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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링컨의 역사는 1917년 헨리 | + | 링컨의 역사는 1917년 헨리 릴런드(Henly Leland)가 자동차 회사를 설립하면서 시작된다. 링컨을 처음 만든 이는 윌리엄 듀란트와 제너럴모터스를 공동설립한 헨리 릴런드이다. 자동차 부품회사로 캐딜락을 설립한 헨리 릴런드는 윌리엄 듀란트와 함게 제너럴모터스그룹을 설립했다. 1915년 이들은 V8 엔진을 개발하여 실용화에 성공하기도 했다. 릴런드는 1차 세계대전 당시 항공기 엔진을 설립해 군수업체로의 변신을 도모했으나 비행기 엔진 제작을 원하던 릴런드와 자동차만 고집한 듀란트의 대립으로 결국 릴런드가 캐딜락을 떠나게 되었다. 이후 릴런드는 자동차 엔진을 다시 제작하기 시작했으며 자신이 가장 존경하던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으로부터 이름을 따 1917년 링컨 자동차 회사(Lincoln Motor Compamy)를 정식 설립했다. 릴런드는 1922년 포드에 링컨 브랜드가 편입된 후 줄곧 포드의 럭셔리카 개발을 담당했다.<ref name='오토카코리아'>오토카코리아 편집부, 〈[http://www.iautocar.co.kr/news/articleView.html?idxno=4852 컨티넨탈로 대표되는 링컨의 100년 이야기]〉, 《아이오토카》, 2016-11-30</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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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7일 (화) 17:31 판
링컨(Lincoln)은 미국의 자동차 제조 회사인 포드(Ford)의 고급 승용차 브랜드이다. 창업자인 헨리 릴런드(Henry Martin Leland)가 존경했던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에서 따왔다. 1923년 쿨리지 대통령을 시작으로 1939년에서 1989년까지 6번에 걸쳐 백악관에 특수하게 제작한 대통령 전용차를 납품하며 미국의 최고급차와 대통령전용차 제조업체로 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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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개요
링컨은 포드자동차의 럭셔리 브랜드로, 오랜 역사와 전통 깊은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다양하고 우수한 품질의 라인업을 생산한다. 포드자동차의 럭셔리 브랜드인 링컨은 1917년 탄생 이후 ‘스타일(Style)’과 ‘럭셔리(Luxury)’를 기반으로 아메리칸 럭셔리카의 상징이 되어 왔다. 루즈벨트, 트루먼 등 미국 대통령의 전용차로 명성을 쌓아 왔으며, 세계적인 명품 디자이너 구찌, 까르띠에, 지방시, 베르사체 뿐만 아니라 클라크 게이블 등 유명 헐리우드 스타들의 러브콜을 받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1930년대에 이미 제퍼, 컨티넨탈로 큰 성공을 거두고 영향력을 키워 온 링컨은 1980년대 마크 VII과 같은 럭셔리 쿠페 부문에서도 최고의 위치에 올랐다. 타운카를 비롯해 나머지 모델들의 연이은 성공으로, 링컨은 해당 년대 총 280,659대의 판매 대수를 기록하며, 자동차 분야의 선두주자로서 앞서게 되었다. 1990년대에는 드라이버에게 걸맞는 인테리어와 드라마틱한 외관을 갖춘 마크 VIII을 출시하며 또 다시 최고의 위치에 섰다. 