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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그바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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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piao (토론 | 기여)님의 2020년 11월 18일 (수) 15:01 판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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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그바르트(Borgward)
보르그바르트(Borgward)
포톤(Foton, 福田汽车)

보르그바르트(Borgward, 宝沃汽车)는 1919년 칼프리드리히빌헬름 보르그바르트(Carl Friedrich Wilhelm Borgward)가 자신의 이름을 따 설립한 독일의 자동차 제조사로 1961년에 파산을 맞고 폐업하였으며 2014년 중국 베이징자동차 자회사 포톤의 투자를 받고 2015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SUV 모델을 공개하였으며 2016년 7월부터 중국 시장에 판매를 시작하였으며 주요제품은 BX3, BX5, BX6, BX7, BXi7 등이 있다.

개요

보르그바르트 그룹은 2015년에 설립되었으며 본사는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있으며 중국, 러시아, 인도, 브라질, 멕시코에 자회사를 설립하였으며 슈투트가르트, 베이징, 실리콘밸리에 연구센터를 설립하였으며 생산은 베이징에 있는 포톤다공능자동차공장을 개조하여 만든 베이징보르그바르트공장에서 하였다. 2018년 12월 4일 연속적인 적자로 포톤은 보르그바르트의 67% 주식을 39.73억 위안(6,697억 2,861만 원)에 양도하기로 하였으며 12월 28일 창성씽예(长盛兴业)가 인수하였고 2019년 3월 18일 창성씽예는 67% 주식을 자동차 토탈 플랫폼인 썬저우유처(神州优车)에 양도하였다.[1]

보르그바르트는 1950년대 폭스바겐, 오펠, 벤츠와 독일 자동차 4대 메이커로 불리우며 당시 자동차 수출의 60%를 차지하였다. 1954년 전 세계 클래식카의 영원한 전설 이사벨라(Isabella)를 출시하였으며 단일 차종으로 전 세계 20만 대 판매 기록을 세웠다. 1960년 처음으로 에어 서스펜션을 장착한 P100을 출시하고 1961년 주력 차종의 판매 부진으로 파산하였다.

