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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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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tjdwjd459 (토론 | 기여)님의 2020년 9월 10일 (목) 11:14 판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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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컨티넨탈(LINCOLN)
링컨 컨티넨탈(LINCOLN)
포드(Ford)

링컨 컨티넨탈(Lincoln Continental)은 미국의 자동차 제조 회사인 포드(Ford)의 고급 승용차 브랜드이다. 창업자인 헨리 마틴 릴랜드(Henry Martin Leland)가 존경했던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에서 따왔다. 1923년 쿨리지 대통령을 시작으로 1939년에서 1989년까지 6번에 걸쳐 백악관에 특수하게 제작한 대통령 전용차를 납품하며 미국의 최고급차와 대통령전용차 제조업체로 유명해졌다.

개요

미국 포드의 고급 브랜드인 링컨은 지난 1917년 탄생 이후 소비자들에게 꾸준하게 인기를 얻어 ‘아메리칸 럭셔리 카(American Luxury Car)’의 상징으로 자리매김 했다. 최근에는 주행성능을 끌어올리고 다양한 첨단 기술을 적용하면서 링컨은 혁신적인 고급차 브랜드로 거듭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헨리 마틴 릴랜드

헨리 마틴 릴랜드(Henry Martin Leland)

헨리 마틴 릴랜드는 1843년 영국(United Kingdom)에서 이민온 소장수의 아들로 미국(United States of America) 버몬트(Vermont)에서 태어 났으며,[1] 12살때부터 정밀가공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릴랜드는 24세때 자신의 정밀가공공장을 디트로이트(Detroit)에 세워 부와 명성을 얻었다. 젊었을 때부터 익혔던 전문기술로 남북전쟁중에는 총 제작에 필요한 도구을 만들었으며, 그후 1/1000인치의 정확도를 낼 수 있는 기술로 이발용 기계를 제작하였다. 24세가 되던 1867년에는 디트로이트에 기계공장을 세우고 올즈모빌(Oldsmobile) 설립자인 랜섬 올즈(Ransom Olds)에게 부품을 납품하기도 하였는데, 1/1000의 오차까지 잡아내는 정밀한 기어를 공급해 능력을 인정 받고, 올즈모빌로부터 엔진과 변속기 주문을 받아 기반을 다져나갔다. 1901년 10.25마력의 엔진을 만드는데 성공했으나 올즈가 받아들이지 않자, 정밀기술의 대가였던 헨리 릴랜드는 같은 모델인 경우 부속품을 서로 바꿔 끼워도 문제없는 부품 호환성 자동차를 만들기로 결심하였다. 마침 헨리 포드가 세웠던 디트로이트 자동차 회사를 자금난으로 매각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 회사를 인수해 1903년 캐딜락회사를 설립하고 릴랜드의 첫 자동차를 만들었으며, 이 자동차가 바로 그 유명한 "캐딜락 1호차" 인 것이다. 이차는 2인승 1기통 10마력 엔진으로 시속 48km를 달릴 수 있었으며, 캐딜락(Cadillac)은 부품표준화를 향한 릴랜드의 노력으로 부품교체가 가능한 최초의 자동차였고, 자동시동기, 전기전조등을 선구적으로 채택하였다. 1908년 영국의 캐딜락 딜러인 프레드릭 바넷(Frederick Bannett)이 영국 황실자동차클럽에서 캐딜락 신차 3대를 분해하여 부품을 섞은 후 재조립해 800km를 쉬지 않고 달리는 데 성공하면서 캐딜락은 영국 황실이 수여하는 토마스 드와 트로피(Thomas Dewar Trophy)를 수상하는 쾌거를 올린다. 얼마 후 리랜드는 캐딜락을 제너럴모터스(GM)의 대표 브랜드로 삼는다는 조건으로 윌리엄 듀런트(William Durant)에게 매각한다. 그러나 1차대전이 일어나자 비행기 엔진 개발 문제로 듀런트와 의견 충돌이 일어나 GM을 떠나고 아들 윌프레드(Wilfred)와 함께 비행기 엔진 회사를 설립하였고, 1919년에는 자동차 제작으로 업종을 바꾸고 회사 이름을 링컨이라 정한다. 이듬해에 정식으로 링컨사를 설립하고 첫차인 링컨 V8(Lincoln V8)을 내놓지만 1922년 헨리 포드에게 이 회사를 매각하였으며, 말년에는 사회보장 제도나 시민 문제에 관심이 많아 디트로이트 시민 연맹(Detroit Citizen League)를 설립하고 수년간 회장직을 맡아 활동했으며, 후에 이 공로로 미시간대학(University of Michigan)과 버몬트대학(University of Vermont)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기도 하였다. 이러한 핸리 릴랜드는 1932년 8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2]

