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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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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
호치민 위치

호치민, 호찌민(영어: Ho Chi Minh, 베트남어: Thành phố Hồ Chí Minh, 문화어: 호지명시) 또는 호치민시, 호찌민시(Ho Chi Minh City)는 베트남에서 가장 큰 도시로 사이공강과 동나이강 하류에 있다. 호찌민, 하노이, 하이퐁, 껀터, 다낭의 5대 도시는 중앙 직할시(Thành phố trực thuộc trung ương, 城舖直屬中央)의 지위에 있다. 중앙 직할시이기 때문에 성(省)에는 따로 포함되지 않는다. 옛 명칭인 사이공(Sài Gòn, 柴棍, 시곤)으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1975년에 패망한 남베트남의 수도였다.[1]

개요[편집]

호치민은 베트남 동남부, 인도차이나반도 동남부 사이공강의 서안에 위치한다. 수도 하노이에서 남쪽으로 1,760㎞ 떨어져 있고, 평균 해발은 19m이다. 도시는 사이공강과 동나이강 하류에 위치하며, 도시 중심부는 사이공강의 서안에 있다. 북쪽은 떠이닌성과 빈즈엉성과 접하고, 동쪽은 동나이성과 바리어붕따우성, 서쪽은 롱안성과 접한다. 남쪽으로 남중국해(Biển Đông)와 띠엔장성이 위치해 있다. 호찌민의 면적은 베트남 전체 면적의 0.63%를 차지하는 2,095㎢로, 서울경기도를 합친 것보다 크다. 베트남에서 가장 규모가 큰 중앙 직할시로 성(省)과 동격의 도시이다. 초기 크메르어로 '숲의 도시' 혹은 '왕국'을 의미하는 '프레이 노코르(Prey Nokor)'라고 불렸다. 17세기에 캄보디아에서 왕위 계승 분쟁이 자주 발생하자, 베트남 남부의 응우옌(Nguyễn)씨 정권은 1600년대 중반에 분쟁에 개입하면서 영토를 잠식해 들어갔다. 응우옌씨 정권은 캄보디아 남부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함으로써 메콩강 삼각주 지역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고, 이 지역을 지배하는 행정 기구로 자딘(Gia Định, 嘉定) 부(府)가 1698년에 설치되었다. 1862년부터 프랑스가 장악하며, 지역 명칭은 '사이공(Sài Gòn)'으로 바뀌었다. 사이공은 식민지 시기가 종료된 이후 베트남국(1949~1955)과 베트남공화국(1955~1975)의 수도였다. 1975년 4월에 북베트남군이 남베트남 지역을 무력으로 장악하며, 사이공은 '호찌민'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옛 19세기에 프랑스의 도시계획으로 근대도시가 된 후 정치 · 경제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그래도 여전히 현지에서는 여전히 사이공이라는 명칭이 많이 쓰이며, 이곳의 기차역 이름도 사이공 역, 항구 이름도 사이공 항으로 유지되고 있다. 떤 썬 녓(Tân Sơn Nhất) 국제공항의 공항 코드인 SGN 역시 사이공에서 따 왔다. 베트남에서 한국 교민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다. 도시 남쪽 외곽에 위치한 푸미흥(Phú Mỹ Hưng) 이라는 도시에 코리안 타운이 형성되어 있으며 여기엔 베트남어 간판보다 한국어 간판이 더 많다.[2]

명칭[편집]

원이름은 ‘사이공’이었으나, 북베트남인 베트남 민주 공화국이 1975년에 베트남 공화국을 점령하고 통일한 후 1976년 7월 2일을 기해 사이공과 그 교외인 자딩(Gia Định 嘉定) 성(省)을 합치고 명칭은 ‘호찌민’의 이름을 따서 바꾸었다. 그러나 여전히 현지인들 사이에는 사이공이라는 이름이 통용되고 있다. 그리고 공항, 항구, 기차역 등 공공시설도 사이공이란 이름을 쓰는 곳이 지금도 많다. 오늘날의 호찌민시는 사이공과 그 주변지역을 통합한 곳으로 옛날 사이공 도심을 나타내기에는 너무 큰 지역이라, 옛날 사이공이었던 지역은 여전히 사이공으로 불린다.

