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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책시'''(金策市)는 [[함경북도]] 남쪽에 있는 도시이다. 본래 이름은 성진시(城津市)로, 한국 전쟁 당시 전선사령관으로 참전 중 사망한 김책의 이름을 따서 1953년에 개칭되었다. | '''김책시'''(金策市)는 [[함경북도]] 남쪽에 있는 도시이다. 본래 이름은 성진시(城津市)로, 한국 전쟁 당시 전선사령관으로 참전 중 사망한 김책의 이름을 따서 1953년에 개칭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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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북도]] 동해안에 있어 고대 [[숙신]]·[[읍루]]·[[예맥]]·[[옥저]]·[[말갈]]·[[부여]] 등 여러 종족이 활동하는 영역이었으며, [[고구려]]가 강성해지면서는 이들을 완전히 통합하면서 편입하였다. 고구려가 668년(보장왕 27)에 멸망한 이후에는 [[당나라]]의 지배에 들어갔으나 발해가 건국되면서 동경용원부(東京龍原府) 관할에 속하게 되었다. | [[함경북도]] 동해안에 있어 고대 [[숙신]]·[[읍루]]·[[예맥]]·[[옥저]]·[[말갈]]·[[부여]] 등 여러 종족이 활동하는 영역이었으며, [[고구려]]가 강성해지면서는 이들을 완전히 통합하면서 편입하였다. 고구려가 668년(보장왕 27)에 멸망한 이후에는 [[당나라]]의 지배에 들어갔으나 발해가 건국되면서 동경용원부(東京龍原府) 관할에 속하게 되었다. | ||
− | + | [[고려]]의 영토초기에는 [[황해도]] 북계에서 동해의 원산만에 이르는 선의 이남 지역이었다. [[발해]]가 [[거란]]에 의하여 멸망한 뒤에는 거란의 영토가 되었다. 발해가 멸망할 때 이탈한 일부 말갈족 집단인 여진(女眞)이 강성해져서 거란을 멸망시키고 금나라의 관할하에 있게 되었다. 다시 몽고족에 의하여 [[원나라]]가 건국되자 역시 원나라 관할하에 있게 되었다. 한편 [[금나라]]가 멸망한 뒤 여진족은 두만강 유역으로부터 점차 함경도 지방으로 이동하여 고려의 국경 부근에서 자주 충돌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고려 말엽 원나라가 쇠퇴하고 1368년 [[명나라]]가 건국되면서, 고려의 북진정책이 실효를 거두어 여진을 몰아내니 그 세력 범위는 두만강 하구에 이르렀다. 과거 여진의 소파온성(所坡溫城)이 있던 이 고장은 동북면(東北面)의 길주(吉州)에 속하여 있었다. | |
− | 조선시대 1398년(태조 7) | + | [[조선시대]] 1398년(태조 7) [[정도전]]으로 하여금 북도의 행정구역을 분정하게 할 때 이곳은 길주목 성진첨사(城津僉使) 관하의 성진진(城津鎭)이었다. 1614년(광해군 6) 소파온고성 자리에 석성을 쌓고 첨사(僉使)를 두었다가 1701년(숙종 27)에 방어영(防禦營)을 설치하였다. 1749년(영조 25)에 첨사로 하여금 방수장(防守將)을 겸직하게 하였다가 1895년에 폐지되었다. |
− | 1898년에는 길주군 성진첨사 관하의 성진진과 동해면 일부 및 함경남도 단천군 이하면 좌측을 합한 지역을 분할하여 함경북도 성진군으로 독립되었다. 다음해 마산·군산과 더불어 개항장(開港場)이 됨에 따라 외국인 거류 구역이 설정되면서 일개 어촌이 차츰 항구도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배후지의 지하자원과 임산 개발에 의한 광석과 목재의 집산항으로 발전함과 동시에 고주파 제강 공장 및 마그네사이트·내화연와 공장(耐火煉瓦工場) 등이 잇따라 건설됨에 따라 공업 도시로서도 크게 번창하여 1943년에는 함경북도 성진시(城津市)로 승격되었다. 1948년 9월 9일 | + | 1898년에는 길주군 성진첨사 관하의 성진진과 동해면 일부 및 함경남도 단천군 이하면 좌측을 합한 지역을 분할하여 함경북도 성진군으로 독립되었다. 다음해 마산·군산과 더불어 개항장(開港場)이 됨에 따라 외국인 거류 구역이 설정되면서 일개 어촌이 차츰 항구도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배후지의 지하자원과 임산 개발에 의한 광석과 목재의 집산항으로 발전함과 동시에 고주파 제강 공장 및 마그네사이트·내화연와 공장(耐火煉瓦工場) 등이 잇따라 건설됨에 따라 공업 도시로서도 크게 번창하여 1943년에는 함경북도 성진시(城津市)로 승격되었다. 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차지했으며, 1951년 2월 성진시(城津市)가 함경북도 김책시(金策市)로 개칭되었다. |
