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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조'''(Peugeot)는 최초로 [[컨버터블]](convertible)을 출시한 [[프랑스]] 기반의 [[자동차]] 제조 업체이다. 푸조가 1975년 당시 심각한 재정난으로 고생하던 프랑스 자동차 기업 [[시트로엥]](Citroën)을 인수하며 탄생한 [[PSA 그룹]](Groupe PSA)의 계열사이다. 2014년에 재정난을 겪으면서 프랑스 정부와 [[중국]]의 [[동펑자동차]]에 각각 지분의 14%씩을 매각했다. 1988년 한국에 진출했다가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철수했으며, 2002년 한국에 재진출하여 [[한불모터스㈜]]와 푸조자동차의 한국 내 공식 수입과 판매에 대한 계약을 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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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조'''(Peugeot)는 최초로 [[컨버터블]](convertible)을 출시한 [[프랑스]] 기반의 [[자동차]] 제조 업체이다. 푸조가 1975년 당시 심각한 재정난으로 고생하던 프랑스 자동차 기업 [[시트로엥]](Citroën)을 인수하며 탄생한 [[PSA 그룹]](Groupe PSA)의 계열사이다. 2014년에 재정난을 겪으면서 프랑스 정부와 [[중국]]의 [[동펑자동차]]에 각각 지분의 14%씩을 매각했다. 1988년 한국에 진출했다가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철수했으며, 2002년 한국에 재진출하여 [[한불모터스㈜]]와 푸조자동차의 한국 내 공식 수입과 판매에 대한 계약을 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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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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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를 대표하는 자동차 메이커 푸조(Peugeot)는 1976년 프랑스의 또 다른 자동차 회사인 시트로엥을 인수해서 푸조-시트로엥 그룹(PSA)으로 불리고 있다. 브랜드 슬로건인 감성과 드라이빙의 즐거움(Motion and Emotion)을 바탕으로, 역동적이면서도 창조적인 기술과 고유한 디자인을 통해 프랑스에서는 [[르노]], [[시트로엥]]과 함께 국민기업으로 자리 잡았고 유럽과 전 세계에서는 독특한 디자인과 우수한 효율성 그리고 즐거운 드라이빙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있다. 국내 시장에서는 HDi 디젤 엔진과 MPC로 대표되는 효율성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고 세계 모터스포츠 무대에서는 WRC, 다카르 랠리 그리고 내구레이스 등에서 맹활약하며 그 기술을 과시하고 있으며, 최근 푸조는 크로스오버 카테고리의 다양화와 새로운 Blue HDi 엔진 등을 제시하고 있다.<ref name = "브랜드 히스토리(1)"> 박낙호 기자,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2866726612679424&mediaCodeNo=257 푸조 브랜드 히스토리(1) - 태동, 두 세기의 역사의 시작을 알리다]〉, 《이데일리》, 2016-06-07</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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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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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A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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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에 설립된 프랑스의 기업으로, 푸조와 시트로엥으로 구성되어 있다. 1976년에 푸조가 재정난에 시달리던 시트로엥을 인수하며 현재와 같은 회사가 되었다. 2017년에는 제너럴 모터스가 소유한 독일 브랜드 오펠을 인수했다. 현재는 복스홀과 DS를 가지고 있다. 시장의 경우, 인도, 미국과 캐나다를 제외한 전 세계에서 판매되고 있고, 인도에 2018년, 북미 시장에 2020년까지 판매를 시작할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 2020년 FCA 그룹과 1대 1로 합병하였으며, 현 PSA의 CEO인 카를로스 타바레스가 합병 회사의 CEO를 맡는다고 한다. 새로운 합병 법인의 이름은 스텔란티스(Stellantis)로 정해졌다. 현재 PSA그룹 산하 계열사로는 푸조, 시트로엥, DS 오토모빌, 오펠(OPEL), 복스홀(VAUXHALL)이 있다.
  