역사

20세기 독일의 자동차 기업

창시자인 칼프리드리히빌헬름 보르그바르트는 1919년 자동차 제조 업체에 라디에이터와 흙받이를 공급하는 브레머 레이펜 인더스트리(Bremer Reifen-Industrie-GmbH)의 파트너 겸 총 지배인으로 근무하였으며 1920년 조직 개편을 하여 유일한 주주가 되면서 브리머 케이 흘러패브릭 보르그바르트(Bremer Kühlerfabrik Borgward & Co)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1924년에 첫 차량인 블리츠카렌(Blitzkarren)이라는 소형 삼륜차를 제작하여 우편배달 차량 등의 틈새시장을 공략하였다. 1925년 빌헬름 테클렌부르크(Wilhelm Tecklenburg)가 회사에 투자하여 주주가 되었으며 새로운 공장을 건설하였다. 1926년 골리앗(Goliath Pionier)이라는 이름의 삼륜 트럭을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이차의 적재 중량은 블리츠카렌의 2배며 세금 혜택까지 더해지면서 꾸준한 인기를 누렸다. 두 개 차종의 판매 인기로 회사는 확장하였으며 1928년 현지 차체 공장을 인수하였고 본사는 한자 로이드 베르케(Hansa-Lloyd-Werke) 옆으로 이전하였으며 회사 명칭을 골리앗 베르케 보르그바르트(Goliath-Werke Borgward&Co)로 변경하였다. 1929년 로이드 공장의 대부분 주식을 인수하고 이사회 회원이 되었으며 나머지 주식도 인수하고 두 회사를 합병하여 한자 로이드 골리앗 베르케 보르그바르트 테크렌보리(Hansa-Lloyd und Goliath-Werke Borgward&Tecklenborg&Co)를 설립하고 회사의 판매량은 다른 독일 자동차 브랜드를 초과하였다. 1931년 한자오토모빌(Hansa-Automobil Gesellschaft m.b.H)을 인수하고 한자에서 생산하던 트럭인 한자콘솔(Hansa Konsul)과 마타도르(Matador)를 생산하였다. 1934년 한자 1100과 한자 1700을 공개하였으며 9월부터 양산을 시작하였고 1936년 독일 브레멘에 200,000㎡ 부지를 인수하여 새로운 공장을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1937년 칼프리드리히빌헬름 보르그바르트와 빌헬름 테클렌부르크는 회사 운영의 갈등으로 관계가 악화되어 보르그바르트는 테클렌부르크에 보상을 하고 보르그바르트는 회사의 유일한 주주로 되었으며 회사 명칭을 보르그바르트 한자 로이드 골리앗으로 변경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임박하면서 보르그바르트도 군용 트럭을 생산하기 시작하였으며 1939년에 보르그바르트 한자 브랜드 자동차를 보르그바르트로 차명을 변경하고 군용 트럭과 탄약운반 차량을 생산하면서 보르그바르트 2000과 2300을 출시하였으며 두 차종은 대부분 정부가 구입하여 장교들에게 배치하였다. 군용 트럭을 생산하면서 전쟁 시기의 주요 공격 목표로 되었으며 연합군의 폭격으로 1944년 10월 공장은 거의 폐허가 되었다. 1945년 보르그바르트는 미국군의 감옥에 수용되었으며 1948년 출소 후 직원 400명을 이끌고 공장 재건을 시작하였으며 일년 후 직원은 2,000명에 달하였다. 1949년 연합군의 원재료 배급제도에 대응하기 위해 3개의 독립회사를 설립하였으며 각각 로이드, 골리앗, 보르그바르트 브랜드로 판매하였다. 1950년에는 종전 후 첫 번째 차량인 한자 1500 세단 차량을 출시하는데 당시의 서독 내에서는 참신한 차량으로 폭스바겐, 오펠, 메르세데스-벤츠 등과 명성을 같이 하였으며 승용차 시장을 개척해 나갔다. 1952년 연료 직분사 기술을 도입한 GP700 Sport와 자동변속기를 장착한 한자 2400을 출시하였다. 1954년에는 이자벨라(Isabella) 차량을 출시하였으며 컨버터블과 쿠페 차량도 존재하며 BMW 3시리즈에 가까운 고품질, 고출력의 차량으로 인기를 얻기도 했으며 16밸브 1,500cc 엔진을 개발해 포뮬러 경기에 출전하며 같은 엔진을 사용한 스포츠 쿠페를 한정판으로 판매하였다. 1957년 B555、B611 등 상용차를 출시하였으며 1959년 에어 서스펜션을 적용한 P100을 출시하였으며 영업수익은 6.32억 마르크로 주요 자동차 제조업체로 되었으며 독일 자동차 수출량의 63.5%를 차지하였다. 하지만 보르그바르트는 산하의 로이드와 골리앗 두 개 브랜드의 계속되는 적자로 자금에 문제가 발생하였으며 1960년대가 되면서 주력 차종의 부진과 고급 차량들의 판매량도 벤츠와 경쟁하기 힘들 정도로 떨어져 버렸고 기사회생을 바라면 만든 로이드 이사벨라 차량은 품질 문제로 몰락하는 등 악재가 존재했는데 1961년에는 결국 파산 선고를 받았다.[2]

중국 자본으로 부활

2005년 창업주는 칼프리드리히빌헬름 보르그바르트의 손자인 크리스티안 보르그바르트(Christian Borgward)와 투자자인 칼하인즈 크노즈(Karlheinz L. Knöss)가 브랜드 부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하였으며 대량의 시장 조사를 통해 보르그바르트 브랜드가 여전히 지명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2008년 5월 21일에 스위스 루체른에 회사를 설립하였다. 2014년 중국 베이징자동차 자회사 트럭 생산 업체인 포톤은 승용차 시장에 진출하려고 보르그바르트와 협력하였으며 500만 유로(65억 5,605만 원)로 보르그바르트 그룹을 인수하고 본사를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세웠다. 2015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첫 차량인 BX7을 공개해 2016년부터 중국 시장에 판매를 시작하였고 이후 BX5 등을 출시하였다.

