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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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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다(Mazda Motor Corporation, マツダ株式会社)
마쓰다(Mazda Motor Corporation, マツダ株式会社)

마쓰다(Mazda Motor Corporation, マツダ株式会社)는 일본자동차 브랜드이다. 본사는 히로시마에 있다. 창립자는 마쓰다 쥬지로이다. 1920년 동양코르크공업㈜로 설립되어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소형오토바이를 만들던 회사이다. 1984년 마스다 자동차 공업으로 이름을 바꾸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생산규모는 2016년 기준 154만 대이다. 소형 승용차를 주력으로 생산 및 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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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마쓰다는 자동차 및 부품의 제조·판매사업의 자동차 브랜드이다. 본사 소재지는 히로시마현 아키군 후츄마치 신지 3-1이다. 2019년도 전 세계 판매 대수는 142만 대이다. 로터리 엔진을 탑재한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던 것 외에 로드스터의 2인승 소형 오픈 스포츠카 생산 누계 세계 제일로 기네스 세계 기록의 인정을 받고 있다.[1] 1991년에는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의 첫 일본 메이커 종합 우승을 거뒀다.[2] 2000년대 이후, 주행 성능과 디자인을 특색으로 한 자동차 만들기에 특화한 전략을 세워 향후에는 고객과의 사이에 강한 유대를 가진 프리미엄 브랜드를 목표로 하고 있다.[3][4] 1979년 이래 포드와의 제휴 관계가 길어, 1996년 5월에는 포드의 산하에 들어가 플랫폼이나 생산 시설 공유가 진행되었지만, 리먼·쇼크 이후 포드의 경영이 악화된 적도 있어, 2015년 9월에 완전하게 그룹으로부터 독립했다.[5] 2015년 5월에는 도요타 자동차와 중장기적인 제휴 관계를 맺는 것을 발표하고, 2017년 8월에는 업무자본 제휴를 맺기로 합의했다.[6] 서로 500억 엔씩 주식을 취득해 토요타가 마쓰다의 제2위 대주주가 되었다.[7] THS-Ⅱ의 공급이나, 전기자동차개발 회사와 북미 공장의 공동 설립 등, 양 회사는 급속히 거리를 좁혔다. 2018년 5월에는 일본내 생산 누계 5,000만대를 달성했다. 일본 메이커에서는 토요타, 닛산의 뒤를 이어 3번째 기록이다. 창업은 1920년 코르크를 생산하는 동양(東洋) 코르크 공업 주식회사로 시작했다. 1927년부터 동양 공업 주식회사를 정식 회사명으로 했지만 1984년에 브랜드명에 맞추어 마쓰다 주식회사로 개칭했다. 영어 표기는 MAZDA이다. 사실상의 창업자인 마쓰다 쥬지로의 성과 자혜, 이성, 조화의 신을 의미하는 조로아스터교의 최고신 아프라 마스다(Ahura Mazdā)를 따서, 자동차 산업의 광명이 되기를 바라며 붙여졌다.[8]

연혁[편집]

  • 1920년 01월 : 동양 코르크 공업 주식회사 설립
  • 1920년 02월 : 초대 사장 가이즈카 신파치 취임
  • 1920년 06월 : 본사 및 공장 이전(히로시마시 요시시마쵸 234-1)
  • 1921년 03월 : 2대째 사장 마쓰다 시게지로 취임
  • 1927년 09월 : 상호 변경(동양공업주식회사)
  • 1928년 10월 : 광해군공장 지정 공장 선정
  • 1929년 01월 : 치세보 해군 공장, 구레 해군 공장의 지정 공장 선정
  • 1929년 04월 : 공작기계 제작 개시
  • 1929년 08월 : 해군성의 지정 공장 선정
  • 1931년 05월 : 본사 이전(히로시마현 아키군 후추무라지 신지 6047)
  • 1931년 07월 : 미츠비시상사와 삼륜 트럭에 관한 판매 계약 체결
  • 1931년 10월 : 삼륜 트럭 DA형을 발매
  • 1935년 10월 : 삭암기 첫 출하
  • 1936년 08월 : 미츠비시상사와 삼륜 트럭에 관한 국내의 판매 계약 해제
  • 1937년 12월 : 미츠비시상사와 삼륜 트럭 수출에 관한 판매 계약 해제
  • 1938년 01월 : 군수공업동원법에 근거하여 육해군 공동 관리 공장 지정
  • 1941년 07월 : 우치야마 코르크 공업소(현 우치야마 공업)에 코르크 사업 매각 결정
  • 1943년 10월 : 공작기계 공장 및 단조 공장 상공성의 관리 공장으로 지정
  • 1944년 01월 : 병기 및 공작 기계 부문이 육해군의 군수 회사로 지정
  • 1945년 08월 : 원자폭탄 투하 시 본사 시설의 일부를 히로시마현에 대여하여 현청의 모든 기능 설치, 군수회사 지정 취소
  • 1946년 05월 : 법원에 건물의 일부 대여
  • 1946년 08월 : 회사 경리 응급 조치법에 의거해 특별 경리 회사로 지정, 공작기계 부문이 배상 공장으로 지정
  • 1946년 12월 : 민간 병기 공장 부문이 배상 공장 지정
  • 1948년 07월 : 기업 재건 정비 계획에 근거해 신구 계정의 정비 완료, 특별 경리회사 지정 해제
  • 1949년 05월 : 도쿄, 오사카, 나고야의 각 증권거래소에 주식 상장
  • 1950년 06월 : 최초의 소형 사륜트럭 CA형 발매
  • 1951년 12월 : 3대 사장으로 마쓰다 시게지로 아들 마쓰다 쓰네지 취임
  • 1952년 04월 : 공장의 배상지정 해제
  • 1957년 01월 : 생산누계 20만대 달성
  • 1960년 05월 : 첫 양산형 승용차 마쓰다 R360 쿠페 출시
  • 1961년 02월 : NSU 및 반켈사와 로터리 엔진 기술 제휴
  • 1961년 03월 : 한국 넉다운 수출 시작
  • 1962년 03월 : 베르토네와 승용차 설계 기술 제휴
  • 1963년 01월 : 남아프리카에 녹다운 수출 시작
  • 1963년 03월 : 생산누계 100만대 달성
  • 1965년 01월 : 퍼킨스와 디젤 엔진 제조 기술 제휴
  • 1965년 05월 : 3차 자동차 시험장 완공
  • 1965년 10월 : 동양대교 개통
  • 1966년 11월 : 우지나 승용차 전문공장 완공
  • 1967년 03월 : 본격 유럽 수출 시작
  • 1967년 05월 : 첫 로터리 엔진 탑재차 코스모 스포츠 출시
  • 1969년 01월 : 생산누계 300만대 달성
  • 1970년 01월 : 동양공업·닛산자동차·포드와 합작하여 일본자동변속기주식회사(현 쟈트코) 설립
  • 1970년 04월 : 대미 수출 개시
  • 1970년 11월 : 마쓰다 쓰네지 사장의 사망에 따라 쓰네지의 아들인 마쓰다 고헤이 사장 취임
  • 1971년 02월 : 마쓰다 모터 오브 아메리카 설립
  • 1972년 11월 : 우지나 제2공장 완성
  • 1972년 12월 : 생산누계 500만대 달성
  • 1974년 01월 : 필리핀 현지 조립 개시
  • 1975년 01월 : 코퍼레이트 마크를 제정, 태국 현지 조립 개시
  • 1977년 12월 : 5대 사장으로 야마자키 요시키가 취임
  • 1978년 01월 : 로터리 엔진 차량 생산 누계 100만대 달성
  • 1979년 06월 : 생산누계 1,000만 대 달성
  • 1979년 11월 : 포드가 지분 24.5%를 사들여 지분 제휴
  • 1981년 12월 : 오토라마 설립
  • 1983년 04월 : 콜롬비아 현지생산 개시
  • 1983년 07월 : 마쓰다스피드를 설립
  • 1983년 09월 : 기아차에 자본 참여
  • 1984년 05월 : 상호를 마쓰다 주식회사로 변경
  • 1984년 10월 : 마쓰다 재단 설립
  • 1984년 11월 : 6대 사장으로 야마모토 겐이치 취임
  • 1985년 01월 : 미국 생산회사 MMUC 설립
  • 1985년 08월 : 승용차 생산 누계 1,000만 대 달성
  • 1986년 04월 : 로터리 엔진차 생산 누계 150만대 달성
  • 1987년 04월 : 생산누계 2000만대 달성
  • 1987년 06월 : 기술연구소 요코하마 연구소 개설
  • 1987년 12월 : 스즈키와 경차에 대한 생산협력을 발표, 7대 사장으로 후루타 도쿠마사 취임
  • 1988년 05월 : 경영계획 마쓰다·이노베이션 계획 개시, 미국의 어바인 연구 개발 거점 마쓰다 R&D센터 설립
  • 1988년 10월 : 유럽에 판매회사 MME 설립
  • 1989년 02월 : 마쓰다아스텍, 토요에이텍 설립
  • 1989년 05월 : 유노스, 오토잠 설립
  • 1989년 07월 : 시트로엥의 수입을 개시
  • 1989년 11월 : 홋카이도 겐부치 내한 자동차 시험장 개설
  • 1990년 04월 : M2 설립
  • 1990년 05월 : 유럽에 연구개발 거점 MRE 설립
  • 1990년 12월 : 생산누계 2500만대 달성
  • 1991년 06월 : 제59회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마쓰다 787B가 종합우승
  • 1991년 11월 : 사명 변경(암피니)
  • 1991년 12월 : 8대 사장으로 와다 요시히로 취임
  • 1992년 02월 : 호후 제2공장 조업 개시
  • 1992년 06월 : 미국 생산회사 MMUC 사명 개칭(오토 얼라이언스 인터내셔널), 포드와 합작 기업화
  • 1992년 07월 : 오토라마 출자 비율 포드와 균등화
  • 1993년 12월 : 포드와의 신전략적 협력관계 구축 발표
  • 1995년 04월 : 생산누계 3,000만 대 달성
  • 1995년 11월 : 태국에 포드와의 합작회사 오토 얼라이언스 타일랜드(AAT) 설립
  • 1996년 04월 : 암피니점을 마쓰다 암피니점으로 호칭 통합변경
  • 1996년 05월 : 출자 비율 33.4%로 상향
  • 1996년 06월 : 9대째 사장으로 포드 출신의 헨리 D.G.월레스 취임
  • 1997년 06월 : 신브랜드 심볼 제정(동년 8월 발매된 7대째 카펠라부터 사용 개시)
  • 1997년 10월 : 북미 사업 통합
  • 1997년 11월 : 10대째 사장 제임스.E.밀러 취임
  • 1998년 05월 : 태국 AAT사에서 양산 개시
  • 1999년 06월 : 미츠비시 자동차와 소형 상용차의 OEM 공급 합의
  • 1999년 08월 : 보유 쟈트코의 지분 전량을 닛산자동차에 매각
  • 1999년 11월 : 포드와 신형 엔진 시리즈의 공동 개발 및 분업 생산을 발표
  • 1999년 12월 : 11대째 사장으로 마크필즈가 취임
  • 2000년 07월 : 로드스터가 세계 1위 생산 기네스 세계기록 인정
  • 2000년 11월 : 중기 경영계획 밀레니엄 플랜 발표
  • 2001년 09월 : 우지나 제2공장의 폐쇄
  • 2002년 04월 : 신브랜드 메세지 Zoom-Zoom 발표
  • 2002년 06월 : 12대째 사장 루이스 부스 취임
  • 2002년 09월 : 마쓰다 아스텍을 샌드빅에 영업 양도
  • 2003년 07월 : 이스즈와 소형 트럭의 OEM 공급 합의
  • 2003년 08월 : 13대째 사장 이마키 큐이치 취임, 오사카·나고야·후쿠오카·삿포로 등 4개 증권거래소 상장폐지 발표
  • 2004년 04월 : 본사 제1공장 생산 종료
  • 2004년 05월 : 우지나 제2공장 재가동
  • 2005년 03월 : 중국에 통괄 회사 설립
  • 2005년 08월 : 중국기술지원센터 개설
  • 2005년 09월 : 마쓰다, 포드, 장안 기차의 합작으로 난징에 엔진 생산 회사 설립
  • 2006년 05월 : 미네 자동차 시험장(구 MINE 서킷) 개소
  • 2007년 03월 : 중기계획 마쓰다 어드밴스먼트 플랜 및 기술개발 장기비전 서스테이너블 Zoom-Zoom 선언 수립
  • 2007년 07월 : 국내 생산 누계 4,000만 대 달성
  • 2008년 11월 : 14대째 사장 야마우치 타카시 취임, 포드가 지분 13% 남겨 매각
  • 2010년 03월 : 도요타자동차와 하이브리드 시스템 기술공여 합의
  • 2010년 10월 : 차세대 기술 스카이액티브(SKYACTIV) 발표
  • 2010년 11월 : 포드가 지분 3.5% 남기고 매각
  • 2011년 06월 : 북미 생산에서의 철수를 발표, 멕시코 차량 조립 및 엔진 조립 공장 건설 결정
  • 2012년 02월 : 중기계획 구조개혁 계획 발표
  • 2012년 11월 : 도요타와 멕시코 공장의 북미용 도요타 자동차 생산 합의
  • 2012년 10월 : 러시아 공장 조업 개시
  • 2013년 03월 : 피아트와 오픈2씨터 스포츠카 사업계약 체결
  • 2013년 06월 : 15대째 사장 고카이 마사미치 취임
  • 2013년 08월 : 호후공장 생산 누계 대수 1,000만 대 달성
  • 2014년 01월 : 멕시코 공장 조업 개시
  • 2014년 04월 : 콜롬비아 생산 철수
  • 2015년 01월 : 태국 파워트레인 공장 조업 개시
  • 2015년 04월 : 중기계획 구조개혁 2단계 발표
  • 2015년 05월 : 도요타자동차와 중장기 업무제휴 기본합의
  • 2015년 09월 : 포드가 마쓰다 지분 100% 매각으로 자본관계 해소
  • 2016년 07월 : 이스즈자동차로부터 차세대 픽업트럭을 OEM 조달 기본 합의
  • 2017년 08월 : 도요타 자동차와 업무 자본 제휴 발표, 기술개발 장기비전 서스테이너블 Zoom-Zoom 2030 발표
  • 2017년 09월 : 도요타자동차·덴소와 전기자동차 공동기술개발 계약 체결, 합작회사 EV C.A. 스피릿 설립
  • 2018년 03월 : 도요타 자동차와 미국 완성차 생산 합작회사 미국 마쓰다 토요타 설립
  • 2018년 05월 : 국내 생산 누계 5,000만대 달성
  • 2018년 06월 : 16대째 사장 마루모토 아키라 취임
  • 2018년 07월 : 서일본 호우에 따라 히로시마현 본사 공장과 야마구치현 호후 공장의 조업 중단(7월 8일~12일), 재개 후 9월까지 생산량 조정
  • 2019년 01월 : 장안 포드 마쓰다 엔진 유한공사의 지분 전량을 취득하여 사명을 장안 마쓰다 엔진 유한공사로 변경
  • 2019년 05월 : 중기 경영방침 발표
  • 2019년 06월 : 모네테크놀로지(MONET Technologies)와 자본업무 제휴 발표
  • 2019년 11월 : 중기경영계획 발표
  • 2019년 12월 : 도쿄 본사 이전(히비야 U-1 빌딩에서 가스미가세키 빌딩 25층)
  • 2020년 01월 : 창업 100주년
  • 2020년 03월 : 코로나19에 따른 생산량 조정을 위해 본사 공장과 야마구치현 호후 공장, 멕시코, 타이 공장의 조업 일시 중단[8]