1993년 북방정책 일환으로 한국과 베트남 간 국교가 수립되기 전에는 공산당 정권을 인정 안한다는 뜻에서 한국에서도 오랫동안 옛 이름인 사이공으로 불렀고 그 후 한글로 호치민이라고 표기했으나 2004년 외래어 표기법에 베트남어 표기에 관한 세칙이 추가된 후에는 호찌민이라고 표기한다. 그러나 현재도 호찌민이라는 표기가 완전히 정착된 것은 아니라서 '호치민'이라는 표기도 아직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현지 한인들은 '호치민'이라는 표현을 상당히 많이 사용한다.

지리 및 기후[편집]

베트남의 동남부에 위치한 대도시로, 지형적으로는 동남아시아의 대표 하천인 메콩강 삼각주의 하구에 위치한 해안 도시이다. 해발 고도는 도시 중심부에서는 5m 가량이며, 내륙 외곽 지역의 해발 고도는 16m 내외이다. 호찌민은 메콩강 동쪽의 주요 하천인 동나이강(Đồng Nai River, sông Đồng Nai)과 그 지류인 사이공강(Sông Sài Gòn)의 서안에 위치하고 있다. 도시 내부에는 동나이강과 사이공강의 지류 또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운하가 있다.

호찌민시는 북쪽으로 떠이닌성과 빈즈엉성과 접경하며, 동쪽으로는 동나이성과 바리어붕따우성과 접경한다. 서쪽으로는 롱안성과 접경하며, 남쪽으로는 동해와 길이 15km의 해안선을 접한다. 호찌민시는 면적이 2,095km²(베트남 전체 면적의 0.63%)로, 꾸찌현(캄보디아 국경에서 19km)까지, 그리고 동해의 껀저까지 뻗어 있다.

호치민은 열대 기후를 가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열대 사바나 기후(Aw)로 평균습도는 78-82%이다. 한 해는 뚜렷한 두 계절로 나뉜다. 평균 강수량은 약 1,800mm이며, 우기는 매년 (연간 비오는 날이 약 150일), 보통 5월에 시작하여 10월 말 끝난다. 건기는 12월에서 4월까지 지속된다. 평균 기온은 28 °C이며 일년내내 거의 변동이 없다. 기록된 가장 높은 온도는 4월에 40.0 °C였지만 기록된 최저 온도는 1월에 13.8 °C였다. 평균적으로 이 도시는 1년에 2,400에서 2,700 시간의 일조량을 경험한다.[3]

역사[편집]

호찌민시는 "프레이 노코르"(Prey Nokor)라는 작은 어촌 마을로 시작하였다. 현재 호찌민시 지역은 본디 습지대였으며, 예전부터 베트남인들이 많이 들어와 살았으나 이곳은 오랫동안 크메르 제국의 영토였다. 1623년 캄보디아 국왕 체타 2세(재위: 1618년-1628년)는 베트남의 찐응우옌 전쟁을 피해서 온 베트남 난민들이 "프레이 노코르" 지역에 정착하도록 허용하였고, 프레이 노코르에 세관을 짓도록 하였다. 베트남에서 온 이주민 수는 증가하였고, 캄보디아 왕국은 태국과의 전쟁으로 약해져서 이 지역에 대한 통치력이 약해졌으며 따라서 이 지역은 캄보디아 정부의 영향력이 적어지며 서서히 베트남인들이 살기 시작하였다. 그때 프레이 노코르가 "사이공"이 되었다.

1698년에 후에의 응우옌 왕조는 베트남 관리 응우옌 후 껀을 보내어 이 지역에 베트남 행정 조직을 설립케 하였다. 그는 사이공의 영토를 기여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다. 베트남인들은 이 곳을 자딘(嘉定)이라고 불렀다. 1790년 프랑스인 건축가 보방이 "자딘성"이라는 거대한 성을 지었는데, 이는 약 70년 후 1859년 끼호아 전투 중에 프랑스군이 파괴하였다.

