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디
아우디(Audi AG, 奥迪)는 아우토 유니언 도이치 잉골슈타트(Auto Union Deutschland Ingolstadt)의 줄임말로 벤츠의 엔지니어 출신인 아우구스트 호르히(August Horch)가 1909년 설립한 세단, 스포츠카, 쿠페, SUV 차량 등을 제조, 판매하는 독일의 자동차 제조 업체이다. 아우디는 폭스바겐그룹의 자회사이며 아우디스포츠, 람보르기니, 두카티, 세아트 등을 자회사와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본사는 독일 바이에른주(Freistaat Bayern) 잉골슈타트(Ingolstadt)에 있으며 메르세데스-벤츠, BMW와 함께 독일의 3대 프리미엄카 회사로 불린다. 세 브랜드에서 중도적 콘셉트를 가졌기 때문에 편안함, 중후함, 그리고 스포티함을 모두 적당하게 원하는 3~40대에 안성맞춤인 브랜드이다. 1909년 창시자인 아우구스트 호르히(August Horch)가 설립한 아우디 베르케(Audiwerke GmbH)로 시작되었으며 현임 최고경영자는 마르쿠스 듀스만(Markus Duesmann)이며 2020년 4월 1일부터 재임 중이다.
아우디는 2018년 9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최초로 공개한 e-트론(e-tron)을 2019년 3월 유럽 시장에서 판매를 시작하고 2020년 상반기 전 세계 대형 전기 SUV 세그먼트 가운데 최다 판매 차량이며 1월부터 6월까지 총 1만 7,641대를 판매하였다. 한국에서는 2020년 7월 1일부터 판매를 시작하였으며 국내 투입차종은 아우디 e-트론 55 콰트로(Audi e-tron 55 quattro)이며 모터가 앞뒤 2개가 탑재되고 최대출력은 360마력이며 최대 토크 57.2kgm의 파워를 발휘한다. 한국수입차협회에 따르면 2020년 7월 수입 전기차 판매량은 640대로 지난해 7월의 98대에 대비 약 7배 증가하였으며 수입 전기차 시장을 주도한 것은 아우디 e-트론 55 콰트로이며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394대의 판매고를 달성하여 지난달 수입 베스트셀링카 10위에도 이름을 올렸다. 아우디 e-트론 55 콰트로는 국내 전체 전기차 판매 3위를 기록하며 수입 전기차 시장을 넘어 국내 전기차 시장에서 주목받았다. [1]
목차
개요
아우디는 1968년 11월 4도어 세단인 아우디 100을 출시하며 새로운 판매고를 올리며 1971년까지 총 50만 대가 팔리며 아우디 브랜드가 독립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현재는 네카줄름, 벨기에 브뤼셀,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스페인 마르토렐, 러시아 칼루가, 인도 아우랑가바드, 중국의 창춘과 푸산,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등 지역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2019년 아우디의 총 판매량은 184만 5,550대이며 2018년 대비 1.8% 증가하였다. 독일 본토에서 판매량은 76만 9,650대이고 중국 시장의 판매량은 69만 0,083대로 아우디의 두 번째로 큰 자동차 시장이며 대한민국의 판매량은 11,930대이다.[2]
아우디의 전신인 아우디 베르케는 1932년 호르히(Horch), 데카베(DKW), 반더러(Wanderer) 사와 합병하여 아우토 유니언(Auto Union)을 설립하였다. 아우디의 엠블렘인 네 개의 고리는 아우토유니언의 전신인 네 개의 회사를 의미한다. 첫 번째 고리는 아우디, 두 번째 고리는 데카베, 세 번째 고리는 호르히, 네 번째 고리는 반더러를 상징한다. 데카베는 전륜 구동 방식의 소형차에 강하고 반데러는 중형차 부문에서 강점이 있었으며 호르히는 고급 대형 세단에서 강세를 보이는 등 각각의 강점을 갖춘 회사들이 합병된 결과 아우토 유니언은 다양한 자동차 라인업과 함께 보다 나은 제작 시스템을 갖출 수 있었다.
아우디는 독특한 기술력으로 60년대 일반 대중 자동차 브랜드에서 지금의 프리미엄 브랜드로서의 위치까지 올랐으며 아우디는 부식을 방지하기 위해 100% 아연으로 도금한 강판의 차량을 생산하며 BMW나 메르세데스벤츠의 후륜구동 방식과 달리 전륜구동 또는 4륜 구동 방식을 채택하였다. 1970년대 모든 고급차가 후륜구동을 고집할 때부터 개발에 착수하여 선보인 풀타임 4륜 구동 시스템 아우디 콰트로가 대표적이다. 1983년에 출시한 아우디 100은 공기저항 계수를 0.30까지 낮추며 공기역학적으로 가장 뛰어난 차량이었다. 1985년에는 아연 도금 차체를 적용하여 차체의 부식 방지를 위한 새로운 기술을 선보였으며 1989년에는 고압 직접분사와 터보 차저가 하나로 합쳐진 TDI 기술로 연료 소모를 줄이면서도 더욱 빠른 속력을 낼 수 있는 차세대 엔진을 개발하였다. 1993년에는 경량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알루미늄 소재를 이용한 아우디 스페이스 프레임(ASF)를 선보이면서 차체의 강성을 올리면서도 연비를 향상시켰다. 1999년에는 변속 충격이 없는 무단 자동변속장치인 멀티트로닉(multitronic)을 개발하는 등 꾸준히 자동차 업계의 기술적인 발전을 이끌어 가고 있다.