역사[편집]

1920년대[편집]

1920년 1월 30일, 히로시마시 나카지마 신마치 10번지에 마쓰다의 시작이 되는 동양 코르크 공업 주식회사가 설립되었다. 키요타니(清谷) 상회라고 하는 1890년 설립한 코르크의 제조 및 판매를 하는 기업의 경영이 악화되어 주된 융자원이었던 히로시마 저축은행을 중심으로 융자의 회수와 사업의 존속을 도모하는 방책으로서 개인경영에서 회사조직으로 고치는 형태로 설립된 회사였다. 설립에는 당시의 히로시마의 주요한 재계인이 참가해, 초대 사장에는 히로시마 저축은행장인 가이즈카 신파치가 취임했다. 그러나 가이즈카가 사임을 신청하고 다음 해인 1921년 3월, 이사 중 유일하게 경영을 알고있던 마쓰다 시게지로가 코르크 마개를 제조할 때에 나오는 쓰레기 코르크에 주목해 히로시마 고등 공업학교와의 연구에서 가열 제법에 의한 압착 코르크판을 상품화해 폐재로부터 부가가치가 높은 코르크 제품의 제조에 성공한다. 해군으로부터 대량의 수주를 얻어 실적을 회복해, 도쿄나 오사카에도 출장소를 마련해 적극적인 경영을 시작했다. 그러나 1923년에 발생한 관동 대지진으로 도쿄 출장소의 많은 외상매출금의 회수가 불가하게 되어 경영에 큰 타격을 받았다. 전부터 마쓰다 시게지로와 친분이 있던 히질 콘체른 총수의 노구치 준으로부터의 융자로 파산은 피했지만, 직원의 반을 해고하는 사태에까지 몰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25년 12월의 심야의 화재로 인해 코르크 공장이 전소되어 버린다. 이러한 사태를 두고 마쓰다 시게지로는 코르크 사업에서 자신이 자랑으로 여기는 기계 사업에의 진출을 결심한다. 구레 해군 공창장의 고도 타쿠오에게 지원을 의뢰해 일본 제강소를 통한 주문을 받아낸다. 자금면에서는 노구치가 보증인이 되어 게이비(藝備)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했다. 1927년에는 회사명을 동양 공업 주식회사로 개칭했다. 1928년 초부터 일본제강소나 우품조선소 등의 하청공장으로서 해군관계의 병기나 기계, 부품의 제조를 시작한 동양공업은 같은 해 10월에 히로 해군공장의 지정공장에, 다음 해인 1929년 1월에 치세보 해군공장 및 구레 해군공장의 지정공장이 되어, 항공기의 엔진이나 프로펠러, 군함의 정밀기계 등을 수주를 얻었다. 1929년 8월에는 해군성 구매 명부에 등록되어 제2차 하청에서 각 해군 공장의 제1차 하청 공장의 지위를 확립했다.[8]

1930년대[편집]

동양공업은 군공장의 하청형태로 기계사업에 진출했지만 군으로부터의 주문은 소량 다품종이어서 양산을 통한 비용절감을 꾀하기 어렵다는 고민이 있었다. 독자적인 제품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한 마쓰다 시게지로는 최종적인 목표를 자동차 제조에 두면서도 우선은 오토바이에서 손을 대기로 해 1929년부터 개발에 들어가 1930년에 30대로 판매를 시작했다. 1930년에는 삼륜 트럭의 개발에 착수했다. 오토바이에서 바로 사륜자동차 제조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은 당시 인기를 끌고 있던 미와트럭으로 실적을 쌓으려는 목적이 있었다. 또, 히로시마시 요시시마쵸의 공장이 비좁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2020년 기준 본사 소재지인 히로시마현 아키군 후츄쵸의 토지를 취득했다. 마쓰다 시게지로의 장남인 마쓰다 쓰네지가 레이아웃을 담당하여 미와트럭을 중심으로 설계된 신공장이 완성되었다. 코르크 제품과 기계공업 사업의 중심이었던 동양공업에게 미와트럭 시장의 진출은 미지수였기 때문에, 노구치의 알선으로 동양공업이 생산하는 미와트럭을 미츠비시상사가 총판으로 하는 계약을 맺었다. 1931년 10월, 후츄의 신공장에서 삼륜 트럭의 마쓰다호 DA형의 생산을 개시했다. 군수경기로 수요가 증가하고 있던 차에, 지금까지의 삼륜 트럭에는 없는 후퇴 기어나, 커브를 부드럽게 돌 수 있도록 후륜에 디퍼렌셜 기어를 장비한 DA형은 미츠비시 상사의 전국적인 판매망과 함께 호평을 받았다. 개량형 DB형을 발매한 다음 해인 1932년에는 국내 시장 점유율 25%를 획득했다. 매출이 급격하게 증가하여 마쓰다호는 해외에도 수출되었다. 1935년 10월 한반도에서 대규모 수력 발전소를 건설하고 있던 노구치로부터 의뢰를 받아 개발한 착암기를 처음으로 납입하고 1929년부터 사내용으로 제조하고 있던 공작기계의 외판도 시작했다. 1936년에는 미츠비시상사와의 판매 계약을 해지해, 오토 삼륜은 동양 공업의 직매제로 판매되었다. 이 무렵에는 삼륜 트럭의 다음 상품으로 사륜 자동차의 검토를 시작했다. 1936년 이사회에서 소형 4륜자동차의 제조가 결의되어 영국의 오스틴7을 구입하여 연구를 개시했다. 게다가 독일차의 오펠 37년식이나 영국의 MG37년식을 구입하고 최신의 프레스기를 비롯한 각종 설비도 미국에서 매입한다. 1940년에는 소형 4륜자동차의 시작차를 완성시켜 생산체제도 정비되고 있었지만, 이 무렵 이미 동양공업은 군사체제에 편입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동차생산은 실현 불가능하게 되었다.[8]

1940년대[편집]

