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악산 (개성)
송악산(松嶽山)은 북한 개성시에 위치한 높이 488m의 산이다. 일명 만수산(萬壽山)이라고도 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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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 송악산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개성시에 있는 산이다. 높이는 488m. 부소갑(扶蘇岬)·곡령(鵠嶺)·문숭산(文崧山)이라고도 한다. 산 전체가 주로 화강암의 큰 바위로 되어 있다. 송악산 북쪽에는 천마산과 박연폭포가 있고, 남쪽으로는 진봉산과 룡수산의 안산이 솟아 있다. 고려의 옛 도읍인 송도(松都)의 진산이다. 산 남쪽 기슭에는 옛 고려의 고적으로 으뜸가는 왕궁터인 만월대(滿月臺)가 있다. 산 동쪽 기슭에 자하동(紫霞洞), 서쪽 기슭에 광명사정(廣明寺井)의 명승지가 있다.[2]
- 송악산은 경기도 개성시와 개풍군에 걸쳐 있는 산. 높이 488m. 고려의 도읍인 송도(松都)의 진산이다. 일명 부소갑(扶蘇岬)·곡령(鵠嶺)·문숭산(文崧山)·신숭(神嵩)·촉막(蜀幕) 등으로도 불린다. 이 가운데 신숭·촉막은 『송사(宋史)』에 전거한 이름이다.[3] 송악산은 바로 주위에 있는 천마산에 비해서도 산세가 높지 않고, 아주 수려한 경관이 아니어서 한반도 명산의 반열에 있지는 않다. 그러나 송악산은 개성을 수호해주는 산으로 고려 시대 이후 현대까지 다양한 역사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 393년 7월 고려왕조가 망하고 새로 수립된 조선 역시 송악산 아래 고려황궁인 만월대 수창궁에서 시작되었지만, 조선의 수도를 한양으로 옮긴 이후 송악산은 개성의 쇠락과 함께 했다. 일제강점시대에도 송악산 정상에는 단군 산상각과 송악산 사당, 산신량당이 있었고, 마을의 수호신인 성황(城隍), 대왕(大王), 국사(國師), 고녀(姑女), 부녀(府女) 등 다섯 신을 모신 송악산사가 있었다고 하여 주민들을 보호하는 수호 산의 역할을 꾸준히 하였다.
- 송악산은 경기(북한) 개성시와 개풍군(현 개성직할시)의 경계에 있는 산. 부소갑(扶蘇岬) ·곡령(鵠嶺) ·문숭산(文崧山)이라고도 한다. 높이 489m. 고려의 옛 도읍인 송도(松都)의 진산으로, 송악이라는 이름은 소나무를 심어 그 명(名)이 체(體)를 표현한다는 풍수사상에서 유래한다. 주위에 봉명산(鳳鳴山:411m) ·천마산(天摩山:762m) ·화장산(華臧山:558m)이 솟아 있다. 산 전체가 주로 화강암의 큰 바위로 되어 있으며, 기암괴석 ·활엽수림의 조화가 뛰어나다. 북쪽 비탈면에 비하여 남쪽 비탈면이 급경사를 이루며, 서쪽 기슭에서는 죽배천이, 남쪽 기슭에서는 지파리천이, 북쪽 기슭에서는 마미천이 각각 발원한다. 신라시대의 토성과 고려시대의 성터가 남아 있으며, 남쪽 골짜기에는 개성 만월대(滿月臺)터 ·원홍사 등이 있다.[4]
송악산의 생태[편집]
- 송악은 소나무를 심어 그 명(名)이 체(體)를 표현한다는 풍수사상에서 유래한다. 주위에 봉명산(鳳鳴山) ·천마산(天摩山) ·화장산(華臧山)이 솟아 있다.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이루어졌으며 기암괴석 ·활엽수림의 조화가 뛰어나다.
