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즈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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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즈먼해(Tasman Sea)는 호주 남동부와 뉴질랜드 서부 사이에 있는 바다이다. 타스만해라고도 부른다. 태즈먼해는 면적 약 230km², 동서 길이 약 2,000km, 남북으로 약 2800km, 평균수심 4,000∼5,000m, 호주 동해안 부근은 심한 급경사로 가장 깊은 곳은 5,944m에 달한다. 남태평양에 딸린 바다로 북쪽은 산호해(珊瑚海), 남서쪽은 인도양으로 이어진다. 명칭은 1642년 이 바다를 발견한 네덜란드의 탐험가 아벨 타스만(Abel Janszoon Tasman)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타스만은 뉴질랜드와 태즈메이니아섬을 발견한 첫 유럽인이다.[1]
개요
태즈먼해의 남쪽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하는 저기압에 의해 지나간다. 이러한 편서풍의 북쪽 한계는 약 40°S이다. 4월부터 10월까지 남쪽 겨울 동안 이 바람의 북쪽 가지는 서쪽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무역 바람에 맞선다. 따라서 바다는 이 기간 동안 남서쪽에서 바람이 자주 분다. 11월부터 3월까지 호주 여름에는 무역풍의 남쪽 지류가 서풍을 거슬러 올라가 이 지역에서 더 많은 바람 활동을 일으킨다. 태즈먼해의 미드오션 능선은 8500만 년에서 5500만 년 전 사이에 호주와 뉴질랜드가 초대륙 곤드와나의 붕괴로 갈라지면서 발달했으며 호주와 뉴질랜드의 대륙 경계선 사이의 대략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다. 뉴질랜드의 많은 부분이 물에 잠겼기 때문에 이 능선은 뉴질랜드보다 호주 해안에 훨씬 더 가깝다. 태즈먼해는 호주와 뉴질랜드의 주요 섬 근처에 위치한 해안 섬들과는 상당히 다른 여러 개의 중간해 섬군을 특징으로 한다. 심해 조사선인 RV 탕가로아호가 바다를 탐험해 500종의 물고기와 1300종의 무척추동물을 발견했다. 1876년 호주와 뉴질랜드를 연결하는 최초의 전신 케이블이 태즈먼해에 설치되었다. 몽크리에프와 후드는 1928년에 처음으로 비행기로 태스맨해 횡단 비행을 시도했으며 첫 번째 성공적인 해상 비행은 찰스 킹스포드 스미스와 찰스 울름에 의해 1928년 말에 이루어졌다. 혼자서 바다를 건너 노를 저은 최초의 사람은 1977년 콜린 퀸시(Colin Quincey)다.[2][3][4][5]
태즈메이니아섬
태즈메이니아섬(영어: Tasmania)은 오스트레일리아 남동부에 위치한 오스트레일리아 최대의 섬으로 태즈메이니아주의 본섬이다. 태즈메이니아 섬은 인도양과 태평양으로 둘러싸인 상태로 배스 해협(영어: Bass Strait)에 의해 오스트레일리아 본토로부터 분리된 온대 기후의 호주 유일의 섬이다. 섬은 세로 최장 거리 365km, 가로 거리 306km, 면적은 6만 7800km², 대지상(臺地狀)을 이루고 서부는 산지, 남단 사우스이스트 곶에서 남단대륙에 이르는 선은 인도양과 대서양과의 경계를 이룬다. 태즈메이니아는 '하트 모양의 섬'이며 '사과 모양의 섬'으로 푸른 녹색 계곡, 한적한 마을과 촌 그리고 아직 개발되지 않은 해안선을 가지고 있고, 대부분이 고대 조립현무암으로 구성된 땅이다. 1642년 11월 24일 섬의 목격을 최초로 보고한 네덜란드 탐험가 아벌 타스만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그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통치자였던, 그의 후원자 안토니 판디먼의 이름을 따서 그 섬을 안토니 판디먼의 땅이라 이름지었다. 그 이름은 후에 영국에 의해 판디먼의 땅으로 축소되었다. 1856년 1월 1일 그곳의 최초 유럽인 발견자에 경의를 표하여 공식적으로 개명되었다.[6][7]
태즈메이니아주 또는 태즈매니아(영어: Tasmania)는 태즈메이니아섬과 주변 섬으로 이루어진 오스트레일리아의 주이다. 대륙의 동남쪽 240km에 위치하며, 대륙으로부터 배스 해협에 의해 나뉜다. 태즈메이니아주는 태즈메이니아섬과 주위 섬들을 포함한다. 태즈메이니아는 어림 494,520명의 인구와 68,401km²의 면적을 갖는다. 태즈메이니아는 그곳의 크기와 상대적으로 훼손되지 않은 자연 환경의 덕택에 "자연의 주"와 "영감의 섬"으로 홍보된다. 공식적으로 거의 태즈메이니아의 37%가 국립공원, 세계문화유산으로 보호 중이다. 주도와 가장 큰 도시는 호바트(영어: Hobart)이다. 다른 주요한 거주지는 북쪽의 론서스턴, 북서쪽의 데번포트, 버니 등이 있다. 남극에 가까운 매쿼리섬은 또한 휴온 벨리 카운실 지방 정부 구역의 부분으로서, 주 관리 아래 있다. 온대 기후로 동식물상이 특이한 곳이며 목양, 낙농이 주산업으로 사과 등 과수 재배가 성하다. 구리, 아연 등 광산자원이 풍부하고 구리, 석탄, 주석, 양모, 과일통조림, 감자를 수출한다.[8]
