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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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르(영어: Koror)는 팔라우 공화국의 상업 중심지로 코로르주의 주도이다. 인구는 약 1만1천 명으로 나라 전체의 약 70%를 차지한다. 2006년 10월 7일 응게룰무드로 이전될 때까지 팔라우의 수도였다.[1]
개요[편집]
코로르는 필리핀 남쪽 캐롤라인제도의 서쪽에 있으며 팔라우 경제의 중심지이다. 팔라우에서 가장 큰 섬인 바벨투아프섬에서는 남쪽으로 680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팔라우의 다른 섬들과 마찬가지로 화산섬이다. 유럽인이 처음 목격한 것은 1543년 1월 말 스페인의 루이 로페스 데 빌라로보스(Ruy López de Villalobos) 탐험대에 의해 기록되었다. 그 후 그들은 로스 아레 시 페스 (스페인어로 암초)로 기록되었다. 1710년 11월과 12월 파타케 산티시마 트리니다드 (Santísima Trinidad )를 타고 사르겐토 시장 프란시스코 파딜라(Francisco Padilla)가 지휘하는 스페인 선교 원정대에 의해 다시 방문되고 탐험되었다. 1885년 에스파냐령, 1889년 독일령을 거쳐, 1914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일본이 위임통치하였다. 코로르는 일본제국의 위임통치령인 남양군도의 수도이기도 하였다. 과거 일본제국이 남양 군도를 위임통치령으로 통치하던 시기에 통치 기관인 남양청을 코로르에 설치했다. 1947년 국제연합 태평양 신탁통치령이 된 뒤, 1980년 팔라우의 자치가 허용되면서 이듬해 수도가 되었다. 주민은 원주민인 카나키족(族)이 대부분이고 그밖에 폴리네시아인, 말레이인, 멜라네시아인과 일본계도 있다. 코로르는 열대 해양성 기후로 고온다습하다. 우기는 5~6월부터 11월까지로, 열대 특유의 국지성 강우가 내린다. 우기인 7~8월은 태풍이 팔라우를 지나가며 많은 비가 내린다. 전체 인구의 반이 넘는 숫자가 이 섬에 거주할 만큼 코로르는 팔라우의 중심지이다. 행정관서, 의회, 법원, 금융기관, 학교, 호텔 등이 모여 있다. 산업은 코코넛, 코프라, 카사바 등의 농업이 활발하지만 주 수입원은 관광이다. 섬 안에 팔라우 국립박물관이 있고, 인근 바벨투아섬과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팔라우 중심부에 위치해 펠렐리우섬, 앙가우르섬 등 팔라우의 다른 섬으로 이동하는 거점 역할도 한다. 국제공항이 있는 아이라이주와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2]
코로르-바벨다오브 다리[편집]
코로르-바벨다오브 다리(Koror-Babeldaob Bridge) 또는 일본-팔라우 우호의 다리(Japan-Palau Friendship Bridge), KB 브릿지(K-B Bridge)는 팔라우의 옛 수도인 코로르섬과 바벨다오브섬을 잇는 413m의 콘크리트제 다리이며 과거 붕괴 사고가 일어나 현재의 다리는 2002년에 재건된 것이다. 1977년, 한국인 이찬우가 사장인 건설 회사 SOCIO가 섬을 잇는 콘크리트 다리를 건설했다. 설계상 풍속 67m의 폭풍과 심한 흔들림에도 견딜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또한 건설업자 선정입찰 때 SOCIO가 카지마건설이 제시한 액수의 절반수준의 입찰가격을 제시하여 낙찰되었다. 건설 직후 다리 중앙부가 움푹 들어가 20년도 지나지 않아 약 1.2m나 함몰했다. 세계 각국의 회사가 보수, 보강 공사를 진행했지만 1990년에 팔라우 정부는 230만 달러를 들여 보강 공사를 실시했다. 1996년 9월 26일 오후 5시 35분경, 굉음과 함께 갑자기 중앙부에서 두동강이 나며 붕괴되었다. 2명이 사망, 4명이 부상을 당했다. 다리는 코로르섬에서 공항으로 향하는 유일한 도로일 뿐만 아니라, 바벨다오브섬에서 코로르섬으로 공급되던 전기, 수도, 전화 등 생명선이 지나고 있었기에 수도기능이 마비되어 구니오 나카무라 대통령은 국가비상사태선언을 발령했다. '암흑의 9월 사건'(Black September)으로 알려져 있다. 그 직후 관민이 손을 잡고 복구 작업이 진행되어 9월 30일 긴급 송전선을 부설하여 전선이 복구되었다. 뒤이어 10월 6일에는 다리 양쪽에서 소방용 호스를 이용하여 제한적이었지만 수도를 복구시켰고 교통수단으로서 선박이 부활했다. KB브릿지 붕괴로 인하여 각국도 지원을 시작했다. 일본도 음료수 긴급수송과 가설교 설치 등 지원에 힘썼다. 이 다리에 관해서는 건설당초부터 부실공사 의혹이 지적되었고 주민은 피난로를 확보하기 위해 자동차 창문을 열어 느리게 서행하는 등 자구책을 강구했다. KB브릿지는 한글과 알파벳으로 비문이 새겨진 기념비만 남아있지만 누군가에 의해 'KOREA'라는 문자가 지워졌다.