탄생 배경

링컨을 처음 만든 이는 윌리엄 듀란트와 제너럴 모터스를 공동 설립한 헨리 마틸 리랜드로, 자동차 부품회사로 캐딜락을 설립해 운영해 온 리랜드는 듀란트와 함께 GM그룹을 설립했으며, 지난 1915년 이들은 V8 엔진을 개발해 실용화에 성공하기도 했다. 리랜드는 1차 세계 대전 당시 항공기 엔진 회사를 설립해 군수업체로 변신을 도모했으나, 비행기 엔진 제작을 원하던 리랜드와 자동차만을 고집한 듀란트의 대립으로 결국 리랜드가 캐딜락을 떠나게 됐다. 이후 리랜드는 자동차 엔진을 다시 제작하기 시작했으며, 자신이 가장 존경했던 링컨 대통령의 이름을 따 1917년 링컨 자동차 회사(Lincoln Motor Company)를 정식 설립했다. 리랜드는 1922년 포드에 링컨 브랜드가 편입된 후 줄곧 포드의 럭셔리카를 담당했으며, 링컨은 브랜드를 대표하는 모델인 컨티넨탈(Continental)을 통해 고급차 브랜드로의 이미지를 완성하게 된다.

역사

  • 1920년대 : 1920년대 링컨은 프리미엄 아메리칸 럭셔리 카로 독자적 입지를 굳히는 시기였다. 포드의 주문 제작 차량 중 가장 유명한 모델은 아들 에드셸 포드가 아버지 헨리 포드를 위해 만든 1922년 링컨 타운카로, 타운카의 이름은 운전석이 외부에 노출되어 있고 승객석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 차체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아 지어졌다. 링컨 타운카는 자동차를 교통수단이 아닌 고귀한 지위의 상징으로 한 단계 끌어 올렸으며, 토마스 에디슨, W.C 필즈, 허버트 후퍼와 같은 저명 인사들이 이 시절 링컨을 애용하였다.[3]
  • 1930년대 : 1930년대 링컨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고급 승용차라고 각인되었고, 링컨 제퍼 출시로 재정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제퍼는 유선형 라인을 가진 공기역학(aerodynamics)적인 디자인의 시초라는 평가를 듣게 되었으며, 에드셸 포드는 1938년 신차 링컨 컨티넨탈을 출시하기로 결정하고 신차 개발을 진행하여 소비자들로 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낸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한 세계적인 건축가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는 링컨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차'라고 평가했으며, 뉴욕 모던 아트 뮤지엄 역시 '탁월한 디자인의 차로 칭한 첫 번째 자동차 브랜드'로 링컨을 소개했다.
  • 1940년대 : 1940년대는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탱크 엔진, 수륙양용 차량 바디 및 14만대의 지프 바디의 제작을 위해 모든 자동차 생산이 중단되어, 이 시기에는 미국에서 출시된 대부분의 차들과 마찬가지로 링컨 역시 2차 세계대전 전의 디자인을 리스타일링된 모델들을 출시했다.
  • 1950년대 : 1950년대는 링컨에게 큰 변화의 시대였다. 파워 스티어링, 파워 브레이크, 파워 윈도우, 광각 앞 유리, 튜브가 없는 타이어, 자동 시트 등 옵션이 링컨 프리미어에 장착되기 시작했으며, 링컨의 디자인 또한 미래지향적으로 변화하였고, 컨티넨탈 마크 II는 링컨의 새로운 스타일룩을 만들어냈다. 당시 링컨은 세기에서 가장 아름답고 영향력 있는 자동차로 평가받았다.
  • 1960년대 : 1960년대는 그 당시 트렌드였던 화려함과는 대조적으로 심플함과 정교함에 초점을 두고 디자인을 한 뉴 컨티넨탈이 출시되어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차 그 이상의 평가를 받았다. 1961년 컨티넨탈은 가운데에서 문이 열리는 코치도어 방식으로 하드탑 또는 컨버터블 모델이 있었으며, 이는 1939년 원조 컨티넨탈과 마찬가지로 링컨의 이미지를 한꺼번에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뉴 컨티넨탈은 명성 높은 미국 산업디자인협회(IDSA: Industrial Design Society of America)에서 올해의 디자인 상을 받은 최초의 자동차가 되었다.
  • 1970년대 : 1970년대의 링컨은 60년대의 트렌드와 반대로 다시 넓어지고 럭셔리 해졌고, 링컨 마크 IV 쿠페는 70년대 젊은 부유층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1974년 링컨 최초로 자동차 뒷 유리 서리방지 시스템을 도입했을 뿐만 아니라 지방시(Givenchy), 구찌(Gucci). 까르띠에(Cartier) 등 유명디자이너의 패션 트렌드를 도입하여 링컨에 명품 마크를 새겨 넣었다.
  • 1980년대 : 1980년대 링컨은 획기적인 변화를 맞게 되는 시기였다. 1984년 마크 VII는 개인용 럭셔리 쿠페 부문에서 최고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으며, 뉴 컨티넨탈은 링컨 최초의 전륜구동(FWD: Front Wheel Drive)차로 크게 주목 받았다. 타운카를 비롯하여 나머지 모델들이 계속 성공하였고, 링컨은 총 280,659의 판매 대수를 기록하며 자동차 분야의 선두주자가 되었다.
  • 1990년대 : 1990년대에는 일본과 영국의 브랜드 자동차들이 미국 자동차 시장으로 진출하여 미국 제조업체와의 경쟁을 시작하였고, 이러한 상황에서도 링컨은 항상 최고의 자리를 유지했다. 1990년형 타운카는 모터트렌드(Motor Trend)의 "올해의 차"로 선정되었고, 드라마틱한 외관과 운전자 중심의 인테리어를 갖춘 마크 VII을 출시하며 또 한번 최고의 위치를 차지했다. 1998년 최초의 풀 사이즈 울트라 럭셔리 LUV인 내비게이터를 출시했으며, 전통적인 링컨의 특성을 살린 웅장하고 럭셔리함으로 내비게이터는 '도로의 왕(King of the Road)으로 불리며 젊은 층으로부터 큰 인기를 얻었다.[4]

