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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틀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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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ahkim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7월 26일 (수) 14:31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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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틀란드 국기

푼틀란드(소말리어: Puntlaand, 아랍어: أرض البنط)는 소말리아의 북동부 지역으로, 가로웨(Garowe, 누갈(Nugaal) 지역)가 그 중심지로, 서쪽으로 소말리란드, 북쪽으로 아덴 만, 북동쪽으로 과르다피 해협, 남동쪽으로 인도양, 남쪽으로 중앙 갈무두 지역, 남서쪽으로 에티오피아 와 접해 있습니다. 이곳 지도자들은 1998년 자치 국가를 선언하였다. 소말리아인 1/3 이 이 곳에 산다. 푼틀란드의 중심도시 보사소(Boosaaso)는 백만 명 이상이 살며, 소말리아 내전 이래 모가디슈보다 인구가 더 많다. 인접한 소말릴란드와 달리 푼틀란드는 소말리아에 대해 명백하게 독립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푼틀란드"라는 이름은 고대 이집트의 문헌에 나오는 푼트의 땅에서 나온 말이다. '푼트의 땅'이 가리키는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있지 않으며, 학술적 논쟁의 대상이다. 어떤 연구에서는 푼트의 땅이 아프리카의 뿔에 있다고 하기도 하고, 다른 곳에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2012년 모가디슈를 수도로 하는 소말리아 연방 정부 구성에 합의하여 소말리아의 행정 구역으로 재편입되었다

개요

  • 수도: 가로웨
  • 면적: 212,510km²
  • 인구: 4,285,000명(2016)
  • 공용어: 소말리어, 아랍어
  • 정치체제: 소말리아 자치령
  • 대통령: 사이드 압둘라히 데니

역사

18세기 중반에 마지르틴 술탄국(Majeerteen Sultanate)이 이곳에 설립되었으며 오스만 마하무드의 통치하에 번영하기 시작하면서 알룰라를 중심으로 19세기와 20세기 초 소말리아 북부와 중부 대부분을 지배했다. 그는 무역을 활성화 시키고 외세와 조약을 체결했으며 국내 전선에서 강력한 중앙 집중식 권한을 행사했다.

오스만 왕과 그의 사촌인 Yusuf Ali Kenadid 사이의 권력 투쟁으로 1800년대 중반에 많이 파괴되고 Yusuf Ali Kenadid를 예멘으로 추방시켰으나 1870년대에 다시 돌아 와서 1878년에 Hobyo 술탄국을 수립했다. 1889년 후반에 오스만 왕은 이탈리아와 조약을 체결하여 그의 영역을 이탈리아 보호령으로 만들었으며 Kenadid와의 지속적인 권력 투쟁에서 이탈리아의 지원을 사용하려고했다.

유럽 ​​식민 통치가 소말리아 북부로 점진적으로 확장되면서 술탄국은 모두 20세기 초에 이탈리아 소말릴란드에 합병되었다.

푼틀란드 설립

1991년 소말리아 내전이 발발한 후, 1998년 3개월에 걸쳐 가로웨에서 국내 헌법 회의가 열렸다. 이 지역의 정치인, 전통 원로(Issims), 비즈니스 커뮤니티 구성원, 지식인 및 기타 시민 사회 대표가 참석여 주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보안을 제공하며 무역을 촉진하고 상호 작용하기 위해 소말리아 푼틀란드 자치주를 설립하였다. 압둘라히 유수프 아흐메드(Abdullahi Yusuf Ahmed)는 신생 국가의 창립 대통령을 역임했다.

소말리아 공화국 과도기 연방헌장 제1조에 규정된 바와 같이 푼트란드는 소말리아 연방주의 일부이다. 따라서 이 지역은 소말리아의 통합을 추구하고 연방정부체제를 준수한다. 서쪽의 소말릴란드 공화국과 달리 푼트란드는 독립된 국가로서 국제적 인정을 얻으려고 하지 않았다. 두 지역의 공통점은 모두 부족 장로들의 지지 및 부족 관계 및 친족 관계에 따라 조직를 구성하였다.

푼틀란드의 법적 구조는 사법부, 입법부( 하원 ) 및 행정부(대통령과 그가 지명한 정부 부처 위원회)로 구성된다. 이 지역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 였으나 2001년 푼틀란드의 초대 대통령인 압둘라히 유수프 아흐메드(Abdullahi Yusuf Ahmed)가 당시 푼틀랜드 대통령이 임기를 연장하기를 원하면서 잠시 정치적 불안을 겪었다. 아흐메드는 소말리아 대통령으로 선출된 2004년 10월까지 두 번째 대통령 임기를 역임했다 . 그후에 Mohamed Hashi가 2005년 1월까지 대통령으로 역임하였다.

행정 구역

경제

푼틀란드는 1,600km(990마일)의 해안선이 있어 물고기와 기타 천연 해양 자원이 풍부하며 가축, 유향, 몰약, 아라비아 고무가 생산된다. 망고, 바나나, 구아바, 레몬, 사탕수수, 땅콩과 같은 농산물은 주 전역의 농장에서 재배된다.

빈곤율은 27% 정도이며, 소말릴란드 50%와 모가디슈 57%보다 현저히 낮다. 빈부 격차 또한 비교적 낮은 편이며 최근 교육이 자리잡히고 있어 문해율 또한 60%를 넘어섰다.

교육

소말리아에서 내전이 발발한 후 농촌 지역 및 성별에 따른 교육 접근성, 교육 제공의 질, 학교 교과 과정의 대응성, 교육 기준 및 통제, 관리 및 계획 역량, 자금 조달과 관련하여 수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푼틀란드 정부는 재건 및 경제 개발을 시작하면서 교육정책을 개발하는 과정에 있다. 교육정책에는 아동권리협약(CRC) 및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과 같은 세계 표준을 준수하는 성 인지적 국가 교육 정책을 포함한다. 이에 대하여 정부는 소녀들의 교육적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정부의 법률 제정, 가정에서 부모와 보호자에게 도달하도록 고안된 조기아동 발달 (ECD) 프로그램, 0~5세 아동을 위한 ECD 센터, 교사가 시골 지역에서 일하도록 장려하는 인센티브 패키지 도입을 촉진하고 있다. 교육 시스템은 더 많은 여성이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성별 격차를 좁히려고 시도하고 있다.

푼틀란드의 교육 시스템은 유아 발달(ECD) 2년, 초등 교육 8년 (저학년 4년 및 고학년 4년) 및 중등 교육 4년으로 구성된다.

대학

기타

1991년에 독립을 선언했으나 아직 어떠한 국가로부터 승인을 받지 못한 완전한 미승인국이다. 하지만 국가적 요소는 모두 갖추었고, 자국의 화폐까지 가지고 있는 실질적인 독립국이다. 오히려 혼란한 정세인 소말리아보다 안정적으로 국가를 운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분리주의에 부정적인 국제 여론에 의해 승인이 주저되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소말리아의 자치 지역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최근에는 해적납치를 해결할 수 있는 곳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소말릴란드는 소말릴란드의 구성 부족들이 정부와 함께 치안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으나 소말리아 반군 세력에 의한 테러로 인한 위험이 있다. [아프리카]] 국가 중 남아프리카공화국 다음으로 군과 경찰에 여성의 비율이 높다. 2010년 6월 26일 푼틀란드에서 넘어온 민병대가 투표소를 습격하여 일부 투표소가 일찍 문을 닫는 일이 있었다.

지도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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