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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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인민공화국(벵골어: গণপ্রজাতন্ত্রী বাংলাদেশ, 영어: People's Republic of Bangladesh) 또는 방글라데시(벵골어: বাংলাদেশ, 영어: Bangladesh)는 남아시아에 있는 인민 공화국으로서 인도, 미얀마 그리고 벵골만에 인접해 있다. 인도의 서벵골주와 더불어 벵골어를 쓰는 지역에 속한다. 국명 방글라데시는 벵골어로 "벵골의 땅" 또는 "벵골의 나라"를 뜻한다. 주요 도시로는 다카, 치타공, 실렛, 마이멘싱 등이 있다.
목차
개요[편집]
- 수도: 다카
- 면적: 148,560 km²
- 인구: 167,885,680명 (2022년)
- 공용어: 벵골어
- 정치체제: 단일국가, 인민공화제, 의원내각제
- 대통령: 압둘 하미드
역사[편집]
고대[편집]
기원전 10세기 무렵 현재 방글라데시라는 지역에는 드라비다어족의 언어를 말하는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예부터 문명이 발달했다.
기원전 4세기의 마우리아왕조에서 6세기의 굽타제국까지 수많은 왕조의 속령이었다. 북부 방글라데시에 남아있는 유물에서 초기의 문명은 불교 및 (또는) 힌두교의 영향을 받았다는것을 추측할수 있다.
8세기 중엽, 팔라제국때에 불교 왕조가 번창했다.
중세[편집]
12세기에 힌두교를 믿는 세나왕조가 들어섰고, 13세기에 이슬람 화가 시작되었다. 벵골동부의 대다수 주민을 이슬람교도로 개종시켰으며 서부 벵골지역에도 소수 이슬람 사회가 형성되었고 이슬람교는 이 지역의 역사와 정치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6세기에는 무굴제국 하에서, 상공업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15세기 말에는 유럽의 무역 상인이 방문하게 되었다.
15세기 후반 벵골지역에 도착한 첫 유럽인은 포르투갈 상인과 선교사들이였으며 뒤를 이어 네덜란드, 프랑스, 동인도회사가 잇달아 벵골에 나타났다. 18,19세기 동안 영국은 점차 인도의 캘커타에서부터 벵골에까지 그들의 상업적, 정치적 세력을 미쳤다.
영국식민지[편집]
무굴제국의 쇠퇴와 더불어 18세기 말, 영국 동인도회사에 의해 식민지화되기 시작하였다. 1757년 플라시 전투를 거쳐 1765년에는 영국 동인도회사가 징세권을 획득하게 되었으며, 1793년에는 행정권도 확보하게 되어 영국에 의해 완전히 식민지화되었다. 이 동인도 회사에 의해 영국은 벵골에서 인도 전역으로 지배를 확대했다. 영국의 통치기간 중, 벵골은 몇번이나 심각한 기근에 휩쓸려 엄청난 인명피해를 기록하였다.
1857년, 세포이 항쟁 이후, 1877년에 영국령 인도제국이 성립하였다. 인도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방글라데시 지역도 인도 독립운동에 참가하였고, 1947년에 인도의 독립을 달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벵골은 종교 문제로 힌두교를 믿는 지역은 인도로 독립하고, 이슬람교를 믿는 지역은 인도를 끼고 동파키스탄과 서파키스탄으로 분리 독립하였다.
현대[편집]
두 개의 파키스탄이 성립하면서 현재 방글라데시 지역은 동파키스탄이 되었다. 그러나 언어의 차이, 서파키스탄에 편중된 정책 등으로 동서 파키스탄이 대립하게 되자 동파키스탄이 독립을 요구하면서 서파키스탄(현 파키스탄)과 내란이 일어났다. 정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파키스탄내에서 벵골의 무지부르는 그들의 권리와 이익을 신장하기 위하여 아와미 연맹(Awami League, 약자 AL)을 만들었다. 그후 무지브르는 아와미 연맹의 대표로서 벵골 자치운동을 벌였으며 970년대 무지부르는 파키스탄 정부에 의해 체포되고 AL당은 활동이 금지되었다. 이때 서파키스탄과 대립하고 있던 인도가 동파키스탄의 독립을 지지하였다. 제3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에서 인도가 승리하자 1971년 3월 26일, 파키스탄군의 유혈 진압에 맞서 벵골 애국주의자들은 독립된 방글라데시 공화국을 선포하였다.
