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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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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군청

울릉군(鬱陵郡)은 대한민국 경상북도의 군이다. 동해상의 울릉도 본섬과 독도, 죽도, 관음도 등 44개 부속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울릉군은 대한민국의 최동단에 위치한 기초지방자치단체이다. [1]

개요[편집]

울릉군은 동경 130˚48′~131°52′, 북위 37˚14′~37°33′에 있다. 동해상에 격리된 울릉도와 그 부속도인 관음도·죽도·독도 및 삼선암·공암·죽암·청도·북저암·촉대암 등의 바위섬으로 이루어졌다. 면적은 72.86㎢이고, 인구는 2023년 7월을 기준하여 9,155명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 2개 , 25개 행정리(10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에 있다. 주도인 울릉도는 울릉군 총면적의 98%를 차지한다. 포항에서 북동쪽으로 직선거리 210km, 죽변항에서 140km 떨어져 있다. 육지(강원 특별자치도 삼척시 원덕읍 임원리)와 최단 거리는 137㎞이다.

도둑·공해·뱀이 없고, 향나무·바람·미인·물·돌이 많은 3무(無) 5다(多)의 섬으로 유명하다. 주상절리, 기암괴석, 용출수, 원시림 등 자연자원이 풍부하고, 39종의 특산식물과 6종의 식물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드문 해양성 기후로 일교차가 작고, 눈이 많이 내린다. 특산물로는 오징어, 호박엿, 울릉약소, 명이나물, 부지깽이, 엉겅퀴, 홍합, 따개비, 향나무, 섬백리 등이 유명하다.[2][3]

자연환경[편집]

주도(主島)인 울릉도(鬱陵島), 부속도인 관음도(觀音島)·죽도(竹島)·독도(獨島) 및 여러 개의 암도(岩島)로 이뤄져 있다. 신생대 제3기와 제4기에 있었던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종상화산(鐘狀火山)의 정상부로, 조면암(粗面岩)·안산암(安山岩)·현무암(玄武岩)으로 구성되어 있다.

백두화산맥이 남동쪽으로 길게 뻗어 동해상에 울릉도를 솟게 하고, 그 여세를 몰아 동남해상에 독도를 비롯한 많은 화산을 분출시켰다. 울릉도 중앙부에는 주봉인 성인봉(聖人峰, 984m)이 솟아 있고, 그 서쪽으로는 미륵산(彌勒山, 901m)·초봉(草峰, 608m)·형제봉(兄弟峰, 712m)·향목령(香木嶺, 297m), 동쪽으로는 관모봉(冠帽峰, 586m)·망향봉(317m) 등이 잇따라 있어 지붕을 이룬다.

성인봉을 중심으로 남쪽으로 가두봉(可頭峰, 194m), 동북으로 두루봉에 이르는 능선이 사방으로 뻗어 있고, 산맥 사이에는 깊은 침식곡이 발달하여 자연적인 행정 경계를 이룬다. 섬의 북서부 사면에 있는 나리분지(羅里盆地)는 동남부·서남부가 높이 500m 안팎의 단애에 둘러싸이고 북부가 200m 이하의 낮은 산지로 막혀 있는 울릉도의 유일한 평야이다.

분지는 성인봉의 칼데라 화구(caldera火口)가 삼각형 모양으로 함몰해 형성된 것이다. 그 화구에는 2차로 분출된 화산이 중앙화구인 알봉(卵峰, 538m)을 만들어 결과적으로 이중화산을 형성하였다. 그러므로 성인봉을 비롯한 동남부와 서남부의 높은 단애들은 이 화산의 외륜산(外輪山)에 해당한다.

이 군의 근해는 동한난류(東韓暖流)와 한류가 교차하는 조경수역(潮境水域)이므로 회유성 어족이 모여들어 좋은 어장을 이룬다. 그러나 길이 56.5㎞의 해안선은 대부분 단조롭고 높은 절벽을 이루며, 특히 서남과 동남 해안은 90m 높이의 절벽으로 천연의 양항 발달이 어렵다.

한편, 독도는 국토 최동단에 위치한 외딴 섬이다. 울릉도에서 동남쪽으로 92㎞ 떨어진 독도는 동도(東島)와 서도(西島)를 중심으로 가재 바위·구멍 바위·지네바위 등 34개의 돌섬과 암초들로 구성되어 있다. 동도에는 화산 분화구가 있고 절벽이 솟아 있어 배를 대기가 어렵다. 이곳에는 독도를 지키는 경비대가 있다. 맞은편의 서도에는 남근석과 구멍 바위, 그리고 독도기념비가 있다. 이 군은 작은 바위섬에 불과하나 군사, 해양자원 관리, 해양 운항 등 다방면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해상에는 동한난류가 연중 흘러 온난다습한 해양성 기후가 뚜렷하다. 평균기온 13.1℃정보이며, 1월 평균기온 1.6℃, 8월 평균기온 22.5℃ 내외이다. 연강수량은 1,846㎜ 정도이다.

