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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부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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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adal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6월 29일 (토) 18:58 판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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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위치
루부시주 위치

루부시주(폴란드어: Województwo lubuskie)는 폴란드 서부에 위치한 주이다.[1]

개요[편집]

루부시주의 면적은 13,985㎢이며 인구는 991,213명(2021년)이다. 북쪽으로는 서포모제주, 동쪽으로는 비엘코폴스카주, 마조프셰주, 남쪽으로는 돌니실롱스크주와 접하며 서쪽으로는 독일과 국경을 접한다. 지명은 오데르강(Oder river) 유역에 폴란드독일에 걸친 루부즈의 땅(Lubusz Land)에서 유래하며, 오랜 기간 독일의 영토로, 1945년 이전까지 독일어 지명 노이마르크(Neumark)로 불리었다.

북부의 고주프비엘코폴스키(주 정부 소재지)와 남부의 지엘로나구라(주 의회 소재지)가 기능을 공유한다. 두 곳의 수도 중 고르조프빌크프는 중앙에서 임명한 주지사를 두고, 지엘로나구라는 주의회에서 선출된 최고행정관(marszałek)이 행정부 운영 기능을 갖는다. 1999년 폴란드 지방정부 개혁으로 인근 두 개의 주 일부를 통합하여 구성되었다. 2개 도시군과 12개 군, 83개 그미나(지방 자치체)를 관할한다.

루부스키에주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 독일의 전략적인 국경지역으로 군사시설들이 다수 보존되어 있다. 주의 중심부에 위치한 자연보호구역인 보리신 루프(Boryszyn Loop)는 무성한 녹지와 함께 1930년대부터 독일이 구축한 30km에 달하는 지하요새로 유명하다. 중부의 미에지르체크(Miedzyrzecki Fortified Region) 역시 2차 대전시 독일의 방어선으로 지하터널과 벙커가 남아 있어 관광지로 개발되었다. 중서부의 도시 자간(Żagań)은 700년경 슬라브 공주가 설립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으로 고딕 건축과 바로크 건축 양식이 혼재된 후기 아우그스티안(post-Augustinian) 수도원 단지와 중세 이후 지어진 많은 교회가 보존된 곳으로 유명하다.

수도인 고르조프빌크프와 지엘로나구라 두 도시만 인구가 10만이 넘고 이외에는 4만 명을 넘지 않는 소도시이다. 주도 중 하나인 고르조프빌크프는 매년 11월에 개최되는 재즈 페스티벌로 유명한 도시이다. 역시 주도인 지엘로나구라는 14세기부터 와인 생산지로 폴란드에서는 보기 드물게 와이너리(winery) 관광을 즐길 수 있고 매년 8월에는 와인페스티벌이 개최된다.[2]

자연환경[편집]

서쪽은 독일과 국경을 접하며, 주 전역이 대부분 평지이고 호수산림이 울창하다. 남부지역에서는 포도재배가 활발하다.

역사[편집]

본 지역은 원래 폴란드의 지배를 받는 곳이 없으나 13세기 이후 신성로마제국, 프로이센과 독일의 핵심 영토가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종전으로 이등분 되어 독일과 폴란드에 각각 귀속되었다. 전후 독일인들이 추방되고 동부에 우크라이나로 흡수된 지역의 폴란드인들이 다수 이주하였다.

산업[편집]

독일을 비롯해 서유럽으로의 철도와 도로망이 잘 구축되어있고 산림이 풍부하여 스위스 크로노(Swiss Krono)와 이케아(IEKA) 등 여러 다국적 가구제조업체의 유럽 내 대표적인 생산기지이다. 이외에 제지와 펄프, 금속가공과 식품 등 전통적인 제조업이 활발하다.

주요 도시[편집]

고주프비엘코폴스키[편집]

고주프비엘코폴스키는 폴란드 서부 독일과의 국경에 면한 루부시주의 주도이다. 다만 주지사와 행정부는 고주프비엘코폴스키에 있으나 주의회는 주 최대 도시인 지엘로나구라에 위치한다. 13세기에 완공된 성모마리아 교회가 유명하며 시내에 녹지가 많아 공원과 정원의 도시로 불린다. 바르타강이 시를 관통해 흐른다.