 
==역사==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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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9년''' : 자동차 메이커로서 푸조의 시작은 [[아르망 푸조]](Armand Peugeot)가 증기기관 차량 전문가인 레옹 세르폴레(Leon Serpollet)와 함께 푸조의 첫 번째 자동차 세르폴레 푸조(Serpollet-Peugeot)를 발표하며 자동차 산업의 시작을 알렸다. 이때부터 푸조는 한 세기가 넘는 자동차 메이커의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열 시간과 큰 부피를 가진 증기 기관에는 경쟁력이 없다는 것을 느낀 아르망 푸조는 독일에서 엔진 개발에 집중하며 모터 구동식 마차(Motorised Carriage)를 개발한 [[고틀립 다임러]](Gottlieb Daimler)와 프랑스의 유명 엔지니어이자 르네 파나르와 함께 파나르 르바소를 운영하던 에밀 르바소(Emile Levassor)를 만난 내연 기관 자동차 개발을 위한 협력을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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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0년''' :  [[다임러]]와 파라르 르바소와 함께 개발한 TYPE 2가 공개됐다. TYPE 2는 증기기관 대신 휘발류 엔진을 장착하고 3륜 대신 4개 휠을 장착한 TYPE 2를 개발했다. TYPE2는 2.5m 길이에 250kg 남짓한 무게로 앞뒤 좌석이 마주보는 4인승 차량이었다. 최대 출력은 2.3마력의 엔진을 얹고 최고시속 16km을 기록했다. 푸조 자동차의 역사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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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1년''' : 다임러 엔진을 장착한 사륜차 TYPE 3를 개발한다. 아직 자동차에 대해 시장의 인지도가 높지 않았던 만큼 푸조는 이를 알리기 위해 고민하고 결국 같은 해 개최된 파리-브레스트 사이클 대회에 TYPE 3를 출전시키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대회 측에서 사이클이 아닌 자동차의 출전 이전에 아직 안전성 검증이나 내구성이 검증되지 않은 내연 자동차의 출전이 다른 사이클과 선수들에게 방해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많은 시민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기회였던 만큼 푸조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푸조는 그룹 최후미에서 주행하는 것으로 타협안을 제시하며 대회에 출전할 수 있었다. TYPE 3는 성공적으로 주행을 마쳤고 관람객들의 많은 환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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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4년''' : 세계 최초의 레이스로 기록되고 프랑스자동차클럽(ACF)의 출범의 밑거름이 된 르 프티 주르날‘(Le Petit Journal) 주관 1894 파리-루앙 트라이얼 레이스 역시 푸조에게 기회가 됐다. 아르만 푸조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3.7마력을 웃도는 TYPE 7가 대회에 출전했다. TYPE 7과 드라이버 알베르트 르메트르는 가장 먼저 체커를 받으며 푸조, 다임러 그리고 파나르 르바소에게 영광을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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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6년''' : 다임러와 협력 관계 속에서 꾸준히 기술 개발은 이어왔고, 푸조가 독자 개발에 성공한 가솔린 엔진을 탑재한 타입 15의 탄생이 있었기에, 다임러에 지불하는 로열티도 만만치 않았던 푸조는 다임러와의 관계를 처분하고 자체 개발 엔진을 개발을 시작한다. 그리고 아르만 푸조는 자동차 산업의 발전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자동차 브랜드를 공식 출범시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다임러와 결별한 이듬해인 1897년 프랑스, 스위스, 독일 국경 지역인 소쇼(Sochaux)에 거점을 두고 푸조 자동차(Societe Anonyme des Automobiles Peugeot)를 설립하며 푸조 자동차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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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9년''' : 니스-카스텔란-니스 랠리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기술력 마저 인정 받으며 시장의 호평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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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1년''' :  에토레 부가티(Ettore Bugatti)가 디자인한 소형 모델 타입 BP1, 속칭 베베(Bebe)를 파리 살롱에서 공개하며 많은 인기를 얻었다. 여기에 엔진 개발자인 토니 후버(Tony Huber)를 영입했고, 토니 후버는 푸조 브랜드 최초의 6기통 엔진을 개발했다. 푸조는 베베와 6기통 엔진을 앞세워 20세기 초반의 성장세를 이어갔고 모터스포츠 무대에서도 꾸준한 활약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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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7년''' : 아르망 푸조가 사망하자 푸조 자동차는 1910년 다시 푸조형제회사와 합쳐졌다. 일종의 기업 개편을 겪으며 로베르 푸조가 대표로 나서게 됐다. 결집을 통해 푸조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했고, 제 1차 세계대전 직전에는 연간 자동차 생산량이 1만대에 이르고 자전거는 8만 대에 이르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하지만 전쟁은 생산 기업의 형태와 그 운영 방식을 뒤흔들게 되는데 푸조 역시 마찬가지였다. 