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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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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만두
카트만두 전경

카트만두(네팔어: काठमाडौं 카트만두, 네와르어: य़े Yei 예이, 영어: Kathmandu)는 네팔수도네팔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카트만두는 네팔 중앙의 카트만두계곡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구는 약 320만 명이다.

카트만두 시내의 더르바르 광장, 스와얌부나트 사원, 부다나트 사원, 파슈파티나트 사원 등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개요

  • 행정 단위: 네팔 바그마티 구
  • 면적: 899 km²
  • 인구: 290만 명 (2021년)
  • 지역어: 네팔어
  • 시장: 발렌 샤
  • 정부 공식 홈페이지: https://kathmandu.gov.np/

역사

과거 티베트 지역의 키라타(Kiratas) 왕조는 카트만두 북부에 얌부(Yambu)라는 정착촌을 형성하였다. 400년경 인도-아리안족 계통의 리처비(Licchavis)는 북쪽으로 이주하여 키라타(Kiratas)를 물리치고 리처비 왕조를 수립했고, 리차비의 통치자 구나카마데바(Gunakamadeva)가 인근 지역을 합병하여 카트만두 시를 건설했다. 당시 카트만두는 인도티베트 간의 무역에서 중요한 관문 역할을 하여 건축 분야에서 엄청난 성장을 이뤘고, 무역 루트는 왕성한 문화 교류로 이어졌다.

8세기 중엽, 카트만두 북쪽에 있던 누와코트(Nuwakot)의 타쿠리(Thakuri) 왕조의 세력이 네팔을 지배 하기 시작하였으며, 11세기경 타쿠리의 [[아리데바(Arideva) 왕이 말라 왕조(Malla Dynasty)를 세웠다. 15세기에는 카트만두 분지 안에 말라(Malla) 왕조의 3개 왕국이 세워져 네와르족을 통치하였는데 각각의 수도는 카트만두(Kathmandu), 박타푸르(Bhaktapur), 파탄(Patan) 등이며 이곳에서 네와르 문화를 발전시켰다.

말라 왕조(Malla dynasty) 초기에는 카트만두 지역에 카스(Khasas)와 투르크 무슬림의 잦은 공격과 대형지진으로 큰 어려움이 있었으나, 대부분의 말라 시대 동안 인도와 티베트 간의 무역을 지배하며 번영하였다. 말라 시대 후반에 카트만두 계곡은 칸티푸르, 랄리트푸르, 박타푸르, 키르티푸르의 4개 요새 도시로 구성되었으며, 네팔 말라연맹의 수도로 지정되었다. 4개의 요새 도시는 예술・건축・미학 및 무역에서 서로 경쟁하여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 이후 1768년 카트만두 전투(Battle of Kathmandu)에서 말라연맹을 물리치고, 네팔 각지의 토후국을 점령하고 통일한 고르카 왕국(Gorkha)은 카트만두를 수도로 채택하고, 네팔제국이라 명명하였다.

1846년 영국의 지원을 받은 라나(Rana) 가문의 독재 정권 동안 카트만두의 동맹은 반(反)영국에서 친(親)영국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서유럽 건축 양식이 도입되어 새로운 건축의 계기가 되었고, 대표적으로 카트만두 꿈의 정원(Garden of Dreams)과 나라얀히티 왕궁(Narayanhiti Palace) 등이 축조되었다. 또한 카트만두 최초의 현대식 상업 도로인 뉴 로드(New Road)가 이 시대에 만들어졌고, 네팔 최초의 대학인 '트리찬드라 칼리지(Trichandra College)', 최초의 근대 학교인 '더르바르 고등학교(Durbar High School)', 최초의 병원인 '비르병원(Bir Hospital)'이 설립되었다.

1950년대~2000년대 초반까지 네팔은 민주주의, 공산주의, 네팔 왕립 의회 지지자들 사이의 분쟁이 심하였고 카트만두는 그 중심에 있었다. 2007년 12월 23일 네팔은 국민 투표에 따라 군주제 폐지를 결정했다. 2008년 5월 28일에 네팔 제헌의회가 첫 회의를 열고 압도적인 찬성 속에 왕정 폐지와 공화정 도입을 골자로 한 결의안을 채택하면서 239년 동안 이어졌던 왕정체제가 끝나고 공화제로 변경되었다.

지리

카트만두는 네팔의 중앙에 위치한 카트만두 협곡의 고도 약 1,400m에 위치한다. 카트만두 협곡은 주변에 2,000m이상의 산지가 둘러싸고 있는 그릇 모양의 분지 형태의 협곡이다. 카트만두를 흐르는 바그마티강(Bagmati River)은 중앙부의 간다키 분지와 동부의 코시 분지 사이에 있다. 바그마티강의 상류는 히말라야산맥과 다소 떨어져 있기 때문에 융빙수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으며, 강우에 주로 영향을 받는다. 이 때문에 비가 적게 내리는 4월부터 6월까지는 네팔의 다른 하천에 비해서 유량이 다소 적은 특성을 가진다.

카트만두 협곡의 중심부에 도시권이 위치해 있으며, 외곽으로 갈수록 계단식 논과 밭이 등장하고, 산지가 나타나는 토지이용 패턴을 보인다. 도시의 오랜 역사와 지형조건에 의해 도시의 가로망은 다소 복잡한 편이며, 왕궁과 정부 청사, 공항 등의 주요시설물 근처에만 대로가 분포한다.

