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크로나
아이슬란드 크로나(íslensk króna)는 아이슬란드의 크라운(Crown)계열 화폐이다. 별칭은 "카들(Kall)", 복수형은 크로누르(Kronur)이다. 북유럽 언어권이 비슷비슷한 까닭에 단위명을 크로네, 크로너, 코로나, 코루나, 크론(크룬) 등으로 틀리게 발음해도 딱히 못 알아듣는 것은 아니니 편한 것으로 칭해도 상관은 없다.
금융강국으로 성장해온 탓에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직격으로 맞이하여 가치가 크게 떨어진 이력이 있었으나, 평소에는 가치가 매우 안정되어있는 통화이다.
참고로 중앙은행CI의 그림은 국장에도 들어가는 수호령인 란트뱃티르(Landvættir) 중에서 넷을 간략화한 모습으로 넣은 것인데, 각각 동북의 용 드레키(Dreki), 서북의 독수리 가무르(Gammur), 서남의 황소 그리둥구르(Griðungur), 동남의 거인 베르그리시(Bergrisi)이다.
개요
아이슬란드의 통화로 ISO 4217 코드는 ISK이며 기호는 KR, 별칭 "카들(Kall)"이다. 복수형은 크로뉘르(Kronur). 보조단위로 에이리르(Eyrir, 복수형 Aurar)가 있었으나 2003년부터 쓰이지 않게 되었다.
인플레는 2012년 기준으로 6.3%. 역사적으론 별다른 통화라는 개념이 없었던 아이슬란드에 1874년경 결성된 동맹통화의 일종이었던 덴마크 크로네가 처음 유입되었는데, 이를 보고 1885년에 처음으로 자국통화를 발행한 것이 시초다. 덧, 실질적으로 덴마크로부터 독립한 것은 1944년.
아이슬란드 중앙은행 홈페이지 환율 기록창에서 볼때 아시아 외환위기, 미국 닷컴 버블에서도 무풍지대이었는지 환율 흐름이 안정적이었다.
환전 및 사용
아이슬란드 크로나를 한국에서 현찰로 바로 쥐어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나마 처분하는 경우 한정으로 KEB하나은행이 비고시 추심을 통해 수수료 10% 떼고 3주나 걸려서 환전 해주지만, 애초에 KEB까지 가서 비고시 추심을 해야한다는 것은 국내 은행에서 크로나를 취급하는 곳이 없음을 방증한다. 그런 삽질을 할 바에야 그냥 적당히 카드를 챙겨가는 게 나은데, 아이슬랜드는 유럽(?)에서 스웨덴, 덴마크와 더불어 카드 사용이 굉장히 활발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크로나화를 환전하려면 미국 달러 및 캐나다 달러나 유로를 매개체로 한 이중환전이 필수고, 그나마도 환율을 잘 쳐주는 것이 아니니 (수수료 또한 별도로 뗀다.) 금액에 따라서는 ATM 인출이 더 이득일 수 있다. 따라서 아이슬란드 여행시 가장 먼저 챙겨야 할 것은 국제결제가 가능한 체크/신용카드이다. 그렇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소액을 현금으로 환전하는 것도 좋다.
결제 최소단위는 1크로나. 환율상 일본 엔화와 거의 비슷하기에 일본에 많이 가본 사람이라면 쉽게 익숙해질 수 있다. 다만 물가면에서는 아이슬란드가 더 높고, 사용처는 일본이 훨씬 더 많기 때문에 사용하는 사람의 소비습관에 따라 그 감각이 미묘하게 다르다. 어떤 사람은 금방 지갑이 비어버린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조금만 바꿨는데도 줄어들질 않아서 미묘했다고 하니.
역사
아이슬란드 크로나는 1778년 덴마크 쿠란트 은행(Kurantbank)의 해외지사를 통해 처음 도입되었다. 아이슬란드는 1387년부터 덴마크령이 되어 사실상 불간섭 정책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18세기 들어서 점차 깊어지게 되는 내정간섭의 도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던 1813년에 되려 덴마크 크로나 측에서 문제가 생겨 한 차례 갈아엎어졌고, 그 영향으로 아이슬란드 크로나의 담당이 1815년부로 덴마크 국립은행(Rikisbank)으로 변경되었다.