2002년 1월, 일본의 정부개발원조(ODA)에 의해 재건된 엑스트라도즈드교. 정식명칭은 '일본-팔라우 우호의 다리'(Japan-Palau Friendship Bridge)이며 통칭, "일본 팔라우 우호교"로 불린다. 설계상 내용 연수는 50년이다. 팔라우 정부가 재정적인 이유로 자금 지원을 단념했다. 1997년에 일본의 무상원조로 다리 재건이 결정되어 카지마 건설이 재건 업무를 맡았다. 구교와 같은 위치에 건설되었지만 구교의 콘크리트가 저품질이었기에 구교 잔존부를 재이용하지 않고 처음부터 다시 짓게 되었다. 5년 뒤인 2002년 1월에 다리를 완성하여 1월 11일에 개통식 행사가 열렸다. 이 새로운 다리의 기념비에는 일본-팔라우 우호의 다리라고 새겨져 우호의 상징으로서 양국 국기가 그려져 있다. 이 다리와 양국 국기는 다리 완성 후 2012년 1월에 팔라우 우편국에서 발매한 건설 1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 우표에도 그려져 있다. 2002년에는 일본 토목학회 다나카상을 수상했다.[3]
팔라우[편집]
팔라우 공화국(팔라우어: Beluu er a Belau, 영어: Republic of Palau), 약칭 팔라우(팔라우어: Belau, 영어: Palau)는 오세아니아의 미크로네시아 캐롤라인 제도에 있는 연방 국가로써, 필리핀의 남동쪽, 인도네시아 서뉴기니의 북쪽에 위치한 섬나라이다. 2006년에 코로르에서 응게룰무드로 수도를 옮겼다. 공용어로 팔라우어와 영어를 사용한다. 16세기 중엽부터 필리핀과 함께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었고, 1899년에 독일이 이 지역을 마리아나 제도, 캐롤라인 제도와 함께 스페인으로부터 매입하였다. 코프라를 생산하고 앙가우르 섬에서 인산염이 채굴되었다(1955년에 고갈). 제1차 세계 대전 후 1919년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위 두 제도 및 마샬 제도와 함께 일본 제국의 위임통치령(국제 연맹이 통치를 위탁한 지역)인 남양 군도가 되었다. 1922년에 코로르에 일본 제국의 통치 기관인 남양청(南洋廳, 일본어: 南洋庁)이 설치되었다.남양청은 행정 및 사법 업무를 관할하였고, 산업 개발 및 교육(특히 일본어 교육) 사업을 수행했다.1944년 5월 남양청(남양군도를 총괄하는 일제 행정기관)에 의해 남태평양 팔라우 섬으로 강제 동원됐던 한인 노무자 334명 가운데 151명이 현지에서 사망해 사망률이 45.1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해군의 주요기지로 있다가 1944년에 펠렐리우 전투로 미군이 점령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따라 이 지역은 미국의 신탁통치령이 되었다. 그러다가 1981년에 자치령이 되었고, 1982년 미국과의 '자유연합협정' 체결로 미군 기지가 들어서는 대신 미국으로부터 경제원조를 받아 왔다. 1994년 10월 1일에 공화국으로 완전 독립하여 그 해 12월에 유엔에 가입하였다.[4][5]
캐롤라인제도[편집]
캐롤라인제도(영어: Caroline Islands)는 미크로네시아 연방과 팔라우 공화국을 이루는 태평양 서부의 제도이다. 2개의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는 제도로 정상부분이 산호층으로 이루어진 동쪽의 화산군과 습곡작용과 압력을 받아 대양 표면으로 솟아오는 지각층에 해당하는 동쪽의 섬들로 나누어진다. 캐롤라인 제도 동부는 2세기 이전에 사람들이 이미 정착했던 것으로 보이며, 서부의 여러 섬에는 7세기 무렵 중국의 무역상품들이 이곳까지 진출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있다. 16세기에 이 제도를 방문했던 스페인의 항해가들은 그들의 왕인 카를로스 2세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지만 19세기에 와서야 이곳을 스페인의 식민지로 만들었다. 1898년의 미국-스페인 전쟁이 끝난 후 이 제도는 독일에게 넘어갔으며, 1914년 일본에게 점령되었고, 1919년 이후에는 국제연맹의 위임통치령으로서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일본에게 철저하게 방어되고 있다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국에게 점령되었고 1947년 미국의 관할권 아래 있는 국제연합(UN)의 전략적 신탁통치지역이 되었다. 1986년 신탁통치지역이 해제되었지만 지금도 미크로네시아 연방과 팔라우 공화국은 미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캐롤라인 제도에는 매우 다양한 지형·문화·언어들이 공존한다. 서부의 섬들은 멜라네시아와 필리핀의 영향이 혼합되어 있고, 동부 섬들에서는 폴리네시아의 여러 특징이 나타난다.[6]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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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코로르〉, 《위키백과》
- 〈코로르-바벨다오브 다리〉, 《위키백과》
- 〈팔라우〉, 《위키백과》
- 〈캐롤라인 제도〉, 《위키백과》
- 〈팔라우(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코로르(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미크로네시아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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