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라
세트라(Setra, Setra Bus GmbH)는 독일의 상용차 제조업체로 버스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회사다. 1951년 세계최초의 모노코크 바디 버스와 1952년 유럽 최초의 굴절버스를 선보이는 등 경쟁사인 네오플란 못지 않게 버스차량 역사에서 혁신적인 기록을 남겼던 회사이다. 1893년에 설립된 칼 케스보러 파르조이크베르케 유한회사(Karl Kässbohrer Fahrzeugwerke GmbH)가 그 시초이며, 창업자인 칼 케스보러의 사망 이후 그의 아들인 오토 케스보러(Otto Kässbohrer)가 회사를 인수한 뒤 1951년 세계 최초의 모노코크 바디 (Selbsttragende Karosserie) 버스 모델인 S8을 선보이면서 '세트라' (SElbstTRAgend) 브랜드를 런칭하게 된다.
이후 케스보러-세트라(Kässbohrer-Setra)라는 명칭으로 이어져 내려오다가 경영난으로 회사가 분할 매각되면서 버스 생산 부문이 1995년 다임러 산하로 인수되고 이보버스 (EvoBus GmbH)의 브랜드로 남게 되었다. 인수 직후인 1996년 즈음 전후로 도시형 차량은 단종되었고 광역버스/시외버스 모델만 생산하고 있다.
개요
세트라는 다임러의 전액 출자회사로 에보버스(EvoBus GmbH)의 독일 버스 사업부다. 세트라(Setra)라는 이름은 '셀브스트래그엔드(selbsttragend)'(셀프형)에서 유래했다. 이는 경쟁 차량이 여전히 별도의 섀시와 차체(종종 별도 회사에서 제조)를 특징으로 하는 1950년대 차량 구조의 필수적인 특성을 나타낸다. 수출 시장에 대한 안목으로 비독일어 사용자에게는 '케스보러(Kässbohrer)'라는 이름을 발음하기 어렵다는 점을 염두에 뒀을 가능성도 있다. 1995년까지 이 회사는 케스보러-세트라라는 이름으로 운영되었으나, 그 해 경제난으로 다임러 벤츠(1998년과 2008년 사이, 특히 미국에서 지주회사인 다임러 크라이슬러의 이름으로 알려져 있음)에 매각이 강행되었다. 세트라는 1995년부터 다임러 벤츠 자회사 에보버스의 일원으로 활동해 왔다.
다임러가 세트라에 대한 북미 유통은 다임러가 2013년 북미 버스 운항을 개편함에 따라 2012년 4월 25일 모터코치인더스트리즈(Motor Coach Industries)와 제휴하여 인수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이 협약은 REV 그룹이 유통 책임을 맡은 2017년 말까지 지속되었다. 다임러는 다임러트럭 북아메리카의 서비스 지원을 받아 2020년 1월부터 새 자회사인 다임러코치스북아메리카LLC를 통해 북미에서 세트라코치를 자체적으로 유통시킨다.
역사
- 1480년 모든 것이 시작된 곳, 울름과 케스보러 가문의 공통뿌리
울름어업지구는 독일 울름시에서 가장 오래된 이웃 지역이다. 이곳은 또한 오늘날의 피셔가스 23(Fischergasse 23)호에서 지난 500년 동안 "하우스 주르 와인레베(Haus zur Weinrebe)"가 서 있던 곳이다. 그것은 1480년에 지어졌고, 칼 케스보러의 아버지 게오르그(Georg)와 그의 8형제들이 그랬던 것처럼, 케스보러 세대가 성장하는 것을 목격했다. 1990년대부터 '하우스 주르 와인레베'는 19세기 이후 울름에는 케스보러 가문과 코치 제작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세트라 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울름 시의 뿌리와 케스보러 가문의 뿌리가 모이는 역사 속에 파묻힌 곳이다.
- 1836년 조선업자 조부 게오르그 케스보러
칼(Karl) 할아버지인 게오르그 케스보러(Georg Käßbohrer, 1836~1919)는 선박 소유주였다. 그는 말년까지 전통적인 보트 무역에서 활동했고, 사실, 그는 마지막 비엔나 바지선을 만들었다. 19세기 말경 그는 울머 샤치텔(Ulmer Schachtel) 여행이 점점 수요가 적어지는 것을 보고 6남 중 4남을 전통 조선 이외의 직종에 진출하게 했다.