푸조는 전쟁 기간 동안 탱크를 비롯한 기갑 전력의 생산을 담당했고, 이를 통해 자본의 확보는 물론 대량 생산의 경험을 쌓게 됐다 이를 통해 푸조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생산 능력을 대폭 확장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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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6년''' : 푸조는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 1920년 대 초반에 데뷔한 타입 153과 3세대 베베인 콰드레빌레르(La Quadrilette)의 성공을 발판으로 푸조 자동차 사업부의 주도적인 경영과 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푸조 자동차와 모터사이크 사업을 분리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세계적인 경제 공황이 시작되었다. 경제 공황은 전세계를 얼어 붙게 만들었고, 모든 브랜드들이 힘겨운 시기를 보내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푸조는 프랑스 시장에서 가장 저렴하고, 푸조 브랜드의 새로운 네이밍을 상징하며 경제 공황의 위기 속에서 브랜드의 존속을 가능하게 만든 ‘푸조 201’을 공개한다. 푸조 201은 매년 판매량이 줄어드는 푸조가 시장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여기에 세그먼트 + 0 + 세대로 구성되는 푸조의 네이밍 방식이 적용된 것 또한 큰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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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대''' : 202와 함께 302가 등장하며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고 대형 모델인 601 C 이클립스 또한 데뷔했다. 1934년에는 브렌드 최초의 하드톱 방식의 컨버터블 모델인 ‘402 BL 이클립스 데캡포터블(Eclipse Decapotable)이 시장에 데뷔했다. 푸조 브랜드의 역사적인 모델인 402 BL 이클립스 데캡포터블은 나치의 점령을 당한 이후인 1941년까지 꾸준히 판매되며 많은 사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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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0년대''' : 제 2차 세계대전은 푸조에게 제 1차 세계대전 보다 더 많은 상처를 안겼다. 1940년 나치의 지배하에 놓인 푸조와 르노는 군수 생산을 강요 받았고, 마지못해 수용한 르노와 달리 푸조는 끝까지 거부했고 장 피에르 푸조 3세는 공장을 폭파하고 레지스탕스 운동에 적극적인 후원자로 나서 프랑스의 독립을 위해 전력을 쏟았다. 나치는 자연스럽게 장 피에르 푸조 3세를 추격했고, 그를 붙잡아 총살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독일의 자동차 엔지니어 포르쉐 박사가 개입해 장 피에르 푸조 3세는 목숨을 지킬 수 있었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후 푸조 자동차의 재기를 위해 노력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푸조는 202를 다시 생산하며 재기에 나섰고, 1947년 코일 스프링과 랙 앤 피니언 스티어링, 유압식 브레이크를 적용한 푸조 203를 공개하며 회복세를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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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 ~ 1960년대''' : 종전 5년 후인 1953년에는 1.5L 엔진을 얹은 403을 공개했고, 재기에 성공했음을 선포했다. 재기에 성공한 푸조는 1950년 대부터 미국, 호주 등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특히 1960년 피닌파리나가 디자인한 404가 미국 진출의 주요 모델로 자리 잡았고, 이후 404은 아프리카의 사파리 랠리에 출전(1963~1968년)에 출전해 우수한 완성도와 강력한 내구성을 인정 받았다. 이후 혁신적인 디자인의 504을 공개하며 아프리카, 남미 시장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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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 ~ 1980년대''' : 재기 이후 꾸준한 성공 가도를 달린 푸조는 1970년 대 중반부터 시트로엥의 지분을 흡수하며 기업 인수를 추진한다. 1919년 설립된 시트로엥은 당시 반켈 엔진 라이선스 비용 지불 및 반켈 엔진 상용화 등으로 인해 재정 상황에 문제가 있었던 상황이었다. 푸조는 약 3년에 걸쳐 시트로엥 인수를 진행했고 인수 후에는 크라이슬러의 유럽 부분까지 인수한다. 이에 PSA 푸조 시트로엥(PSA Peugeot Citroen)는 출범과 함께 프랑스 경제의 중요한 축이 된다. 또한 탈보 브랜드를 부활시키는 광폭 행보에 나섰다. 여기에 이탈리아의 피아트 그룹과의 합작회사인 세벨을 설립하며 브랜드의 폭발적인 성장의 틀을 마련했다. 1970년 대 말 ‘푸조의 빅딜’을 통해 푸조와 PSA 그룹은 단 번에 유럽을 호령하는 거대 브랜드 및 그룹으로 탈 바꿈 했고 푸조의 영향력을 거대했다. 하지만 급하게 먹은 만큼 체증이 올라왔다. 70~80년 대를 휩쓴 오일 쇼크는 시장 경제를 경직시켰고 푸조는 역시 인수 및 공동 설립을 위해 진행된 지출의 여파까지 겹치면서 위기에 내몰렸다. 하지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카드가 푸조의 손에 쥐어졌다. 푸조는 위기를 205을 통해 돌파했고, 나아가 309(탈보 호라이즌의 리뱃징 모델)과 405 등을 연이어 연착륙시키며 브랜드의 생명력을 유지했다. 게다가 205 까브리올레를 통해 포드 주의를 탈피하는 모델의 다양화의 시작을 알린다. 1985년에는 중국시장에 도전장을 던진다. 둥펑자동차와 함께 ‘둥펑 푸조 자동차’를 설립하고 404과 405 등을 주력으로 생산했다. 상용차 중심의 둥펑자동차는 푸조와의 합작으로 승용 시장에서의 입지를 넓히게 됐다. 둥펑 푸조는 이후 둥펑 PSA로 이름을 바꿔 시트로엥의 모델까지 함께 생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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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 : 소형 모델인 106을 시작해 205와 306 그리고 중형 모델인 405, 406을 중심으로 브랜드를 운영했고 605를 통해 대형 시장의 경쟁력을 확보했다. 하지만 205에서 시작된 소형 라인업과 대형 라인업의 온도차이는 확연했다. 소형 라인업에 대해서는 확실한 이익을 챙겼지만 중형 이상에서는 적자를 면치 못한다.<ref name = "브랜드 히스토리(1)"></ref><ref> 박낙호 기자,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2945446612679424&mediaCodeNo=257 푸조 브랜드 히스토리 (2) - 푸조, 격동의 한 세기를 보내다]〉, 《이데일리》, 2016-06-07</ref>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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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참고자료==
 