모델

링컨 컨티넨탈 1세대
  • 1세대 : 1939년 쿠페와 컨버터블로만 나왔던 1세대는 'EQ900'보다 큰 덩치에 V12 엔진을 얹어 링컨 최고급 모델의 역할을 맡았으며, 1948년까지 생산되었다. 이후 컨티넨탈의 명맥이 8년간 끊겼다.
  • 2세대 : 1956년 마크 II로 부활한 V8 엔진의 2세대는 쿠페로만 나왔으며 1959년까지 생산되었으며,당시 미국에서 2번째로 비싼 자동차였다.
  • 3세대 : 1958년 출시된 3세대부터는 쿠페와 컨버터블 이외에 세단과 리무진이 추가되면서 선택의 폭이 넓어졌고, 덩치도 커지고 무게도 늘어났으며 V8 엔진의 배기량 역시 6.0리터에서 7.0리터로 커졌다. 공포의 검은 차에서 등장하는 검은 살인 차량이 이 모델이며 1960년까지 생산되었다.
링컨 컨티넨탈 3세대
  • 4세대 : 1961년에 출시된 4세대는 유럽식의 간결한 디자인을 미국 시장에 맞게 다듬어 활용했으며, 존 F. 케네디(John Fitzgerald Kennedy)대통령의 의전차 중 하나였으며,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은 암살 당시 1961년형 링컨 컨티넨탈 컨버터블을 개조한 전용 차량을 타고 있었다..[5]'카프리', '프리미어', '컨티넨탈'이 '컨티넨탈'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통합되면서 최고급 모델의 상징성은 약해졌으며, 1998년에 개봉한 형사 가제트의 실사영화 버전에서도 가제트 모빌의 베이스 모델이 되었다.
  • 5세대 : 1970년에 생산된 5세대 역시 V8 6.6~7.5리터 대배기량 엔진에 세단, 쿠페, 컨버터블 등 다양한 형태로 나왔으며, 6세대는 강화되는 연비 규제에 맞추기 위해 V8 엔진의 배기량이 5L로 줄었다. 이후 컨버터블은 더 이상 나 오지 않았으며 최고급 모델의 자리 역시 타운카에게 양보했다. 여담으로 김정일의 영구차로 이 차량이 쓰였고, 박정희도 의전차로 도입했다.
  • 6세대 : 1980년 컨티넨탈 마크 VI라는 이름으로 생산되었으며, 1983년 생산이 중지되었다. 헬로우 고스트에서 골초귀신의 부탁으로 자동차 소품점에 갔을 때 소품점 주인의 차량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링컨 컨티넨탈 7세대
  • 7세대 : 1982년 7세대부터는 더이상 쿠페를 선택할 수 없었다. 하지만 V8 가솔린, V6 가솔린, BMW의 6기통 디젤 등 다양한 엔진을 고를 수 있었으나, 1984년 출시된 디젤 모델은 1,500대밖에 팔리지 않으며 1년 후 단종됐다. 7세대는 링컨 베르사유(Lincoln Versailles)의 정신적 후속작이기도 하였으며, 이 때부터 2도어 모델이 삭제되고 4도어 세단만 남았다.
  • 8세대 : 1988년에 출시된 8세대부터는 조금씩 독일, 일본 대형차들에 밀려 브랜드파워가 떨어지다가 토러스의 전륜구동 플랫폼을 공유하는 흔한 큰 차로 전락했으며,140마력 V6 3.8리터 엔진이 장착됐다. 국내 시장에도 판매한 적이 있었고, 1986년에 기아산업이 포드와 제휴 관계를 맺었을 때 기아 프라이드를 생산해 포드 페스티바로 팔게 한 댓가로 머큐리 세이블과 8세대 모델을 1988년경부터 오이엠 (OEM: Original Equipment Manufacturer) 방식으로 직수입하여 계열사인 기아서비스를 통해 판매했다.