− | + | 1953년 성진시를 김책시로, 학성군을 김책군으로 개칭하였다. 1961년 김책군을 김책시에 병합하고, 김책읍은 학성동으로 개편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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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3년 성진시를 김책시로, 학성군을 김책군으로 개칭하였다. | ||
− | 1961년 김책군을 김책시에 병합하고, 김책읍은 학성동으로 개편했다. | ||
== 지리 == | == 지리 == | ||
동부 해안지대는 평야이나 서부와 북부는 험준한 산지이다. 서부 산지는 마천령산맥의 끝으로서 소반덕(1,664m)·덕만산(1,506m)·용연산(룡연산:1,598m)·판덕령(1,074m)·마천령(709m)이 있고, 북부에는 하건봉(1,278m)·능곡산(릉곡산:488m)·설봉산(664m)이 있다. | 동부 해안지대는 평야이나 서부와 북부는 험준한 산지이다. 서부 산지는 마천령산맥의 끝으로서 소반덕(1,664m)·덕만산(1,506m)·용연산(룡연산:1,598m)·판덕령(1,074m)·마천령(709m)이 있고, 북부에는 하건봉(1,278m)·능곡산(릉곡산:488m)·설봉산(664m)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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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하천은 서부 용연산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원평리 부근에서 남동쪽으로 유로를 바꾸어 춘동리에서 김책만으로 흘러드는 임명천(림명천)과 그 지류인 갈파천·중전평천·업억천·쌍포천 등이다. 북동부의 화대군의 경계에는 길주 남대천이 흐른다. 이들 하천의 하류 연안에는 함경북도의 주요 곡창지대인 임명천평야와 학동평야가 펼쳐져 있다. 갈파천 하류에는 1960년에 건설된 송흥저수지가 있다. | 주요 하천은 서부 용연산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원평리 부근에서 남동쪽으로 유로를 바꾸어 춘동리에서 김책만으로 흘러드는 임명천(림명천)과 그 지류인 갈파천·중전평천·업억천·쌍포천 등이다. 북동부의 화대군의 경계에는 길주 남대천이 흐른다. 이들 하천의 하류 연안에는 함경북도의 주요 곡창지대인 임명천평야와 학동평야가 펼쳐져 있다. 갈파천 하류에는 1960년에 건설된 송흥저수지가 있다. | ||
− | 해안은 암석해안과 모래해안으로 되어 있으며 특히 유진단 일대와 은호리 남쪽 일대는 전형적인 암석해안이다. 앞바다는 김책만으로 되어 있고 여기에는 2개의 바위섬이 있다. | + | |
− | 기반암은 편마암·화강암이며 토양은 갈색산림토이다. 시 면적의 76%가 산림이며 주요 수종은 잣나무·분비나무·참나무이다. 도에서 가장 따뜻한 곳으로서 연평균기온 8.4℃, 1월 평균기온은 -5.3℃, 8월 평균기온 22.1℃이며 연평균강수량은 700㎜이다. | + | 해안은 암석해안과 모래해안으로 되어 있으며 특히 유진단 일대와 은호리 남쪽 일대는 전형적인 암석해안이다. 앞바다는 김책만으로 되어 있고 여기에는 2개의 바위섬이 있다. 기반암은 편마암·화강암이며 토양은 갈색산림토이다. 시 면적의 76%가 산림이며 주요 수종은 잣나무·분비나무·참나무이다. 도에서 가장 따뜻한 곳으로서 연평균기온 8.4℃, 1월 평균기온은 -5.3℃, 8월 평균기온 22.1℃이며 연평균강수량은 700㎜이다. |
== 행정 구역 == | == 행정 구역 == | ||
− | 현재 | + | 현재 김책시는 22동, 22리로 구성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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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역전동(驛前洞) | ||
+ | * 장현동(將峴洞)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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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제강2동(製鋼二洞) | ||
+ | * 청학동(靑鶴洞) | ||
+ | * 탄소동(炭素洞) | ||
+ | * 학성동(鶴城洞) | ||
