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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22일 (일) 16:40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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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니만(영어: Gulf of Guinea, 프랑스어: Golfe de Guinée)은 아프리카 서해안에 위치한 만이다. 아프리카 남서쪽 가봉의 로페즈곶(Cape Lopez)부터 북쪽과 서쪽 라이베리아 팔마스곶(Cape Palmas) 사이의 열대 대서양 북동부 끝부분이다. 경도와 위도가 모두 0도여서 지구의 중심이라고 일컬어지며 역사적으로 만의 북쪽을 상부 기니로 부른다. 만의 동쪽인 남아프리카의 서쪽 해안을 역사적으로 하부 기니로 부른다.[1]
목차
개요[편집]
기니만은 나이지리아, 적도기니, 카메룬, 가봉 등 서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 사이에 위치해 있는 해역이다. 기니만으로 흘러드는 강으로는 나이저강, 볼타강, 콩고강이 있다. 만의 해안선을 따라 나 있는 베냉만과 비아프라만도 기니만에 포함된다. 기니만 연안은 난류인 기니해류가 흘러 수온이 낮은 벵겔라해류와 교류하여 이 지방에 영향을 끼친다. 기니만은 서아프리카의 여러 국가들과 중앙아프리카 여러 국가들을 이어주고 있다. 기니만을 통해 경제교류가 자주 이뤄지고 있다. 그리고 기니만에 위치한 상투메 프린시페는 관광업이 발달해 있어서 관광객들이 자주 오고 있다. 특히 스노클링과 관련된 관광으로 유명하다. 기니만에는 석유가 매장되어 있다. 이에 나이지리아, 적도기니 등은 석유산업이 발달되어 있다. 오늘날 기니라는 이름은 기니, 기니비사우, 적도기니의 세 나라에 쓰이고 있다. 적도기니는 기니만에서 유래되었으나 기니는 기니만에 접해 있지 않다.[2]
어원[편집]
아프리카 중서부에 있는 큰 만(灣)으로 원주민어로 '거리'라는 뜻의 긴니에(Ginnie)가 와전된 것인데, 주변에 긴니(Ginnis) 또는 진니(Jinnie)라는 마을 또는 왕국이 있었다고 한다. 한편, 베르베르 어의 아귀나우그나와(흑인의 땅)가 기니로 변한 것이라고도 한다. 리베리아의 팔마스 곶에서 가봉의 로페즈 곶까지 이르는 지역으로 상아 해안, 황금 해안, 노예 해안 등이 있다.[3]
지리[편집]
기니만은 아프리카 중서부 적도 부근의 대서양으로 열린 큰 만이다. 라이베리아 해안 서경 7°43'의 팔마스곶에서 동경 10°의 가봉에 이르는 광대한 해역을 말한다. 만에는 페르난도포, 프린시페, 사웅투메, 아노번 등의 섬이 산재한다. 기니만의 중심부에 가까운 나이저강(江)의 하구 부근에 발달한 광대한 삼각주를 따라 서쪽으로는 베냉만(灣), 동쪽으로는 보니(비아프라)만이 전개되며, 볼타강, 카메룬강, 오고웨강 등이 기니만으로 흘러들고 있다. 서쪽으로부터 코트디부아르, 가나, 토고, 베냉, 나이지리아, 카메룬, 적도기니, 가봉이 이 만에 면해 있으며 해안을 따라 아비장, 아크라, 라고스, 리브르빌 등 주요 도시가 형성되었으며 대륙붕이 발달해 어장이 많다.[4]
기니만 연안은 난류인 기니해류가 흘러 수온이 낮은 벵겔라 해류와 교류하여 이 지방에 영향을 끼친다. 해안선이 단조로워 양항 발달에는 불리하나, 사주(砂洲)와 사취(砂嘴)가 발달해 있다. 이곳은 식민지시대의 무역풍에서 유래한 노예해안, 곡물해안, 상아해안, 황금해안 등의 지명으로 각각 알려졌으며, 연안의 항만설비는 제1차 산품의 수출에만 이용된다.[5]
구성[편집]
노예해안[편집]
노예해안(Slave Coast, 奴隸海岸)은 서아프리카의 토고에서 나이지리아의 나이저강 하구에 이르는 해안지대의 속칭이다. 16세기 이후 이곳에서 노예무역이 성행하여 이와 같은 이름이 붙었으며, 특히 베냉의 위다는 기니만 연안에서 최대의 노예 수출항이었다. 세네갈에서 가봉 부근까지 이르는 기니해안은 명칭이 대단히 애매하여 항해자들이 후추(혹은 곡물)해안, 상아해안, 황금해안, 노예해안 따위의 명칭으로 지역을 구분하였다.[6]
