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오그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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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오그라드(세르비아어: Београд / Beograd, 영어: Belgrade)는 남유럽 세르비아의 수도이자, 발칸반도의 주요 도시 중 하나이다. 1918년부터 2002년까지는 유고슬라비아의 수도였으며, 그 후 2005년까지는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연방의 수도였다. 베오그라드는 세르비아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다뉴브강에서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면적은 359.9km², 인구는 약 120만 명이다. 베오그라드는 세르비아어로 ‘하얀 도시’라는 뜻이다.[1]
개요
베오그라드는 발칸반도의 남동부, 다뉴브강, 사바강이 합류하는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보이보디나 자치주와도 접경해 있다. 시의 3면을 둘러싼 강은 예로부터 적들의 침입으로부터 도시를 지키는 천연 요새의 역할을 했다. 이러한 지리적 특징 때문에 베오그라드는 ‘발칸반도의 문‘이자 ’중부 유럽의 문‘으로도 알려져 있다. 베오그라드는 19세기 초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기간까지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나며 거의 20년마다 파괴와 도시 재건이 거듭되어왔다. 1878년 세르비아가 베를린 조약 결과에 따라 독립을 쟁취했을 때 비로소 수도로 확정되었다. 이후 역사의 우여곡절 속에서 제1차 세계 대전 때는 동맹군에, 제2차 세계 대전 때는 나치에 점령되기도 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평화가 유지되고 거리에는 고층건물과 상점이 늘어서는 등 개방적이며 자유로운 분위기의 거리가 건설되었다. 전략적 위치에 있는 이 도시는 115번의 전쟁에서 싸웠고 44번이나 파괴되었고, 5번이나 폭격을 당했고 여러 번 포위당했다. 고대, 중세의 유적은 대다수 파괴되어 별로 남아 있지 않지만 로마풍(風)의 우물이 있는 칼레메그단 요새, 네포이샤성, 다마두파샤의 묘(墓) 등을 찾아볼 수 있다. 베오그라드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칼레메그단 공원에는 2000년의 역사를 지닌 칼레메그단 요새가 있다. 공원 안에는 동로마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 시절인 535년경 지어진 요새 등 로마시대의 요새 흔적과 함께 진단문(Gate Zindan), 산책로, 동물원, 무기박물관, 승리자의 탑, 투쟁의 분수, 모스크,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프랑스에 대한 감사기념비, 예술가들의 흉상 등이 있다. 19세기 말 미하일로 오브레노비치 왕자는 이 요새를 공원으로 개조하여 일반인들에게 개방하였으며, 현재까지 베오그라드 시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대표적인 휴식처 중 하나이다. [2]
지리
베오그라드의 해발은 약 116.75m이며 다뉴브강과 사바강의 합류점에 위치한다. 지리 좌표계 상 좌표는 북위 44°49'14", 동경 20°27'44"이다. 베오그라드의 역사적 중심 지역은, 현재 칼레메그단이라는 불리는 지역이다. 이 지역은 강의 동쪽 강 기슭이다. 19세기 이래로 베오그라드는 남쪽과 동쪽으로 확장을 해왔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교외 지역이었던 제문과 합쳐짐과 동시에, 노비베오그라드라는 지역이 사바강 서쪽 강기슭에 건설되었다. 소규모의 다뉴브강 양 기슭에 걸쳐 주거 지역들인 크르냐차, 오브차 등도 베오그라드에 병합되었다. 베오그라드에는 약 360km² 면적의 도시 지역이 있다. 메트로폴리탄 지역으로 따지면 3223km²의 면적이 된다.[3]
역사
기원전 279년에 켈트족이 이 도시를 세웠다. 이후 로마 제국이 라틴어로 신기두눔(Singidunum)이라고 부르며 도나우 강 방어선의 거점 군사 기지들 중 하나로 이용했다. 수백 년 동안 로마 제국 아래 있다가 441년 아틸라가 이끄는 훈족에게 함락당했고, 그 뒤 여러 게르만 세력과 슬라브 이주민 세력이 발칸 반도로 침입하는 통로 중 하나가 되었다. 훈족, 사르마티아인, 아바르족들이 한동안 이 도시를 놓고 쟁탈전을 벌였다.