+ | * 한천동(漢泉洞) | ||
+ | * 해안동(海岸洞)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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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덕인리(德仁里) | ||
+ | * 동흥리(東興里) | ||
+ | * 룡호리(龍湖里) | ||
+ | * 림명리(臨溟里) | ||
+ | * 만춘리(晩春里) | ||
+ | * 방학리(放鶴里) | ||
+ | * 상평리(上坪里) | ||
+ | * 석호리(石湖里) | ||
+ | * 성상리(城上里) | ||
+ | * 세천리(細川里) | ||
+ | * 송중리(松中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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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송흥리(松興里) | ||
+ | * 수동리(水洞里) | ||
+ | * 옥천리(玉泉里) | ||
+ | * 원평리(院坪里) | ||
+ | * 은호리(恩湖里) | ||
+ | * 춘동리(春洞里) | ||
+ | * 탑하리(塔下里) | ||
+ | * 풍년리(豊年里) | ||
+ | * 학동리(鶴東里) | ||
+ | * 호동리(湖通里) | ||
+ | * 흥평리(興坪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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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6일 (수) 15:55 판
김책시(金策市)는 함경북도 남쪽에 있는 도시이다. 본래 이름은 성진시(城津市)로, 한국 전쟁 당시 전선사령관으로 참전 중 사망한 김책의 이름을 따서 1953년에 개칭되었다.
개요
- 행정구역: 함경북도
- 면적: 850km²
- 인구: 207,299명(2008년)
- 언어: 항경동북 방언
연혁
함경북도 동해안에 있어 고대 숙신·읍루·예맥·옥저·말갈·부여 등 여러 종족이 활동하는 영역이었으며, 고구려가 강성해지면서는 이들을 완전히 통합하면서 편입하였다. 고구려가 668년(보장왕 27)에 멸망한 이후에는 당나라의 지배에 들어갔으나 발해가 건국되면서 동경용원부(東京龍原府) 관할에 속하게 되었다.
고려의 영토초기에는 황해도 북계에서 동해의 원산만에 이르는 선의 이남 지역이었다. 발해가 거란에 의하여 멸망한 뒤에는 거란의 영토가 되었다. 발해가 멸망할 때 이탈한 일부 말갈족 집단인 여진(女眞)이 강성해져서 거란을 멸망시키고 금나라의 관할하에 있게 되었다. 다시 몽고족에 의하여 원나라가 건국되자 역시 원나라 관할하에 있게 되었다. 한편 금나라가 멸망한 뒤 여진족은 두만강 유역으로부터 점차 함경도 지방으로 이동하여 고려의 국경 부근에서 자주 충돌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고려 말엽 원나라가 쇠퇴하고 1368년 명나라가 건국되면서, 고려의 북진정책이 실효를 거두어 여진을 몰아내니 그 세력 범위는 두만강 하구에 이르렀다. 과거 여진의 소파온성(所坡溫城)이 있던 이 고장은 동북면(東北面)의 길주(吉州)에 속하여 있었다.
조선시대 1398년(태조 7) 정도전으로 하여금 북도의 행정구역을 분정하게 할 때 이곳은 길주목 성진첨사(城津僉使) 관하의 성진진(城津鎭)이었다. 1614년(광해군 6) 소파온고성 자리에 석성을 쌓고 첨사(僉使)를 두었다가 1701년(숙종 27)에 방어영(防禦營)을 설치하였다. 1749년(영조 25)에 첨사로 하여금 방수장(防守將)을 겸직하게 하였다가 1895년에 폐지되었다.
1898년에는 길주군 성진첨사 관하의 성진진과 동해면 일부 및 함경남도 단천군 이하면 좌측을 합한 지역을 분할하여 함경북도 성진군으로 독립되었다. 다음해 마산·군산과 더불어 개항장(開港場)이 됨에 따라 외국인 거류 구역이 설정되면서 일개 어촌이 차츰 항구도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배후지의 지하자원과 임산 개발에 의한 광석과 목재의 집산항으로 발전함과 동시에 고주파 제강 공장 및 마그네사이트·내화연와 공장(耐火煉瓦工場) 등이 잇따라 건설됨에 따라 공업 도시로서도 크게 번창하여 1943년에는 함경북도 성진시(城津市)로 승격되었다. 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차지했으며, 1951년 2월 성진시(城津市)가 함경북도 김책시(金策市)로 개칭되었다.
