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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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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령

죽령(竹嶺)은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과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사이에 있는 백두대간 상의 고개이다. 높이는 해발 696m.

개요[편집]

  • 죽령은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과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경계에 위치한 백두대간의 고개이다. 신라 초기에 죽죽에 의해 개척된 도로이다. 높이는 해발 696m이며, 이 산은 조선 시대부터 험하기로 유명했으나 죽령터널의 개통으로 넘어가기가 편리해졌다. 중앙고속도로와 중앙선 철도는 죽령을 터널로 지난다. [1]
  • 죽령은 삼국시대 당시 신라의 북쪽으로 통하는 주요한 길목이자, 낙동강 유역에서 한강 유역으로 통하는 생명선이었다. 고구려의 전성기였던 장수왕 때는 고구려가 남쪽으로 세력을 뻗쳐 죽령이 고구려 남쪽-신라 북쪽 국경선이었고, 이는 진흥왕 때 신라가 고구려를 쳐서 빼앗는다. 이때 죽령 입구에 성을 쌓으면서 만든 비석이 단양 신라 적성비. 고구려의 온달 장군이 "죽령 이북의 땅을 찾고야 말겠다"고 달려나갔다가 유시로 유명을 달리했을 만큼 고구려와 신라를 가르는 주요한 경계가 되기도 했다. 나중에 김춘추가 연개소문과 교섭하기 위해 고구려를 찾았을 때도 연개소문은 죽령 이북 땅을 돌려주면 백제를 칠 군사를 빌려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삼국통일 이후에도 9주 5소경 행정구역을 구분할 때 원신라 영역(현 경상도) 상주와 원고구려 영역 명주, 삭주의 경계선이었다. 과거 영남대로 가운데서 우로의 고비에 속하는 곳으로 한양에서 안동, 경주를 거쳐 울산광역시 북구 염포로 통했다. 역사적으로도 여러 차례 중요한 길목이었으나, 전근대 시절에는 충청도와 경상도를 오가는 고개 중에서, 주로 문경새재와 화령 일대로 교류했기 때문에, 우로에 있었다.[2]
  • 죽령은 영주와 단양을 연결하던 옛길로, 소백산국립공원 내에 있다. 대재라고도 한다. 해발 689m. 삼국시대 때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 지역으로 오랜 기간 영토 분쟁지역이었다. 소백산맥이 영남과 호서를 갈라놓는 길목에 해당하며, 삼국시대 이래로 봄·가을에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삼국사기》와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의하면, 서기 158년(신라 아달라왕 5)에 죽령길을 개척하다 죽은 죽죽을 제사지내는 사당이 고갯마루에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죽령사(竹嶺祠)라는 산신사당이 있었다. 대강면 용부원리(龍夫院里) 죽령역에서 풍기읍 희방사역(喜方寺驛)으로 빠지는 중앙선 철도가 길이 4,500m의 죽령터널을 통하여 죽령 산허리를 통과한다. 또 중앙고속도로 단양~풍기 구간이 죽령터널을 통과하여 나 있다. 용부원리 쪽 죽령터널 입구 부근에 제2 단양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죽령폭포가 있다. 비경으로 이름난 계곡과 녹음 우거진 수목 터널이 이어지는 소백산 능선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보여주고 있는 명승지이다. 2007년 12월 17일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죽령의 지형[편집]

