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펠
오펠(Opel Automobile GmbH)은 독일의 자동차회사이며 2017년 8월부터 프랑스의 자동차 메이커 그루프 PSA(Groupe PSA)의 자회사로 되어 있다. 1929년부터 2017년까지는 미국의 자동차 회사 제너럴모터스(GM)의 소유로 있었다. 오펠차는 복스홀(Vauxhall) 브랜드로 영국, 맨섬(Isle of Man), 채널제도(Channel Islands)에서 판매된다. 일부 오펠차는 배지 엔지니어링이 되어 호주에서 홀덴(Holden) 브랜드로 2020년까지 판매되며 뷰익(Buick), 새턴(Saturn), 캐딜락(Cadillac) 브랜드로 중국에서 판매된다.
오펠은 오펠 아담(Adam Opel)이 1862년에 설립하였으며 독일의 헤센(Hesse)주 뤼셀스하임암마인(Rüsselsheim am Main)에 본부를 두고 있다. 자동차 디자인, 엔지니어링, 제조 및 판매를 주력사업으로 하고 있다. 회사 대표는 회사 EVP인 마이클 로셸러(Michael Lohscheller)가 2017년부터 맡고 있다.[1]
목차
개요
오펠은 독일의 유명한 자동차 제조회사이며 주로 오펠 브랜드의 승용차, 경형상용차 그리고 차량부품의 디자인, 엔지니어링, 제조 및 유통사업을 추진하고 영국의 브랜드 마크 복스홀(Vauxhall)과 공동으로 전 세계 60여개 나라에서 판매업무를 추진한다.
1899년부터 자동차 제조를 시작하여 120년 이상되는 회사의 운영기간에 랍포스(Laubfrosch, treefrog, Opel 4 PS)[2], 애드미럴(Admiral)[3], 카데트(Kadett)[4], 레코드(Rekord)[5], 만타(Manta)[6], GT[7], 코르사(Corsa)[8] 등 차 모델을 런칭하였으며 2019년까지 약 1,400만대의 자동차를 제조하였다. 유럽의 6개 나라에서 10개 자동차조립, 파워트레인 및 부품공장과 4개 개발시험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3만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고 이 외 약 6,250의 개발직원들이 뤼셀스하임(Rüsselsheim)에 있는 국제기술개발센터와 유럽디자인센터에서 오펠/복스홀 브랜드의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을 담당하고 있다.
오펠 브랜드는 유럽의 대부분 지역, 북미의 일부, 남아공, 중동지역, 칠레(Chile), 싱가포르 등 지역에서 소개되고 있으며 모델 리배지(rebadge) 엔지니어링을 추진하여 다른 국가와 대륙에 판매되고 있다. 복스홀 브랜드로 영국에서 판매되고 쉐보레(Chevrolet)로 라틴아메리카에 판매되며 홀덴(Holden)으로 호주와 뉴질랜드에 판매되고 전에는 새턴(Saturn)으로 미국과 캐나다에 판매되었다. GM 북미 새턴 사업부의 폐쇠에 따라 오펠 차는 리배지 엔지니어링을 추진하여 뷰익(Buick)이라는 모델명으로 미국, 캐나다, 멕시코 및 중국에 판매되며 차종으로는 오펠 인시그니아(Opel Insignia)/뷰익 리갈(Buick Regal), 오펠 아스트라(Opel Astra)세단/뷰익 베라노(Buick Verano), 오펠 모카(Opel Mokka)/뷰익 앙코르(Buick Encore) 등이 있다.
신 기술의 도입분야에서 오펠은 1989년에 글로벌 처음으로 삼원 촉매 컨버터(three-way catalytic converter)를 표준 장비로 전 차종에 적용하여 대기질 향상에 기여하였으며 1995년에 풀 사이즈 에어백(full-size airbag)을 전반 승용차에 적용하여 승객들의 안전표준을 향상시켰다. 나날이 늘어나는 모빌리티와 친 환경 자동차의 소요에 비추어 오펠은 2020년에 그랜드랜드 X 하이브리드 4(Grandland X Hybrid4) 중형 SUV와 순 전기자동차 코르사 e(Corsa-e)를 출시할 계획이며 비바로 중형 웨건(Vivaro midsize van)도 전기차 버전으로 출시 할 계획이다. 이외 모카 X 서브-컴팩트 SUV(Mokka X sub-compact SUV)도 2019년에 생산에 진입하게 되며 풀 전기차 버전을 포함하고 있다.