연도별 주요사건

  • 1919년 : 창시자인 칼프리드리히빌헬름 보르그바르트는 브레머 레이펜 인더스트리(Bremer Reifen-Industrie-GmbH)의 파트너 겸 총 지배인으로 임명되었다.
  • 1921년 : 자신의 이름을 따서 브리머 케이 흘러패브릭 보르그바르트(Bremer Kühlerfabrik Borgward & Co)를 설립하였다.
  • 1924년 : 첫 번째 차량인 소형 삼륜차 블리츠카렌을 제작하였다.
  • 1925년 : 빌헬름 테클렌부르크가 회사에 투자하여 주주가 되었으며 새로운 공장을 건설하였다.
  • 1926년 : 골리앗(Goliath Pionier)이라는 삼륜 트럭을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 1928년 : 현지 차체 공장을 인수하였고 회사 명칭을 골리앗 베르케 보르그바르트로 변경하였다.
  • 1929년 : 로이드 공장을 인수하고 두 회사를 합병하여 한자 로이드 골리앗 베르케 보르그바르트 테크렌보리를 설립하였다.
  • 1931년 : 한자오토모빌을 인수하고 한자에서 생산하던 트럭인 한자콘솔과 마타도르를 생산하였다.
  • 1934년 : 한자 1100과 한자 1700을 공개하였으며 9월부터 양산을 시작하였다.
  • 1936년 : 브레멘에 200,000㎡ 부지를 인수하여 새로운 공장을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 1937년 : 빌헬름 테클렌부르크가 회사를 떠나고 회사 명칭을 보르그바르트 한자 로이드 골리앗으로 변경하였다.
  • 1939년 : 보르그바르트 브랜드를 사용하며 보르그바르트 2000과 2300을 출시하였다.
  • 1945년 : 전후 공장 재건을 시작하였다.
  • 1949년 : 로이드, 골리앗, 보르그바르트 3개 브랜드로 판매하기 시작하였다.
  • 1950년 : 보르그바르트 한자 1500을 출시하였다.
  • 1952년 : GP700 엔진을 개발하였으며 유럽 최초로 자동변속기를 장착한 한자 2400을 출시하였다.
  • 1954년 : 이자벨라를 출시하였다.
  • 1957년 : 2400의 업데이트 버전 2400 Pullman을 출시하였다.
  • 1960년 : 최초의 럭셔리 세단 P100을 출시하였다.
  • 1961년 : 판매부진으로 회사가 파산하였다.[3]
  • 2008년 : 보르그바르트 주식 유한회사를 설립하고 자동차 개발을 시작하였다.
  • 2014년 : 포톤자동차가 브랜드 사용권을 인수하였다.
  • 2015년 09월 :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BX7을 공개하였다.
  • 2016년 04월 : BX7을 판매하기 시작하였다.
  • 2017년 03월 : BX5를 판매하기 시작하였다.
  • 2018년 05월 : 순 전기 4륜 구동 SUV인 BXi7을 공개하였다.
  • 2018년 12월 : 창성싱예(长盛兴业)는 베이징보르그바르트 67% 주식을 인수하였다.

주요인물

칼프리드리히빌헬름 보르그바르트(Carl Friedrich Wilhelm Borgward)
  • 칼프리드리히빌헬름 보르그바르트

칼프리드리히빌헬름 보르그바르트(Carl Friedrich Wilhelm Borgward)는 독일 엔지니어이며 디자이너로 보르그바르트그룹의 창시자이다. 1890년 11월 10일 독일 함부르크 알토나에서 출생하였으며 아버지는 석탄 상인이였다. 그는 기계에 남다른 흥취를 가졌으며 10살에 벽시계와 재봉기를 고치기 시작하였다. 1913년 하노버공과대학에서 기계공학 학위를 받았으나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강제로 독일 육군에 입대하였으며 전투에서 중상을 입고 군 병원에서 수개월간 치료를 받고 제대하였다. 1919년 그는 브레머 레이펜 인더스트리(Bremer Reifen-Industrie-GmbH)의 파트너 겸 총 지배인으로 근무하였으며 회사의 주요 업무는 자동차 제조 업체에 라디에이터와 흙받이를 공급하는 것이다. 1920년 회사는 조직 개편을 하였으며 보르그바르트는 회사의 유일한 주주가 되었으며 회사명을 브리머 케이 흘러패브릭 보르그바르트(Bremer Kühlerfabrik Borgward & Co)로 변경하였다. 그는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자동차 제조를 꿈꾸며 1924년 블리츠카렌이라는 소형 삼륜차를 제작하였으며 자동차 부품회사로부터 완성차 제작회사에 이르는 변신을 하였다. 전후 독일의 상용차 시장은 공백이었으며 최대 출력이 2마력이지만 적재 중량이 250kg에 달하는 삼륜차는 출시하며 인기를 받았고 독일 우체국에서도 이 삼륜차를 사용하였다. 1925년 빌헬름 테클렌부르크(Wilhelm Tecklenburg)가 회사에 투자하여 주주가 되었으며 새로운 공장을 건설하였으며 1926년 골리앗(Goliath Pionier)이라는 이름의 삼륜 트럭을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1928년 현지 차체 공장을 인수하였다. 1929년 로이드 공장을 인수하고 두 회사를 합병하여 한자 로이드 골리앗 베르케 보르그바르트 테크렌보리(Hansa-Lloyd und Goliath-Werke Borgward&Tecklenborg&Co)를 설립하고 1931년 한자오토모빌(Hansa-Automobil Gesellschaft m.b.H)을 인수하고 한자에서 생산하던 트럭인 한자콘솔(Hansa Konsul)과 마타도르(Matador)를 생산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임박하면서 보르그바르트도 군용 트럭을 생산하기 시작하였으며 1945년 연합군에 강제 수용되었으며 1948년 출소 후 직원 400명을 이끌고 공장 재건을 시작하였으며 일년 후 직원은 2,000명에 달하였다. 1949년 연합군의 원재료 배급제도에 대응하기 위해 3개의 독립회사를 설립하였으며 각각 로이드, 골리앗, 보르그바르트 브랜드로 판매하였다. 하지만 보르그바르트는 산하의 로이드와 골리앗 두 개 브랜드의 계속되는 적자로 자금에 문제가 발생하였으며 1961년에는 결국 파산 선고를 받았다. 1963년 7월 28일 그는 심장 질환으로 사망하였다.[4]