* 푸조 공식 홈페이지 - http://www.peugeot.com
 
* 푸조 공식 홈페이지 - http://www.peuge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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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낙호 기자,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2866726612679424&mediaCodeNo=257 푸조 브랜드 히스토리(1) - 태동, 두 세기의 역사의 시작을 알리다]〉, 《이데일리》, 2016-06-07</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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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같이 보기==

2020년 9월 10일 (목) 16:54 판

푸조(PEUGEOT)
푸조(PEUGEOT)

푸조(Peugeot)는 최초로 컨버터블(convertible)을 출시한 프랑스 기반의 자동차 제조 업체이다. 푸조가 1975년 당시 심각한 재정난으로 고생하던 프랑스 자동차 기업 시트로엥(Citroën)을 인수하며 탄생한 PSA 그룹(Groupe PSA)의 계열사이다. 2014년에 재정난을 겪으면서 프랑스 정부와 중국동펑자동차에 각각 지분의 14%씩을 매각했다. 1988년 한국에 진출했다가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철수했으며, 2002년 한국에 재진출하여 한불모터스㈜와 푸조자동차의 한국 내 공식 수입과 판매에 대한 계약을 체결했다.

개요

프랑스를 대표하는 자동차 메이커 푸조(Peugeot)는 1976년 프랑스의 또 다른 자동차 회사인 시트로엥을 인수해서 푸조-시트로엥 그룹(PSA)으로 불리고 있다. 브랜드 슬로건인 감성과 드라이빙의 즐거움(Motion and Emotion)을 바탕으로, 역동적이면서도 창조적인 기술과 고유한 디자인을 통해 프랑스에서는 르노, 시트로엥과 함께 국민기업으로 자리 잡았고 유럽과 전 세계에서는 독특한 디자인과 우수한 효율성 그리고 즐거운 드라이빙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있다. 국내 시장에서는 HDi 디젤 엔진과 MPC로 대표되는 효율성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고 세계 모터스포츠 무대에서는 WRC, 다카르 랠리 그리고 내구레이스 등에서 맹활약하며 그 기술을 과시하고 있으며, 최근 푸조는 크로스오버 카테고리의 다양화와 새로운 Blue HDi 엔진 등을 제시하고 있다.[1]

소속

PSA그룹

1965년에 설립된 프랑스의 기업으로, 푸조와 시트로엥으로 구성되어 있다. 1976년에 푸조가 재정난에 시달리던 시트로엥을 인수하며 현재와 같은 회사가 되었다. 2017년에는 제너럴 모터스가 소유한 독일 브랜드 오펠을 인수했다. 현재는 복스홀과 DS를 가지고 있다. 시장의 경우, 인도, 미국과 캐나다를 제외한 전 세계에서 판매되고 있고, 인도에 2018년, 북미 시장에 2020년까지 판매를 시작할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 2020년 FCA 그룹과 1대 1로 합병하였으며, 현 PSA의 CEO인 카를로스 타바레스가 합병 회사의 CEO를 맡는다고 한다. 새로운 합병 법인의 이름은 스텔란티스(Stellantis)로 정해졌다. 현재 PSA그룹 산하 계열사로는 푸조, 시트로엥, DS 오토모빌, 오펠(OPEL), 복스홀(VAUXHALL)이 있다.

