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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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레브(크로아티아어: Zagreb, 독일어: Agram)은 동남유럽 크로아티아(크로아티아어: Hrvatska, 영어: Croatia)의 수도이다.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큰 도시로 면적은 641.29km², 인구는 약 77만 명으로 크로아티아 전체 인구의 4분의 1에서 3분의 1이 거주하고 있다.[1]
개요
자그레브는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 사이의 국경 근처에 위치해 있으며 해발은 약 158m이다. 다뉴브강의 지류인 사바강이 시내를 흐르고 북쪽에 메드베드니차산이 있다. 자그레브의 인구는 주변부를 포함하면 크로아티아 전체 인구의 약 4분의 1을 차지한다. 자그레브는 크로아티아의 20개 주 외의 특별행정구역으로 자그레브 자치체에 속한다. 자그레브의 역사는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851년에 캅톨과 그라데츠가 합쳐져서 하나의 도시가 되었다. 크로아티아 교통의 허브이고 산업과 연구의 중심이다. 거의 모든 정부기구가 자그레브에 있다. 자그레브에는 많은 박물관, 미술관, 스포츠 시설 등이 있고 자그레브성당을 비롯해 오래된 여러 교회가 있다. 자그레브 북쪽의 메드베드니차산은 인기 있는 스키리조트이다. 2005년 1월 중순에 월드스키챔피언십 토너먼트가 이곳에서 열렸다. 메드베드니차, 셰스티네, 그라차니, 레메테 등 그림 같이 아름다운 옛 마을들은 민속의상, 셰스티네 우산, 생강쿠키 같은 것을 포함하여 풍부한 전통을 보존하고 있다. 자그레브는 오스트리아, 독일,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각지로부터 관광객이 끊이지 않고 한국, 중국, 일본, 인도 등지에서 오는 관광객도 늘어나고 있다. 자그레브 남서쪽에 있는 야룬은 호수와 공원이 있는 지역이다. 사바강 옆에 위치한 야룬에는 조정경기장이 있다. 이곳에 벨리코호수와 말로호수가 있고 여섯 개의 섬이 있다. 이곳에서 수영, 달리기, 롤러블레이드, 사이클 등 각종 레크리에이션 활동을 할 수 있다. 카약과 카누 경기가 펼쳐진다. 부근의 레메티네츠에는 실내경기장인 아레나자그레브가 있다.[2]
지리 및 기후
자그레브는 북쪽의 메드베드니차산 산자락에 있으며 중부 크로아티아의 내륙 지역 해발 122m에 위치한다. 자그레브는 중부유럽과 남부유럽이 교차하는 곳에 있다.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큰 강인 사바강이 자그레브를 흐른다. 자그레브는 흐르바츠코프리고레라고 알려져 있는 판노니아평원의 남서쪽에 있다. 아드리아해와의 거리는 약 170km이다. 북쪽의 메드베드니차산은 최고봉이 슬레메산(1,035m)으로 이곳에 크로아티아에서 높은 구조물 중 하나인 자그레브TV타워가 있다. 사바강과 쿠파강 골짜기는 자그레브 남쪽에 있고 흐르바츠코자고레 지역이 메드베드니차산 북쪽에 있다.
자그레브는 해양성기후지역으로 분류되지만 대륙의 영향이 상당히 강하고 습윤한 대륙성기후지역, 아열대성기후지역과 아주 가까이 있다. 자그레브는 사계절이 뚜렷하다. 5월 말에 상당히 더워지고 오후와 저녁에 천둥을 동반한 비가 자주 내린다. 여름에 30˚C가 넘는 날이 평균 14.6일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840mm이다. 가을은 비가 오는 날이 많아지고 10월 중순부터 1월까지 아침에 안개가 끼는 것이 보통이다. 북쪽의 메드베드니차산 산자락에 있는 지역과 사바강 주변 지역은 하루 종일 안개가 끼어 있는 경향이 있다. 겨울은 비교적 춥고 비는 적게 내린다. 2월이 가장 건조한 달로 평균 강수량은 39mm이다. 눈이 오는 날은 평균 29일이고 첫눈은 보통 12월 초에 내린다. 그러나 최근에는 눈 오는 날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봄은 대체로 포근하고 쾌적하며 날씨 변동이 잦고 다른 계절보다 바람이 많이 분다. 때때로 추운 기간이 있을 수 있다. 겨울의 일 평균 기온은 1˚C이고 여름의 일 평균 기온은 22.0˚C이다. 최고 기온은 1950년 7월의 40.4˚C였고 최저 기온은 1956년 2월의 영하 27.3˚C였다. 1940년 2월에는 보롱가이비행장에서 영하 30.5˚C를 기록한 적이 있다.[3]
역사
고대
자그레브의 역사는 고대 로마 시절인 서기 1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기 자그레브는 안다우토니아(Andautonia)로 불렸으며, 발칸반도 내륙의 요새 도시로 기능하였다. 이후 신대륙과 지리상의 발견 전까지는 발칸반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는 베네치아에서 소아시아를 잇는 아드리아 해안의 두브로브니크, 스플리트, 자다르 등 해당 도시를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내륙의 자그레브는 상대적으로 낙후되었다.