이후, 링컨 내비게이터를 출시해 도로의 왕(King-of-the-Road)으로 불리며, 젊은 세대로부터도 많은 인기를 얻었다.[1] 링컨은 아메리칸 럭셔리카 라인업에 지난 한 세기 동안 이어온 브랜드 헤리티지, 그리고 첨단 테크놀로지를 바탕으로 완성한 링컨만의 드라이빙 퍼포먼스(Driving Performance)를 더해 미국의 경쟁력 있는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로서의 입지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20세기 초에서부터 지금까지 ‘성공한 사람이 타는 고급 자동차’의 아이콘이자, 우아함과 품격을 갖춘 대표적인 '아메리칸 클래식'으로서 모든 미국인들의 변치 않는 사랑과 지지를 받고 있다.[2]
주요 인물
헨리 릴런드
헨리 릴런드(Henry Martin Leland)는 1843년 영국에서 이민 온 소장수의 아들로 미국 버몬트(Vermont)에서 태어났다. 12살 때부터 정밀가공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릴런드는 24세 때 자신의 정밀가공공장을 디트로이트에 세워 부와 명성을 얻었다. 젊었을 때부터 익혔던 전문 기술로 남북전쟁 중에는 총 제작에 필요한 도구를 만들었으며 그 후 1/1000인치의 정확도를 낼 수 있는 기술로 이발용 기계를 제작하였다. 24세가 되던 1867년에는 디트로이트에 기계공장을 세우고 올즈모빌(Oldsmobile) 설립자인 랜섬 올즈(Ransom Olds)에게 부품을 납품하기도 하였는데 1/1000의 오차까지 잡아내는 정밀한 기어를 공급해 능력을 인정받고 올즈모빌로부터 엔진과 변속기 주문을 받아 기반을 다져나갔다. 1901년 10.25마력의 엔진을 만드는데 성공했으나 올즈가 받아들이지 않자 정밀 기술의 대가였던 헨리 릴런드는 같은 모델인 경우 부속품을 서로 바꿔 끼워도 문제없는 부품 호환성 자동차를 만들기로 결심하였다. 마침 헨리 포드가 세웠던 디트로이트 자동차 회사를 자금난으로 매각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 회사를 인수해 1902년 캐딜락을 설립하였다. 1909년 헨리 릴런드는 캐딜락을 제너럴모터스의 대표 브랜드로 삼는다는 조건으로 윌리엄 듀런트에게 매각한다. 그러나 1차 대전이 일어나자 비행기 엔진 개발 문제로 듀런트와 의견 충돌이 일어나 GM을 떠나고 아들 윌프레드(Wilfred)와 함께 비행기 엔진 회사를 설립하였고 1919년에는 자동차 제작으로 업종을 바꾸고 회사 이름을 링컨이라 정한다. 이듬해에 정식으로 회사를 설립하고 첫차인 링컨 V8(Lincoln V8)을 내놓지만 차량 가격이 비싸서 시장의 호응을 못 얻고 회사는 재정난에 빠져 1922년 헨리 포드에게 이 회사를 매각하였으며 말년에는 사회보장 제도나 시민 문제에 관심이 많아 디트로이트 시민 연맹(Detroit Citizen League)를 설립하고 수년간 회장직을 맡아 활동했으며 후에 이 공로로 미시간대학(University of Michigan)과 버몬트대학(University of Vermont)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기도 하였다. 이러한 핸리 릴런드는 1932년 8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3]
역사
- 설립
