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요청.png검수요청.png

"스파이커"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위키원
이동: 둘러보기, 검색
잔글
잔글
35번째 줄: 35번째 줄:
 
60HP는 스파이커를 레이싱카 메이커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 차는 5천073cc 엔진을 얹고 있었지만 레이스를 하기에는 힘이 부족해 배기량을 8천680cc로 늘였다. 이 때문에 모델을 60/80HP로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이유로 스파이커를 첫 4WD로 기록한 여러 자료에 배기량이 틀리게 적혀 있다.
 
60HP는 스파이커를 레이싱카 메이커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 차는 5천073cc 엔진을 얹고 있었지만 레이스를 하기에는 힘이 부족해 배기량을 8천680cc로 늘였다. 이 때문에 모델을 60/80HP로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이유로 스파이커를 첫 4WD로 기록한 여러 자료에 배기량이 틀리게 적혀 있다.
  
사실 네바퀴굴림 장치는 증기기관차 시절부터 시도되었다. 1805년 미국 필라델피아 출신 올리버 에반스가 발명한 수륙양용차 ‘오룩터 앰피볼로스’(Orukter Amphibolos)가 최초의 네바퀴굴림 증기기관차다. 자동차는 1900년 페르디난트 포르쉐가 4WD 승용차를 처음 만들었으나 이 차는 각 바퀴에 전기모터를 달아 구동력을 얻고, 엔진은 전기 공급용으로만 쓰였기 때문에 요즘의 4WD와는 성격이 다르다. 포르쉐 박사의 이 아이디어는 훗날 달 정복에 나선 미국 NASA가 ‘월면차’(루나 로버)에 응용하기도 했다.
+
사실 네바퀴굴림 장치는 증기기관차 시절부터 시도되었다. 1805년 미국 필라델피아 출신 [[올리버 에반스]]가 발명한 수륙양용차 ‘오룩터 앰피볼로스’(Orukter Amphibolos)가 최초의 네바퀴굴림 증기기관차다. 자동차는 1900년 페르디난트 포르쉐가 4WD 승용차를 처음 만들었으나 이 차는 각 바퀴에 전기모터를 달아 구동력을 얻고, 엔진은 전기 공급용으로만 쓰였기 때문에 요즘의 4WD와는 성격이 다르다. 포르쉐 박사의 이 아이디어는 훗날 달 정복에 나선 미국 NASA가 ‘월면차’(루나 로버)에 응용하기도 했다.
  
 
이에 반해 스파이커 레이서는 휘발유 동력기관을 이용한 최초의 4WD 승용차다. 이 차는 사이드밸브 방식의 직렬 6기통 8.5X(보어× 스트로크는 120×128mm여서 정확히는 8천681cc)였다. 1천400rpm에서 최고출력 50마력을 내고 엔진 양쪽에 V형 라디에이터가 달려 있었다.
 
이에 반해 스파이커 레이서는 휘발유 동력기관을 이용한 최초의 4WD 승용차다. 이 차는 사이드밸브 방식의 직렬 6기통 8.5X(보어× 스트로크는 120×128mm여서 정확히는 8천681cc)였다. 1천400rpm에서 최고출력 50마력을 내고 엔진 양쪽에 V형 라디에이터가 달려 있었다.

2021년 7월 24일 (토) 21:44 판

스파이커자동차(Spyker N.V.)
스파이커자동차(Spyker N.V.)

스파이커자동차(Spyker Cars)는 네덜란드의 하이퍼카 메이커로 1999년에 설립되었다. 본사는 네덜란드 젤란트주 제이볼데에 위치해 있다. 스파이커자동차는 야코부스 스파이커(Jacobus Spijker)와 헨드릭 얀 스파이커(Hendrik-Jan Spijker) 형제가 1898년 설립한 스파이커가 모태다. 당시 스파이커는 이미 럭셔리카뿐만 아니라 항공기 엔진도 생산했는데 1925년에 항공기 사업이 중단되고 현재까지 자동차 사업에 매진해 왔다. 원래 회사는 1926년에 역사속으로 사라졌지만, 부가티처럼 1999년에 부활해 지금까지 차량을 제작하고 있다. 트럭을 제조하는 DAF와 함께 네덜란드의 두 자동차 회사 중 하나이다.[1]

