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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타나모만(스페인어: Bahía de Guantánamo, 문화어: 관따나모 만)는 북아메리카의 카리브제도에 있는 쿠바 남동부 관타나모주의 만이다. 쿠바섬 남부 최대의 항구 지역이다. 관타나모만 남부 입구에는 미국의 관타나모만 해군기지가 있다.[1]
개요[편집]
관타나모만은 쿠바섬 동부의 관타나모주에 위치하는 만으로 아바나에서 동남쪽으로 900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미국이 쿠바로부터 조약상 영구임대한 곳이다. 미국은 1898년 스페인-미국 전쟁 중에 처음으로 관타나모만을 점령하고 그곳에 해군 기지를 설립했다. 1903년, 미국과 쿠바는 미국이 이 땅을 석탄 및 해군 기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임대 계약을 체결했다. 미국은 임대차 계약에 따라 관타나모만의 남부 지역을 영유권으로 장악했다. 관타나모만은 쾨펜 기후 분류에 따라 연중 고온의 반건조 기후이다. 강우량은 다소 낮고 쿠바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 중 하나이다. 관타나모만에 있는 해군기지는 미군의 해외 기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기지이며 주권국가인 쿠바 영토 안에 있는 미국 점령지이다. 면적은 160㎢이며 미 해병대가 관할하고 미군과 군인가족 약 3천 명이 살고 있다. 관타나모만은 카리브해에 위치한 지리적 위치로 인해 미국 군사 계획자들에게 관심을 끌었다. 파나마 운하와 미국 남부 해안을 방어하는 전략적 위치가 되었다. 또한 이 지역의 해군 함정에 대한 자연스러운 안식처이기도 했다. 다른 요인들 때문에 미국은 이 지역을 해군 기지에 적합한 지역으로 고려하게 되었다. 1959년 쿠바혁명 이후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관타나모 해군기지를 유지하겠다고 밝혔으며 이에 피델 카스트로는 기지 철수를 주장하였으나 철수가 무산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61년 4월의 반(反)카스트로 세력의 쿠바 상륙 때 관타나모 기지는 다시 한 번 세계의 이목을 끌었고 1962년 쿠바미사일 위기 때에는 병력이 증파되기도 하였다. 현재는 철조망, 선인장으로 둘러싸인 27km 접경선을 사이에 두고 미국과 쿠바가 대치하고 있다.[2]
역사[편집]
관타나모만은 1498년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유럽인 최초로 쿠바에 상륙한 이후 스페인의 땅이 되었다. 그러나 1898년에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이 1903년 쿠바 제1공화국으로부터 관타나모만을 미합중국 해군 기지로 영구조차할 때, 미국은 쿠바에 조차료로 매년 금화 2천 닢 상당(현 시가로 4천 달러)을 지불하도록 되어 있고 또 지불하고 있지만, 피델 카스트로 정권이 들어선 이후 현 쿠바 정권은 임대 조약 자체가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안 쓰고 모아두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전 정권과의 조약을 이유로 계속 지불하고 있다. 그리고 쿠바 정부가 전기를 끊어버리자 미군은 아예 자체적으로 발전소를 들여왔다.
미국과 쿠바는 카스트로 정권 이래 국교단절 상태이고 적대국가라서 미국은 바로 적대국 조차지에 군대를 주둔하고 있는 기묘한 상황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쿠바 영토의 일부를 점령하고 있다. 피델 카스트로는 당장 미군 철수 및 즉각 반환을 외쳤지만 쿠바 견제 및 카리브해의 요지이기 때문에 미국은 쿠바 정부에게 주둔비를 명목으로 4천달러라는 푼돈을 억지로 쥐어주면서 눌러앉아있으면서 쿠바의 요구를 그냥 무시하는 중이었다. 그렇다고 쿠바가 쿠바군을 동원해 세계 최강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관타나모 땅을 공격해서 되찾는 것은 당연히 어림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관타나모의 미국-쿠바 국경에는 혹시나 쿠바군의 점령 시도에 대비해 과거 무수한 지뢰가 매장되어 있었지만, 미국측은 1996년 빌 클린턴 대통령의 지시로 지뢰를 거의 철거한 뒤, 센서로 대체하였다.[3]
카스트로 정권 이전에는 쿠바에서 관타나모 기지에 일하러 오는 쿠바인도 수천 명에 달했으나, 카스트로 정권은 1959년 이후 고용인이 관타나모 기지에 새로 채용되는 것을 금해, 2006년에는 쿠바인 노인 2명만 기지의 동북문을 통해 드나들며 출퇴근했다. 2012년에는 이들도 모두 은퇴했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등장 이후 과연 관타나모 수용소가 폐쇄될 것인지 관심이 쏠렸다. 정부에서 본토인 일리노이주의 톰슨 교도소를 매입하여 이들을 수용하는 방안을 논의했지만 이감되었다는 소식은 없다. 지역 주민들도 찬반이 나뉘고 논란이 격화되었다는 소식들이 나왔던 걸 보면 흐지부지되어 버린듯 하다.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서 관타나모 수용소를 유지한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함에 따라 무산되었다.
