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해협
명량해협(鳴梁海峽)은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반도(花源半島)와 진도(珍島) 사이에 있는 해협이다. 울돌목이라고도 부른다.
개요[편집]
- 명량해협은 한반도 남서쪽 끝자락에 위치하는 좁은 해협으로, 전라남도 해남군의 화원반도와 진도 사이에 있다. 한국에서 조류(潮流)가 가장 빠른 곳으로 유명한데, 지형적으로 폭이 좁은 데다가 수심이 얕아 조류가 이곳을 지나면서 물살이 빨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조수 간만의 차가 큰 편으로, 밀물과 썰물에 의한 바닷물의 이동이 많은 것도 이곳의 물살이 빠른 요인이 된다. 해협 중 폭이 가장 좁은 곳은 약 300m 정도이며, 유속은 수심 전반에 걸쳐 평균 5.5m/s, 바다 표층은 최대 6.5m/s에 달한다. 특히 조차가 가장 큰 사리(대조, 大潮) 때 가장 빠르다. 좁은 지형에 대량의 물이 지나면서 소용돌이가 일어나기도 하며, 물살로 인한 소리가 매우 큰 것이 특징인데, 예로부터 바위가 우는 것 같다는 의미로 '울돌목'이라 불렸고, 이를 한자로 표현한 것이 '명량(鳴梁)'이다. 역사적으로 명량해협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13척의 배로 133척의 왜군 함대를 물리친 곳으로 유명하다. 이 해전에서 승리를 가져올 수 있었던 배경은 조류가 빠른 명량해협의 지리적 요건을 이용한 데 있었다. 현대에 와서는 해협 위로 해남과 진도를 연결하는 진도대교가 건설되었으며, 역사적 명승지로서의 가치와 지리적 특수성으로 관광지로도 개발되어 있다. 또한 빠른 물살을 이용한 우리나라 최초의 조류발전소가 2009년 준공되어 가동되고 있다.[1]
- 명량해협은 울돌목이라고도 한다.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의 화원반도와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 사이의 있는 해협이다. 길이 약 1.5km이며, 폭이 가장 짧은 곳은 약 300m 정도가 된다. 밀물 때에는 넓은 남해의 바닷물이 한꺼번에 명량해협을 통과하여 서해로 빠져나가 조류가 5m/s 이상으로 매우 빠르다. 이를 이용하여 정유재란 당시 명량 해전에서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군이 승리하였다. 물길이 암초에 부딪혀 튕겨 나오는 소리가 매우 커 바다가 우는 것 같다고 하여 울돌목이라고도 불린다. 유속은 약 10노트(10knot, 시속 20km 정도)라고 한다. 1984년 완공된 명량을 가로지르는 길이 484m, 너비 11.7m의 진도대교가 건설되어 진도와 해남군이 연결되어 있다. 2005년 12월 15일 제2진도대교가 개통되었고, 2008년부터, 빠른 조류를 이용한 조류발전소의 건설이 진행되고 있다. 울돌목은 서해의 길목으로 폭은 294m로, 물살이 세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은 울돌목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임하도(林下島)에서 당시 항해로였던 좁은 목을 막고 임하도의 지형과 물살을 이용해 배 13척으로 10배 이상의 적함 130여 척 이상을 크게 격파하였다.[2]
- 명량해협은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와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 사이에 있는 해협이다. 해남 우수영의 명량(鳴梁)은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왜군의 선단과 싸워 승전한 명량대첩(鳴梁大捷)의 격전지이다. 명량해협(鳴梁海峽)은 조선시대에 해남의 우수영(右水營)과 진도의 녹진(鹿津)이 연결되었고, 해남의 삼지원(三枝院)은 진도의 벽파진(碧波津)을 통하여 수로로 이어졌던 곳이다. 지금은 해남 문내면 학동리와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가 쌍다리[雙橋] 진도대교로 연결되어 있다. 명량해협은 서해와 남해를 연결하는 좁은 수로이다. 바닷물은 밀물 때는 남해에서 서해로 흐르고, 썰물 때는 서해에서 남해로 흐르며 사나운 물살은 바다에 암초에 부딪쳐 울음소리를 낸다. 