1937년 7월에 중일전쟁이 발발하여 일본 내 조직이 총력전 체제로 재편성되어 가는 가운데 동양 공업은 육군 고쿠라 공창으로부터 38식 보병총과 92식 기병총의 생산을 통보받았다. 자동차야말로 전시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하며 거절했지만 인정받지 못해 연말에는 부품생산이 시작되었다. 1938년 1월에는 군수공업동원법에 의해 육해군 공동 관리 공장으로 지정되어 군부의 직접 관리를 받게 되었다. 육군대신에 의한 보병총 생산 명령을 받은 동양 공업은 1940년에 99식 단소총의 조립을 시작해 공장이 완성된 다음 해인 1941년부터는 본격 생산을 개시했다. 오 해군공창에서는 폭탄, 수뢰, 신관 등의 제조 명령을 받았다. 군국주의의 흐름이 군수품 확보로 작용하는 가운데, 민생용품 생산은 압박을 받아 상공성에 의해 삼륜트럭 생산은 동양공업, 발동기제조(현 다이하츠공업), 일본 내연기로 세 회사에만 허가되었다. 그러나 그 후 삼륜 트럭의 생산이 일시 중지 되는 등 생산 대수가 극도로 침체되었다. 1943년 10월에는 삼륜 트럭의 생산 대수는 제로가 되어 종전까지 삼륜 트럭 부문은 실질적으로 기능을 정지했다. 1943년의 상반기에는 전시금융금고가 동양공업주를 취득하여 일본질소비료에 이은 제2위의 대주주가 되었고, 또한 같은 해 하반기에 일본질소비료가 보유한 주식을 전시금융금고에 양도함으로써 자본 면에서도 보다 강한 전시통제 아래에 놓였다. 다음 해인 1944년 1월, 병기 증산을 목적으로 전년에 시공된 군수회사법에 근거해 동양 공업은 군으로부터 군수 회사로 지정되어 군수성 중국 군수 관리부의 관리로 들어갔다. 같은 달에는 일질콘체른 총수이자 이사인 노구치 준이 사망하면서 같은 해 5월까지 일본질소비료계의 임원이 경영진에서 떠났으며 동양공업과 일본질소비료의 제휴는 종료되었다. 같은 해 7월에는 우치야마코르크공업과 공동출자로 동양코르크를 설립하여 조업인 코르크제조사업을 분리하였다. 그해 10월에는 동양공업이 8,556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일본 내 최고 수준의 군수업체가 되었으며, 전쟁 중에 제조한 소총은 누계 58만5646정에 달했다. 1945년 8월 6일 미군에 의해 히로시마 시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사이쿠초(현 나카구 오오테마치) 상공에서 폭발했다. 폭심지에서 5.3km 떨어진 토요공업은 폭풍에 의해 약간의 건물이 붕괴되어 일부 공장의 지붕이 날아오르거나 대부분의 유리창이 깨지는 피해를 입었지만 전체적으로 손해는 경미하고 기계설비는 거의 흠이 없어 잔존했다. 그러나 현 당국의 명령에 의해 츠루미초(현 나카구 츠루미초)에서 건물 소개 작업에 동원되었던 73명을 포함하여 합계 119명의 사원이 목숨을 잃고 부상자는 335명에 달했다. 동양공업부속의원(현 마쓰다병원)은 히로시마시의 부상자가 가장 넓은 길을 동쪽으로 향해 피난할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의료기관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몰려드는 사태로 동양공업의 식당이나 기숙사도 의료품을 포함한 모든 물자의 문을 열고 총출동하여 구호에 임했다. 그러나 부상자는 차례로 사망해 가고, 회사 운동장에서는 연일 희생자의 사체에 기름을 끼얹어 화장이 이루어졌다. 1945년 8월 15일 동양공업은 생산을 완전하게 정지한 채 종전을 맞이했다. 기업의 존속도 알 수 없고 사내에 불안이 감도는 가운데 동양 공업은 삼륜 트럭의 생산 재개를 결정해 1945년 9월에 쿠루메시의 브리지스톤의 공장을 방문하는 등 준비 활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GHQ로부터도 군수 공장의 민수 생산 전환의 허가가 나옴에 따라, 종전으로부터 4개월 후에는 생산을 재개해, 마쓰다호 GA형 10대를 완성시켰다. 부흥이 본격화된 1950년 무렵이 되면서 시장에서는 보다 큰 적재 능력을 가진 삼륜트럭이 요구되어 1950년 9월, 동양 공업은 업계 최초로 1톤의 적재 능력을 가진 마쓰다호 CT형을 발매한다. 1951년에 삼륜 트럭에 대한 차체 사이즈나 배기량의 제한이 철폐된 것을 받아 동년에 4.8미터의 롱 보디를 가지는 CTL형을 발매해, 다음 해인 1952년에는 2톤적 CTL형도 등장시켰다. 토요 공업의 삼륜 트럭의 매출은 1949년부터 1954년까지의 사이에 1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8]

1950년대[편집]

삼륜 트럭의 대형화와 다양화를 진행시키는 한편 동양 공업은 소형 사륜 트럭의 개발도 병행하고 있었다. 1950년에 동양 공업 최초의 사륜차가 되는 소형 4륜 트럭, CA형을 발매했다. 신개발 공랭엔진을 탑재해, 28만 엔의 저가격으로 판매된 CA형이었지만, 1952년까지 35대만으로 생산이 중지되었고, 또 거의 같은 시기에 발매한 소방차의 CF형의 생산 대수도 74대에 머물렀기 때문에, 사륜차 시장으로의 진출은 일단 중단되게 되었다. 1951년, 마쓰다 시게지로의 장남으로 전무 마쓰다 츠네츠구가 사장으로 취임했다. 1956년에는 다시 사륜차의 개발에 착수해, 1958년, 소형 4륜 트럭의 롬퍼를 발매했다. 다음 1959년에는 수냉 엔진을 탑재한 트럭의 D1100형, D1500형을 등장시켰다. 1960년 이후가 되고 나서, 일본의 모터라이제이션은 지금까지의 사업용으로부터 개인용으로 수요가의 변화가 있었고 1955년에 보도된 통상 산업성(현 경제 산업성)의 국민차 구상의 영향도 있어, 후지 중공업(현·SUBARU)의 스바루·360이나 미츠비시중공업의 미츠비시·500 등, 타사에서는 차례차례로 대중 승용차가 발매되고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을 배경으로 동양 공업은 승용차 시장에 피라미드 비전이라고 하는 신차개발 구상을 입안했다. 이것은 국민의 소득계층 분포와 그에 대응하는 승용차의 보유구조를 피라미드형으로 보고 우선은 하층부를 차지하는 대중용 승용차부터 개척해, 국민소득 수준의 향상과 함께 한 단계씩 위의 차격의 차종을 전개해 가는 것으로, 최종적으로는 정점부인 고급차까지를 담당하는 종합 자동차 메이커를 목표로 한다는 것이었다. 이 구상에 근거해, 1959년 4월에 경승용차 개발에 착수했고 1960년 4월, 동양 공업 최초로 4륜 승용차, R360 쿠페를 발매했다. 1962년(쇼와 37년)에는 성인 4명이 탈 수 있는 패밀리 카로서 개발한 캐럴 360을 발매한다. 두 차는 대히트를 기록해 1960년부터 1962년까지의 3년간 동양 공업은 도요타 자동차, 닛산 자동차를 누르고 일본 국내 판매 대수 선두로 약진했다.[8]

1960년대[편집]

다음 시장으로서 소형 승용차 내세워 1963년에 파밀리아 밴을 발매해하고 다음 해인 1964년에는 본격적인 패밀리 카로서 개발한 파밀리아 4 도어 세단을 투입했다. 그 후도 2도어, 2도어 스페셜, 패밀리 트럭 등 패밀리 시리즈를 중심으로 성장했다. 1960년부터 3년간에 걸쳐 동양공업은 자동차 생산대수에서 일본 국내 1위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그 대부분은 삼륜트럭과 경승용차였기 때문에 경영기반은 약하고 기업 규모나 수익부분에서 토요타나 닛산에 큰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또한, 당시의 통상산업성은 가까운 장래의 무역자유화에 대비한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일본 국내 자동차 메이커를 양산차(보통 승용차), 특수 승용차(고급차), 미니카(경차)의 3 그룹으로 통합시킨다는 3그룹 구상을 안고 있으며, 동양공업은 미니카 그룹이었다. 사장인 마쓰다 쓰네츠구는 종합 자동차 메이커를 목표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양 공업이 미니카 전업 회사가 되면서 합병을 강요당하고 경영권을 잃는 등 당치도 않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회사의 독립을 유지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던 마쓰다 츠네츠구는 1960년, 독일인 친구로부터, 당시 서독의 NSU사와 펠릭스 반켈 박사가 이끄는 반켈사가 공동 개발한 로터리 엔진(RE)에 대한 리포트와 잡지 기사가 동봉된 편지를 받고 기술 제휴를 맺도록 권유받았다. RE가 자동차 업계 재편을 극복하기 위한 비장의 카드가 된다고 확신한 마쓰다 츠네츠구는 사내의 반대의 소리를 무시하고 기술 제휴를 진행시키는 것을 결단했다. 마쓰다 츠네구 후에는, RE의 기술력으로 기업 이미지의 향상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나, RE개발의 명목으로 은행으로부터의 융자를 받기 쉬워져, 그 자금으로 통상 산업성 주도의 재편을 극복하기 위한 연구 개발이나 설비 투자를 강화할 수 있다고 하는 생각이 있었다. 기술 제휴에 관한 정부의 인가가 내린 1961년 7월, 기술 연수단이 NSU에 파견되어 거기서 일정 시간 가동 후에 엔진내 벽면에 발생하는 채터 마크라고 불리는 마모가 양산화를 방해하는 큰 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귀국 후에 로터리 엔진 개발 위원회를 열어 NSU로부터 온 설계도를 바탕으로 시작 엔진을 완성했지만 계약전에는 밝혀지지 않았던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해 실용화에는 실패했다. 1963년 4월, 개발 강화를 위해 로터리 엔진 개발 위원회를 승격시킨 로터리 엔진 연구부를 설치했다. 야마모토 켄이치를 부장으로 총원 47명으로 발족해 다음 해에는 3억 엔의 총공비를 들인 전용의 연구실이 준비되었다. 야마모토를 비롯한 개발진은 니혼카본과 공동으로 카본을 침윤시킨 아펙스씰을 개발하는 등 내구성 확보에 성공했다. 1967년 5월, 특허 구입으로부터 6년의 세월과 40억 엔 이상의 거액을 들인 프로젝트는 RE탑재차의 코스모 스포츠의 발매로 결실을 맺었다. RE의 압도적인 동력성능과 유려하고 미래적인 디자인을 겸비한 코스모 스포츠는 이미지 리더로서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그간 엔진에서 들리는 덜컹덜컹 소리때문에 덜커덩가게(バタンコ屋)라 불리던 세련되지 않은 이미지가 로터리의 마쓰다라는 최첨단 이미지를 대체했다. 기업이미지 향상은 판매증가에도 연결되어 1966년부터 2년간에 사륜차의 생산 대수는 19%나 증가했다. 코스모 스포츠에 이어 패밀리아 로터리 쿠페와 루체로터리 쿠페 등 RE를 탑재한 모델을 출시하고, 1970년에는 패밀리아 로터리 쿠페 등의 대미 수출을 개시하여 염원이었던 미국 시장에 진출하였다.[8]

1970년대[편집]