그러다 스파이커 자동차는 2010년 스웨덴의 사브(Saab) 자동차를 인수한 이후 오래도록 손실이 축적됐다. 2012년 8월 스파이커는 미국 최대 자동차회사인 GM을 상대로 사브 파산의 책임을 물어 약 30억 달러(약 3조원)의 피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디트로이트 지방 법원은 GM의 행동은 계약권리에 해당되기에 정당했으며 사브의 파산 책임이 없다고 판결을 내렸다. 네덜란드의 작은 자동차 업체가 미국 최대의 글로벌 자동차 기업 GM을 상대로 패소하면서 그에 따른 피해와 손실액은 막대했다. 2000년부터 2014년 현재까지 스파이커의 차량 판매량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000년 1대, 2001년 2대, 2002년 3대, 2003년 12대, 2004년 31대, 2005년 48대, 2006년 94대, 2007년 26대, 2008년 43대, 2009년 36대, 2010년 0대, 2011년 12대, 2012년 2대, 2013년 0대, 2014년 0대다. 2014년 12월 18일 스파이커자동차는 파산을 선언했다.[2]

그 후 공식적으로는 2014년 12월에 파산하였지만 아직 회사는 그대로 남아 있는 상황이다. 2015년 7월에는 다시 재기에 성공했다. 파산과 재기를 반복한다는 점에서는 굼퍼트와도 비슷한 느낌이 든다. 미국 오레건주에 위치한 비행기 제작업체 Volta Volaire와 인수합병을 추진 중이다. 합병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스파이커는 슈퍼카와 비행기를 둘다 제작하는, 과거의 회사의 모습과 비슷해 질 것이다.[3]

타고 월렌트 대형 가로 배너.jpg
이 그림에 대한 정보
[타고] 1개월 단위로 전기차가 필요할 때! 타고 월렌트 서비스

역사

네덜란드 왕실의 황금마차
스파이커 60HP
스파이커 C4
스파이커 C8 라비올렛
스파이커 C8 에일러론
스파이커 C12 라트루비에
스파이커 B6 베네토르 스파이더
스파이커 C12 자가토
스파이커 C8 프렐리에이터
  • 마차 제작자였던 스파이커 형제가 창업

"세계 최초의 네바퀴굴림차는?"라고 물으면 2차 대전 때 활약한 미국의 윌리스 지프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정답이 아니다. 스파이커(Spyker)가 네바퀴굴림차 시대의 원단을 연 주인공이다. 스파이커는 해외 메이커가 대부분 그렇듯이 창업자의 이름을 딴 것이다. 창업자인 야코부스와 헨드릭 얀 스파이커(Spijker) 형제는 네덜란드 힐베르숨(Hilversum)에서 1856년과 57년 한 해 터울로 태어났다. 미국에서 마차 기술을 배우고 돌아온 형제는 곧 솜씨 좋은 장인으로 소문이 났고, 1886년 암스테르담 인근으로 작업소를 옮길 무렵에는 주변 국가에까지 이름이 알려졌다.

당시 형제는 자신들의 성인 'spijker' 대신 'spyker'를 브랜드명으로 썼다. 해외 시장에서 강한 인식을 심어 주기 위해 눈에 잘 들어오고 개성이 강한 y자를 넣은 것이다. 마차를 만드는 데 정평이 있던 스파이커 형제는 1898년 네덜란드 윌헬미나 여왕의 대관식에 쓸 '골든 스테이트 코치'를 만든 것을 계기로 명인의 반열에 올랐다. 지금도 네덜란드 왕실의 행사에 등장하는 골든 코치는 당시 96만 시간에 이르는 인건비가 들었을 정도로 엄청난 프로젝트였다.

같은 해인 1898년 스파이커 형제는 파리-암스테르담 레이스를 보고 매우 강한 인상을 받아 경주용차를 만들겠다고 결심한다. 이런 뜻은 이듬해인 1898년 벤츠 엔진을 얹은 첫차를 내놓는 것으로 결실을 보게 되었다.