  • 9세대 : 1995년 출시된 9세대는 토러스의 전륜구동 플랫폼을 사용하였고, V8 4.6리터 DOHC 엔진을 이용했으며, 연비는 7.6 km/L 의 사양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낡은 디자인과 뒤떨어진 상품성 등으로 판매량이 크게 떨어지며 2002년에 최후 한정판 2,000대를 팔고 단종되었고, 2002년 LA오토쇼에서 V12 엔진을 얹은 '링컨 컨티넨탈 컨셉트'가 공개됐지만 실제 판매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링컨 컨티넨탈 10세대
  • 10세대 : 2010년대를 기해 대대적으로 이미지를 변화하며 큰 성장을 이룩한 링컨에서 컨티넨탈 컨셉트 카를 발표했으며, 현대적인 느낌이면서도 컨티넨탈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중후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주어 호평을 받았다. 이에 힘입은 링컨은 공식적으로 현재 링컨 라인업의 가장 큰 세단인 MKS를 단종시키고, 2016년에 컨티넨탈을 부활시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으며, 마침내 2016년 디트로이트 에서 열린 북미 국제 모터쇼(The North American International Auto Show) 에서 양산형 모델이 공개되어 2016년 여름에 출시되었다.[6] 파워트레인은 335마력 V6 2.7L 가솔린 트윈터보 엔진, 393마력 V6 3.0L 가솔린 트윈터보 엔진, 305마력 V6 3.7L 자연흡기 엔진을 6단 자동변속기와 맞물리며, 전륜구동을 기반으로 AWD를 선택할 수 있으며, 여전히 포드 토러스(Ford Taurus)의 전륜구동 플랫폼을 이용하고 있다. 출시 전에는 전세대 컨티넨탈은 물론이고, 기함이었던 타운카가 단종된지 상당히 오래됬다는 이유와 링컨의 기함이라고 해도 최고급차로서의 경쟁력을 상실한 지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시장에서의 큰 경쟁력을 기대하기 어려워 고급 택시 시장과 장의차 개조업체, 관용차 등 플릿 시장에서 주로 팔리게 될 것이라 예상되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2016년 9월 776대를 시작으로 10월 1,222대, 11월 1,419대를 판매하며 오히려 미국 토종 고급 브랜드 경쟁자인 CT6보다 더 빠르게 시장에 안착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반면 크기는 이전 세대의 차량들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으며, 3세대 타운카는 기본형이 전장 5.471mm에, 롱휠베이스 버전은 무려 5,624mm의 거체로써, 왠만한 리무진 수준이고, MKS도 5.2 m를 넘었지만 컨티넨탈의 길이는 5.1m를 약간 넘는 정도다. CT6와 G90보다는 짧고, S클래스나 7시리즈보다는 길며, 차폭도 라이벌 들을 압도하던 1,994mm의 부담스러운 풍채를 한껏 줄여 이전 세대의 차량들보다 좁아졌다. 