1970년 동양 공업은 포드, 닛산과 공동으로 일본 자동 변속기(현 쟈트코)를 설립해 포드로부터의 강한 제의를 받아 자본 제휴 교섭에 들어갔다. 마쓰다의 소형 트럭을 포드에 공급하는 업무 제휴가 결정되어 본제의 자본 제휴 교섭에 들어가려고 한 때에 사장 마쓰다 츠네츠구가 사망한다. 후임에는 장남으로 부사장 마쓰다 코헤이(松田耕平)가 취임해 교섭은 계속되었지만, NSU가 토요 공업과 포드의 자본 제휴는 인정할 수 없다고 반대한 데다가 닉슨·쇼크도 겹쳐 교섭은 난항에 빠진다. 서로의 골은 메워지지 않고, 1972년 3월에 교섭은 결렬에 이르렀다. 1970년, 미국에서는 배출 가스 규제를 큰폭으로 강화하는 머스키법이 발효되어 자동차 업계는 전에 없는 기술적 곤란에 직면하고 있었다. 동양공업의 RE는 혼다가 개발한 CVCC 엔진과 함께 이 규제를 달성했고, 제너럴 모터스, 토요타, 닛산도 RE의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마쓰다 코헤이는 머지않아 RE의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예상하고 대규모 설비 증강을 결정했다. 증산 공사에 이어 RE의 새 공장 건설에 착수해 연구 개발비를 포함한 총투자액은 600억 엔에 이르렀다. 이전에도 RE차의 판매는 일본 국내외에서 호조로, 특히 주요한 수출처인 미국에서는 1973년에 수출한 대수의 70% ~ 80%를 RE차가 차지할 정도였다. 1973년 10월, 제4차 중동전쟁의 발발을 계기로 제1차 오일쇼크가 발생했다. 10월부터 11월에 걸쳐 석유화학제품의 가격은 40%에서 50% 상승해 자동차 각사는 가격 인상을 실시했다. 같은 해 12월에 일본의 자동차 시장은 전년 동월 대비 75.6%로 대폭적인 침체를 기록했다. 수요의 위축을 받아 타사가 재빨리 감산체제를 갖추는 가운데, 마쓰다 고헤이는 오일쇼크에 의한 물자부족은 일과성인 것으로, 구매활동이 자동차로 돌아올 때를 대비해 계속 만들어두지 않으면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토요공업은 증산체제를 계속 취했다. 그런데 다음날인 1974년 1월, 미합중국환경보호청(EPA)이 RE는 통상의 엔진에 비해 약 50% 정도 많은 가솔린을 소비한다라는 보고를 발표했다. 오일 쇼크와 이 지적의 영향이 겹친 것으로 극도의 판매 부진에 빠져, 일본 국내외에서 안는 재고 대수는 20만대까지 쌓였다. 연구개발비의 증가와 경쟁심화, 다품종 소량생산에 의한 저수익성 등이 중첩되었던 점에 오일쇼크가 발생하여, 동양공업의 재무체질이 급속히 악화되었다. 통상 산업성으로부터의 요청을 받아 동양 공업의 경영 실태 조사를 진행시키고 있던 주거래 은행인 스미토모 은행은 이러한 사태를 간과할 수 없게 되어 1974년 10월, 동행 사무 관리 부장 하나오카 신헤이와 스미토모 신탁은행 법인 신탁 부장 나카무라 카즈오 등 4명을 동양 공업에 파견한다. 하나오카와 나카무라 두 사람은 다음 해인 1975년 1월의 주주 총회에서 이사로 선임되어, 이 이후 동양 공업의 재건은 스미토모 은행의 주도로 진행되게 되었다. 같은 달 스미토모 은행은 동양 공업의 관리를 전담하는 융자 제 2부를 신설하고 책임자에게는 전무 이소다 이치로, 부장에는 본점 영업부장으로 상무 타츠미 토오가 취임했다. 도쿄 및 오사카 두 지사 등의 토지 건물과 유가 증권 매각, 스미토모 은행을 중심으로 한 협조 융자, 감산 및 재고 일소를 목적으로 한 잉여 인원을 딜러로 파견했다. 미국 판매 회사의 분할과 코스트 컨트롤부 신설에 따른 전사적인 원가 절감 활동 개시라는 대책이 잇달아 있었다. 그러나, 1975년 10월 결산에서는 경상 적자가 173억 엔에 달하고 동업 타사의 수뇌로부터 동양 공업은 도산한다는 담화가 나오는 등, 동양 공업을 둘러싼 환경은 더욱 어려워졌다. 1978년에 들어와 포드와 동양 공업의 접촉은 빈번해져 같은 해 12월에는 동양 공업이 포드에 트랜스 액셀을 공급하는 교섭이 결정되었다. 다음 1979년 11월 아시아 태평양 전략의 발판으로서 일본차 메이커와의 제휴를 모색하고 있던 포드와 동양 공업, 스미토모 은행의 기대가 일치해 포드가 동양 공업에 25% 출자하는 자본 제휴가 실현되었다.[8]

1980년대[편집]

1980년에는 5대째 패밀리리아를 발매해, 당시의 젊은이들에게 지지를 받아 큰 인기를 얻었다. 1981년 동양 공업은 새로운 도매 회사인 오토라마(autorama)를 설립해, 마쓰다가 제조하는 포드 브랜드차의 일본 국내 판매를 시작했다. 오일 쇼크 후에 연기가 계속되고 있던 야마구치현 호후시의 완성차 공장의 건설도 재개해, 1982년에 조업을 개시했다.[9] 1984년 5월 동양 공업은 회사명을 브랜드명에 맞춰 마쓰다 주식회사로 개칭했다. 11월에는 로터리 엔진의 개발자인 야마모토 켄이치가 사장으로 취임해 동시에 미국에의 공장 진출을 발표했다. 1985년 9월, 선진 5개국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G5)에서 플라자 합의가 발표되자, 1달러 250엔였던 환율은 1년 후에 150엔대로 급등한다. 자동차를 비롯한 수출비중이 높은 산업에 직격탄을 날렸고, 특히 수출비중이 68%나 되었던 마쓰다는 큰 타격을 입었다. 엔고는 자동차 각사의 눈을 일제히 국내시장으로 돌리게 하고, 특히 1987년에 창립 50주년을 맞이하고 있던 토요타는 국내시장 점유율 50%를 목표로 한 T-50 작전을 전개했다. 다른회사들은 그 영향을 제대로 받는 셈이 되어 엔고와 국내판매경쟁의 격화로 마쓰다의 수익도 악화되었다. 1987년 12월, 엔고에 의한 실적 악화를 이유로 야마모토는 임기 도중에 회장으로 물러나, 후임에는 2년 전에 통상 산업성으로부터 후루타 토쿠마사가 취임한다. 회장인 야마모토, 사장인 후루타, 스미토모 은행 출신으로 부사장 와다 요시히로의 3명이 대표권을 가진 3두체제 아래 1988년 5월, 마쓰다는 1992년도를 최종연도로 하는 중기경영계획 마쓰다 이노베이션(MI) 계획을 개시했다. B-10 계획이라고 불리는 국내 판매 확대책은 국내 판매 대수를 지금까지의 약 40만대에서 점유율 10%에 해당하는 80만대까지 늘려서 수출에 의존한 경영체질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B-10 계획에 근거해, 마쓰다는 종래의 마쓰다, 마쓰다 오토, 오토라마의 3개의 판매 채널에 새롭게 유노스와 오토잠, 2개를 더해 토요타나 닛산과 동등한 일본 국내 5 채널 체제를 깔았다. 3채널 체제 시에 1,500여 개였던 점포수를 3,000개 가까이까지 늘리고, 600억 엔을 들여 호후 제2공장 건설에도 착수했다. 이 확대책은 버블 경제기에는 일정한 성과를 올려 1990년에는 생산 대수가 140만대에까지 달하여 과거 최고를 기록했다. 국내 판매 대수도 60만대로 최고 기록을 갱신했다.[8]

1990년대[편집]

그러나 그 후, 버블 경제가 붕괴되고 판매 대수는 급속히 감소했다.스미토모 은행은 버블 붕괴 이후 장기적으로 5채널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곤란하다고 느껴 1991년에 은행 출신의 와다 요시히로를 사장으로 임명했다. 마쓰다는 1993년부터 3년 연속으로 대폭적인 적자를 기록했다. 1995년도의 생산 대수는 77만대로 피크 때인 1990년부터 거의 반으로 줄어 일본 국내 판매 대수도 불과 35만대에 머무르는 참담한 상황에 빠졌다. 판매 채널과 차종을 늘림으로써 영업이나 생산에 드는 비용이 증대했다. 마쓰다라는 이름이 아닌 채널 명칭이나 심볼 마크를 붙인 상품의 투입을 계속하여 브랜드도 훼손되고 확대책은 완전한 실패로 끝이 났다. 스미토모은행은 마쓰다를 다시 재건시키기에는 은행의 주도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포드의 세계전략에 편입하는 것 이외에는 살아남을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다. 다쓰미의 요청에 응한 포드는 1994년에 장래가 유망시되고 있는 40대의 4명을 고문으로 마쓰다에 파견했다. 같은 해 6월의 주주 총회 후에 4명은 임원에 취임했고, 이로써 포드가 실질적으로 마쓰다의 경영을 장악한다. 1996년 4월, 마쓰다는 포드에 대한 제삼자 할당 증자를 결정하고 이로써 포드의 출자비율은 24.5%에서 33.4%로 높아졌다. 마쓰다는 정식으로 포드 산하에 들어가게 된다. 아울러 포드로부터 파견된 부사장 헨리 월리스가 사장으로 승격되어 일본 최초의 외국인 자동차회사 사장이 탄생했다. 월레스가 사장으로 취임한 1996년 무렵, 마쓰다의 유이자 부채는 7000억 엔을 넘고 있었고 생산 대수는 최고 생산대수의 반으로 침체되어 있었다. 재무 전문가인 월리스 등 경영진은 보유 주식이나 불요불급한 시설 등의 자산을 매각했다. 또, 전통적으로 자금의 면에서 관용적으로 취급되어 온 개발 부문에 대해서도 어려운 비용 절감을 요구했다. 너무 늘어난 차종의 정리와 판매 채널의 간소화, 포드 차와의 플랫폼의 공통화를 발표하고 개발이나 생산, 구매까지의 전 업무의 디지털화로 경영 효율화를 도모하는 마쓰다 디지털 이노베이션도 도입했다. 1996년에는 단기간에 개발한 콤팩트카 데미오가 예상을 뛰어넘는 히트를 기록해 이듬해인 1997년 9월의 중간 결산에서는 5년만에 영업이익이 흑자로 돌아섰다. 1997년 11월, 부사장으로 판매가 전문인 제임스 밀러가 사장으로 승격된다. 사장인 밀러와 기술담당 임원 마틴 리치가 브랜드 재흥에 나서 임원이나 기술자, 해외 현지법인과의 논의를 거듭하는 가운데, 스포티함과 주행의 좋은 점을 전면에 내세울 생각을 했다. 새로운 브랜드 전략을 수행하기 위해서 이미 진행하고 있던 주요 차종의 개발을 백지화하고 차종명부터 내용까지 완전히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이 때문에 2000년 11월부터 2002년 봄까지 1년 반에 걸쳐 신형차가 투입되지 않는 이례적인 시기가 발생하게 되었다.[8]

2000년대[편집]