  • 일명 죽령재·대재라고도 한다. 신라 제8대 아달라이사금 5년(158)에 길을 열었고 소백산맥의 도솔봉(兜率峰, 1,314m)과 북쪽의 연화봉(蓮花峰, 1,394m)과의 안부(鞍部)에 위치한다. 동쪽 사면은 내성강(乃城江)의 지류인 서천(西川)의 상류 계곡으로 통하고, 서쪽 사면은 남한강의 지류인 죽령천(竹嶺川)의 상류 하곡과 이어진다. 도로도 이들 하곡을 따라 개통이 되나, 동쪽은 사면의 경사가 급하고 많은 침식곡이 발달하여 희방사(喜方寺) 계곡 입구부터 고갯마루까지는 굴곡이 심한 길이다.
  • 고갯마루에서 서쪽의 보국사(輔國寺)까지는 비교적 완사면으로 내려가나 곡저(谷底)의 당동리까지는 다소 굴곡이 심한 내리막길이다. 이와 같이 비록 험한 고갯길이었으나 예로부터 영남 지방과 호서 지방을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였다. 1941년 죽령 밑으로 4,500m의 죽령터널을 뚫어 중앙선이 개통되었고, 터널의 동쪽에 희방사역, 서쪽에 죽령역이 개설되었다.
  • 죽령역에서 곡저까지는 급경사이므로 철도는 원형의 '또아리굴'을 파서 360° 회전하며 하강한다. 이와 같은 두 개의 큰 터널 외에도 양사면을 통과하는 철로는 많은 굴을 통과하고 있다. 철도의 개통으로 죽령 북쪽 단양군 일대의 지하자원이 급속히 개발되기 시작하였고, 특히 시멘트공장과 석회분말공장이 건설됨에 따라 죽령의 구실이 더욱 커졌다.
  • 동쪽 풍기에는 풍기인삼이 유명하며, 희방사역에서 하차하여 북쪽으로 약 3㎞ 계곡을 올라가면 희방폭포와 희방사에 이르고 아름다운 풍경을 접할 수 있다. 서쪽 사면은 경사가 비교적 완만하여 산지의 높은 곳까지 개간되었고, 고갯마루 근처에도 계단식 뽕나무밭이 조성되어 산림이 울창한 동쪽 사면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 죽령은 삼국 시대 이래로 봄·가을에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조선 시대에는 죽령사(竹嶺祠)라는 산신 사당이 있었다. 지금도 용부원리 계곡에 산신당이 있고, 터널 입구 부근에 제2단양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죽령폭포가 있다. 옛날 어느 도승이 이 고개가 너무 힘들어서 짚고 가던 대지팡이를 꽂은 것이 살아났다 하여 죽령이라 하였다 한다.[3]

충청도와 경상도의 연결선[편집]

  • 죽령 옛길은 경상북도 영주시와 충청북도 단양군을 연결하던 옛길이다. 현재 죽령을 통과하는 길 가운데 영주시의 희방사역에서 고갯마루의 죽령 주막에 이르는 구간이 죽령 옛길로 남아 있다. 자동차 도로가 개설되기 전까지 죽령 옛길은 경상도와 충청도를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로 기능을 담당했다. 죽령 옛길이 매우 경사가 심한 구간에 자리했으므로 새로운 도로나 철도가 개통될 때에 죽령 옛길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 죽령 옛길은 경상도와 충청도를 가로지르는 백두대간을 넘는 길목으로 오래전부터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이었다고 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8대 임금이었던 아달라이사금(阿達羅尼師今)이 부하 죽죽에게 길을 만들라고 명하였고, 158년에 소백산 서쪽의 계곡을 따라 고갯길을 개척했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 죽령을 통과하는 길 가운데 영주시의 희방사역에서 고갯마루의 죽령 주막에 이르는 구간이 죽령 옛길로 남아 있다.
  • 이름에는 대나무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만, 죽령 옛길에는 대나무가 없다고 한다. 죽령은 대재라고도 불리는데, 여기에는 큰 고개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의 흰봉산 도솔봉과 단양군 단양읍에 있는 연희봉 사이의 가장 낮은 산허리를 넘어가는 구불구불한 길이다. 이들 봉우리는 해발고도가 1,300m를 넘을 정도로 험준해서, 죽령 옛길을 개척하는 데에는 5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백두대간은 험준한 산줄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경상도와 충청도의 경계를 형성한다. 따라서 경상도와 충청도 사람들은 큰 산을 넘어 왕래할 수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죽령 옛길이다. 죽령 옛길 고갯마루에는 장승이 여러 개 세워져 있다. 장승은 우리의 전통문화를 잘 보여주는 것으로, 일부 장승은 특정 지점까지의 거리를 표기해 놓아 이정표의 역할도 했다.
  • 죽령 옛길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의 내륙지방을 통과하는 중요한 장소였다. 제일 먼저 자동차 도로가 구불구불한 산길을 돌아 개통되었으며, 1940년 5월에는 소백산을 통과하는 중앙선 철도의 죽령 터널이 준공되었다. 1941년에는 죽령을 통과하는 중앙선 철도가 운행을 시작했다. 죽령의 산세가 험하므로 철도는 죽령 구간을 터널로 통과한다. 충청북도 단양과 경상북도 영주 사이의 구간은 경사가 급해, 터널 내에서 철로가 원의 형태로 회전하면서 경사를 이겨내는 루프(loop)식 뙤리굴로 만들어졌다. 2001년 12월에 개통한 중앙고속도로도 죽령 구간은 터널로 통과한다. 중앙선 철도의 죽령 터널은 길이가 4,500m이고, 중앙고속도로의 죽령 터널은 그 길이가 4,600m에 이른다. 소백산 국립공원에 있는 옛길로 옛길을 따라 흐르는 계곡과 길게 늘어진 나무가 만들어 놓은 터널이 소백산 주요 능선 등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보여주는 명승지이다. 2007년 12월 17일 151,115㎡의 면적이 명승 제30호로 지정되었다.