2013년 아우디의 RS7 기반으로 자동 운전장치를 내장한 차량인 로비는 독일 호켄하임링 서킷에서 최대 시속 240km를 기록하여 자율주행차의 최고 기록을 경신하였으며 무인 차량은 복잡한 코스를 무난하게 주행하였고 핸들링 역시 불필요한 수정 없이 안정된 모습을 보였으며 마지막 정차까지 정확한 위치로 끝마쳤다. 2020년 8월 26일 폭스바겐은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시에서 자율주행 모빌리티 서비스 테스트 프로젝트로 아우디의 전기차 e-트론으로 조직한 자율주행 플릿(fleet)을 9월부터 테스트한다.[3]
역사
아우디 탄생
1899년 11월 아우구스트 호르히는 자신의 이름을 딴 자동차 회사인 호르히 앤 시에(A. Horch & Cie)를 쾰른(Cologne) 근처에 설립하였으며 1904년 주식회사로 회사를 공개하였으나 동업자들과의 불화로 자신의 회사에서 떠나 1909년 자신의 이름 호르히(horch)의 라틴어 어원 오우디(Audi)에서 인용하여 새로운 회사인 아우디 베르케(Audiwerke GmbH)를 설립하고 1910년부터 고급 세단 개발에 회사의 역량을 집중하였으며 배기량 2,612cc 모델로 시작하여 4기통 3,564cc, 4,680cc, 그리고 5,720cc 모델을 생산하여 자동차 경주 대회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1920년 호르히는 회사를 떠나 교통 자문관으로 일하면서 아우디의 이사로 활동하였다. 1932년에 일어난 경제 대공황 때 대부분의 유럽 자동차 업체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며 미국의 자동차 업체가 유럽 시장을 공략하는 위기를 타개하기 위하여 아우디는 그나마 친분이 있던 호르히, 데카베, 반더러와 합병하여 아우토 유니언(Auto Union)을 설립하고 4개의 원이 겹쳐진 현재의 마크를 사용하였으며 합병 후에도 각 브랜드의 독립성을 살려 각자의 브랜드 이름으로 제품을 출시하였다. 아우토 유니언은 합병으로 모터사이클부터 고급 살롱까지 많은 제품군을 확보하게 되었으며 기술적 발전은 계속되었으며 일부 아우디 자동차 모델은 호르히나 반더러에서 만든 엔진을 탑재하기도 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많은 공장이 파괴되었고 전후에도 대부분의 공장들이 동독 영토가 되면서 위기에 봉착하여 1949년에 바이에른 주 잉골슈타트로 본사와 생산 시설을 이전하였다.
아우디 성장
1958년 메르세데스-벤츠가 아우디 주식의 88%를 인수하고 1959년 나머지 주식도 모두 인수하여 메르세데스-벤츠의 자회사가 되었으나 1964년 메르세데스-벤츠는 아우토 유니언을 폭스바겐에 매각하였다. 1968년 수석 디자이너인 루드비히 크라우스(Ludwig Kraus)가 아우디 100(Audi 100)의 개발을 완성하며 제품은 중대형 고급 승용차 시장을 겨냥하여 제작되었다. 1969년에는 폭스바겐이 로터리 엔진 분야의 모터사이클 및 소형 자동차 업체인 NSU사를 인수하는 동시에 NSU 브랜드를 폐기하고 아우토 유니언과 합병시키고 이름을 아우디 NSU 아우토 유니언(Audi NSU Auto Union AG)으로 바꾸고 본사는 네카줄름(Neckarsulm)에 두고 아우디는 폭스바겐그룹 산하의 고급 승용차 브랜드로 성장하였다. 1980년대 들어 A8의 전신인 V8을 내놓는 등 브랜드를 고급화시키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1980년대 중반 일찌감치 중국의 개혁개방 때 진출한 중국 내 첫 외국 기업인 모기업 폭스바겐의 덕분에 중국에서는 관용 고급차로 자리하고 풍부한 중국 내수시장을 발판으로 큰 성장을 이뤄가고 있었다. 1996년 새로운 A4를 시작으로 아우디는 유럽 시장에서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었으며 최정상급 품질의 자동차 제조회사로서 명성을 구가하였다. 2000년대 들어 A4, A6, A8의 우수한 품질력과 상품성을 인정받아 미국 내 판매 신장과 러시아와 대한민국 등 신흥 시장에서 신선한 이미지의 고급 브랜드로서 명망을 얻어 본격적인 프리미어 브랜드로 인정받았다. 2006년 아우디 TT와 2007년 R8 두 차량이 올해의 가장 뛰어난 디자인을 가진 자동차로 선정되어 세계에 뛰어난 자동차 브랜드라는 명성을 알리였으며 아우디 R8에는 세계 최초로 자동차 헤드라이트와 테일램프에 상, 하 LED 주간 주행등을 적용하였는데 이 LED 주간 주행등은 아우디의 패밀리 룩인 싱글 프레임 라디에이터 그릴과 함께 이후에 출시된 B8형 A4 및 A5에도 확대되었으며 현재까지 아우디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낸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2008년 아우디는 A3, 뉴 A4, Q5, TTS, A6 시리즈의 페이스리프트 등의 새로운 모델들을 내세워 충실한 라인업을 구축하고 목표였던 100만 대 판매량 도달하여 자동차 업계 역사상 최초로 13년 연속 성장세를 보여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음은 물론 자국 독일에서 경쟁사인 벤츠와 BMW보다도 많은 판매량을 보였다.
연도별 주요사건
- 1909년 아우구스트 호르히가 아우디 베르케(Audiwerke GmbH)를 설립하였다.
- 1920년 자체 생산한 아우디 타입 K를 선보였다.
- 1921년 세계 최초로 좌측 핸들 차량을 선보여 운전자의 보다 넓은 시야 확보하였다.
- 1923년 세계 최초로 공기역학 디자인을 위한 윈드 터널 테스트 실시하였다.
- 1924년 첫 번째 4,655cc 6기통 모델을 발표하였으며 데카베(DKW)의 소유주인 요르겐 라스무센(Jorgen Skafte Rasmussen)에게 대부분의 주식이 인수되었다.