2016년에 오펠은 120만대 자동차를 생산하고 187억 달러의 수익을 달성하였으며 2017년 기준으로 37,000명의 직원을 채용하였다.
연혁
1862-1920
오펠은 1862년 1월 21일에 독일 사람 오펠 아담(Adam Opel)이 설립하였으며 초기에는 재봉틀(sewing machine)을 생산하여 판매하였다. 1886년에 페니 파딩(Penny Farthing)이라고도 불리우는 하이휠 자전거(high-wheel bicycles)를 개발하여 판매를 시작하였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하이휠 자건거의 매출액은 재봉틀을 초과하였다. 이러다가 두 시장에서 리더로 활약하던 오펠 아담이 1895년에 별세하면서 그의 마누라 소피 마리 오펠(Sophie Marie Opel)[9]과 나이 많은 아들 둘 카를(Karl)과 빌헬름(Wihelm)이 가업을 물려받아 운영을 하게 되었으며 후에 파트너십으로 독일의 발명가 프리드리히 루츠만(Friedrich Lutzmann)[10]이 세운 회사를 인수하면서 자동차 업계에 진입하게 되었고 1899년초에 오펠의 첫 제품인 페이턴트 모터카(Patent Motor Car)를 런칭하였다. 페이턴트 모터카는 별로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2년 뒤에 파트너십도 해제되었으며 그 후에 프랑스의 자동차업체 프랑스 다라크(Automobiles Darracq France)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합작을 하면서 오펠 다라크 브와튜레트(Voiturette)[11]를 생산하였으며 이 기간에 자주 모델의 개발도 병행하였다. 칼, 빌헬름 형제가 자주적으로 설계한 12마력 1.9L 엔진 차는 1902년 함부르크 모터쇼(Hamburg Motor Show)에서 전시되었으며 얼마 지난 후 4기통 20마력 엔진으로 업그레이드 되어 1906년부터 양산에 진입하였다.
1909년에 독토르바겐(Doktorwagen)이라 불리우는 오펠 4/8 PS 모델을 출시하였으며 그 당시 럭셔리 차종의 반 정도 가격인 3,950마르크로 마케팅을 추진하여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12]
1920-1939
1920년대 초반에 오펠은 독일 자동차 업계에서 처음으로 대규모 양산 조립라인을 구축한 제조사로 되었으며 1924년에 양산 조립라인에서 조립한 2인승 승용차 랍포스(Laubfrosch, treefrog, Opel 4 PS)를 런칭하였다. 조립라인과 급격히 증장하는 차량소요로 오펠은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으며 1928년에는 독일 시장의 37.5%를 점유한 가장 큰 자동차 수출회사로 성장되었다. 같은 해 11월에 오펠의 첫 8기통 차 리전트(Regent)를 내놓았으며 그 전에 내 놓은 로켓 추진차 RAK1과 RAK2는 세상을 놀래우는 주행속도를 기록하였다.
1929년 3월에 오펠은 미국의 GM에 80%의 지분을 양도하였으며 1931년에 계속하여 잔여지분을 GM에 양도한 뒤 GM의 완전소유 자회사로 되었다. 지분양도를 하면서 오펠 가족도 3,330만 달러의 수익을 얻었다. GM의 자회사로 된 후 1935년에 블리츠(Blitz) 경형트럭을 생산하고자 브란덴부르크(Brandenburg)에 2공장을 세웠으며 '1934년 시트로엥 트락숑 아방'(1934 Citroën Traction Avant)'에 잇달아 섀시를 적용하고 차체 전체를 금속으로 만든 모델 컴팩트카 올림피아(Olympia)를 런칭하였고 년간 생산 10만대를 돌파하는 실적을 달성하여 독일에서 가장 큰 자동차 제조업체업체로 되었다. 이에는 1,650마르크로 판매하는 오펠 P4모델이 기여를 많이 하였다. 1938년에 오펠의 역사에서 상당한 성공을 이룬 중형 모델 카피텐(Kapitän)을 런칭하였으며 1940년 가을에 정부 발령으로 생산을 중단하기 전까지 25,374대를 판매하였다.
