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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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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달산

팔달산(八達山)은 경기도 수원시의 중심에 있는 이다. 팔달산은 해발 128m의 아담한 산으로 광교산 남쪽에 위치한 탑 모양의 산이다.

개요[편집]

  • 팔달산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에 위치한 산이다. 중년 이상의 수원 토박이들은 '팔딱산', '팔닥산'이라고도 부른다. 수원시 중앙에 위치해있으며, 수원화성의 서부 성곽이 팔달산 능선을 따라 있다. 높이는 145.5m로 생각보다 높지 않으며, 한 바퀴 도는 데 2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작은 산이다. 과거에 탑처럼 생겼다 하여 탑산이라 불렸으나 고려 공민왕 때 학자 이고(李皐)에 의하여 조선 태조에게 그림으로 보여졌으며, 태조 이성계가 그림을 보고 사통팔달한 산이라 하여 팔달산이라 칭해지게 되었다. 소규모의 고인돌 4기가 팔달산 중턱에 있는 중앙도서관 주변에 있다. 주변에는 경기도청, 선경도서관, 팔달문, 화서문, 화성행궁 등이 있다. 꼭대기에 있는 서장대에서는 날씨가 좋을 때 수원의 전경을 볼 수 있다. 야경도 좋다.[1]
  • 팔달산은 경기도 수원시의 산이다. 옛 이름은 '탑산'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고 탑산에 은거해 있는데 고려말 3학사 중 한 분이 조정에 내려올 것을 누차 권고했으나 끝내 내려오지 않았다. 그래서 화공을 시켜 탑산을 그려오라 했다 한다. 그림을 본 이태조는 "역시 아름답고 사통팔달한 산"이라고 하며 산 이름을 팔달산이라 명명하였다. 팔달산에 오르면 수원을 한눈에 볼 수 있고 수원성곽이 고스런히 보존되어 있어 역사의 산교육장이다. 1948년 8월 15일 한국의 독립을 기념해 일제 순사 노구찌의 순국비를 부순 자리(중포산)에 대한민국독립기념비를 세웠다. 1969년 3월 1일 삼일동지회는 삼일독립기념탑을 팔달산에 세우고 대한민국독립기념비를 새 기념탑 옆으로 옮겼다.[2]
  • 팔달산은 경기도 수원시 중심에 있는 시의 주산이다. 옛 이름은 광교산 남쪽에 있는 탑 모양의 산이라 하여 탑산으로 불렸고 지금의 이름은 조선 태조 때부터 불리기 시작하였다. 시내 중심에 있고 산 전역이 아름다워 1974년 팔달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수원부읍지》에 '수원부의 주산이며 고적이 많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옛날에는 탑산이라고 불렸는데 이름이 바뀐 것은 고려 공민왕 때의 학자인 이고(李皐)와 관련된다. 은퇴한 이고가 세상을 떠나 이 산자락에 살았는데 공양왕이 사람을 보내 근황을 묻자 "집 뒤에 있는 탑산의 경치가 아름답고 산정에 오르면 사통팔달하여 마음과 눈을 가리는 게 아무것도 없어 즐겁다"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조선 태조가 은거하던 이고에게 벼슬을 권하자 이를 거절하였다. 이에 화공을 시켜 탑산을 그려오게 하였는데 태조가 그림을 보고 "과연 사통팔달한 산이다"고 한 데서 이 산이 팔달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비록 도심 속의 낮은 산이지만 정상에 오르면 동서남북으로 시야가 탁 트여 시 전체가 시원하게 조망된다. 산 능선을 따라 축조된 화성은 서장대·서노대·서포루·화양루 등 시설물을 거느리고 있으며 원형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어 이들과 산의 조화가 고풍스러움을 자아낸다. 산에는 3.2㎞의 순환도로와 3개의 약수터, 각종 운동을 위한 시설과 산책로를 비롯하여 정조대왕 동상, 3·1운동 기념비, 효원의 종 등이 설치되어 있다.[3]

