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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9년 설립된 알파 로메오 소속으로 여러 그랑프리 레이스에 참가했던 엔초 페라리는 1932년에 카레이서 생활을 그만두고 레이싱 팀을 관리하며 자동차 개발에 몰두했다. 그러던 중 1938년, 알파 로메오가 엔초 페라리의 레이싱 팀인 스쿠데리아 페라리를 흡수하 고 자신을 내쫓으려 하자 엔초 페라리는 알파 로메오를 떠나게 된다. 엔초 페라리는 알파 로메오의 훼방으로 인해 앞으로 4년간 자신이 개발하는 차량에 페라리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이 때문에 엔초 페라리는 1939년에 설립한 Auto Avio | + | 1929년 설립된 알파 로메오 소속으로 여러 그랑프리 레이스에 참가했던 엔초 페라리는 1932년에 카레이서 생활을 그만두고 레이싱 팀을 관리하며 자동차 개발에 몰두했다. 그러던 중 1938년, 알파 로메오가 엔초 페라리의 레이싱 팀인 스쿠데리아 페라리를 흡수하 고 자신을 내쫓으려 하자 엔초 페라리는 알파 로메오를 떠나게 된다. 엔초 페라리는 알파 로메오의 훼방으로 인해 앞으로 4년간 자신이 개발하는 차량에 페라리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이 때문에 엔초 페라리는 1939년에 설립한 오토 에비오 콘스트러지오니(Auto Avio Construzioni)에서 처음 제작한 Tipo 815에도 페라리라는 이름을 붙이지 못하였다. 이 차량은 8기통 1.5L 가솔린 엔진을 달고 1940년부터 13번의 레이스에서 6번의 우승을 거두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자동차 생산이 중단되자 군에 군수물자를 납품하며 큰 돈을 벌었다. 전쟁 중 폭격으로 인해 파괴된 공장이 이탈리아 마라넬로에 새롭게 건설되고, 자동차 생산이 재개되자 엔초 페라리는 1947년 처음으로 12기통(12V) 엔진을 사용하여, 페라리의 이름을 단 최초 모델인 페라리 125S를 출시했다. 페라리 125 스포츠는 1947년 피아첸차 서킷에 데뷔한 지 2주 만에 우승을 차지해 주목을 받았다. 1년 후, 엔초 페라리는 토리노(Torino) 모터쇼에서 첫 도로용 양산형 스포츠카인 페라리 166을 발표했다. 페라리 166은 여러 레이싱 대회를 휩쓸며 미국과 영국에까지 페라리의 이름을 알렸다. 그 후 출시된 페라리 212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자동차 디자인 회사 [[피닌파리나]](Pininfarina)와 합작을 통해 출시되었는데, 이때부터 피닌파리나가 페라리의 디자인을 맡게 되었다. 이후 엔초 페라리는 4.1L 엔진에 220마력의 힘을 가진 페라리 340 아메리카(Ferrari 340 America), 페라리 250 유로파(Ferrari 250 Europa), 페라리 375 아메리카(Ferrari 375 America) 등을 잇달아 출시하며 유럽의 수많은 레이싱 대회에 참가했다. 엔초 페라리는 당시 모든 차량 개발의 최우선 조건을 최고 시속 달성에 두고 오로지 경주에서 우승하는 데 몰입했다. 결국 엔초 페라리는 1951년 영국 그랑프리에서 당시 세계 최고였던 알파 로메오의 레이싱 팀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1956년, 아들 알프레도 페라리가 스물넷에 지병으로 죽자, 엔초 페라리는 공장에서 생활하며 자동차 개발에만 매진했다. 6기통 엔진을 탑재하여, 대중적인 페라리를 원했던 아들을 기억하기 위해 엔초 페라리는 그 이후에 나온 모든 6기통 엔진 차종에 아들의 별명인 디노란 이름을 붙였다. 뛰어난 성능과 그랑프리 연속 우승으로 전설의 슈퍼카로 불리던 페라리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게 되자 엔초 페라리는 피아트(Fiat)에 도움을 요청하게되고, 페라리는 1969년에 50% 지분을 피아트에 넘겨준 뒤 피아트 그룹 산하로 들어가게 된다. |