링컨의 역사는 1917년 헨리 릴런드(Henly Leland)가 자동차 회사를 설립하면서 시작된다. 링컨을 처음 만든 이는 윌리엄 듀란트와 제너럴모터스를 공동설립한 헨리 릴런드이다. 자동차 부품회사로 캐딜락을 설립한 헨리 릴런드는 윌리엄 듀란트와 함게 제너럴모터스그룹을 설립했다. 1915년 이들은 V8 엔진을 개발하여 실용화에 성공하기도 했다. 릴런드는 1차 세계대전 당시 항공기 엔진을 설립해 군수업체로의 변신을 도모했으나 비행기 엔진 제작을 원하던 릴런드와 자동차만 고집한 듀란트의 대립으로 결국 릴런드가 캐딜락을 떠나게 되었다. 이후 릴런드는 자동차 엔진을 다시 제작하기 시작했으며 자신이 가장 존경하던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으로부터 이름을 따 1917년 링컨 자동차 회사(Lincoln Motor Compamy)를 정식 설립했다. 릴런드는 1922년 포드에 링컨 브랜드가 편입된 후 줄곧 포드의 럭셔리카 개발을 담당했다.[4]
- 1920년대
1922년 포드는 링컨을 자회사로 편입해 고급 브랜드로 키워 프리미엄 아메리칸 럭셔리카 브랜드로 독자적인 입지를 굳혔다. 링컨은 1920년대부터 사람들에게 고급차로 인정받으며 이름을 날렸다. 1923년부터 링컨을 이끈 핸리 포드의 아들, 에드셀 포드(Edsel Ford)는 하나의 섀시에서 여러 종류의 차를 만들며 링컨의 명성을 높였다. 대표적인 모델은 링컨 L시리즈로 만든 타운카이다. 에드셀 포드가 아버지 헨리 포드를 위해 만들었지만 반응이 좋아 주문 제작 차량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타운카는 운전석이 외부에 노출되어 있고 승객석이 따로 분리돼 있던 차체 형태를 부르는 이름이다. 링컨 타운카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닌 지위를 드러내는 수단이 되었으며, 토마스 에디슨, W.C 필즈, 허버트 후퍼와 같은 저명 인사들이 이 차량을 애용하였다.[5]
- 1930년대
1930년대에도 고급 브랜드로서 링컨의 명성은 계속 올라갔다. 이때 제퍼(Zephyr)가 출시되며 비로소 재정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제퍼는 공기역학을 고려해 디자인한 유선형 차체의 4도어 세단이다. 제퍼는 향후 유선형 라인을 가진 공기역학적인 디자인의 시작임과 동시에 링컨이 재정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되는 계기였다. 이 시기는 링컨의 히트작 컨티넨탈이 나온 때이기도 하다. 컨티넨탈은 당시 에드셀 포드 대표가 파리를 방문했을 때 다양한 유럽차에서 받은 느낌을 그대로 반영하여 만든 모델이다. 자신이 타고 다닐 차로 컨티넨탈을 제작하였으나 이를 본 주위의 반응이 너무 좋아 양산을 결정하여 제작된 자동차다. 에드셀 포드는 1938년경 신차 컨티넨탈을 출시하기로 결정하고 개발을 진두지휘했다. 그가 개발 과정 하나하나에 신경 쓴 결과 시장에서 대박이 났다. 컨티넨탈은 깔끔하게 떨어지는 디자인과 다이내믹한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해냈다. 뉴욕 현대미술관으로부터 아름다운 디자인을 갖춘 차로 뽑힌 최초의 자동차로 뽑히기도 했다.[6] 그 후로 다양한 컨티넨탈 모델이 출시됐으며 1950년대 인기를 끈 컨티넨탈 마크시리즈는 엘비스 프레슬리, 프랭크 시내트라 등 전설적인 팝스타들 또한 애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 1940년대
1940년대에는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탱크 엔진, 수륙양용 차량 바디 및 14만 대의 지프 바디의 제작을 위해 모든 자동차 생산이 중단되었다. 이후 미국에서 출시된 대부분의 자동차들과 마찬가지로 링컨 역시 전쟁전의 디자인으로 새롭게 스타일링된 모델들을 출시했다.[7]
- 1950년대