단양 죽령 산신당(丹陽 竹嶺 山神堂)[편집]

  •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리에 있는 산신당이며 1976년 12월 21일 충청북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는데 용부원리 부락민이 관리하고 있다. 용부원리 매바위 남쪽 동산에 있다. 조선 중기 관군이 도적떼를 소탕할 때, 한 노인이 공을 세우고 전사한 것을 기리어 조정에서 사당을 세우고 부락민이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며 산신당 또는 국사당(國祠堂)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948년 3월 8일 부락민의 성금으로 중건하였다.
  • 목조기와집으로 되어 있고 규모는 1칸 반이다. 산신당 안에는 제단이 설치되어 있고 그 위에 높이 35㎝의 나뭇조각에 '죽령산지신(竹嶺山之神)'이라고 적혀 있는 위패와 2개의 목재 촛대가 놓여 있다. 해마다 산신제를 지내는데 죽령산신제 또는 다자구할머니제사라고 한다. 이제는 제신을 산신이나 호산신(虎山神)이 아닌 인격신으로 하며 다른 동제와는 달리 군수와 기관장들이 참석하는 관행제(官行祭)로 진행된다.

죽령천(竹嶺川)[편집]

  • 충북 단양군 대강면과 단성면에 걸쳐 있는 지방 2급 하천이다.
  •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리의 죽령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당동리·장림리를 거쳐 단성면의 한강 합류점에 이르는 총연장 11.3㎞의 지방2급 하천이다. 한강수계에 속하며, 유로연장은 11.3㎞, 유역면적은 130.19㎢이다. 상류에 죽령계곡과 죽령폭포가 있으며, 장림리에서 남조천이 합류한다. 유역에 좁지만 비옥한 농경지를 이룬다.

죽령봉수(竹嶺烽燧)[편집]

  •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리에 있던 조선시대의 봉수이다.
  • 해발 722m에서 742m 지점에 설치된 봉수이다. 조선시대에 제2 봉수로에 속하여 경상북도 풍기의 망전산으로부터 봉화 신호를 받아 단양군의 소이산을 거쳐 충주 심항산으로 신호를 전하였다. 별장(別將) 1명, 감관(監官) 5명, 봉군(烽軍) 25명과 보 75명이 주둔하였다. 지금은 봉수대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고 터만 남아 있다.

죽령산성(竹嶺山城)[편집]

  •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리 산19-2번지 일대에 있는 삼국시대의 산성이다.
  • 죽령은 경상북도 영주시와 충청북도 단양군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로서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신라·백제 삼국으로 통하는 통로였으며, 서로 침공을 막아내는 관문에 해당하였다. 이 산성은 고구려가 해발 700m에서 747m에 걸쳐 축조한 것으로, 그 시기는 449~450년으로 추정된다. 산성은 태백산맥에서 소백산맥이 갈라지는 분기점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가파르고 험한 산악지대로 연결된다. 내성(內城)과 외성(外城)으로 구축되었는데, 내성은 석축(石築)으로 둘레 76m이고, 외성은 토축(土築)으로 둘레 385.5m이다. 약 2m 높이의 석축 전망대가 있으나 대부분 붕괴되었다.

죽령폭포(竹嶺瀑布)[편집]

  •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리에 있는 폭포이다.
  • 소백산에서 발원한 물이 죽령계곡을 흐르다가 9척(약 2.7m) 높이에서 떨어져 폭포를 이룬다. 폭포로서 위용은 덜한 편이지만 심산유곡의 청정한 숲과 어우러져 비경(秘境)을 연출하여 북벽·금수산·칠성암·일광굴·온달산성·구봉팔문·다리안산과 더불어 단양 제2팔경의 하나로 꼽힌다. 울창한 산림 속에 6~7m의 암반 위로 시원한 물줄기가 흘러 여름철 피서지로 인기가 높지만 소백산국립공원 관리소가 비지정탐방로 및 자연보호지역으로 지정하여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죽령〉, 《위키백과》
  2. 죽령〉, 《나무위키》
  3. 죽령(竹嶺)〉,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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