중세
오늘날 자그레브에는 로마 가톨릭 대주교 관구이며 자그레브의 상징물인 자그레브 대성당(Zagreb Cathedral)이 있다. 자그레브 대성당은 성 스테판 성당(St.Stephen Chapel)으로 불린다. 1094년 헝가리와 라디슬라우스 1세에 의해 건축되기 시작한 자그레브 대성당은 1242년 몽골의 침략으로 파괴되었다가 1263년에 다시 건축되었다. 그때 자그레브에는 두 개의 중심이 있었다. 동쪽에 있는 캅톨에는 주로 성직자들이 살았고 자그레브성당이 있었고 서쪽에 있는 그라데츠에는 주로 수공업자와 상인들이 살았다. 주교관할구와 나란히 교회법에 따른 정착지 캅톨은 자그레브성당 북쪽에 형성되었다. 캅톨과 그라데츠의 경계는 메드베슈차크 개울이었다. 자그레브가 실제적인 도시로 성장하게 된 것은 중세 크로아티아 왕국이 몰락하고 대신 헝가리의 지배력이 강화된 시기부터이다. 자그레브 대주교가 기록한 1134년 자료에 의하면 중부 유럽의 강력한 가톨릭 국가였던 헝가리가 자그레브를 발칸 유럽의 대표적인 가톨릭 도시로 만들고자 하였다. 당시 자그레브의 서쪽인 그라데쯔(Gradec) 지역에는 상인과 농부가 거주하게 하고, 동부의 카프톨(Kaptol) 지역에는 성직자들을 위한 숙소와 함께 대규모 성당을 세웠다. 캅톨 교구와 그라데츠 자유 도시 사이에는 경제적, 정치적 이유로 서로 많은 관련이 있었으나 자그레브가 정치적 중심이 되었을 때도 자그레브는 통합된 도시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자그레브는 1621년에 니콜라 프랑코판 아래서 크로아티아 행정구역의 수도였다. 크로아티아의회의 초청으로 제수이트회가 자그레브에 와서 최초의 문법학교와 성카타리나교회와 수도원을 세웠다. 1669년에 그들은 철학, 신학, 법률을 가르치는 아카데미를 세웠다. 이는 오늘날의 자그레브대학교의 모체였다. 17세기와 18세기에 자그레브는 화재와 역병으로 크게 파괴되었다. 1776년에 정부가 바라주딘에서 자그레브로 이전하였고 신성로마제국 황제 요제프 2세의 통치 기간에 자그레브는 바라주딘과 카를로바츠 사령부의 본부가 되었다.
현대
19세기 당시 헝가리의 지배 아래에서 영주였던 요시프 옐라치치(Josip Jelacic)가 독립을 추진하였다. 그는 1848년 파리 혁명 이후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지배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하였고, 그 결과 1851년 그라데쯔 지역과 자그레브 전체를 통합하여 새로운 도시 계획에 따라 새로운 자그레브를 건설하였다. 오늘날 자그레브시 중앙 광장의 이름은 그의 이름을 딴 반 옐라치치 광장이며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를 이어주는 곳이다. 이곳은 1990년대 크로아티아 인들이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독립을 추진할 당시 시민들이 모인 곳이다. 이탈리아와 인접한 가톨릭 도시이면서, 한편으로는 정교와 이슬람 문화와 접하고 있는 자그레브는 서유럽의 최전선이라고 할 수 있다. 자그레브와 지다니모스트, 시사크를 잇는 최초의 철도가 1862년에 개통되었다. 1863년 자그레브에 가스공장이 생겼다. 1878년 자그레브 상수도가 개통되었다. 1880년의 자그레브 지진 후에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때까지 자그레브는 발전했고 오늘날과 같은 독특한 도시 배치를 형성했다. 말이 끄는 최초의 전차가 1891년에 생겼다. 철도 노선이 건설되어 예전의 변두리가 점차 시내 도니그라드(하부도시)와 합쳐졌다. 도니그라드는 당시 중부 유럽 도시들에 유행했던 정형화된 격자 형태를 지녔다. 이 부산한 핵심 지역에 많은 웅장한 건물, 기념물과 공원이 박물관, 극장, 영화관 등과 함께 들어섰다. 발전소가 1907년에 세워졌다.
