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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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시(北京市, běi jīng shì)또는 북경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도이며 상하이시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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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베이징시의 면적은 16,411km²이며 2020년 말 기준으로 약 2,143만 명의 인구를 갖는 대도시다. 정식 명칭은 베이징 직할시(北京直轄市)이며, 약칭하여 '징(京)'이라고도 부른다. 중국 북방의 허베이성의 중앙부에 위치한다. 화베이평원의 북부 지역으로, 동쪽으로는 톈진시과 맞닿아있고, 동남쪽으로 보하이해와 약 150km 거리에 있다.
북경은 16개의 구(區) 동성구(东城区)、서성구(西城区)、조양구(朝阳区)、풍대구(丰台区) 석경산구(石景山区)、해정구(海淀区)、순의구(顺义区)、통주구(通州区)、대흥구(大兴区)、방산구(房山区)、문두구구(门头沟区)、창평구(昌平区)、평곡구(平谷区)、밀운구(密云区)、회유구(怀柔区)、연경구(延庆区)를 관할한다. 그중 북경 이환로(北京 二環路)내의 동성(東城), 서성(西城)이 2개의 구역은 전통적으로 내성구이다. 계획 중인 북경시 구역의 범위는 북경 오환로 내외이다. 근래에는 진행이 빠르게 발전하여 도시화가 진행된다. 또한 몇몇 근교의 현이 구로 바뀌고 있다. 때문에 베이징시는 정치, 문화 중심의 정립, 공업 중심 도시로 점차 변하고 있다.
중국의 수도라는 점에서 중국 정치 권력의 핵심 지역이며, 경제 권력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상하이와 더불어 중국을 대표하고 움직이는 도시다. 서울특별시에서 베이징까지의 거리는 직선거리로 약 950km, 남북통일 후 육로 이동이 가능하게 되면 1,300km 정도가 된다.
'베이징'의 한자 표기 '北京'을 한국 한자음으로 읽으면 '북경'이 된다. 그래서 한국식 한자 독음인 북경도 자주 쓰이고 원어 발음인 베이징도 자주 사용한다. 특히 한국인 사이에서의 회화, 베이징대학이나 베이징외국어대학 같은 대학 이름은 베이징 대신 공식적으로 북경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대한민국 정부의 공문서는 북경이라고 많이 표기하고, 사설 기사 등에서는 베이징이라고 표기하는 추세이다.
만주족이 정복한 이후 많은 건출물이 생겨났으며 베이징에는 지금도 자금성, 후통, 천안문, 만리장성 등 많은 유적과 유물들이 남아있다.[2][3]
자연환경[편집]
베이징시의 남쪽과 동쪽으로 열려있는 허베이 평원의 북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북쪽~서쪽의 산맥들은 도시를 둘러싸고 있고, 이 산들은 중국 북부의 농업 핵심 지역이 주변이 사막으로 변하는 것을 막아준다. 이 도시의 북서쪽, 특히 옌칭 현(延慶縣), 그리고 화이로우 구(懷柔區)는 쥔두 산(軍都山)이 들어서 있고, 반면에 서부지역은 서산(西山)이 그 골격을 이루고 있다. 베이징의 북부 지방을 가로질러 뻗어있는 만리장성은 대초원의 유목민들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이 거친 지형을 이용하였다. 서산 지역의 허베이(河北省)경계 지역에 있는 동링 산은 그 지역의 가장 높은 산이고, 해발 2303m이다.
이 지역을 흐르는 주요 강은 하이허강(海河)줄기의 일부인 융딩강(永定河), 차오바이 (潮白河)이고 남쪽으로 흐른다. 베이징은 또한 화북평원에서 항저우를 이어 지어진 대운하의 북쪽 끝에 있다. 미윈(密雲) 댐은 차오바이강의 상류에 지어졌고, 베이징의 가장 큰 댐이며 물 공급의 핵심이다.
