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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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버그(Pittsburgh)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서남부의 앨러게니군의 군청 소재지이며, 인구는 약 30만 명으로 필라델피아에 이어 펜실베니아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며 미국에서 68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대도시권 인구는 약 246만 명이다. 피츠버그는 미국 철강 산업의 역사에서 지배적인 역할로 "철강 도시"로 알려져 있다.[1]
목차
개요[편집]
피츠버그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서쪽, 앨러게니강과 모논가헬라강이 합류하여 오하이오강을 이루는 삼각지대에 자리하고 있어 수상교통, 철도망의 중심지이다. 부근의 펜실베이니아 탄전에서 채굴되는 석탄과 슈피리어호 서쪽 호안에서 나오는 철광석을 이용하여 오랫동안 세계적인 제철공업 지대로 발전하였다. 피츠버그는 제철(製鐵)도시로서, 18세기에 영국인이 본국의 수상 피트의 이름을 따서 포트피트라고 부른 것이 이 도시의 시초이다. US스틸사를 비롯하여 아메리카알루미늄회사의 본사와 주요 공장 등 대규모 공장이 많이 입지하고 시가지에는 거대한 빌딩들이 늘어섰다. 피츠버그시의 다리는 현재 446개로서, 베네치아의 443개를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다리가 가장 많은 도시이며 철강업의 도시답게 철교가 대부분이다. 세계 최대 석탄지대의 중심이며, 미국의 석탄과 철강의 주산지였다. 이 밖의 주요공업으로는 알루미늄 제품, 전기기구, 유리제품 등이 있다. 수운(水運)이 좋은데, 앨레게이니강이나 오하이오강을 비롯하여 많은 운하가 있고 오대호나 미시시피강을 이용하여 미국 각지와 연락한다. 피츠버그 지역의 경제는 1980년대에 큰 변화를 겪었다. 이전에는 중공업 - 현저히 철강 생산 -에 의지해 왔지만, 중공업이 쇠퇴하고 제철소와 다른 공장들이 폐업하였다. 오늘날 보건업과 교육이 지역의 경제에 큰 공헌을 하였다. 미국 연방 자금이 피츠버그의 연구 안건을 지지해 왔다. 피츠버그 지역은 사이버 방어, 소프트웨어 공학, 로봇 공학, 에너지 연구 및 핵 해군을 위한 연방 기관 본부 역할을 해왔다. 민간 부문에서는 피츠버그에 본사를 둔 PNC 금융 서비스는 미국에서 다섯 번째로 큰 은행이며 이 도시에는 포춘 500대 기업 8곳과 미국 최대 로펌 7곳이 위치해 있다. 또 학술의 중심이기도 하여 피츠버그대학, 카네기공과대학, 멜런 재단 등이 유명하다. 피츠버그에는 앤디 워홀 박물관, 카네기 미술관, 피츠버그 예술 센터, 매트리스 공장, 그리고 공룡, 광물, 동물, 이집트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는 카네기 자연사 박물관이 있다. 2015년 피츠버그는 메트로폴리스지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1곳"에 선정되었다. 이코노미스트지의 글로벌 생활 가능성 순위는 피츠버그를 2005년, 2009년, 2011년, 2012년, 2014년 그리고 2018년에 미국에서 가장 또는 두 번째로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하였다.[2]
역사[편집]
초기 역사[편집]
현재 피츠버그 지역의 가장 초기의 거주자는 인디언이다. 1600년대에 뉴욕 서부의 이로쿼이 어족이 원래의 부족을 내쫓았다. 1740년대에 프랑스 군이 프랑스 국왕을 위하여 그 지역을 요구하였다. 많은 인디언은 프랑스와 캐나다 교역자와 교역하였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는 지방의 통치를 얻기 위해 싸웠으며, 이 경쟁으로 인해 프렌치 인디언 전쟁이 벌어졌다. 1754년 프랑스군은 앨러게니강과 모논가헬라강의 합류점에 듀크스너 요새를 지었다. 조지 워싱턴 당시 22세의 영국 버지니아 식민지군의 중령은 그 남쪽에 네서시티 요새를 지었다. 프랑스군은 네서시티 요새의 전투에서 워싱턴의 군대를 물리치고 워싱턴에게 요새를 내놓고 항복하라고 강요하였다. 프렌치 인디언 전쟁의 첫 교전 중 하나였다.