20세기 전반에 자그레브는 상당히 팽창했다. 1차대전 전에 벌써 자그레브는 확장되었고 동쪽의 스타르페슈체니차와 서쪽의 츠르노메레츠 같은 지역이 새로 생겼다. 1차대전 후에 트르네 같은 노동자 계층이 사는 지역이 철도와 사바 사이에 생겨났다. 메드베드니차산의 남쪽 사면 언덕에는 주거 지역 건설이 1, 2차 세계대전 사이에 완료되었다. 1920년대에 자그레브 인구가 70% 증가했다. 이는 자그레브 역사에서 최대의 인구 증가였다. 1926년에 최초의 라디오방송국이 자그레브에서 방송을 시작했고 1947년에는 자그레브전시관이 문을 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자그레브는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의 지지를 받는 크로아티아독립국의 수도가 되었다. 2차대전 때 자그레브의 역사는 정권의 테러, 레지스탕스의 사보타주로 가득했고 우스타샤 정권은 전쟁 중에 자그레브와 그 주변에서 수천 명을 처형했다. 우스타샤는 크로아티아의 극우 파시스트 조직이었다. 자그레브는 전쟁이 끝났을 때 빨치산이 장악하였다. 1945년부터 1990년까지 자그레브는 유고슬라비아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을 구성하는 6개의 사회주의공화국 중 하나였던 크로아티아사회주의공화국의 수도였다. 철도와 사바강 사이 지역은 2차대전 후에 새로운 건설 붐을 맞았다. 1950년대 중반 이후에 사바강 남쪽에 새로운 주거 지역 건설이 시작되어 노비자그레브가 생겨났다. 오늘날 노비자그레브는 서쪽의 노비자그레브자파드와 동쪽의 노비자그레드이스토크로 나뉜다. 자그레브는 또한 서쪽과 동쪽으로도 발전해서 두브라바, 포드수세드, 야룬, 블라토 등을 흡수했다. 화물 철도 허브와 플레스국제공항이 사바강 남쪽에 건설되었다. 자그레브 남동쪽에 있는 가장 큰 공업지구는 사바강과 프리고레 지역 사이의 자그레브 동쪽 외곽 공업지역의 확장이다. 자그레브는 1987년에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를 유치했다.
1991년부터 1995년까지 크로아티아독립전쟁 기간에 자그레브는 유고슬라비아인민군 막사 주변에 몇 차례 전투가 있으나 큰 피해는 없었다. 1995년 5월에 자그레브는 두 차례의 로켓 공격에서 세르비아 로켓포의 표적이 되어 7명의 민간인이 죽고 많은 사람이 다쳤다. 자그레브의 도시화된 지역은 자그레브를 주변의 자프레시치, 사모보르, 두고셀로, 벨리카고리차와 이어준다. 세스베테는 자그레브와 한 덩어리가 되어 이미 행정적으로는 자그레브시에 들어와 있고 동쪽 끝에 있는 구가 되었다. 2020년에 규모 5.5의 지진이 발생했다. 시내의 역사적 중심에 있는 많은 건물이 피해를 입었다. 도시의 상징인 자그레브성당은 탑 하나에 있는 십자가를 잃었다. 이 지진은 1880년 자그레브 지진 이후 자그레브에서 발생한 가장 강력한 지진이었다.[4][5]
관광
자그레브는 유럽에서 인기 관광지인 아드리아해로 가기 위해 거쳐 가는 곳으로도 중요하지만 자그레브 자체가 또한 매력적인 관광 목적지이다. 자그레브에는 매년 100만 명에 가까운 관광객이 찾고 있다. 오스트리아, 독일, 이탈리아 등에서 많이 오지만 한국, 일본, 중국, 인도 등에서 오는 관광객들이 늘어나고 있다. 자그레브에는 많은 흥미로운 볼거리가 있고 연중 내내 각종 축제와 행사가 있어 1년 내내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반옐라치치광장 북쪽의 역사적 지역은 고르니그라드와 캅톨로 이루어져 있고 교회, 왕궁, 박물관, 미술관, 관청 등이 이곳에 있다. 자그레브의 중심인 반옐라치치광장에서 역사적 지역까지는 걸어서 갈 수 있고 근처의 토미체바거리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갈 수도 있다. 4월부터 9월 말까지 매주 토요일에 성마르카광장에서 관광객들은 그라데츠와 캅톨 사이의 오랜 역사적 경쟁을 재연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자그레브의 수많은 상점, 선물가게, 쇼핑센터에서 다양한 의류를 취급한다. 자그레브에는 약 14개의 대형 쇼핑센터가 있다.