베이징의 도심 지역은 도시의 중남부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도시에서 작은 부분이지만, 도시 확장이 시작되는 부분이다. 도심 지역은 몇몇 위성 도시를 통하는 가장 먼 육환(六環)의 벨트로 뻗어있다. 티엔안먼과 그 광장은 베이징의 중심부에 있고, 중국 황제의 이전 거주지 였던 자금성의 남쪽에 위치한다. 티엔안먼 서쪽으로 중난하이(中南海)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수장들의 거주지이다. 베이징의 동에서 서쪽으로 가로질러가면 창안지에(長安街)가 있고, 베이징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이다.
베이징은 냉대 동계 소우 기후(쾨펜의 기후 구분 Dwa)에 속하며, 여름은 고온 습윤, 겨울은 한랭 건조한 특징을 갖는다. 가장 추운 1월의 평균 최저 기온은 -8.4 °C, 평균 최고 기온은 1.8 °C이며, 동절기에는 강수량이 매우 적어 눈도 많이 내리지 않는다. 가장 더운 7월의 평균 최저 기온은 22.0 °C, 평균 최고 기온은 30.9 °C이며, 강수량이 많다. 베이징의 여름은 전반적으로 무더우며, 종종 35 °C를 넘는 고온 현상도 나타난다.
최근 몇 년 동안 베이징 및 허베이 지방의 겨울과 봄에는 심각한 황사, 스모그 현상이 일어나 베이징 일대에 손해를 입혔다. 2008년 하계 올림픽에 알맞은,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국가는 네이멍구자치구의 초원 지대, 황토고원, 허베이 지방 등 지역 환경 관리에 관계되는 지역에 큰 힘을 기울였고, 이후에도 황사 현상에 대한 좋은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역사[편집]
기원전 1000년경 춘추전국시대의 나라 중 하나인 연(燕)의 수도인 계(薊)가 오늘날 베이징(北京)이 있는 곳에 건립되었다. 4세기에 고구려는 현 베이징과 텐진 일대(유주 지역)을 함락시켜 정복하고 영토로 삼았었다. 소수림왕 때부터 고구려는 선비족이 정복한 중국 연나라를 징벌하려고 하였고 광개토대왕 때 유주 지역을 징벌하여 유주자사 진 묘지에는 고구려에 의해 유주자사로 임명된 진이 해당 중국 지역에서 오는 조공을 관리한 것이 묵서명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유주자사에 임명된 것이 이미 널리 알려져 있어 그 공적을 묵서명으로 남기기 위해 적혀졌다. 이후936년 현재 베이징을 포함한 북부의 넓은 영토를 거란의 요(遼)에게 대부분 정복되었다. 938년에 요는 지금의 베이징을 정복하여 한족들을 유린한 다음 두 번째 수도를 건립했고 그것을 남쪽의 수도라는 뜻인 남경(南京)으로 불렀다. 1125년 여진의 금(金)왕조는 요를 합병하고 1153년 동북의 회령에서 이곳으로 천도하여 중앙수도라는 뜻의 중도(中都)라고 개칭했다.
1215년에 몽골이 1267년에 북쪽에서 상도(上都)를 건설했다. 중국의 전 지역을 정복하기 위한 준비로 원(元)왕조의 시조 쿠빌라이 칸은 베이징보다 북쪽에 칸발리크 (汗八里, Khanbaliq)(위대한 칸의 거주지라는 뜻) 혹은 대도(大都)를 건설하여 수도를 삼았고 이 위치는 마르코 폴로의 이야기 속에 'Cambuluc'로써 잘 나타나 있다.
1368년 원의 멸망 후 도시는 명(明)조에 의해 다시 재건되었고 순천(順天)지사 관저가 도시의 주위 지역에서 설립되었다. 1403년 이 곳이 수도인 난징(南京)보다 북쪽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베이징(北京)으로 개명한 뒤 남경에서 북경으로 천도를 단행하였다. 북경은 또한 경사(京師)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이는 단순히 수도라는 뜻이다. 명나라 시기 동안 전통적인 베이징의 구획이 확립되었다. 자금성과 천단 등의 건축물이 1406년에서 1420년대 사이에 건설되었다. (현재의 천안문(중국어 정체자: 天安門)은 1651년에 마지막으로 재건된 것이다.) 1644년, 만주족의 청나라가 베이징을 점령한 뒤 베이징을 유린하였고 베이징은 청의 통치 기간 동안 중국의 수도로 남게 되었다.