역사

  • 1889년 : 자동차 메이커로서 푸조의 시작은 아르망 푸조(Armand Peugeot)가 증기기관 차량 전문가인 레옹 세르폴레(Leon Serpollet)와 함께 푸조의 첫 번째 자동차 세르폴레 푸조(Serpollet-Peugeot)를 발표하며 자동차 산업의 시작을 알렸다. 이때부터 푸조는 한 세기가 넘는 자동차 메이커의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열 시간과 큰 부피를 가진 증기 기관에는 경쟁력이 없다는 것을 느낀 아르망 푸조는 독일에서 엔진 개발에 집중하며 모터 구동식 마차(Motorised Carriage)를 개발한 고틀립 다임러(Gottlieb Daimler)와 프랑스의 유명 엔지니어이자 르네 파나르와 함께 파나르 르바소를 운영하던 에밀 르바소(Emile Levassor)를 만난 내연 기관 자동차 개발을 위한 협력을 약속한다.
  • 1890년 : 다임러와 파라르 르바소와 함께 개발한 TYPE 2가 공개됐다. TYPE 2는 증기기관 대신 휘발류 엔진을 장착하고 3륜 대신 4개 휠을 장착한 TYPE 2를 개발했다. TYPE2는 2.5m 길이에 250kg 남짓한 무게로 앞뒤 좌석이 마주보는 4인승 차량이었다. 최대 출력은 2.3마력의 엔진을 얹고 최고시속 16km을 기록했다. 푸조 자동차의 역사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 1891년 : 다임러 엔진을 장착한 사륜차 TYPE 3를 개발한다. 아직 자동차에 대해 시장의 인지도가 높지 않았던 만큼 푸조는 이를 알리기 위해 고민하고 결국 같은 해 개최된 파리-브레스트 사이클 대회에 TYPE 3를 출전시키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대회 측에서 사이클이 아닌 자동차의 출전 이전에 아직 안전성 검증이나 내구성이 검증되지 않은 내연 자동차의 출전이 다른 사이클과 선수들에게 방해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많은 시민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기회였던 만큼 푸조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푸조는 그룹 최후미에서 주행하는 것으로 타협안을 제시하며 대회에 출전할 수 있었다. TYPE 3는 성공적으로 주행을 마쳤고 관람객들의 많은 환호를 받았다.
  • 1894년 : 세계 최초의 레이스로 기록되고 프랑스자동차클럽(ACF)의 출범의 밑거름이 된 르 프티 주르날‘(Le Petit Journal) 주관 1894 파리-루앙 트라이얼 레이스 역시 푸조에게 기회가 됐다. 아르만 푸조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3.7마력을 웃도는 TYPE 7가 대회에 출전했다. TYPE 7과 드라이버 알베르트 르메트르는 가장 먼저 체커를 받으며 푸조, 다임러 그리고 파나르 르바소에게 영광을 안겼다.
  • 1896년 : 다임러와 협력 관계 속에서 꾸준히 기술 개발은 이어왔고, 푸조가 독자 개발에 성공한 가솔린 엔진을 탑재한 타입 15의 탄생이 있었기에, 다임러에 지불하는 로열티도 만만치 않았던 푸조는 다임러와의 관계를 처분하고 자체 개발 엔진을 개발을 시작한다. 그리고 아르만 푸조는 자동차 산업의 발전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자동차 브랜드를 공식 출범시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다임러와 결별한 이듬해인 1897년 프랑스, 스위스, 독일 국경 지역인 소쇼(Sochaux)에 거점을 두고 푸조 자동차(Societe Anonyme des Automobiles Peugeot)를 설립하며 푸조 자동차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다.
  • 1899년 : 니스-카스텔란-니스 랠리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기술력 마저 인정 받으며 시장의 호평을 받게 된다.
  • 1901년 : 에토레 부가티(Ettore Bugatti)가 디자인한 소형 모델 타입 BP1, 속칭 베베(Bebe)를 파리 살롱에서 공개하며 많은 인기를 얻었다. 여기에 엔진 개발자인 토니 후버(Tony Huber)를 영입했고, 토니 후버는 푸조 브랜드 최초의 6기통 엔진을 개발했다. 푸조는 베베와 6기통 엔진을 앞세워 20세기 초반의 성장세를 이어갔고 모터스포츠 무대에서도 꾸준한 활약을 펼쳤다.
  • 1907년 : 아르망 푸조가 사망하자 푸조 자동차는 1910년 다시 푸조형제회사와 합쳐졌다. 일종의 기업 개편을 겪으며 로베르 푸조가 대표로 나서게 됐다. 결집을 통해 푸조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했고, 제 1차 세계대전 직전에는 연간 자동차 생산량이 1만대에 이르고 자전거는 8만 대에 이르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하지만 전쟁은 생산 기업의 형태와 그 운영 방식을 뒤흔들게 되는데 푸조 역시 마찬가지였다. 푸조는 전쟁 기간 동안 탱크를 비롯한 기갑 전력의 생산을 담당했고, 이를 통해 자본의 확보는 물론 대량 생산의 경험을 쌓게 됐다 이를 통해 푸조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생산 능력을 대폭 확장시킬 수 있었다.