- 1929년 아우디 츠비카우(Audi Zwickau)와 아우디 드레스덴(Audi Dresden) 모델을 발표하였으며 두 모델은 요르겐 라스무센이 미국 리켄베커(Rickenbacker)로부터 사들인 6기통 엔진 장비를 사용하였다.
- 1932년 아우구스트 호르히의 주도 아래 독일 작센(Saxonia) 지방의 대표 자동차 업체인 반데러(Wandere), 데카베(DKW), 호르히(Horch), 아우디(Audi)가 합병하여 아우토 유니언(Auto Union AG)을 설립하였으며 쳄니츠(Chemnitz)에 본사를 두었다.
- 1933년 베를린 모터쇼에서 아우토 유니언은 표준형 승용차로서는 세계 최초로 승차감과 파워를 극대화하기 위한 전륜 구동 방식을 채택한 모델인 아우디 프론트(Audi Front)를 출시하였다.
- 1934년 아우토 유니언은 자동차 경주 대회에 본격적으로 참가하였다.
- 1937년 아우토 유니언의 레이싱카 스트림라이너(Streamliner)는 세계 최초로 지상에서 자동차 최초로 시속 400km를 넘겼다.
- 1938년 세계 최초로 자동차 측면 충돌 테스트를 실시하여 안전의 개념을 뒤바꿔 놓았다.
- 1939년 2차 세계대전의 시작과 함께 당시 대부분의 독일 기업들처럼 아우토 유니언도 군사용 차량을 생산하도록 개편되었으며 연합군의 폭격 대상이 되며 전쟁 기간 동안 상당한 피해를 입게 되었다.
- 1945년 소련군에 의해 독일이 점령당하고 소련 군정의 명령 하에 전시 배상의 일환으로 아우토 유니언의 공장들은 해체되었다.
- 1949년 전쟁 이후 바이에른주 잉골슈타트로 본사와 생산 시설을 이전하고 데카베 브랜드의 자동차 생산을 재개하였다.
- 1958년 메르세데스-벤츠가 주식의 88%를 인수하였다.
- 1959년 나머지 주식도 모두 인수하여 메르세데스-벤츠의 자회사가 되었다.
- 1964년 메르세데스-벤츠는 아우토 유니언을 폭스바겐에 매각하였다.
- 1968년 아우디 100(A6의 시초)을 출시하였다.
- 1969년 폭스바겐이 NSU사를 인수하는 동시에 NSU 브랜드를 폐기하고 아우토 유니언과 합병하여 아우디 NSU 아우토 유니언(Audi NSU Auto Union AG)을 설립하였다.
- 1972년 아우디 80 폭스를 출시하였다.
- 1974년 아우디 50을 출시하였다.
- 1977년 아우디 브랜드를 공식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 1980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아우디의 풀타임 4륜 구동 아우디 콰트로(Audi Quattro)를 선보였으며 상용화하였다.
- 1982년 터보 차저 엔진을 얹은 스포츠 쿠페 모델인 아우디 콰트로를 출시하였다.
- 1985년 아우디 주식회사(Audi AG)라는 공식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 1986년 파사트(Passat)에 기반을 둔 아우디 타입 89를 발표하였다.
- 1987년 아우디는 여러 가지 기능을 포함하면서도 새롭고 매우 우아한 아우디 90을 공개하였다.
- 1988년 페르디난트 피에히(Ferdinand Piëch)가 아우디의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 1989년 터보 디젤 직분사 엔진(Turbo Diesel Direct Injection, TDI)을 선보였다.
- 1993년 충격에 더 강하며 무게는 훨씬 가벼운 알루미늄 프레임인 ASF(Audi Space Frame)를 개발하였다.
- 1994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새로운 프리미엄 모델인 아우디 A8(Audi A8)을 선보였으며 기존의 아우디 80은 A4로, 아우디 100은 A6로, 그리고 아우디 V8로 불리던 프리미엄 모델은 A8로 명명법을 통일하였다.
- 1996년에는 첫 번째 콤팩트 클래스 모델인 아우디 A3(Audi A3)가 제품 라인업에 추가되었다.
- 1998년 아우디는 경량 스포츠카 아우디 TT(Audi TT)를 선보였으며 유명 스포츠카 메이커 람보르기니를 인수하였다.
- 2005년 아우디 최초의 SUV인 Q7을 출시하였으며 SUV 라인인 Q 시리즈의 시작이다.
- 2006년 세계 최초로 디젤엔진을 장착한 레이싱카 ‘Audi R10 TDI’로 세계에서 가장 혹독한 레이스인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우승하며 고성능 스포츠카인 아우디 R8을 출시하였다.
- 2007년 아우디 A4, A6, A8 등 기본 모델의 콘셉트에 보다 고성능을 더한 S 시리즈를 출시했다.
- 2009년 세계 최초로 100% 순수 전기 스포츠카인 아우디 e-트론(Audi e-tron) 컨셉트카를 공개하였다.
- 2012년 세계 최초로 아우디 디젤 하이브리드 레이싱카인 아우디 R18 e-트론 콰테르(Audi R18 e-tron quattro)로 르망 24시간 레이스 제패하며 모터사이클 회사인 두카디를 인수하였다.[4]
- 2014년 세계 최초로 가장 빠른 무인 자율 주행 차량 아우디 RS7(Audi RS7)로 DTM 레이싱 서킷 완주하였다.[5]
계열사
아우디는 폭스바겐그룹 소속이며 2002년 계열사 분리 정책에 따라 아우디 주식회사(Audi AG)로 분리되었으며 람보르기니, 두카티, 세아트 등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다. 폭스바겐그룹은 아우디 주식회사의 최대주주이며 전체 지분의 99%를 소유하고 있다.