1911년, 신해혁명을 일으킨 혁명 정부는 베이징은 만주족의 수도라는 주장으로 난징을 수도로 정하고자 하였다. 의 치열한 대화 끝에 베이징은 난징과 같이 수도로서의 역할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1916년 중국은 지방 군벌들의 내전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으며, 각자 베이징을 차지하기 위해 싸움을 벌였다. 1928년, 국민당 정부는 북부의 군벌을 소탕하고, 난징을 공식적인 중화민국의 수도로 정한 뒤, 베이징을 북부의 평화 또는 북부의 평화를 회복시켰다는 뜻의 베이핑(北平)으로 개칭하여 베이징의 상징적인 의미를 떨어뜨렸다. 이후 일본제국이 베이징을 정복하였다.
제2차 중일전쟁 당시인 1937년 7월 29일, 베이징(베이핑)이 일본 제국에게 정복된 기간 동안 도시는 그 이전의 이름인 베이징으로 개명되었고, 일본 제국에 의해 많은 한족들이 강간되었다. 이 곳에 일본에게 점령된 화북의 일부 한인들이 설립한 괴뢰정부인 중화민국임시정부(中華民國臨時政府)가 들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미국에 패전하게 되고, 한편으로 소련이 만주 지역을 점령하는 등과 같은 영향에 따라 베이징의 이름은 다시 베이핑으로 바뀌었다.
1949년 1월 31일, 공산당 세력은 베이핑으로 무혈입성 하였고, 같은 해 10월 1일, 베이징에서의 중화인민공화국 설립을 발표하였다.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중국어 정체자: 中國人民政治協商會議)에서 베이핑은 공산 정권의 수도로 확정되었고, 이름도 다시 베이징으로 개명되었다.)
인민공화국 설립 당시에 베이징 시당국은 단지 도시지역과 바로 인접한 교외로 이루어져 있었고, 도시지역은 얼환루(二環路) 안에서 많은 작은 구역으로 나뉘었다. 그 뒤 주변의 일부 현(중국어 정체자: 縣, 병음: xiàn 셴[*])이 이 곳으로 편입되면서 베이징의 경계는 오늘날의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베이징 성곽은 1965년~1969년에 얼환루의 건설을 위해 허물어졌다.
덩샤오핑의 경제개혁 후에 베이징과 난징과 뤄양과 청두와 시안과 충칭 등의 대도시지역은 매우 넓어졌다. 특히 베이징의 경우 이전에 얼환루(二環路)와 싼환루(三環路)에 한정되어 있던 베이징의 도시지역은 이전에는 경작지였던 많은 지역들이 개발되어 거주지나 상업적인 곳으로 발전하면서 최근 건설된 우환루(五環路)와 류환루(六環路)까지 그 영역을 넓혔다.
새로운 상업 지역이 국무(國貿)지역에서 발전하면서 왕푸징과 시단(중국어 정체자: 西單)은 번성한 쇼핑지역으로 발전했고 중관춘(중국어 정체자: 中關村)은 중국의 중요한 전자중심가가 되었다.
2005년 초, 중국 정부는 베이징의 무질서한 발전을 멈추는 계획을 승인했다. 베이징은 중국의 국가적 자존심을 높여줄 행사로 2008년 하계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개최하였으며, 2022년 동계 올림픽·패럴림픽도 베이징에서 열렸다.