이러한 컨티넨탈이 북미 시장에서 빠르게 시장에 안착한 것은 독일, 일본제 E세그먼트 차량 상위 트림 수준의 저렴한 가격과, 경쟁자들이 취한 "대형 세단도 젊은 감각을 가져야 한다"는 최신 트렌드와 반대로, 오히려 철저하게 안락하고 편안한 주행 감각과 보수적인 디자인을 가진 정통 대형 세단을 표방했기에 가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시대의 흐름에 끌려가지 않고, 링컨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장점으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간 점이 유효했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는 2016년 11월 30일에 출시했으며, 335마력 V6 2.7 트윈터보와 393마력 V6 3.0 트윈터보 모델이 들어오고 CT6같이 AWD만 나온다. V6 3.0 가솔린 트윈터보를 우선 판매하며, 복합연비는 7.5km/L이다. 2019년 부터는 무언가 어정쩡한 포지션의 2.7 모델은 판매를 중단시키고, 현재에는 3.0 모델만 수입되는 중이다. 또한, 대한민국 시장에서의 가격은 8,250 ~ 8,940만원 으로서, 시작가는 미국 판매 가격보다는 다소 높으나, 최상위 풀옵션 모델의 경우에는 미국 현지 판매가와 가격차이가 거의 없다. E세그먼트의 독일차보다 비싸지만, 1억 원을 호가하는 차량이 대부분인 프리미엄 브랜드의 플래그쉽 대형 세단 중에선 가장 낮은 가격이다. 이러한 링컨 컨티넨탈 10세대도 장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단점이 존재한다. 우선 시대에 뒤떨어진 6단 자동변속기와 별로 좋지 못한 연비, 투박한 인터페이스에 부분적으로 한글 번역이 안 되어 있는 센터페시아와 디지털 클러스터의 낮은 완성도 등이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점요소다. 이 중에서 개선 되어야 할 가장 시급한 점은 연비이며, 400마력에 근접하는 강력한 출력에 비해 6단은 현세대 트렌드에는 단수 자체가 상당히 부족한 면이 있다. 이러한 컨티넨탈은 정속주행 시 연비가 라이벌들에게 상당히 뒤쳐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 포드가 새로 개발된 신형 전륜구동형 8단 변속기인 포드 8F57 변속기가 노틸러스에 장착했기 때문에 곧 2020년형 모델에서 올라갈 듯 보이며, 노틸러스가 SUV이고 상당한 무게에도 도심연비 7.6을 달성했으니 컨티넨탈 역시 개선의 여지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코파일럿만 추가된다면 동급 대형세단 중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최고 수준의 모델이 될 것이다. [7]포드 토러스가 2019년 3월에 단종되어 포드 그룹에서 미국 내수 시장과 중국 외의 시장에서 판매 중인 대형 세단은 링컨 컨티넨탈 밖에 존재하지 않았으나,링컨이 크로스오버, SUV에 집중한다는 계획에 따라 MKZ에 이어 컨티넨탈도 2020년 연말에 생산을 중단하게 되었다. 이는 자사의 링컨 노틸러스(Lincoln Nautilus) 판매량의 4분의 1 수준 밖에 되지 않는 판매량을 기반으로 북미에서 예전과 달리 세단의 인기가 줄었다는 이유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컨티넨탈의 생산 종료 일자는 2020년 10월 30일이다.[8]