특히, 겨울에는 북서 계절풍의 영향으로 연강수량의 40%를 눈이 차지한다. 평균적설량은 100㎝ 안팎이며 최심 적설량은 200㎝가 넘고 나리분지는 300㎝에 이르는 다설(多雪) 지역이다. 바람이 많이 불어 한 해에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은 70일 정도이다. 평균풍속 초속 3.6m, 폭풍일수 15일, 강설일수 46일, 쾌청일수는 49일이다.[4]

역사[편집]

울릉군에 대한 초기의 역사는 자료가 없어 잘 알 수 없지만, 『삼국지』 위서 동이전 옥저조에 기록된 기로(耆老)들의 이야기에서 약간의 사정을 알 수 있다. 곧 3세기경 함경남도 지방에 있던 옥저국 사람들이 배를 타고 물고기를 잡으러 갔다가 표류하여 수십일 만에 이 섬에 닿았다고 한다.

그들에 의하면 이 섬에 사람이 살고 있으나 언어는 알 수 없었고, 풍속으로는 7월에 동녀(童女)를 구하여 바다에 집어넣는 해신제(海神祭)를 지냈다고 한다. 그 뒤의 생활상은 알 수 없지만 일찍부터 소국(小國)을 형성하여 나름대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던 것 같다.

512년(지증왕 13) 하슬라주(何瑟羅州) 군주(軍主)인 이사부(異斯夫)가 이곳 우산국(于山國)을 정벌하면서 우리의 역사권 안에 포함되었다. 이사부는 강인한 이 곳 사람들을 제압하기 위해 나무로 사자를 만들어 섬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고 한다. 그 뒤 우리나라 본토와 긴밀한 연결을 가지면서 발전해 왔다. 이 시기를 전후하여 만들어진 고분이 현재 80여 기 남아 있다.

이사부의 정벌 이후 본국과 어떤 관계를 유지해 왔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930년(태조 13) 울릉도에서 백길(白吉)·토두(土豆)를 파견해 방물(方物)을 바치자 태조는 백길을 정위(正位)로, 토두를 정조(正朝)로 삼았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있다.

이는 당시 각지에서 할거하던 호족들이 왕건에게 귀부하던 추세에서, 울릉도도 본국 내의 정세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을 말해 주는 동시에 본국과 울릉도가 긴밀히 연결된 것을 나타낸다.

후삼국 통일 이후 울진현에 소속되었다. 1018년(현종 9) 동여진(東女眞)의 침입을 받아 섬이 황폐해지자 이원구(李元龜)를 파견해 농기구를 제공하였다. 그러나 1022년 다시 여진의 침입을 받아 거의 무인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1032년(덕종 1)에는 우릉성주(羽陵城主)가 토산물을 바쳤다고 한다. 그 뒤 섬을 개척하려는 시도가 이뤄져 1141년(인종 19) 이양실(李陽實)이, 1157년(의종 11) 김유립(金柔立)이 파견되어 이 지역의 형편을 조사하였다.

고려 말 왜구 때문에 무인도가 되었으나, 조선 초 이래 육지의 백성들이 계속 건너가 살았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강원도 울진현에 소속되었지만, 이곳이 왜구의 거점이 된다 하여 조정에서는 쇄환정책(刷還政策)을 계속 시행하였다. 그렇지만 몰래 들어가 사는 백성들이 많았다.

1412년(태종 12) 강원도 관찰사의 보고에 의하면 11호 60여 인이 거주하였고, 소·말과 논은 없지만 콩·보리를 경작하고 해산물과 과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 뒤에도 잠입이 계속 이뤄지자 수시로 안무사(安撫使)·경차관(敬差官)이 파견되어 주민을 쇄환하였다.

세종·성종 때는 신지(新地)·신도(新島) 찾기운동이 전개되어, 그때마다 울릉도가 거론되었다. 그러나 너무 멀리 떨어진 바다 가운데 있어 바닷길이 험난하고 왜구의 침입이 염려된다고 하여 끝내 쇄환정책이 유지되었다.