1999년 12월 신브랜드 전략 책정의 중심인물인 마크 필즈가 사장의 자리에 앉는다. 2000년 11월 스페인의 포드의 공장에서의 마쓰다차의 생산, 우지나 제2공장의 폐쇄, 조기 퇴직자 모집을 중심으로 하는 밀레니엄 플랜을 발표한다. 1,800명을 모집한 명예퇴직 우대 플랜에는 접수 시작과 동시에 신청이 쇄도해 바로 모집이 중단되었으며, 최종적으로 2,210명이 회사를 떠났다. 퇴직급여 채무를 일괄 상각한 영향도 있어, 이 해에는 1,552억 엔의 손실이 생겼다. 2001년 10월, 제35회 도쿄 모터쇼에서 신브랜드 메세지의 줌-줌(Zoom-Zoom)을 내세우는 것과 동시에 신생 마쓰다 브랜드의 중형 세단의 아텐자와 로터리 엔진을 탑재한 스포츠카 RX-8을 공개했다. 2002년 5월에 발매된 아텐자는 일본 국내외에서 높은 지지를 받아 생산 능력을 끌어올릴 정도의 히트작이 되었다. 신생 마쓰다를 상징하는 주력 차종인 아텐자, 데미오, 악셀라라고 하는 모델의 투입에 의해서 실적은 회복했다. 완전히 새로운 마쓰다 브랜드의 상품을 개발하는 작전은 성공을 거두었다. 2003년 8월, 전년 6월에 사장으로 취임한 루이스 부스를 대신해, 이마키 큐이치가 사장으로 취임한다. 일본인 사장으로서는 7년만이었다. 2007년 3월기에는 영업이익 1621억 엔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마쓰다의 실적은 포드아래에서 회복 기조로 변했지만 개발이나 생산 부문에서는 상품의 다양성과 비용 저감을 양립시키는 전략을 실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지고 있었다. 2005년 7월 마쓰다는 호조인 실적을 배경으로 장기전략 책정을 시작하여 10년 후인 2015년까지 모든 마쓰다차가 세계의 벤치마크가 되겠다는 목표를 설정하였다. 나아가 5년부터 10년 후까지의 모든 차종을 통합하여 기획·개발하는 일괄 기획, 일괄 기획으로 정한 차종의 주요 기술적 요소를 통일하고, 컴퓨터 시뮬레이션 기술을 이용해 개발의 효율화와 비용 절감을 목표로 하는 커먼 아키텍처, 동일 생산라인에서 복수의 차종을 변종변량으로 만드는 플렉시블 생산의 3가지 시스템에서 새로워진 기술을 모두 완성한다. 2006년 말에 포드에 계획의 설명을 하러 방문하여 부정적인 반응을 들으면서도 최종적으로 묵인에 가까운 형태로 승낙을 얻었다. 동시에 이것은 마쓰다가 실패해도 포드는 손을 내밀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해, 이때 엔진의 개발 방침을 나눈 것이 후의 제휴 해소의 계기가 되었다. 2007년에는 기술개발 비전 서스테이너블 줌-줌 선언을 발표했다. 달리는 즐거움과 환경안전성능의 양립을 내걸고, 2008년 6월에는 2015년까지 마쓰다차의 평균 연비를 30% 향상시키는 목표를 공표했다. 그러나 그 직후인 2008년 9월 리먼 쇼크가 생긴다. 세계 경제계·산업계는 혼란에 빠지고 자동차 산업도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경영이 악화된 포드는 같은 해 11월에 자금 조달을 위해 보유하는 마쓰다 주식의 일부를 매각했기 때문에, 출자 비율은 13%로 저하되었다. 이와 동시에 마쓰다의 부사장 야마우치 타카시가 사장으로 승격하고, 경영진을 마쓰다 출신자 주체로 쇄신했다. 리먼 쇼크 후에 엔 시세가 급격한 엔고에 흔들려 수출 비율이 높은 마쓰다는 큰 데미지를 받아 2009년 3월기에는 적자로 전락한다.[8]

2010년대[편집]

2010년 10월, 마쓰다는 신세대의 엔진, 변속기, 보디, 섀시라고 하는 일련의 신기술을 총칭한 스카이 액티브-테크놀로지를 발표한다. 2011년에는 신개발한 가솔린 엔진의 스카이액티브-G를 데미오에 탑재해 발매해 타사의 하이브리드 카와 동등의 연비 성능을 실현했다. 2012년에는 스카이 액티브 기술을 전면적으로 채용한 차종인 CX-5를 발매해, 디젤 엔진의 스카이액티브-D를 중심으로 대히트를 기록했다. 이 해에는 스카이 액티브 기술을 탑재한 차종의 호조인 매출을 배경으로 마쓰다는 흑자로 전환했다. 2013년에는 전무인 코카이 마사미치가 사장으로 승격했다. 스카이 액티브 기술과 디자인 테마를 적용한 차종은 인기를 끌었고 2015년에 발매한 4세대 로드스터는 국제 올해의 자동차 상을 받았다. 아울러 일본차로서는 첫 국제 올해의 디자인 상도 획득해 설립 이래 첫 2부문 동시 수상을 했다. 2016년 3월 결산에서는 과거 최고의 영업이익 2267억 엔을 기록하고 2018년 3월에는 판매 대수가 163만 대로 5년 연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2015년 5월, 마쓰다와 토요타는 제휴 확대를 향한 검토를 발표했다. 그러면서도 2008년 이후 단계적으로 마쓰다에 대한 지분 비율을 낮추던 포드는 같은 해 9월 말까지 보유하고 있던 모든 마쓰다 주식을 매각했고, 이로써 포드와 마쓰다의 36년간의 자본제휴는 종료된다. 2017년 8월 도요타와 마쓰다는 서로 500억 엔씩 지분을 갖는 업무자본 제휴에 합의하고 미국 생산합작회사 설립, 전기자동차 공동 기술개발 같은 제휴내용을 발표했다.[8][10]

판매 차종[편집]

세단[편집]

마쓰다3 세단[편집]

마쓰다3 세단(MAZDA3 SEDAN)

마쓰다가 제조·판매하는 C세그먼트의 승용차이다. 2003년부터 일본 국내에서 엑셀라의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던 차종의 후계 모델인데, 글로벌 모델네임인 마쓰다3를 세계 공통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2018년 11월 28일에 세계 최초 공개되었다. 같은 해의 로스앤젤레스 오토쇼 및 다음 해의 도쿄 오토 살롱에서 공개되어 2019년 5월 24일에 일본내 판매를 개시했다. 악셀라의 라인업을 답습하고 있지만 그때까지 스포츠 해치백으로 판매되고 있던 모델은 패스트백이다. 주행 성능 및 승차감을 향상시킨 신세대 차량 구조 기술 스카이 액티브 비클 아키텍쳐(SKYACTIV-VEHICLE ARCHITECTURE)를 처음으로 전면 적용해 인간이 가지는 밸런스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것을 추구했다. 시트, 바디, 섀시를 기본으로부터 철저하게 개선했다.[11] 일본에서 판매되는 파워트레인은 크게 나누어 4 종류이이다. 3세대 액셀러에도 사용된 1.5 L직렬 4기통 직분사 DOHC 가솔린 엔진 스카이액티브-G 1.5(P5-VPS), CX-3것과 같은 2.0 L직렬 4기통 직분사 DOHC 가솔린 엔진 스카이액티브-G 2.0(PE-VPS), 마찬가지로 CX-3에 탑재되고 있는 것과 같은 직렬 4기통 직분사 DOHC 디젤 터보 스카이액티브-D 1.8(S8-DPTS)와 불꽃 점화 제어 압축 착화(SPCCI)를 실용화한 가솔린 엔진인 스카이액티브-X 2.0(HF-VPH)도 라인업 되어있다. 토시바2차 전지인 SCiB를 적용한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 엠하이브리드(MHybrid)를 채택하기로 되어 있지만, 마일드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뒤늦게 2019년 12월 5일에 투입되었다. 덧붙여 엠하이브리드는 자동변속차 뿐만 아니라, 수동변속차에도 탑재된다.[12]

마쓰다6 세단[편집]

마쓰다6 세단(MAZDA6 SEDAN)

일본의 자동차 메이커인 마쓰다가 제조·판매하는 중형 승용차이다. 카펠라 (Mazda 626) 의 사실상의 후계차로서 발매된 미들 사이즈(D세그먼트)의 세단 및 스테이션 왜건으로 판매 당시에는 5 도어 해치백의 설정도 있었다. 초대모델 개발초기부터 모델네임에 숫자표기를 사용하던 일본 국외시장에서는 마쓰다6라는 차명을 설정한 한편, 당시 모든 일본국내용 차종에 애칭을 부여했던 일본국내시장에서는 이탈리아어로 주목을 의미하는 아텐지오네(Attenzione)에서 유래한 조어인 아텐자라는 차명을 설정하였다. 2002년에 초대 모델이 되는 GG/GY계, 2008에 2세대 모델이 되는 GH계를 발매해, 2012년에 3대째 모델이 되는 GJ계를 발표했다. 이후 정기적으로 일부 개량을 계속하면서 판매가 계속되고 있다. 3세대는 마쓰다의 플래그십 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13] 2019년 5월, 마쓰다는 소형차(C세그먼트)의 액셀러의 전면 개량에 맞추어 일본 국내용의 차명도 일본 국외 시장과 같은 마쓰다3로 변경했다. 이후 다른 차종에 대해서도 일본 국내외에서 같은 차명을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방침을 제시했다. 2019년 7월 4일에 GJ계의 일부 개량을 했을 때 아텐자에 대해서도 일본 국외용과 같은 마쓰다6로 차명을 변경했다. 차명 변경에 대해서, 마쓰다의 후쿠하라 카즈유키 상무 집행 임원은 마쓰다라고 하는 브랜드로 선택받는 것이 목적으로 CX-3 나 CX-8의 등장으로 애칭이 아니어도 저항이 없는 고객도 많다라고 하고 있어 마쓰다의 브랜드 가치 향상을 목표로 한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14]

SUV[편집]

CX-3[편집]

CX-3

마쓰다가 제조·판매하고 있는 스카이액티브 테크놀러지와 디자인 테마를 전면 채용한 신세대 차종의 제5탄인 컴팩트 크로스오버 SUV이다. 엔진은 디젤 엔진과 가솔린 엔진의 두 종류가 있다. 일본 출시 초기에는 스카이액티브-D 1.5만 설정되었으나, 2017년 6월부터 해외시장에는 이미 탑재되어 있던 2.0L의 스카이액티브-G 2.0가 2020년 5월에는 1.5L의 스카이액티브-G 1.5가 순차적으로 설정되었다. 스카이액티브-G 2.0 탑재차가 설정될 때까지는 일본에서 판매되는 승용차 중 유일한 디젤엔진 전용차였다.또한 2018년 5월의 대폭 개량으로 디젤 엔진이 1.8L의 스카이액티브-D 1.8로 교체되었다. 일본사양에서는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1.5L 가솔린엔진의 스카이액티브-G 1.5, 2.0L 가솔린엔진의 스카이액티브-G 2.0, 1.8L 디젤엔진의 스카이액티브-D 1.8의 3종류가 설정된다. 1.5L 가솔린차는 P5-VPS형, 2.0L 가솔린차는 PE-VPS형, 1.8L 디젤차는 S8-DPTS형이 각각 탑재된다.[15]

CX-5[편집]

CX-5

마쓰다가 제조·판매하는 크로스오버 SUV형의 승용차이다. 엔진은 액셀라에 탑재된 PE-VPS형 2.0L 가솔린 스카이액티브-G 2.0에 덧붙여 신개발 SH-VPTS형 2.2L 디젤 터보 스카이액티브-D 2.2가 탑재되어 있다. 후자는 지금까지의 상식에 반하여 압축비를 데미오의 가솔린 스카이액티브-G와 같은 14:1까지 낮춰 디젤 엔진 특유의 토크의 강한 파워를 희생하지 않고 고회전화하고, 저압축비로 인한 경량화, 그리고 배출가스 후처리의 소형화(스카이액티브-D2.2)에 성공한다. JC08 모드로 18.6 km/L의 뛰어난 저연비와 4.0 LV8 가솔린 엔진차 같은 수준의 최대 토크 420 N·m가 양립하고 있다. 2013년 9월에는 PY-VPS형 2.5L 가솔린 스카이액티브-G 2.5가 추가되었다. 변속기는 일본 사양은 6단 자동변속 스캐이액티브-드라이브만 설정하지만, 일본 국외 사양에는 6단 수동변속 스카이액티브-MT도 준비되어 있다. 전 차량에 마쓰다의 독자적인 아이들링 스톱 시스템 아이-스탑이 표준 장비되고 있다. 또한 본 차종에 맞추어 개발된 디젤차용 아이-스탑은 약 0.40초 이내 (휘발유차용은 약 0.35초 이내) 순간 재시동을 실현하고 있다.[16]