2차 세계대전 기간
1940년 8월에 회사의 미국 경영진이 정부의 군수품생산요청을 거절하면서 오펠의 자동차생산은 중단되었다. 1942년에 전시생산(wartime production)으로 넘어가서 항공기 부품과 탱크생산을 진행하였으며 브란덴부르크공장에서는 지속적으로 2.7톤 블리 트럭을 생산하였다. 오펠 블리치(Blitz)는 1938년부터 다임러-벤츠의 라이선스를 가지고 생산이 연속되고 있었다.
1945-1970
전쟁이 끝난 후 브란덴부르크공장은 해체되어 장비와 시설들은 쏘련으로 이송되었고 뤼셀스하임(Rüsselsheim)에 있는 건축물중 47%가 파괴되어 있었다. 전 오펠 직원들은 다시 뤼셀스하임공장을 구축하였으며 1946년 7월 15일에 전쟁전 모델 오펠 블리치( Opel Blitz) 트럭을 생산라인에서 출하시켰다. 그 때 미군 소장 제프리 키이스(Geoffrey Keyes)와 현지 정부 리더 그리고 신문기자들이 현장에 같이 있었다. 오펠의 뤼셀스하임공장은 전쟁이 끝난 후 프리지데얼 냉장고(Frigidaire refrigerators)도 생산하였다.
1970-2016
1970년대에 진입하여 오펠과 복스홀(Vauxhall)은 GM의 유력한 유럽브랜드로 등장하였다. 복스홀은 오펠보다 먼저 인 1925년에 GM에 인수된 영국의 자동차 브랜드이며 영국 BMC(현재의 브리티쉬 레이랜드(British Leyland)) 다음으로 가장 잘 팔리는 브랜드 3위에 있다. 두 회사는 본국 시장 외에서 경쟁적수로 활약하였으며 1970년대에 진입한 뒤 서서히 합작하기 시작하였고 1980년대에 진입하여서는 거의 한 브랜드나 별반 차이 없었다. 1984년 3월 제네바의 전시회에서 오펠은 터보차지드(turbocharged)차 레코드 2.3TD(Rekord 2.3 TD)를 출시하였으며 1990년에 들어와서는 도요타와 유사하게 수익창출을 발생하여 GM의 캐쉬카우(cash cow)로 역할을 하였다. 오펠이 창출한 수익으로 GM은 북미에서 발생한 손실을 막고 아시아로의 사업확장을 추진할 수 있었다. 20여년간 꾸준히 수익을 창출한 역사는 1999년이 마감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GM은 독일정부의 허가를 받고 2009년 9월 10일에 캐나다의 마그나 인터내셔널(Magna International)에 55%의 오펠 지분을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하였으며 후에 취소되었다.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GM은 2010년말까지 벨기에 안트베르펜(Antwerp Belgium)공장을 폐쇠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으며 2010년에 110억 유로 5년투자계획을 발표하였다. 투자계획중에서 10억 유로는 전적으로 혁신적이고 연료절약(fuel-saving)하는 엔진과 변속기분야에 투입하기로 하였다.
2012년 2월 29일에 오펠은 PSA 푸조 시트로엥(PSA Peugeot Citroen)과 주요얼라이언스 관계를 구축하며 이의 7%지분을 인수하고 푸조가족(Peugeot family)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주주로 된다고 발표하였다. 그 당시에 오펠은 얼라이언스 관계가 오펠에 플랫폼 공용화, 공동 구매, 기타 경제규모의 방식을 경유하여 년간 20억 달러의 원가절감 효과를 가져다 줄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원가절감 실적이 예상되로 되지 않으면서 GM은 2013년 12월에 3.91억 달러로 PSA 푸조 시트로엥에 지분을 되팔았다. 2016년에 GM은 유럽에서 2.57억 달러의 손실을 발생하였으며 1999년부터 누계적자 200억 달러를 발생시켰다.