1858년부터 베트남과 프랑스는 전쟁에 돌입하였다. 1859년 2월 17일, 프랑스 해군은 리고 드 주누이 제독 지휘 하에 사이공을 점령하였다. 1859년 프랑스에 정복당한 후, 이 도시는 식민지 기간 동안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현재도 수많은 전통 서양식 건축 양식을 반영한 건물들이 남아 있으며, 이는 사이공이 "동아시아의 진주" 또는 "동양의 파리"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1954년 프랑스는 디엔비엔푸 전투 때 비엣민(월맹)에 패해 베트남에서 완전히 축출됐다. 그러나 비엣민은 새로운 정부로 인정받지 못하고, 바오 다이 황제가 추대되었다(베트남 제국). 1950년에 바오 다이 황제는 사이공을 수도로 삼았었다. 그 때 사이공과 베트남 화교들이 주로 거주하던 촐롱시가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통합되었고, ‘수도 사이공’이라 불리게 되었다. 베트남이 북베트남(베트남 민주 공화국)과 남베트남(베트남 공화국)으로 나뉘게 되었을 때, 사이공은 응오딘지엠 대통령이 이끌던 남베트남의 수도였다.

교외의 껀저에서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베트남 전쟁의 결과 1975년 4월 30일 북베트남군에 함락됨에 따라, 이 도시는 자연히 베트남 민주공화국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통일 베트남의 수도는 하노이가 됐다. 이를 미국에서는 사이공 함락이라고 부르나, 베트남에서는 사이공 해방이라 부른다.

이후 사이공은 호찌민시로 공식 명칭이 바뀌었으나 베트남 현지에서는 여전히 남베트남의 수도명으로 쓰였던 사이공이라는 명칭이 많이 쓰이며, 이곳의 항구 이름도 그대로 사이공항으로 유지되고 있다. 떤선녓 국제공항의 공항 코드인 SGN 역시 사이공에서 따 온 것이다.[4]

경제[편집]

호찌민시는 베트남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 중심지이다. 도시는 국가의 토지 면적의 0.6%를 차지하지만, 베트남의 인구의 8.34%가 집중되어 있다. 호찌민시의 경제는 광업, 해산물 가공, 농업 및 건설에서부터 관광, 금융, 산업 및 무역에 이르는 산업으로 구성된다. 국가 소유 부문은 경제의 33.3%, 민간 부문의 4.6% 및 외국인 투자가 나머지 부분을 차지한다. 경제 구조와 관련하여 서비스 부문은 51.1%, 산업 및 건설 부문은 47.7%, 임업, 농업 및 기타 부문은 1.2%를 차지한다.

꽝쭝 소프트웨어 파크는 12군에 위치한 소프트웨어 단지이다. 이 단지는 호찌민 시내 중심가에서 15km 떨어져 있으며, 닷컴 회사나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를 유치하고 있다. 이 단지에서는 소프트웨어 훈련 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수많은 대기업을 포함해 대략 30만 개 이상의 회사가 하이테크 산업, 전기, 기계 가공 및 경공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건설업이나 소재 산업, 농산품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다. 현재 호찌민시에는 15개의 공업단지 및 수출 가공 지구가 있으며, 꽝쭝 소프트웨어 파크 및 사이공 하이테크 파크가 있다. 호찌민시에는 소규모의 시장을 빼고서도 171개의 시장과 슈퍼마켓 체인점이 10개 계열이 있고, 고급 쇼핑몰이 12개, 다수의 미용-의류 센터가 있다. 50개를 넘는 은행이 몇 백의 지점을 가지고 있으며, 이곳에 거점을 두고 있는 보험 회사도 20개사 정도 있다. 호찌민시에는 베트남에서 최초의 증권거래소가 2001년에 열렸다.

교통[편집]

호찌민시의 도로 체계는 좋지 않다. 어떤 도로는 움푹 패인 데가 많으며 상당수 도로들은 일방통행 도로이다. 시내 대중교통은 버스와 택시 뿐이어서 이 도시 당국은 지하철과 지상 열차를 갖추기 위한 재원을 찾고 있다. 최근에는 특히 중국으로부터 값싼 오토바이가 대량 수입되어 이 도시의 오토바이 대수는 300만대까지 증가하였다. 여기에 40만대의 자동차가 더해져 도시의 주차난, 교통체증, 공기 오염이 가중되고 있다. 베이징이 자전거의 도시라면 호찌민은 오토바이의 도시이다. 여행객들은 오토바이 운전자가 거리의 보행자와 수천명의 다른 오토바이 운전자들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므로 이 도시의 거리가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통 규칙을 지키고 있으며 교통 법규에 의한 단속도 강화되고 있다. 그러나 운전자들은 여전히 일방통행을 역행하거나 정지 신호를 무시하고 있다.