주요제품

보르그바르트 BX7(Borgward BX7)
보르그바르트 BX6(Borgward BX6)
보르그바르트 BX3(Borgward BX3)
보르그바르트 BX7 TS(Borgward BX7 TS)
보르그바르트 이사벨라 컨셉트카(Borgward Isabella Concept)
보르그바르트 이자벨라 카브리올레(Borgward Isabella Cabriolet)
보르그바르트 P100(Borgward P100)
보르그바르트 4호(Borgward IV)
보르그바르트 골리아트(Borgward Sd.Kfz.302/303)

현재 모델

  • 보르그바르트 BX7(Borgward BX7) : 2015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공개된 보르그바르트 복귀 후 첫 번째 소형 SUV이며 5인승과 7인승이 있으며 크기는 4,715(L) x 1,911(W) x 1,690(H)이며 휠베이스는 2,760mm이다. 2개의 트림이 존재하는데 일반형과 TS형이 존재하였다. TS 차량은 일반형에 비해 더욱 고급스러운 디자인, 약간 달라진 그릴의 형상, 보르그바르트 로고와 비슷해 보이는 작은 다이아몬드 로고, 조금 더 큰 바퀴 등이 적용되었다. 파워 트레인은 가로 형태로 배치된 225마력의 2.0L 터보 I4 엔진과 듀얼 클러치 변속기가 적용되었으며 4륜 구동방식이 적용되었다. 안전 보조 장치는 앞 좌석 에어백, 전자 주차 브레이크, 자동 주차, 차체 자세 제어 시스템, EBD 전자제어 제동력 분배 시스템, 오르막 보조 시스템, 앞 좌석 가열 시트, 듀얼 존 자동 에어컨 등이 기본으로 장착되었다.[5]
  • 보르그바르트 BX6(Borgward BX6) : 2016년 3월 제네바 모터쇼에서 공개된 BX6 TS 컨셉트카를 기반으로 2018년 5월에 최초로 공개된 소형 SUV이며 BX5를 기반으로 만들었고 5인승으로 크기는 4,601(L) x 1,877(W) x 1,656(H)이며 휠베이스는 2,685mm이다. 파워 트레인은 1981cc 224마력 터보 엔진과 6단 자동변속기를 장착하였으며 4륜 구동방식을 적용하였다. 최고 속도는 200km/h, 제로백은 9초, 연비는 7.1L/100km, 연료탱크 용량은 60L, 안전 보조 장치로 앞 좌석 에어백, 전자 주차 브레이크, 자동 주차, 차체 자세 제어 시스템, EBD 전자제어 제동력 분배 시스템, 오르막 보조 시스템, 후방 카메라 등이 기본으로 장착되었다.[6]
  • 보르그바르트 BX5(Borgward BX5) : 2016년 제86회 제네바 모터쇼에 공개되었으며 2017년 3월 24일부터 출시하였다. 2018년 말에 출시 예정인 보르그바르트 BX6 차량이 이 차량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차량은 20T GDI형과 25T GDI형, 28T GDI형 라인업이 있으며 모두 가솔린 터보 엔진 계열인 것으로 알려졌다. 25T GDI 차량이 초기에 출시되었으며 2017년 8월에 20T GDI 차량이 출시되었고 11월에 28T GDI 차량이 출시되었다. 크기는 4,490(L) x 1,877(W) x 1,675(H)이며 휠베이스는 2,685mm이다. 파워 트레인은 148마력 1.4L, 188마력 1.8L, 244마력 2.0L 엔진을 장착하였으며 6단 수동 혹은 6단 자동변속기를 장착하였으며 25T GDI 차량에 기록된 차량의 최고 속도는 190km/h이며 제로백은 20T 차량이 13.2초, 25T 차량이 9.3초이다. 전륜구동과 4륜 구동 모델이 있으며 안전 보조 장치로 앞 좌석 에어백, 전자 주차 브레이크, 자동 주차, 차체 자세 제어 시스템, EBD 전자제어 제동력 분배 시스템, 오르막 보조 시스템, 후방 레이더, 타이어 공기압 측정 장치 등이 기본으로 장착되었다.[7]