19세기 초중엽에 자주권을 되찾으려는 아이슬란드 민족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덴마크-노르웨이 연합국왕인 크리스티안 8세는 1874년에 자치권을 돌려주게 된다. 때마침 1874년 그 해에 동맹통화의 일종이었던 덴마크 크로네가 아이슬랜드도 포함되어서 처음 유입되었는데, 그 후, 1885년에 아이슬란드 국회의 결정으로 아이슬란드 중앙은행이 설립되어 1886년부터 자체통화의 발행을 시작한 것이 사실상의 시초이다. (단, 아이슬란드가 정식으로 덴마크에서 독립한 것은 1944년이다.)
1981년 이전(ISJ)
처음에는 국유은행인 란드스방키(Landsbanki)에서 발행을 담당했으나 이후에는 중앙은행이 발행을 맡게 되었으며, 도중에 5크로나권이 삭제되고 500, 5000크로나권이 추가되었다.
화폐 앞면 뒷면 5KR 잉골뷔르 아르드나르손 베사스타디르 10KR 욘 에이릭손 레이캬비크 항구 25KR 마그누스 스테펜센 베스트만나에이야르 100KR 트리그비 군나르손 헬카 산의 양떼들 500KR 한네스 하프스테인 어로작업 1,000KR 욘 시귀르드손과 국회건물 싱그베들리르 5,000KR 에이날 베네딕손 데티포스
현행권(ISK)
1961년이라 쓰인 것도 있지만, 실제로는 1981년부터 도입된 시리즈. 사실은 꾸준히 오르는 인플레로 액면이 점점 커져서 그걸 떨구기 위해 내놓은 것이다. 구권과의 교환비는 1(ISK):100(ISJ).
처음 등장시에는 10, 50, 100, 500의 4종이었고, 1984년에 1,000크로나가 등장했다. 2년 후인 1986년에 5,000크로나의 등장과 동시에 10, 50크로나가 동전으로 교체되면서 삭제되었다.[6] 중간다리격인 2,000크로나는 1995년에 등장, 연이어 2001년에 100크로나가 삭제되고 10,000크로나가 2013년에 새로 추가.
화폐 앞면 뒷면 10KR 아르든그리무르 욘손 아이슬란드 전통풍 가족풍경 50KR 구드브란뒤르 토를락손 16세기풍 목판인쇄 100KR 아르니 마그누손 필경사 수도승 500KR 욘 시귀르드손 욘의 집필작업 모습 1,000KR 브리뇰푸르 스베인손 브리뇰푸스키르캬 교회 2,000KR 요하네스 스베인손 샤르발 그의 그림 중 "비행의 동경"과 "꽃과 여자" 5,000KR 라근헤이뒤르 욘스도티르 라근헤이뒤르가 자수를 가르치는 모습 10,000KR 요나스 할그림손 물떼새, 스캴드브레이뒤르 산
- 1만크로나권은 구권 카자흐스탄 10,000텡게권처럼 은선 중앙이 얇은 비닐로 코팅되어 있는데, 이 부분이 뚫리기 쉽기도 하고 은선 자체도 잘 벗겨지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 워터마크는 권종 상관없이 전부 500크로나의 인물인 욘 시귀르드손이다.
동전
현재 1, 5, 10, 50, 100크로나의 5종류가 있다.
- 1KR - 대서양대구
- 5KR - 짧은부리참돌고래
- 10KR - 열빙어
- 50KR - 금게
- 100KR - 대서양도치
위와 같이 모든 도안들이 생선이나 게는 물론이고, 과거 에이리르 단위엔 홍어, 오징어, 새우(!)도 등장한 바가 있는 해산물 도안들로만 이루어진 것이 특징이다.