명량해협의 가장 좁은 부분의 폭은 약 293m이며, 조류는 사리(大潮) 때의 유속이 약 11.5노트이고,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은 약 19m이다. 명량대첩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1597년 9월 16일[음력] 어란포(於蘭浦)를 출발한 왜선 133척을 맞아 13척의 병선으로 필사의 전투를 벌여 31척의 왜선을 불사르고 적의 함대를 물러나게 한 대첩이다. 그 당시에는 사리 때여서 물살이 빨라 적이 침입할 때 북서류하던 해류가 점차 남동류로 바뀌어 아군에게 유리하였다. 명량대첩은 정유재란을 일으킨 왜군이 남해에서 서해안을 통하여 한강 유역으로 침입하는 길목을 차단하였다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3]
- 명량해협은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와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 사이의 해협이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李舜臣)이 왜군의 선단과 싸워 승전한 명량해전의 격전지이다. 화원반도(花源半島)와의 사이에 놓인 명량해협의 폭은 가장 좁은 부분이 293m이며, 조류는 사리[大潮] 때의 유속이 11.5노트이고, 수심은 19m이다. 명량해전은 1597년(선조 30) 9월 16일 어란포(於蘭浦)를 출발한 왜선 133척을 맞아 12척의 병선으로 필사의 전투를 벌여 31척의 왜선을 불사르고 적의 함대를 물러나게 한 전투이다. 그 당시에는 사리 때여서 물살이 빠른 데다 적이 침입할 때 북서류하던 해류가 점차 남동류로 바뀌어 아군에게 유리하였다. 이 해전은 정유재란을 일으킨 왜군이 한강유역으로 침입하는 길목을 차단하였다는 의미를 갖는다. 명량의 지명 유래는 물살이 빠르고 소리가 요란하여 바닷목이 우는 것 같다고 하여 '울돌목'이라 한 데서 나왔다. 조선시대에는 북쪽에 녹진(鹿津)이 있어 진도와 우수영(右水營)을 연결하였고, 남쪽의 벽파진(碧波津)은 삼지원(三枝院)을 통하여 해남(海南)과 이어졌다. 당시 벽파진에는 벽파정(碧波亭)이 있었고, 육지와의 연결은 주로 벽파진 나루를 이용하였다. 현재 명량에는 등대가 있다.[4]
명칭 유래[편집]
- 명량(鳴梁)은 고유어 '울돌목'을 옮긴 것이다. 울두목, 울둠벙이라고도 한다. 울돌목은 빠른 물살이 암초에 부딪히며 소용돌이치는 물 울음소리가 20리 밖에까지 들린다고 하여 울돌목·울두목·울둠벙이라고 불렸다. 한자의 량(梁)의 뜻은 들보 량(梁), 돌다리 량(梁)이라기보다는 (비나 파도 따위가) 매우 거칠고 심하다, 사나움을 뜻한다. 울돌목은, 울(물이 운다)+돌(물이 돈다, 물 회오리)+목(좁은 수로, 좁은 해협)의 합성어이며, 물이 울고 도는, 즉 물이 사나운 좁은 해협을 의미한다.
- 명량해협은 순우리말로 울돌목이라고 부르는데, 명량(鳴梁)이 고유어 '울돌목'을 옮긴 것이다. 여기에서 '鳴'은 '울 명'이니까 '울'과 연결되며, 梁(들보 량)은 '훈몽자회' 등의 조선 시대 어린이 한자 학습서에서 그 뜻과 음이 '돌 량'으로 나오니 '돌'과 연결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돌'은 옛 가야어로 문(門)을 뜻하니, 결국 '(물이) 우는 관문'이라는 뜻이다. 마지막의 목은 골목, 길목 등의 그 목인데, 통로라는 뜻으로, 신체 부위의 목과 그 뜻이 통한다. 여기서 정말 몇 안 되는 가야어 자료가 있는데, 삼국사기의 '加羅語謂門爲梁云(가라어위문위량운)'이라는 기록이다. 가야어에는 문(門)이라는 한자에 해당하는 고유어 '돌'이 있었던 것이다. 창문에 경첩과 비슷한 목적으로 다는 '돌쩌귀'도 이 '돌'에서 나왔다고 짐작한다. 제주방언에서도 출입구를 '도'라고 부르기도 한다. 명량의 이칭은 나돌목인데 노량진(鷺梁津)의 노들과 통한다. 나들, 나드리는 방언으로 나루를 뜻하며 나돌은 나오고 들어간다는 뜻으로 보기도 한다. 울돌목은 땅 사이가 움푹 파인 모양인 해협이다. 울돌목을 '울둠벙'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여기서 '둠벙'은 웅덩이나 웅덩이처럼 꺼진 지형, 또는 늪을 뜻하므로 울돌목을 울둠벙이라 칭한 듯하다.