13세기 중반에 폴란드 피아스트 왕조가 이 지역에 요새를 건설했다. 1249년 신성로마제국 산하의 브란덴부르크 변경백이 고주프비엘코폴스키를 포함한 루브스키에 지방을 사들여 1257년 도시를 건설했다. 고주프비엘코폴스키의 독일어 명칭 란츠베르크안데어바르테(Landsberg an der Warthe)는 바르타강의 땅과 산을 의미한다.

1373년에는 도시 지배권이 보헤미아 왕국으로 넘어갔으나 보헤미아 왕국령을 통치하던 룩셈부르크 왕조가 1402년 독일(튜튼) 기사단에 도시를 매각했다. 튜튼 기사단은 1454년 발발한 13년 전쟁의 전비를 조달하기 위해 브란덴부르크에 재차 팔아넘기는 등 우여곡절을 거쳤다. 1701년 프로이센 왕국 영토가 되었으며, 나폴레옹 전쟁 후인 1815년에는 프로이센의 브란덴부르크주에 속하게 되었다. 이어 1871년 성립한 독일제국 산하 도시가 되었다.

고주프비엘코폴스키는 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5년 1월 30일 구소련군에 의해 점령되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화재 등으로 시가지 상당 부분이 파괴되었다. 오랜 기간 독일이 지배권을 행사했지만 도시는 2차 세계대전 후 폴란드 영토에 귀속되었다. 독일인 주민은 대부분 추방되었고 빈 자리에 소련이 점령한 폴란드 동부 영토에 살던 폴란드인들이 들어와 정착했다.

1975년부터 1998년까지는 고주프주의 주도였으나 1999년 행정구역 개편 때 신설된 루브스키에주의 주도로 바뀌었다. 고주프비엘코폴스키는 특히 녹지가 많은 도시로 유명하다. 시 북쪽 삼림지대는 발리네크고주프 경관공원을 포함하고 있으며, 남동쪽에는 노테치숲이 있다. 중앙장미공원, 시에미라츠키 공원도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다.

시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 성모마리아 성당은 로마네스크 요소가 가미된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 1537년 루터파 교도가 도시를 장악한 뒤에는 개신교 교회로 바뀌었다가 1945년 폴란드가 도시를 되찾고 나서 가톨릭 성당으로 복귀했다.

고주프비엘코폴스키에는 등록 기업이 1만 8,000여 개 있다. 화학섬유 · 직물 · 트랙터제조업이 발달했고 열병합발전소가 들어서 있다. 쇼핑 · 서비스 인프라가 잘 갖춰진 편이다. 시내 · 외 교통망은 버스와 전차, 철도 · 고속도로 등으로 연결돼 있다. 도시 인근에는 폴란드에서 가장 큰 유전지대가 위치한다.[3]

지엘로나구라[편집]

지엘로나구라는 [폴란드]] 서부 독일과의 국경에 면한 루브스키에주의 최대 도시이다. 지엘로나구라는 푸른 이라는 의미이다. 1998년까지는 지엘로나구라주의 주도(州都)였다가 1999년 행정구역 개편 때 루브스키에주에 속하게 됐다.

현재 루브스키에주의 주도는 고르주프비엘코폴스키이지만 주 의회는 지엘로나구라에 있다. 지엘로나구라는 중부 유럽의 교통 요충지로 지엘로나구라 공항이 있으며 도로 · 철도를 통해 인근 독일, 서유럽, 북 · 남유럽 등과 연결된다.

지엘로나구라에 최초로 정착지가 형성된 것은 폴란드 최초의 왕조인 피아스트 왕조의 창시자 미에슈코 1세(930~992) 치하이던 10세기였다. 1222년 기록에 도시 이름이 처음 등장한다. 13세기에는 서쪽의 독일인들의 대거 이주해와 정착했다. 1323년 도시 특권을 부여받았다.

1506년 보헤미아 왕국의 지배하에 들어갔다가 곧 보헤미아의 일부로서 합스부르크(오스트리아) 제국에 편입되었다. 종교개혁 시대에는 주민 다수가 루터교로 개종했다.

지엘로나구라(독일명 그륀베르크)는 1742년 1차 실레지아(독일어 : 슐레지엔) 전쟁 후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이 체결한 브레슬라우 조약에 따라 프로이센 왕국 영토가 되었다. 개신교를 탄압하던 오스트리아와 달리 프로이센은 신교도의 신앙에 관용적이었다. 이즈음 직물업이 발달하기 시작해 18세기 후반에는 손꼽히는 직물 생산 도시가 되었다.