형제는 1900년 벤츠의 공랭식 엔진을 쓴 샤프트 구동방식 차를 내놓은 뒤 자동차회사의 이름을 '데 인더스트리엘레 마츠카피예 트롬펜부르그'(Industrieele Maatshcappij Trompenburg)로 정했다. 네덜란드의 유명한 해군 제독의 이름이면서 암스테르담 인근의 지명인 트롬펜부르그에 새 공장을 지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스파이커 형제는 한 해 500대를 생산할 수 있다고 장담했지만 처음 12개월 동안 겨우 10대를 완성했다.

스파이커라는 이름의 차가 처음 선보인 것은 1900년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RAI 전시회에서다. 당시 등장한 모델은 '스파이커-벤츠 3HP 컨버터블'과 '5HP 듀크' 등 두 가지였다. 자동차사업은 1902년까지 큰 이득을 남기지 못했다. 이 때문에 스파이커 형제는 벨기에 출신의 엔지니어 조세프 라비올레테를 영입했다. 그가 들어옴으로써 스파이커 자동차는 획기적인 변화를 맞게 된다.

  • 레이스의 꿈을 안고 등장한 60HP

라비올레테는 1902년 개발에 들어가 이듬해 12월 열린 파리오토쇼에서 선구적인 자동차를 선보인다. 세계 최초의 6기통 엔진이고 기계적인 원리가 오늘날과 같은 네바퀴굴림 방식을 도입한 차였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네 바퀴에 브레이크를 단 것도 이 차가 처음이다. '스파이커 60HP 레이서'가 주인공이다. 1886년 벤츠가 최초의 휘발유 자동차를 개발한 지 16년째 되는 해였다.

60HP는 스파이커를 레이싱카 메이커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 차는 5천073cc 엔진을 얹고 있었지만 레이스를 하기에는 힘이 부족해 배기량을 8천680cc로 늘였다. 이 때문에 모델을 60/80HP로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이유로 스파이커를 첫 4WD로 기록한 여러 자료에 배기량이 틀리게 적혀 있다.

사실 네바퀴굴림 장치는 증기기관차 시절부터 시도되었다. 1805년 미국 필라델피아 출신 올리버 에반스가 발명한 수륙양용차 ‘오룩터 앰피볼로스’(Orukter Amphibolos)가 최초의 네바퀴굴림 증기기관차다. 자동차는 1900년 페르디난트 포르쉐가 4WD 승용차를 처음 만들었으나 이 차는 각 바퀴에 전기모터를 달아 구동력을 얻고, 엔진은 전기 공급용으로만 쓰였기 때문에 요즘의 4WD와는 성격이 다르다. 포르쉐 박사의 이 아이디어는 훗날 달 정복에 나선 미국 NASA가 ‘월면차’(루나 로버)에 응용하기도 했다.

이에 반해 스파이커 레이서는 휘발유 동력기관을 이용한 최초의 4WD 승용차다. 이 차는 사이드밸브 방식의 직렬 6기통 8.5X(보어× 스트로크는 120×128mm여서 정확히는 8천681cc)였다. 1천400rpm에서 최고출력 50마력을 내고 엔진 양쪽에 V형 라디에이터가 달려 있었다.

클러치는 가죽을 씌운 원뿔 모양이고 앞뒤로 뻗은 프로펠러 샤프트가 너무 길어 중간에 축받이가 달렸다. 3단 트랜스미션과 2단 트랜스퍼, 센터 디퍼렌셜을 달고 항상 네 바퀴를 굴리는 풀타임 4WD였다. 이런 복잡한 메커니즘은 당시의 기술 수준으로는 보급되기 어려워 1904년 레이스를 끝으로 사라졌다.

60HP 레이서는 힐클라임 등 네바퀴굴림차가 유리한 경기에서 위력을 발휘했지만 속도를 겨루는 로드 레이스에서는 기대만큼의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경쟁차들보다 스피드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과감한 시도와 뛰어난 기술적 성과는 스파이커를 럭셔리카 브랜드로 올려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스파이커는 주요 시장이었던 영국에서 가장 비싸고 인기 있는 차로 주목을 받았다.

