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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벨트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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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piao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8월 20일 (화) 12:11 판 (미델파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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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리틀 벨트 다리
소벨트해협 위치

소벨트해협(영어: Little Belt) 또는 릴레벨트해협(덴마크어: Lillebælt)은 덴마크 퓐섬윌란반도 사이의 해협이다. 길이는 50km, 폭은 최단 800m에서 최장 28km이다. 해협의 양쪽을 잇는 두 개의 다리가 건설되어 있다.[1]

개요

소벨트해협은 덴마크 유틀란트반도와 퓜섬 사이에 있는 해협으로 대서양카테가트해협발트해를 잇는 세 해협 중에서 가장 좁지만 수심은 가장 깊다. 가장 깊은 지점은 페노섬 서쪽의 마렌스 훌(Marens Hul)의 81m로 자매 해협인 대벨트해협보다 더 깊다. 수심이 깊기 때문에 발트해와 카테가트협을 오가는 물의 10%가 소벨트해협을 통해 흐른다. 소벨트해협은 북쪽의 줄스민테(Juelsminde) 마을에서 남쪽의 알스섬까지 뻗어 있으며, 그 사이에 구불구불한 코스가 있다. 북쪽 끝은 15km 이상으로 가장 넓다. 그곳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두 개의 작은 벨트 다리가 위치한 스누브링겐(Snævringen)이라는 곳에서 약 1km까지 좁혀진다. 페노섬 남쪽 해협은 알스섬 인근 발트해와 남부 푸넨 군도에 도달할 때까지 약 10km까지 넓어진다. 소벨트해협의 서쪽 해안선은 대부분 피오르드 라고 불리는 불규칙한 만으로 나뉘며 양쪽 해안 모두 가파른 모래 절벽이 있다. 소벨트해협 주변 지역은 수많은 빙하 빙퇴석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그 중 첫 번째는 약 22,000-25,000년 전 바이셀 빙하기 초기에 형성되었다. 약 14,000-15,000년 전 바이셀 빙하기 후반에 남쪽과 남동쪽에서 얼음이 도착했고, 그 중 일부가 소벨트해협 빙하가 되어 깊은 피오르드가 있는 구릉 지형을 형성했다. 소벨트해협은 람사르 협약에 따라 보호되는 습지이며 특히 새들의 번식과 철새 이동에 중요한 지역이다. 이 지역의 보호종에는 큰고니, 흰꼬리수리, 서부습지매, 얼룩뜸부기, 옥수수뜸부기, 검은머리도요, 붉은머리 오리, 짧은귀올빼미, 흰갈매기, 북극갈매기, 작은갈매기, 큰흰머리 오리, 흰목오리, 붉은 배오리가 있다. 소벨트해협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밀도의 참돌고래를 보유하고 있으며 수천 마리의 개체가 서식하고 있다. 페리 건널목은 1935년에 올드 리틀 벨트 다리와 1970년에 뉴 리틀 벨트 다리로 대체되었다.[2]

역사

인류는 석기시대에 소벨트해협 주변에 살았으며 해협 계곡과 숲에서 오록스, 순록 및 기타 사냥감을 사냥했다. 기후와 지질학적 변화로 인해 새로운 동식물이 이 지역에 유입되었고 피오르드와 인근 군도의 어업이 중요한 식량원이 되었다. 기원전 4000년경에 기온이 다시 상승했고 이 지역에서 퍼넬비커 문화가 활성화되었다. 이 지역에는 퍼넬비커 문화(Funnelbeaker culture)와 기타 신석기 문화 의 고고학 유적지가 많이 있다.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 바이킹 시대를 거치면서 다른 인구와의 무역이 증가했고 정착지는 점점 더 커지고 영구해졌다. 14세기에는 콜딩(Kolding)과 베젤(Vejle) 마을은 상인 마을 특권을 받았으며, 오늘날에는 이 지역에서 가장 큰 두 개의 마을이다.

중세부터 19세기 말까지 지역 어부들도 참돌고래 사냥에 참여했다. 참돌고래는 덴마크 수로에서 겨울을 나며, 어부들은 수역의 좁은 부분에서 기다렸다가 도살할 얕은 곳으로 몰고 갔다. 고래 기름의 일종인 참돌고래 기름은 전기 조명이 보급되면서 참돌고래 사냥 경제가 침식될 때까지 등유로 널리 사용되었다. 1854-55년 겨울에는 1,742마리의 참돌고래가 잡혔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대부분 겨울에 잡은 참돌고래는 약 700-800마리였다. 참돌고래 사냥은 적어도 15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법률에 의해 규제되었다. 이 법률은 1899년 5월 4일에 왕의 결의에 의해 뒤집혔지만,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동안의 부족으로 인해 참돌고래 사냥이 잠시 부활했다.

