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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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비치(Long Beach)는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 남부, 태평양 연안에 있는 해안 보양도시이다. 로스앤젤레스 남쪽으로 32km 지점에 위치하는 로스앤젤레스 위성도시의 하나이며 로스앤젤레스 항의 기능을 분담하는 중요한 항구도시이다. 인구는 약 47만 명이며 캘리포니아에서 7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1]
개요[편집]
롱비치는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에 있는 도시이며 세리토스해협을 통해 로스앤젤레스항에 연결된다. 1784년경에 에스파냐령인 란초니에토(Rancho Nieto)의 일부였고 그 후로는 로스알라미토스(Los Alamitos)와 로스세리토스(Los Cerritos)로 나누어졌다. 1880년 영국인 윌리엄 어윈 윌모어(William Erwin Willmore)가 처음으로 취락을 건설하였고, 1882년 로스세리토스 자리에 윌모어라는 이름으로 시를 설계하였다. 이후 해변휴양지로 발달하였고, 1888년 긴 해변에서 유래한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으며, 1897년에 시가 되었다. 1920년 북부의 시그널힐에서 유전이 발견된 후 발전하였지만, 1933년의 지진으로 120명이 사망하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이후 재건되여 현재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두번째로 인구밀도가 높은 대도시로 성장했다. 길이 14km의 해안에는 해수욕장 설비가 완비되었고, 말발굽 모양으로 바다에 돌출된 레인보잔교를 비롯하여 시공회당, 수많은 공원 등에 관광, 휴양객이 찾아온다. 동쪽 롱비치항은 대부분 해군기지로 이용되나, 동쪽에 인접한 샌피드로항과 함께 무역항, 어항으로서도 중요하다. 롱비치 항은 미국에서 물동량이 가장 많은 항구의 하나이다. 아름다운 해안경관과 쾌적한 지중해성 기후로 해안에는 별장지가 많다. 현재는 석유정제, 금속공업, 항공기, 선박, 자동차, 비행기 제작 외에 타이어, 비누 제조 및 과실, 생선통조림 등 다양한 공업이 발달하였고, 해양탐사도 이루어진다. 교육시설로는 롱비치시립대학(1927),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1949)가 있다. 1969년까지 미스유니버스대회가 개최되었으며 영국의 호화 여객선인 퀸메리호가 해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2]
역사[편집]
원주민들은 10,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남부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살았으며 여러 연속적인 문화가 현재의 롱비치 지역에 거주해 왔다. 16세기에 스페인 탐험가들이 도착했을 때, 지배적인 집단은 현재의 도시 안에 적어도 세 개의 주요 정착지를 세운 통바족이다.
1784년, 스페인 제국의 카를로스 3세는 스페인 군인 마누엘 니에토에게 지역 부지를 부여했다. 1843년에 후안 템플(Juan Temple)은 랜초 로스 세리토스를 샀고 그는 현재 "로스 세리토스 목장 하우스"라고 알려진 집을 지었는데, 이것은 국가 역사적 랜드마크로 아직도 남아있다. 템플은 번창하는 소 목장을 만들고 번영하여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되었다. 템플과 그의 목장은 멕시코-미국 전쟁에서 중요한 지역적 역할을 했다. 샌 페드로 만의 한 섬에서 모르몬교 개척자들은 식민지를 건설하려고 시도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미국의 캘리포니아 정복 이후, 템플은 공공 토지 위원회에 의해 그의 란초 로스 세리토스를 양도했다. 1866년, 템플은 랜초 로스 세리토스(Rancho Los Serrios)를 토마스와 벤자민 플린트, 그리고 그들의 사촌 레웰린 빅스비로 구성된 북캘리포니아 양 사육 회사인 플린트, 빅스비 & 컴퍼니(Flint, Bixby & Company)에 2만 달러에 팔았다. 란초 로스 세리토스를 관리하기 위해 회사는 르웰린의 동생 조담 빅스비를 선택했다. 3년 후, 빅스비는 그 부동산을 샀고 나중에 빅스비 랜드 회사를 만들었다. 1870년대에 목장에 무려 30,000마리의 양을 사육하고 무역용 양모를 공급하기 위해 매년 두 번씩 털을 깎았다. 1880년, 빅스비는 랜초 로스 세리토스의 16km²를 윌리엄 E에게 팔았다. 윌모어 시티를 만들겠다는 그는 실패했고 "롱 비치 랜드 앤 워터 컴퍼니"라고 부르는 로스앤젤레스 신디케이트에 의해 인수되었다. 그들은 공동체의 이름을 롱비치로 바꿨다.
