. 그러나 아름다운 산수는 당시 문인들의 마음을 매료시켰고 여러 문화공간이 산재하여 시문이 양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예로부터 전하는 기록을 통해 노령의 유구한 역사와 중요한 인문학적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노령의 지형조건[편집]
- 내장산의 서쪽에서 전라북도와 전라남도의 경계 역할을 하는 노령은 지금의 전라남도 사람들이 한양으로 출발할 때 마주했던 첫 번째 길목이었다. 조선 시대는 물론 현대의 사람들도 서울로 가기 위해서는 노령을 넘어야 한다. 노령 옛길은 고갯길을 걸어서 넘어가던 사람들이 만들었지만, 일제강점기 신작로가 개통되면서부터 자동차를 타고 고개를 넘을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조선 시대에 개통되었던 노령 옛길을 비롯해서, 신작로로 만들어진 장성갈재, 국도 제1호선, 호남선 철도, 호남고속도로, 고속철도 호남선 등이 통과하는 구간이다.
- 노령(蘆嶺)은 현재 전라북도 정읍시 입암면과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의 경계를 이루는 해발 276m의 고개이다. 이 고개 이름으로부터 소백산맥에서 갈라져 나온 산줄기의 이름인 노령산맥이 유래했다. 노령은 노령산맥에서 서쪽의 방장산(743m)과 동쪽의 시루봉(630m)을 나누는 경계이기도 하다. 즉 방장산과 시루봉이 만나는 안부가 노령이다. 안부는 산과 산이 만나는 지점에서 해발고도 낮은 곳을 가리킨다. 지금의 전라남도에 살던 사람들이 서울에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노령을 넘어야 하듯이, 조선시대에도 남도 사람들이 한양에 가기 위해서는 노령을 넘지 않을 수 없었다. 옛날 사람들이 넘었던 흔적은 미약하지만, 노령 옛길로 남아 있다.
- 노령의 남쪽과 북쪽은 해발고도가 낮은 평지들로 이루어진다. 북쪽에는 한국 제1의 평야인 호남평야가 있다. 평지 사이에 솟은 고개이니 해발고도가 높지 않아도 주변과 비교하면 높은 고개일 수밖에 없다. 조선 시대에는 노령 고갯길이 매우 험해서 도적이 떼를 지어 있으면서 대낮에도 살육과 약탈을 하여 길이 제대로 통하지 않았다는 기록도 있다.
- 노령은 조선시대 한양과 지방을 연결하는 간선도로 가운데 하나인 호남대로에 속한 구간이었다. 남도에 부임하는 관료들이 이 고갯길을 넘었고, 남해안의 섬이나 제주도로 귀양 가던 사람들도 이 고갯길을 넘었다. 조선시대에 공공업무를 위한 여행객들이 이용했던 역로 가운데 청암도(靑巖道)가 이 고개 남쪽의 장성에서 나주 방면으로 이어졌으며, 조선 후기에는 청암도 찰방역인 청암역이 장성군으로 이전해 왔다.
- 노령 북쪽의 전라북도 정읍시 입암면 등천리에는 군령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예전에 고갯길을 넘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군사들이 머물던 마을이라 한다. 이 마을에는 주막도 10개가 넘었을 만큼, 고갯길을 넘는 사람들의 휴식처 역할도 했다. 노령은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걸어서 넘던 고갯길에서 시작하여, 신작로가 개설되면서 만들어진 자동차 도로, 철도가 통과하면서 만들어진 기차 터널, 호남고속도로가 통과하는 터널, 고속철도가 통과하는 터널 등이 부설된 고개로 변모했다. 옛날 사람들이 몇 시간에 걸쳐 힘들게 넘었던 고갯길은 이제 10분이면 충분히 통과할 수 있는 길이 되었다. 한때 국도 제1호선이었던 장성갈재는 국도 제1호선의 구간이 노령을 통과하는 호남 제2터널로 변경되면서 옛길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장성갈재는 사람들이 걸어서 넘던 옛길이 아니라 근대 들어 자동차의 통행을 목적으로 했던 신작로이다.