게오르그 케스보러'는 다소 작고, 매우 강하고, 터프한 사람이었다. 심지어 노년 시절에도, 게오르그는 당시 울름에서 선원들의 워크샵이 소집되었기 때문에 빠르게 흐르는 다뉴브에서 그의 쇼퍼플라츠로 홀로 노를 저었다. 가혹한 해운계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게오르그 케스보러는 매우 엄격한 원칙을 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뚜렷하게 주름진 그의 얼굴은 대개 약간 짓궂은 미소를 띠고 있었고, 입가에는 늘 번들거리는 시가의 그루터기가 보였다. 1909년, 한 승객이 울머 샤치텔에 탑승한 그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게오르그 케스보러는 다뉴브 강을 따라 비엔나로 항해했다.
- 1836년 가족 최최의 왜건 제조업체
칼 케스보러(Karl Késsbohrer, 1864년~1922년)는 집안의 셋째 아들이다. 그의 형들이 조선 기술을 배운 반면, 또 다른 유망한 직업은 그의 아버지 게오르그에 의해 칼에게 선택되었다. 그래서 칼 케스보러는 유명한 울름 명인의 작업장에서 바퀴 및 마차 제조업자로서 견습생 생활을 마쳤는데, 그로부터 나무로 만든 바퀴, 마차, 그 밖의 농기구들의 생산을 배웠다. 칼은 1893년 울름에서 첫 마차 건설 사업을 시작하기 전, '미세 마차 건설 무역'의 전 거점인 비엔나에서 거의 10년 동안 유명한 마차 생산업체들과 함께 일했다. 이러한 형성 시기는 그의 후기 기업가적 활동에 큰 의미가 있었다.
- 1899년 최초의 케스보러 코치
19세기 후반에 칼 케스보러는 그의 첫 마차를 소개했다. 오픈 코치는 말 네 마리가 끌어서 관광 여행에 이용되었다. 부착식 지붕으로, 악천후로부터 최대 18명의 승객을 보호할 수 있었다. 좋은 날씨에는 물론 그들은 "변환성"을 타고 여행했다. 그래서 우리는 또한 빠르면 19세기 초에 독일 울름의 거리를 여행하던 최초의 케스보러 "옴니버스"나 코치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1903 비즈니스 번창
칼 케스보러의 마차 제작 사업은 꾸준히 성장했다. 첫 번째 작업장의 용량이 더 이상 충분하지 않을 정도로 주문이 쇄도했다. 더구나 로텐베르크 지역은 매일 자동차들이 작업장으로 오르막길을 힘들게 밀어올려야 했기 때문에 마차 제작 사업에 이상적인 위치는 아니었다. 그래서 1903년 기회가 왔을 때 칼 케스보러는 전 칼스트라슈에서 대장장이 데이비드 마이어의 재산을 인수했다.
- 1907년 이중목적 차량 등장. 1908년 로얄 럭셔리
맥주통이나 여행 승객을 수송하도록 설계된 최초의 이중 목적 차량이 등장한다. 결국 그의 사업은 "Royal Württemberg Purveyor to the Court"라는 칭호를 부여받았다. 그 칭호는 가장 가치있는 기업들, 법원에 정기적으로 납품하는 기업들, 그리고 확고한 경제적 지위와 흠잡을 데 없는 명성을 누린 기업들만에 수여되었다.