자그레브의 유명한 선물은 넥타이 또는 17세기의 30년 전쟁 때에 목에 독특한 스카프를 두른 크로아티아사람들의 이름을 딴 크라바트, 그리고 자그레브의 발명가 슬라볼류브 에두아르드 펜칼라의 발명품에서 개발된 볼펜 등이다. 많은 자그레브 식당이 크로아티아의 별미 또는 국제적 요리를 내놓는다. 크로아티아 요리로는 파스타의 일종인 믈린치, 치즈의 일종인 슈트루클리, 시르이브르흐네, 커스터드 슬라이스인 크렘슈니테, 전통적인 호두롤인 오레흐냐차 등과 칠면조, 오리, 거위 요리 등이다.
명소
자그레브의 많은 박물관은 자그레브와 크로아티아뿐 아니라 유럽과 세계의 역사, 예술, 문화를 보여준다. 자그레브에는 약 30개의 박물관과 미술관에 360만 점 이상의 전시물들이 있다.
니콜라슈비치즈린스키광장에 있는 고고학박물관은 약 45만 점의 고고학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이집트에서 수집된 유물과 자그레브 미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에트루리아 명문, 그리고 화폐 수집물 등이다.
현대미술관은 헤브랑가거리에 있고 19세기와 20세기의 가장 중요하고 종합적인 회화와 조각물과 데생을 소장하고 있다. 1934년부터 자그레브 중심의 역사적인 브라니차니궁전에서 즈리네바츠공원을 굽어보며 서 있는 이 미술관은 만 점 이상의 작품을 가지고 있다.
데메트로바거리에 있는 크로아티아자연사박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네안데르탈 유물을 소장한 박물관 중 하나이다. 이곳에는 크라피나인의 돌 무기와 돌 도구 유물이 있다. 이 박물관은 25만 점 이상의 동식물 표본을 보유하고 있다.
사브스카박물관에 있는 기술박물관은 1954년에 설립되었고 1830년의 것으로 보이는, 이 지역의 가장 오래된 기계를 전시한다. 이 기계는 지금도 작동된다. 이 박물관은 역사적인 항공기, 자동차, 기계, 장비 등을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에는 플라네타륨, 광산 등 별도의 전시관이 있다.
오파티치카거리에는 자그레브시박물관이 있다. 1907년에 설립된 이 박물관은 브라차흐르바츠코그즈마야협회에 의해 세워졌다. 이 박물관은 로마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자그레브시의 문화적, 예술적, 경제적, 정치적 역사와 관련된 주제를 다룬다. 소장품은 8만 점이 넘고 체계적으로 분류되어 있다.
크로아티아공화국거리에 있는 예술과장인박물관은 1880년 새로운 공업 생산물이 지배하는 시기에 옛날 장인들의 작품을 보존하고자 세워졌다. 16만 점이 넘는 유물을 소장한 이 박물관은 크로아티아의 국가 수준 박물관이다.
두브로브니크거리에 있는 자그레브현대미술관은 1954년에 세워졌다. 이 현대식 건물에는 크로아티아와 해외의 1950년대부터의 현대미술 작품이 풍부하게 수집되어 있다. 이 미술관은 2009년에 문을 열었다. 자그레브에는 이밖에 크로아티아학교박물관, 크로아티아사냥박물관, 크로아티아스포츠박물관, 크로아티아우편통신박물관 등 귀중한 박물관들이 있다.
미술관으로 즈린스키광장에 있는 스트로스마이어옛명장미술관은 14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유럽 그림을 전시하고 있다. 믈레타치카거리에 있는 이반메슈토르비치스튜디오는 이반 메슈트로비치가 고향에 기증한 것으로 조각, 데생, 석판 인쇄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다. 제수이트광장에 있는 박물관미술관센터는 크로아티아와 외국의 문화, 미술 전통을 여러 기회를 통해 소개한다.[6]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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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 〈자그레브〉, 《위키백과》
- 〈자그레브〉, 《나무위키》
- 〈자그레브〉, 《요다위키》
- "Zagreb", Zagreb
- 〈자그레브(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자그레브(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