2014년 12월에 오펠은 52년 운영한 독일 보훔공장을 폐쇠하였으며 2016년에 GM이 쉐보래 브랜드를 유럽에서 철소하면서 오펠도 중국에서 철소하였다. 2015년초에 오펠은 22개 도매상으로 구성된 네트워크를 갖고 있었다.
2017-현재
2017년 3월에 PSA 그룹은 22억 달러의 가격으로 오펠, 자매브랜드 복스홀 및 유럽의 자동차대출 사업을 GM에서 인수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그 대가로 GM은 32억 달러의 금액을 PSA 그룹에 지급하게 되며 PSA 그룹은 추후의 유럽연금 의무를 짊어지게 되고 현존 98억 달러 가치의 퇴직인원 계획을 책임을 지게 된다. 이외 GM은 현존 영국과 독일의 연금계획을 대상한 자금 제공으로 15년간 해마다 4억 달러를 PSA 그룹에 지급해야 할 책임이 있다.
2017년 6월에 원 오펠의 재무총괄 마이클 로셸러(Michael Lohscheller)가 칼 토마스 노이만(Karl-Thomas Neumann)을 대신하여 회사의 대표이사로 되었으며 2018년 회계년도에 영업이익 8.59억 유로를 발생시켜 1999년이래 처음으로 흑자를 발생한 한 해로 되었다.
글로벌공장
2019년 기준으로 오펠은 유럽의 6개국에서 10개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세부내역은 아래와 같다
1) 독일
- 뤼셀스하임암마인(Rüsselsheim am Main) - 오펠 본부, 국제기술개발센터, 두덴호펀(Dudenhofen) 테스트센터를 두고 있으며 인시그마(Insignia)와 Zafira Tourer C 차종, GM F40변속기를 제조한다. 1898년에 설립되었으며 12,990명의 직원을 고용한다
- 카이저슬라우테른(Kaiserslautern) - 1966년부터 부품과 엔진을 생산하며 2,150명의 직원을 고용한다.
- 아이제나하(Eisenach) - 1990년부터 코르사 E(Corsa E) 3-도어, 아담(Adam), 오펠 그라운드 X(Opel Grandland X) 등 차종을 생산하며 1,420명의 직원을 고용한다.
2) 스페인
- 피거로애래스, 사라고사(Figueruelas, Zaragoza) - 1982년부터 코르사 E(Corsa E)3,4,5-도어, 메리바 B(Meriva B), 모카(Mokka), 코르사 F(Corsa F) 등 차종을 생산하며 5,120명 직원을 고용한다.
3) 폴란드
- 글리비체(Gliwice) - 1998년부터 오펠 아스트라 J(Opel Astra J), 오펠 아스트라 K(Opel Astra K) 5-도어, 뷰익/오펠/복스홀 카스카다(Buick/Opel/Vauxhall Cascada) 등 차종을 생산하며 2,920명의 직원을 고용한다.
- 티히(Tychy) - 1996년부터 디젤엔진을 생산하며 480명의 직원을 고용한다.
4) 헝가리
- 세인트 고타르(St. Gotthard) - 1990년부터 엔진과 변속기를 생산하며 810명의 직원을 고용한다.
5) 영국
- 엘즈미어 포트(Ellesmere Port) - 1962년에 설립되었으며 아스트라 K 스포츠 투어러(Astra K Sports Tourer)를 생산한다. 1,630명 직원을 고용한다.
- 루턴(Luton) - 1907년에 설립되었으며 복스홀 본부를 두고 있고 비바로 B(Vivaro B)를 생산한다. 1,140명 직원을 고용한다.
6) 러시아
-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 - 2008년부터 아스트라 J(Astra J) 5-도어 세단 차종을 생산하며 880명의 직원을 고용한다.
제품모델
랍포스(Laubfrosch)
랍포스는 공식적인 모델명이 오펠 4 PS(Opel 4 PS)이며 treefrog라고도 한다. 한국어로는 청개구리 뜻을 가지고 있다. 랍포스라는 별명이 생긴 연유는 확실하지 않지만 대체로 생산초기의 차들이 그린색상으로 출하하였고 또 그린색상이 독일에서는 길한 색상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소형 2인승 차로 1924년에 소개되었으며 미국 포드의 생산라인 방식으로 제작한 독일의 첫 자동차였다.