− | 1970년대는 슈퍼카 경쟁이 본격화되던 시기였다. 람보르기니 미우라를 비롯해 미국의 고성능 자동차인 머슬카와 영국의 애스턴 마틴, 이탈리아의 데토마소 판테라의 등장으로 엔초 페라리는 더욱 강력한 스포츠카를 만드는 데 몰두했다. 이렇게 하여 1984년에 탄생한 모델이 전 세계에 슈퍼카 신드롬을 일으켰던 페라리 | + | 1970년대는 슈퍼카 경쟁이 본격화되던 시기였다. 람보르기니 미우라를 비롯해 미국의 고성능 자동차인 머슬카와 영국의 애스턴 마틴, 이탈리아의 데토마소 판테라의 등장으로 엔초 페라리는 더욱 강력한 스포츠카를 만드는 데 몰두했다. 이렇게 하여 1984년에 탄생한 모델이 전 세계에 슈퍼카 신드롬을 일으켰던 페라리 288 GTO이다. 페라리 288GTO는 트윈 터보 차저를 부착한 V8 2.9L 엔진의 스포츠카이며 최대 출력 400마력, 최고 속도 304km/h가 주행가능한 모델이다. 엄청난 성능과 속도에도 불구하고 페라리 288 GTO의 명성은 경기 중 사고로 선수와 관중이 사망했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했다. 엔초 페라리는 페라리 288 GTO의 후속 모델 개발에 착수해 1987년에 페라리 40주년 기념 모델 페라리 F40을 발표했다. 엔초 페라리의 마지막 개발 모델이자 페라리의 최대 걸작으로 꼽히는 페라리 F40은 후륜구동 방식의 2인승 스포츠카이다. 1988년 엔초 페라리 사망 이후, 페라리는 90% 지분을 피아트에 넘기면서 피아트의 계열사로 편입되었지만 피아트와는 별도의 법인으로 운영되고 있다. 1991년 루카 디 몬테제몰로가 페라리의 새 회장으로 선임되었다. 그는 페라리 최초 4륜구동 라인 페라리 FF와 페라리의 강력한 모델 페라리 F12 를리네타 등 획기적인 모델들을 선보이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동시에 과거의 핵심 가치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ref> 페라리, 네이버 지식백과 -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5&oid=030&aid=0002419734</ref><ref> 오토모빌매거진,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8989804&memberNo=15178086 (페라리 창립 70주년 기념) 페라리의 역사#1]〉, 《전자신문》, 2015-11-30</ref><ref> 오토모빌매거진,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9164150&memberNo=15178086 (페라리 창립 70주년 기념) 페라리의 역사#2]〉, 《전자신문》, 2015-11-30</ref><ref> 오토모빌매거진,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9284120&memberNo=15178086 (페라리 창립 70주년 기념) 페라리의 역사#3]〉, 《전자신문》, 2015-11-30</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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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14일 (월) 11:57 판
페라리(Ferrari)는 이탈리아 명품 자동차 브랜드이자 고성능 스포츠카를 제조 및 판매하는 회사이다. 1929년 창업자인 엔초 페라리(Enzo Ferrari)가 만든 포뮬러원 경주팀 스쿠데리아 페라리(Scuderia Ferrari)가 페라리의 전신이다. 페라리의 엠블럼에서 볼 수 있는 'SF'는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머리글자에서 온 것이다. 초고성능의 값이 비싼 스포츠카를 소량 생산하는 한편, 스포츠카의 각종 경기에 페라리 차동차를 참가시켜 세계 자동차경주사상 가장 많은 승리를 획득한 차종으로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모데나(Modena) 시 교외에 소규모 공장을 가지고 있으며, 이탈리아 자동차계의 지보적 존재라는 평가를 받는다. 1969년에 이탈리아 최대의 자동차 회사인 피아트(Fiat SpA)의 산하로 들어갔다.