롱비치 시는 1897년에 공식적으로 통합되었다. 도시는 가벼운 농업적 용도와 함께 해변 휴양지로 성장했다. 파이크(Pike)는 1902년부터 1969년까지 서해안에서 가장 유명한 해변 놀이 구역이었다. 스카이 휠 듀얼 관람차와 사이클론 레이서 롤러코스터와 같은 목욕객에게 음식, 게임, 놀이기구를 제공했다. 롱비치는 점차 석유 산업, 해군 조선소, 시설과 항구가 도시의 주요 거점이 되었다. 1950년대에는 "아이오와 해변가"라고 불렸는데, 이는 그 지역과 다른 중서부 주에서 사람들이 많이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각 주에서 온 이민자들을 위한 대규모 소풍은 1960년대까지 롱비치에서 인기 있는 연례 행사였다.
1921년 시그널 힐(Signal Hill)에서 석유가 발견되었는데, 이 시그널 힐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별도로 통합된 도시로 분리되었다. 롱비치 유전의 발견으로 롱비치는 알라미토스 유정 1호에서 시츄 장비를 도입하여 1920년대에는 이 유전이 세계에서 가장 생산적이었다. 1932년에는 미국에서 4번째로 크고 대부분 롱비치에 있는 훨씬 더 큰 윌밍턴 유전이 개발되어 1930년대에 석유도시로서 도시의 명성에 기여했다.
1933년 규모 M6.4 롱비치 지진은 도시와 주변 지역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고, 총 120명이 사망했다. 대부분의 피해는 비보강 석조 건물, 특히 학교에서 발생했다. 퍼시픽 바이블 신학교(현 호프 국제대학)는 피해로 인해 롱비치의 퍼스트 크리스천 교회에서 지역의 작은 집으로 학급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포드자동차 회사는 1929년 당시 주소에 롱비치 어셈블리(Long Beach Assembly)라는 공장을 지었고, 이곳에서 공장은 포드 모델 A를 만들기 시작했다. 포드 차량의 생산은 전후에도 계속되어 1960년 화재로 공장이 폐쇄되고 1991년 1월에는 대기질 개선 노력으로 공장이 부분적으로 철거되기까지 계속되었다. 포드는 일찍이 로스앤젤레스 12번가와 올리브에 공장을 열었고, 1914년 이후 이스트 7번가와 산타페 애비뉴에 공장을 지었다.
1938년, 로스앤젤레스시와 카운티 모두를 위한 주택 당국의 설립이 완료되었고, 노스 롱 비치에는 카운티 당국의 첫 번째 사업 명령인 남부 캘리포니아 최초의 저렴한 주택 단지인 카멜리토스 주택 프로젝트의 본거지가 되었다.
롱비치는 항구도시로서 전쟁 전부터 미 해군과 관계를 맺었다. 도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로스앤젤레스 전투의 일부였는데, 당시 미 공군 관측통들은 바다에서 포탄이 발사되었다고 보고했다. 비록 비행기가 목격되지는 않았지만, 대공 포대가 밤하늘을 향해 발사되었다. 롱비치의 인구는 전쟁 중과 전쟁 후에 상당히 증가했다.[3]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롱비치 캠퍼스[편집]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롱비치 캠퍼스(California State University, Long Beach)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서부 항구도시 롱비치(Long Beach)에 있는 주립 종합대학교이다. 캘리포니아주 안에 있는 공립대학교들의 통합 시스템인 캘리포니아 대학교 시스템(California State University)에 속해 있다. 이 시스템 안에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롱비치 캠퍼스 외에 세너제이 캠퍼스(San Jose), 샌프란시스코 캠퍼스(San Francisco), 새크라멘토 캠퍼스(Sacramento) 등 모두 23개 대학이 속해 있다. 롱비치 캠퍼스는 이들 가운데 2010년 기부금 기준으로 8위에 올라 있다. 또 시스템에 속한 학교 가운데 가장 넓은 면적(1.3㎢)을 자랑한다. 롱비치 캠퍼스는 최고의 교육 가치(Best Value Colleges) 분야에서 높은 순위를 나타내고 있는 대학으로 이름이 높다. ‘최고의 교육 가치’란 학생들이 같은 학비를 내고도 얼마나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을 측정한 것이다. 2000년대 이후 롱비치 캠퍼스는 이 분야에서 줄곧 상위권에 랭크돼 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시스템에 속한 학교 중 이 분야 순위에 이름을 올린 학교는 롱비치 캠퍼스 뿐이다. 또 롱비치 캠퍼스는 2007년 미국 대학교육 전문지 프린스턴리뷰(Princeton Review)가 매긴 순위에서 미국 최우수 공립대학교 부문 3위에 오르기도 했다.