그 후 파키스탄군과 벵골 자유 투사들 간의 전투가 가열되자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 1,000만 명에 이르는 힌두교를 믿는 벵골인들이 인도의 아삼, 서벵갈 등지로 피신하였다. 인도의 지원 속에 결국 1971년 12월 16일 파키스탄 군대는 항복하고 ‘벵골 국가’라는 뜻의 방글라데시가 탄생하였다.
1972년 헌법에 의해 방글라데시는 의회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으나 그 후 약 30년간 정치적인 혼란과 부정이 만연했는데 13명의 행정 수반 중 초대 대통령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과 이후에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지아울 라만 등 2명이 암살당했고 쿠데타가 4번 이상 일어났다.
1991년 총선에서 중도 우파 세력인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BNP, Bangladesh Nationalist Party)이 아와미 연맹(AL, Awami League)을 꺾고 BNP 당수인 칼레다 지아가 최초의 여성 총리에 취임했다. 1991년 총선이 실시된 이후는 민주적 선거로 선출된 정부가 통치하고 있다. 치타공 구릉지 분쟁은 20년간 지속된 후 1992년에 휴전을 하였고, 1997년에는 평화 협정이 체결되었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남아있어 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1996년 헌법 개정으로 전 대법원장을 수장(총리 고문)과 비정당 선거관리 행정부(Non-Party Care-Taker Government)가 도입되었다. 이 제도는 현직 내각이 선거 활동에 간섭하거나 투표 결과를 조작하는 직권 남용 방지를 위해, 의회 해산 후 임명된다. 1996년 6월 총선에서는 아와미 연맹이 다시 승리를 거두며, 셰이크 하시나가 두 번째 여성 총리로 취임했다.
2002년 9월 6일에 예정되어 있던 대통령 선거는 후보자가 원래 다카 대학의 교수였던 이아쥬딩 아메드 1명 뿐이었기 때문에 투표없이 당선되었다.
2006년 10월, 군의 압력으로 칼레다 지아가 이끄는 BNP 정권이 퇴진하고 아메드 선거 관리 내각(임시정부)가 발족했다. 임시정부는 부패의 근절과 이슬람 과격파 대책에 임하고 있다. 2007년 1월 11일에 총선거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정당이 대립하며 정세가 악화되어, 총선이 이듬해 2008년으로 연기되었다. 이아쥬딩 아메드 대통령은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함과 동시에 전역에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방글라데시는 2008년 12월 17일 0시 1분부터 국가 비상사태를 해제했다. 2년간의 비상사태가 해제된후 방글라데시에서 7년 만에 처음 치러진 87%의 선거율을 기록한 총선에서 셰이크 하시나 전 총리가 이끄는 연정이 의회 총 300석 중 245석을 확보한 가운데, 제 1야당은 31석을 얻는 데 그쳤다.
지리[편집]
인도 접경과 갠지스강 삼각주 지역은 지대가 낮지만 미얀마 국경으로 가까워 질수록 지대가 높아지는데 방글라데시는 지리적으로 비옥한 갠지스 강 삼각주 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인도반도의 북동쪽 겨드랑이에 위치하기에 방글라데시의 동쪽 국경은 인도차이나반도와 접할 것 같지만, 국경선의 95%는 인도와 접하여 대부분의 방향에서 인도에 싸여져 있다. 남동쪽 말단 일부만 미얀마와 접한다.
