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페체만
캄페체만(Bay of Campeche)은 멕시코 만 중에서 유카탄반도와 베라크루스(Veracruz) 사이의 해역을 가리킨다.
목차
개요
- 캄페체만(스페인어: Golfo de Campeche)은 멕시코만의 만곡부의 남쪽에 있는 만이다. 이 지역은 캄페체, 타바스코, 베라크루스의 3지역으로 둘러싸여 있다.[1] 최대 수심이 50m를 넘지 않는 얕은 바다이며, 흘수가 큰 배가 다니기에 적합하지 않은 곳도 있다.
캄페체주
- 캄페체주(Campeche)는 멕시코 남동부에 있는 주이다. 멕시코 남동부에 있으며, 주도(州都)는 캄페체이다. 동쪽으로 유카탄주·킨타나로오주, 서쪽으로 타바스코주, 북쪽으로 멕시코만(灣), 남쪽으로 태평양과 접해 있다. 유카탄반도의 서쪽에 있으며, 대체로 덥고 습한 기후이다. 지대가 낮고, 남서부 지역은 강수량이 매우 많다. 1531∼1535년에 에스파냐의 탐험가 프란시스코 드 몬테호(Francisco de Montejo)가 이곳을 기초로 마야를 탐험하였다. 주요수출품은 로그우드 나무이며, 건조한 북동부에서는 농작물 경작과 목축이 이루어진다.
캄페체 요새도시
- 캄페체 요새도시(Historic Fortified Town of Campeche)는 멕시코의 캄페체주에 있는 스페인 식민지시대의 도시 유적으로,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캄페체주의 주도(州都) 캄페체에 있는 요새화된 도시 유적을 가리킨다. 북쪽으로 멕시코만과 접하고 있는 캄페체는 스페인 식민지시대의 전형적인 항구도시로서 스페인이 해적의 습격으로부터 카리브해의 항구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 체계의 일부로 요새화되었다. 카리브해 지역의 군사 건축물의 영향을 반영하는 사례이자 바로크 양식의 작은 마을이 도시화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사례로서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등재된 유적지는 불규칙한 다각형을 띠며, 면적은 외벽으로 둘러싸인 45㏊를 포함하여 총 181㏊이다. 캄페체는 마야어로 '뱀과 진드기의 땅'이라는 뜻이며, 1540년 스페인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몬테호 엘 모소(Francisco Montejo El Mozo)가 건설하였다. 이 도시는 초기부터 유카탄반도와 과테말라의 페텐(Peten) 지역을 개척하는 데 중요한 출발점 역할을 하였다. 16세기 후반에 카리브해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해적들의 공격을 받게 되어 대규모 방어 체계를 갖추게 되었고, 18세기 초에는 높이 6~8m에 두께 2.5m, 총 길이 2,536m의 성벽을 세워 도시를 에워쌌다. 또한 2곳의 언덕에 각각 산호세(San José) 요새와 산미겔(San Miguel) 요새를 설치하고, 사정거리가 긴 대포를 배치하여 도시를 수비하였다. 19세기 말에는 바다 쪽을 바라보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하여 성벽의 일부를 허물고 주광장을 공원으로 조성하였다. 성벽에는 '대지의 문(Puerta de la tierra)'과 '바다의 문(Puerta del mar)' 등 4개의 문을 설치하여 시가지 중심에 이를 수 있도록 하였다. 또 육각형의 성벽 모서리에 '대지의 문'을 지키는 산프란시스코(San Francisco)와 산후안(San Juan), '바다의 문'을 지키는 산카를로스(San Carlos)와 누에스트라세뇨라데라솔레다드(Nuestra Señora de la Soledad)를 비롯하여 산티아고(Santiago)·산페드로(San Pedro)·산타로사(Santa Rosa) 등의 방어 거점을 설치하였다. 오늘날 산프란시스코는 국립인류학역사학연구소의 도서관으로 사용되고, 산카를로스는 시영 박물관으로, 누에스트라세뇨라데라솔레다드는 캄페체시 역사박물관으로, 산티아고는 식물원으로 사용되며, 산페드로는 과거에 교도소 건물로 사용되었다. 이밖에 산미겔 요새도 박물관으로 사용되며, 산호세 요새에는 당시의 선박과 무기 등의 유물이 소장되어 있다.[2]
캄페체만으로 흘러드는 강
- 그리할바강(Río Grijalva)은 과테말라 고원에서 발원하여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 주를 지나 캄페체만으로 흘러 들어가는 강으로, 중류의 협곡과 하구 부근의 습지와 유전이 유명하다. 서부 과테말라에서 남부 멕시코를 지나 캄페체만으로 흘러 들어가는 강으로, 유로 연장이 667㎞이고 유역 면적은 134,400㎢이다. 마드레 산맥에서 발원하며, 과테말라 고원과 치아파스 고원을 지나면서 여러 지류를 모은 다음, 하류인 평야지대 곳곳에 얕은 호수와 습지를 이루며 곡류하다가, 그리할바 수계 가운데 가장 큰 지류인 우수마신타 강과 합류하여 캄페체만으로 유입한다.