  • 1926년 : 푸조는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 1920년 대 초반에 데뷔한 타입 153과 3세대 베베인 콰드레빌레르(La Quadrilette)의 성공을 발판으로 푸조 자동차 사업부의 주도적인 경영과 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푸조 자동차와 모터사이크 사업을 분리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세계적인 경제 공황이 시작되었다. 경제 공황은 전세계를 얼어 붙게 만들었고, 모든 브랜드들이 힘겨운 시기를 보내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푸조는 프랑스 시장에서 가장 저렴하고, 푸조 브랜드의 새로운 네이밍을 상징하며 경제 공황의 위기 속에서 브랜드의 존속을 가능하게 만든 ‘푸조 201’을 공개한다. 푸조 201은 매년 판매량이 줄어드는 푸조가 시장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여기에 세그먼트 + 0 + 세대로 구성되는 푸조의 네이밍 방식이 적용된 것 또한 큰 의미가 있었다.
  • 1930년대 : 202와 함께 302가 등장하며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고 대형 모델인 601 C 이클립스 또한 데뷔했다. 1934년에는 브렌드 최초의 하드톱 방식의 컨버터블 모델인 ‘402 BL 이클립스 데캡포터블(Eclipse Decapotable)이 시장에 데뷔했다. 푸조 브랜드의 역사적인 모델인 402 BL 이클립스 데캡포터블은 나치의 점령을 당한 이후인 1941년까지 꾸준히 판매되며 많은 사랑을 얻었다.
  • 1940년대 : 제 2차 세계대전은 푸조에게 제 1차 세계대전 보다 더 많은 상처를 안겼다. 1940년 나치의 지배하에 놓인 푸조와 르노는 군수 생산을 강요 받았고, 마지못해 수용한 르노와 달리 푸조는 끝까지 거부했고 장 피에르 푸조 3세는 공장을 폭파하고 레지스탕스 운동에 적극적인 후원자로 나서 프랑스의 독립을 위해 전력을 쏟았다. 나치는 자연스럽게 장 피에르 푸조 3세를 추격했고, 그를 붙잡아 총살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독일의 자동차 엔지니어 포르쉐 박사가 개입해 장 피에르 푸조 3세는 목숨을 지킬 수 있었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후 푸조 자동차의 재기를 위해 노력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푸조는 202를 다시 생산하며 재기에 나섰고, 1947년 코일 스프링과 랙 앤 피니언 스티어링, 유압식 브레이크를 적용한 푸조 203를 공개하며 회복세를 이어간다.
  • 1950년 ~ 1960년대 : 종전 5년 후인 1953년에는 1.5L 엔진을 얹은 403을 공개했고, 재기에 성공했음을 선포했다. 재기에 성공한 푸조는 1950년 대부터 미국, 호주 등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특히 1960년 피닌파리나가 디자인한 404가 미국 진출의 주요 모델로 자리 잡았고, 이후 404은 아프리카의 사파리 랠리에 출전(1963~1968년)에 출전해 우수한 완성도와 강력한 내구성을 인정 받았다. 이후 혁신적인 디자인의 504을 공개하며 아프리카, 남미 시장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었다.
  • 1970년 ~ 1980년대 : 재기 이후 꾸준한 성공 가도를 달린 푸조는 1970년 대 중반부터 시트로엥의 지분을 흡수하며 기업 인수를 추진한다. 1919년 설립된 시트로엥은 당시 반켈 엔진 라이선스 비용 지불 및 반켈 엔진 상용화 등으로 인해 재정 상황에 문제가 있었던 상황이었다. 푸조는 약 3년에 걸쳐 시트로엥 인수를 진행했고 인수 후에는 크라이슬러의 유럽 부분까지 인수한다. 이에 PSA 푸조 시트로엥(PSA Peugeot Citroen)는 출범과 함께 프랑스 경제의 중요한 축이 된다. 또한 탈보 브랜드를 부활시키는 광폭 행보에 나섰다. 여기에 이탈리아의 피아트 그룹과의 합작회사인 세벨을 설립하며 브랜드의 폭발적인 성장의 틀을 마련했다. 1970년 대 말 ‘푸조의 빅딜’을 통해 푸조와 PSA 그룹은 단 번에 유럽을 호령하는 거대 브랜드 및 그룹으로 탈 바꿈 했고 푸조의 영향력을 거대했다. 하지만 급하게 먹은 만큼 체증이 올라왔다. 70~80년 대를 휩쓴 오일 쇼크는 시장 경제를 경직시켰고 푸조는 역시 인수 및 공동 설립을 위해 진행된 지출의 여파까지 겹치면서 위기에 내몰렸다. 하지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카드가 푸조의 손에 쥐어졌다. 푸조는 위기를 205을 통해 돌파했고, 나아가 309(탈보 호라이즌의 리뱃징 모델)과 405 등을 연이어 연착륙시키며 브랜드의 생명력을 유지했다. 게다가 205 까브리올레를 통해 포드 주의를 탈피하는 모델의 다양화의 시작을 알린다. 1985년에는 중국시장에 도전장을 던진다. 둥펑자동차와 함께 ‘둥펑 푸조 자동차’를 설립하고 404과 405 등을 주력으로 생산했다. 상용차 중심의 둥펑자동차는 푸조와의 합작으로 승용 시장에서의 입지를 넓히게 됐다. 둥펑 푸조는 이후 둥펑 PSA로 이름을 바꿔 시트로엥의 모델까지 함께 생산하게 된다.
  • 1990년대 : 소형 모델인 106을 시작해 205와 306 그리고 중형 모델인 405, 406을 중심으로 브랜드를 운영했고 605를 통해 대형 시장의 경쟁력을 확보했다. 하지만 205에서 시작된 소형 라인업과 대형 라인업의 온도차이는 확연했다. 소형 라인업에 대해서는 확실한 이익을 챙겼지만 중형 이상에서는 적자를 면치 못한다.[1][2]