- 아우디 스포츠
아우디 스포츠(Audi Sport)의 전신은 1983년 10월에 설립된 콰트로 디비전(quattro GmbH)이며 2016년 아우디 스포츠로 이름을 변경하고 아우디 산하의 고성능 모델 생산을 담당하는 부서이다. 주요하게 아우디 고성능 모델 완성차와 부품을 생산하며 고객들을 위한 맞춤 제품 제작을 하고 있으며 성능이 뛰어난 튜닝 차량을 생산하고 있다. 제품으로는 아우디 RS 시리즈의 자동차를 생산한다.[6]
- 람보르기니
람보르기니(Lamborghini)는 1963년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Ferruccio Lamborghini, 1916년~ 1993년)에 의해 설립된 이탈리아의 스포츠카, 슈퍼카 생산 기업이며 특유의 미래지향적이고 남성적인 직선 위주의 날카로운 디자인으로 유명하고 12기통 엔진을 탑재한 플래그십인 아벤타도르 S, 아벤타도르 S 로드스터, 아벤타도르 SVJ, 아벤타도르 SVJ 로드스터, 10기통 엔진을 탑재한 엔트리 모델 우라칸 EVO, 우라칸 EVO 스파이더, 우라칸 EVO RWD, 우라칸 EVO RWD 스파이더 그리고 우루스, 우루스 펄 캡슐, 즉 차량 세종의 사양 변경 모델이 있다. 1998년에 아우디가 인수하였으며 2019년의 직원수는 1,787명이며 판매량은 8,205대이다.[7]
- 두카티
두카티(Ducati)는 1926년 설립된 전자제품 회사였으며 1946년부터 엔진 달린 자전거인 쿠춀로(Cucciolo)를 만들기 시작하였으며 1953년 아예 모터사이클 사업부를 완전히 분리해서 두카티 머캐니커(Ducati Meccanica)와 두카티 엘레트로니카(Ducati Elettronica)의 두 개의 회사로 나누었다. 1954년 천재 엔지니어 파비오 타글리오니(Fabio Taglioni)를 전격 영입하였으며 두카티의 상징과도 같은 데스모드로믹 캠을 적용하였으며 대 배기량 바이크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하였다. 2012년 5월에 폭스바겐 그룹의 아우디에게 지분이 100% 인수되며 모든 경영권과 수익권 또한 폭스바겐그룹으로 귀속이 되었다. 이제는 생산 조립만 이태리와 태국에서 할 뿐 사실상 독일 브랜드나 다름이 없다.[8]
- 세아트
세아트(SEAT)는 스페인의 유일한 양산형 자동차 생산, 판매 기업이며 1953년에 설립된 국영 기업체인 에스파냐 투리스모 자동차 회사(Sociedad Española de Automoviles de Turismo)이며 줄여서 세아트(SEAT)라고 부른다. 피아트의 차량을 라이센스 하여 세아트 브랜드로 바꿔서 판매, 수출만을 하였으며 1982년에 최초의 독자 개발 모델인 론다(Ronda)의 생산을 시작으로 이비자(Ibiza) 등의 독자 모델을 개발,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1986년에 폭스바겐이 세아트의 주식 75%를 인수하면서부터 폭스바겐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되고 1990년에는 폭스바겐이 세아트의 지분 99.99%를 인수하여 완전 자회사가 되었으며 아우디그룹에 편입되었다. 연 생산량 45만 대 규모의 규모가 작은 브랜드로서 생산은 전량 스페인의 마르토렐(Martorell)에서 이루어지며, 유럽 지역과 아프리카, 남미, 중동 지역, 중국에만 진출해 있는 상태이다.[9]
주요 인물
- 아우구스트 호르히
아우구스트 호르히(August Horch, 1868년~1951년)는 독일의 기술자, 산업 디자이너, 기업인으로서 자동차 회사 아우디의 설립자이다. 1868년 독일 뷔닝겐(Winningen)에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미트바이다 공대(Hochschule Mittweida)에 진학해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3년 만에 엔지니어 졸업을 하였다. 1896년 메르세데스와 합병 이전의 벤츠사인 카를 벤츠(Karl Benz)의 회사에 입사하고 4개월 만에 엔지니어로서 두각을 나타내어 벤츠는 호르히에게 자동차 제작 경영 일부를 위임하여 1894년부터 생산한 4륜 자동차인 벨로 제작을 담당하게 하였다. 호르히는 계속해서 더 뛰어난 모델을 만들길 원했으나 벤츠의 반대에 부딪혀 독립하여 1899년 살리 헤어츠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인 호르히 앤 시에(A.Horch & Cie)를 쾰른 근처에 설립하였고 1901년에 자신의 첫 자동차 모델을 출시하였다. 호르히 앤 시에는 1902년에 작센(Sachsen) 지방의 라이헨바흐(Reichenbach)로 이전하고 1904년 주식회사로 개편하였다. 아우구스트 호르히는 카레이서로도 활동하였는데 자신이 만든 자동차를 타고 경주에 출전해 여러 번 우승하기도 하였지만 정작 회사의 상황은 어려워졌다. 1909년, 아우구스트 호르히는 투자자들과의 갈등으로 이사회의 결의에 의해 자신의 회사에서 축출되었다. 엔지니어 출신이었던 아우구스트 호르히가 지나치게 자동차 경주에만 몰두하여 사업성에 문제가 있다는 이사회의 판단이었다.[10]
기존 회사를 떠난 아우구스트 호르히는 1909년 같은 도시에 호르히 오토모빌-베르케(Horch Automobil-Werke GmbH)라는 이름으로 두 번째 회사를 설립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이미 이전 회사에 사용하였기 때문에 똑같은 이름을 두 번째 회사에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인 'Horch'(듣다)의 라틴어 어원인 'Audi'를 회사 이름으로 사용하기로 하고 회사명을 아우디 베르케라고 하였다.