나폴레옹 전쟁 후인 1816년 프로이센 슐레지엔주의 도시가 되었고 1871년에는 독일 통일로 출범한 독일제국에 속하게 되었다. 이 해 철도가 개통돼 20세기 초반까지 노선이 계속 확대되었다.

지엘로나구라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포츠담 회담의 결정으로 폴란드 영토가 되었다. 도시 명도 그륀베르크에서 지엘로나구라로 바뀌었다.

지엘로나구라는 와인의 도시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1250년부터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포도주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최초의 포도주 양조장은 1314년 만들어졌다. 중세의 와인 생산 전성기에는 포도밭이 시내에만 2500여 곳, 시 외곽까지 합치면 약 4,000곳이나 있었다. 몽테 베르데 와인이 가장 유명했다.

포도주 산업은 1945년 이후 공산 체제의 폴란드 인민공화국시대에 쇠퇴했다가 1989년 민주화 이후 부활했으나, 1990년대 초반 마지막 양조장이 문을 닫은 이후 포도주를 직접 생산하지는 않는다.

1852년 시작된 와인 축제는 지금도 매년 9월에 9일간 열린다. 관광객들은 와인 축제 외에 구시가지, 성 야드비가 성당, 시장광장 등 중세의 유적들도 많이 찾는다.

지엘로나구라는 습윤 대륙성 기후가 섞인 해양성 기후이다. 연평균 기온은 8.3℃이고 가장 추운 1월 평균은 영하 1.8℃, 가장 더운 7월 평균 기온은 17.8℃이다. 강수량은 연평균 582mm이다.[4]

오데르강[편집]

오데르강은 독일명이며, 체코와 폴란드에서는 오드라강이라고 한다. 길이 약 900km. 유역면적 12만 4671㎢. 최상류부 105km는 체코에 속하고, 하류부 176km(니사크로카∼그리피노)는 독일과 폴란드의 국경을 이룬다. 체코의 올로모츠 동쪽, 해발고도 600m의 구릉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흐르다가 모라비아의 문의 협착부(狹窄部)를 거쳐 폴란드로 들어가서 북서쪽 내지 북쪽으로 흐른다. 좌안(左岸)에서는 나이세강, 우안에서는 바르타강과 합류하는데, 하류의 강너비는 250m에 이른다. 하구 부근에서는 삼각주 위를 2갈래로 나뉘어 흐르다가(서쪽 수로는 배가 통한다) 발트해로 들어간다. 내륙수상교통의 동맥으로 약 700km가 주운(舟運)이 가능하며, 상류의 코질레에 있는 갑문이 유량을 조절한다.

글리비체 운하로 슐레지엔과 이어지며, 오데르-슈프레 운하 등으로 서쪽의 엘베강과, 또 바르타강 및 비드고시츠 운하로 동쪽의 비스와강과 이어진다. 주요 수송물자는 슐레지엔의 석탄 ·철광석을 비롯한 원료 ·연료와 공업제품이다. 유역에는 오스트라바(체코) ·오폴레 ·브로츠와프 ·슈체친(폴란드) ·프랑크푸르트 ·안데르오데르(독일) 등의 항구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의 포츠담 협정으로 오데르강 하류(나이세강과의 합류점 이북)와 나이세 강을 잇는 이른바 ‘오데르-나이세선’ 이동(以東)의 독일 땅은 폴란드의 영토가 되었으며, 1950년의 동독-폴란드 협정과 1970년의 서독-폴란드 협정으로 이 선이 정식 국경으로 인정되었다. [5]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루부시주〉, 《위키백과》
  2. 두산백과: 루부스키에주〉, 《네이버 지식백과》
  3. 유럽지명사전 : 폴란드 고주프비엘코폴스키〉, 《네이버 지식백과》
  4. 유럽지명사전 : 폴란드 지엘로나구라〉, 《네이버 지식백과》
  5. 두산백과: 오데르강〉,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동유럽 같이 보기[편집]

동유럽 국가
동유럽 도시
동유럽 지리
동유럽 문화
동유럽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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