정읍시(井邑市)[편집]
- 전라북도 남서부에 있는 시이다. 대도시 전주와 광주의 중간지점에 자리 잡고 있으며, 호남 서해안 지방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동쪽은 임실군·완주군, 서쪽은 부안군·고창군, 북쪽은 김제시, 남쪽은 순창군과 전라남도 장성군과 접한다. 시청 소재지는 정읍시 수성동에 있다. 노령산맥 서쪽 사면에 자리 잡고 있다. 시 서부의 기반암은 중생대 쥐라기의 대보화강암으로서 해발고도 약 100m 미만의 구릉이 넓게 분포하며, 이 사이에 동진강·고부천 등이 흘러서 신태인읍·태인면·고부면·영원면·이평면 등지에 충적평야가 넓게 전개된다.
- 동남쪽 노령산맥의 줄기인 산세가 수려한 내장산국립공원과 입암산이 연결되어 있고, 서북쪽 농소동과 상평동 연지동을 관통하는 호남선철도와 고속도로 및 국도 3개 노선이 연결되어 서해안지방 교통의 중심지를 이룬다. 북서쪽은 평야가 광활하여 유명한 동진평야를 이루고 하천은 지세를 따라 북서로 흐르고 있다.
내장산국립공원(內藏山國立公園)[편집]
- 노령산맥의 내장산 ·백암산을 중심으로 전라 남 ·북도에 걸쳐 있는 국립공원이다. 총면적 75.8㎢. 1971년 11월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그 경역(境域)은 전북 정읍시 내장동(內藏洞) ·신정동·과교동과 순창군 복흥면(福興面) 및 전남 장성군 북하면(北下面)에 걸쳐 있어 내장산국립공원은 북동부의 내장산지구와 남서부의 백암산지구로 나뉜다.
- 주봉인 신선봉(神仙峰:763m)을 비롯한 서래봉(西來峰)·불출봉(佛出峰)·망해봉(望海峰)·연자봉(燕子峰)·까치봉·연지봉(蓮池峰)·장군봉(將軍峰)·월령봉(月迎峰) 으로 이루어진 내장 9봉 외에 몇몇 산봉으로 구성된다.
노령산맥(蘆嶺山脈)[편집]
- 소백산맥(小白山脈)의 지맥이다. 산맥의 이름은 전라북도 정읍시와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사이의 도 경계를 이루는 고개인 노령(蘆嶺)에서 유래하였다. 소백산맥의 중부 추풍령(秋風嶺) 부근에서 남서 방향으로 전주시와 순창군의 중간을 지나 웅령(熊嶺) ·모악산(母岳山:794 m) ·내장산(內藏山:655 m) ·노령 등을 일으키고, 다시 무안반도(務安半島)를 거쳐 쌍자제도(雙子諸島)에 이르는 중국 방향으로 뻗은 고기습곡산맥(古期褶曲山脈)으로, 저산성산지(低山性山地)를 이루고 있다.
- 노령산맥과 소백산맥과의 사이에는 폭 10~20km의 남서 방향의 지구상 고원(地溝狀高原)이 전개되어 있으며, 이곳을 금강(錦江)이 북류하고 섬진강(蟾津江)이 남류 하는데, 진안고원(鎭安高原)이 양 하천의 분수령을 이루어 가장 높다. 그 남연(南緣)의 화강암지대에 남원분지와 순창분지가 발달 되어 있다. 평균 높이가 가장 낮은 노년기 산맥으로 산맥의 서부에는 드넓은 호남평야가 전개되고, 산맥 북쪽에는 덕유산 국립공원의 무주 구천동 계곡이 있으며, 내장산 일대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전주∼진안 간의 곰티재(熊峙, 427m)와 정읍∼장성 간의 노령(蘆領, 276m)이 주요 고개이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嶺〉, 《나무위키》
- 〈고개〉, 《위키백과》
- 〈고개〉, 《나무위키》
- 〈노령〉, 《나무위키》
- 〈노령〉, 《위키백과》
- 〈노령(蘆嶺)〉, 《두산백과》
- 〈한국의 고개〉, 《위키백과》
- 〈한반도의 산 및 고개〉, 《나무위키》
- 〈노령 (蘆嶺)〉,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박상대 기자, 〈전남과 전북을 잇는 명승, 고갯길 장성 갈재를 다녀오다〉, 《여행스케치》, 2021-11-11
- 안관옥 기자, 〈전남-전북 잇는 갈재 옛길, 국가지정문화재 된다〉, 《한겨레뉴스》, 2021-09-23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