부흥기와 쇠퇴기
본래 청어수출로 근근이 먹고 살던 아이슬란드가 금융업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황금기를 맞아들이게 되었다. 근데 근근이 먹고 살았다 해도 말이 근근이 먹고 살았다 정도이지, 실제로는 2000년대 이전에도 1인당 GDP가 상위권이었고 복지국가 체계도 잘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잘 먹고 잘 살았던 편이었다. 단지 1인당 GDP가 유난히 높다거나 하지 않았고 사는 것도 영 심심했을 뿐. 2001년 시장변동환율제를 채택하고, 국유은행을 민영화시킨 다음 각종 세율을 낮추고, 목표 인플레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경우에 금리를 높여서 메꾸는 방식으로 외국인 투자자를 끌어들였다. 외화가 마구 밀려 들어오자 순식간에 아이슬란드는 금융업의 허브가 되었다. 다른 개도국과는 사정이 다른 게, 깨끗한 이미지와 개발되지 않은 토지 위의 서북부 유럽 선진국 주민이라는 강력한 국가 이미지를 무기로 삼다 보니 그 누구라도 혹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인구는 적은데 밀려 들어오는 투자액은 엄청나다 보니 거기서 낳은 황금알의 가치는 상상 그 이상. 특히 통화량이 한국의 1/100도 안되는 상황에 그렇게 밀려 들어오니 크로나가 강세화 되지 않는 게 도리어 신기했을 정도였다.
2006년경에 한 번 국내수준으로 삐그덕거린 적이 있었으나 무사히 극복해냈고, 그렇게 아이슬란드는 2007년에 GDP 4위를 찍으며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선정되는 영광까지 누렸다. 실제로 당시 사람들은 100크로나(당시 환율로 1500원 정도)만 넘으면 바로 카드를 긁었을 정도로 소비가 흥했고, 집이나 자동차 등을 구매할 때나 회사 하나를 차릴 때도 외화대출을 꺼리질 않았다고. 사실 여기엔 막말로 심심하면 금리를 높였던 크로나화보다 외화대출이 이자가 더 낮았다는 점에서 기인했지만.
여기까지는 대부분의 신흥국이라면 한 번씩 거치는 의례이기도 하다. 당장 한국이 걸어온 길만 보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정말 재수 없게도 너무나 일찍이 대침체가 터져버렸다. 지나치게 외국 자본에 의존해온 아이슬란드는 이 사태의 후폭풍으로 돈의 흐름이 막혀버리자마자 자국민에게 빌려준 자금을 회수할 문제부터 걱정해야만 했다. 비유하자면 작년에 낱알 빌려다가 수확한 쌀은 이미 거의 다 먹었는데, 하필이면 폭풍이 와서 올해 농사를 완전히 망쳐버린 꼴. 당장 먹을 쌀은 물론이고, 다음 해 농사 지을 낱알조차 거의 없어진 최악의 상황이 되어버렸다.
정부는 먼저 민영화시킨 은행을 도로 국가에 귀속시킨 다음, 자국통화의 금리를 크게 내려버렸다. 그런데 이게 정말 단순한 것이 아닌 게, 금리 보고 투자한 외국인들이 가만히 손가락이나 빨고만 있었을 리 없다. 외국인들은 아이슬란드에서 바로 손을 뗐고, 이로 인해 외화보유액이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반동으로 환율이 끊임없이 올랐다. 그렇게 환율이 오르면 외환대출을 일상화 삼던 국민들과 기업들이 눈덩이 같은 부채를 떠안아야만 한다. 그런데 내수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기도 전에 그런 폭탄이 떨어졌으니...
2007년, 60~70크로나/USD에서 시작한 환율이 위기 직후 160크로나/USD까지 2배 이상으로 급등, 언제는 순간환율이 200을 넘어 225크로나/USD까지 찍기도 했다. 한국으로 치면 달러환율이 무려 3천원 돌파라는 쾌거를 달성한 셈이다. 2012년 가준 120~130크로나/USD 가량이다. 후폭풍으로 인플레=물가도 크게 오른 것쯤은 서비스. 2007년 2.25%대를 유지하다가 2008년 4월부터 조짐이 보이더니 2008년 10월에 바로 18~19%를 찍으면서 종결됐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정부는 결국 당해 11월 20일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고, 2011년 초가 되어야 겨우 2%대를 잠깐 회복했으나, 곧바로 6%대로 돌아서는 등, 이미 막장의 도가니탕이 되어버렸다. 앞으로 2015년까지는 다시 2%대로 줄여 보겠다고 발표하기는 했다.
사실 아이슬란드의 물가는 다른 북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굉장히 비싼 것으로 악명이 자자했는데, 환율이 급락한 덕에 진입 장벽이 그나마 많이 낮아졌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점이 되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내수 시장 물가가 크게 올랐으니 그거나 그거나... 차이점이 있다면, 과거엔 서비스 비용이 비쌌지만 지금은 물건값이 비싸다는 정도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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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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