CX-8[편집]

CX-8

스카이액티브 테크놀러지와 디자인 테마를 전면 적용한 마쓰다의 일본 국내용 크로스오버 SUV 최상위 모델로서 개발되었다. 엔진은 발매 당초 SH-VPTS형 2.2 L직렬 4 기통 디젤 터보 스카이액티브-D 2.2만을 탑재했다. 단부 에그 쉐이프 피스톤, 초고응답 멀티홀 피에조 인젝터, 가변 지오메트리 터보차저 등의 신기술로 2세대 CX-5에 탑재된 동형식 엔진과 비교해 최고 출력으로 +11kW(+15 PS)의 140kW(190 PS), 최대 토크로 +30 N·m(+3.1 kgf·m)의 450 N·m(+4.5)로 향상하고 있다. 또, 2018년 10월에는, PY-VPS형 2.5 L직렬 4기통 자연 흡기식 스카이액티브-G2.5와 PY-VPTS형 2.5 L직렬 4기통 터보 스카이액티브-G2.5T의 2종의 가솔린 엔진을 추가해 합계 3 종류에서 선택 가능해졌다. 변속기는 6속 자동변속의 스카이액티브-드라이브(6EC-AT)만이 설정된다. 서스펜션은 CX-9의 서스펜션 기본 구조를 바탕으로 감쇠력 등을 전용으로 조정했다. 리바운드 스프링을 프론트 댐퍼에 채용하여 코너링 시의 안정성을 향상시켰다. 2열 시트는 좌우 분할 캡틴 시트와 벤치 시트를 설정했다. XDL 패키지 전용 캡틴 시트에는 중앙에 충전용 USB 단자가 달린 대형 콘솔 박스가 장착돼 있다. 마쓰다의 선진 안전기술 아이 액티브 센스(i-ACTIV SENSE)를 표준 장비하고 360° 뷰 모니터, 액티브 보닛의 사용 등에 의해 사고 위험 저감부터 충돌 피해 경감까지 모든 영역에서 높은 안전성을 추구하고 있다.[17]

CX-30[편집]

CX-30

마쓰다가 제조·판매하는 크로스오버 SUV이다. 마쓰다3에 이은 마쓰다의 신세대 라인의 제2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SUV로 2019년 3월 5일에 세계 최초 공개되고 3월 7일부터 개최된 제네바 모터쇼에서 일반 공개되었다. 2019년 10월 24일에 일본 내에서 판매가 개시되었다. 일본 시장과 유럽 시장을 중심으로 글로벌하게 전개되고 있다.[18] 마쓰다의 일본시장용 SUV 라인업에는 큰 모델부터 CX-8·CX-5·CX-3의 3종이 있지만 CX-3는 컴팩트카의 마쓰다2(구 데미오)와 구조재를 공유하고 있어, 짐칸이나 뒷좌석이 좁다는 의견이 있었다. 반대로 CX-5라면 너무 커서 운전이 무섭다는 소리가 있었기 때문에 중간으로 개발된 모델이다. 마쓰다3와 같은 플랫폼을 이용하면서도, 드라이버즈카로서의 디자인을 의식해 패스트백으로 한 마쓰다3에 대해 전후석 탑승자의 머리 위 공간을 여유롭게 하기 위해 루프의 높이를 앞뒤로 갖추고 일본의 기계식 입체 주차장에 넣을 수 있는 전체 높이 1,540mm로 사용성을 향상시켰다. 파워트레인도 기본적으로 마쓰다3와 공통으로 2.0L 직렬 4기통 직분사 가솔린 엔진 스카이액티브-G와 1.8L 직렬 4기통 직분사 디젤 엔진 스카이액티브-D에 가세해 신개발의 2.0L 직렬 4기통 직분사 가솔린 엔진 스카이액티브-X를 탑재한다.[19]

MX-30
마쓰다6 왜건(MAZDA6 WAGON)
마쓰다3 패스트백(MAZDA3 FASTBACK)
마쓰다2(MAZDA2)
플레어 크로스오버(FLAIR CROSSOVER)
플레어 왜건(FLAIR WAGON)
플레어(FLAIR)
캐롤(CAROL)
스크럼 왜건(SCRUM WAGON)

MX-30[편집]

마쓰다가 제조·판매하는 크로스오버 SUV이다. 마쓰다3, CX-30에 뒤잇는, 마쓰다의 신세대 상품군의 제3탄으로서 자리 매김되고 있는 차종으로, 마쓰다 최초의 양산 전기자동차(EV)로서 기획되었다. 2019년 10월 23일에 세계 최초 공개되어 유럽 시장에서의 선행 예약을 개시하고 10월 25일부터 개최된 도쿄 모터쇼에서 일반 공개되었다.[20] 한편, 일본 판매 모델은 2020년 10월 8일에 발표되어 24V마일드 하이브리드 엠하이브리드와 2.0 L직렬 4 기통 DOHC 엔진 스카이액티브-G를 조합해 e-스카이액티브G를 탑재한 모델을 판매한다. 전기자동차 모델은 임대차 계약의 형태로 판매를 예정하고 있다. 판매 방법의 차이에 대해서, 개발자인 타케우치 토미코는 MX-30를 마쓰다에서 전동화 기술의 베이스 모델이라고 평가해 유럽에서 요구가 높아지는 전기자동차이며, 일본내에서는 많은 소비자가 선택하기 쉬운 마일드 하이브리드 엔진을 사용했다고 한다. 플랫폼 등의 주요 부분은 CX-30과 공통화되어 전장과 전폭은 동일하지만 쿠페풍의 디자인으로서 후방을 크게 눕힌 디자인으로 하고 있다. 전개방법에도 특색이 있어 파워트레인의 구동방법마다 단일차종으로 하여 제조사 옵션 선택을 세세하게 설정하여 가격조정을 용이하게 하고 고객의 수요에도 대응할 수 있다고 한다.[21]

왜건[편집]

마쓰다6 왜건[편집]

마쓰다6의 스테이션 왜건 모델이다. 2019년 8월의 일부 개량으로 아텐자로부터 해외용 명칭과 거의 같은 마쓰다6로 개칭했다. 중국에서는 아텐자의 이름을 사용한다. 마쓰다6 세단보다, 휠 베이스를 80mm 단축해 유려한 스타일링과 높은 적재성을 양립시키고 있다. 일본과 유럽에서는, 2.0 L와 2.5 L의 가솔린, 2.2 L디젤 터보의 합계 3종을 설정했다. 북미 시장에서는 판매되지 않는다. 중국·러시아·베트남에서 제조한다.[22]

해치백[편집]

마쓰다3 패스트백[편집]

패밀리아와 악셀라의 계보를 잇는 C세그먼트 클래스의 해치백이다. 앞 모델에 해당하는 악셀라에서는 스포츠로 불렀지만 차명을 타국 전용과 같이 마쓰다3로 보디 타입을 패스트 백으로 개명했다.[22]

마쓰다2[편집]

마쓰다가 제조·판매하는 콤팩트카이다. 북미에서는 서브컴팩트카로 유럽에서는 B세그먼트로 각각 분류돼 있다. 일본 국내시장용에서는 당시 데미오라는 차명으로 판매되고 있었지만 2019년 9월 12일부터 발매되는 3세대의 일부 개량모델부터 일본 국내용 전용 애칭을 폐지하고, 글로벌하게 마쓰다2라는 명칭으로 판매되고 있다. 스페인어로 '나의'(of mine)을 의미하는 'de Mio'를 기반으로 한 데미오라는 애칭을 단 차로서는 1996년에 탄생한 초대 모델(DW계)이 있다. 이는 기존 컴포넌트를 활용하여 비교적 단기간에 설계·개발된 콤팩트 스테이션 왜건이었다. 오세아니아를 대상으로는 마쓰다 121의 명칭으로 판매되었으며, 데미오의 애칭은 당초부터 일본 국내시장용이었다. 그 후, 2002년에 발매된 2세대 모델(DY계)에서는 초대 데미오/마쓰다 121의 컴팩트 스테이션 왜건이라는 방향성은 유지하면서, 당시 제휴관계에 있던 포드와 공유의 DY플랫폼을 사용한 세계 전략차가 되어, 일본 국내 시장 전용에는 데미오의 애칭을 계승하면서, 글로벌 전용 차명으로서는 새롭게 마쓰다+차격을 나타내는 한자릿수 번호의 모델명을 도입하게 되어 마쓰다2의 명칭이 주어지게 되었다. 게다가 2007년에 발매된 차세대 모델에서는 유럽 시장을 의식한 컴팩트 해치백으로 컨셉트를 변화시켜 2014년 발매 모델에서는 그 방향을 한층 심화시켰다.[23]

경차[편집]

플레어 크로스오버[편집]

스즈키와의 제휴로 제작된 경차 차종으로 플레어 왜건, 플레어에 뒤잇는, 마쓰다의 경미니밴 브랜드인 플레어 시리즈의 제3탄으로 자리 매김힌다. 베이스차는 2013년 12월 24일 스즈키에서 공식 발표된 허슬러로 개성적인 디자인과 경왜건의 뛰어난 성능을 겸비한 완전히 새로운 타입의 경SUV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마쓰다의 경크로스오버 SUV로서는 2005년에 판매 종료된 라퓨타 이래로, 경SUV 모델로서도 AZ-오프로드 이래의 신차종이다. 라퓨타, AZ-오프로드와 플레어 크로스오버의 구분은 케이, 짐니와 허슬러의 관계와 동일하지만 AZ-오프로드는 2014년 3월 판매를 종료했다.[24]

플레어 왜건[편집]

플레어 왜건은 마쓰다가 판매하는 경슈퍼 하이트왜건이다. 2008년 9월에 생산을 종료한 스피아노(2002년 2월 15일 발매, 알트라판 베이스) 이래의 신형 경차로서 2012년 6월 26일에 판매를 개시했다.[25] 마쓰다가 발매하는 다른 경차와 같이 스즈키로부터의 OEM 차종이다. 플레어왜건에서는 스크럼이나 AZ-오프로드와 마찬가지로 전용 프론트페이스를 주는 등의 차별화는 하지 않고 엠블럼류 등의 작은 변경에 그쳤다. 또 3대 프리머시인 CX-5와 마찬가지로 리어에는 마쓰다 로고 엠블럼이 장착되지 않고 왼쪽에 차명 엠블럼이 장착돼 있다. 초대 모델에 관해서는 LS와 IS리미티드에 장착하고 있던 휠 캡은 팔레트나 루크스로 차이가 났지만, 4세대 왜건 R이나 AZ-왜건과 공통된 것이었다. XS와 TS에 장착하고 있던 휠 캡은 팔레트와 같은 것이었다.[26]

플레어[편집]

