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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5일 (수) 09:01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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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랜타(Atlanta, 문화어: 애틀란타)는 미국 동남부 조지아주의 주도이다. 인구는 약 50만 명으로 조지아주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이며 미국에서 38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광역권 인구 6,144,050명으로 미국 내에서 9번째로 규모가 큰 광역도시권의 중심 도시이다.[1]
개요[편집]
- 행정 단위: 미국 조지아주 도시
- 면적: 347.1 km²
- 지역어: 영어
- 정부 공식 홈페이지: https://www.atlantaga.gov/
애틀랜타는 미국 동남부 지역의 최대 산업도시이다. 1837년 웨스턴-애틀랜틱 철도(Western & Atlantic railroad)의 종착지로 처음 건설되었다. 도시의 첫 이름은 터미너스(Terminus)였으나, 이후에 마싸스빌(Marthasville)로 불리다가 1847년에 애틀랜타로 결정되었다. 철도의 부설로 탄생한 애틀랜타는 남북전쟁(1861~1865) 이전에 이미 남부의 중요한 산업도시로 성장했다. 남북전쟁 중 남부군의 병참기지 역할을 한 탓에 북부 연방군의 집중적인 공격 대상이 되었다. 애틀랜타는 남북전쟁으로 도시의 대부분이 폐허로 변했으나 전후에 빠르게 복구되었다. 1868년에 조지아주의 새로운 수도가 되었고, 재건된 남부를 의미하는 소위 ‘신남부’의 핵심 산업도시로 성장했다. 이때 코카콜라 회사도 창업했다. 2차 대전 중에는 군수품 생산기지로 경제적 호황을 맞아 인구가 급증했다. 2차 대전 종식 후에도 계속 성장을 이어갔다. 그러나 사회적 발전은 느려서 1960년 초까지 인종차별이 법적으로 인정되었다. 학교를 비롯한 모든 공공시설에서 흑백은 철저하게 분리되었다. 1960년대 애틀랜타는 민권운동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민권운동을 이끈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애틀랜타 출신이었다. 애틀랜타 흑인대학 학생들이 차별 철폐 데모에 적극 참여하였다. 1964년에 연방 민권법이 제정되자 애틀랜타에서 흑백분리가 철폐되었다. 거기다 1970년 이후 흑인이 애틀랜타 인구의 과반수이상을 차지하게 되면서 흑인들의 정치적 입지가 강화되었다. 1996년 하계 올림픽을 개최하며 애틀랜타는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하츠필드-잭슨 국제공항을 소유한 애틀랜타는 세계 항공 교통의 허브이다. 애틀랜타에는 미국 도시들 중 가장 많은 대기업 본사가 자리 잡고 있을 뿐 아니라 50개국 이상이 무역대표기관이나 영사관을 두고 있다. 교육기관으로 대표적인 주립대학으로는 미국 3대 명문 공과대학 중 하나이며 NASA 국장 및 노벨상 수상자들을 줄줄이 배출하는 조지아 공과대학교(조지아텍, Georgia Tech)가 유명하며 조지아 주립대학교(Georgia State)가 있다. 애틀랜타에는 민권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기념 사적지 외에도 전직 대통령 지미 카터(Jimmy Carter)의 기념 도서관 겸 박물관이 있다.[2]
지리 및 기후[편집]
애틀랜타 시는 총면적 343.0km²이다. 평균 고도는 해수면 기준 대략 320m로, 채터후치강 남부의 능선 꼭대기에 있다. 덴버에서 동쪽에 있는 모든 도시 중 평균고도가 가장 높은 곳이다. 동부 대륙 분할선이 애틀랜타를 지나간다. 북부와 서부에 내린 비나 눈이 녹은 물은 채터후치강을 통해 멕시코만으로 향하지만 남부와 동부에 내린 비는 최종적으로 대서양으로 향한다. 북서부 경계에 위치한 강의 자연 서식지 대부분은 채터후치강 국립 휴양지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그러나 가뭄이 지속되는 동안에 생활용수 사용량이 급증하고, 반대로 홍수 시에는 불어난 물을 타고 공해 물질이 남부로 확산되어 남쪽으로 조지아주와 접한 앨라배마주나 플로리다주와 분쟁이 발생하기도 한다.