곡물해안[편집]
곡물해안(Grain Coast, 穀物海岸)은 아프리카 기니만 연안지방 중 시에라리온 남부의 라이베리아와 코트디부아르와의 국경에 있는 팔머스곶(岬)에 이르는 지역의 해안이다. 후추해안(Pepper Coast)이라고도 한다. 이곳은 일찍이 15세기 이래 유럽의 선원과 상인들이 이 지역과의 교역품으로 '낙원의 곡물'이라고 부르던 기니 후추, 말라게이터 후추를 즐겨찾던 데서 유래된 호칭이다. 이 해안 동쪽으로는 상아해안, 황금해안, 노예해안 등이 이어져 있다.[7]
상아해안[편집]
상아해안(Ivory Coast, 象牙海岸)은 서아프리카에 면한 코트디부아르의 해안이다. 15세기 후반 유럽 열강이 코끼리 상아와 노예를 얻기 위해 이곳으로 몰려들면서 상아 거래의 중심지가 되었던 데서 붙여진 이름으로 코트디부아르라는 나라 이름의 기원이 되었다. 코트디부아르 또는 코트디부아르 해안이라고도 한다. 최대 너비가 64km를 넘지 않으며 굴곡이 완만한 해안선을 이루고 있다. 연평균 기온 24~28℃, 연 강수량 2,000~3,000mm로 덥고 습하다. 해안의 동쪽 부분은 평평하고 모래가 많으며 서쪽은 바위로 된 작은 벼랑들이 있다. 모래톱이 해안을 따라 서쪽으로 뻗어 있으며 모래톱 뒤에는 깊은 석호가 있다. 1903년에 건설되기 시작한 철도는 이웃 나라인 부르키나파소까지 연결되었고 1950~1954년에는 아비장 항구가 건설되었다. 사산드라강, 반다마강, 코모에강, 카발라강이 흘러들고 해안을 따라 코트디부아르의 수도인 아비장을 비롯해 상페드로, 사산드라, 그랑바상 등의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8]
황금해안[편집]
황금해안(Gold Coast, 黃金海岸)은 서아프리카 기니만의 북쪽 해안으로 가나공화국의 대서양에 면한 해안지대이다. 1471년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이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 눈에 띈 것은 해변을 따라 널려 있는 수많은 황금이었다. 이후 포르투갈인들이 이곳에서 사금(砂金)을 채취해 가면서 유럽인들 사이에 '황금해안'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막대한 양의 금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덴마크, 스웨덴 등 유럽 여러 나라들이 이 지역의 지배권을 놓고 오랫동안 각축을 벌였다. 1874년 영국이 식민지로 삼았으며, 이후 영국은 그 지배권을 내륙의 아샨티(Ashanti) 지방까지 확대했고, 다시 북부지방을 편입해서 보호령으로 삼았다. 그 후 이 세 지역은 영국령 토골란드(Togoland)와 함께 1957년 3월 6일 가나(Ghana)라는 이름으로 독립하여 영국 연방의 자치령이 되었다가 1960년 정식으로 가나공화국이 되었다. 가나의 수도인 아크라(Accra)로부터 서쪽의 기니만 연안에는 당시 유럽 각국이 쌓은 성채들이 50곳 이상 남아 있으며, 근처의 포트 생자고(Fort St. Jago)는 관광시설로 이용되고 있다. 17~18세기 노예무역이 성행하던 곳이기도 하다.[9]
치안[편집]
기니만에 위치한 나라들이 경제적으로 가난하다보니 치안이 매우 불안하다. 해적들이 기니만에서 선박들을 습격하는 경우가 자주 있는데 해적으로 유명한 소말리아의 경우 국제사회의 공조로 2018년 이후 상선 습격 사례가 하나도 나오지 않으면서 사실상 종결된 반면 오히려 기니만 쪽에서 해적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나이지리아 등 주변국들은 해적 퇴치를 위해 함정까지도 띄웠다. 한국 선박들도 여러 척 기니만에 위치해 있지만 습격당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보니 한국 정부에서도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기니만에서 한국 국민들이 피랍된 적이있다.