1953년 성진시를 김책시로, 학성군을 김책군으로 개칭하였다. 1961년 김책군을 김책시에 병합하고, 김책읍은 학성동으로 개편했다.
지리
동부 해안지대는 평야이나 서부와 북부는 험준한 산지이다. 서부 산지는 마천령산맥의 끝으로서 소반덕(1,664m)·덕만산(1,506m)·용연산(룡연산:1,598m)·판덕령(1,074m)·마천령(709m)이 있고, 북부에는 하건봉(1,278m)·능곡산(릉곡산:488m)·설봉산(664m)이 있다.
주요 하천은 서부 용연산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원평리 부근에서 남동쪽으로 유로를 바꾸어 춘동리에서 김책만으로 흘러드는 임명천(림명천)과 그 지류인 갈파천·중전평천·업억천·쌍포천 등이다. 북동부의 화대군의 경계에는 길주 남대천이 흐른다. 이들 하천의 하류 연안에는 함경북도의 주요 곡창지대인 임명천평야와 학동평야가 펼쳐져 있다. 갈파천 하류에는 1960년에 건설된 송흥저수지가 있다.
해안은 암석해안과 모래해안으로 되어 있으며 특히 유진단 일대와 은호리 남쪽 일대는 전형적인 암석해안이다. 앞바다는 김책만으로 되어 있고 여기에는 2개의 바위섬이 있다. 기반암은 편마암·화강암이며 토양은 갈색산림토이다. 시 면적의 76%가 산림이며 주요 수종은 잣나무·분비나무·참나무이다. 도에서 가장 따뜻한 곳으로서 연평균기온 8.4℃, 1월 평균기온은 -5.3℃, 8월 평균기온 22.1℃이며 연평균강수량은 700㎜이다.
행정 구역
현재 김책시는 22동, 22리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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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주요 농산물은 쌀·옥수수·콩 등의 곡류와 마늘, 배·사과·자두 등의 채소와 과일이다. 특용작물로는 잎담배를 재배한다. 임명천·학동평야와 해안지역은 주요 쌀 산지이다. 큰 규모의 닭공장과 오리공장이 있으며 젖소를 길러 우유도 생산한다. 동해안에 있는 주요 수산업 기지이다.
공업으로는 기계·금속·건재 등의 중화학 공업이 발달하였으며 길주군에서 단천시까지 이어지는 김책공업지구의 중심 도시이다. 주요 산업시설로는 성진제강연합기업소·김책조선소·성진내화물공장이 있으며 철강재·금속제품·내화벽돌·마그네시아 클링커 등이 생산된다. 철·흑연·석탄·니켈·인회석·대리석 등의 지하자원이 매장되어 있으며, 업억광산(흑연)·쌍룡광산(인회석) 등이 있다.
교통
평라선(평양~나진)이 남북 방향으로 놓여 함흥과 청진으로 연결되며 이와 평행한 도로가 있고 북서쪽 내륙으로는 덕만령(1,323m)을 넘어 단천시의 대흥으로 연결된다. 김책항은 항구 조건이 좋으며 해상교통 및 어항으로 이용된다.
유적으로는 성상리 토성과 성남동에 있는 성진진성, 덕인리에 있는 덕인보성의 일부가 남아 있다. 임명동에는 임진왜란의 전승기념비를 세운 자리인 북관대첩비터가 있다. 북한 천연기념물인 덕인리왜가리번식지, 덕인참나무, 임명벌황새, 학동소나무가 있다. 송흥저수지 옆에는 송흥온천이, 임명천의 중류 연안의 세천리에는 세천온천과 삼로온천이 있다. 임명천 하구에서 쌍룡천 하구에 이르는 길이 2㎞의 성진해수욕장이 있다.
교육
교육기관으로는 공업대학 2개교와 금속단과대학, 전자동화전문학교, 수산전문학교, 농업전문학교, 물리전문학교 등 전문학교 5개교, 고등중학교 40여 개교, 인민학교 15개교가 있다. 문화시설로는 시민문화회관, 영화관, 도서관 등이 있으며 신풍경기장이 있다. 산업병원, 고려병원, 리인민병원 등의 의료기관과 세천리와 송흥리에는 온천수를 이용하는 요양소가 있다.
지도
참고자료
같이 보기
동아시아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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