진도대교[편집]
- 진도대교(珍島大橋)는 전남 해남군 문내면(門內面) 학동리(鶴洞里)와 진도군 군내면(郡內面) 녹진리(鹿津里) 사이의 울돌목해협(鳴梁海峽)에 놓인 한국 최초의 사장교(斜張橋)로 길이 484m, 너비 11.7m이며 1980년 12월에 착공, 1984년 10월에 완공되었는데, 이것의 개통으로 진도에서 광주까지 4시간 걸리던 차량운행시간이 단축되고, 각종 농수산물의 수송비를 절감할 수 있게 되었다. 1980년 12월에 착공, 1984년 10월에 완공되었다.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으로 유명한 울돌목 해협은 초속 6m의 거센 조류가 흘러, 물속에 교각을 세우기 힘들기 때문에 양쪽 해안에 높이 각각 69m의 강철교탑(鋼鐵橋塔)을 세우고, 강철 케이블로 다리를 묶어 지탱하는 사장교 형식을 취했다. 이 연륙교의 개통으로 진도에서 광주까지 4시간 걸리던 차량운행시간이 2시간 30분으로 단축되고, 각종 농수산물의 수송비를 절감할 수 있게 되었다.
- 진도대교는 한국 최초의 사장교다. 지난 1984년에 제1진도 대교가, 2005년에 제2진도대교가 개통되며 쌍둥이 다리를 완성했다. 다리 길이는 484미터, 너비는 11.7미터다. 진도대교가 사장교 형식을 취한 것도 울돌목 때문이다. 강한 물살 때문에 교각을 세울 수 없어 케이블로 지탱하는 사장교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 생김이 독특한 형상으로 진도만의 관문을 이룬다.
진도타워[편집]
- 진도타워는 울돌목의 랜드마크로 지상 7층 규모에, 최고 높이가 60미터에 달한다. 타워 1층에는 진도홍보관, 2층에는 진도역사관과 명량대첩승전관이 위치한다. 3층은 카페, 5~6층은 레스토랑이다. 창밖으로 그 옛날 격전의 울돌목이 아련하다. 전망대는 7층이다. 울돌목 바다는 물론 진도 사방과 다도해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히 진도 녹진관광지의 첫 번째 명물로 손꼽을 만하다. 타워 바깥 남동쪽 광장에는 명량의 승전을 기리는 또 하나의 조형물이 있다. 뒤편 난간까지 돌아볼 수 있는데, 굴섬에서 사슴섬까지 남동쪽 바다 풍경이 펼쳐진다.
지리환경[편집]
- 명량해협 울돌목은 충무공 이순신의 3대 해전 중의 하나인 명량대첩지로 잘 알려진 서해의 좁은 해협이다. 해남과 진도 간의 좁은 해역을 이루며 길이는 약 1.5km이며, 폭이 가장 짧은 곳은 약 300m 정도가 된다. 물길이 암초에 부딪혀 튕겨 나오는 소리가 매우 커 바다가 우는 것 같다고 하여 울돌목이라고도 불린다. 밀물 때에는 넓은 남해의 바닷물이 한꺼번에 명량해협을 통과하여 서해로 빠져나가 조류가 5m/s 이상으로 매우 빠르다. 물살이 빨라 거품물이 용솟음쳐 배가 운항하기 힘든 곳이다. 이런 지형적 환경을 이용하여 정유재란 당시 명량해전에서 이순신장군은 13척의 배를 가지고 130여 척으로 공격해 오는 왜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울돌목 해변가에는 데크길과 수변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울돌목 스카이워크를 설치하여 바다 위를 걸으며 울돌목의 바닷물살과 소용돌이를 발밑으로 실감할 수 있다.
- 남해에서 들어온 바다는 명량을 지나면서 초속 6m가 넘는다. 불규칙한 수중 암반 때문에 물이 솟구치거나 회전하는 회오리 현상이 일어나는 곳이다. 2019년 현재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와 진도군 군외면이 현수교 교량, 제1진도대교, 제2진도대교로 연결되어 있다. 해남 우수영쪽에는 명량대첩기념공원과 명량해전사박물관이 있다. 해남 우수영 울돌목에 뜰채 숭어잡이가 3월~7월까지 행해지고 있어, 이색적인 숭어잡이 광경을 볼 수 있다.
