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지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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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지포트(Bridgeport)는 미국 코네티컷주 남서부 해안에 위치한 도시이다. 페어필드 카운티에 위치해 있으며 인구는 약 15만 명이며 코네티컷주 최대 도시이다. 뉴욕의 위성도시로 뉴욕 대도시권(Greater New York City Combined Statistical Area)의 일부이자 뉴잉글랜드에서 5번째로 큰 도시이다.[1]
개요
브리지포트는 미국 코네티컷주 남서부, 피쿼넉강 어귀의 롱아일랜드만에 면한 항구도시이다. 1639년 뉴필드라는 이름으로 식민이 시작되었으며 후에는 스트랫필드라고도 불렸다. 1800년 자치시가 되었고 강에 첫 도개교가 놓이면서 지금의 지명으로 바뀌었다. 1836년 철도가 개통된 후 시가 되면서 급속히 발전하였으며 1905년에는 코네티컷의 주요 제조 도시가 되었다. 롱아일랜드해협에 면한 항만이 있어 일찍부터 상공업이 발달하였으며 전자, 전기기기를 비롯하여 무기, 공구, 자동차부품 등 각종 공업이 발달하였다. 오늘날에는 전기제품 외에 수송용품, 플라스틱, 공구류, 자동차부품 및 여러 가지 소비재를 생산하는 공업중심지가 되었다. 시 당국에 의하여 사생활이 확실하게 보호되므로 뉴잉글랜드, 뉴욕 지역의 부자들이 많이 모여 살고 고급 주택들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브리지타운대학, 브리지포트대학교, 브리지포트공학연구소, 새크리드하트대학교, 후서토닉지역사회대학이 있으며 주의 유일한 동물원인 베어슬리공원&동물원(Bearsley Park & Zoological Gardens)이 있다. 2023년 NBC에서 조사한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4위에 선정되었다.[2]
기후
쾨펜 기후 분류에 따르면 브리지포트는 길고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을 가진 습한 아열대성 기후(Cfa)와 습한 대륙성 기후(Dfa) 지역에 걸쳐 있으며 연중 강수량은 상당히 고르게 분포한다. 코네티컷 해안과 인근 롱아일랜드, 뉴욕과 마찬가지로, 겨울 강수량의 대부분은 비 또는 혼합이며 브리지포트에는 비와 젖은 눈이 내린다. 브리지포트는 연평균 75cm의 눈이 내린다. 월평균 기온은 1월 -0.3°C에서 7월 24.3 °C에 이며 최고 기록은 1984년 1월 22일에 세운 -22°C이고 최고 기록은 1957년과 2011년 7월 22일에 세운 39°C이다.
역사
브리지포트에는 유럽 식민지 시대가 시작될 때 포우거셋(Paugussett)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이 거주했다. 현재 브리지포트의 도시 경계 내에서 최초로 기록된 유럽인들의 정착은 1644년에 블랙록 하버(Black Rock Harbour)를 중심으로 파크와 브라이어우드 애비뉴 사이의 노스 애비뉴(North Avenue)를 따라 이루어졌다. 이곳은 알곤킨어를 사용하는 아메리카 원주민인 포우거셋의 무리의 이름을 따서 페쿼녹(Pequonnock)이라고 불렸다. 그들의 성지 중 하나는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골든 힐(Golden Hill)로 천연 샘과 식물 재배지가 있는 곳이다. 1639년 코네티컷 식민지에 의해 골든힐 인디언들이 이곳에 보호구역을 부여받았는데, 이는 1802년까지 지속되었다.
1639년, 영국 코네티컷 식민지의 부지사였던 로저 러들로(Roger Ludlow)는 하트포드에 있는 식민지 총회로부터 두 개의 농장을 설립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하나는 하우스토닉강 어귀(오늘날 스트랫포드)의 큐페그에, 하나는 페쿼녹강 어귀의 항구(오늘날의 브리지포트 항구)이다. 러들로는 명령에 불복종하고 대신 언웨이(Unconway)에 정착지를 세웠는데, 아마도 그들의 성지였던 골든힐에 포우거셋이 크게 정착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고, 그래서 그들은 대신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인구가 드문 땅에 정착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1659년 하트포드의 일반 법원은 포우거셋 보호구역의 공식적인 경계를 설정했다.
브리지포트의 초창기는 주민들이 어업 과 농업 에 의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옥수수, 콩, 호박을 재배했던 포우거셋 족의 경제와 비슷했다. 뉴필드(Newfield)라고 불리는 마을은 1760년대 스테이트(State)와 워터(Water) 거리의 모퉁이를 중심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 지역은 이미 존재하는 스트랫포드와 페어필드의 마을 사이에 위치하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스트랫필드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미국 독립 혁명 동안 뉴필드 항구는 사유지의 중심이었다.
1781년 코네티컷주가 연합국의 규약을 비준했을 때, 많은 지역 농부들이 뉴필드 항구에서 무역하는 선박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거나 자신들의 이름으로 무역을 시작했다. 뉴필드는 처음에는 보스턴, 뉴욕, 볼티모어와의 해안 무역과 서인도 제도와의 국제 무역을 중심으로 확장되었다. 마을의 상업 활동은 페쿼녹의 서쪽 둑에 있는 부두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교회들은 브로드 스트리트의 내륙에 세워졌다. 1787년, 페어필드 카운티 법원은 현재의 스테이트 스트리트와 메인 스트리트를 브리지포트 시내에, 당시 뉴필드강을 따라 배치하고 넓히도록 명령했다. 혁명 이전에는 이 땅이 도시로 성장할 것이라고 가정했다.