경제[편집]
베이징은 중국의 중요한 금융, 상업의 중심지이며, 상업은행은 국내에 있는 중국 주요 상업은행인 국가개발은행, 중국농업발전은행 등의 정책성 은행과 중국인수, 태강인수 등 전국성 보험 회사 총본부는 모두 이 곳에 설치되어 있고, 국가금융굉관조공제부문(國家金融宏觀調控制部門), 중국인민은행, 은감회(銀監會), 증감회(證監會), 보감회(保監會)도 북경에서 운영되고 있다. 베이징에는 대부분의 대형 국영 기업의 총본부가 한데 모여 있는데, 거기에는 중국석화, 중국석유, 국가전력, 중국전신, 중국이동 등 세계 500대 강 기업이 포함된다. 뒤이어 중국 경제의 빠른 발전으로, 중국도 대량의 경외과국회사(境外跨國公司)를 흡인하여 북경에 지역 총본부를 세웠다.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은 베이징의 경제 건설에 아직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문제는 인구의 과도한 팽창인데, 1인 평균 노동 생산률의 성장이 다른 주요 도시와 견주어 보았을 때 성장 속도가 비교적 낮고, GDP 성장 속도는 올림픽 경제의 적극적인 촉진 때문에 현저히 높은 성장을 보이지 못했다. 베이징은 국무원 비준의 도시 건설 규제에 의거하여 대량의 에너지 소모를 전출하고, 불경제의 생산 부문은 첨단 하이테크 산업과 서비스업에 중점을 두었다. 제2 산업은 엄중히 약화시켜 일찍이 북경 경제를 2000년 내외에 국제 IT 산업 파동의 강한 영향을 불러일으켰고, 연속 4분기 경제 성장률이 각각 전국 1위와, 1위에 상당수를 차지해 중앙 정부와 북경 지역 정부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뒤이어 베이징 현대자동차를 포함하는 국내 고부가 가치 제조업에 착수했다. 이에 따라 일정하게 베이징 경제 구조의 불합리한 현상을 바로잡고 있다.
교통[편집]
베이징은 주요 간선 철도의 기점이 되어, 철도에 의해 모든 성·자치구의 중심지와 연결되어 있다. 특히 고속철도의 개통과 더불어 모든 성·자치구의 중심지와 8시간 이내 연결되면서 일일 생활권이 만들어졌다. 한편 모스크바·울란바토르·평양(平壤)·하노이 등지에 이르는 국제열차가 있고, 둥청구 남동쪽에 1956년에 새로운 베이징역(驛)이 건설되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베이징 동역, 서역, 남역, 북역 등 네 개의 기차역에 2019년 이후 차오양(朝陽)역, 다싱(大興)역, 다싱공항(大興機場)역, 칭허(淸河)역 등 네 개의 기차역이 더 만들어졌다.
베이징에는 두 개의 대형 공항이 소재한다. 베이징수도국제공항(北京首都國際空港)은 세계 최대규모의 공항 중 하나로, 베이징 중심부로부터 20km 거리의 순이구에 있다. 베이징 다싱국제공항(北京大興機場)은 베이징시 다싱구와 허베이성 랑팡시의 경계에 위치하며 2019년 9월 25일 정식 개통하였다. 다싱 공항은 이미 포화상태에 직면한 수도공항을 대체하는 동시에, 국가적으로 개발 중인 슝안신구(雄安新區)의 배후공항으로서 역할이 기대된다.
시내 대중교통은 버스와 지하철이 주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최근 베이징시는 친환경 모빌리티 이용을 적극 장려하며 확대하고 있다. 대중교통에 친환경에너지차량 비율을 높이고 있고, 자전거 전용도로를 건설하며 시민들의 자전거 이용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문화[편집]
베이징의 경극(京劇)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일반적으로 중국 문화에서 가장 높은 업적 중의 하나로 칭송된다. 베이징 경극은 노래와 대화, 몸짓, 움직임, 싸움, 그리고 곡예와 같이 간결한 행동의 연속의 조합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베이징 경극은 대부분 현대의 표준 관화와 베이징 방언과는 매우 다른 고풍의 무대 방언을 공연했다. 이는 중국어 실력이 어느 정도 수준이 있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대화인데, 만약 중국어에 익숙치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현대 극장에서는 가끔 중국어나 영어로 자막을 달기도 한다.
건축[편집]
쓰허위엔(四合院)은 베이징의 전통적인 건축 양식이다. 쓰허위엔은 사각 울타리 집(a square housing compound)과 중앙 안뜰을 둘러싼 방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안뜰은 심겨진 화초나 못뿐만 아니라 종종 석류무늬나 다른 나무의 모양을 담고 있다.