스파이커사는 판매를 겨냥해 30HP라는 모델도 내놓았다. 이 차는 '더스트 실드'라는 개념을 도입해 화제를 모았다. '완벽한 공기역학적 보디 설계로 먼지가 들어갈 틈에 없다'는 점을 자랑으로 내세웠다. 스파이커의 4WD 장치는 1904년 시판된 4기통짜리 36HP에 옵션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스파이커는 1906년 연산 250대 규모로 성장했고 사원도 800명으로 늘어났다. 보디를 포함해 대부분의 부품을 직접 만들었지만 주철 제품은 벨기에서 들여왔다.

스파이커 중에서 가장 인기를 모은 차는 18HP였다. 더스트 실드 설계로 만든 이 차는 1907년 베이징-파리 레이스에 참가해 명성을 쌓았다. 비록 우승하지는 못했지만 주최국인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 각국의 언론매체들이 앞다투어 소개할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스파이커는 선두인 이태리의 이탈라가 두 달만에 들어온 지 2주 뒤 피니시했지만 발전기 부품을 빼고는 출발 당시의 부품을 그대로 유지한 채 완주해 내구성을 입증했다.

  • 베이징 - 파리 레이스를 끝으로 사라져

그러나 랠리 참가가 스파이커의 몰락을 재촉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파리에서 발행되는 신문 '르 마르텡'의 홍보 행사에 참가했던 스파이커는 모험가이면서 전문 드라이버였던 샤를 고다드의 권유로 랠리에 참가하기로 하고 드라이버 자리를 그에게 내주었다. 스파이커는 랠리카를 제작하고, 경주에 참가하느라 들인 엄청난 비용 때문에 재정적인 부담이 커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동생 헨드릭이 영국으로 가다 배가 침몰해 목숨을 잃고 만다. 결국 회사는 1908년 4월 파산선고를 받았다. 그리고 같은 해 야코부스를 뺀 채 J. 비앙페가 회사를 재건했다.

스파이커사는 1차 대전이 터진 1914년부터 4년 동안 전투기를 생산하다 1918년 종전과 함께 고급차 생산을 시작해 왕실을 비롯한 부유층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네덜란드 왕실은 1912년 처음으로 스파이커 승용차를 사들였다. 1916년에는 F. H. 펜테너 반 플리신겐 남작이 이끄는 컨소시엄이 회사를 인수하고 항공기 분야에 진출하면서 회사명을 바꾸었다. '네델란드쉐 아우토모빌엔 플리그투이겐파브리크 트롬펜브루그'(Nederlandsche Automobiel-en Vliegtuigenfabriek Trompenburg)라는 아주 긴 이름이다. 당시 고도 기록을 갖고 있던 조종사 헨리 윈말렌이 이사로 들어와 생산시설을 현대화했고 그에 따라 연간 생산능력은 350대로 늘어났다.

  • 현대 스포츠카 전문회사로 부활

1922년 회사는 경영진이 바뀌면서 'NV 스파이커 아우토모벨파브리크'(NV Spyker Automobelfabriek)로 재출발했다. 당시 영국 수입상은 스파이커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보증을 한다고 떠들고 다녔으나 판매가가 급격히 떨어져 스파이커는 더 이상 차를 만들 수가 없게 되었다. 그리고 3년 뒤 회사는 문을 닫았고 1차 대전 이후에 팔린 차는 500대에 지나지 않았다.

스파이커 최후의 모델은 마이바하 엔진을 얹은 C4였다. 이 차는 섬나라 영국과 대비해 '대륙의 롤스로이스'라고 불렸다. 스파이커 브랜드의 강점은 고품격 이미지와 스포츠성을 겸비했다는 점이다. 스파이커는 부유층을 주고객으로 하는 고급차를 주로 만들면서도 속도기록대회에 꾸준히 참가하면서 품질과 성능을 개선해 나갔다. 마지막 스파이커가 만들어진 해는 1925년이다.

이런 스파이커의 장인정신은 잊혀지지 않아 2000년 그 이름이 되살아났다. 네덜란드인 빅터 뮬러(Victor Muller)가 스파이커사를 재건하고 2000년 버밍엄 모터쇼에 스포츠카 'C8 스파이커'를 발표한 것이다. 75년만에 부활한 스파이커는 수작업으로 제작되었다. C8 스파이커는 2000년 버밍엄 모터쇼에서 소량생산 메이커에 주는 우수 엔지니어링상을 받았다. 이 차는 시판 모델이 나오자마자 미국 젊은이들의 우상인 록그룹 '자미로콰이'의 보컬 제이 케이를 비롯한 16명의 고객에게 15만 달러의 고가에 팔려 나갔다.

