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다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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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다이만(일본어: 仙台湾 せんだいわん, 영어: Sendai Bay)은 일본 도호쿠지방(일본어: 東北地方)에서 태평양과 접해 있는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 오시카반도에서 후쿠시마현 소마시 우노오곶 사이의 만이다. 해안선은 약 130km이고 만곡부는 약 68km이다. 센다이만 내에 이시노마키만과 마쓰시마만이 있다.[1]
개요
센다이만은 일본 혼슈섬 동북부에 있는 도호쿠지방에 위치한 만이다. 센다이만 중 오시카반도와 마쓰시마만 지역은 리아스식 해안이고, 나머지 70km 지역은 사구 해안이다. 센다이만으로 기타카미강, 나르세강, 나나기타강, 나토리강, 아부쿠마강 등이 흘러들어가 퇴적되는 모래 양이 파도로 침식되는 양을 훨씬 뛰어넘어 오랜 세월이 걸쳐 해안선이 전진하고 충적 평야가 만들어졌다. 5000년 전과 비교하면 해안선이 이시노마키시에서 5.5km가, 센다이시에서 3km가, 와타리정에서 6km 정도가 전진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1965년 이후부턴 하천 상류의 댐 및 항만 건설의 영향으로 해안선이 후퇴하기 시작했다. 해안선의 흐름은 이시노마키시에선 동쪽에서 서쪽으로, 센다이시 부근에선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고 있다. 이시노마키만은 오시카반도 지형의 영향으로 외해의 파도를 막기 때문에 해수면이 잔잔하다. 마쓰시마만은 다도해의 안쪽에 있는 만으로 섬이 파도를 막아서 파도가 거의 없다. 센다이만 인근 해역은 미야기현 해역 지진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동쪽엔 태평양판이 북아메리카판 아래로 섭입하면서 만들어진 일본 해구가 있다. 기타카미산과 아부쿠마 고지는 판에 밀려 생긴 습곡 산지가 침식되어 만들어진 것이지만 두 산 사이에 있는 센다이만의 습곡은 해저에 있다. 마지막 빙기 당시 센다이만은 모두 육지로 드러났을 정도로 얉았고, 현재에도 수심 50m 이하의 얉은 대륙붕이 펼쳐져 있는 지형이다. 센다이만의 지만(支灣) 마쓰시마만은 260여 개의 섬이 산재한 유명한 경승지로 마쓰시마섬은 일본 3경(景)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2]
어업
주요 어업 자원으로는 가자미, 붕장어, 피조개, 개조개, 성게류, 굴이 있다. 내해의 마쓰시마만에선 굴 양식업을, 해안선으로부터 2km 떨어진 센다이 남부 외해에선 김 양식업을 한다.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동일본대지진)의 영향으로 센다이만 남부에 진흙이 광범위하게 퇴적하여 꽃게 개체수가 급증해 2015년엔 일본 내 꽃게 어획량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고래 개체수도 풍부하여 여름철엔 범고래 및 혹등고래 여러 개체가 출몰한다. 또한 센다이만 내 여러 항만에선 밍크고래 연구 포경이 이뤄지고 있다.
쓰나미 피해
센다이만 및 이에 접한 연안 지역은 수백년을 주기로 일본 해구를 진원으로 하는 산리쿠 해역 지진, 미야기현 해역 지진 등으로 일어나는 쓰나미를 지속적으로 내습당하는 지역이다. 2011년 3월 11일 일어난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의 경우 8~9m의 쓰나미가 들이닥쳐 해안선에서 3~4km 안쪽까지 해일이 들어와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센다이시
센다이시(일본어: 仙台市)는 미야기현의 현청 소재지이고, 도호쿠지방의 중심 도시로서의 기능도 갖추고 있다. 도호쿠 지방에서 제일 인구가 많은 도시이며, 일본에서도 12번째로 많다. 도시권으로 볼 경우 일본 7대 도시권 중 하나인 센다이 도시권의 중심도시이다. 또한 도쿄 이북에서 삿포로에 이어 두번째로 대규모 도시이다. 1989년에 정령지정도시로 지정되었다. 행정 구역은 동서로 길고 태평양 연안에서 야마가타현과의 경계선인 오우산맥(奥羽山脈)의 해발 1,000m를 넘는 산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는 정령지정도시 승격을 위해 1987년~1988년에 주변의 자치단체를 편입했기 때문이며, 산림도 많기 때문에 인구 밀도는 1,309.08명/km²로 정령지정도시 중에서 세 번째로 낮다. 1600년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가 센다이성(仙台城)을 세움으로써 구성된 센다이번(仙台藩)은 도호쿠 지방에서 제일 큰 번이 되었고, 메이지 시대 이후에는 도호쿠 지방의 중심 도시로서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 1907년에는 도호쿠 제국 대학(東北帝国大学, 현재의 도호쿠 대학)이 센다이에 창설되었다. 1960년대 이후에는 공업 항구로서 새로 개발된 센다이항을 중심으로 공업 도시로서도 발전해 왔고, 센다이항은 1995년에 수입촉진지역(FAZ)로 지정되었다. 센다이시의 동부, 즉, 1987년~1988년에 주변의 자치단체를 편입하기 전의 행정구역은 거의 센다이평야(仙台平野)에 있으며, 거기에 인구도 집중하고 있다. 센다이는 토쿠가와 시대에는 번주 다테 씨에 의해 풍설을 방지 "저택 숲"이 심어 져, 제2차 세계 대전 후 현재에도 가로수가 많은 우거져 있으며, "숲의 도시"(杜の都)라는 별명으로도 모른 되고있다.[3]