팔달산 지석묘군(八達山 支石墓群)[편집]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에 있는 고인돌이다. 1991년 10월 12일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991년 10월 12일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 고인돌은 팔달산의 남쪽 일대를 두루 살필 수 있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수원시립중앙도서관의 오른편 기슭을 따라 팔달산으로 조금 오르다 보면 편평한 구릉 위에 1호와 2호 고인돌이 서로 인접하여 있다. 이곳에서 위쪽으로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3호와 4호 고인돌이 있다. 3호 고인돌의 하부 구조는 겉으로 드러나 있고, 그 옆에 덮개돌로 추정되는 돌이 흙 속에 묻혀 있다.
  • 팔달산 고인돌의 덮개돌은 규모가 작고 두께는 두툼한 느낌을 준다. 가장 큰 것은 길이 1.8m, 두께 0.45m이다.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양편에는 돌을 세우고 그 위에 평평한 돌을 얹어 놓은 것으로 거석분묘라 한다. 그 속에 사람의 시신을 매장하고 토기나 석기 등 껴묻거리를 함께 매장한 형태로 남방식이다. 이곳은 삼한시대 수원이 마한의 54개 국의 모수국이었다는 것의 궁금증을 푸는 열쇠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팔달공원(八達公園)[편집]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 산1-1번지에 있는 공원이다. 수원의 팔달산(八達山) 중턱에 있는 공원으로, 면적은 51만 8,188㎡이다. 1974년 공원으로 지정되었고, 1985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팔달공원은 사적 제3호로 지정된 화성(華城) 나들이의 출발지로, 공원 내에 팔달산 정상의 서장대를 정점으로 하여 화성 성벽 1.2km가 이어져 있으며 길이 3.2km의 팔달산회주도로도 있다.
  • 배드민턴장·농구장·게이트볼장·족구장 등의 시민체육공간과 총 1,580m의 조깅·산책로를 비롯하여 3·1독립운동기념탑·강감찬장군동상·홍난파노래비 등의 조형물이 조성되어 있다. 그밖에 약수터(4개소), 매점(2개소), 누각(12개소), 의자(약 230점), 화장실(12동) 등의 시설이 설치되어 화성을 찾는 관광객과 인근 주민들의 쉼터로 이용되고 있다. 화성을 끼고 있는 또 다른 근린공원인 장안공원과 화성공원과도 인접해 있다.

서장대(西將臺)[편집]

  • 경기도 수원시 팔달산 정상에 있는 조선시대 장대(將臺:장수가 군사를 지휘하던 곳).
  • 서장대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중층 누각으로서 상층은 정면과 측면이 각각 1칸의 모임지붕으로 되어 있다. 뒤편에는 8면의 노대(弩臺: 서노대)를 세웠는데, 이곳은 쇠뇌를 쏘는 군사인 노수(弩手)가 머물던 곳이다. 또한 현재는 복원이 안됐으나 후당(後堂) 3칸을 지었다. 서쪽 두 칸은 온돌이고, 동쪽 1칸은 판자를 깔았다. 모두 창과 분합문을 설치하고 단청을 하였다.
  • 이곳은 성의 안팎이 모두 한눈에 들어와, 화성 성곽 일대는 물론 이 산을 둘러싸고 있는 백 리 안쪽의 모든 동정을 파악할 수 있다. 1794년(정조 18) 8월 11일 터 닦기 공사에 착수하였고, 9월 16일에 상량하고, 9월 29일에 완공되었다. 정조가 '화성장대(華城將臺)'란 편액을 직접 썼다.