  • 보르그바르트 BX3(Borgward BX3) : 중국 시장에서 2018년에 첫 공개가 이루어졌으며 해외에는 2020년경에 출시될 예정이다. 크기는 4,410(L) x 1,830(W) x 1,670(H)이며 휠베이스는 2,560mm이다. 파워 트레인은 150마력의 파워와 250Nm의 토크를 내는 1.4L I4 가솔린 직분사 터보 엔진과 6단 수동변속기 혹은 일본 아이신 6단 수동식 자동변속기가 장착되며 중국 배출가스 기준인 차이나 VI 인증을 받았다. 전륜구동 차량이며 공차중량은 1,431kg~1,480kg 사이이며 연료탱크 용량은 52L이다. 전면부 현가장치는 맥퍼슨 스트럿 서스펜션을 후면부 현가장치는 멀티링크 서스펜션이 적용된다. 전후면 모두 디스크 브레이크와 전자식 주차 브레이크가 적용된다. 타이어는 215/60 R17 형을 사용하며 도넛형 스페어타이어와 알루미늄 알로이 휠이 적용된다. 10.25인치 디지털 계기판과 8인치 센터페시아를 장착하였으며 안전 보조 장치로 앞 좌석 에어백, 타이어 공기압 측정 장치, 전자 주차 브레이크, 자동 주차, 차체 자세 제어 시스템, 오르막 보조 시스템, 후방 레이더 등이 기본으로 장착되었다.[8]
  • 보르그바르트 BX7 TS(Borgward BX7 TS) : 순수 전기 사륜구동 SUV이며 크기는 4,713(L) x 1,923(W) x 1,690(H)이며 휠베이스는 2,760mm이며 공차중량은 1,950kg~1,985kg 사이이다. 전동 파워 트레인은 전륜과 후륜에 각각 89KW 영구자석 모터를 장착하였으며 기본 모델에는 49kWh 배터리, 주행거리 연장 모델에는 52.5kWh 배터리가 장착되며 60km/h 등속으로 운전할 때 주행거리는 각각 375km와 460km이다. 급속충전 시 0.75h 이면 80%를 충전할 수 있으며 일반 충전일 때 8h 이면 90%를 충전한다. 최고 속도는 195km/h, 제로백은 7.9초이다. 12.3인치 디지털 계기판과 12.3인치 센터페시아를 장착하였으며 안전 보조 장치로 앞 좌석 에어백, 타이어 공기압 측정 장치, 전자 주차 브레이크, 자동 주차, 차체 자세 제어 시스템, 견인력 제어 시스템, 오르막 보조 시스템, 후방 레이더 등이 기본으로 장착되었다. [9]

컨셉트카

  • 보르그바르트 이사벨라(Isabella, 이사벨) : 2017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공개한 4도어 4인승 전기 쿠페이다. 이사벨라 이름은 파산 직전까지 보르그바르트를 대표한 차종에서 가져왔으며 이사벨라는 화려한 디자인으로 큰 인기를 얻은 베스트셀러로 지금까지도 수집가들이 즐겨 찾을 정도다. 크기는 5,000(L) x 1,920(W) x 1,400(H)이며 대시보드와 센터페시아를 여러 겹으로 포갰고 스티어링은 3조각으로 나눠 개성을 강조하고 최근 트렌드에 맞춰 물리적인 스위치들은 모두 제거하였다. B 필러를 생략하고 아웃-슬라이드 방식의 커다란 도어를 단 덕분에 좁은 곳에서도 타고 내리기 쉽다. BXi7과 유사한 전기 파워 트레인을 사용하고 2개의 모터로 최고출력 300마력을 내며 제로백은 4.5초, 최고 시속 250km/h, 배터리는 30분이면 80%를 충전할 수 있고 한번 충전으로 최대 500km를 주행할 수 있다. [10]