- 1910년 최고의 영광 , 1911년 최초의 울름 버스 서비스
1910년 9월 2일, Ulmer Schnellpost 뉴스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Wiblingen의 한 위원회는 Ulm과 Wiblingen 도시들 사이의 자동차 연결을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 프로젝트는 현재 30마력의 자동차를 소레르 아르본(Saurer Arbon) 회사에 주문할 수 있을 정도로 진행되었다. 코치의 상부구조는 현지 칼 케스보러 코치 공장에서 생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2월은 케스보러 회사의 역사에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위블링거(Wiblinger) 코치는 처음으로 Ulm-Wiblingen 노선을 운전했다. 운수회사의 일부 소유주이기도 했던 칼 케스보러(Karl Kaßbohrer)가 자신의 몫으로 1만8000 마르크(Marks) 상당의 첫번째 공공서비스 버스를 처음 들여온 것이다. 시대에 앞서서, 닫힌 목재 구조는 18명의 좌석과 10명의 입석 승객을 위한 공간을 제공했다. 당시 대부분의 차량과 달리 운전자는 독일 자동차 업계 최초로 폐쇄형 운전실에 앉았다. 지붕에는 짐을 실을 공간이 충분했고, 30분 동안 운전할 수 있는 승차권은 운전기사로부터 30페니그에게 살 수 있었다.
이 버스는 트럭 섀시 위에 세워졌고, 20세기 초 일반적인 스프로켓 드라이브를 대체한 당시 새로운 드라이브 기술인 카르단 샤프트 드라이브가 장착되어 있었다. 전진 4단 기어, 단단한 고무 타이어가 달린 나무 바퀴, 카바이드 헤드라이트 등을 탑재한 변속기를 탑재했으며, 30hp의 강력한 수냉식 4기통 가솔린 엔진을 장착했다. 평탄한 도로에서 코치는 허용된 속도보다 15km/h 더 많은 45km/h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왕립 뷔르템베르크 교통 법규는 도시 외곽에서 시속 30km, 도시 지역에서는 시속 12km만 허용했다. 새로운 버스 노선은 대성공이었고, 1911년 11월, 제2의 케스보러 버스가 그 임무를 맡을 수 있었다. 칼 케스보러에게 이것은 그의 이전 작품을 포함 가장 큰 영광이었다. 수년 동안, 그의 작품은 엔진 구동 Wiblinger 코치와 함께 최고의 기술력으로 성장했다.
- 1921년 황금 20년 대, 제1차 세계대전 후에도 여전히 수요가 있는 코치들
20명의 직원이 있는 '에르스테 울름 카로세리파브릭 칼 케스보러'는 흥미진진한 10년을 맞이했다. 20년 대 초반 군대 해체로 트럭의 수요가 더 이상 많지 않았지만, 코치들은 여전히 수요가 많았다. 그래서 1차 세계대전에 이은 생산량 감소에도 불구하고 이 기간 동안 코치 기관이 계속 생겨났다. 여기에는 지지 프레임과 목재 클래딩(대개 재 또는 참나무)가 모두 포함되었다. 견고한 고무 타이어와 높은 프레임을 갖춘 기존의 트럭 섀시가 플랫폼 역할을 했다.
케스보러는 고급 자동차용 고급 차체를 제조했다. 1920년대 초, 자동차 공장들은 항상 새롭고 개선된 디자인 솔루션을 찾고 있었다. 미국에서 포드가 실천한 대로 값싼 자동차의 연쇄 생산은 당시 독일에서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독일의 엔지니어링 개인화 소형 시리즈는 물론 비쌌지만, 이 사실은 또한 좋은 가격과 케스보러와 같은 차체 수리점을 위한 지속적인 사업을 보장했다. 1921년, 케스보러는 고급 자동차 제조업체인 호르히(Horch)의 섀시를 기반으로 제작된 페이톤(Phaeton) 6기통용 고급 승용차 본체를 생산했다.
- 1922년 첫번째 성공, 이상적인 분업, 아버지없는 크리스마스
1919년 8월 1일, 아버지 칼 케스보러와 함께 마차 제작자로서 견습 생활을 시작하면서 젊은 오토의 삶은 심각해졌다. '정상을 차지하려면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모토에 따라 그는 나중에 자주 뒤돌아보며 "아버지가 스승일 때는 공짜 점심은 없다"고 말하곤 했다. 그래서 1922년 8월 1일 시험에 합격하고 도제 자격증을 받았다.
형제는 엄청난 야망뿐만 아니라 가족에 대한 강한 충성심과 결합되어 아주 전형적인 케스보러의 끈기를 보여주었다. 처음부터 멀리 내다보는 분업이 미래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으로 증명되어 작전이 꾸준히 진전되었다. 칼은 운송 산업을 위한 트레일러를 개발했고 이 지역에서 미래의 좋은 기회를 보았다. 반면에 오토는 자동차와 코치의 차체뿐만 아니라 마차를 만드는 일을 담당했다.