쓰허위엔의 선인 후통(胡同)은 베이징의 오래된 도시의 내부를 연결한다. 그들은 보통 직선이고 동에서 서쪽으로 흘러, 펭 슈위 때문에 출입구는 북쪽과 남쪽을 향한다. 그 폭은 다양해서 어떤 것은 동시에 보행자가 불과 몇 명뿐이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좁다.
한 때는 베이징에서 편재해 있었던 쓰허위엔과 후통이 지금은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후통의 거주자들은 그들의 이전의 거주지와 같은 규모의 새로운 빌딩을 아파트라고 불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공동체의 전통적인 감각과 후통의 거리 생활은 아파트로 대체될 수 없다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각별한 후통은 특별히 2008년 하계 올림픽 때문에 보존되고 있고 정부에 의해 복원되기도 하였다. 그 예로 난치찌가 있다.
베이징에서는 세 가지 종류의 건축 양식이 주를 이루고 있다. 첫 번째로 황실 중국의 전통적인 건축 양식이다. 아마도 중화인민공화국을 상징하는 특성을 가진 대건축물, 금단의 도시, 하늘의 신전이라 남아 있는 천안문이 가장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두 번째로는 시노 소브(“Sino-Sov")라고 불리는 건축 양식이다. 이것은 주로 1950년에서 1970년에 지어졌으며, 네모나고 차분하며 불완전한 꾸밈새를 추구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세 번째, 베이징의 상업 분야의 많은 현대의 건축 양식들이 있다. 과거의 건축물과 오늘날의 건축물이 괴상하면서도 인상적으로 혼합되어 있다. 이 양식은 따샨즈 예술구(Dashanzi Art District)에서 볼 수 있으며 이 모습은 1950년대와 오늘날의 새로움이 혼합을 이룬 예술이다.
요리[편집]
중국 고급관리의 요리는 베이징 지방의 요리 방법이다. 베이징 오리구이는 가장 잘 알려진 요리일 것이다. 원래 청조의 만주 황제들이 즐기던 “만한전석(滿漢全席, manhan quanxi)”은 전통적인 향연이다. 매우 명성있고 비싸다는 뜻이다.
찻집도 베이징에서 매우 흔하다. 중국차는 매우 다앙하며, 그 가운데 어떤 비싼 것들은 병을 치료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 한다.
사상[편집]
베이징 사람들은 흔히 다른 중국 사람들이 개방적이고 자신 있고 재치 있으며, 엄격하고 위엄 있는 예절, 정치에 열광적인 것, 예술, 문화 또는 다른 “웅장한” 것들, 절약이나 세심한 계산과 관련 없는 것을 지키려 한다. 그들은 또 흔히 귀족적이고 거만하며 한가로이 지내며, 시골 사람이나 시골스러운 것을 거부한다. 언제나 다른 사람을 군림하려 한다. 그리고 사회적 계층을 강하게 의식한다. 이런 고정관념은 아마도, 과거 800년 동안 중국의 수도였으며 베이징에서 관리들과 다른 저명 인사들이 많이 모여 있는 베이징의 지위에서 나왔을 것이다.
교육[편집]
베이징은 특히 중국에서 가장 훌륭한 학교인 칭화 대학과 베이징 대학이 있으며, 국제적으로 성장하는 여러 대학들을 포함하여, 많은 대학과 전문 대학의 보금자리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정치와 문화의 중심이 되는 북경의 지위 때문에, 높은 비율의 제3수준의 시설들이 적어도 통계적으로 59%에 도달하고 있으며, 중국의 다른 도시보다 베이징에 위치하고 있다. 대한민국, 동남아시아, 남아메리카, 유럽, 일본 등 여러 곳에서 많은 외국 학생들이 베이징에 해마다 공부를 하러 오며,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며, 특히 서양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곳에 있는 시설은 중국 정부 교육기관에서 관리한다.
관광[편집]
1000년의 역사를 가지는 고도(古都)인 만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명승·고적이 시역 안에 산재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가장 많이 가진 도시로서, 자금성, 이허위안(頤和園), 천단(天壇) 공원, 만리장성, 명나라의 십삼릉경구역, 저우커우뎬 베이징원인 유적, 대운하 등이 있다. 베이징에는 7309곳의 문물고적, 99곳의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326곳의 시급 문물보호단위, 5곳의 국가지질공원, 15곳의 국가삼림공원이 있다.