센다이 시역은 동쪽을 태평양(센다이만), 북쪽을 마쓰시마 구릉, 서쪽을 오우산맥, 남쪽을 나토리강과 경계하고 미야기현을 띠 모양으로 횡단한다. 히로세강이 도시를 관통해 흐르고 있다. 해안에서 나가마치-리후선 단층대까지가 지질적으로는 새로운 충적평야, 그 서쪽이 충적평야보다 조금 오래된 퇴적암류의 대지이며 오우산맥의 능선 근처는 신생대에 분출한 화산암으로 되어있다. 후나가타산, 다이토다케, 가무로타케 등은 모두 50~150만 년전에 분화한 화산이다. 센다이시는 오우산맥을 사이에 두고 야마가타현 야마가타시와 접하고 있다. 도도부현청소재지끼리 인접하는 예로는 그 밖에 교토시와 오쓰시, 후쿠오카시와 사가시가 있다. 2011년 센다이 인근에서 초대형 지진이 발생했다.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東北地方太平洋沖地震 とうほくちほうたいへいようおきじしん) 또는 흔히 동일본대지진(東日本大地震 ひがしにほんだいじしん)은 2011년(헤이세이 23년) 3월 11일 금요일 14시 46분 JST (05:46 UTC)에 일본 산리쿠 연안 태평양 앞바다에서 일어난 동아시아 국가 사상 역대 최대의 해저 거대지진이다. 진앙은 도호쿠 오시카반도 동쪽 70km 지점이며, 진원의 깊이는 24km~29km이다. 지진의 규모는 Mw 9.0-9.1로 일본 근대 지진 관측 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이자 1900년 근대적 지진관측이 시작된 이후로 4번째로 가장 강한 지진이다. 1995년 효고현 남부 지진(한신·아와지 대지진), 2004년 니가타현 주에쓰 지진에 이어 관측 사상 3번째로 최대 진도 7을 기록한 지진이다. 지진 발생 후 강력한 쓰나미가 발생하여 도호쿠 지방의 이와테현 미야코시에 40.5m의 해일이 덮쳤고 미야기현 센다이시에서는 내륙으로 10km까지 해일이 밀려들었다. 동일본대지진으로 혼슈가 동쪽으로 2.4m 이동하였고, 지구 자전축이 10cm-25cm가량 움직였으며 저궤도 지구중력장 탐사위성(GOCE)에서는 지진으로 발생한 음파 섭동의 초저주파를 인식하기도 하였다.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따로 동일본대진재(東日本大震災 ひがしにほんだいしんさい)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진 및 그 이후 닥친 쓰나미, 여진 등으로 도호쿠 지방과 간토지방 사이 동일본 일대가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2018년 12월 10일 기준 일본 경찰청은 동일본대지진으로 일본의 12개 도도부현에서 15,897명이 사망, 2,534명이 실종되었다고 발표했으며 228,863명이 원래 살던 집을 떠나 난민이 되어 일시적으로, 또는 영구히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2014년 2월 10일의 보고서에서는 건물 127,290채가 붕괴, 272,788채가 반파되었으며 747,989채가 부분 손상을 입었다고 집계하였다. 지진과 쓰나미로 일본 동북부 지역의 도로 및 철도가 끊기는 등 많은 기반 시설이 파괴되었고, 여러 지역에서 화재 및 댐 붕괴 등으로 심각한 대규모의 구조적 피해를 입었다. 간 나오토 내각총리대신은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65년이 지난 지금 일본에 가장 어려운 시기이자 힘든 위기가 닥쳤다"라고 말했다. 참사 당시, 일본 동북부 지방 440만 가구에 공급되던 전기와 가스, 통신도 일제히 중단되었고, 150만 가구가 단수되는 막대한 규모의 피해를 보았다.
지진으로 일어난 쓰나미는 여러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일으켰는데, 그 중 대표적인 사례가 7단계 노심 용해가 발생한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사고 인근 구역은 대피구역으로 지정되어 수십만 명이 이주하였다. 많은 전기 발전기가 꺼지면서 전력 손실로 인한 냉각기 고장 후 최소 3개의 후쿠시마 원전 노심이 수소 가스로 가득 차 폭발하였다.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주변 20km, 후쿠시마 제2 원자력 발전소 주변 10km 사람들은 긴급 대피하였다.
동일본대지진으로 일어난 보험금 손실액은 대략 미화 145억 달러에서 346억 달러로 추정된다. 일본은행은 지진 3일 후인 3월 14일 시장 상황을 정상화하기 위해 긴급하게 15조 엔(미화 1,830억 달러)을 방출하였다. 세계은행은 이 자연재해로 발생한 피해액이 대략 미화 2,350억 달러로, 역사적 사료에 기록된 최악의 재산 피해를 입힌 도호쿠 지방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한 바 있다.[4]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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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 〈센다이만〉, 《위키백과》
- 〈센다이시〉, 《위키백과》
-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 《위키백과》
- 〈센다이 만〉, 《요다위키》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