주요 인물
- 엔초 페라리(1898년 ~ 1988년) :
관계사
피아트
피아트(Fiat)는 피아트 크라이슬러의 자동차 브랜드이다. 1899년 조반니 아넬리(Giovanni Agnelli)를 포함하는 투자자들의 무리에 의해 설립되었다. 피아트의 계열사로는 페라리, 마세라티, 알파로메오, 란치아 등이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1970년 4월 아시아자동차에 의해 소형차 124가 시판되어 1973년까지 생산되었고, 이후 1979년 기아자동차에 의해 중형차 132도 시판되었지만, 1981년 자동차공업 합리화 조치로 인해 생산이 중단되어 단종되었다. 이후 대한민국에 피아트 판다, 란치아 브랜드 등이 런칭하였지만 인기를 끌지 못하고 철수하였다. 크라이슬러를 완전히 인수한 이후, 2013년 1월 크라이슬러의 네트워크를 통해 피아트가 대한민국에 다시 진출하였다. 하지만 2017년 9월 지프의 인기와 판매 부진으로 수입이 중단되었다. 미국에서는 전륜구동 소형 해치백인 피아트 500 시리즈만 판매 중이다. 대한민국에는 피아트 500 시리즈와 크라이슬러 산하 닷지 브랜드의 크로스오버인 닷지 저니를 피아트 버전으로 출시한 프리몬트도 대한민국에 출시되었으나, 2014년에 판매 부진으로 수입이 중단되었고, 대신 2016년에 피아트 500X가 들어왔다. 이후 크라이슬러를 자본 제휴하기 시작하여 자회사로 편입하였다.[1] 피아트 브랜드 자동차는 세계 여러 곳에 세워져 있다. 이탈리아를 제외한 가장 큰 생산국은 브라질이다. 아르헨티나, 폴란드, 멕시코에 공장을 두고 있으며, 다른 국가에서 자사 제품의 라이센스 제조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피아트는 9개의 '올해의 유럽 자동차 상'을 비롯해 많은 국제적인 상을 받았으며, 여러 차례 일산화탄소(CO) 최하위권에 랭크되었다.
역사
1929년 설립된 알파 로메오 소속으로 여러 그랑프리 레이스에 참가했던 엔초 페라리는 1932년에 카레이서 생활을 그만두고 레이싱 팀을 관리하며 자동차 개발에 몰두했다. 그러던 중 1938년, 알파 로메오가 엔초 페라리의 레이싱 팀인 스쿠데리아 페라리를 흡수하 고 자신을 내쫓으려 하자 엔초 페라리는 알파 로메오를 떠나게 된다. 엔초 페라리는 알파 로메오의 훼방으로 인해 앞으로 4년간 자신이 개발하는 차량에 페라리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이 때문에 엔초 페라리는 1939년에 설립한 오토 에비오 콘스트러지오니(Auto Avio Construzioni)에서 처음 제작한 Tipo 815에도 페라리라는 이름을 붙이지 못하였다. 이 차량은 8기통 1.5L 가솔린 엔진을 달고 1940년부터 13번의 레이스에서 6번의 우승을 거두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자동차 생산이 중단되자 군에 군수물자를 납품하며 큰 돈을 벌었다. 전쟁 중 폭격으로 인해 파괴된 공장이 이탈리아 마라넬로에 새롭게 건설되고, 자동차 생산이 재개되자 엔초 페라리는 1947년 처음으로 12기통(12V) 엔진을 사용하여, 페라리의 이름을 단 최초 모델인 페라리 125S를 출시했다. 페라리 125 스포츠는 1947년 피아첸차 서킷에 데뷔한 지 2주 만에 우승을 차지해 주목을 받았다. 1년 후, 엔초 페라리는 토리노(Torino) 모터쇼에서 첫 도로용 양산형 스포츠카인 페라리 166을 발표했다. 페라리 166은 여러 레이싱 대회를 휩쓸며 미국과 영국에까지 페라리의 이름을 알렸다. 그 후 출시된 페라리 212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자동차 디자인 회사 피닌파리나(Pininfarina)와 합작을 통해 출시되었는데, 이때부터 피닌파리나가 페라리의 디자인을 맡게 되었다. 이후 엔초 페라리는 4.1L 엔진에 220마력의 힘을 가진 페라리 340 아메리카(Ferrari 340 America), 페라리 250 유로파(Ferrari 250 Europa), 페라리 375 아메리카(Ferrari 375 America) 등을 잇달아 출시하며 유럽의 수많은 레이싱 대회에 참가했다. 엔초 페라리는 당시 모든 차량 개발의 최우선 조건을 최고 시속 달성에 두고 오로지 경주에서 우승하는 데 몰입했다. 결국 엔초 페라리는 1951년 영국 그랑프리에서 당시 세계 최고였던 알파 로메오의 레이싱 팀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1956년, 아들 알프레도 페라리가 스물넷에 지병으로 죽자, 엔초 페라리는 공장에서 생활하며 자동차 개발에만 매진했다. 6기통 엔진을 탑재하여, 대중적인 페라리를 원했던 아들을 기억하기 위해 엔초 페라리는 그 이후에 나온 모든 6기통 엔진 차종에 아들의 별명인 디노란 이름을 붙였다. 