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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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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Hyundai Motor Company)
현대자동차㈜(Hyundai Motor Company)

포터(PORTER)는 현대자동차㈜(Hyundai Motor Company)의 후륜구동 소형트럭이다. 1977년에 출시되었으나, 자동차공업 통합조치로 1981년에 단종되었다가 이후 미쓰비시(Mitsubishi)의 기술 제휴로 1986년에 재출시된 이후 현재까지도 생산 중이다.

개요

1977년에 출시된 현대자동차의 후륜구동 소형트럭으로 자동차공업 통합조치로 1981년에 단종되었다가 이후 미쓰비시의 기술 제휴로 1986년에 재출시된 이후 현재까지도 생산 중이다. 현재 생산 중인 모델은 생산이 30년째가 다 되어가는 포터 2이며, 현재 1톤 트럭 시장을 양분하는 존재다. 예전에는 봉고보다 가격대가 조금 저렴했지만, 현재 하위트림은 봉고보다 저렴하지만 상위트림으로 갈수록 가격이 봉고보다 가격이 높아진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가격차이는 옵션 구성을 보면 알 수 있는데 하위트림의 기본옵션은 봉고가 더 충실한 편이지만 상위트림의 편의사항은 포터가 조금 더 우세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포터는 상용차 시장에서 경쟁자가 없을만큼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으며, 서민들이 타고다니는 차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알고보면 부유한 차주들도 상당히 많다. 주로 인테리어 관련업자들과 같이 규모가 큰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같은 중산층이나 대규모 농장주, 유통기업 업주 등 부유층이 사업용 차량으을 목적으로 구매하는 경우가 있는데 생각보다 수요가 많다. 이렇게 사업을 목적으로 구매하는 이유로 다른 경쟁업체인 쌍용이나 미제 픽업 같은 것보다 험하게 굴리기 좋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그렇다보니 평균적으로 월 5,000대 이상의 판매량을 자랑하고 또한, 2012년 이후 언제나 국내시장 월 판매량 5위권에 들어가는 성적을 내고있으며, 불황일수록 판매량이 늘어나 1위도 쉽게 찍는 현대자동차의 진정한 스테디셀러라는 의견이 많다. 한편으로는 판매량이 늘수록 1톤 상용차 시장에서 봉고와 더불어 포터 이외의 대체재가 없다는 이유 때문에 독과점이 가능한거라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다.[1]

역사

현대자동차㈜는 근 연원이 1940년부터 아산이 운영했던 자동차 정비공장 아도서비스(Auto Service)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독립회사 현대자동차주식회사가 탄생한 것은 1967년 12월 30일이다. 그해 5월 포드가 한국 진출을 결정하고 9월 현대 측과 제휴를 확정했었다. 현대차의 홈페이지에도 회사 연혁이 1967년에서 시작되고 있다.

2017년 개봉한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등장한 택시기사들은 현대 포니를 몰고 있다. 포니는 아마도 쏘나타 다음으로 한국 자동차산업 역사에서 가장 큰 존재감을 가지는 모델일 것이다. 아산은 포니를 꼭 '꽁지 빠진 닭' 같다고 하면서 마음에 들지 않아했지만 이와 반대로 포니는 성공작이었다. 출시되었던 1976년 그해 6월에 에콰도르에 6대를 수출하기까지 했다. 포니는 한국을 세계에서 16번째로 자동차 고유 모델을 보유한 나라로 격상시켰다. 가격은 그 당시 가격으로 2,289,200원이었는데 출시된 첫해에 10,726대가 판매되었다. 1982년까지 약 30만 대가 생산되었다. 후속 포니 2는 1991년까지 총 36만여 대가 생산되었다. 포니의 제작에 필요한 기술은 미쓰비시의 힘을 빌렸었는데 문자 그대로 '빌린' 것이었다. 중요한 기술이 유출될 것을 염려한 미쓰비시 측은 보상을 받는 만큼만 알려주고 그 이상의 기술은 공개하지 않았다. 차체 디자인은 이탈리아 업체들에 사람을 파견해 진행했다. 팩스도 없고 국제전화는 걸기가 부담스럽던 시절이었고, 어찌저찌 어렵게 얻어낸 정보를 다시 한국으로 보내는 일도 당시 통신기술로는 쉽지 않았던 시절이였다. 울산공장에서는 다국적 팀이 작업을 진행했다. 포드로부터 조립기술을 배워온 우리 기술자들이 영국 기술자들의 도움을 받았고 디자인 설계는 이탈리아에서, 프레스는 프랑스에서, 부품 제조기술과 생산설비는 일본의 미쓰비시에서 빌려와 작업했다. 첫차가 출시되기까지 부품은 부품대로 조립은 조립대로 애를 먹였다. 도장 작업의 문제와 원인을 알 수 없는 잡소리까지 온갖 문제를 해결해야 했었다. 이러한 열악한 환경에서 국산 고유의 자동차 포니를 만들어냈다.