다시 태어난 스파이커는 자동차 휠에 항공기의 프로펠러가 달린 독특한 엠블럼을 쓴다. 문양 아래 쓰여진 문구 'NULLA TENACI INVIA EST VIA'는 '제압할 수 없는 길은 없다'는 뜻을 가진 예전 스파이커사의 슬로건이다.

최초의 4WD가 등장한지 100년이 되는 2020년은 스파이커 C8 라비올레테를 기본으로 만든 '더블12'로 르망 24시간 GT3 부문에 도전한다. '라비올레테'는 100년 전 전설의 모델 '스파이커 60HP 레이서'를 만든 엔지니어 요세프 발렌틴 라비올레테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4]

2010년에는 GM으로부터 사브를 인수하기도 하였다. 스파이커에 인수된 후에도 계속해서 Saab에 GM시절 쓰던 엔진과 변속기를 공급할 것이고 GM 멕시코 공장에서 사브 9-4x 플랫폼을 활용한 새로운 완성차도 판매할 것이라고 전했다. 스파이커와 GM간 거래에는 스웨덴 정부가 보증하는 유럽 투자 은행의 대출이 포함되었는데, 이는 7400만 달러의 금액을 지불하는것으로 계약 조건이 구성되었고, 2010년 7월까지 GM에 지불되어야 하는 계약이라고 한다. 당시 Spyker의 주식은 3억 2000만 달러였기에 금액을 지불하는 것에는 문제없이 진행될수 있었다. 다음 해인 2011년 2월 25일에는 사브에 집중하기 위해 자사의 스포츠카 모델들 생산을 증산하여 판매하기로 동의했다고 발표했다. 5월에는 사브 브랜드를 사브를 포함하는 다른 이름으로 변경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그해 연초부터 사브는 돈이 바닥나기 시작했고, 스파이커는 사브의 손실을 메울수 없었다. 두 회사 모두 청구서 지불을 중단했고, 3월 30일에는 트롤헤탄에 있는 사브의 공장에 대한 추가 납품을 거부했다. 이때 러시아 은행가 블라디미르 안토노프는 스웨덴 당국, EIB, 그리고 GM에 사브 주주가 되기 위한 허가를 신청했었지만그의 사업 관행에 대한 우려를 이유로 EIB에 의해 거부되었다. 스파이커의 CEO 빅터 뮬러는 처음엔 문제의 원인을 언론 탓으로 돌렸고 사브는 자금 조달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었지만, 4월 5일에는 트롤헤탄 공장에서 모든 생산이 중단되었고, 당시 스파이커 CEO 빅터 뮬러는 다른 여러 회사들로부터 자금을 얻으려고 노력했지만 2011년 12월 19일, 중국 업체와의 어떤 형태의 개입도 계속 차단한 GM이 아무런 대안이 남아 있지 않자, 마침내 3년 동안의 생존 투쟁 끝에 공식적으로 스웨덴 정부에 파산 신청을 했다.

2012년 4월 16일, Vänersborg 지방 법원에서 사브의 파산에 관한 회의가 열렸는데, 공식적으로 5천만 달러에서 2억달러 사이의 부채가 있는것으로 추정되었는데, 당시 사브의 자산 가치를 뺀 부채는 1억 5천만 달러 정도의 부채가 있는것으로 확인되었다. 당시에는 레이스에 관심이 많았었는지, 2006년에는 당시 F1에서 하위권이었던 미들랜드 F1팀을 인수하며 그 다음해인 2007년부터 F1에 출전한적이 있었지만 자금 부족으로 인해 2007년 한 시즌만 출전하고 팀을 다시 포스 인디아에게 매각하였다, 2009년에는 C8 Laviolette GT2 트랙카로 르망24시 GT2 클래스에서 17개의 팀 중 5위라는 나름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두었다. 2010년 1월에는 사브의 인수경쟁에서 코닉세그, GM과 경쟁하여 승리했지만 결국 2011년 12월, 사브를 파산시키고 다시 매물로 내놓았다. 사브는 2012년 6월 내셔널 일렉트릭 비히클 스웨덴(NEVS, National Electric Vehicle Sweden)로 넘어갔다.[1]