기술

발전된 그립 제어 기능

발전된 그립제어 기능은 앞바퀴의 트랙션을 최적화하여 차량이 모든 조건에서 도로를 달릴 수 있게 해주는 고급 트랙션 컨트롤 시스템이다. 일반, 눈길, 모든 지형, 모래, ESP의 5가지 모드를 사용할 수 있다.이 기술의 장점은 기존의 4x4와 달리 차량에 이미 장착 된 전자 부품을 사용하므로 추가 중량이 추가되지 않아 과도한 연료 소비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이 기능은 가파른 경사면에서 차량 제어를 최적화하는 새로운 HADC(Hill Assist Descent Control)기능도 통합한다. 경사가 5 % 이상이고 차량 속도가 19mph 미만인 경사면을 내려갈 때 시스템은 미끄러질 위험을 줄이기 위해 작동한다. 하강 중에 시스템은 속도와 브레이크 제어를 유지하여 운전자가 기동 중에 차량 이동 경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능동형 안전 브레이크

  • 자동 비상 브레이크 시스템(AEBS) : 차량 속도를 줄여 충돌을 방지하거나 심각성을 제한하도록 설계된 지능형 자율 제동 시스템이다. 운전자가 차량의 브레이크를 작동시켜 충분히 빠르게 반응하지 않으면 시스템이 작동된다. 전면 범퍼 장착 레이더와 결합된 앞 유리 상단에 위치한 다기능 카메라는 도로의 장애물을 감지 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은 최대 속도 제한으로 동일한 방향을 향해 이동하거나 도로에서 보행자(최대 37mph)와 함께 정지 상태(최대 50mph)에 있는 차량을 감지 할 수 있다.
  • 거리 경보 시스템 : 자동 비상 브레이크 시스템과 함께 작동하는 거리 경고 기능은 차량이 전방 차량과 충돌하거나 도로의 보행자와 충돌할 위험이 있는 경우 운전자에게 경고해준다. 두 가지 수준의 경고를 사용할 수 있으며 황색 경고는 잠재적 위험에 대한 시각적 경고를 제공하고, 빨간색 시각 및 청각 경고는 충돌이 임박하고 운전자의 조치가 필요함을 나타내며, 작동하지 않으면 자동 비상 브레이크 시스템이 작동된다.

강화된 주차 지원 기능

강화된 주차 지원 기능은 카메라를 사용하므로 운전자는 온보드 터치 스크린에서 차량 주변의 모든 영역을 볼 수 있다. 차량과 그 바로 근처의 조감도는 운전 시 실시간으로 표시되며, 이를 통해 운전자가 360° 시야를 확보하고 주변 장애물을 볼 수 있게 된다.

차선 유지 기술

2가지의 차선 유지 기술을 특징으로 하는 차량은 앞 유리에 장착 된 카메라를 통해 도로의 선을 식별할 수 있다.

  • 차선 이탈 경고 기능 : 연속 및 불연속 선을 모니터링 하고 지면에 세로 방향 차선 표시가 실수로 교차하는 경우 운전자에게 경고하는 시스템으로 조향 편차가 감지되면 디지털 계기판의 깜박이는 표시기와 실내의 청각 신호로 경고를 해주는 기능이다.
  • 능동적 차선 유지 지원 : 시스템이 지면에서 감지된 표시선 중 하나를 넘어갈 위험이 있음을 인지하는 즉시 조향이 점차 수정되어 40mph이상의 속도로 차선을 유지해준다.

운전자 주의 경고

도로에서 추가 안전을 위한 2단계의 운전자 경보 시스템을 지원한다. 시간 제한 경고 시스템은 40mph 이상의 속도로 작동하며 2시간 운전 후 휴식을 취하라는 메시지가 표시된다. 차량 궤적을 분석하도록 설계되었으며, 앞 유리 상단의 카메라로 제어되는 이 액티브 시스템은 40mph 이상의 속도에서 운전자의 경계평가하며 경고해준다. 도로 표시와 관련된 편차를 식별함으로써 차량은 차량의 행동이 어느 정도의 졸음운전 또는 부주의를 반영하는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운전자가 도로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되면 시각 및 청각 경고가 발생하며, 경고가 세 번 이상 발생하는 경우 운전자는 휴식을 취하도록 조언한다.