방글라데시 국토의 대부분은 인도 아대륙의 벵골만 부근에 형성된 삼각주이다. 이 삼각주를 크고 작은 하천이나 칼이라는 수로가 거미줄처럼 뻗어 있다. 소택지와 정글이 많은 저지대이며, 정글은 벵골호랑이의 서식지로 알려져 있다. 북쪽은 히말라야산맥 남쪽 기슭부, 실롱 고원(메가라야 고원), 동쪽은 트리푸라 언덕과 치타공 구릉, 서쪽은 라쥬모호르 구릉에 둘러싸여 있으며, 남쪽은 벵골만에 접해있다. 동부 및 동남부에 해발 100 ~ 500m의 구릉이 펼쳐진다.
히말라야에 수원과 서쪽에서 갠지스 강(벵골어로 폿다강), 북쪽에서 브라마푸트라강이 계곡의 거의 중앙에 합류해, 최하류에서 메그나강에 합류하여 유역 면적 173만km2의 삼각주를 만들고 있다. 삼각주는 매우 인구 밀도 가 높다. 방글라데시의 토양은 비옥하고, 수원이 풍부해 논경작에 알맞지만, 홍수와 가뭄에 취약하여, 하천이 종종 범람해 많은 피해를 미친다. 국내의 구릉지는 남동부의 치타공 구릉지(최고 지점: 케오쿠라돈산, 1230m)와 실렛주에 한정된다.
북회귀선에 가까운 방글라데시는 열대 기후로, 10월부터 3월까지 겨울은 온난하다. 여름은 3월부터 6월에 걸쳐 고온다습한 시기가 이어지며, 6월부터 10월까지는 몬순이 내습한다. 거의 매년 이 나라를 강타하는 홍수, 사이클론, 토네이도, 해일과 같은 자연 재해는 일시적인 피해에 머무르지 않고, 삼림 벌채, 토양 열화, 부식 등의 원인이 되면서 더욱 큰 피해를 미치고 있다.
치타공의 남쪽에 위치한 콕스 바자르는 세계에서 가장 긴 천연의 해변으로 알려져 있다.
행정구역[편집]
방글라데시는 8개의 주(division)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의 명칭은 각 주의 주도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방글라데시에서 주 다음에 해당하는 행정 구역은 구(zila, districts)이며 방글라데시에는 64개의 구가 있다.
- 바리살주(বরিশাল)
- 치타공주(চট্টগ্রাম)
- 다카주(ঢাকা)
- 쿨나주(খুলনা)
- 마이멘싱주(ময়মনসিংহ)
- 라지샤히주(রাজশাহী)
- 랑푸르주(রংপুর)
- 실렛주(সিলেট)
경제[편집]
IMF에 따르면, 2011년 방글라데시의 GDP는 1130억 달러이며, 일인당 GDP는 678달러이다. 국제 연합 기준에 따라 후발 개도국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8] 2011년에 아시아 개발 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사는 빈곤층은 국민의 75% 이상 약 1억 1800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다.[9]
갠지스 강의 범람으로 형성된 세계 유수의 풍부한 토지를 자랑하며, 외부에서 침략도 끊이지 않았다. ‘황금 벵골’이라고 불리던 시절도 엄청난 인구와 노동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경제의 잠재력은 높지만, 홍수 등의 영향도 있어 현재는 빈곤 국가 중 하나로 손꼽힌다.
방글라데시는 내외를 불문하고 원조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인구와 정치 부패 등으로 아직도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방글라데시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으로는 다발성 사이클론과 그에 따른 범람 등의 지리적, 기후적 요인, 능률이 나쁜 국영 기업, 부적절하게 운영되고 있는 항구 등 인프라의 인적 요인, 제1차 산업 만으로는 감당하지 못하게 증가하는 노동 인구 등 인구 요인, 능률이 나쁜 에너지 이용법과 부족한 전력 공급 등의 자원적 요인, 또한 정치적 내부 투쟁과 붕괴 등의 정치적 요인을 들 수 있다.