아우구스트 호르히는 또한 세계 최고의 자동차 경주로 손꼽히던 오스트리아 국제 알파인 레이스에 1911년 처음으로 참가하여 우승하였으며 1920년 아우디 본사는 자동차 설계 전문가들이 많은 베를린으로 이전한 후에는 베를린에서 교통 자문관으로 일하면서 아우디의 이사로 활동하였다. 1920년 이 회사를 떠나 독일 교통부 고위 공무원이 되었지만 여전히 아우디의 임원으로 근무하였다. 1932년 아우토 유니언의 이사회에 편입되어 활동하였으며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호르히는 나치당 독재 시절 나치에 대한 존중을 표현한 것이 화가 될 거라는 생각에 이리저리 도시를 옮겨 다니며 몸을 피하고 뮌히베르크에 정착하였다.[11]
- 페르디난트 피에히
페르디난트 피에히(Ferdinand Piëch, 1937~2019)는 폭스바겐의 창시자인 페르디난트 포르셰 박사의 외손자이며 오스트리아에서 출생하였고 포르쉐 엔지니어로 활동하였으며 1972년 아우디 개발팀의 엔지니어로 합류하였고 1988년 아우디의 회장으로 임명되었으며 1993년 폭스바겐그룹 회장으로 아우디를 떠나기까지 20년 동안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아우디의 중요 기술적 성취를 이뤄낸 인물이며 "살아 있는 독일 자동차 업계의 전설"로 불렸다.
취임 이후 아우디에서 개발을 총괄하게 된 그는 기술 혁신을 가속화하였으며 1973년 1차 석유 파동이 시작되면서 자동차 연비 효율을 높이는 일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으나 연비 효율 측면에서 당시 로터리 엔진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는 포르쉐에 일할 때부터 5기통 엔진을 연구하였으며 벤츠에 들어갈 5기통 엔진을 설계한 경험으로 새로운 엔진을 개발하여 1976년 2세대 아우디 100 (A6 전신)에 5기통 가솔린 엔진이 들어가게 되고 이때부터 5기통 엔진 시대가 시작되었으며 아우디는 지금도 5기통 승용 엔진을 이어가고 있다. 1970년대 중후반부터 디젤 엔진의 효율성을 올리는 방법을 연구하였으며 보쉬가 개발한 고압 분사 펌프와 터보차저를 효과적으로 결합하여 적은 연료로 엔진의 출력을 과거보다 더 높일 수 있게 된 터보 디젤 직분사 엔진(Turbo Diesel Direct Injection, TDI)을 1989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5기통 TDI 엔진이 들어간 3세대 아우디 100을 통해 공개하였다.
그는 포르쉐 시절 뿜었던 에어로다이나믹과 경량화 연구를 시작하였으며 1983년에 공기 저항 계수가 0.30Cd 수준인 3세대 아우디 100을 출시하고 양산하였으며 1993년에는 충격에 더 강하며 무게는 훨씬 가벼운 알루미늄 프레임인 ASF(Audi Space Frame)를 개발하고 1994년 제네바 모터쇼를 통하여 아우디는 새로운 프리미엄 모델인 아우디 A8(Audi A8)을 선보였다. 아우디 A8은 차체를 100% 알루미늄으로 제작한 세계 최초의 양산 승용차였다.
그가 재임하는 시절 아우디는 1980년 제네바 모터쇼를 통해 아우디 80을 기본으로 한 아우디 콰트로 모델이 출시였다. 페르디난트 피에히는 1993년 폭스바겐그룹 회장으로 자리를 옮기며 아우디의 마케팅 부서를 독립시켰다. 이때 독립된 판매 마케팅팀은 아우디가 프리미엄 영역으로 들어가는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자신들이 따라가고 넘어서고 싶어 했던 벤츠, BMW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12]
기술력
아우디의 슬로건이 독일어로 기술을 통한 진보(Vorsprung durch Technik)이며 기술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아우디의 기술 혁신은 1972년 포르쉐에서 아우디로 옮긴 전 폭스바겐그룹의 회장이자 이사회 의장인 페르디난트 피에히의 영향이 매우 크며 콰트로 시스템, 차체 아연도금, TDI 엔진, ASF 등 아우디의 핵심 기술을 여러 개를 개발하였고 현재의 아우디가 3대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 잡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아연도금의 경우 지금은 보편적인 기술이지만 피에히가 아연도금을 도입한 것은 1980년대이며 당시에는 획기적인 기술이었다. 기술을 통한 진보는 바로 피에히의 좌우명이다.
콰트로
콰트로(QUATTRO)는 아우디의 대표적인 기술로 1980년에 발표한 상시 4륜구동(AWD) 시스템이며 거의 모든 차종에 장착되면서 아우디 하면 콰트로가 떠오를 정도로 아우디의 대명사가 되었다. 콰트로(Quattro)는 라틴어로 4를 뜻하며 사륜구동을 상징해 붙여진 이름이었다. 1980년 3월 제네바 모터쇼에서 아우디는 풀타임 4륜구동 시스템을 장착한 아우디 콰트로를 선보이며 고급차의 후륜 구동방식을 대체할 새로운 구동방식을 소개하였다. 최초의 아우디 콰트로는 터보차저를 장착한 쿠페 스타일로 스포츠카 5기통 엔진을 장착했으며 배기량 2,144㏄에 최대토크 29.1㎏·m, 5,500rpm에서 200마력을 내고 있으며 최고 속도는 시속 222㎞, 제로백은 7.1초였다. 이 차량은 1981년부터 1985년까지 4년 동안 월드 랠리 챔피언십(World Rally Championship, WRC)에서 24번의 우승을 가져가 유명해졌다. 콰트로의 대성공으로 경쟁사들이 앞다퉈 4륜구동 시스템을 승용차에 사용하는 것을 연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콰트로의 원리는 단순하고 효과는 놀랍다. 콰트로는 4륜 전체에서 지속적으로 추진력을 일으키며 강한 추진력, 손쉬운 가속, 뛰어난 코너링, 안정적인 방향 전환, 독보적인 핸들링이 가능하여 어떤 길을 달리든 획기적인 구동 시스템이며 처음 선보인 이후부터 지금까지 많은 혁신과 기술의 발전이 있었다. 30여년 동안 아우디는 4륜구동을 도입해 자동차 업계에서 기술의 리더로 주요 개척자로 자리하였다.[13]
원리
- 구동력 토크의 기본적인 분포: 60%는 뒤차축, 40%는 앞차축으로 전달해 높은 추진력과 우수한 핸들링을 선사한다.