관련 기사[편집]

  • 수원을 떠나 화성시에 정착한 지 10년 만에 다시 수원 팔달산에 올랐다. 방화수류정에서 출발하여 성곽을 따라 장안문, 화서문, 서장대를 지나 서남암문 근처에 있다는 '대한민국독립기념탑'까지 걷기다. 방화수류정이 올려다보이는 '별이네'라는 카페 이층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셨다. 벽이 개방되어있어 청량한 공기가 그지없이 상쾌했다. 눈이 부시게 하늘도 푸르렀다. 아름다운 화홍문의 7개 수문을 흐르는 물소리도 정겨웠다.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멀리 사는 딸에게 간단한 안부와 더불어 사진을 전송했다. 100여 년 전 저 아름다운 정자 난간과 계단에서 독립만세 함성이 울려 퍼졌고, 밤엔 봉홧불을 피워 성곽 둘레가 불꽃밭이었다는 얘기가 전한다. 해방과 더불어 일인들이 채 물러가기도 전에 탑을 망치로 때려 부숴 광교천에 밀어 넣어 버렸다. 그리고 광복의 환희와 더불어 이들은 1948년 그 자리에 영광의 독립기념비를 세웠다. 그것도 마음이 급한 나머지 노구치 순직비의 탑신만을 없애고 그 석대 위에 독립기념비의 탑신을 만들어 올려놓았으니 역사의 변천은 이렇게 무상했다. 그 뒤 이 기념비는 삼일동지회에 의해 팔달산 중턱으로 옮겨져 1969년에 세워진 3.1운동기념탑과 나란히 수원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다.'라고 《팔달산의 함성》이란 책에 기술되어있다. 서장대안내소에서 '수원화성' 안내 소책자를 받아 펼쳐보니, 지도에 눈곱만한 크기로 탑 모양만 흐릿하게 그려져 있고 무엇인지 이름이 쓰여 있지도 않았다. 팔달산 기슭에 30년을 살며 운동 삼아 산을 오르내렸어도 이 기념비를 본 기억이 없다. 세울 때 수원 시내가 내려다보였다고 쓰여 있는데, 지금은 숲속에 숨겨져 있는 느낌이다.[4]
  • 경기도 수원시가 대표적인 소나무 분포 자연림인 팔달산 자생 소나무림을 가꿔 수원화성의 자연경관을 보전하고자 '천년의 소나무 숲' 조성 사업을 추진한다. 시는 '팔달산 천년의 솔숲 보전사업' 계획을 수립해 2020년 7월부터 현황조사를 시작으로 향후 4년간 팔달산 숲 가꾸기와 등산로 정비, 샛길 폐쇄, 시민단체와 함께하는 소나무 숲 마케팅 등을 실시할 예정이다. 시에 따르면 현재 팔달산에는 침엽수와 활엽수 등 76종에 달하는 1만 7,541주의 나무가 자생하고 있으며 이 중 47%인 8293주가 소나무로, 수원에서 유일하게 대면적으로 분포하는 자연림이다. 그러나 활엽수인 벚나무, 참나무 등과 경쟁에서 점점 밀려나 고사하고 있으며 밀식으로 뿌리가 부실하고 무게중심이 높아 바람에 취약한 상태다. 이번 사업 명칭 '천년의 숲'은 정조가 1793년 수원 원행을 천 년에 한 번 있는 즐거운 날이라고 한 것을 인용함으로써 역사성을 더했다. 최준호 시 화성사업소장은 "팔달산 소나무를 잘 가꿔 향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품 소나무 솔숲으로 마케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팔달산(143m)은 경기도기념물 제125호 팔달산지석묘군과 사적 3호이자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호 수원향교를 품은 시의 자랑이자 명산이다. [5]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팔달산〉, 《나무위키》
  2. 팔달산〉, 《위키백과》
  3. 팔달산(八達山)〉, 《두산백과》
  4. 양인선 기자, 〈수원 팔달산 '대한민국독립기념비' 앞에 서다〉, 《우리문화신문》, 2021-09-06
  5. 전재룡 기자, 〈수원시 팔달산 자연림, '천년의 소나무 숲' 조성〉, 《산림신문》, 2020-04-13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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