1821년, 자유 흑인들과 도망 노예들과 함께 남아있는 골든 힐 파우가셋 원주민들의 작은 공동체가 리틀 라이베리아라고 알려진 메인 스트리트를 따라 사우스 엔드에 세워졌고 자체의 교회, 학교 그리고 호텔이 있었다.
서인도의 무역은 1840년경에 쇠퇴하였으나 브리지포트는 1836년 코네티컷의 다섯 번째 도시로 인가되었다. 브리지포트에서 워터베리와 윈스테드를 나우가턱을 따라 연결하는 나우가턱 철도는 1845년에 인가되었고 4년 후에 운행을 시작했다. 뉴욕과 뉴헤이븐 철도가 운행을 시작했고 브리지포트와 뉴욕 그리고 롱아일랜드 사운드의 북쪽 해안을 따라 있는 다른 마을들을 연결했다. 주요 교차점이 된 그 도시는 산업화를 시작했다.
남북전쟁 중인 1863년, 브리지포트 스탠다드(Bridgeport Standard)는 도시에 공원 조성을 장려하는 기사를 연재했다. 남북전쟁 이후 도시는 총기, 금속 카트리지, 말 하네스, 자물쇠, 블라인드 등을 생산하는 여러 철 주조 공장과 공장이 있었다. 브리지포트는 1870년에 웨스트엔드와 블랙록 마을과 그 번화한 항구를 통합했다.
1870년부터 1910년까지 브리지포트는 코네티컷에서 가장 큰 산업 중심지가 되었다. 인구는 아일랜드인, 슬로바키아인, 헝가리인, 독일인, 영국인, 이탈리아인 이민자를 포함하여 약 25,000명에서 100,000명 이상으로 증가했다. 1881년 폴란드, 러시아, 특히 헝가리의 유대인들이 브리지포트를 고향으로 부르면서 도시로의 유대인 이주가 시작되었다.
1910년에서 1920년 사이,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도시의 인구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도시의 역할로 인해 102,054명에서 143,555명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915년 여름, 일련의 파업이 도시의 공장들에 하루 8시간을 부과했다. 다른 곳으로 사업을 옮기지 않고 성공으로 북동부 전역에 하루 8시간을 확산시켰다.
브리지포트는 1960년대 초 고속도로 건설 과정에서 구시가지에서 자체적인 도시 재생 사업을 시도했다. 인구 15,000명의 헝크타운과 사우스엔드의 아일랜드인 거주지역은 철거되었고 고속도로와 산업단지로 대체되었다. 20세기 중반 이후 시작된 중공업 구조조정으로 수천 명의 일자리와 주민이 사라졌다. 코네티컷의 다른 도시 중심지와 마찬가지로 브리지포트는 1970년대와 1980년대 미국의 탈산업화 기간 동안 어려움을 겪었다. 1999년 시코르스키 메모리얼 공항은 상업적 지역 항공편 제공을 중단했다.[3]
브리지포트대학교
브리지포트대학교(University of Bridgeport)는 미국 코네티컷주 브리지포트에 있는 소규모 사립 종합대학교이다. 뉴잉글랜드 고등교육위원회의 인가를 받았다. 실용적 학문 위주의 14개 학술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다. 2023년 유에스뉴스&월드리포트의 미국대학순위에서 331-440위권에 포함됐고, 공학 박사과정이 196-212위권에 들었다. 2022년 타임스고등교육 세계대학순위에서 미국 대학 가운데 600위권 밖으로 평가됐다. 대학교의 캠퍼스가 소재한 브리지포트는 롱아일랜드만에 위치하며 아름다운 바다 경치와 다채로운 계절 변화를 자랑한다. 코네티컷주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인 브리지포트는 공원과 쇼핑센터, 동물원을 갖추고 있고 고용과 인턴십 기회도 풍부하다.
브리지포트대학은 1927년 코네티컷주의 첫 2년제 대학으로 시작했다. 브리지포트의 지역유지들이 대학 이상의 고등교육기관이 없는 브리지포트에서 고등교육기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대학 설립을 추진했다. 이들은 2년제 코네티컷주니어칼리지(Junior College of Connecticut)를 설립했다. 브리지포트대학교의 학술 부문은 14개 대학 또는 학부로 구성되어 있다. 경영학, 치위생학 등의 준학사 과정과 회계학과 심리학, 그래픽디자인, 컴퓨터과학, 수학, 생물학, 음악, 컴퓨터공학, 국제경영 등의 분야에서 전공별 학사학위 과정을 제공하고 있다. 경영, 상담, 엔지니어링, 자연요법의학, 교육학 등의 분야에서는 석사학위와 박사학위 과정도 운영한다. 1991년 미국 최초로 척추지압대학을 개설했다. 1996년과 2006년에 자연요법의학과 컴퓨터공학 분야의 박사과정도 추가되었다. 2014년 이 학교는 미국 평화봉사단과 제휴하여 뉴잉글랜드 최초의 평화봉사단준비 프로그램을 개설하였다.[4]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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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 〈브리지포트〉, 《위키백과》
- 〈브리지포트〉, 《요다위키》
- 〈브리지포트(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브리지포트대학교〉,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
북아메리카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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