성구(城區)의 중심을 이루는 옛 왕궁 자금성은 현재 박물관이 되어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고궁 안의 여러 전(殿)·당(堂)·궁(宮) 등이 진열실로 이용되어, 중국 역대의 채도(彩陶)·청동기·칠기·직물·조각·회화 등 예술품을 진열하고 있다.
박물관 앞 동쪽의 태묘(太廟:제왕가의 종묘)는 현재 노동인민문화궁, 서쪽의 사직단(社稷壇)은 중산[中山]공원이 되어 있고, 또 서쪽의 베이하이[北海]공원, 북쪽의 징산공원 등이 모두 시민의 위락지이다. 왕궁의 정문인 톈안먼 앞에는 4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광장이 조성되어 해마다 메이데이와 국경절(國慶節:10월 1일)에는 퍼레이드가 벌어지며, 톈안먼 문루(門樓)는 그 사열대가 된다.
마오쩌둥(毛澤東)은 그 문루에서 1949년 10월 1일 중공정권의 수립을 선언하였고, 또 1966년에는 홍위병(紅衛兵)을 사열한 바 있다. 외성 안 남동부에는 본래 황제가 풍년을 기원하는 장소였던 톈단(天壇)이 있는데, 현재는 공원으로 체육장, 기타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성내 북동쪽에는 현재 수도(首都) 도서관으로 이용되는 국자감(國子監) 및 공자묘(孔子廟)·융허궁(雍和宮:라마교 사원) 등이 있다.
성 외에도 명승고적이 적지 않은데, 이허위안(頤和園)·위안밍위안(圓明園)·샹산(香山)공원·워포절(臥佛寺) 등은 특히 수려한 경치로 알려져 있고, 또 명(明)나라의 스싼링(十參陵)과 지하궁전도 유명하다. 북방의 만리장성(萬里長城)과 쥐융관(居庸關)·바다링(八達嶺) 등의 유적지도 시역 안에 있다.
베이징 중심의 전통골목인 후통(胡同)에 다양한 현대식 매장이 들어선 난뤄구샹(南锣鼓巷), 현대적인 미술갤러리로 유명한 798예술구, 서울의 이태원처럼 이국적인 거리로 유명한 싼리툰가도, 소수민족의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베이징중화민족박물원(北京中華民族博物院) 등 또한 유명하다.
베이징시 코리아타운[편집]
우다오커우(五道口)[편집]
우다오커우(五道口)에는 베이징대학을 비롯한 칭화대학, 베이징어언대학 등등 수많은 대학교들이 근처에 둘러쌓인 상권이며 한국식 한자 독음을 따라 오도구라고도 불린다.
한국인 고등학교 유학생들이 목표로 하는 대학이 많고, 입시에 성공한 대학 유학생들이 주변에 머물게 되면서 자연스레 유학생 가족들이 모여들어 차츰 코리아타운을 형성했다. 자녀들을 뒷바라지하러 왔다가 혼자 온 유학생들을 상대로 홈스테이 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러한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인들이 조선족들과 합작하거나 혼자서 만든 여러 한국 식당, 술집, 노래방, 카페 등 편의시설이 많아서 베이징에 처음 온 유학생들이 놀기에 큰 불편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인들 사이에 사건사고도 많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중국어를 배우러 어학연수오는 여러 외국인들이 많아서 그런지 서울의 이태원동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상술한 바와 같이 주변에 대학들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한국과는 다르게 중국은 밤 늦게까지 술 먹을 곳이 별로 없기 때문에 밤에 나가서 놀고 싶은 외국 유학생들에겐 유일한 선택지이다. 차량 유동량에 비해 도로가 좁아 저녁 시간만 되면 우다오커우역 사거리는 그야말로 헬게이트가 펼쳐진다.
왕징(望京)[편집]
왕징(望京)에는 우다오커우보다 규모가 큰 코리아타운이 존재한다. 사실은 이쪽이 진정한 코리아타운에 가깝다.