모델

  • 스파이커 C4 : 마지막 모델인 스파이커 C4는 마이바흐의 엔진을 사용해 당시 차량 내구성으로 세계기록을 가지고 있던 롤스로이스의 기록을 돌파하는 등 완성도는 대단히 높았지만 판매량은 역시 신통치 않았다.
  • 스파이커 C8 라비올렛(Spyker C8 Laviolette) : 2001년 암스테르담 모터쇼에서 출시된 컨셉카이다. 스파이커 C8 라비올렛은 프레임부터 차체까지 철저히 알루미늄 소재로 만들어진 스포츠카이다.
  • 스파이커 C8 라비올렛 LM85 : 2009 자동차쇼가 열리고 있는 엘에이의 컨벤션 센터에서 GT2 르망의 오프로드 버전인 스파이커 C8 라비올렛 LM85 스포츠카 한정판이 공개되었다.
  • 스파이커 C8 더블 12R : 2001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출시되었다.
  • 스파이커 C8 더블 12S : 스파이커 C8 더블 12R의 거리법적 버전으로 2002년 출시 되었다.
  • 스파이커 C8 에일러론(AILERON) : 2009년에 등장한 C8 라비올렛의 풀체인지 모델이다. 이전 모델보다 휠베이스가 더긴 2세대 스파이커 슈퍼가로 생산버전이 제78회 국제 모터쇼에서 데뷔했다.
  • 스파이커 C8 에일러론 스파이더 : 2009년 8월, 컨셉차량으로 캘리포니아 몬테러에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페블 비치 자동차 전시회(Pebble Beach Concours D'Elegance)에서 공개되었다.
  • 스파이커 C12 자가토 : 2007년에 C12 라트루비에의 후속작으로 출시되었지만 판매량이 심하게 적어 현재는 몇대 남아있지 않다. 스파이커 CEO 빅터 뮬러와 자가토의 CEO 안드레아 자가토((Andrea Zagato)가 제77회 제네바 국제 모터쇼에서 공개했다.
  • 스파이커 C12 라투르비에(LATURBIE) : 아우디 W12 6.0X 알루미늄 엔진을 얹어 빚은 프로토타입. 스파이커의 뿌리는 네덜란드의 스파이커 형제가 만든 60HP 레이서. 1902년 출범했다가 1925년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지만 이로부터 75년만인 2000년 'C8 스파이더'로 부활했다. 스파이커가 이번에 선보인 C12 라투르비에는 1922년 스파이커 C4 투어러가 몬테카를로 인근의 라투르비에 언덕에서 펼쳐진 힐클라임 경기에서 우승한 것을 기념하는 모델이다. C12 라투르비에는 최고출력 500마력, 최대토크 61.2kg·m의 성능으로 최고시속 325km를 기록한다. 0→시속 100 가속은 3.9초. 차 무게는 1천400kg. 수동 6단 트랜스미션은 F1 타입 시프트 패들을 이용해 조작한다.[5]
  • 스파이커 D8, D12 : 2006년에 내놓은 SUV 컨셉트 차량이다. 이 차가 양산되었다면 벤틀리의 벤테이가, 알파로메오의 스텔비오, 롤스로이스 컬리넌 등과 경쟁했을 것이다. 제75회 제네바 국제 모터쇼에서 데뷔했다.
  • 스파이커 B6 베네토르: 2013년에 플래그쉽 모델인 C8보다 저렴하고 실용적인 스포츠카를 지향한 V형 6기통 바이터보 파워트레인의 컨셉카이다. 하지만 2년이 넘도록 양산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2013년 스파이커가 독보적인 장인 정신에 필적하는 아름다움을 지닌 세심하게 제작된 자동차이다.
  • 스파이커 B6 베네토르 스파이더: 스파이커가 2013 베블비치 콩크루 델레강스에 B6 베나토르 스파이더(B6 Venator Spyder) 컨셉 모델을 출품했다. 올 초 제네바모터쇼에서 선보인 B6 베나토르 쿠페의 오픈형으로 수제작 오픈 에어링의 클래식 스포츠카의 명맥을 잇는다. 시트 뒤에 미드십 형태로 얹은 V6 375마력 엔진과 6단 자동변속기의 조합은 쿠페와 같을 뿐만 아니라 보디 강성을 높이기 위해 보강재를 사용했음에도 불고하고 무게도 1,400kg이하로 쿠페와 같은 수준으로 억제했다. 또 하드톱 구성을 위해 시트 뒤쪽을 새로 설계했다. 스파이커의 보스 빅터 뮬러에 따르면 쿠페와 스파이더 모두 내년 중에 양산될 전망이다. 예상값은 9만5,000파운드(약 1억6,523만원)으로 알려졌다.[6]
  • 스파이커 C8 프렐리에이터 : 코닉세그의 V8 525마력 엔진을 바탕으로 그나마 많은 판매를 이뤘다. 항공에서 영감을 얻은 자동차로 유산, 디자인, 장인정신, 성능 및 독점성 등 독특한 조합을 제공하며 2도어 미드엔진 스포츠카로 제86회 제네바 국제모터쇼에서 첫선을 보였다. 생산 차량의 디자인 모티브는 클래식으로, 차량 외부 디자인은 마치 1930년대 경주차의 모습과 흡사하게 제작하였고 내부는 옛날 고급차처럼 정교하게 바느질된 가죽과 회전 무늬를 새겨넣은 알루미늄을 많이 사용한다. 또한 옛 스파이커가 비행기를 제작한 적이 있다는 점에서 착안해, 차량 외부에 전반적으로 비행기의 제트 흡기구를 본딴 디자인 요소를 많이 집어넣었다. 덕분에 비슷한 차급의 타사 차량들과는 상당히 차별화되는, 클래식하면서 독특한 모습을 자랑한다.[3]