- 한쪽 차축의 마찰력이 줄어드는 경우 추진력의 최대 85%가 뒤차축으로 전달되고 최대 70%가 앞차축으로 간다.
- 토크 벡터링은 추진력이 각각의 바퀴로 갈 수 있게 한다.
- 구동력과 토크는 바퀴가 회전하기 전 조금의 지체도 없이 곧바로 전달된다.
- 드라이빙 상황과 스타일에 따라 구동력이 전달된다.
- 뒷바퀴 사이에 다른 비율로 추가적인 구동력 토크를 전달한다.
- 필요한 경우 뒤차축의 전체 추진력이 두 개의 뒷바퀴 중 한쪽에만 실린다.
- 도로의 곡선부에 접어들거나 곡선부에서 가속을 낼 때 안쪽 바퀴에 제동을 하는 대신 더 큰 동력이 바깥쪽 바퀴에 실린다.
콰트로의 3가지 구동 시스템
- 콰트로 상시 4륜구동.
- 크라운기어 센터 디퍼렌셜 또는 셀프로킹 센터 디퍼렌셜과 토크 벡터링이 탑재된 콰트로 4륜구동.
- 스포츠 디퍼렌셜 콰트로.
아우디는 콰트로 기술을 더 효율적이고 정확하게 강하게 만들었으며 상시 4륜구동 다음의 진화 단계는 새로운 셀프로킹 센터 디퍼렌셜과 전기로 제어하는 토크 벡터링 기술이며 특히 코너 드라이빙이 더욱 정확하고 다이나믹하다. 변속기에 따라 토크 벡터링은 크라운기어 센터 디퍼렌셜(S tronic®) 또는 셀프로킹 센터 디퍼렌셜과 함께 탑재되며 혁신적으로 결합하여 다이나믹한 주행성능을 제공하며 드라이빙의 즐거움과 파워감이 커진다.[14]
아우디 스페이스 프레임
아우디 스페이스 프레임(Audi Space Frame, ASF)은 1993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를 통해 공개한 알루미늄 골격 구조 본체이며 단조 알루미늄 프레임과 다이캐스트 연결부로 구성된 스페이스 프레임으로 차체 하중을 견디게 하고 알루미늄 패널을 프레임에 부착하여 승차 공간을 구성하는 혁신적인 구조이다. 1994년 아우디 V8의 후속인 1세대 아우디 A8에 최초로 적용되었으며 알루미늄 프레임은 스틸 구조의 일반 차체에 비해 약 120~140kg까지 무게를 감량하는 효과를 내며 연비를 향상시키고 엔진과 트랜스미션이 최상의 경제성과 성능을 발휘할 수 있게 한다. ASF 기술은 무게는 줄이고 안전도가 높은 혁신적인 기술로 2008년 EU 기술 대상을 받았다. 2012년까지 풀 알루미늄 바디를 양산할 수 있는 메이커는 아우디뿐이며 알루미늄 합금은 미국의 알루미늄 제품 제조업체인 알코아(Alcoa)에서 강판의 형태로 공급하며 이것을 유압 성형 기술을 써서 정확한 모양으로 가공한 다음 숙련공이 용접 작업을 한다
아우디 스페이스 프레임은 스틸 차체에 비해 비틀림 강성이 약 60% 이상 향상되어 주행 중 바디가 비틀어지는 정도가 줄어들어 주행 안정성이 보다 뛰어나다. 또한 용이한 가공성 덕분에 충격 등에 강한 구조로 설계될 수 있어서 안전성이 스틸 차체 대비 월등하다. 그리고 알루미늄이라는 재료의 특성상, 노면으로부터 오는 진동을 흡수할 수 있어 승차감이 뛰어나다. 아울러 알루미늄 차체는 부식이 적고 재활용이 가능하여 환경 오염을 줄이는 데도 기여한다.
커먼레일 디젤 엔진
TDI(터보차지드 다이렉트 인젝션, Turbocharged Direct Injection) 커먼레일 디젤 엔진은 아우디의 유명한 승용 디젤 엔진이며 또한 매년 최고의 디젤 엔진으로 뽑힌다. 포르쉐 카이엔에 올라가는 디젤 엔진도 아우디의 TDI 엔진이며 폭스바겐과 공용하고 있으며 승용 디젤 엔진 기술이 없는 크라이슬러 등에도 TDI 엔진을 공급한 적이 있다. 커먼레일 엔진은 정밀 전자 제어가 가능한 압축 장치인 압축 어큐뮬레이터, 레일과 응답성이 뛰어난 연료 분사 장치인 인젝터를 이용하여 운전 상태에 맞게 연료를 분사해 주는 엔진으로 컴퓨터와 각종 센서로 이루어진 제어 시스템과 압력 펌프, 커먼레일, 전자 제어식 분사 노즐로 이루어져 있다. 연료 또는 엔진 오일을 분사하기 전에 커먼레일이라는 장치 안에 저장해 두었다가 연소 효율이 가장 높은 시점에 고압으로 분사한다. 고압 분사되어 분무 상태가 된 연료는 연소 효율이 뛰어나 연비가 높고 배기가스의 질소 산화물(nitrogen oxide)이 크게 줄어들며 공회전 시의 소음과 진동도 낮출 수 있다. 또 연료 분사 패턴을 속도에 따라 제어할 수 있어 저속 회전에서도 연료 분사 압력을 높일 수 있다.[15]
커넥트
아우디 커넥트(connect) 서비스는 사용자가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차량과 원격으로 통신하고 안전하고 편안하게 운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아우디 디지털 서비스이며 운전자를 차와 더 가깝게 하고 세상과 더 가깝게 연결해 준다. 내비게이션과 인포테인먼트 기능을 비롯하여 차량 원격제어, 긴급 상황에서의 긴급통화, 긴급출동 서비스 등 다양한 서비스와 기능을 제공하여 더욱 여유롭고, 즐겁고, 안전한 주행을 도와준다. 커넥트의 주요하게 커넥티드 인포테인먼트(myRoute), myService, myCarmanager 등 서비스를 제공한다.