1922년 12월 26일, 칼 케스보러(Karl Käßbohrer)는 58세의 나이로 예기치 않게 세상을 떠났다. 그의 두 아들인 칼(Karl)과 오토(Otto)는 겨우 21세와 18세였다. 칼은 기계 공학 학위를 취득하는 중이었고 오토는 불과 반년 전에 아버지의 공장에서 마차 제작자로 훈련을 마쳤다. 회사 설립자가 사망 한 후 그의 아들들은 회사의 미래와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계획을 재고해야 했다.
- 1928년 진정한 승자, 케스보러의 최초의 자립형 자동차
20년 대 후반에 회사는 마차 건설을 완전히 중단하고 승용차 부문으로 분리되었다. 그 시점부터 코치, 트럭 및 트레일러 용 바디만 생산했다. 이 전문화는 행운이었다. 이 작전은 불황 속에서도 잘 살아 남았고 더 많은 경제 성장을 위한 토대가 마련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스보러 차체가 장착된 마지막 경주용 자동차는 자동차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2,370cc 및 60마력의 4기통 V엔진은 Lancia Lambda 스포츠카에 최고 속도 130km/h를 제공했다. 휠베이스가 3.10m이고 무게가 1,100kg인 당시 포르쉐였다. 그러나 점점 인기를 얻고 있는 산악 경주에는 민첩하지 못했다. 이것이 Otto Kässbohrer가 Torino의 드라이브 및 엔진 부품만 사용하기로 결정한 이유이며, 소량 생산을 위해 고품질 알루미늄 합금으로 주조된 프레임없이 완전히 새로운 차체를 개발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최초의 자립형 차체로 공장 원래의 것보다 약 200kg 더 가볍고 휠베이스가 짧아 매우 민첩하다.
- 1951년 : 세트라 시대의 시작 : 1950년 봄에 자급자족 설계 원칙에 따라 만들어진 버스를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1951년 IAA 전시회에서 출시된 세트라 S8은 자립형 차체, 후륜 장착 엔진, 직진 후륜 구동력을 특징으로 하는 최초의 버스였다. 1951년 첫번째 세트라 S8의 도입 이후 60년 동안, 오랫동안 설립된 울름(Ulm ) 회사는 총 5개의 버스와 코치 모델 시리즈를 출시했다.
- 1951년 : 10 시리즈 : 10 시리즈는 S6에서 S15까지로 구성되었다. S10~S14 모델은 관광 버스, 시골 정기 서비스, 도시 버스 버전으로 제작되었다. 모델 시리즈 10은 다양한 길이와 효율적인 비용으로 차량을 제작할 수 있는 모듈형 구성 시스템의 도입을 의미했다. 문자 S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최대 좌석 열 수를 나타내는 Setra 브랜드를 의미하며, 따라서 버스 길이에도 간접적으로 사용된다.
- 1967년 : 100 시리즈 : 1967년에는 S100, S110, S120, S130, S150의 다섯 가지 모델로 구성된 100 시리즈가 도입되었다. 지금부터 모델명칭의 첫 번째 숫자는는 모델 시리즈를 나타낸다. 세트라 10 시리즈에서 100 시리즈로 전환한 것은 케스보러에서 산업용 버스 제조로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을 의미한다. 9개 모델 모두 모듈러 시스템에 따라 제작돼 수많은 공통 부품을 공유했다. 100 시리즈의 버스는 보다 각진 형태와 개선된 안락함, 더 큰 객실 및 증가된 실내 높이가 특징이다. 또 독립된 전면 서스펜션과 에어 서스펜션이 표준 사양에 포함됐다.
- 1976년: 200시리즈 : 세트라의 25주년을 맞아 S211 H, S212 H, S213 H, S215 H, 하이데크 버전 S213 HD, S215 HD 등 6가지 모델로 200 시리즈를 선보였다. 이 시리즈는 또한 다른 기술적 이정표를 세웠다. 그 특징으로는 전면 차축에 디스크 브레이크를 표준으로 사용하는 것이 포함되었고, 이 시리즈에서는 새로운 교차 흐름 환기 장치도 표준으로 도입되었다. 200시리즈 버스의 승객과 운전자들 모두 뛰어난 도로 유지와 정지의 혜택을 받았다.