520년에는 남슬라브족이 베오그라드에 정착했고 630년에는 세르비아인이 이 도시로 이주했다. 878년 베오그라드는 "벨리그라드"(Beligrad, 하얀 성을 의미함)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중세 시대에는 400년 동안 비잔티움 제국, 프랑크 왕국, 불가리아, 헝가리의 지배를 받았으며 나중에 중세 세르비아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1204년 4차 십자군의 공격으로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자 세르비아인 세력이 이 지역에 자리잡았고, 헝가리 왕국의 봉신으로 시작해 독립 세력을 구축한 세르비아 군주 스테판 드라구틴(1244 - 1316)이 베오그라드를 수도로 삼았다. 1371년에 일어난 마리차 전투, 1389년에 일어난 코소보 전투에서 오스만 제국이 세르비아를 연달아 격파하면서 세르비아 남부로 세력을 확장했다. 세르비아는 오스만 제국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베오그라드 인근에 요새를 건립했다. 14세기 후반 세르비아 남부가 대부분 오스만국의 공격에 함락되어 베오그라드를 중심으로 한 북부 지역이 마지막 저항의 중심지가 되었고, 1427년에는 결국 헝가리 왕국에 자진 합병되었다. 헝가리 치하에서는 헝가리어로 '불가르인의 하얀 성채'라는 뜻인 난도르페헤르바르(Nándorfehérvár)라고 불렸으며 계속해서 오스만의 폭발적인 확장을 저지하는 가장 중요한 요새가 되었다. 그에 따라 오스만 제국의 파디샤 메흐메트 2세가 공략을 시도했지만 헝가리의 명장 후녀디 야노시에게 완패해 음독 자살까지 시도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1440년, 1456년에는 오스만 제국이 베오그라드를 포위하면서 공격했지만 세르비아-헝가리 연합군에게 패배하고 만다.
1521년에는 오스만 제국에 정복되면서 스메데레보(Smederevo) 산자크의 행정 중심지가 되었다. 오스만 제국과 합스부르크 군주국이 세르비아의 지배권을 놓고 전쟁을 벌이면서 베오그라드의 거의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베오그라드는 전략적 거점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역사상 115차례의 전투와 44차례의 파괴가 벌어졌다. 1841년 베오그라드는 세르비아의 수도가 되었지만 베오그라드 북부는 한동안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았다.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의 종전과 함께 베오그라드는 통일된 도시가 되었다.
1941년 3월에는 나치 독일, 이탈리아 왕국 등 추축국 진영이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폭격이 전개되었다. 1944년 10월에는 소련의 지원을 받은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이 베오그라드 공세를 통해 독일 국방군을 축출했다. 1945년 이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의 수도로 결정되어 또 다른 '비동맹주의'의 거점으로 주목을 받았다. 코소보 전쟁이 진행 중이던 1999년에는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의 공습을 받았다.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이끈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 축출된 뒤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 수도가 되었으나, 2006년 몬테네그로가 분리 독립하면서 결국 세르비아 공화국만의 수도가 되었다.[4]
교통
베오그라드는 인구 100만을 넘어가는 대도시이기는 하지만, 이웃 나라인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와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와는 다르게 지하철은 없고 노면전차가 지하철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지하철은 1923년에 처음 주장이 나왔으며,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시절인 1970년대부터 건설 계획이 있었지만 자금 문제로 계속 미뤄지기만 해서, 고도를 기다리며(Čekajući Godoa)를 패러디한 지하철을 기다리며(čekajući metroa)로 불리는 등 완전히 떡밥 취급당하다가 드디어 2021년 12월에 착공했다! 기사 2개 노선 43개 역으로 2025년 개통 예정이었다가 2026년으로 연기되더니 2028년 8월로 또 연기되었다.
관광
베오그라드 도시의 역사가 짧지 않지만, 프라하나 부다페스트만큼 볼거리가 많지는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위에 나온 것처럼 잦은 전쟁으로 인해 도시가 파괴된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베오그라드 자체가 편의 시설이 그렇게 잘 되어 있지 않고 관광 안내도 부실한 편이다.
그래도 곳곳에 오래된 정교회 성당들이 파괴되지 않고 남아 있고 특히 중심가인 크네즈 미하일로바(Улица Кнез Михаилова) 거리와 스카다를리야 거리(Скадарлија)에는 유럽식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잘 남아 있다. 특히 도나우 강 과 사바 강이 만나는 지점에 자리잡은 칼레메그단(Kalemegdan) 요새는 자그마치 3세기 로마 제국 시절부터 존재해 왔으며 중세 세르비아 왕국과 오스만 제국 시절을 거쳐 지금까지도 여러 양식들이 혼합된 형태로 남아 있다. 요새 내부에는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1차대전, 2차 대전을 거쳐 구 유고슬라비아 전쟁에서 쓰이던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세르비아가 낳은 천재적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가 살아생전에 발명한 테슬라 코일 등 발명품들을 전시한 니콜라 테슬라 박물관도 동유럽 여행을 갈 시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가봐야 될 명소 중 하나이다. 베오그라드는 도시에 위치한 국제공항 이름이 베오그라드 니콜라 테슬라 국제공항일 정도로 테슬라의 도시라고 홍보한다. 요시프 브로즈 티토의 묘소과 기념관도 이곳에 있다. 세르비아 국내에선 티토가 크로아티아계란 이유로 그의 묘소를 철거하고 유해를 크로아티아로 보내자는 여론도 조금 있지만, 세르비아 정부에선 티토가 유고슬라비아 연방 건국의 아버지라는 역사적 근거를 대며 함부로 묘소에 손댈 수 없다는 입장을 지키고 있다.[5]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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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 〈베오그라드〉, 《위키백과》
- 〈베오그라드〉, 《나무위키》
- 〈베오그라드(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베오그라드〉, 《요다위키》
- "Belgrade", Wikipedia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