- 커넥티드 인포테인먼트(myRoute)는 온라인 교통정보, 목적지 사전 입력, 온라인 POI 등 정보를 제공하며 아우디 커넥트 만의 특별한 내비게이션으로 최신 내비게이션들과 같은 실시간 교통정보 안내 기능을 기본으로 내비게이션 화면에서 위성지도를 사용할 수 있으며 차량 내장 내비게이션에 있는 POI 정보뿐만 아니라 온라인 데이터베이스를 통한 POI 정보 검색도 가능하여 주변 주차장의 가용 여부나 주유소의 유가 정보 등 다양한 세부 정보도 제공하며 차량을 탑승하기 전에 집에서 편안히 스마트폰으로 아우디(myAudi) 앱을 통해 목적지를 미리 설정하고 차량에 탑승하면 곧바로 경로 안내가 시작하고 언어 인식 기능도 포함되어 안전한 운전에 도움을 준다.
녹색 신호 최적화 속도 권고(Green Light Optimized Speed Advisory, GLOSA) 시스템은 차량과 인프라 간 통신을 사용해 운전자가 녹색 신호로 쭉 달리기 위한 이상적인 속도를 권장하고 정지해야 하는 회수를 줄인다. 시스템은 자동차의 위치와 신호등의 타이밍을 전달하여서 최적의 녹색 점등 상황을 계산하여 운전자는 적색등보다 최적의 녹생등에서 차량을 통과하게 되는 최적의 속도를 제공받는다. 아우디는 계기판 중앙에서 신호등 정보를 보여주며 빨간색으로 신호등이 바뀌기 전에 남은 시간을 표시해 준다.[16]
- myService에는 운전 중 발생하는 긴급상황에 도움을 주는 서비스입니다. 운행 중 차량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천장 루프 모듈 내 버튼을 누르면 아우디 고객 지원 센터로 긴급 지원 요청이 가능하며 에어백이 터질 정도의 사고가 발생한 경우 자동으로 아우디 긴급 콜센터에 사고 위치, 탑승 인원, 사고 상황 등 관련 정보를 전송하여 사고 시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평상시에는 아우디 차량 스스로 정비 시기를 아우디(myAudi) 앱을 통해 운전자에게 전달하여 정비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 myCarmanager는 내 차량의 비서 역할을 담당해 주는 서비스이며 언제 어디서나 아우디(myAudi) 앱을 통해 차량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고 원격으로 차량을 제어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야외 주차 시 내 차량을 어디에 주차했는지 알려주는 기능과 스마트폰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차 문을 열고 닫을 수 있게 한다.[17]
차종
사건 사고
- 급발진 논란
1980년대 후반 미국에서 급발진 논란에 휘말려 미국 시장 철수를 진지하게 고민하였다. 특히 미국의 유명 시사 고발 프로그램인 60분에서 아우디 5000의 일부 오너들이 기어를 P에서 D, R로 바꾸면 급발진하며 브레이크를 밟아도 가속이 되는 아우디라는 내용으로 방영했다. 당시 미국 내의 반응은 대단했으며 아우디 피해자 네트워크가 조직되었고 집단 히스테리에 가까운 현상이 뒤따랐다. 아우디는 판매량이 급감하였으며 아우디는 자발적 리콜에 들어갔다. 그러나 상항은 더 악화되었으며 아우디의 가장 큰 실수는 초기 불만에 오만하고 안이하게 대응했다는 것이며 다른 보도에 따르면 브레이크와 액셀러레이터 페달 위치 혼동으로 인한 소비자의 조작 미숙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미국 차량보다 독일 차량의 경우 브레이크와 액셀러레이터 페달 사이의 간격이 좁다. 논란 덕분에 판매율이 바닥을 찍은 적도 있다. 1980년 후반부터 1990년 중반까지 북미 시장에서 힘을 쓰지 못하다가 1996년 새로운 A4를 기점으로 A6, A8을 연속으로 내놓으며 회복하기 시작하였다.[18]
- 디젤게이트
폭스바겐 계열사로 동일한 플랫폼 및 엔진을 사용하는 아우디도 해당하는 문제이며 약 210만 대의 차량에 배출가스 조작 장치가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게다가 그룹 내 프리미엄 브랜드에 해당하는 아우디는 소위 독일 3사 프리미엄 브랜드 중 한 축을 담당하는 회사인 만큼 연루된다면 이미지 타격이 엄청날 것으로 예상하였으나 생각보다는 반향이 잠잠한 편이였다. 실제로 아우디는 자체 개발한 디젤 엔진은 디젤 게이트와 연관이 없었다는 것을 언급하며 폭스바겐의 엔진을 가져다 쓴 것만이 문제 되었다는 전략적인 행동을 취하고 폭스바겐 입장에서 산하 고급 브랜드인 아우디와 포르쉐는 최대한 연루시키지 않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을 수도 있다고 한다. 오히려 국내에서는 디젤 게이트를 극복하려 큰 프로모션을 펼친 폭스바겐에 비해 아무런 프로모션이 없던 아우디의 2015년 11월 판매수량이 디젤 게이트 이전보다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점에서 아우디에 대한 디젤 게이트의 인식은 그리 심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디젤 게이트의 직접적 당사국인 미국에서도 2016년 판매 실적이 2015년 대비 4%가량 상승하였다. 미국뿐만 아니라 북미, 유럽, 중국 등 주요 시장에서 역시 성장세를 보였다. 다만 소비자들의 인식과 달리 2016년 하반기부터는 판매금지의 영향으로 실제 국내 판매량은 폭락 수준으로 추락하였다. 2016년 6월까지 월 2600~2800대 판매되었으나 7월에 반 토막 난 것을 시작으로 꾸준히 판매량이 떨어지더니 2017년 4월에는 아예 한 대도 못 팔았다.