첫 패배에 불구하고 영국군은 1758년 승리하여 피츠버그 지역을 통치하게 되어 앨러게니강과 모논가헬라강이 만나는 곳 근처에 윌리엄 피트 수상의 이름을 따서 피트 요새를 지었다. 요새 주위에 정착민이 늘어나 결국 피츠버그가 되었다.
미국의 식민지군이 독립 전쟁에서 영국군에 승리를 거둔 후, 피츠버그는 서부로 향하는 개척자의 시발점이 되었다. 1788년 피츠버그는 앨러게니 카운티의 소재지가 되었고, 1794년에는 자치 도시로 합병되었다.
산업의 발달[편집]
서부 정착자들이 제조품을 필요로 한 덕에 피츠버그에서는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였다. 1816년 도시가 합병되었고 당시 인구는 대략 5,000명이었다. 석탄과 석유의 매장들이 1800년대 중반으로 피츠버그가 철강과 유리 공업의 중심지가 되는 도움을 주었다.
교통의 발달 또한 피츠버그에서 산업 번영에 도움을 주었다. 도시에서 만든 평저선, 하천의 화물선과 증기선은 1800년대 초반에 오하이오 강과 미시시피강으로 사람과 물건을 실어 날랐다. 피츠버그와 필라델피아를 잇는 펜실베이니아 운하 시스템이 그 주요 라인을 1834년에 개통하였다. 1851년에는 철도가 피츠버그에 들어갔고, 그 당시 도시에 46,000명의 주민이 거주하였다.
남북 전쟁은 무기와 군수품을 위한 큰 수요를 가져왔다. 피츠버그는 북군의 주요 공급지가 되었다. 1800년대에는 앤드루 카네기와 헨리 클레이 프릭이 도시에 산업적 제국을 세웠다. 피츠버그의 제철소는 다리, 공장과 철도에 철강을 공급하여 미국 산업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산업의 번창에 따라 1800년대 후반 수천명의 근로자가 피츠버그에 왔는데 그중 많은 수는 남유럽과 중유럽에서 왔다. 1870년부터 1900년까지 도시의 인구는 세배 이상을 넘었으며, 86,076명에서 321,616명으로 뛰어올랐다. 1900년으로 봐서 세계의 유리와 철강의 절반이 피츠버그의 공장에서 왔다. 미국 철강 생산의 3분의 2가 피츠버그의 제철소에서 생산되었다.
1900년대 초기[편집]
1907년 앨러게니강의 북쪽 언덕에 있는 앨러게니시는 피츠버그시와 융합되었다. 더 많은 유럽 이민과 남부 출신 흑인의 입주는 1930년경 피츠버그 인구가 669,817명으로 증가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1936년 세인트 패트릭의 날에 앨러게니강과 모논가헬라강이 골든 트라이앵글에 홍수를 일으켜 74명의 사망과 큰 손해를 입혔다.
제2차 세계 대전[편집]
1941년 12월에 미국이 제2차 세계 대전에 연합국으로서 참전하였다. 그때부터 1945년 9월에 연합국이 승리할 때까지 피츠버그 지역의 제철소와 공장에서는 전쟁 물자를 위하여 철강, 유리 등 생산품을 주로 생산하였다. 전쟁 중 피츠버그 지역 제철소는 독일과 일본을 합친 동맹국 생산량보다 더 많은 철강을 생산하였다.