플레어는 마쓰다가 판매하는 경톨 왜건이다. 마쓰다는 1994년 10월에 스즈키로부터 왜건 R의 OEM 공급을 받아 경톨 왜건의 AZ-왜건을 발매했다. 이후, 3번의 풀 모델 체인지를 실시하면서 18년에 걸쳐 판매되어 왔다. 그리고, OEM원의 왜건 R이 2012년 9월에 4번째의 풀 모델 체인지가 행해진 것을 두고, 약 1개월 반 늦게 풀 모델 체인지했을 때, 차종명을 플레어로 개명했다. 이로써 그해 6월 출시한 플레어왜건(팔레트스페시아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과는 시리즈 차종 관계가 됐다. 이후, 마쓰다의 경톨 왜건은 플레어 시리즈의 이름이 붙는다.[27]

캐롤[편집]

캐롤은 마쓰다가 판매하는 경차이다. 초대 모델은 마쓰다의 전신인 동양 공업에 의해 1962년에 발매된 360 cc차로 경차 최초의 4 도어 세단 타입의 모델이 된 것도 알려져 1970년까지 생산되었다. 후계에 샹테를 등장시키도 판매 부진으로 1976년에 판매 종료했다. 파생형으로 배기량이 큰 엔진을 단 소형 승용차 규격의 캐롤 600도 판매됐다. 후에 이는 주력 대중차 패밀리아로 발전하였다. 그 후, 차명의 긴 중단 기간이 있었지만, 1989년에 마쓰다가 설립한 경차 중심의 오토잠 브랜드의 중심 차종으로서 부활했다. 2세대 이후는 스즈키 알토가 기본 구조의 베이스차가 되어 있어 4세대 이후는 알토의 완전한 OEM차가 되고 있다.[28]

스크럼 왜건[편집]

스크럼은 마쓰다가 판매하는 경차 규격의 캡 오버형차로, 5 넘버 등록의 승용차와 4 넘버 등록의 상용 밴 및 트럭이다. 이전에는 오토잠 브랜드였다. 포터캡이라는 경트럭을 만들고 있었지만, 설계가 낡아 차기 모델을 만들 예정이 없었다. 그 때문에 1989년에 등장한 당시부터 스즈키의 경차의 OEM으로, 승용 왜건 타입, 상용 밴 타입은 스즈키 에브리, 상용 트럭 타입은 스즈키 캐리가 원래 차량이다. 미츠비시 자동차공업이 제조하고 있던 닛산·NV100 클리퍼/NV100 클리퍼 리오/NT100 클리퍼가 2013년 12월에, 그 종차이기도 한 미니 택시 및 타운 박스가 2014년 2월에, 풀 모델 체인지하고 있지만, 그 무렵 스즈키로부터의 OEM으로 변경했기 때문에 일본내의 자동차 시장에서는 드문 4형제 차종이 되었다. 또한, 역대 프론트 그릴과 범퍼는 왜건 밴은 에브리, 트럭은 캐리와 동일하다.[29]

기술[편집]

로터리 엔진[편집]

마쓰다는 로터리 엔진의 양산화에 성공한 브랜드였지만, 2012년 6월에 RX-8의 생산 완료 후부터 로터리 엔진 탑재차의 생산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30] 2013년에는 신형 로터리 엔진을 발전기(레인지 익스텐더)로서 탑재한 전기자동차의 시작차 마쓰다 RE 레인지 익스텐더를 공개했다.[31] 2015년 10월에는 차세대 로터리 엔진 SKYACTIV-R를 탑재한 컨셉트카 RX-비젼을 발표했다.[32] 2018년 1월에 도요타자동차가 발표한 모빌리티 서비스화 (MaaS, Mobility as a Service) 전용 전기자동차의 컨셉트카 e-팔레트 컨셉에서는 시판화를 위해서 마쓰다가 기술 파트너로서 참가해 로터리 엔진이 레인지 익스텐더로 채용될 예정이라고 밝혔다.[33][34]

스카이액티브[편집]

2011년 자동차를 구성하는 제반 요소를 모두 쇄신하여 스카이액티브 테크놀러지(SKYACTIV TECHNOLOGY)를 발표하였다. 스카이액티브 테크놀러지를 전면적으로 탑재한 차량은 생산 분야의 개혁이 낳은 제조 혁신과 병행하여 생산되었다. 1달러(77엔, 2012년 기준)로 일본내로부터 수출해 모든 지역에 이익을 만들 수 있는 비용 경쟁력을 가진다.[35] 스카이액티브 기술개발에는 모델 베이스 개발이라 불리는 방법이 이용되고 있으며, 이 방법을 사용한 개발력은 업계 제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36] 종래의 자동차 개발에서는 엔진, 변속기, 플랫폼이라고 하는 주요한 컴포넌트의 설계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개개의 이상적인 구조·설계를 순수하게 추구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스카이 액티브 테크놀로지는 자동차를 구성하는 요소 기술을 포괄적이고 동시에 쇄신함으로써, 차량 전체의 최적화를 도모했다고 하는 점에 특징이 있다.[37] 2017년 8월, 압축 착화에 의한 연소 방식을 세계 최초로 실용화한 가솔린 엔진 스카이액티브-X를 발표해 2019년 11월에 마쓰다3에 탑재되어 발매되었다.[38]

  • 가솔린 엔진 : SKYACTIV-G
  • 디젤 엔진 : SKYACTIV-D
  • 자동변속기 : SKYACTIV-DRIVE
  • 매뉴얼 트랜스미션 : SKYACTIV-MT
  • 바디 : SKYACTIV-BODY
  • 섀시 : SKYACTIV-CHASSIS

마쓰다커넥트[편집]

마쓰다가 개발한 카 내비게이션 시스템 및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다. 일본, 미국, 캐나다, 멕시코를 제외한 지역에서의 명칭은 마쓰다 커넥트(MZD Connect)이다. 2013년 11월 발매하는 3대째 악셀라에 처음으로 탑재되었다. 일부의 그레이드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마쓰다차에 탑재되고 있다. 헤즈업 콕핏의 개념 하에 센터 디스플레이, 액티브 드라이빙 디스플레이(헤드업 디스플레이), 커맨더 컨트롤로 구성되어 운전 시 부주의를 최소화하도록 레이아웃 되어 있다. 내비게이션 기능은 샵 옵션으로 판매되는 SD메모리 카드를 별도로 구매해 슬롯에 꽂기만 하면 사용이 가능하다. SD메모리 카드의 지도 데이터는 3년간 무료로 갱신할 수 있으며 갱신 툴을 이용하면 자택에서도 업데이트가 가능하다. 스마트폰과 연결하여 핸즈프리 통화나 SMS를 읽는 것 외에 트위터페이스북과 같은 SNS, 대응하는 인터넷 라디오도 이용할 수 있다. 어플리케이션의 추가나 애플이 제공하는 카플레이, 구글이 제공하는 안드로이드 오토의 지원도 발표되었지만, 카플레이와 안드로이드 오토의 지원은 일본에서 판매하고 있는 모델인 CX-5(2세대, 2019년 모델)와 CX-8(2019년 모델), 마쓰다 3(2019년 모델)뿐이며, 다른 모델은 2019년 6월 시점에서는 지원하고 있지 않다.[8]

아이-액티브센스[편집]

아이-액티브센스(i-ACTIVSENSE)는 위험한 상황에 빠진 후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 자체를 회피한다는 마쓰다의 안전사상을 담은 기술이다. 다양한 운전 환경에서, 드라이버의 인지·판단·조작을 서포트해, 사고의 리스크를 최소한으로 억제한다. 자동차의 크기에 사로잡히지 않고, 선진 안전 기술을 컴팩트 카로부터 하이 엔드 모델까지의 전그레이드에 표준 장비했다.

  • 주행 시 안전 지원
  1. 어드밴스트 스마트 시티 브레이크 서포트(어드밴스트 SCBS): 주행 중 충돌을 회피할 수 있도록 하고 충돌 시 피해 경감을 도모한다.
  2. 브레이크와 액셀 페달을 잘못 밟음으로 인한 급발진을 억제한다.
  3. 스마트 시티 브레이크 서포트 : 후퇴 시에 자동차나 장애물을 감지하여 충돌 시의 피해 경감을 꾀한다.
  4. AT오발진억제제어 : 페달 착오로 인한 급후퇴를 억제한다.
  5. 스마트 브레이크 서포트 : 충돌 위험을 감지하여 충돌 시의 피해 경감을 도모하고 후퇴 시 좌우로 접근한 차량을 감지하여 충돌 시 피해 경감을 돕는다.
  • 발진 및 후퇴 시 안전 지원
  1. 리어 파킹 센서 : 후방의 장애물을 감지하고 경고음으로 주의를 촉구한다.
  2. 360° 뷰 모니터+프론트 파킹 센서 : 육안으로는 직접 확인하기 어려운 지역의 안전 확인을 지원한다.
  3. 리어 크로스 트래픽 경보(RCTA) : 후퇴 시에 접근 차량을 감지하여 운전자에게 경고하고 안전 확인을 지원한다.
  • 야간 안전운전 지원
  1. 어댑티브 프론트 라이팅 시스템 : 야간 커브길 주행 시에 진행 방향의 시야를 확보한다.
  2. 하이빔 컨트롤 시스템 (HBC) : 하이빔, 로우빔을 자동적으로 전환하여 밤에도 보기 좋은 전방 시야를 만든다.
  3. 어댑티브 LED 헤드라이트(ALH) : 헤드램프의 조사 범위와 밝기를 자동으로 변화시켜 밤에도 보기 좋은 전방 시야를 만든다.
  • 운전자에게 위험 인지 촉진
  1. 전측 접근 차량 검지(FCTA) : 좌우 전방의 사각 지대에서 접근하는 차량을 감지하여 주의를 촉구한다.
  2. 블라인드 스폿 모니터링(BSM) : 인접 차선 측방 및 후방에서 접근하는 차량을 감지하여 위험 회피를 촉구한다.
  3. 레인키프 어시스트 시스템(LAS) : 차선에 따른 안전 주행을 돕는다.
  4. 차선이탈경보시스템(LDWS) : 차선의 돌출 상황을 감지하고 운전자에게 주의를 촉구한다.
  • 주행 시 운전 부담 경감
  1. 데이타임 러닝 라이트(DRL) : 주간 주행 시 피시인성을 높인다.
  2. 크루징&트래픽 서포트(CTS) : 추종 주행과 스티어링 어시스트로 정체 시 운전 피로 경감을 지원한다.
  3. 드라이버 모니터링 : 운전자의 피로나 졸음을 검지하고 휴식을 촉진한다.
  4. 드라이버 어텐션 경보(DAA) : 운전자와 자동차의 상태를 모니터하고 적당한 휴식을 촉구한다.
  5. 교통표지인식시스템(TSR) : 교통 표지를 보지 못해 일어나는 위험을 막는다.
  6. 마쓰다 레이더 크루즈 컨트롤(MRCC) : 장거리 주행 시 등의 운전자 부담을 경감한다.[39]

관련사[편집]

토요타[편집]

토요타(トヨタ自動車株式会社, Toyota Motor Company, 丰田汽车)
이스즈(いすゞ自動車, Isuzu Motors Limited)
스즈키(Suzuki)