대표 모델

  • 보르그바르트 한자 1100(Borgward Hansa 1100) : 1934년 보르그바르트가 출시한 첫 번째 자동차이며 28마력 1.1L 4기통 엔진을 장착하였으며 최고 속도는 95km/h, 건조중량은 1,020kg 독일 정부에서도 군용으로 50대를 주문하였다. 2,750 마르크에 판매되어 당시 경쟁 차량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받았다.
  • 보르그바르트 한자 1500(Borgward Hansa 1500) : 1949년 3월 제네바 모터쇼에서 공개하였으며 10월 13부터 생산을 시작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출시한 새로운 모델로 2도어, 4도어 세단으로 크기는 4,450(L) x 1,620(W) x 1,560(H), 휠베이스는 2,600mm, 파워 트레인은 1,498cc 엔진과 3단 혹은 4단 수동 변속기를 장착하였다. 출시 후 2도어 5인승 카브리올레, 2인승 스포츠 카브리올레 버전이 추가로 제공되었다. 1952년에는 1,758cc 엔진 버전으로 보르그바르트 한자 1800을 출시하였다. 1954년 이사벨라가 출시되면서 단종 되었다.[11]
  • 보르그바르트 한자 2400(Borgward Hansa 2400) : 1951년에 공개하고 1952년부터 1959년까지 제작한 첫 번째 자동변속기를 장착한 자동차이다. 크기는 4,460(L) x 1,780(W) x 1,490(H), 휠베이스는 2,620mm이며 출시 후 브레이크 결함과 자체 개발한 변속기 결함이 발견되면서 다른 차종에 밀렸으며 1952년에는 더 긴 휠베이스 노치백 버전을 출시하였다. 노치백 버전은 전장이 4,660mm, 휠베이스 2,820mm으로 늘어났으며 차체는 강철 일체형 구조였다. 1955년 노치백 버전은 페이스 리포트를 거쳐 출시되었으며 1959년까지 생산하였다.[12]
  • 보르그바르트 이사벨라(Borgward Isabella) : 보르그바르트에서 1954년 6월에 출시하여 1962년까지 제조한 차량이다. 본래는 보르그바르트 한자 1500으로 출시하려고 하였으며 이사벨라는 컨셉트 버전에서 사용되던 이름으로 엔지니어와 미디어에서 인기가 있는 것으로 증명되어 양산차 이름을 이사벨라로 불렀다. 1955년에는 이사벨라 에스테이트(Isabella estate) 버전을 출시하고 카브리올레 TS 버전도 출시하였다. 크기는 4,390(L) x 1,705(W) x 1,480(H), 휠베이스는 2,600, 건조 중량은 1,010kg, 파워 트레인은 1493cc 75마력 직렬 4기통 엔진과 4단 수동변속기를 장착하였다. 최고 속도는 130km/h, 연비는 8.4L/100km이다. 총 202,862대가 생산되었으며 파산 후 생산장비가 아르헨티나에 팔리면서 1963년까지 제조하였다.[13]
  • 보르그바르트 P100(Borgward P100) : 1959년 9월에 공개한 4도어 세단이며 독일에서 최초로 에어 서스펜션을 장착하였고 1960년 1월부터 1961년 7월 보르그바르트가 파산하기까지 총 2,500대 넘게 생산하였으며 파산 후 생산 라인은 멕시코에 팔려 1967년부터 1970년까지 2,000대 넘게 생산되었다. 파워 트레인은 2,240cc 100마력 직렬 6기통 엔진을 장착하였으며 최고 속도는 161 km/h이다.[14]