미국 동남부 지방의 특색인 온난한 아열대성 기후를 보이며 겨울에는 온화해 눈이 거의 안 오고 여름에는 아주 더운 기후다. 미국 전체로 보았을 때는 습한 편에 속한다. 아열대답게 여름같은 날씨는 4월부터 시작해서 10월까지 이어진다고 보면 된다. 4월 평균 최고 기온이 이미 20°C를 넘어서며, 이러한 상태가 10월까지 이어진다. 10월부터 12월까지 거의 다른 도시의 가을 날씨를 유지하고, 1~2월도 추운 편이긴 하나 2월 말부터는 다시 봄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눈은 거의 매년 오지만, 쌓이지 않고 겨울이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3]
역사[편집]
애틀랜타와 그 외곽들이 건설된 지방은 원래 크리크족과 체로키족 인디언들의 영토였다. 1813년 미영 전쟁에서 영국군들을 보조하는 데 그들에 의하여 보충된 크리크족은 앨라배마주 남서부에 있는 포크밈스를 공격하여 불태웠다. 갈등이 확대되었고 크리크 전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응답에 미국은 오늘날 조지아주 더큘라에서 호그산의 정상에 포트대니얼과 포트길머를 포함한 오크멀지강과 채터후치강을 따라 요새들을 건설하였다. 포트길머는 소나무로 믿어진 큰 나무를 따서 이름이 지어진 "피치트리 스탠딩"으로 불린 중요한 인디언 현장의 옆으로 위치하였다. "Pitch"란 단어가 "peach"로 오해되어 현장의 이름이 되었다. 현장은 전통적으로 피치트리 지류가 채터후치강으로 들어가 흐르는 절정에 크리크족과 체로키족 대지들 사이의 경계에 인디언들의 회의 장소로 특정을 지었다. 요새는 곧 포트피치트리로 다시 이름이 지어졌다.
디케이터를 포함한 메트로 지역의 동부에 있는 크리크족의 대지는 1823년 백인들의 정착지로 개장되었다. 1835년 체로키족 국가의 지도자들은 결국적으로 "눈물의 길"로 이끈 결의서 뉴에코타 조약 아래 서부로 외부의 대지를 위한 교환에서 정부에게 자신들의 대지를 양도하였다.
1836년 조지아주 총회는 중서부로 향하는 통상로를 마련하는 데 웨스턴 철도와 애틀랜틱 철도를 건설하는 데 투표하였다. 1838년과 1839년 사이에 체로키족들의 강제 퇴거에 이어 새롭게 인구가 줄어든 지역은 철도의 건설을 위하여 개장되었다. 그 일은 지역이 "애틀랜타"로 빠르게 짧아진 "애틀랜티카-퍼시피카"로 새로 이름이 지어지는 데 제안되었다. 타운은 1847년 12월 29일 애틀랜타로 합병되었다. 인구는 1860년까지 9,544명으로 자라났다.
남북전쟁이 일어난 동안 애틀랜타는 중요한 철도와 군사 공급지로 지냈다. 1864년 도시는 북군의 주요 침입의 목표가 되었다. 이제 애틀랜타에 의하여 덮어진 지역은 몇몇 전투들의 장면이었다. 북군의 윌리엄 T. 셔먼 장군은 교회와 병원들을 살려두었어도 자신의 남부로 행렬을 위한 준비에 애틀랜타가 땅으로 불에 타도록 명령을 내렸다.
도시의 재건은 단계적이었다. 1868년 애틀랜타는 주도로 지내는 데 5번째 도시가 되었다. 하지만 도시가 번창하면서 민족과 인종의 긴장들이 쌓였다. 1906년 애틀랜타 인종 폭동은 최소한 27명의 사망과 70명의 부상을 남겼다. 1939년 12월 15일 도시는 본고장 출신 마거릿 미첼의 베스트셀링 소설에 기초를 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개봉을 개최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동안 매리에타 외곽에서 벨 에어크래프트 공장 같은 제조업이 도시의 인구의 경제를 자랑하는 도움을 주었다. 전쟁이 끝난지 짧은 후에 애틀랜타에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가 창립되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민권운동을 알리는 도움을 준 미국 대법원의 현저한 브라운 대 토피카 교육위원회 재판 결정이 일어나 애틀랜타에서 인종적 긴장들은 폭력의 행위로 자신들을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1960년대에 애틀랜타는 침례교 목사 마틴 루터 킹 주니어와 도시의 역사적 흑인 대학들에서 온 학생들이 운동의 리더십에서 주요 역할을 하면서 민권 운동의 주요 결성 중심지였다. 2개의 가장 중요한 민권 조직들 - 남부기독교지도회의와 학생 비폭력 조정 위원회가 애틀랜타에 자신들의 본부를 두었다.