모터스포츠

2007 브라질 그랑프리 스파이커 포뮬러 원팀에서 운전하고 있는 아드리안 수틸(Adrian Sutil)
2008년 실버스톤 1000km 상공에서 스파이커 C8 라비올렛 GT2-R.
  • Spyker F1

스파이커는 경주에 관심이 많았는지 2006년에 포뮬라원 팀을 인수했지만 자금 부족으로 첫번째 경기 후 방출되었으며, 2009년에는 C8 Laviolette GT2 트랙카로 르망 24 GT2 클래스에서 17개의 팀 중 5위라는 나름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두었다.

  • Spyker Squadron

스파이커 Squadron는 공장 레이싱 팀으로, 24시간 르망 시리즈, 가끔 열리는 FIA GT 챔피언십 참가, 12시간의 세브링 등의 종목에 출전한다. 스파이커는 스위스의 스파이더커 유통업체인 스피디드 가라지(Speedy Garages)에도 스피디드 레이싱팀이라는 이름으로 차를 납품하고 있다.[7]

각주

  1. 1.0 1.1  〈스파이커(자동차 제조사)〉, 《나무위키명》, 
  2. 윤선희 기자, 〈네덜란드 스포츠카 제조사 스파이커 파산선언〉, 《글로벌이코노믹》, 2014-12-20
  3. 3.0 3.1 KUSNATION, 〈불운한 최초의 자동차 회사, 스파이커〉, 《네이버 블로그》, 2020-01-07
  4.  〈히딩크의 나라 네덜란드에서 탄생한 스파이커 100주년 맞은 세계 최초의 네바퀴굴림차〉, 《카라이프》, 2020-05-06
  5.  〈1905-2005 Salon international de l'automobile Geneve 컴팩트카 메카에서 펼쳐진〉, 《카라이프》, 2005-04-06
  6.  〈스파이커 B6 베나토르 스파이더 컨셉 공개〉, 《오토스파이넷》, 2013-08-17
  7. "Spyker N.V.", Wikipedia

참고자료

같이 보기


  검수요청.png검수요청.png 이 스파이커 문서는 자동차 회사에 관한 글로서 검토가 필요합니다. 위키 문서는 누구든지 자유롭게 편집할 수 있습니다. [편집]을 눌러 문서 내용을 검토·수정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