1950년대는 링컨의 명성이 최고조에 올랐던 시기다. 특히 1950년대 링컨은 최신 기술과 앞서가는 디자인으로 시장의 트렌드를 주도해 갔다. 1950년대는 링컨 프리미어가 대표적이다. 파워 스티어링, 파워 브레이크, 파워 윈도우, 자동 시트, 광곽 앞유리, 튜브가 없는 타이어 등 여러 최신 기술을 링컨 프리미어에 장착했다. 링컨의 디자인 또한 미래지향적으로 변신했으며 컨티넨탈 마크Ⅱ는 링컨의 새로운 스타일 룩을 만들어냈다. 당시 링컨은 세기에서 가장 아름답고 영향력 있는 자동차로 평가되었다.[5]
- 1960년대
1961년에 나온 뉴 컨티넨탈은 시대를 앞서간 세단으로, 새로운 차 그 이상으로 평가받았다. 당시 화려한 자동차가 인기를 끌었는데 컨티넨탈은 대조적으로 단순함과 정교함에 초점을 두었다. 1961년의 컨티넨탈은 가운데에서 문이 열리는 코치도어 방식으로 4도어 하드탑 또는 컨버터블 모델이 있었다. 1939년 원조 컨티넨탈과 마찬가지로 뉴 컨티넨탈은 링컨의 이미지를 한꺼번에 바꿔놓았다. 뉴 컨티넨탈은 명성 높은 미국 산업디자인협회에서 올해의 디자인상을 받은 최초의 자동차로 기록돼 있다.[6]
- 1970년대
1970년대의 링컨은 60년대의 트렌드와 반대로 다시 넓은 공간과 럭셔리를 추구했다. 지방시, 구찌, 까르띠에 등 유명 디자이너와의 협업으로 스페셜 에디션 링컨을 만들어 차량에 명품 마크를 새겨 넣기도 했다. 그 결과 컨티넨탈 마크 IV 쿠페는 젊은 부유층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또한 링컨은 1974년에 최초로 자동차 뒷유리 서리방지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여전히 혁신적인 모습을 보여줬다.[4]
- 1980년대
1980년대에 링컨은 획기적인 변화를 맞게 되었다. 1984년 컨티넨탈 마크 VII는 럭셔리 쿠페 부문에서 최고의 위치를 지켰고 다른 모델들의 판매도 순조로웠다. 이 시기에 링컨은 가장 큰 변화를 주기도 했는데, 컨티넨탈 역사상 처음으로 전륜구동 모델을 내놓으며 주목을 받았다. 1980년대는 타운카를 비롯하여 나머지 모델들이 계속 성공하여 링컨은 총 280,659의 판매 대수를 기록하며 자동차 분야의 선두주자가 되었다.[7]
- 1990년대
1990년대는 미국 고급차 시장에 일본, 독일, 영국 등 다양한 브랜드가 진출하면서 경쟁이 치열했던 시기다. 하지만 링컨은 타운카와 컨티넨탈 마크 VIII로 고급차 시장에서 굳건한 위치를 지켰다. 1990년형 타운카는 모터트렌드의 올해의차로 선정되었고, 드라마틱한 외관과 운전자 중심의 인테리어를 갖춘 마크 VIII을 출시하며 또 한 번 최고의 위치를 차지했다. 특히 1998년에는 풀사이즈 럭셔리 SUV 내비게이터를 출시하며 다시 시대를 앞서갔다. 전통적인 링컨의 특성을 살린 웅장하고 럭셔리함으로 내비게이터는 도로의왕(King of the Road)으로 불리며 젊은 층으로부터 큰 인기를 얻었다.[7]
- 2000년대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링컨의 존재감이 많이 약해졌다. 이에 링컨은 브랜드 재정비에 나섰다. 링컨 디자인 스튜디오에 50여명의 각 전문가를 모아 링컨이 만든 전통과 현대를 잇는 작업에 들어갔다. 이를 바탕으로 오랜 시간 링컨과 함께한 고객은 물론 새로운 고객에게 링컨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MK로 시작하는 단순한 작명법으로 라인업을 정리하고 젊은 층이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디자인을 내세웠다.[4] 2000년대 들어 링컨은 고급 대형 세단 MKS와 중형 세단 MKZ, 그리고 SUV인 MKX 등으로 라인업을 간결하게 정리하면서, 디자인과 완성도, 주행 성능, 안전 및 편의 장치의 채택 등 이 시대의 럭셔리가 갖춰야 할 가치를 빠짐없이 담아내고 있다.[6]
생산 차량
네비게이터