1985년에는 최초의 전륜구동인 엑셀이 출현했다. 마이카 붐이 시작되던 때여서 큰 성공을 거둔다. 엑셀은 처음으로 자동차 '신의 영역'이라 일컬어지는 미국 시장에 진출했던 모델인데 성공작이었다. 유럽에는 인기 있던 포니 모델 때문에 포니라고 해서 나갔다. 이탈리아 로마시에는 현대 경찰 순찰차까지 등장했었다. 그리고 1986년에 그랜저, 아산이 유치한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에 거의 국민차인 쏘나타가 탄생했다. 1991년에 이미 전기차를 개발했고 1994년에 연 생산 100만대를 돌파한다. 1998년 에 기아자동차를 인수했다. 1999년에는 고급차 에쿠스와 EF쏘나타를 내놓았고 현대-기아는 글로벌 11위에 올랐다.

1996년에 정몽구 회장이 현대자동차를 맡게된다. IMF 사태로 잠시 적자경영이었던 현대자동차는 얼마가지 않아 4천억 원의 흑자를 냈고 2000년 현대그룹에서 계열분리되면서 혼란했던 때에도 6,700억 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2001년 매출 20조를 달성하고 순익 1조 원 시대를 열었다. 정몽구 회장 체제가 시작된지 10년 만인 2006년에 글로벌 6위에 진입했다. 2008년에 제네시스가 태어났고 2018년에는 세계 최초로 차세대 수소전기차를 공개했다. 오늘날의 현대모비스㈜인 현대정공을 성공적으로 키웠던 정몽구 회장 체제의 현대차에서는 품질 경영이 특히 강조되었다. 이후 1998년 9월에 미국에 도입한 '10년간 10만 마일 무상보증'은 단순한 파격 마케팅 기법이 아니라 품질에 대한 각오였다. 당시 포드와 GM은 3년간 3만 6천 마일, 토요타는 5년간 6만 마일이었다. 당연히 미국 소비자들의 현대차에 대한 인식이 변했다. 2006년에 미국 소비자조사업체 JD파워 신차 품질조사 일반브랜드 부문에서 첫 1위를 기록했다. 1998년에는 최하위였었다. 2015년에는 제네시스가 독립 브랜드로 탄생했다. 현대-기아는 2016년에 토요타와 폭스바겐에 이은 글로벌 3위에 올랐다. 2019년에는 약 600만대를 판매해서 GM(630)에 이은 글로벌 5위다. 포드(440)가 그 뒤를 따른다.

현대자동차의 성장 역사는 현대중공업의 성장 역사만큼이나 한 편의 드라마다. 자동차라는 물건의 특성상 사회적 파급효과가 더 커서 현대차는 훨씬 더 큰 기업이 되었고 아산이 일군 현대의 DNA가 대표적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기업이다. 한국 경제의 기존 구조를 규정짓는 기업이기도 하다. 포스텍의 송호근 교수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성장과정이 한국 제조업의 역사이며 아산의 일대기 자체가 한국 산업화의 스토리이고 현대라는 재벌의 강점과 허점이 그대로 한국경제의 내부구조로 이전되었다고 본다.