또 그 동안 피츠버그가 다수의 공공 단일 주택을 짓는 미국 내 첫 도시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도시가 전쟁관련 산업에 붐을 일으키면서 수천명의 사람이 그 직업을 구하러 피츠버그로 이주하였다. 이러한 이주로 주택이 부족해지자 지방과 연방 정부가 근로자를 위한 낮은 전세의 주택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도시 재개발[편집]
1946년 시장 데이비드 L. 로런스, 재정가 리처드 K. 멜런 등 도시 지도자는 도시 재개발 프로그램을 시작하였다. 시는 피츠버그의 오염된 공기와 물을 정화하기 위한 엄격한 연기 조절과 수자원 공해 조절 사업을 시작하였다. 1960년대에 정화 노력의 대부분이 완료되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많은 백인이 도시에 둘러싸인 외곽으로 이주하였다.
피츠버그 르네상스로 알려진 도시 재개발의 첫 단계는 1970년대 초반에 끝났는데 거기에는 주로 시내 및 힐 구역의 저지대에 있는 새로운 스포츠와 오락장을 포함하였다. 두 번째 르네상스는 1980년대에 시작되었으며, 집회 센터, 전차-지하철 시스템과 PPG 빌딩을 포함한 새로운 초고층 빌딩을 건설하였다.
최근의 발전[편집]
1980년과 1990년 사이에 큰 경제 문제로 인하여 피츠버그의 인구가 423,959명에서 369,879명으로 떨어졌다. 많은 젊은이가 일거리를 찾으러 다른 도시로 이주하였다. 1990년대 동안에 보건소와 다른 종업들이 가능해지면서 실업자 수가 줄었다.
1992년 피츠버그 국제공항이 개장되어 교통의 중심지가 추가되었다. 이런 개발에 불구하고도 피츠버그의 인구는 1990년과 2000년 사이에 또 다시 334,563명으로 떨어졌다.[3]
경제[편집]
피츠버그 지역의 경제는 1980년대에 큰 변화를 겪었다. 이전에는 중공업 - 현저히 철강 생산 -에 의지해 왔지만, 중공업이 쇠퇴하고 제철소와 다른 공장들이 폐업하자 실업자의 수가 증가하였다. 결국 다른 경제적 활동의 발전은 피츠버그의 경제적 조건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 오늘날 보건업과 교육이 지역의 경제에 큰 공헌을 한다. 금융업, 연구와 개발, 관광업도 다수의 근로자들을 고용한다. 제조업은 아직도 지방 주민의 수만명을 고용하지만, 지배적인 분야는 아니다.
제조업[편집]
피츠버그의 제철소는 이전에는 다양한 종류의 철강제품을 생산했지만, 오늘날은 주로 연장과 자동차용 전문 철강 제품을 생산한다. 피츠버그의 공장에서는 유리 제품, 합금, 화학품과 기계류가 생산되기도 한다. 피츠버그의 가장 큰 사기업은 주요 알루미늄 생산회사 알코아, 최고 철강 제조업 U.S. 스틸 주식회사와 유리, 페인트와 화학품 제조업 PPG 인더스트리이다. 식품회사 H. J. 하인즈 컴퍼니도 피츠버그에 본사를 두고 있다.
서비스업[편집]
피츠버그 지역은 의료 및 보건분야의 주요 중심지이다. 피츠버그 대학교 부속 의료 센터 (UPMC)는 간, 신장, 심장과 폐에 전문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문, 산업, 정부 연구의 연구소도 운영되고 있으며 그곳에서 일하는 공학자, 과학자, 기술자는 의학 기술, 컴퓨터 소프트웨어와 산업 기계 사용 같은 분야에 종사한다.