그러나 2015년에 미국과 쿠바와의 관계가 개선됨에 따라 쿠바가 일방적 조약이라며 쓰지 않고 모아놨던 주둔비를 환급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쿠바가 기지 자체를 인정하고 조차료를 현실적인 수준으로 조정하는 협상을 할 여지도 있다. 쿠바 입장에서도 미국이 관타나모를 쉽사리 내놓을 리는 만무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하다 못해 조차료라도 제대로 달라고 요구하는 형태이다. 사실 약 160㎢(서울면적의 1/6 이상)을 쓰면서 주둔료로 년간 400만 달러를 받아도 헐값일 판에 겨우 4천 달러, 미국 직장인 한달치 월급도 안되는 금액을 받으며 개발도 못하는 노는 땅으로 만드는건 너무 날강도 같은 짓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관타나모만 일대가 농사도 못 짓는 황무지라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니 더 아까울 수 밖에 없다. 개정을 한다면 모르겠지만 미국 공화당의 입장이 완강한지라 쉽지가 않다. 그리고 트럼프 정부에서 쿠바와 다시 국교단절 직전 수준으로 관계가 악화되면서 없던 일이 되었다. 조 바이든 집권 이후에도 별 변화가 없다.[4]
선인장의 장막[편집]
선인장의 장막은 관타나모만 해군 기지와 쿠바 영토를 나누는 용어다. 쿠바혁명 이후 몇몇 쿠바인들은 관타나모만 해군 기지로 망명했다. 1961년 가을, 쿠바의 군부대가 자국민의 미국으로의 망명을 막고자 27km의 국경선 중 북동쪽 부분에 선인장을 심었는데 중국의 죽의 장막 및 동구권의 철의 장막에서 그 이름을 본따 선인장의 장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무인(無人)지대를 따라 55,000개의 지뢰를 설치했는데 이는 전세계에서 두번째로 가장 큰 지뢰밭이며 서구권에서는 가장 큰 지뢰밭이다. 1996년 5월 16일 미국의 대통령 빌 클린턴은 이를 해체할 것을 지시했고 이에 따라 동작인식기 및 음성 센서로 바뀌었다. 그러나 쿠바 측은 그대로 남아있다.
관타나모만 해군기지[편집]
관타나모만 해군 기지(영어: Guantanamo Bay Naval Base, 스페인어: Base Naval de la Bahía de Guantánamo, 문화어: 관따나모만 해군 기지)는 쿠바 남동쪽 끝부분에 위치한 관타나모만에 위치한 미국의 해군 기지로 총면적은 117.6km²이다. 미국 해군이 점유한 지 1세기가 지났으며, 미국의 해외 기지 중에서도 오래된 곳이다. 또한, 관타나모 해군기지는 미국과 정식 외교 관계가 없는(잠재적 적대 국가의) 국가 내부에 있는 유일한 미군 기지이기도 하다.
미국은 아바나항에 정박해 있던 미국 해군의 군함 메인호의 폭발 사건을 빌미로 스페인에 선전포고를 했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쿠바, 괌, 필리핀, 푸에르토리코 등을 점령하였다. 이 전쟁의 결과로 쿠바는 파리 조약에 의해 독립을 이루지만, 곧바로 미군의 군정 하에 들어가게 되고 쿠바의 내정 간섭을 위한 플래트 수정안을 통해 관타나모만 기지를 미국에 영구 임대하기로 조약을 맺었다. 하지만 미국 의회도서관 2009년 8월 자료에 따르면 1973년 미국 해군이 자체 조사한 내용에서 메인호는 내부 폭발에 따른 침몰이라고 되어 있다.
1959년 쿠바혁명에 의해 피델 카스트로가 정권을 장악하면서 미국과의 관계는 단절되고 관타나모 기지는 분쟁의 씨가 되었다. 피델 카스트로는 관타나모만 미해군기지를 주권침해행위로 보고 미군의 철수를 요구했으나 미국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쿠바혁명 이전의 협정에 따라 미국은 매년 기지 임대료로 2000달러(당시 기준)에 해당하는 금화를 지불하게 되어 있어 해마다 쿠바 정부에 임대료를 내고 있으나, 쿠바정부는 항의표시로 수납을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쿠바혁명 이전에 계속, 그리고 이후에 한번 금화를 받았기 때문에 미국은 정당한 조약이라 주장하고 있다. 냉전시기에는 일촉즉발의 지대로 기지 주변에는 DMZ같이 무수한 지뢰밭으로 뒤덮였었으나 빌 클린턴 대통령의 주도로 현재는 모션 센서 등으로 바뀌어 있다. 또한 탈쿠바 난민이나 아이티 난민 등의 수용소를 운영하기도 하였다.
근래에는 9.11 테러 이후 조지 W. 부시 정부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테러용의자를 법원의 동의없이 체포, 구금할 수 있는 수용소가 이 기지 내에 설치되어 인권의 사각지대로 국제적인 비판을 받았다. 결국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관타나모만 해군 기지에 위치한 수용소를 폐쇄하라는 행정 명령을 발령했지만 미국 의회의 동의를 받지 못해 실행되지 않았다. 미국은 쿠바정부의 승인없이 국제법을 어기고 불법점유하고 있다.[5]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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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관타나모만〉, 《위키백과》
- ↑ 〈관타나모 미해군기지(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 〈관타나모 만〉, 《요다위키》
- ↑ 〈관타나모만〉, 《나무위키》
- ↑ 〈관타나모만 해군기지〉, 《위키백과》
참고자료[편집]
- 〈관타나모만〉, 《위키백과》
- 〈관타나모만 해군기지〉, 《위키백과》
- 〈관타나모만〉, 《나무위키》
- 〈관타나모 만〉, 《요다위키》
- 〈관타나모 미해군기지(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카리브해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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