- 여성비하 논란
2017년 5월 아우디는 중국에서 자사의 인증 중고차 사이트를 알리기 위해 제작한 광고는 결혼식을 올리는 여성을 중고차로 비유하였다. 문제의 광고는 결혼식이 시작되기 직전 신랑의 어머니가 "잠깐 기다려"라고 소리치며 등장으로 시작한다. 식장에 오른 신랑의 어머니는 신부의 코와 귀를 만지고 입을 벌려보기까지 한다. 성형 수술 여부를 확인한 신랑의 어머니는 오케이 표시를 하며 되돌아서 다시 한번 신부를 노려보고 놀란 신부가 가슴을 가린 후 아우디의 중고차 웹사이트를 홍보하는 멘트로 끝이 난다. 이 광고가 나간 직후 중국 최대 포털 사이트인 웨이보 등에서는 여성을 중고차로 비교하고 비하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관련 기사의 댓글에는 성차별주의, 역겨운, 혐오감, 성적 수치, 불매, 쓰레기 기업 등 과격한 반응이 쏟아졌다. 아우디의 광고는 중고차를 구매하기 전 사고나 수리 이력 등 자동차의 상태를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는 내용이었으나 여성을 등장시켜 신부의 코와 귀를 잡아당기고 심지어 가슴까지 강조하면서 중고차로 비유한 것은 상업성이 지나쳤다는 지적이 나왔다. 2017년 3월에도 대만과 티베트 등이 빠진 중국 지도를 썼다가 불매 운동으로 확산한데 이어 여성 비하 광고로 또다시 곤욕을 치르게 되었다.[19]
- 아동 성 상품화
2020년 8월 2일 아우디가 신차를 출시하며 내놓은 광고가 아동 성 상품화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아우디는 공식 트위터 계정에 금발의 여아 모델이 바나나를 들고 스포츠카에 기대 있는 이미지 광고를 게재하였으나 광고가 모델 여자아이가 성적인 암시를 주려고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광고 속에 드러난 금발 여성, 바나나, 스포츠카 등의 요소가 섹슈얼한 이미지를 나타낼 때 쓰이는 전형적인 소재이며 아우디가 문제의 광고를 게재하며 바나나를 들고 있는 여자아이 이미지에 심장 박동을 더 빠르게-여러 방면에서(Lets your heart beat faster – in every aspect)라는 문구도 논란이 되었다. 아우디는 3일 신차 광고의 성 상품화 논란에 대해 사과의 글을 올렸으며 광고가 나오게 된 과정을 조사하겠다고 하였다.[20]
각주
- ↑ 이상원, 〈아우디 전기차 e-트론, 상반기 87% 폭증. 테슬라 모델 X. 벤츠 EQC 압도〉, 《M오토데일리》, 2020-07-20
- ↑ 모하비 더 마스터, 〈한국, 일본 자동차시장 2019년 총 판매량〉, 《네이버 카페》, 2020-02-01
- ↑ 뉴에너지 모빌리티, 〈폭스바겐, 중국에서 아우디 'e-트론' 자율주행 테스트한다〉, 《네이버 포스트》, 2020-08-27
- ↑ 〈아우디〉, 《네이버 지식백과》
- ↑ "Audi Experience", 《아우디 코리아》
- ↑ "Audi Sport GmbH", Wikipedia
- ↑ 〈람보르기니〉, 《나무위키》
- ↑ 〈두카티〉, 《나무위키》
- ↑ 〈세아트〉, 《나무위키》
- ↑ 〈아우디〉, 《네이버 지식백과》
- ↑ 김성진, 〈아우구스트 호르히, 아우디 연합 창시자〉, 《시사저널e》, 2017-09-17
- ↑ 〈아우디에 자기 색을 입힌 한 천재 엔지니어의 사연〉, 《네이버 포스트》, 2020-02-27
- ↑ 〈아우디〉, 《네이버 지식백과》
- ↑ 〈quattro 시스템〉, 《아우디 코리아》
- ↑ 〈커먼레일 엔진〉, 《네이버 지식백과》
- ↑ Style, 〈스스로 신호등을 미리 알고 대응하는 아우디 커넥트 신기술〉, 《네이버 블로그》, 2019-02-21
- ↑ "Audi Connect", 《아우디 코리아》
- ↑ 〈아우디〉, 《나무위키》
- ↑ 최정희, 〈신부가 중고차? 中 아우디 여성 비하 광고로 들썩〉, 《오토헤럴드》, 2017-07-19
- ↑ 법률N미디어, 〈'아동 성 상품화' 노림수 가득한 아우디 광고, 처벌 못하나〉, 《네이버 블로그》, 2020-08-05
참고자료
- 아우디 공식 홈페이지 - https://www.audi.de/
- 아우디 글로벌 홈페이지 - https://www.audi.com/
- 아우디 코리아 공식 홈페이지 - https://www.audi.co.kr/
- 아우디폭스바겐 코리아 뉴스룸 - https://avknewsroom.com/
- 아우디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AudiDE
- 폭스바겐 공식 홈페이지 – https://www.volkswagenag.com/
- 폭스바겐코리아 공식 홈페이지 – https://www.volkswag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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