- 전라남도 해남군의 화원반도와 진도군 군내면 사이를 통과하는 수도(水道)이다. 특히 진도대교가 설치된 부근은 명량해협이라고도 한다. 다른 명칭으로는 '물이 우는 관문 길목'이라는 뜻인 '울돌목'이 있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엄청난 조류를 자랑한다. 서해와 남해가 만나는 가장 짧으면서도 좁은 수로라서 조수간만의 차에 따라 썰물 때는 서해에서 남해 방향으로, 밀물 때는 남해에서 서해 방향으로 조류가 매우 빠르게 흐른다. 그래서 이미 조선시대에도 태안 안흥량, 강화 손돌목, 장산곶과 함께 물길이 험한 곳으로 유명했다. 사리 때 유속이 약 시속 10~12노트(대략 18.5~22.2km/h)로 매우 빠르다. 바로 이 급류와 맞서면서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박살 낸 해전이 명량 해전이고, 현대에 와서도 울돌목 조류 발전소를 만들어서 시간당 약 1000kW의 전기를 공급한다. 또한 목포항 - 벽파항 - 추자도 - 제주도를 지나는 항로로 이용되며, 한국 최초의 사장교인 진도대교를 볼 수 있다. 너무 유속이 빨라 교각을 세울 수 없어 교각을 지상에 세운 사장교로 만들어야 했는데 현재 유속도 진도대교를 건설하면서 해협의 돌들을 치운 덕분에 그나마 많이 느려진 것이다.
- 명량해협은 한반도 남쪽 땅 끝인 해남과 섬지역인 진도 사이에 끼여 있는 좁은 바다를 말한다. 바다 폭이 평균 500m에 불과하다. 행정구역으로는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와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 사이의 바다 폭이 가장 좁다. 그 폭은 평균 300m 안팎이다. 명량해협은 가장 좁은 지점을 중심으로 동서로 나팔 모양처럼 점차 넓어진다. 그래서 이 지점은 명량해협의 물목이 된다. 명량해협은 폭이 좁을 뿐 아니라 해구가 깊은 절벽을 이루고 있어 흐르는 물살이 여기에 부딪쳤다가 솟아올라 물소리가 우렁차다. 바닷물은 해협을 하루에 네 번씩 교차하는데, 아침 무렵에는 남동쪽인 완도 방면에서 목포 방면인 북서쪽으로 흐른다.
명량해협의 작용[편집]
- 명량해협은 빠른 물살이 형성하는 청정해역 덕분에 관광, 청정 농수산물 생산지로서 명성을 얻고 있다. 1984년 명량해협에 다리가 놓임으로써 진도는 한반도의 최남단이 되었는데, 이 다리가 바로 진도대교이다. 진도대교의 준공으로 인해 진도는 아름다운 낙조와 야경, 다리 아래의 울돌목 물살이 장관을 이루어 진도의 특산물, 문화예술과 함께 관광자원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 진도는 반도의 서남쪽 모서리에 위치하여 작게는 서남해 섬지역과 섬지역, 그리고 크게는 서해와 남해를 연결하는 중간다리 역할을 한다. 한국의 전근대사에 있어서 진도와 한반도의 서남해안을 가로지르는 해로는 역사·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했고, 진도지역으로 하여금 남다른 역사적 경험을 하게 하였으니, 명량해협을 무대로 한 이순신의 명량대첩이 그것이다. 이 대첩을 통해 조선군은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할 수 있었다. 명량해협을 포함한 한반도의 서남부를 경유하는 해로는 고대로부터 중국, 한반도, 일본을 연결한 국제 문화의 주요 이동로였고, 고려 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조운로(漕運路)로써 그 의미가 돋보이는 바닷길이었던 것이다.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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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해협〉, 《위키백과》
- 〈해협〉, 《나무위키》
- 〈명량해협〉, 《위키백과》
- 〈명량수도〉, 《나무위키》
- 〈명량 해전〉, 《위키백과》
- 〈해협(strait,海峽)〉, 《두산백과》
- 〈명량해협〉, 《향토문화전자대전》
- 〈명량해협(鳴梁海峽)〉, 《두산백과》
- 〈명량(鳴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진도군, 〈명량해협, 승리의 바다! 진도 울돌목〉, 《네이버블로그》, 2022-08-23
- 토복남, 〈이순신장군의 발자취를 찾아서-명량해협(울돌목)과 우수영〉, 《네이버블로그》, 2018-01-24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