생산초기에는 한 가지 차체 2-도어 카브리올레(cabriolet, 컨버티블)의 형식에 4 기통 12PS(9kw) 출력의 엔진을 탑재한 차로 생산을 하였으며 4,500 마르크(Mark)의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소비자들의 인기를 끌었다. 후에 선후로 4/14 PS, 4/16 PS, 4/20 PS 엔진으로 개선을 추진하고 세단 스타일도 내놓으면서 1931년 6월까지 생산을 하였다. 모델 존속기간의 총 판매수량은 119,484대를 기록한다.
애드미럴(Admiral)
오펠 애드미럴(Opel Admiral)은 오펠이 1937년부터 1939년 그리고 1964년부터 1977년까지 생산했던 럭셔리카 모델이다.
첫 버전의 애드미럴은 1937년에 독일의 베를린 자동차 전시회에서 소개되었으며 당해에 총 8대를 생산하였다. 모델의 초도 개발취지는 호르히(Horch), 메르세데스-벤츠(Mercedes-Benz), 마이바흐(Maybach) 등 메이커들의 3.5L급 럭셔리카에 도전장을 내미는데 있었다. 유사한 외형치수와 구동력을 가진 프리미엄 메이커들의 차들과 대비하여 아주 싼 가격으로 출시되었으며 합리한 비율과 기술적으로 간단한 섀시로 차체 생산업자들의 호감을 가졌다. 4-도어 세단과 컨버티블 스타일을 채택하였고 74마력 3.6L 6기통 스트레이드 엔진을 탑재하였으며 최고 시속은 132km/h까지 가능하였다. 1937년부터 1939년까지 6,404대를 판매하였으며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는 연유로 1939년 10월에 생산을 중단하였다.
1964년 2월에 모델 애드미럴 "A"을 다시 런칭하였으며 그 당시 오펠의 KAD((Kapitän, Admiral, Diplomat)제품 라인중의 중급차로 제품역할을 설정하였다. 재차 런칭한 애드미럴은 1964년부터 1968년사이에 총 55,876대를 판매하였으며 KAD 총 판매수량 89,277대에서 가장 많은 포지션을 차지하며 가장 인기있는 차였다. 2.8L CIH I6엔진을 탑재하였으며 4속 수동변속기를 장착하였다. 1969년에 세대 교체를 추진하였으며 업그레이드 된 애드미럴 "B"를 처음으로 선을 보인 장소는 제네바 모터쇼(Geneva Motor Show)였다. 애드미럴 "B"는 출시 후 기대와는 달리 다른 프리미엄 메이커들보다 실적에서 많이 뒤떨어졌다. 1968년부터 1977년사이에 BMW의 6기통 3.0L 엔진 탑재모델은 222,001대의 판매실적을 내놓았고 메르세데스-벤츠(Mercedes-Benz)의 "S-Class" 280S/280SE/280SEL 모델은 1972년부터 1980년사이에 280,473대의 판매실적을 거두었다. '애드미럴 B'는 1977년까지 생산을 하였으며 총 36,522대를 판매하였다.[3]
각주
- ↑ "Opel", Wikipedia
- ↑ "Opel Laubfrosch", Wikipedia
- ↑ 3.0 3.1 "Opel Admiral", Wikipedia
- ↑ "Opel Kadett", Wikipedia
- ↑ "Opel Rekord", Wikipedia
- ↑ "Opel Manta", Wikipedia
- ↑ "Opel GT", Wikipedia
- ↑ "Opel Corsa", Wikipedia
- ↑ "Sophie Opel", Wikipedia
- ↑ "Friedrich Lutzmann", Wikipedia
- ↑ "Voiturette", Wikipedia
- ↑ 자동차뉴스, 〈브랜드 역사의 시작 #6 오펠 파텐트 모토바겐〉, 《네이버블로그》, 2020-06-29
참고자료
- 오펠 공식 홈페이지 - https://www.opel.com/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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