현대자동차가 수출을 시작한 것은 1976년이고 해외에 직접 진출한 것은 1983년 캐나다 현지법인 설립이다. 1985년에 드디어 미국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해외 공장은 1997년 터키, 기아차를 인수했던 1998년에 인도, 2000년에 러시아, 2008년에 체코, 2012년에 브라질 등에 공장을 지었다. 이제 현대자동차는 세계 거의 전 지역에 진출해 있다. 또한 현대자동차는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 중국의 북경에도 북경기차와 합작으로 2002년에 공장을 지었다. 새로 지은 것은 아니고 북경기차의 공장을 현대화한 것이다. 중국은 상하이 자동차와 폭스바겐이 합작을 한 사례가 그 전에 있었는데 현대차와의 합작은 중국의 WTO 가입 이후 첫 사례다. 그러나 2016년 중국의 사드보복으로 타격을 크게 받았다. 미국의 현지 공장은 2005년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에 완공되었다. 17억 달러가 투입 되었는데 약 3천 명을 고용했다.

이제 글로벌 현대자동차는 시가총액 5위 권, 기아자동차는 시가총액 20위 권에 든다. 2019년 매출은 각각 105조 8천억 원, 58조 1척억 원이다. 현대모비스의 매출이 38조 원을 넘어서면서 그룹 내 3사 전체 매출 200조 원 시대를 열었다. 정몽구 회장은 2020년 7에 헨리포드, 알프레드 슬론, 코트리브 다임러, 엔조 페라리 등이 올라있는 미국 자동차 명예의 전당(Automotive Hall of Fame)에 헌액됐다.[2]

모델

포터 1세대

포터 1세대(PORTER HD 1000)는 현대자동차에서 1977년에 출시한 모델로 미쓰비시의 1세대 델리카를 모방한 모델이라고 잘못 기술되는 경향이 있으나, 미쓰비시 델리카의 외관을 직접보면 그 모습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세대 델리카에다 포니의 전면을 붙여놓은 모습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자세히 보면 바디 패널의 라인이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심지어 운전석 도어 손잡이 모양까지 다르다. 수십년 동안 정확한 기반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출시 40년만에 현대자동차 측에서 발표한 공식적인 입장에 의하면 섀시는 본넷형 상용차였던 1세대 포드 트랜짓을 바탕으로 차체 부분은 일본의 캡오버(Cab over)형 상용차 디자인을 참고해서 캡오버화 하여 고유모델로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특히 포니부품과 많이 호환되었으며, 포니와의 다른점은 포니는 이탈리아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세련된 형태라서 섀시 제공 모델인 미쓰비시 랜서보다 세련되고 멋있는 형태를 보였지만, HD1000과 포터는 디자인을 자체적으로 제작하다 보니 벤치마킹 대상 모델로 추정되었던 미쓰비시 1세대 델리카보다 많이 부족한 디자인이었다는 점이있다. HD1000이 개발당시 모방했던 차종이 1960년대에 나왔던 한세대 전의차종이었던 만큼 출시시기인 1977년 기준으로 10년이 더 지난 디자인을 모방하여 이 당시 사람들에게 혹평을 받았다. 또한, 1960년대 HD1000은 소형 상용차의 디자인적 비례를 그대로 담습했던 만큼 벨트라인이 상당히 높았고 창문 개구부도 좁았어서 1970년대 당시 소형 상용차 디자인의 경우는 캐빈의 벨트라인이 이전보다 내려가고 창문 개구부가 위아래로 넓어지면서 디자인면에서 이전보다 개방감이 높아지고 있던 추세로 전체적인 디자인의 비례가 오늘날의 소형 상용차 처럼 되던 시점이었는데 HD1000은 당시 트렌드와 전혀 맞지 않았다. 심지어 동시기에 해외 선진국에 출시된 원박스카에 유행하기 시작하던 하이루프 조차도 없었다. 이러한 HD1000은 엔진을 퍼킨스사의 엔진을 라이센스 생산하여 탑재했는데 1760cc 55마력이었다는 점에서 당시 포드 트랜짓에도 장착되었던 1,759cc급 4.108 엔진이었던걸로 보인다. 포터 트럭 새시에 캡만 씌었기에 실내도 넓지 않고 특히 천장이 너무 낮았는데 이상하게 창문은 또 높아서 옆 시야가 좁았다. 결정적으로 승차감이 많이 떨어졋는데, 실제로 포터를 탑승하면 덜덜거려서 승객들을 싣고 다니기에는 많이 불편했다. 결국 미니버스 모델의 특징과는 실제로 전혀 일치하지 않았으며, 포터 밴 모델은 미니버스와 달리 옆문이 없었고 뒷 트렁크문만 있었다. 이와 같은 현대 자동차가 자체적으로 디자인한 HD1000은 밴과 트럭만 포터라고 불리고 승합모델은 미니버스로 판매되었다. 이후 미니버스는 [[현대 그레이스](HYUNDAI GRACE)로 화려하게 부활했으나 HD1000은 초기 모델이 현대 자동차의 고유 모델이었지만 그레이스는 미쯔비시에서 들여온 모델이라는 점이 조금 아쉬운 점으로 남아있다. 또한, 포터와 그레이스가 나오기 전에 생산했던 차량으로 트럭 모델인 더블캡(Double Cab)도 존재한다. 당시 현대 포니(HYUNDAI pony)와 포드 코티나(Ford Cortina)나와 같이 나온오는 광고를 봤을 때, 나름 인기가 많았던 모델인 것으로 보이면 실제로 1980년 8월에는 판매량이 3만대를 돌파하였으나, 제5공화국 시기에 등장한 자동차공업 통합조치로 단종되었다. HD1000은 현재 국내에선 남아있는 차량이 하나도 없지만, 해외에서 HD1000의 사진이 찍힌거나 목격했다는 사람들의 의견으로 보아 현재 몇몇 차량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3]