내비게이터(Navigator)는 링컨 브랜드에 의해 1998년 모델부터 판매되는 풀사이즈 럭셔리 SUV이다. 차명인 내비게이터(Navigator)는 항해사라는 뜻의 영어 단어이다. 주로 북아메리카에 판매되는 내비게이터는 F-150 픽업트럭 플랫폼을 이용하며, 포드 익스페디션의 링컨 대응 차량이다. 이 브랜드에 의해 판매된 가장 긴 차량은 아니지만 링컨이 만든 가장 무거운 차량이다. 화물칸 용적이 가장 큰 링컨 차량으로, 6명을 초과하는 좌석을 제공하는, 리무진이 아닌 최초의 링컨 차량이기도 하다. 또한 캐딜락 에스컬레이드처럼 장축형 모델이 별도로 있다. 생산은 1997년부터 2009년까지 미시간주 웨인의 미시간 제조 공장에서 이루어졌다. 2007년부터는 켄터키주 켄터키 트럭 공장에서도 생산된다. 초기에는 V8 5.4리터 가솔린 엔진을 이용했으며, 2014년에 출시한 3세대 후기형부터 V6 3.5리터 에코부스트 가솔린 트윈터보 엔진을 이용 중이다. 대한민국에는 2021년 3월 25일에 처음으로 출시했다. 캐딜락 에스컬레이드와는 달리 장축형 모델은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는다.[8]
에비에이터
에비에이터(Aviator)는 링컨의 준대형 스포츠 유틸리티 자동차이다. 차명인 에비에이터(Aviator)는 조종사를 뜻하는 또다른 영어 단어이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포드 익스플로러의 뱃지 엔지니어링 차량인 머큐리 마운티니어를 기반으로 한 중형 SUV 차량이었다가, 2019년 재출시되었다.[9] 따라서 익스플로러의 플랫폼을 공용한다. 1세대 에비에이터는 3세대 익스플로러를 기반으로 고급화하여 2002년에 출시했다. 대한민국에서는 2004년에 출시됐으며, 302마력 V8 4.6리터 DOHC 가솔린 엔진이 장착됐다. 그러나 네비게이터와 맞먹는 옵션으로 인해 익스플로러는 물론, 미국 현지에서는 사이즈가 더 큰 익스페디션보다 비싼 가격으로 나왔다. 이 때문에 판매 부진으로 2006년에 단종되었으며, 한동안 MKT와 MKX가 자리를 채웠다. 대한민국에서도 에비에이터의 판매가 중지된 후에는 MKX가 대체 모델로 수입되었다. 이후 201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서 SUV가 세단보다 더 인기몰이를 하기에 2세대 에비에이터로 부활시켰다. 6세대 익스플로러의 모노코크 후륜구동 기반 플랫폼을 기반으로 2018년에 출시되었다. 링컨 최초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이다. 대한민국에는 2020년 4월 21일에 405마력 V6 3.0리터 가솔린 트윈터보 사양이 우선 들어왔으며, 동년 9월 2일에는 V6 3.0리터 가솔린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도 추가했다.[10]
노틸러스
노틸러스(Nautilus)는 링컨에서 판매하는 자동차이다. 2018년 출시하였으며 MKX의 페이스리프트 모델로 출시되면서 영어로 앵무조개라는 뜻의 노틸러스(Nautilus)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되었다. 엔진은 포드의 2.7 에코부스트 엔진을 사용했으며 333마력의 출력을 냈다. 차량의 전장은 4820mm로 싼타페, 쏘렌토 등의 차량과 경쟁한다. 2021년 페이스리프트 모델이 공개되었다. 대한민국에는 2022년 3월 17일 출시하였으며 트림은 200A 셀렉트와 202A 리저브가 있다. 2023년 형제차량인 포드 엣지와 함께 단종될 예정이다.[11]
코세어