한국인들이 왕징에 많이 살기 시작한 이유는 공항과 한국 대사관, 대부분의 한국 회사 사무실이 있는 량마챠오(亮马桥) 혹은 궈마오(国贸)와 가깝기 때문이다. 유학생들보다는 주로 가족 단위의 회사원, 주재원, 공무원들이 많이 산다. 부동산 중개업소, 마트, 식당, 병원부터 주재원 자녀들이 다니는 학원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이나 조선족이 운영하는 가게들이 많아, 중국어를 하지 못해도 생활에 큰 불편함이 없을 정도이다.
그리고 한국 프랜차이즈 식당들이 중국에 처음 들어오는 곳도 바로 여기다. 계획상으로는 다싱 국제공항이 개항하면 스카이팀을 보내버릴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대한항공과 현지 교민들에게 엄청난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때마침 중국남방항공이 2019년 1월 1일부로 스카이팀 탈퇴를 선언하여 스카이팀을 다싱으로 보낼 계획이 크게 어그러짐과 동시에 원월드가 대신 다싱으로 가게 되면서 한숨 돌리게 되었다.
베이징에서 한국 음식을 먹는다면 왕징을 추천한다. 우다오커우에 비해 종류가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많고 맛도 좋다. 한국에서 먹을 수 있는 한국 음식 거의 대부분을 여기서도 먹을 수 있다. 맛도 외국에서 먹는 것을 감안하면 꽤나 괜찮은 편. 대부분 음식점들의 사장이 한국인이나 조선족이기 때문이다. 우다오커우의 한국 식당들은 왕징이 본점이고 우다오커우가 분점인 경우도 많고 아무래도 유학생들보다는 가족 단위의 주재원들이 경제사정이 좋기 때문에 이쪽이 시장 자체가 크다.
근처에 북한에서 운영하는 옥류관, 해당화, 삼송각, 대성산관 등도 있다. 가면 북한인 여성들이 주문을 받고 음식을 서빙한다. 종업원들은 대체로 평안도 사투리 억양을 사용한다. 서비스는 괜찮은 편이다. 물론 같은 한식이거니 해서 음식 맛을 기대하고 간다면 별로일 것이다. 왜냐면 현지 사람들의 입맛에 맞췄기 때문에 좀 느끼하고 짜다. 식당에서 공연도 하는데, 은근 볼만하다. 솔직히 음식보단 북한 노래를 부르는 공연을 보러 가는 사람들이 많다.
2016년에는 대북제재의 일환으로 해외 소재 북한식당 이용이 금지되었다. 하지만 옥류관이나 삼송각 그리고 해당화 등과 같은 북한식당을 드나드는 남한 사람들이 적지 않고, 남측 관광객들이 정말 많이 간다. 가게 된다면 평양냉면은 꼭 맛보도록 하자. 더구나 2018년 3차례나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면서 화해 무드가 조성되어 이젠 별 문제 없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왕징은 아직 미개발구역이었기 때문이 집값이 비싸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인들이 모여살기 시작하면서 개발이 시작되었고, 현재 왕징의 집값은 베이징의 다른 지역에 비해서 지속적으로 비싸지고 있다. 한국인들의 요구에 부합하는 상대적으로 중국 평균보다 수준 높은 편의시설 및 음식점, 가게들이 많기 때문. 이는 중국인들에게도 좋아 보이고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도 아직은 거주(住)할 만한 가격이다. 베이징 집값에 비해 월세는 그리 비싼 편이 아니라서 그렇다.
당연히 구매하려고 하면 엥간한 강남아파트 가격으로도 겨우 산다. 왕징뿐만이 아니라 베이징 5환 이내의 아파트나 집은 같은 평수라면 한국의 최고 수준 혹은 그 이상으로 비싸다. 일반적으로 왕징의 아파트 가격은 위치와 단지 규모에 차이가 있지만, 2017년 1월 기준 1㎡당 5만 RMB에서 비싼곳은 10만 RMB 정도 된다.
신한은행, KEB 하나은행, 우리은행 지점도 있다. 한국어가 통하므로 편리하다. 단, 중국 현지법인이므로 한국에서 개설한 계좌를 이용한 거래는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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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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