군용 모델

  • 보르그바르트 4호(Borgward B IV)) : 1941년 독일군이 개발한 폭약 운반차량으로 명칭은 중폭발물 차량 보르그바르트 B 4호(Schwerer Ladungsträger Borgward B IV)라는 뜻이다. 공병 보조용으로 지뢰밭이나 토치카와 같은 위험한 장소에 가서 가지고 있던 폭약을 내려놓은 후 뒤로 물러나는 차량이다. 이전의 지뢰제거 차량 골리아트가 스스로 위험물과 자폭하는 1회용인 반면 보르그바르트 4호는 폭약을 설치하고 물러나는 형식이므로 차량 자체가 격파되지 않으면 여러 번 쓸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일단 물러나면 폭약을 터뜨려서 벙커나 토치카, 참호 등을 파괴해 무력화시켜 보병이 적을 공격하는 것을 보조한다. 무인으로 작동되는 무인기 즉 로봇이다. 일단 사람이 타지 않고 무선으로 조종되어 토치카, 벙커 등의 목적지까지 가서 500kg짜리 폭약을 내려놓고 오는 것을 기본적인 임무로 삼았다. 일단 차량은 차량이다 보니 수송 목적으로 물건이나 사람이 탈 수도 있지만 주요 임무는 무인 병기로 운용되었다. 최초로 나온 A형은 3.6톤이고 그 뒤에 나온 B형과 C형은 좀 더 무거워졌으나 본질적으로는 별 차이가 없다. 1,203대가 생산되었다고 하며 골리아트보다 저렴하고 재사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중대 규모로 운용되었으며 원격조종은 티거가 맡았다. 이유는 적과 가까운 곳에서 작전을 해야 하므로 튼튼한 전차에서 조종을 하는 편이 안전했기 때문이었고 공통적으로 기동 계통에 문제가 많았던 독일제 중전차 중에서 그나마 티거가 가장 사정이 나았기에 티거가 담당했다. 나중에는 사람이 탑승한 대전차량으로 개조되기도 했으며 기관포를 탑재하여 장갑차 대용으로 쓰기도 했다.[15]
  • 골리아트(지뢰)(Sd.Kfz.302/303) :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유/무선 조종식 무한궤도 폭발물이지만 무한궤도가 장착되어 초소형 전차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정식 명칭은 Sd.Kfz.302/303(a/b)이다. 골리아트라는 이름의 유래는 성경의 인물 골리앗이다. 프랑스군이 마지노선 안에 편안히 누워 독일군을 폭발시킬 목적으로 개발했지만 되려 프랑스가 역관광당하며 노획물로 독일군 손에 넘어간다. 프랑스에서 만든 것은 유선 방식이었고 무선으로 만든 것은 독일이 최초이다. 60kg 정도의 폭약을 싣는 Sd.Kfz.302가 1942년부터 전선에 등장하였으며 주로 공병이 운용하여 지뢰밭이나 토치카 등을 돌파하는데 사용되었지만 가격이 비싸고 추진기인 전기 모터의 신뢰성이 낮았으며 장갑 두께는 겨우 5mm라 적에게 너무도 손쉽게 파괴되어 불평이 많았다. 그래서 추진기를 오토바이 엔진으로 바꾸고 장갑을 10mm로 강화하고 폭약 적재량303a 85kg, 303b 100kg과 항속거리를 늘린 303이 등장했다. 전체적인 디자인도 개선하여 초호능력도 크게 향상되었다. 본래 용도는 공병대에서 폭파용으로 쓰거나 적의 건물을 파괴하는 것이었지만 갈수록 참호나 벙커를 폭파시킬 때 쓰는 등 많은 용도로 쓰이게 됐으며 자주 실패하긴 했지만 전차를 파괴할 목적으로 골리아트를 돌격시키기도 했으며 전차가 하단부는 장갑이 약하기 때문이다. 전차의 하단은 사실상 공격받을 일이 거의 없으므로 나머지 부위에 비해 방호능력이 매우 낮게 설계되므로 골리아트는 이러한 전차의 약점을 이용해 전차 하단에서 폭발하는 방식으로 전차를 공격했다. 지뢰밭으로 돌격시켜 진격로를 열 수도 있기에 공세적인 운용도 가능했지만 문제점들과 느린 속도로 인해 공세적이라기보단 수세적 병기에 가까워 전쟁 후반으로 갈수록 많이 투입되었다. 특히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바르샤바 봉기에서 대량으로 사용되었다. 문제는 기술력이 부족으로 유선 조종의 경우 심심하면 케이블이 끊어지곤 해서 순식간에 무력화되는 문제점이 있었고 무선조종의 경우 조종 범위가 너무 좁아서 실용화되지 못했다. 이는 당시 매우 부실했던 초기 진공관의 문제가 있어서 상온에서도 쉽게 파손되거나 과열되었고 퓨즈조차도 매우 약해서 얼마 안돼 고장 나거나 교체해야 됐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전자소재들은 매우 조악하고 대량 양산과 거리가 멀어서 무선 유도 장치는 물론이고 유선 유도 장치도 매우 비싼 가격을 자랑했고 모터에 구리를 많이 써야 해서 골리아트 자체도 생산 비용이 엄청났다. 그리고 특히 전략물자인 구리를 자폭 때문에 회수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알려져 44년도쯤에 생산이 중단되었다.[16]