포터 2세대

포터 2세대(PORTER AH)는 1986년에 현대자동차가 자동차공업 통합조치 해제로 상용차 생산이 가능해지자 기술제휴 관계에 있었던 미쓰비시 자동차의 델리카 2세대 트럭 모델을 라이센스로 도입하여 국내 시장에 맞게 변화시켜 '포터'라는 이름으로 출시하였다. 흔히들 각포터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당시 그랜저, 그레이스 등 당시 차종은 외관상으로 상당히 각진 모습을 하고 있어서 일부 차량의 경우 앞에 '각'자가 붙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당시 포터를 비롯한 현대의 트럭들은 마이티, 대형트럭에 이르기까지 소위 말하는 문짝을 도색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모든 라인업에 걸쳐 하늘색은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요소였고, 포터 125는 빨강색, 마이티 3.5톤은 노랑색이었다. 91A 트럭의 경우 빨강색도 있었으며 중형 한정 녹색도 있었다. 사실은 이러한 특징들은 그 당시 미쓰비시자동차의 특징이었으며, 현대자동차가 미쓰비시 자동차들을 뱃지 엔지니어링해서 모방하였기 때문에 디자인적인 요소까지 유사했던 것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봉고와 마찬가지로 싱글캡에 뒷공간을 추가한 슈퍼캡이 있다는 것이 델리카와의 차이점이다. 당시 모방의 대상이 되었던 미쓰비시 델리카(Mitsubishi Delica)가 승합차와 트럭 모델을 모두 아우르는 모델이었는데, 현대에서 포터의 단짝으로 함께 출시한 그레이스의 경우 당시 일본 미쓰비시에서도 최신 모델이었던 델리카 3세대를 기반으로 제작되었고, 포터는 구형인 2세대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이 두 모델의 차이점이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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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현대 포터 나무위키 -https://namu.wiki/w/%ED%98%84%EB%8C%80%20%ED%8F%AC%ED%84%B0
  2.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현대자동차의 탄생과 성장〉, 《더벨》, 2020-02-13
  3. 현대 HD1000 나무위키 - https://namu.wiki/w/%ED%98%84%EB%8C%80%20HD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