안전 및 성능

링컨 컨티넨탈의 안전 및 성능은 다음과 같다.

안전/성능 2.7 GTDI Reserve 3.0 GTDI Presidential 3.0 GTDI Reserve
하이빔 어시스트 기본 제공
오토 라이트 컨트롤 제공안함 기본 제공
운전석 에어백 기본 제공 제공안함
동승석 에어백 기본 제공 제공안함
커튼 에어백 기본 제공
무릎 보호 에어백 기본 제공
사이드 에어백 기본 제공
전방 감지 센서 기본 제공
후방 감지 센서 기본 제공
타이어 공기압 경보 장치 제공안함 기본 제공
차선 이탈 경보 시스템 기본 제공
차체자세제어 장치 기본 제공
토크 벡터링 제공안함 기본 제공
[9]

각주

  1. Henry_M._Leland Wikipedia - https://en.wikipedia.org/wiki/Henry_M._Leland
  2. 링컨 헨리 릴랜드 Henry M.leland〉, 《홀스레스바이클》, 2017-12-24
  3. 김성윤 기자, 〈링컨 "컨티넨탈은 아메리칸 럭셔리의 상징"〉, 《한국경제티비》, 2017-06-22
  4. 미국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 링컨의 역사〉, 《카리브》, 2017-04-05
  5. 김정운 기자,〈`김정일 영구차` 링컨 컨티넨탈…미국 대통령의 애마〉, 《한경닷컴》
  6. 링컨 컨티넨탈 위키백과 - https://ko.wikipedia.org/wiki/%EB%A7%81%EC%BB%A8_%EC%BB%A8%ED%8B%B0%EB%84%A8%ED%83%88
  7. 링컨 컨티넨탈 나무위키 - https://namu.wiki/w/%EB%A7%81%EC%BB%A8%20%EC%BB%A8%ED%8B%B0%EB%84%A8%ED%83%88
  8. 박상우 기자,〈링컨 컨티넨탈, 데뷔 81년만에 역사속으로...올 연말 생산 종료〉, 《엠오토데일리》, 2020-07-02
  9. 2017 링컨 컨티넨탈 제원 및 사양〉, 《애마티스토리》, 2017-09-20

동영상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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