항공[편집]

호찌민시 중심부에서 7km 떨어진 곳에 베트남 최대의 떤선녓 국제공항이 있다. 2010년을 기준으로 연간 1,550만 명의 승객을 수용하였으며, 이것은 베트남 전체 항공 승객 트래픽의 절반에 해당한다.

철도[편집]

호찌민시는 베트남 종단 철도인 남북선의 중심 허브이다. 승객들은 사이공 역에서부터 북쪽으로 1,726km 떨어진 하노이중국 국경까지 여행할 수 있다.

항구[편집]

또한 호찌민시와 동나이강을 따라 사이공항, 사이공 신항(딴강항), 벤응에항, VICT(베트남 국제 컨테이너 부두) 등 많은 항구가 있다. 이 항구들은 베트남 전체 수출입의 40%를 담당하고 있다.

도로[편집]

호찌민시에서 육로와 수로를 통해 남부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많은 곳으로 여행할 수 있다. 이 도시는 국립 고속도로 14번과 20번을 통해 중앙 고원지대로, 국립 고속도로 1번을 통해 북부지역으로 국립 고속도로 1번과 50번을 통해 메콩강 삼각주 지역으로 연결되어 있다. 호찌민시에서 메콩강 삼각주의 중심도시인 껀터와 70km 북동쪽에 있는 동나이성의 Dau Giay까지 연결되는 두 개의 고속도로가 건설중이다.

관광[편집]

호치민은 관광할 곳이 모여 있는 편이라 처음 방문하여도 둘러보기 쉽다. 호찌민시에는 베트남인 영웅들을 위한 기념비가 몇개 서있긴 하지만, 백 년 전의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각종 관공서와 교회, 오페라 극장, 대형 호텔 들이 모두 프랑스 건축가들에 의해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양의 파리"라고도 불리는 이 도시의 대로들은 센강 위의 도시 파리의 거리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프랑스 식민지령 시절에 지은 유서 깊고 아름다운 뛰어난 건물들, 통일궁, 호찌민 시청, 호찌민 시립 극장, 사이공 중앙 우체국, 노틀담 성당이 시내 중심가에 위치하고 있다. 통일궁은 역사적 명소로, 응오 비엣 투가 설계한 과거의 대통령 관저이다.

부드러운 노란색 벽면과 흰색 기둥이 붉은 지붕 아래서 묘한 대비를 이루는 인민위원회청사는 프랑스에 의해 1908년 완공됐으며 식민시절에는 시청으로 쓰이다가 1975년 베트남 통일 이후에는 인민위원회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호텔 마제스틱 같은 건축물들은 프랑스령 식민지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서 깊은 건물이다. 먼저 시내 중심부와 사이공강을 잇는 응우엔후에(Nguyen Hue) 거리에는 덕스톤 호텔(Duxton Hotel)이 자리하고 있다.

호찌민시 박물관, 베트남 역사 박물관 등의 주목할 만한 현대식 역사 혁명 박물관 등과 호찌민 전쟁박물관 등 다양한 종류의 박물관이 있다. 전쟁박물관은 호찌민시에 있는 박물관 가운데 여행자가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으로 구 명칭은 "전쟁 범죄 박물관"이다. 베트남 전쟁 때 사용되었던 미군 장갑차와 대포, 폭탁 등 전쟁 유물과 사진을 통해 베트남 전쟁의 잔혹성을 말해 주고 있다. 박물관에는 미군이 저지른 전쟁 범죄에 관한 내용들이 가득하며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고엽제 피해자들에 관한 끔찍한 사진도 전시되어 있다. 사이공 동식물원도 1865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서깊은 유적이다.[5]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호찌민〉, 《위키백과》
  2. 호찌민(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Ho Chi Minh City", Wikipedia
  4. 호치민 시〉, 《요다위키》
  5. 호찌민시〉,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동남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동남아시아 국가
동남아시아 도시
동남아시아 지리
동남아시아 바다
동남아시아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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