블라인드 스팟 모니터링

측면 초음파 센서를 사용하여 앞 유리에 장착 된 카메라와 함께 시야 밖의 영역을 가리는 LED가 양쪽 도어 미러에 비추어 사각 지대에 자동차, 트럭, 오토바이 또는 자전거가 있음을 경고해준다. 이 시스템은 느린 차량을 추월하거나 더 빠른 차량을 추월 할 때 작동합니다. 이 지능형 기능은 8mph의 낮은 속도에서 국가 속도 제한까지 작동한다.

푸조 커넥트 SOS 및 지원

차량 위치 확인 통신 장치인 이 기능은 발화 장치 배치 여부에 따라 수동 또는 자동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차량의 위치를 정확하게 찾고 신속한 대응을 위해 적절한 긴급 서비스를 전송한다. 푸조는 이 기술이 2003년에 출시된 이래로 선구자 자리를 지키고 있다. 푸조 커넥트 SOS & 어시 스턴스는 7,000명 이상에게 서비를 지원했으며, 이 시스템은 추가 비용없이 무료이며 GPS 모듈과 SIM 카드를 사용한다.

퓨어 블루 공기 정화 시스템

퓨어 블루 공기 정화 시스템은 EXALT 콘셉트카를 위해 특별히 개발 되었으며, 탑승자에게 최대의 편안함을 보장한다 . 정차하고 차량이 비었을 때 이 시스템은 박테리아와 살균제를 확산시켜 차량 내부를 정화한다. 차량에 들어가기 전에 공기를 처리하여 휘발성 유기 화합물과 미세 입자를 제거하여 모든 탑승자가 순수하고 쾌적한 분위기에서 운전 가능하게 해준다.[3]

엠블럼의 변화

푸조 엠블럼의 변천사
  • 1905년(엠블럼의 탄생) : 푸조의 로고는 자동차 그릴 상단을 화살 위를 걸어가는 사자 모습의 엠블럼으로 장식하였다. 그 후로 수년간 자전거 및 공구 제품에도 다양한 버전의 엠블럼이 부착되었다.
  • 1923년(사자 현상 유행이 되다) : 푸조 자동차 소유주들은 프랑스의 조각가 보디숑(Baudichon)이 디자인한 라이언이 조각된 라디에이터 캡을 개성대로 꾸미곤 했다.
  • 1933년(그릴을 정복한 사자) : 모든 푸조 자동차 그릴 정수리에는 라이언의 머리 장식이 달리게 된다. 1935년, 라이언 머리 장식 입체형 푸조 로고는 소쇼 로켓(Sochaux rocket) 라인에 따라 디자인이 변경됩니다.
  • 1948년(프랑슈-콩테 문장의 사자를 채택한 푸조 203) : 푸조 203 보닛에도 라이언 머리 장식이 달리게 되었지만, 곧 프랑슈-콩테(Franche-Comté) 지방 문장의 사자 로고로 모습이 바뀌게 됩니다.
  • 1955년(프랑슈-콩테 사자, 푸조 403에도 적용되다) : 1958년 9월, 각종 안전상의 이유로 푸조 203과 푸조 403 모델 보닛에 달리던 사자 머리 장식 입체형 로고는 사라지게 된다.
  • 1960년(사자, 스타일을 탈바꿈하다) : 푸조 이니셜 각인과 함께 매끄러운 갈기가 그려진 새로운 사의 모습이 푸조 404 모델부터 그릴 중앙에 부착되어 생산되기 시작했다.
  • 1968년(사자, 틀을 벗어나다) : 푸조 504 모델부터 라이언은 금 및 크롬으로 도금되어 평평한 형태의 심플한 스타일로 등장한다.
  • 1975년(사자 아웃라인) : 사자는 기존의 사자 문장에서 속이 비고, 각진 모습의 윤곽만 남은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게 된다.
  • 1998년(속도 채우고, 입체감도 살리고) : 사자 로고는 소재에서 드러나는 풍부한 입체감을 살리는 방향으로 변화되었다.
  • 2010년(새로운 포즈의 푸조 사자) : 움직이는 자세가 새롭게 바뀌면서 역동성이 더욱 강조되었고, 매트하면서도 동시에 광택이 나는 두 가지 성질을 모두 지닌 금속으로 도금처리된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푸조에서 사용하고 있는 푸조의 엠블럼이다.[4]

각주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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