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스타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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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스타비아(프랑스어: Gustavia)는 카리브해 소앤틸리스 제도에 있는 프랑스령 생바르텔레미(프랑스어: Saint-Barthélemy)의 수도이다. 도시 이름은 스웨덴령이던 시기, 스웨덴의 국왕 구스타프 3세(Gustav III)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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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귀스타비아는 카리브해(Caribbean Sea)의 리워드제도(Leeward Islands)에 있는 프랑스령 생바르텔레미에 있는 유일한 항구이자 도시이다. 푸에르토리코(Puerto Rico)로부터 약 241km 동쪽에 위치한다. 주민들은 스웨덴이나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이주해온 게르만계의 노르만인과 켈트계의 브리타니인 같은 백인 계열이 많고 흑인은 약간 있다. 최근에는 포르투갈과 브라질 등을 중심으로 외국인 노동자도 있다. 공용어는 프랑스어이며, 공식 화폐는 유로를 사용한다. 농업이 불가능한 자연조건으로 인해 플랜테이션 농업은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구스타비아의 자유항을 이용한 무역에 주로 의존하였다. 현재는 자연환경을 활용한 관광업이 핵심 산업이다. 생바르텔레미는 1648년에 프랑스가 처음으로 점유하였으며, 1784년부터 1877년까지는 스웨덴이 프랑스로부터 섬을 구입하여 통치하였다. 그러나 1877년에 프랑스가 다시 사들여 과들루프의 하위 행정 구역으로 편입시켰으며, 2007년에 별도의 해외 자치 지역으로 분리되었다. 부족한 부존자원과 자연환경으로 인해 공산품과 식품, 에너지 자원 등 대부분의 재화를 수입하기 때문에 물가가 비싼 편이다. 생바르텔르미는 구릉성 지형과 건조한 기후, 척박한 토양으로 인해 대부분의 카리브 지역에서 이루어지던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이 애초부터 불가능하였다. 담배와 면화의 재배가 소규모로 이루어졌지만 활성화되지는 못하였고, 이에 따라 대규모의 노예 노동력도 필요하지 않아 백인 중심의 사회와 경제를 계속 유지하였다. 면세 지역을 활용한 무역을 중심으로 경제 활동을 영위하였지만, 주민들은 고난하고 힘든 생활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 20세기 후반부터는 관광업이 활성화되기 시작하여 현재는 관광업과 기반 시설을 확충하기 위한 건설업이 주요 산업을 이루고 있다. 생바르텔르미의 관광은 16개의 아름다운 해변과 상대적으로 조용하고 쾌적한 섬의 분위기를 활용한 휴양형 고급 관광과 면세 사치품 쇼핑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매년 북아메리카 지역을 중심으로 3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고 있다. 휴양형 관광으로 특화하기 위해 대규모 관광객 유치 시설을 제도적으로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도 섬 내에서 카지노와 고층 호텔, 패스트푸드점 등은 찾아볼 수 없다.[2]
역사[편집]
고대부터 식민 시대까지[편집]
1493년 콜럼버스가 자신의 2차 항해에서 생바르텔르미를 발견했을 당시, 주변 지역에는 카리브 인디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 정주하기 어려운 지형과 식수의 부족으로 인해 카리브 인디언들은 섬에 정착지를 건설하지는 않은 채 왕래하기만 하였다. 콜럼버스의 발견 이후에도 섬의 규모가 크지 않고 별다른 부존 자원 역시 없었기 때문에 유럽 세력의 관심을 끌지 못한 채 남겨져 있었다.
섬에 처음으로 정착한 유럽 세력은 1648년 자크 장테(Jacques Gente)를 비롯한 프랑스 인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1656년에 섬을 왕래하던 카리브 인디언들에게 살해당하였다. 이로 부터 25년 후에 다시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에서 신교도인 위그노(Huguenot)들이 이주해 오면서 프랑스 인들이 이 지역을 계속 점유하게 되었다. 이들은 섬 내에서 거의 불가능한 농업이나 어업 대신 주로 에스파냐 함선을 습격하는 해적 활동을 하였다. 생바르텔르미에는 현재도 이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데, 노르망디 지역의 방언이 남아 있기도 하다.
1651년에 프랑스의 서인도 회사는 섬을 몰타 기사단(Order of Malta, 일명 템플 기사단)에게 양도하였고, 1666년에는 기존의 모든 주민들을 세인트키츠로 내쫓고 새로운 아일랜드 식민지를 수립하려고 시도하였다. 하지만 이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기존 주민들이 다시 복귀하였고, 섬은 제자리를 찾았다. 1674년에 프랑스가 몰타 기사단으로부터 섬을 다시 구입하여 과들루프의 속령으로 편입시켰지만, 어떠한 이익도 창출해 내지 못했기 때문에 생바르텔르미의 점유는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이 지역으로 들여왔던 소수의 노예들도 모두 주변 섬으로 옮겨 가면서 카리브에서 흑인 인구가 없는 유일한 섬이 되었다.