2010년 3월, 하이브리드 기술의 라이센스 제공에 합의하여, 2013년 11월에는 스카이액티브-G와 THS-Ⅱ를 조합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액셀러에 탑재하여 발매하였다.[40] 2012년 11월에는 건설 중의 멕시코 공장에서 제조할 예정의 마쓰다2를 베이스로 한 소형차를 토요타에 OEM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2015년에 사이언iA로서 발매되어 2016년에는 사이언 브랜드의 폐지로 토요타·야리스 iA로 이름이 바뀌었다. 2015년 5월에는 중장기적인 업무 제휴를 위해 기본 합의한 것을 발표했다.[6] 2017년 8월에는 업무자본제휴를 발표하여 주식을 상호 보유하기로 합의하였다. 아울러 미국 합작공장 설립, 전기자동차·커넥티드카·안전기술 협업, 상품보완 확충을 추진하기로 했다. 2017년 10월에는 덴소를 추가한 3개사에서 전기자동차 공동개발 거점으로서 EV C.A. 스피릿이 설립되었다. 2018년 6월에는 토요타의 모빌리티 서비스화 전용 전기자동차의 컨셉카 e-팔레트 컨셉의 시판화를 향해서 마쓰다가 기술 파트너로서 참가하는 것이 발표되었다. 같은 해 6월에는 토요타로부터 프로 박스, 석시드의 OEM 공급을 받아 4세대 패밀리아 밴으로 발매하고, 또 2019년 4월에는 토요타로부터 하이 에이스의 OEM 공급을 받아 3대째 봉고 브로니로 발매되었다. 같은 해 11월에는 절반 출자로 북미의 신공장 마쓰다·토요타·매뉴팩쳐링 USA의 건설에 착공했다.[8][41]

이스즈[편집]

마쓰다는 이스즈의 상용차인 엘프의 OEM 공급을 받아 타이탄으로 판매했다.[42] 2016년에는 이스즈가 개발한 차세대 픽업 트럭을 마쓰다에 OEM 공급하기로 합의했다.[43] 이전에는 이스즈로부터 디젤 엔진의 공급을 받아 타이탄이나 패밀리아에 탑재하고 있었다.[8]

스즈키[편집]

마쓰다는 1989년부터 스즈키의 경차의 OEM 공급을 받아 각각 캐롤, 스크럼, 플레어, 플레어 왜건, 플레어 크로스오버로 판매하고 있다. 이전에는, 스즈키로부터 엔진과 플랫폼을 공급받아 캐롤과 AZ-1을 제조하고 있었다. 또 스즈키의 보통 자동차인 에스쿠도의 OEM을 공급받아 프로시드 레반떼로 판매하고 있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소형 MPV 엘티가의 OEM 공급을 받아 VX-1의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었다.[44]

생산 공장[편집]

  • 본사 공장(히로시마현 아키군, 히로시마시 미나미구)
  1. 본사(1931년 3월 조업) : 가솔린 레시프로 엔진, 자동차용 수동 변속기
  2. 우지나(1964년 12월 조업) : 가솔린 레시프로 엔진, 디젤 엔진
  3. 우지나 제1공장(통칭 U1·1966년 11월 조업) : CX-3, CX-30, CX-5, CX-9, 로드스터, 봉고, 피아트·124 스파이더, 아발트·124 스파이더
  4. 우지나 제2공장 (통칭 U2·1972년 12월 조업) : CX-5
  • 3차 사업소(히로시마현 미요시·1974년 5월 조업) : 가솔린 레시프로 엔진
  • 호후 공장 (야마구치현 호후 시)
  1. 중관 (1981년 12월 조업) : 자동차용 수동변속기, 자동변속기
  2. 호후 제1공장(통칭 H1·1982년 9월 조업) : MAZDA2, MAZDA3, CX-3
  3. 호후 제2공장(통칭 H2·1992년 2월 조업) : MAZDA6, CX-5
  • 프레스공업(미도공장) : 봉고트럭[8]

각주[편집]

  1. 「マツダ ロードスター」が累計生産100万台を達成〉, 《마쓰다 공식 뉴스》, 2016-04-25
  2. 「マツダ 787B」がルマン優勝から20年ぶりにサルト・サーキットを走行〉, 《마쓰다 공식 뉴스》, 2011-05-20
  3. 椿山和雄, 〈マツダ、金井誠太会長の基調講演「マツダのブランド価値経営」〉, 《카 워치》, 2015-04-21
  4. 池原照雄, 〈【マツダ アテンザ 新型発売】マツダにとっての「プレミアム」とは…山内社長〉, 《레스폰스》, 2012-11-20
  5. 明豊, 〈「マツダ再生」フォードの果たした評価難しく〉, 《뉴스위치》, 2016-01-28
  6. 6.0 6.1 トヨタとマツダ、業務提携に向け基本合意〉, 《도요타 공식 뉴스》, 2015-05-13
  7. トヨタ・マツダ、500億円相互出資を発表〉, 《일본경제신문》, 2017-08-04
  8. 8.00 8.01 8.02 8.03 8.04 8.05 8.06 8.07 8.08 8.09 8.10 8.11 8.12 8.13 8.14 8.15 マツダ 위키백과 - https://ja.wikipedia.org/wiki/%E3%83%9E%E3%83%84%E3%83%80
  9. 【マツダ100年 車づくりと地域】第3部 激動の経営<2>防府進出 10年要し念願の組立工場〉, 《중국신문 디지털》, 2020-01-28
  10. トヨタ、マツダ資本提携合意 米で30万台規模の生産合弁、EVを共同開発〉, 《일간자동차신문전자판》, 2017-08-05
  11. 次世代車両構造技術「SKYACTIV-VEHICLE ARCHITECTURE」とは?〉, 《마쓰다 공식 블로그》, 2019-10-22
  12. マツダ・MAZDA3 위키백과 - https://ja.wikipedia.org/wiki/%E3%83%9E%E3%83%84%E3%83%80%E3%83%BBMAZDA3
  13. 新世代フラッグシップモデル、新型「マツダ アテンザ」を発売〉, 《마쓰다 공식 뉴스》, 2012-11-20
  14. マツダ・MAZDA6 위키백과 - https://ja.wikipedia.org/wiki/%E3%83%9E%E3%83%84%E3%83%80%E3%83%BBMAZDA6
  15. マツダ・CX-3 위키백과 - https://ja.wikipedia.org/wiki/%E3%83%9E%E3%83%84%E3%83%80%E3%83%BBCX-3
  16. マツダ・CX-5 위키백과 - https://ja.wikipedia.org/wiki/%E3%83%9E%E3%83%84%E3%83%80%E3%83%BBCX-5
  17. マツダ・CX-8 위키백과 - https://ja.wikipedia.org/wiki/%E3%83%9E%E3%83%84%E3%83%80%E3%83%BBCX-8
  18. 遠藤正賢, 〈初めてのSUVでも乗りやすいよう徹底的にこだわった! マツダCX-30のチーフデザイナーが込めた思い (1/3ページ)〉, 《웹 카탑》, 2019-10-26
  19. マツダ・CX-30 위키백과 - https://ja.wikipedia.org/wiki/%E3%83%9E%E3%83%84%E3%83%80%E3%83%BBCX-30
  20. マツダ、東京モーターショーにて初の量産EV「MAZDA MX-30」を世界初公開〉, 《마쓰다 공식 뉴스》, 2019-10-23
  21. マツダ・MX-30 위키백과 - https://ja.wikipedia.org/wiki/%E3%83%9E%E3%83%84%E3%83%80%E3%83%BBMX-30
  22. 22.0 22.1 マツダの車種一覧 위키백과 - https://ja.wikipedia.org/wiki/%E3%83%9E%E3%83%84%E3%83%80%E3%81%AE%E8%BB%8A%E7%A8%AE%E4%B8%80%E8%A6%A7
  23. マツダ・MAZDA2 위키백과 - https://ja.wikipedia.org/wiki/%E3%83%9E%E3%83%84%E3%83%80%E3%83%BBMAZDA2
  24. マツダ・フレアクロスオーバー 위키백과 - https://ja.wikipedia.org/wiki/%E3%83%9E%E3%83%84%E3%83%80%E3%83%BB%E3%83%95%E3%83%AC%E3%82%A2%E3%82%AF%E3%83%AD%E3%82%B9%E3%82%AA%E3%83%BC%E3%83%90%E3%83%BC
  25. 新型「マツダ フレアワゴン」を発売〉, 《마쓰다 공식 뉴스》, 2012-06-26
  26. マツダ・フレアワゴン 위키백과 - https://ja.wikipedia.org/wiki/%E3%83%9E%E3%83%84%E3%83%80%E3%83%BB%E3%83%95%E3%83%AC%E3%82%A2%E3%83%AF%E3%82%B4%E3%83%B3
  27. マツダ・フレア 위키백과 - https://ja.wikipedia.org/wiki/%E3%83%9E%E3%83%84%E3%83%80%E3%83%BB%E3%83%95%E3%83%AC%E3%82%A2
  28. マツダ・キャロル 위키백과 - https://ja.wikipedia.org/wiki/%E3%83%9E%E3%83%84%E3%83%80%E3%83%BB%E3%82%AD%E3%83%A3%E3%83%AD%E3%83%AB
  29. マツダ・スクラム 위키백과 - https://ja.wikipedia.org/wiki/%E3%83%9E%E3%83%84%E3%83%80%E3%83%BB%E3%82%B9%E3%82%AF%E3%83%A9%E3%83%A0
  30. 「マツダ RX-8 SPIRIT R」を来月発売〉, 《마쓰다 공식 뉴스》, 2011-10-07
  31. 谷川 潔, 〈ロータリーエンジン発電で航続距離を2倍にした「マツダ RE レンジエクステンダー」〉, 《카 워치》, 2013-12-20
  32. マツダ、コンセプトモデル「Mazda RX-VISION」を世界初公開〉, 《마쓰다 공식 뉴스》, 2015-10-28
  33. トヨタ自動車、モビリティサービス専用EV“e-Palette Concept”をCESで発表〉, 《토요타 공식 뉴스》, 2018-01-08
  34. 谷川 潔, 〈トヨタ、モビリティ・カンパニーの鍵を握る「モビリティサービス・プラットフォーム(MSPF)」〉, 《카 워치》, 2019-02-04
  35. 井上 久男, 〈「1米ドル=77円でも利益」、マツダが推進するモノづくりの真髄〉, 《일경엑스테크》, 2012-12-03
  36. 日沼諭史, 〈常識外れの高圧縮比を実現したマツダ SKYACTIV-G 開発秘話〉, 《카 워치》, 2015-06-05
  37. SKYACTIV TECHNOLOGY 위키백과 - https://ja.wikipedia.org/wiki/SKYACTIV_TECHNOLOGY
  38. マツダ、MAZDA3「SKYACTIV-X」搭載車を発売〉, 《마쓰다 공식 뉴스》, 2019-11-25
  39. 마쓰다 공식 홈페이지 세이프티 - https://www.mazda.co.jp/beadriver/safety/
  40. 로이터 편집부, 〈マツダ「アクセラ」4年ぶり全面改良、世界で年間50万台の販売目指す〉, 《로이터》,2013-10-09
  41. 森脇稔, 〈トヨタとマツダ、米国で合弁新工場を起工…2021年稼働へ〉, 《레스폰스》, 2018-11-19
  42. マツダ、いすゞいすゞ製小型トラックのOEM供給で合意〉, 《이스즈 공식 뉴스》, 2003-07-04
  43. いすゞとマツダ、いすゞ製次世代ピックアップトラックのOEM供給で合意〉, 《이스즈 공식 뉴스》, 2016-07-11
  44. 福田俊之, 〈【新聞ウォッチ】マツダ、インドネシアでもスズキからOEM調達〉, 《레스폰스》, 2013-04-08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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