2016년에는 아일랜드의 NGO인 컨선월드와이드(Concern Worldwide), 독일의 NGO인 세계기아원조(Welthungerhilfe) 그리고 미국의 연구기관인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가 협력하여 발표하는 세계기아지수(GHI)에서 100점 중 27.1점을 기록하며 심각한 수준을 나타냈다. (가장 기아가 심각한 나라도 50점을 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상당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전체 조사 대상인 118개의 개발도상국 중 90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앞으로도 기아 종식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농업[편집]
국내 총생산의 절반 이상이 서비스업에 의한 것이지만, 국내 인구 중 62%가 농업에 종사하고 70% 이상이 농촌에 거주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세계 생산량 중 4위)과 황마이다. 쌀 생산량은 세계에서도 상위에 있고, 생산량도 해마다 조금씩 증가하고 있지만, 인구가 많기 때문에 소비도 훨씬 많은 쌀 수입 국가이다.
방글라데시 벼는 우기 전반에 재배되는 아우도, 우기 후반에 재배되고 수확의 중심이 되고있는 아만도, 건기에 재배되는 보 벼의 3종으로 나뉜다. 기후적으로 이모작과 삼모작도 가능하지만, 건기에는 갠지스 강 수위가 낮아지기 때문에 삼모작을 할 수 있는 지역은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우물의 보급과 개량종의 보급으로 특히 건기 보 벼의 농업 생산이 크게 증가하고 그에 따라 오스 벼와 아만 벼의 생산도 증가했다. 이에 따라 이모작과 삼모작이 가능한 지역도 증가하고, 쌀 생산량이 크게 증가했다. 이것이 방글라데시의 ‘녹색 혁명’이라 불리는 농업 생산의 현대화 촉진이다. 녹색 혁명은 국가 정책으로 이루어졌지만, 녹색 혁명은 농가의 설비 투자 지출의 증대를 강요했다. 한편 생산량 증대는 그 부담을 채울 때까지 이르지 않는 문제를 안고 있다.
황마는 농산품으로 제2차 세계대전과 1940년대 세계생산량의 80%로 정점을 이뤘고, 1970년대조차도 수출 수입의 70%를 차지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폴리프로필렌에 밀려 중요성은 점차 줄어들었다. 황마에 이어 수출 농산품은 홍차이고, 차의 명산지로 알려진 인도 아삼 주에 인접한 북부 실렛 지역에서 주로 재배되고 있다. 19세기에는 쪽(인디고)의 세계적 최대 산지였지만, 화학 염료의 발명과 보급으로 생산은 급감했다.
산업[편집]
방직산업이 최근 급격히 발전하고 있다. 낮은 임금으로 매년 156억 달러의 방직물을 수출하고 있고 이는 방글라데시 전체 수출규모에 80%에 육박한다. 그러나 낮은 임금에도 불구하고 공급망 인프라를 확보하지 못하고, 잦은 홍수와 자연재해로 인해 성장에 제한받고 있어 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주민[편집]
주민은 벵골어를 사용하는 벵골족이 대부분으로, 인구의 98%를 차지하고 있다. 그 외에도 우르두어를 사용하는 비하르 주 등 인도 출신인 비(非)벵갈인 이슬람교도가 2%를 차지한다. 그 밖에 남동부의 치타공 구릉지대에는 10개 이상의 민족이 존재한다.
종교는 이슬람교가 86.6%, 힌두교가 12.1%, 불교가 1% 크리스트교가0.4% 기타종교가 0.3%이다. 세계에서 무슬림이 많은 국가 중(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인도)에서는 네번째로 무슬림 인구가 많은데, 그 수는 무슬림이 소수인 인도의 무슬림 인구보다 조금 적다. 기타 종교에는 불교, 로마 가톨릭, 개신교, 방글라데시 성공회, 부족종교가 포함된다.
방글라데시 사람 98% 이상이 벵골어를 모국어로 하며 공용어이다. 문자는 데바나가리 문자와 비슷한 벵골 문자를 이용한다. 유일한 공용어는 벵골어이지만 교육기관에서는 영어 사용도 허용되어 있다. 일부는 미얀마어, 우르두어, 아랍어, 힌디어도 사용된다. 전반적으로 공용어인 벵골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히 강하다. 모국어의 날이 있고, 파키스탄과의 독립전쟁의 계기로 파키스탄의 우르두어의 사용이 강요된 적이 있었다.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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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남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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