1784년에 프랑스 국왕인 루이 16세는 스웨덴 예테보리(Göteborg)에서의 무역 및 창고 사용 권리와 교환하는 조건으로 생바르텔르미를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3세(Gustav Ⅲ)에게 넘겼다. 카리브에서 식민지를 보유하지 못했던 스웨덴은 생바르텔르미의 항구 지역을 국왕의 이름을 따서 구스타비아로 명명하고, 기반 시설을 정비하여 관세가 면제되는 자유항으로 지정하였다. 스웨덴의 지배하에 식민 전쟁 기간 동안 무역의 중심지로 번영을 구가하면서 섬의 경제는 활기를 띠게 되었고, 1815년에는 인구가 6,000명까지 증가하였다. 하지만 이후 무역량이 감소하고 질병이 퍼진데다가 1852년에는 대형 화재로 구스타비아가 피해를 입게 되자 스웨덴은 1877년에 섬을 프랑스에 되팔았고, 생바르텔르미는 과들루프의 속령으로 다시 편입되었다.
근대부터 현대까지[편집]
섬을 다시 소유한 프랑스는 구스타비아의 자유항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였다. 이후 섬은 풍족하지는 않지만 평화롭고 조용한 생활을 지속하였다. 주민들은 섬 내에서 산업을 발전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주변 섬에서 경제 활동을 영위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특히 미국령 버진아일랜드(Virgin Islands)의 세인트토머스(St. Thomas)로 많이 진출하였다.
1950년대에 관광객들의 방문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해변과 정숙한 환경 등 관광지로서의 장점이 재발견되었다. 이후 조용한 환경에서 휴양을 원하는 북아메리카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고급 관광지로 자리매김하였다. 2003년 3월에 프랑스의 헌법 개정에 따라 해외 영토의 헌법적 지위가 완전히 변하게 되었는데, 새 법에 따라 프랑스 본토에는 없는 독특한 행정 체계인 해외 자치 지역(collectivité française d'outre-mer)의 지위가 규정되었다. 2003년 12월에 생바르텔르미의 헌법적 지위를 자치 지역으로 변경하는 것에 대한 주민 투표가 실시되었고, 90% 이상의 주민이 찬성하면서 가결되었다. 이에 따라 2007년 과들루프주의 하위 시(commune)에서 해외 자치 지역으로 공식적으로 변경되었다.[3]
교통[편집]
구스타비아의 동쪽에 구스타프 3세 공항(Aéroport Saint-Jean–Gustave Ⅲ)이 있지만, 대부분의 국제노선은 네덜란드령 신트마르턴(Sint Maarten)의 프린세스줄리아나 국제공항(Princess Juliana International Airport)을 이용한다. 구스타프 3세 공항은 인근 사바의 이라우스퀸 공항(Juancho E. Yrausquin Airport)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짧은 활주로를 보유한 공항으로, 19석 이하의 경비행기만 이착륙할 수 있기 때문에 생마르탱, 과들루프, 마르티니크 등 인접한 프랑스령 지역과의 노선만 운항하고 있다. 한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는 구스타프 3세 공항을 ‘세계에서 가장 아찔한 공항’ 3위로 선정하기도 하였다.
페리(ferry)는 생바르텔르미를 드나드는 가장 일반적인 국제 교통수단으로, 대부분 생마르탱, 신트마르턴 지역을 연결한다. 구스타비아는 생바르텔르미의 유일한 항구로, 구스타비아와 생마르탱의 주도인 마리고(Marigot) 간에는 하루 수차례 페리가 운항하고 있는데, 시간은 90분 정도 걸린다.
차량은 우측 통행을 하며, 교통 법규와 도로 표지판은 유럽연합(EU)의 기준을 따른다. 지형 조건 때문에 도로는 좁고 구불구불하며 포장 상태가 좋지 못하다. 섬 전체에 주유소가 단 두 곳이 있는데, 그마저도 일요일에는 문을 닫는다. 별도의 대중교통 수단이 없기 때문에 외부인은 차량을 빌리거나 택시, 자전거 등을 이용해야 한다.[4]
생바르텔레미[편집]
생바르텔레미(프랑스어: Saint-Barthélemy), 공식 명칭은 생바르텔레미 집합체(프랑스어: Collectivité de Saint-Barthélemy)는 서인도 제도에 위치한 프랑스의 해외 집합체이다. 네덜란드령 신트마르턴에서 남동쪽으로 약 35km 떨어져 있고, 네덜란드령 사바섬과 신트외스타티위스섬의 북동부와 북쪽, 독립국가인 세인트키츠 네비스의 북쪽에 위치한다. 리워드 제도의 일부이다. 2007년 2월 22일 생바르텔레미섬과 그 주변 섬들을 포괄하여 프랑스 해외 집합체로 분리되었다. 생바르텔레미는 1648년에 프랑스에 의해 소유권이 주장되었다. 1784년에 스웨덴에 팔렸다가, 1878년에 프랑스가 되샀다. 스웨덴의 통치 기간(구스타프 3세) 동안에, 대부분의 도시와 거리의 이름이 지어졌고, 섬의 문장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관광업이 번영하고 있으며, 조세 피난처 지역 중 하나이다. 물가가 무척 비싼 지역 중 하나이며, 부유층 전용 특수 휴양지라는 인식이 있다. 해외 집합체라 유럽연합에 속하지 않지만 협정을 맺어 통화로 유로를 사용하고 있다.[5]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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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귀스타비아〉, 《위키백과》
- ↑ 〈생바르텔르미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 〈생바르텔르미의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 ↑ 〈생바르텔르미의 교통〉, 《네이버 지식백과》
- ↑ 〈생바르텔레미〉, 《위키백과》
참고자료[편집]
- 〈귀스타비아〉, 《위키백과》
- 〈생바르텔레미〉, 《위키백과》
- 〈생바르텔르미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생바르텔르미의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 〈생바르텔르미의 교통〉,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카리브해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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