코세어(Corsair)는 링컨의 준중형 스포츠 유틸리티 자동차다. 차명인 코세어(Corsair)는 해적을 뜻하는 또다른 영어 단어이다. 2020년 기준 링컨에서 가장 많이 팔린 모델로, 사실상 링컨의 대표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코세어는 2019년 4월 17일 뉴욕 오토쇼에서 최초로 공개되었다. 4세대 이스케이프와 플랫폼을 공유하며, MKC의 후속 모델이다. 링컨 브랜드의 새로운 작명법으로 인해 생겨난 에비에이터, 노틸러스 및 기존에 있었던 컨티넨탈과 네비게이터 이후 생겨난 이름이다. 또한 포드의 차량에도 쓰였던 이름인데, 영국의 포드와 흑역사 취급받는 에드셀에서 판매된 차량의 이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생산은 미국 켄터키 주 루이빌 공장에서 이루어지며, 중국 사양은 지린성 창춘시에서 이루어진다. 차량의 가격은 미국 시장에서 37,100 달러에 판매되며 가솔린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사양으로 구성되었다. 포드 C2 플랫폼이 적용되며, 파워트레인으로는 2.0L 에코부스트/2.3L 에코부스트 가솔린 터보 엔진이 적용되고 이와 함께 8단 자동변속기가 적용되는 전륜구동/4WD 차량이다. 2019년 미국 시장에서는 총 25,815대가 판매되었다. 대한민국에는 2020년 4월 28일부터 사전계약을 실시하여 그해 5월 19일 출시되었다. 파워트레인과 트림은 에코부스트 2.0L 가솔린 터보 리저브 단일 모델만 시판된다. 가격은 개별소비세 인하 적용된 5,640만원으로 책정됐다.[12]
동영상
각주
- ↑ 〈Lincoln〉, 《한국수입자동차협회》
- ↑ 하영선 기자, 〈(브랜드 히스토리) 100년 역사 '링컨'..아메리칸 럭셔리카의 상징〉, 《조선닷컴》, 2018-07-27
- ↑ 〈링컨 헨리 릴랜드 Henry M.leland〉, 《홀스레스바이클》, 2017-12-24
- ↑ 4.0 4.1 4.2 오토카코리아 편집부, 〈컨티넨탈로 대표되는 링컨의 100년 이야기〉, 《아이오토카》, 2016-11-30
- ↑ 5.0 5.1 정의식 기자, 〈(세계의 명차 브랜드 ⑯ 링컨)미국 대통령 전용차로 명성, 아메리칸 클래식 럭셔리 카〉, 《CNB저널》, 2014-03-24
- ↑ 6.0 6.1 6.2 〈링컨 브랜드 스토리 - 아메리칸 클래식과 럭셔리〉, 《라이드매거진》, 2014-03-06
- ↑ 7.0 7.1 7.2 모비티, 〈미국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 링컨의 역사〉, 《티스토리》, 2017-04-05
- ↑ 〈링컨 네비게이터〉, 《위키백과》
- ↑ 〈링컨 에비에이터〉, 《나무위키》
- ↑ 〈링컨 에비에이터〉, 《위키백과》
- ↑ 〈링컨 노틸러스〉, 《위키백과》
- ↑ 〈링컨 코세어〉, 《나무위키》
참고자료
- 링컨 컨티넨탈 공식 홈페이지 - https://www.lincoln.com/
- 링컨 컨티넨탈 코리아 공식 홈페이지 - https://www.lincoln-korea.com/vehicles/continental/
- 박홍준 기자, 〈미국 상징하는 車, 캐딜락⋅링컨..한국 시장 성적표는?〉, 《데일리카》, 2018-01-05
- 류강훈 기자, 〈美링컨컨티넨탈 80주년 '코치도어' 에디션 2일만에 매진〉, 《중앙일보》, 2019-01-22
- 김상환 기자, 〈(중국소식) 링컨, 中서 2만3978대 리콜…주행 중 문 열림 결함 발견〉, 《모토그래프》, 2019-05-02
- 김훈기 기자, 〈(중국소식) 링컨의 플래그십 세단 '컨테넨탈'의 운명은?〉, 《오토헤럴드》, 2019-08-20
- 김상준 기자, 〈코로나19 돌파구, 미국차 '파격할인' 최대 25% 깎아준다〉, 《미디어펜》, 2020-03-03
- 김혁수 기자, 〈링컨, MKZ에 이어 ‘컨티넨탈’ 폐지…SUV만 남는다〉, 《한국일보》, 2020-07-05
- 강홍구, 〈미국의 포드자동차 이야기〉, 《타고》, 2020-12-07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