- 1991년 : 300 시리즈 : 1991년에는 300 시리즈가 출시되었고, 따라서 S309 HD, S315 HD, S315 HDH 모델이 출시되었다. 신형 버스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조종석 뒤쪽의 독특한 스위핑 라인과 300시리즈 특유의 '얼굴'을 갖게 한 새롭게 개발된 통합 미러 시스템이었다. 원래 '버그 안테나'라는 별명이 붙은 아래로 굽은 미러 암은 열선이 있어 버스 안쪽에서 조절할 수 있었다. 가시성을 높이기 위해 최적화되어 있던 A-필러와 함께, 운전자는 버스 양쪽을 잘 볼 수 있었다. 새로운 300 시리즈의 또 다른 주요 특징은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조종석이다. 텔마나 보이스가 만든 레이더와 함께 ABS/ASR(안티 브레이크와 가속도 스키드 컨트롤)이 표준 장착됐다. 전체 제품 포트폴리오를 어느 정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300 시리즈 출시로 신차 그룹화 도입도 이뤄졌다. 이것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으며, 그들의 이름은 그 안에 있는 차량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있다.
고급 관광 코치는 탑클래스 ComfortClass는 우측 드라이브 버전을 포함한 관광 코치의 경제적인 GT 및 GT-HD 모델을 의미한다.
다목적 기능을 반영하여, 시골지역의 일반 버스와 간단한 이중 목적 버스가 MultiClass 이름으로 함께 그룹화된다.
- 2001년: 400시리즈
2001년 탑클래스 400을 계기로 세트라는 관광버스 제조에 전혀 새로운 차원을 도입해 승객과 운전자 모두에게 가장 호화로운 여행을 보장했다. 톱클래스 400이 첫 등장 8개월 만에 유럽 전문 언론인 배심원단에 의해 '2002년 올해의 코치'로 뽑혔다. 모든 차량에는 디스크 브레이크, 전자 브레이크 시스템(EBS), ABS(안티 브레이크 시스템), 가속 스키드 컨트롤(ASR), 브레이크 어시스트(BA) 및 전자식 스태빌리티 프로그램(ESP)이 표준 장착된다. 세트라는 또한 투어 코치들에게 옵션으로 적응형 크루즈 컨트롤 시스템(ART)과 레인 어시스턴트(SPA)를 제공했다. 2007년 가장 최근 업데이트 이후 TopClass 400세대는 총 7개 차종으로 대표되었다. 프리미엄 투어 코치 카테고리는 10.10m 길이의 S411 HD 클럽 버스, 12m S415 HD, 3축이 있는 초고층 데크 S415 HDH, 3축이 있는 13.19m S416 HDH, 14.05m S417 HDH 등이다. 또한 이 후자 모델은 가장 최근의 EPA 10 방출 표준 버전에서 336 kW를 제공하는 디트로이트 디젤 DD 13 엔진을 탑재한 미국 버전에 대한 기초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 기함의 주력 모델은 충전 공기 냉각 350kW OM 502 LA 엔진을 장착한 13.89m 길이의 이층 S431 DT이다.
2004년에는 컴포트클래스 400 관광버스가 추가되었고, 2005년에는 멀티클래스 400 시골형 정기서비스 버스가 마지막으로 포트폴리오에 가입되었다. 컴포트클래스 400은 우측 핸들 버전 S415 GT-HD 및 S416 GT-HD를 포함한 9개 차량 모델과 S416 GT-HD를 위한 추가 차축 구성을 포함하여 구성된다.
2006년 하노버의 IAA에서 Multi Class 400의 저층 신세대와 2010년 IAA에서 출시한 2개의 고상형 MultiClass 400 모델 S415 H와 S416 H의 도입으로, 풀 세트라 버스와 코치 레인지를 혁신형 400 시리즈로 전환하였다. 20개 이상의 모델과 변종들의 새로운 개발은 약 5년 만에 완료되었다.
참고자료
- 세트라 공식 홈페이지 - https://www.setr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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