뛰어난 성능과 그랑프리 연속 우승으로 전설의 슈퍼카로 불리던 페라리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게 되자 엔초 페라리는 피아트(Fiat)에 도움을 요청하게되고, 페라리는 1969년에 50% 지분을 피아트에 넘겨준 뒤 피아트 그룹 산하로 들어가게 된다. 1970년대는 슈퍼카 경쟁이 본격화되던 시기였다. 람보르기니 미우라를 비롯해 미국의 고성능 자동차인 머슬카와 영국의 애스턴 마틴, 이탈리아의 데토마소 판테라의 등장으로 엔초 페라리는 더욱 강력한 스포츠카를 만드는 데 몰두했다. 이렇게 하여 1984년에 탄생한 모델이 전 세계에 슈퍼카 신드롬을 일으켰던 페라리 288 GTO이다. 페라리 288GTO는 트윈 터보 차저를 부착한 V8 2.9L 엔진의 스포츠카이며 최대 출력 400마력, 최고 속도 304km/h가 주행가능한 모델이다. 엄청난 성능과 속도에도 불구하고 페라리 288 GTO의 명성은 경기 중 사고로 선수와 관중이 사망했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했다. 엔초 페라리는 페라리 288 GTO의 후속 모델 개발에 착수해 1987년에 페라리 40주년 기념 모델 페라리 F40을 발표했다. 엔초 페라리의 마지막 개발 모델이자 페라리의 최대 걸작으로 꼽히는 페라리 F40은 후륜구동 방식의 2인승 스포츠카이다. 1988년 엔초 페라리 사망 이후, 페라리는 90% 지분을 피아트에 넘기면서 피아트의 계열사로 편입되었지만 피아트와는 별도의 법인으로 운영되고 있다. 1991년 루카 디 몬테제몰로가 페라리의 새 회장으로 선임되었다. 그는 페라리 최초 4륜구동 라인 페라리 FF와 페라리의 강력한 모델 페라리 F12 를리네타 등 획기적인 모델들을 선보이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동시에 과거의 핵심 가치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1][2][3][4]
로고의 유래
현재 페라리 로고 안에 있는 검은 말(카발리노 람판테)은 프란시스코 바라카(Francesco Baracca) 백작이 몰던 전투기에 그려져있던 말이다. 당시 1차 세계 대전 중 이탈리아의 에이스 조종사였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유명했지만, 1차 세계 대전 중 사망하게 되고, 그의 부모님이 엔초 페라리를 찾아와 그들의 아들의 전투기에 있는 말을 레이스 차량에 행운의 상징으로 사용해달라는 요청에 흔쾌히 허락하며 레이스 차량에 부착하게 되었다. 후에 배경은 고향 모데나의 색깔인 노란색을 집어넣으며, 현재의 페라리 로고가 탄생하게 되었다. 로고 하단에 나와있는 SF는 엔초 페라리의 레이싱팀인 스쿠데리아 레라리의 약자로 로고에 사용되고 있다.[5]
특징
기술력
- 에어로 다이나믹 : 페라리는 에어로 다이내믹(Aerodynamic) 기술과 공기저항에 역량을 기울인다.
- V12 엔진 :
- 마네티노 : 마네티노(Manettino)
- 가변 부스트 매니지먼트 : 가변 부스트 매니지먼트(Variable Boost Management)
- F1 기반 듀얼클러치 변속기 : F1 기반 듀얼클러치 변속기(Transmission)
- 4RM : 4RM(4 Ruote Motrici)
- 에너지 회생 시스템 : 에너지 회생 시스템(KERS, Kinetic Energy Recovery System)
- 전기 변색 소자 루프 : 전기 변색 소자 루프(Electrochromic Roof)
- 로쏘 코르사 : 로쏘 코르사(Rosso Corsa)
각주
- ↑ 페라리, 네이버 지식백과 -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5&oid=030&aid=0002419734
- ↑ 오토모빌매거진, 〈(페라리 창립 70주년 기념) 페라리의 역사#1〉, 《전자신문》, 2015-11-30
- ↑ 오토모빌매거진, 〈(페라리 창립 70주년 기념) 페라리의 역사#2〉, 《전자신문》, 2015-11-30
- ↑ 오토모빌매거진, 〈(페라리 창립 70주년 기념) 페라리의 역사#3〉, 《전자신문》, 2015-11-30
- ↑ 황교희, 〈같은 듯 다른 '포르쉐'와 '페라리'의 말 로고 의미〉, 《네이버 블로그》, 2010-07-14
참고자료
- 페라리 공식 홈페이지 - http://www.ferrari.com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