- 고원 지대를 지나는 그리할바강의 상류와 중류에는 협곡이 많이 발달하였으며, 특히 수미데로 협곡은 남부 멕시코 일대에서 가장 주목받는 관광지로서 일대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협곡에는 댐들이 만들어져 발전에 활용되고 있으며, 말파소 댐과 앙고스투라 댐으로 만들어진 인공호수들은 그 규모가 매우 크다. 하류에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대규모 습지가 형성되어 있다. 하구 일대와 캄페체만은 멕시코의 주요 석유 산지이지만, 중상류 유역은 멕시코의 중심부에서 거리가 멀고 경제 기반이 취약한 지역에 속한다. 남부 멕시코에서 서부 과테말라에 이르는 지역은 좁은 띠 모양의 지협(地峽)이지만, 조산운동과 화산활동이 빈번했던 곳으로 그 지형이 복잡하다. 이 지역 지형의 큰 틀은 남쪽의 태평양 연안을 따라 마드레 산맥(Sierra Madre, 멕시코에서는 Sierra Madre de Chiapas라고 함)이 북서-남동 방향으로 달리고 있고, 내륙에는 중앙아메리카 고원의 일부인 치아파스 고원과 과테말라 고원이 있으며, 북쪽 캄페체만(멕시코 만의 일부) 쪽으로는 고도가 매우 낮은 해안평야와 저습지가 발달하였다.
캄페체만의 유적
- 캄페체의 고대마야도시 칼라크물과 열대림 보호구역(Ancient Maya City of Calakmul, Campeche)은 멕시코 남동부 캄페체의 열대밀림지역에 있는 최대 규모의 고대 마야문명 유적이다. 마야문명의 예술적·정치적·영적인 발전 과정을 잘 나타내고 있다. 2002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멕시코 남동부 캄페체의 열대밀림지역에 있다. 최대 규모의 고대 마야문명 유적이다. 1931년 12월 29일 생물학자 사이러스 룬델(Cyrus L. Lundell)이 발견하였다. 칼라크물이라는 명칭은 '인접한 두 개의 피라미드 도시'라는 뜻이다. 마야어로 'Ca'는 '둘', 'Lak'는 '인접한', 'Mu'l은 '구조물 또는 피라미드'를 의미한다. 이후 40여 년 동안 발굴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넓은 정글의 가운데 있어 너무 고립된 곳이었기 때문이다.
- 1984∼1994년 윌리엄 폴란(William J. Folan)의 지휘 아래 캄페체 자치대학에서 발굴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하였다. 그 결과 칼라크물은 경제적·종교적으로 매우 강력하였으며, 이 지역을 지배하였던 티칼에 뒤지지 않을 정도였다는 증거들을 발견하였다. 514∼830년 사이에 만들어진 석비(石碑) 103점과 6,250점이 넘는 유물이 출토되었으나 아직 발굴되지 않은 곳이 남아있다. 북쪽에는 성벽과 수로가 있다. 규모는 70㎢에 이르며, 핵심지역은 24㎢ 정도이다. 12세기 이상 이 지역을 장악한 칼라크물의 유적은 마야문명의 예술적·정치적·영적인 발전 과정을 잘 나타내고 있다. 특히 그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어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또한 건축물과 그 배치가 잘 보존되어 있어 더욱 연구 가치가 높다. 2002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유카탄반도
- 캄페체만의 동쪽에 위치한 반도이다. 유카탄반도의 서쪽과 북쪽은 멕시코만과 접하고, 동쪽은 카리브해에 면한다. 반도의 면적은 약 181,000km², 대부분이 멕시코령(領)이며, 남부는 벨리즈와 과테말라에 속한다. 반도의 대부분이 저평한 석회암대지로 되어 잡목림을 이룬다. 북부는 기온이 높고 건조하며, 남부는 고온다습한 기후이다. 해안은 멀리까지 얕으며, 석호(潟湖)와 사주가 발달하였다. 북서부의 1/5이 개척되어 있고 19세기 말경부터 사이잘삼의 재배지로 유명하다. 역사적으로 마야문명이 이 일대를 중심으로 번성했다. 석회암 지형으로 물이 흡수되기 때문에 지표수가 적으며, 지하수를 길어 올리기 위한 풍차가 독특한 풍경을 이룬다. 다른 지역은 미개지가 광활하며 옥수수, 사탕수수, 잎담배, 목화, 커피가 재배되고 껌의 원료인 치클이 채취된다. 에스파냐인이 오기 전에는 마야 문명의 중심지였으며, 욱스말과 치첸이차를 비롯하여 그 유적이 많다.