롱비치 캠퍼스의 전신은 1949년 설립된 로스앤젤레스-오렌지 카운티 주립대학(Los Angeles-Orange County State College)이다. 설립을 주도한 인물은 당시 주지사 얼 워런(Earl Warren, 1891~1974)이었다. 1960년대 들어 학생 숫자가 1만 명, 1966년 2만 명을 각각 넘어섰다. 1968년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롱비치 캠퍼스(California State College, Long Beach)로 교명을 바꿨다. 1972년 종합대학교로 승격하면서 지금의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대학은 예술대학, 경영대학, 교육대학, 공과대학, 건강보건서비스대학, 문과대학, 자연과학·수학대학, 지속전문교육대학(Continuing & Professional Education) 등 8개의 단과대학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공대의 경우 미국 시사주간지 가 매긴 순위에서 꾸준히 미국 50위 안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4]
퍼시픽 수족관[편집]
퍼시픽 수족관(Aquarium of the Pacific)은 미국 캘리포니아 남동부 롱비치에 있는 대형 수족관(Aquarium)이다. 1998년에 문을 연 수족관은 독특한 물결 모양의 지붕으로 레인보우 항(Rainbow Harbor)의 랜드마크가 됐다. 8만 1000㎡ 부지에, 전시관의 면적만 1만 5000㎡에 이른다. 모두 550종, 1만 2000마리가 넘는 해양생물들이 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육지 위의 바다’다. 수중 생물들과 얼굴을 맞댈 정도로 가까이 즐길 수 있어 매년 14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방문한다.
수족관은 크게 3관으로 구성돼 있다. 먼저 남캘리포니아와 바자(Southern California and Baja) 수족관은 남캘리포니아 바다와 비슷한 환경을 만들고 있다. 바다표범, 대형 농어, 대형 불가사리, 상어, 바다사자, 바다거북과 함께 다시마 등의 갈조류를 구경할 수 있다. 북태평양(Northern Pacific) 수족관에서는 차가운 한류가 흐르도록 만들었다. 차가운 얼음물에 사는 바다오리, 물새, 수달, 대형 문어, 일본산 거미게가 있다. 열대 태평양(Tropical Pacific) 수족관은 스쿠버다이버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팔라우(Palau)에서 미크로네시아(Micronesia)에 이르는 바다 밑과 해양생태계를 재현해 산호초, 암벽, 암초, 해마, 화려한 색깔의 열대어들이 노닌다. 수중 마이크를 든 다이버들이 물속에서 관람객의 질문에 답해주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또한 작은 불가사리나 살아 있는 물고기들을 아이들이 직접 만질 수 있도록 하는 플레이 베이(Play Bay)도 있다. 1일 입장권 외에 추가로 비용을 내면 4D영화를 볼 수 있다.[5]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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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롱비치 (캘리포니아주)〉, 《위키백과》
- ↑ 〈롱비치(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 〈롱비치〉, 《요다위키》
- ↑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롱비치 캠퍼스〉, 《네이버 지식백과》
- ↑ 〈퍼시픽 수족관〉,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 〈롱비치 (캘리포니아주)〉, 《위키백과》
- 〈롱비치〉, 《요다위키》
- 〈롱비치(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롱비치 캠퍼스〉, 《네이버 지식백과》
- 〈퍼시픽 수족관〉,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북아메리카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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