보도자료

  • 중국 자본으로 부활한 독일 메이커 보르그바르트(Borgward)가 파격적인 모습의 이사벨라 컨셉트(Isabella Concept)를 2017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 공개하였다. 보르그바르트는 1919년 설립되어 최고의 자동차 업체로 성장했다가 1961년 파산한 파란만장한 역사의 주인공이다. 중국 자본의 도움으로 54년 만인 2015년 부활해 BX5와 BX7을 생산하고 있다. 이사벨라 이름은 파산 직전까지 보르그바르트를 대표한 차종에서 가져왔다. 화려한 디자인으로 큰 인기를 얻은 베스트셀러로 지금까지도 수집가들이 즐겨 찾을 정도다. 최신 이사벨의 디자인은 과거보다 현란하고 과감하다. 길이 5.0m, 너비 1.92m, 높이 1.4m의 크기이며 4도어 세단이지만 전체적으로 스포츠 쿠페의 스타일리시함이 느껴진다.[17]
  • 중국 자본으로 부활한 독일 브랜드 보그바르트(Borgward)가 또다시 경영 위기에 빠졌다. 새로운 투자자를 구하지 못할 경우 다시 한번 브랜드가 사라져 두 번 죽을 위기에 처한 셈이다. 카스쿱 등 외신에 따르면 보그바르트의 모회사인 베이징자동차 자회사인 포톤자동차는 보그바르트의 지분 67%를 매입할 업체를 물색 중이다. 지분의 과반을 넘겨 사실상 경영을 포기하고 브랜드를 매각하는 셈이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영업 손실을 감당하기 어려워 처분에 나섰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보그바르트는 한때 독일에서 세 번째로 큰 자동차 회사였다. 폭스바겐, 오펠 등과 더불어 독일의 대중차 시장을 주도했던 브랜드지만 서서히 경쟁력을 잃어 1961년을 끝으로 잊혀졌다. 이런 보그바르트가 다시 역사에 등장한 건 지난 2014년이다. 중국 북경기차 그룹의 트럭 전문 브랜드 포톤(Foton)이 보그바르트 브랜드 사용권을 사들이고 2015년 첫 양산 모델인 BX5와 BX7을 선보이며 수출 시장 공략에 나섰다.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브랜드 가치를 만회하기 위해 유럽에서 브랜드만 사들이는 전형적인 중국 기업의 마케팅 방식이지만 선두 업체와의 기술격차가 큰 자동차 시장에서 이런 방식은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뱃지는 독일산이지만 중국 베이징의 포톤자동차 공장에서 만들어진 보그바르트 자동차의 품질과 성능은 여느 중국차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수출 시장에서는 낮은 품질로 외면받고 내수 시장에서는 타 내수 모델에 비해 비싼 가격 탓에 판매가 부진했다.[18]

각주

  1. 神州优车41亿接盘宝沃67%股权,陆正耀能否复制瑞幸模式〉, 《搜狐网》,2019-03-19
  2. 李昊鹏 , 〈不莱梅昔日辉煌 德国Borgward宝沃历史〉, 《汽车之家》, 2015-03-20
  3. 보르그바르트〉, 《나무위키》
  4. "Carl F. W. Borgward", "Wikipedia"
  5. 보르그바르트 BX7〉, 《나무위키》
  6. 宝沃BX6〉, 《百度百科》
  7. 보르그바르트 BX5〉, 《나우위키》
  8. 宝沃BX3〉, 《百度百科》
  9. 宝沃 BX7 TS〉, 《宝沃汽车官方网站》
  10. 엔카매거진, 〈중국 자본으로 부활한 보르그바르트 이사벨 컨셉〉, 《네이버 포스트》, 2017-09-14
  11. "Borgward Hansa 1500", "Wikipedia"
  12. "Borgward Hansa 2400", "Wikipedia"
  13. "Borgward Isabella", "Wikipedia"
  14. "Borgward P100", "Wikipedia"
  15. 보르크바르트 4호〉, 《나무위키》
  16. 골리아트(지뢰)〉, 《나무위키》
  17. 엔카매거진, 〈중국 자본으로 부활한 보르그바르트 이사벨 컨셉〉, 《네이버 포스트》, 2017-09-14
  18. 모터리언, 〈독일 보그바르트, 판매 부진으로 두 번 죽을 위기에 처한 사연〉, 《네이버 포스트》, 2018-10-13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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