분쟁[편집]
서부 아프리카 기니만은 1990년대 대규모 유전이 발견된 이후 '새로운 중동'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 지역은 하루 470만 배럴의 원유가 생산되고 있고, 원유매장량만 240억 배럴에 이르는 석유 자원의 보고이다. 하지만 해상 국경이 분명하게 구획되지 않아 앙골라, 카메룬, 콩고, 가봉, 적도기니, 나이지리아, 콩고민주공화국, 상투메 프린시페 등 기니만 연안 국가들 사이의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기니만은 앙골라, 카메룬, 가봉 등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첨예한 이해가 걸려있지만 해상 분계선이 불분명한 상태이기 때문에 인접국간의 분쟁이 심화되고 있다. 기니만주변 지역국가들이 현재 공동개발지역을 설정하는 방식으로 이해관계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10]
가봉의 수도 리브르빌과 적도기니에 인접한 음바니에와 작은 두 개의 이웃 섬, 코코티에르스와 콩가스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돌섬이다. 그러나 인근 해상에 원유가 매장됐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1970년대초 주변국의 각축전이 시작됐다. 분쟁의 기원을 굳이 따지자면 아프리카의 숱한 다른 섬들과 마찬가지로, 식민 통치국의 무책임한 영토 쪼개기에서 비롯됐다. 적도기니를 지배한 스페인과 가봉의 식민 지배국 프랑스는 1900년 기니 만 지역의 해상 경계선 조약을 체결하지만, 소규모 섬들에 대한 권한을 확실히 하지 않고 유야무야 넘어간다. 1958년까지만 해도 스페인은 이들 3개 섬에 대해 주권을 명확히 했다. 그런데 1960년 가봉이 프랑스로부터 독립하면서 영유권 주장에 나섰고, 1972년 적도기니도 독립하자 가봉은 섬들을 자국 영토에 포함시킨다는 법령을 반포하면서 선수를 친다. 이에 1999년 적도기니는 해양 경계선을 일방적으로 선포하며 맞대응에 나섰다. 현재 음바니에 섬은 가봉이 실효 지배를 하고 있다. 2003년 2월 당시 가봉의 국방장관이던 알리 봉고 현 대통령이 음바니에 섬을 방문, 직접 땅을 밟고 자국 영토를 선포하자 갈등은 최고조에 오른다. 유엔 중재는 2008년 시작됐지만, 2016년 11월이 돼서야 양국은 서명식을 가지고 영토분쟁을 국제사법재판소(ICJ)에 넘기기로 합의했다. 양국은 해당 지역의 자원을 양쪽 모두 혜택을 보도록 활용한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아직 구체적인 해결책이 나오지 않아 갈등의 소지는 남아있다. 2014년 기준 석유ㆍ천연가스 등 에너지 수출은 가봉과 적도기니의 실질 국내총생산에서 각각 38%, 47%를 차지하는 중요한 산업이다. 게다가 두 나라의 유전 사업에 개입된 세계 유수의 석유 기업과 관련 당사국들도 발을 걸치고 있어, 최종 해법을 찾기까지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11]
기니만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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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니만 주변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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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기니만〉, 《위키백과》
- 〈기니만〉, 《나무위키》
- 〈기니 만(Gulf of Guinea)〉, 《네이버 지식백과》
- 〈노예해안〉, 《네이버 지식백과》
- 〈곡물해안〉, 《네이버 지식백과》
- 〈상아해안〉, 《네이버 지식백과》
- 〈황금해안〉, 《네이버 지식백과》
- 〈기니 만〉, 《세계인문지리사전》
- 〈기니만〉, 《두산백과》
- 수연 박, 〈기니만 분쟁〉, Prezi, 2017-10-22
- 최나실 기자, 〈원유 솟는 ‘돌섬’ 분쟁, 유엔 중재로 평화롭게 푼 가봉ㆍ적도기니〉, 《한국일보》, 2019-03-15
같이 보기[편집]
서아프리카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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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프리카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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