1471년(성종 2)에는 삼봉도(三峰島: 독도)를 조사하기 위해 박종원(朴宗元)이 파견되었다. 1614년(광해군 6) 일본이 울릉도를 의죽도(礒竹島)라 하여 그들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다음 해에 이를 조사하려 했다. 이에 조정에서는 강력히 이의를 제기하였고 양국 간에 분규가 일어났다.

그 뒤 1693년(숙종 19)과 1694년에 일본이 울릉도를 죽도(竹島)라고 하면서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1696년 울산 어부 안용복(安龍福) 등이 활약하여 울릉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주장이 종식되었다. 그 뒤에도 동해안 영장(營將)이 정기 순시하여 일본인의 출입을 금지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해양 진출을 활발히 하였다. 그리고 울릉도독도를 제멋대로 죽도와 송도(松島)라고 부르며 자주 밀항하여 산림을 벌채하였다. 조정에서는 1881년(고종 18)과 1882년에 이를 강경하게 항의하는 한편, 1884년 개척령을 공포하여 울릉도 이민을 장려하고 관선도장제(官選島長制)를 실시하였다.

1900년에는 이곳을 울도(鬱島)로 개칭하고 강원도에 소속시켜 군수를 임명하였다. 1906년에는 경상북도에 편입시키고 남면·서면·북면으로 개편하였다. 한편, 일본은 1905년 독도를 마음대로 그들의 시마네현(島根縣)에 소속시키고 해군의 보급기지로 사용하여 독도 분쟁을 일으켰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경상남도에서 경상북도로 이속되었다.

1949년 지방자치제가 시행됨에 따라 울릉군으로 개칭되었다. 1963년 서면 태하 출장소를 설치하였다. 1979년 5월 1일 남면이 울릉읍으로 개칭·승격되어, 현재의 1읍 2면 체제를 구축하였으며, 2000년 독도리가 신설되었다. 2004년 현재 울릉읍·서면·북면의 1읍 2면의 행정구역을 이룬다.

산업[편집]

울릉도를 비롯하여 관음도·죽도·독도 등 대부분이 바위섬으로서 경지면적은 13.07㎢로 군 전체 면적의 약 18%에 지나지 않는다. 논은 4%로 남양 및 추산의 산사 면에서 약간 볼 수 있을 정도이다. 주로 밭작물로서 옥수수·감자·보리·수수·콩·조 등이 생산되나 식량 수요량의 40%에도 못미치고 농업생산액은 총생산액의 10% 정도이다. 울릉군 주민들의 상당수는 농업, 어업, 임업, 관광업, 그리고 공공서비스 종사자들이다.

농림어업의 경우 어업이 우세하며, 울릉도와 독도 주변에서 오징어, 따개비, 미역, 전복, 방어, 꽁치, 독도새우, 홍합, 복어 등을 주로 잡으며, 이들 중 어선을 이용하는 경우도 많지만 홍합, 따개비, 전복, 소라 채취는 해녀가 잡는 경우가 많다. 주민의 반 이상이 어업에 종사하고, 총생산액의 약 80%를 어업이 차지한다. 근해에는 동해 난류와 한류가 교차하여 회유성 어족이 풍부하고, 특히 오징어는 울릉도의 주 어획물이며, 꽁치·새우·미역·김·전복·소라·잡어 등이 잡힌다. 도동·저동·천부·태하·남양·현포·사동·죽암 등의 어항이 있으나 개발된 저동항을 제외하면 모두 규모가 작다. 현재 1,034명의 어업종사자가 있으며 동력선 411척, 무동력선 13척의 어선을 보유하고 있다.

특산물로는 울릉도의 자생약초와 산채를 먹여 사육한 울릉약소를 비롯해 호박엿·오징어·돌미역이 있으며, 울릉도 산채와 약초는 유명하다. 특히 북면에 있는 나리분지는 동서 약 1.5km, 남북 약 2km로 유일한 평야이나 물이 부족하여 옥수수·감자·약초 재배를 많이 한다. 참깨 등 특용작물도 재배한다.

한편 독도는 거주가 어려우나 부근에서는 고래·상어·오징어 등 어족이 풍부하고, 주변 암초에는 물개·다시마·미역·소라·전복 등이 많이 번식하고 있어 어업근거지로 중요하다. 그러나 일본 어선이 종종 침범하는 곳이기도 하다.

제조업은 거의 없으며 그나마 가장 큰 공장이 농민들로부터 납품받은 호박으로 호박빵, 호박엿, 호박 막걸리, 호박 젤리, 호박 조청을 만드는 가공공장으로 도동, 현포, 태하 3곳에 있다. 그리고 마가목, 섬백리 등을 이용하는 공장, 향나무 재재소, 오징어 건조장과 수산물 가공 공장, 해양심층수 공장 등이 전부이다.