통신[편집]
피츠버그는 하나의 일간 신문 피츠버그 포스트-가제트가 있다. 그린스버그 근처에 있는 트리뷴-리뷰는 또한 피츠버그 판을 출간한다. KDKA는 1920년 방송을 시작할 때 미국에서 첫 상업적 라디오 방송국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교통[편집]
교통수단으로는 경전철 노선 2개와 버스가 주요 교통수단이다. 경전철의 경우 시내를 벗어나면 노면 전차로서 운행되며, 도심 지역 지하 구간에서는 요금이 무료라는 특징이 있다. 경전철들이 도시 남쪽 노선뿐이라 북쪽 지역에서는 버스가 주요 대중교통 수단이 되는데, 미국의 시내버스치고는 배차 간격이 짧은 편이라 교통이 딱히 불편하지는 않다. 그 외에도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인클라인 철도가 두 개나 운행 중이다. 강 건너 남쪽에 있으며 나무로 만들어져서 툭 치면 우르르 무너질 것 같은 객차를 와이어에 매달고 절벽을 오르내리는데 관광용이 아니다. 물론 관광 코스로 활용을 안 하는 건 아니어서, 버스에도 관광객을 겨냥한 광고가 붙어 있고 기념품도 판다. 주요 철도와 주간 고속도로가 있으며, 다운타운과 남부 외곽은 전차-지하철로 연결된다. 도시로 원료를 나르고, 도시에서 생산품을 싣는 배는 강을 통해 움직인다.
피츠버그와 피츠버그 광역권을 담당하는 피츠버그 국제공항도 있는데, 존 F. 케네디 국제공항,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 토론토 피어슨 국제공항, 칸쿤 국제공항과 같은 아메리카의 공항부터 무려 런던 히스로 공항까지 가는 항공편도 운항 중에 있다.[4]
피츠버그 대학교[편집]
피츠버그 대학교(영어: University of Pittsburgh)는 1787년에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시에 세워진 미국의 유서 깊은 연구중심 대학이다. 미국에서는 통상 핏(Pitt)이라 불리며, 현재의 이름은 1908년에 정해졌다. 본래 사립 대학이었으나 1966년부터 펜실베이니아 주정부의 재정지원을 받는(state-related) 준공립 대학으로 바뀌었다. 피츠버그 대학병원(University of Pittsburgh Medical Center)과도 연계되어 있으며, 의대분야 명성이 매우 높다. 한국에는 황우석 사건으로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캠퍼스 중심에 서 있는 배움의 전당(Cathedral of Learning)은 163m 높이의 42층 건물로 1937년에 완공되었으며,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학교 건물로서 피츠버그대의 상징 중 하나이다. 2015년 배움의 전당내에 "성균관의 명륜당"(304호)이 들어서기도 하였다. 피츠버그대에는 팬서(Panthers)라는 이름을 가진 미식축구, 농구 등의 운동부가 있다.
피츠버그 대학교sms 학부보다, 의학, 간호, 약학, 보건과학, 사회복지, 철학 및 사회과학대학(원)을 중심으로 한 대학원 평판이 세계적으로 높다. 미국의 주간지 U.S. News & World Report의 2016년 평가에 의하면 북미 학부 평가에서는 66위, 학부와 대학원을 모두 평가하는 전 세계 대학평가에서는 세계 47위를 차지하였다. 이 외에도 2015 세계대학랭킹센터 평가 46위, 네달란드 라이덴 대학의 2016 CWTS 평가 세계 25위, 2016 영국 타임즈 고등교육평가 세계 79위, 2017 상하이 세계학술대회순위 68위, 그리고 2015 QS 세계대학평가로는 133위를 기록하였다. 한편, 미국 National Science Foundation (NSF) 2014년 보고에 의하면 북미 연구개발비 투자액 순위로는 16위를 차지하였다.[5]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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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피츠버그〉, 《위키백과》
- 〈피츠버그 대학교〉, 《위키백과》
- 〈피츠버그〉, 《나무위키》
- 〈피츠버그〉, 《요다위키》
- 〈피츠버그(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북아메리카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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