민권운동 시대 동안 어떤 인종 항의들에 불구하고, 애틀랜타의 정치와 비지니스 지도자들은 "미워하는 데 너무 바쁜 도시"로서 애틀랜타의 이미지를 육성하는 데 노력하였다. 1961년 아이번 앨린 주니어는 애틀랜타의 공공 학교들의 인종 차별 대우 폐지를 지지하는 데 몇몇의 남부 백인 시장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흑인 애틀랜타 시민들은 1973년 첫 아프리카계 미국인 시장의 선거와 함께 자라나는 정치적 영향력을 논증하였다. 그들은 20세기 후반 동안 도시에서 대다수 민족이 되었으나 교외화, 가격 상승, 겅제 급등과 새로운 이주자들이 도시에서 그들의 퍼센티지를 1990년 66.8%에서 2004년 대략 54%로 줄였다. 백인 거주민들의 유입에 추가로 히스패닉과 아시아인 이민자들도 또한 도시의 인구 통계를 변경하고 있다.
1990년 애틀랜타는 1996년 하계 올림픽의 개최지로서 선발되었다. 공고에 이어 애틀랜타는 도시의 공원들, 스포츠 시설들과 교통을 향상시키는 데 몇몇의 주요 건설 계획들을 착수하였다. 애틀랜타는 하계 올림픽을 개최하는 데 미국의 3번째 도시가 되었다. 경기 자신들은 센테니얼 올림픽 공원 폭발 사건에 의하여 훼손되었다.
현대의 애틀랜타는 어쩌다 재빠른 번창과 도시의 스프롤 현상을 경험한 도시들을 위하여 포스터 어린이로 숙고되었다. 하지만 도시는 그 친환경 정책들로 미국 환경보호청 같은 기관들에 의하여 위탁되어 왔다.[4]
경제[편집]
애틀랜타는 도시의 경계들 안에서 본사를 둔 포춘 500 기업들의 수에서 뉴욕과 휴스턴의 뒤로 3위에 있다. 포춘 100 기업들 코카콜라 컴퍼니, 홈디포와 유나이티드 파셀 서비스를 포함한 몇몇의 주요 국내와 국제 회사들이 애틀랜타 혹은 그 가까운 외곽들에 본사를 두었다. 애틀랜타와 메트로 지역들을 주위로 어떤 주요 기업들을 위한 다른 본사들은 아비스, 칙필레, 어스링크, 에퀴팩스, 조지아-퍼시픽, 옥스퍼드 산업, 서던 컴퍼니, 선트러스트 은행과 와플하우스를 포함한다. 포춘 1000 기업들의 75 퍼센트 이상은 애틀랜타 지역에 존재하고, 지방은 대략 1,250개의 다국적 주식회사들의 사무실을 주최한다.
애틀랜타는 상당한 크기의 금융 부문을 가지고 있다. 미국에서 자산 보유에 의한 7번째로 가장 큰 은행 선트러스트 은행은 다운타운에 그 본사를 두었다. 연방 준비 제도는 애틀랜타에 지구 본부를 가지고 있으며 딥사우스의 거의를 감시하는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은 다운타운에서 미드타운으로 다시 배치되었다. 도시, 주와 공민 지도자들은 도시가 훗날의 미주 자유 무역 지대의 사무국의 본거지를 지내는 장기적 희망을 품는다.