태즈메이니아에 최초로 거주한 것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일종인 태즈메이니아 원주민 그룹이었다. 대략 10,000년 전에 해수면의 상승으로 태즈메이니아는 본토 오스트레일리아로부터 분리되어 섬이 되었고, 원주민들은 이후 수천 년 간 외부와 단절되어 살았다. 1803년 영국의 정착 시기에 태즈메이니아 원주민 인구는 5,000명과 10,000명 사이로 집계되었으며 크게 9개의 종족으로 분류되었다. 전쟁과 학대의 피해는 물론, 어떤 면역도 없었던 상황에서 유입된 낯선 전염병으로 인해, 인구는 1833년까지 300명으로 급속히 감소되었다. 원주민 인구의 거의 대다수가 조지 오거스터스 로빈슨에 의해 플린더스 섬으로 강제 이주당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마지막 순수 혈통의 태즈메이니아 애보리진으로 간주되는 트루가니니(Truganini, 1812년 ~ 1876년)라는 여성을 마지막으로 이들의 민족 정체성은 사실상 대가 끊겼다.
산호해
산호해(珊瑚海) 또는 코럴해(Coral Sea)는 오스트레일리아 북동부에 인접한 바다이다. 태평양, 솔로몬 제도와 오스트레일리아 사이에 있는 해역이다. 이 해역의 섬과 연안에는 여러 종류의 산호초가 발달하여 있으며 면적은 479만 1000㎢이다. 산호해라는 이름은 산호초 지대인 그레이트배리어리프에서 유래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2년 5월 이곳에서 미국과 일본의 항공모함 함대 사이에 최초의 본격적 해 ·공(海空) 격전이 벌어졌다. [9] 산호해는 태평양 남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호주 북동부 해안을 따라 2,000km까지 뻗어있다. 1953년 국제 수문학(水文學) 회의에서 그 범위가 정해졌다. 서쪽은 뉴기니섬 남단부터 오스트레일리아 동해안을 따라 남위 30°의 엘리자베스 환초(環礁)까지, 동쪽은 비스마크, 솔로몬 제도, 뉴헤브리디스 제도, 누벨칼레도니를 잇는 선까지이다. 남쪽 경계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대체로 남위 25°선 부근이다. 중심부에는 산호해 해분과 같은 심해도 있으나 오스트레일리아 쪽은 얕으며 그레이트배리어리프(大堡礁)를 비롯하여 많은 산호초가 발달하였다. 북부의 뉴브리튼 해구의 깊이는 9,140m, 뉴헤브리디스 해구는 9,035m이며, 산호해 해분은 3,000∼4,500m이다. 오스트레일리아와 아시아를 잇는 선박 항로가 이 해역을 통과하지만 영국해군 수로국(水路局)은 안전항해를 위해서는 그레이트배리어리프의 동쪽 360km의 코스를 취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이 해역에서는 1∼4월에 사이클론이 발생하기 때문에 1922년부터 윌리스섬에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의 기상관측소가 설립되었다. 이 해역의 저평한 산호초 위에는 식물이 거의 자라지 않는다. 바다는 수많은 섬과 암초뿐만 아니라 1981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세계에서 가장 큰 암초 시스템인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Great Barrier Reef, GBR)를 포함하고 있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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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 〈태즈먼해〉, 《위키백과》
- 〈태즈메이니아섬〉, 《위키백과》
- 〈태즈메이니아주〉, 《위키백과》
- 〈산호해〉, 《위키백과》
- 〈태즈먼 해〉, 《요다위키》
- "Tasman Sea", Wikipedia
- 〈태즈먼 해〉, 《누리위키》
- 〈태즈먼해〉, 《네이버 지식백과》
- 〈태즈메이니아 섬〉,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
오스트랄라시아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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