주로 패키지 여행사, 호텔, 여관, 모텔 등 숙박업소, 식당, 레스토랑 등 요식업, 농협 등 금융기관, 여객선터미널, 해운업체, 택시, 렌터카 업체, 시내버스 운영업체 등 운수업체, 부동산 업체들이 많이 있으며, 이들은 상당수 직간접적으로 관광업과 연계되어 있다. 상당수는 소상공인이거나 자영업자들이다.

교통[편집]

교통은 지방도가 해안을 따라 개설되었으며, 육지와는 도동∼포항, 도동∼묵호, 저동∼후포 간 여객선이 운항된다.

배가 언제 뜰지 불확실 하기 때문에 육지와 왕래할 때는 배편이 끊겨서 불편한 사례가 많다. 괜히 결항률이 낮은 크루즈가 취항할 때 주민들이 환영한 게 아니고, 정부에서 울릉공항 사업을 추진하고 사동항을 확장하는 것이 아니다.

사설 헬기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기는 한데, 높은 파도로 인해 배가 뜨지 않을 때 사설 헬기를 이용할 시 비용은 약 500~700만 원 정도 든다. 죽음에 이르는 상황에 도달해 어떻게든 나가야 할 시 유일한 병원인 보건의료원에서 응급후송 헬기를 이용할 수 있으나, 그조차 의학적 증거가 명백해야 한다.

관광[편집]

울릉도는 예부터 무릉도원이라 불릴 정도로 산수가 아름답고, 많은 천연기념물과 성인봉·봉래폭포 및 촉대암·죽도·관음도·삼선암·공암·사자암 등 명승지가 많다.

근대 문명의 오염을 적게 받은 군민들의 생활양식도 관광 자원으로서 한몫을 하고 있으며, 동해안의 관광지와 연계되어 해상국민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더욱이 1977년 쾌속여객선 한일호의 포항-도동 간 취항 및 1990년 이후 후포에서 도동까지의 쾌속정 운행을 계기로 수륙 교통이 크게 개선되었다. 섬 주변의 일주도로 개설 및 유람선을 이용한 사동-통구미-남양-태하-현포-공암-추산-천부-삼선암-관음도-죽도-촉대암-저동-도동 등 섬 일주 관광으로 관광객의 수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동도와 서도 2개 바위섬과 주위의 약 32개 바위·암초로 이루어진 면적 약 0.18㎢의 독도는 2000년 4월 7일 자로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1~37로 주소가 변경되어 해상관광지로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1997년 울릉읍 도동리에 세워진 독도박물관은 독도를 둘러싼 관련자료를 발굴·수집·연구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전시·관리·교육·홍보함으로써, 넓은 의미에서는 독도를 둘러싼 영토수호의식과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좁은 의미에서는 독도를 울릉도 사회의 역사와 문화의 한 부분으로 올바르게 자리매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문화행사 및 축제[편집]

문화행사로 매년 10월에 군민체육대회가 열려 전통민속놀이인 너와너새놀이를 비롯한 각종 놀이와 체육행사가 벌어진다. 울릉문화원에서 주관하는 우산문화제는 지역주민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참여하는 전통문화제로서 울릉도 개척정신을 기리고 문화의 고장임을 널리 알리는 군민축제의 한마당으로서 군을 세계적인 문화 관광지로 부각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단오에는 민속 그네뛰기대회가 열리고, 정월 대보름에는 도동 체육공원에서 민속 윷놀이대회가 열린다. 또 매년 8월에는 오징어잡이 배 승선 체험 및 오징어요리 경연대회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지는 오징어 축제가 열린다. 울릉도의 개척이 100년 정도이기는 하나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발자취가 끊이지 않아 성화 신당(태화동), 촛대바위(저동마을), 도동의 약수터, 성인봉의 장군터 등 희귀한 민간전설이 전래되고 있다.

행정구역[편집]

울릉군행정 구역은 1읍 2면(1출장소)으로 구성되어 있다.

울릉군의 행정구역
이름 한자 인구(명) 면적(km2)
북면 北面 1,441 24.3
서면 西面 1,630 27.2
울릉읍 鬱陵邑 7,630 21.39
합계 鬱陵郡 10,701 72.89
(2010년 기준)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울릉군〉, 《위키백과》
  2. 울릉군〉, 《네이버 지식백과》
  3. 울릉군〉, 《나무위키》
  4. 울릉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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