- 주봉에서 동남·서남 방향으로 뻗어내린 산줄기가 청룡·백호에 해당한다. 그런데 백호가 세력이 강하고 청룡이 약하여 명상(名相)이 드물고 무신이 자주 난리를 일으킨다고 전한다. 북쪽에 천마산(天摩山)과 박연폭포(朴淵瀑布), 남쪽에 진봉산·용수산의 안산이 솟아 있어 마치 조공을 드리는 형상처럼 보인다. 북사면에 비하여 남사면이 급경사를 이룬다.
- 서쪽 기슭에서는 죽배천이, 남쪽 기슭에서는 지파리천이, 북쪽 기슭에서는 마미천이 각각 발원한다. 신라시대의 토성과 고려시대의 성터, 남쪽 골짜기에는 개성 만월대(滿月臺)터 ·원홍사 등이 있다. 산 동쪽 기슭에 자하동(紫霞洞), 서쪽 기슭에 광명사정(廣明寺井)의 명승지가 있다.
송악산의 전설[편집]
- 산과 산맥이 유난히 많은 한반도에서 명산의 정기와 기운을 타고 영웅들이 나타났다. 백두산에서는 단군신화가 있고, 개성 송악산에는 고려 태조 왕건 탄생의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태조 왕건의 4대조인 강충이 화강암으로 척박한 산에 소나무를 심어 기세를 더했고, 왕건의 아버지인 용건(혹은 융건)이 도선국사의 뜻에 따라 송악산 아래 집터를 잡은 이후, 송악산의 정기를 받아 왕건이 태어났다는 것이다.
- 혼란스러웠던 후삼국을 통일한 태조 왕건은 당연히 자신의 고향이었던 이곳을 왕도로 삼았고, 송악산 밑에 고려왕궁을 만들었다. 이후 개주, 혹은 개경, 개성이라는 공식적 지명과 함께 소나무가 많은 송악산의 영향을 받아 '송도'라 불리기도 했다. 이렇게 송악산은 고려와 분리할 수 없는 고려의 상징이고 운명이 되었다. 1757년 조선시대 강세황이 그린 '송도기행첩'에도 송악산은 개성의 남대문과 함께 중요하게 부각되어 있다.
송악산의 고려궁성(高麗宮城)[편집]
- 개성특급시 송악산 남쪽 구릉지에 위치한 고려시대의 궁궐터로 속칭 '만월대滿月臺'로 불린다. 919년에 창건하였으며 1361년에 홍건적의 침입으로 소실된 이후 복구되지 못하였는데 조선이 건국된 1392년까지 고려의 정궁正宮으로 이용되었다. 구릉에 자리한 지형적 특징으로 높은 축대 위에 여러 건물을 세웠는데 남북 중심축선을 따라 만든 다른 궁궐과 달리 지형에 따라 건물군의 중심축을 달리하였다. 궁궐은 제1정전正殿인 회경전會慶殿을 비롯한 장화전長和殿과 원덕전元德殿으로 이루어진 '중심건축군'을 가운데 두고 서쪽으로는 제2정전인 건덕전乾德殿과 동쪽으로는 세자가 머물렀던 춘궁春宮을, 북쪽으로는 궁궐의 정원인 금원禁苑이 자리한다. 2007년부터 남북공동발굴조사가 진행된 바 있으며 제37차 유네스코 세계유산 위원회에서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 만월대는 북한의 국보 문화유물 제122호로 지정되어 있다. 송악산 남쪽 구릉지에 있는 고려 궁터로, 1361년(고려 공민왕 10)에 모두 불에 타서 폐허로 남아 있던 것을 8·15광복 후 발굴하였다. 궁의 중앙 높은 축대 위에 정전인 회경전(會慶殿) 터가 있고, 이를 중심으로 궁성 동쪽 벽까지 약 135m, 서쪽 벽까지 약 230m이며, 남쪽 벽의 성문인 승평문(昇平門)까지 약 250m이다. 건물배치는 크게 보아 회경전 중심의 외전 일곽, 장화전 중심의 내전 일곽과 서북쪽의 침전 일곽으로 구분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구릉지에 위치한 지형적 특성상 높은 축대를 쌓고 건물들을 세웠으며, 건물들의 배치 또한 자유롭게 구성했다는 점이다. 회경전은 정면 3칸, 측면 4칸으로 된 본채의 좌우에 정면 3칸, 측면 4칸의 익사(翼舍)가 붙어 있는 형태이다. 높은 축대 정면에는 넓은 장대석 계단을 4군데 설치하였다.