도시는 주요 케이블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중심지이다. 테드 터너는 애틀랜타에서 터너 브로드캐스팅 시스템의 매체 제국을 시작하여 오늘날 센테니얼 올림픽 공원에 인접한 CNN 센터에 케이블 뉴스 네트워크의 본부를 설립하였다. 그의 회사가 번창하면서 그 다른 채널들 - 카툰 네트워크, 부메랑, TNT, 터너 사우스, CNN 인터내셔널, CNN 엔 에스파뇰, CNN 헤드라인 뉴스와 CNN 에어포트 네트워크도 애틀랜타에 자신들의 운영들에 중심을 두었다.
교통[편집]
승객과 항공기의 교통들에 의하여 측정되면서 세계에서 가장 바쁜 공항 하츠필드 잭슨 애틀랜타 국제공항은 애틀랜타와 많은 국내와 국제 목적지들 사이에 항공 서비스를 마련한다.
도시로부터 발산하는 무료 고속도로의 포괄적인 망상 조직과 함께 애틀랜타 시민들은 지방에서 교통의 지배적인 형식으로서 자신들의 차량들에 의지한다. 애틀랜타는 지방의 내부와 그 둘러싸는 외곽들 사이에 경계를 이루러 온 "the Perimeter"로 지방적으로 알려진 순환 도로 인터스테이트 285에 의하여 대부분 에워싸졌다.
애틀랜타에서 3개의 주요 주간 고속도로들이 모아지는 데 둘은 도시의 중앙을 통하여 다운타운 커넥터를 형성하는 데 합친다. 합쳐진 고속도로는 하루에 340,000 대 이상의 차량들을 나르고, 미국에서 주간 고속도로의 10개의 가장 혼잡한 구간들 중의 하나이다.
강한 차량 의지는 차량 홍수에 결과를 가져왔고 도시를 국가에서 가장 오염된 도시들 중의 하나로 만든 애틀랜타의 공해에 기여한다. 메트로폴리탄 애틀랜타에서 공해를 줄이는 도움을 주는 데 1996년 깨끗한 공기 캠페인이 창조되었다.
최근의 세월에 애틀랜타 메트로 지역은 미국에서 가장 긴 평균 통근 시간의 정상에 혹은 그 근처로 순위에 들었다. 또한 애틀랜타 메트로 지역은 국가에서 최악의 교통으로 정상에 혹은 그 근처로 순위에 들기도 하였다.
많은 차량 사용량에 불구하고 메트로폴리탄 애틀랜타 고속 수송 당국 (MARTA)에 의하여 운영된 애틀랜타의 지하철 시스템은 국가에서 7번째로 가장 바쁘다. MARTA는 또한 풀턴, 더캘브와 그위넷 군들 안에 버스 시스템을 운영하기도 한다. 클레이턴, 코브와 그위넷 군들은 열차가 아닌 버스를 이용하는 각각 갈라진 자율적 수송 당국들을 운영한다.
애틀랜타는 철도의 타운으로 시작하여 다운타운에서 거리 수준 아래 교차 노퍽서던과 CSX에 속하는 몇몇의 화물선들과 함께 아직도 주요 철도 교차점으로 지낸다. 그것은 NS에 인먼 야드와 CSX에 틸퍼드 야드 둘다의 철도들을 위하여 주요 분류 야드들의 본거지이다.
관광[편집]
애틀랜타는 세계에서 가장 큰 수족관으로 2005년에 개장한 조지아 수족관을 나타낸다. 그 수족관은 또한 역사에서 미술품, 자연사와 음료들까지 다양한 주제들에 다양한 박물관들을 주최하기도 한다. 도시에서 박물관과 목적지들은 애틀랜타 역사 센터, 카터 센터, 마틴 루터 킹 주니어 국립사적지, 애틀랜타 원형 파노라마 (애틀랜타 전투를 그린 원형 유화)와 남북전쟁 박물관, 그리고 마거릿 미첼 집과 박물관을 포함한다.
피드먼트 공원은 애틀랜타의 많은 축제와 문화적 이벤트들을 주최한다. 애틀랜타 식물원은 공원의 옆에 앉아있다. 도시에세 가장 유명한 미술관들은 가장 유명한 하이 미술관, 애틀랜타 미술 연구소와 조지아 현대 미술관을 포함한다.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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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애틀랜타〉, 《위키백과》
- 〈애틀랜타〉, 《나무위키》
- 〈애틀랜타〉, 《요다위키》
- 〈애틀랜타(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북아메리카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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