1801년 덴마크 해군은 릴레블렛(Lillebælt)이라는 이름의 22문 군함을 해협으로 진수했다. 1807년 코펜하겐 해전 후 영국 왕립 해군에 투항되었고, 그곳에서 이름은 HMS 리틀 벨트로 영어화되었으며 당시 북미 해역에서 악명 높은 소벨트 사건에 참가했다. 나중에 영국 왕립 해군은 덴마크의 선례가 없는 다른 배에 "리틀 벨트"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19세기 독일 통일 찬성론자들은 리틀벨트(독일어:Kleiner Belt)를 독일의 북쪽 국경으로 간주하는 것을 주창했다. 이는 덴마크와 독일의 국경이 수세기에 걸쳐 여러 차례 바뀌었기 때문에 현재의 덴마크 남부 유틀란드가 한때 슐레스비히 두키 공국(Duchy of Schleswig)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소벨트해협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운송 통로였다. 오늘날에는 고고학 유적지와 난파선으로 다이버들에게 인기가 많다.[3]

미델파르트

미델파르트(Middelfart)는 덴마크 남덴마크지역 퓐섬의 해안도시이다. 미델파르트지자체의 행정중심지다. 미델파르트는 1231년 발데마르 인구센서스에 메텔파르(Mæthælfar)라는 이름으로 처음 기록되었다. 메텔파르는 중간 길(middle way)이란 뜻의 덴마크 고어로 원래 소벨트해협의 가장 좁은 부분을 의미했다. 메텔파르에서 도시명 ‘미델파르트’가 유래했다. 13세기 미델파르트의 어업활동이 중요하게 여겨지면서 도시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도시로 지정되면서 소벨트해협 건너 유틀란트반도의 스노고이(Snoghøj)와 페리선이 왕래하게 되었다. 미델파르트는 중세시대에는 쥐돌고래잡이로 번성했고 16세기에는 소(cattle)수출을 통한 무역 활동이 도시경제의 기반이었다.

17세기 덴마크-노르웨이 연합과 스웨덴의 전쟁이 끝나자 무역항구로 경쟁을 벌이던 소벨트해협 건너편의 도시 프레데르시아(Fredericia)가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다. 프레데르시아는 미델파르트 인근의 스트리브(Strib)와 뱃길을 열어 독자적인 무역 거래를 개시하고 해협을 오가는 배에 관세를 부과했다. 프레데르시아가 해상무역권을 장악하면서 미델파르트는 무역특권을 상실하고 쥐돌고래잡이도 줄어들어 어려운 시기를 맞게 되었다. 19세기 초 자체항구를 건설한 뒤 주변 지역 농산물의 해상교역에 주력하면서 이를 극복했다. 이후 주철공장 등 다양한 소규모 산업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1865년 섬 반대편의 뉘보르(Nyborg)와 철도가 개통되어 수송여건이 개선된 이후 안정된 경제기반을 다질 수 있게 되었다. 20세기 초에는 주철산업을 도시의 주력산업으로 삼아 많은 일자리를 창출했다.

1935년에 첫 번째 소벨트해협다리가 놓이면서 미델파르트는 유틀란트반도와 푸넨섬 사이의 교통 중심지로 부상했다. 이후 지속적인 도시발전과 더불어 20세기 중반까지 인구도 급속히 불어나게 되었다. 중세시대부터 19세기 말까지 계속된 쥐돌고래사냥은 소벨트해협을 가로질러 배를 연결한 뒤 돌고래를 뭍 가까이 유도해 잡는 방식이 성행했다. 잡은 고래의 지방은 등불 등의 연료로 공급되면서 도시의 주 수익원이었다. 20세기 들어 전기가 들어오고 포획량이 급감하면서 고래잡이는 자취를 감추었다. 예전 작업장엔 기념비만 남아있다. 19세기 말 코펜하겐과 유틀란트반도를 잇는 철도 노선이 놓였다. 1830년 건설된 항구는 1900년대 초 확장되었다. 항구 인근의 미델파르트교회는 성니콜라스에게 헌정된 것이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설교단과 교회탑은 14세기에 만들어졌고, 신도석과 통로는 15세기 말에, 화려한 조각의 제단은 1650년에 각각 건축되었다.[4]

오벤로

오벤로(Aabenraa)는 덴마크 소벨트해협의 오벤로 피오르 안에 위치한 항구도시다. 남덴마크 지역 오벤로 지자체의 행정 중심지다. 독일과의 국경이 남쪽으로 32km 떨어져 있다. 오벤로는 '열린 해변'이란 뜻이다. 중석기 시대 초기부터 이 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주교의 성이던 오프뇌르후스 주변에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해 1335년 공식적인 도시가 되었다. 중세시대에는 맥주 원료인 호프 생산과 어업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1560~1721년 홀스타인 고토루프 공작이 도시를 통치했다. 큰 배가 드나들 수 있는 항구였던 오벤로는 1750~1864년 호주남아메리카, 중국, 지중해 등지로의 해상무역이 급증하면서 황금기를 구가했다. 당시 오벤로는 코펜하겐프렌스보르에 이어 덴마크에서 세 번째로 큰 해상무역선단을 보유한 항구였다. 오벤로에는 우수한 성능의 배를 건조하던 유명한 조선소가 여럿 있었다. 이곳에서 건조된 배 중 가장 유명한 배는 '심베르'호이다. 속도가 빠른 범선인 심베르호는 1857년 영국 리버풀에서 미국 샌프란시스코까지 106일 만에 주파했다. 오벤로는 1864년 프로이센의 지배를 받다가 1871년 독일제국에 편입되었다. 1920년 오벤로를 포함한 남덴마크 지역의 향배를 놓고 주민투표가 실시되었다. 오벤로는 주민의 과반수가 ’독일 잔류‘를 택했으나 지역 전체로는 ’덴마크 귀속‘에 찬성하는 주민이 많아 덴마크 영토로 귀속되었다.[5]

지도

동영상

각주

  1. 릴레벨트 해협〉, 《위키백과》
  2. "Little Belt", Wikipedia
  3. 리틀 벨트〉, 《요다위키》
  4. 미델파르트〉, 《네이버 지식백과》
  5. 오벤로〉,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

같이 보기

북유럽 같이 보기

북유럽 국가
북유럽 도시
북유럽 지리
북유럽 섬
북유럽 문화
북유럽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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