기후는 온화한 기후를 가진 지역으로 온대계절풍기후(Cw)의 특성을 보인다. 다만 낮에는 온화하고 밤에는 다소 추운 날씨를 보인다. 가장 추운 1월의 평균기온은 약 10℃ 내외이며, 가장 추울 때도 영하 10℃를 넘는 경우는 드물다. 가장 따뜻한 달인 7월의 평균기온은 26℃ 내외이며, 가장 더울 때에도 40℃를 잘 넘지 않는다. 연 강수량은 약 1,400mm이며, 계절풍의 영향을 받아 6~9월에 전체 강수의 65%가 내린다. 계절풍의 강도는 연도마다 차이가 있기 때문에 실제 강우의 변위는 큰 편이며, 계절풍이 강한 경우 3,000mm에 육박하는 강수량을 기록하고, 계절풍이 약한 경우 350mm정도의 강우를 보이기도 한다.

정부

카트만두는 중앙 구역, 동부 구역, 북부 구역, 시티 코어 및 서부 구역의 5개 구역으로 구성되고, 시민 행정을 위해 도시는 35개의 행정 구역으로 구성된다. 카트만두 행정을 위한 최고 집행기관은 'KMC(Kathmandu Municipal Corporation)'이며, 시 위원회는 177명의 선출된 대표와 20명의 지명 회원을 통해 카트만두 시의 수도권을 관리하고, 연 2회 회의를 개최하여 연간 예산을 검토, 처리 및 승인하고 주요 정책 결정을 내린다.

인구

카트만두는 인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매우 다양한 도시다. 네와르족은 카트만두 인구의 30%로 가장 큰 민족 그룹이며, 이외에 타망(Tamang), 구룽(Gurung), 수누와르(Sunuwar), 마가르(Magar) 등을 포함하는 마트왈리족이 25%, 카스 브라만족이 20%, 체트리족이 18.5%를 구성하고 있다. 타망족은 처음에 이 지역의 주변 산지로부터 이주해왔으며, 히말라야산맥 외곽 산기슭의 습지 숲과 초원 지역인 테라이(Terai)에서 많은 종족들이 카트만두로 이주했다. 도시 주민의 주요 종교는 네팔 전체와 유사한 분포를 이루며,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 기타를 형성한다.

교육

관광

파슈파티나트 힌두사원
  • 카트만두 계곡: 2006년 유네스코에 등재되었으며 네팔의 힌두교와 불교의 성지로, 7개 유산기념물 및 건물 그룹이 형성되어 있다.
  • 더르바르광장: 4개의 왕국(Kantipur, Lalitpur, Bhaktapur, Kirtipur)을 나타내는 유적건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2015년 4월 대지진으로 심하게 손상되었다.
  • 파슈파티나트 힌두사원: 5세기에 건립된 시바 신에게 봉헌한 사원이다.
  • 스와얌부나트 사원: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 사원으로 약 2000년 전에 건립되었다. 카트만두 시의 서쪽으로 약 3km 떨어진 지점의 언덕 위에 위치한다. 티베트불교의 성지로, 카트만두의 유래와 관련이 깊다.

기타

카트만두는 알프스-히말라야 지진대에 위치하므로 지진 피해가 크다. 2015년 발생한 진도 7.8의 네팔 대지진으로 카트만두는 큰 피해를 입었고 네팔의 경제발전에 큰 타격을 입었다.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생활공간과 기반시설이 파괴되었을 뿐 아니라, 카트만두의 주요 관광지인 유네스코에 등록된 힌두교 사원 상당수가 붕괴되었다. 지진 외에도 산사태, 홍수, 가뭄과 같은 자연재해 또한 카트만두를 위협하는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카트만두의 가장 심각한 환경문제는 대기오염과 수질오염이다. 특히 미세먼지 수치가 세계평균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카트만두의 사망자 수의 4분의 1이 대기오염과 관련되어 있다고 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이는 차량 등 교통수단의 매연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으며, 분지 형태의 지형 또한 상당부분 기여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네팔 인구의 87%를 차지하는 힌두교인들은 바그마티강에서 몸을 씻는 것이 소원이며 죽음에 이르렀을 때 화장돼 이곳에 뿌려지기를 원한다. 그러나, 넘쳐나는 쓰레기로 바그마티강은 몸을 씻기는커녕 손조차 담글 수 없을 만큼 오염되어 버렸다. 바그마티강의 오염은 1980년대 인구 급증과 함께 시작된 현대화로 인한 생활 쓰레기와 공장 폐수가 주원인이며, 상류 마을의 하수도관을 강과 연결해버린 정부의 무대책, 바그마티강 주변의 힌두사원에서 화장된 후 버려지는 재와 고인의 물품 폐기, 통제되지 않은 모래 채굴과 주택, 공장 및 빈민가 정착촌 건설까지 더해져 강은 거대한 쓰레기 하치장으로 변모했다. 네팔 정부는 강에 유입되는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강 주변의 무허가 거주지를 정리하고, 강의 제방 정리 등의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지도

동영상

참고자료

같이 보기

남아시아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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