- 멕시코의 유카탄주, 킨타나로오주, 캄페체주, 벨리즈의 북부, 과테말라의 북부에 해당한다. 옛 마야문명이 발달했던 곳으로 그 후예인 마야인과 메스티소가 이 지역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며, 유카텍 마야어가 널리 쓰이고 있다. 유카탄반도는 탄산염암으로 이루어진 유카탄 대지(臺地)의 일부로, 석회암층이 주로 분포하고 돌로마이트(dolomite) 층도 곳곳에 분포한다. 유카탄반도, 쿠바섬, 미국의 플로리다반도 모두가 신생대 제3기에 형성된 석회암 대지에 해당하여, 유카탄반도의 경관도 전체적으로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카르스트 지형이 주를 이루며 고도가 낮고 기복이 완만하다. 세노테(cenote)라 불리는 석회암 함몰 지형이 북부 저지대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다. 유카탄반도는 반도 전체가 석회암 지대를 이루다 보니 지하로 물이 흡수되고 지표 유출이 적어서 하천의 발달은 미약하다.
캄페체만의 기후
- 대부분의 카리브해 연안과 마찬가지로 캄페체만 역시 대서양의 허리케인 통과 지대에 속해 있어 열대성 폭풍(태풍)에 취약하다. 허리케인의 내습은 유카탄 반도를 포함하여 멕시코의 관광 산업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정도이지만, 실제 허리케인이 이 지역을 통과하면서 머무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다. 기온은 높지만 해안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의 영향으로 청량감을 느낄 수 있다. 습도는 전반적으로 높으며, 특히 열대 우림이 분포하는 지역은 기온과 습도가 매우 높다. 멕시코, 과테말라, 벨리즈의 접경 지대에는 중앙아메리카 최대의 열대 우림 지대가 펼쳐져 있다.
캄페체만의 석유자원
- 멕시코 만 중에서 유카탄 반도와 베라크루스(Veracruz) 사이의 해역을 캄페체(Campeche) 만이라 부른다. 최대 수심이 50m를 넘지 않는 얕은 바다이며, 흘수가 큰 배가 다니기에 적합하지 않은 곳도 있다. 멕시코 영토 내에서는 멕시코 만과 태평양 사이의 육지 폭이 가장 좁은 테우안테펙 지협(Istmo de Tehuantepec)에서 가까운 곳이어서 과거에는 유럽 정복자들이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거점으로 긴요하게 이용하기도 하였으며, 한때는 지협에다 운하를 건설하려는 논의도 있었으나 파나마 운하가 개통된 후로는 수그러들었다.
- 오늘날 캄페체만이 갖는 의미는 석유 자원으로 요약할 수 있다. 캄페체만의 얕은 바다와 그리할바 강 하구의 습지는 석유 자원의 보고로, 1961년 처음 석유가 발견된 이래 멕시코에서 가장 중요한 유전 지대가 되었다. 한때 멕시코에서 생산되는 석유의 2/3가 하구 습지와 캄페체 만에서 채굴되었으나, 2003년 이래 그 생산량이 다소 줄어드는 추세이다. 천연가스와 원유 송유관이 이곳에서부터 미나티틀란(Minatitlan) 시 부근 해안의 코아차코알코스(Coatzacoalcos, Puerto Mexico라고도 부름)로 이어져 유조선 정박지로 연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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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 ↑ 〈캄페체만〉, 《위키백과》
- ↑ 〈캄페체 요새도시(Historic Fortified Town of Campeche,-要塞都市)〉, 《두산백과》
참고자료
- 〈만〉, 《위키백과》
- 〈만〉, 《나무위키》
- 〈캄페체만〉, 《위키백과》
- 〈만〉, 《네이버지식백과》
- 〈캄페체 요새도시(Historic Fortified Town of Campeche,-要塞都市)〉, 《두산백과》
- 권진영 기자, 〈멕시코 페멕스 유전 시설서 화재로 최소 6명 부상〉, 《뉴스1》, 2023-07-08
- 무심 투, 〈07 지구(地球)의 지형(地形) "만(灣)" 깊이알기 "세계의만 아메리카" 멕시코만,캄페체만〉, 《네이버블로그》, 2022-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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