- 만월대는 남아 있는 흔적들로 보아 정남(正南)의 승평문을 중심으로 그 좌우에 동락정(同樂亭)과 신봉문(神鳳門)·춘덕문(春德門)·춘궁(春宮)·태초문(太初門)이 있었으며, 장화전(長和殿)·원덕전(元德殿)·장령전(長令殿)·연영전(延英殿)·자화전(慈和殿) 등과 왕이 거처하던 건덕전(乾德殿)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개천에 놓인 돌다리 만월교, 수만 권의 장서를 보관하였던 임천각(臨川閣), 불교사찰인 법운사(法雲寺)와 내제석원(內帝釋院) 터도 발굴되었다. 또한 수많은 기와와 함께 지붕의 마루기와에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잡상(雜像)이 출토되어 당시 궁궐의 지붕 장식 형태를 알 수 있다.
송악산 광명사(廣明寺)[편집]
- 경기 개성시 만월동(滿月洞) 연경궁(延慶宮) 북쪽 송악산록(松嶽山麓)에 있는 절. 922년(태조 5) 태조가 세전(世傳)의 옛집을 바쳐 절을 짓게 하였는데, 어수(御水)로 썼다는 이 절의 침실 바깥 우물에는 작제건(作帝建)과 용녀(龍女)의 전설이 얽혀 있다. 충렬왕도 몇 차례나 이 절을 찾았고, 충숙왕 ·충정왕 등도 이 절을 찾아 우란분재(盂蘭盆齋) ·용화회(龍華會) 등을 여는 등 왕가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충정왕의 뒤를 이은 공민왕은 즉위 뒤 2년(1353), 4년, 8년의 3월 24일에 충숙왕의 기신(忌晨)을 이곳에서 베풀었으며, 가을 등에도 때로 기재(忌齋) ·법회를 열기도 하였다. 왕사(王師) 자초(自超)가 머물기도 하였고, 강종 즉위 뒤는 지겸(至謙)을 왕사로 삼아 머물게 하였다.
- 1101년(숙종 5) 승려 광기(光器), 주부(主簿) 손필(孫弼)과 이진광(李震光) 등이 음양서(陰陽書)를 조작하다가 발각되기도 하였는데, 또 공민왕 때 양종오교(兩宗五敎)가 치른 공부선(功夫選)이 치러진 곳이기도 하다. 충숙왕과 이규보(李奎報) ·김극기(金克己) 등이 이 절을 소재로 삼아 지은 시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 남아 있다.
송악산의 개성금송(開城金松)[편집]
- 황해북도 개성시 고려동 송악산 기슭에 있는 금송이다. 1983년 3월 북한 천연기념물 제464호로 지정되었다. 수령은 약 100년이고 높이가 약 7.2m, 밑동둘레 80㎝, 가슴 높이 둘레 약 70㎝, 나무퍼짐의 지름 약 3.5m이다. 1910년 경에 30년 정도 자란 것을 옮겨 심었다고 한다. 북한에서 두 번째로 큰 나무이다. 100m 거리를 두고 2그루가 서 있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산〉, 《위키백과》
- 〈산〉, 《나무위키》
- 〈송악산〉, 《나무위키》
- 〈산〉, 《네이버국어사전》
- 〈송악산(개성)〉, 《위키백과》
- 〈송악산(松嶽山)〉, 《두산백과》
- 〈송악산(松岳山)〉,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복덩어리, 〈김포 문수산, 좋은 날씨에 개성 송악산 조망산행〉, 《네이버블로그》, 2022-10-13
- 임병식 기자, 〈파주에서 보이는 개성 송악산〉, 《연합뉴스》, 2020-09-08
- 대한민국 통일부, 〈북한의 '5대 명산'은 어디일까?〉, 《네이버블로그》, 2017-09-03
- 박소영, 〈개성 송악산〉, 《통일뉴스》, 2015-07-07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