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타시
니가타시(일본어: 新潟市)는 일본 니가타현 북부의 가에쓰(下越) 지방에 있는 시이며, 니가타현의 현청 소재지이다. 1889년(메이지 22년) 4월 1일 시제에 의해 설치된 시로 2007년 4월 1일 혼슈(本州)의 일본해 측에서는 처음으로 정령지정도시가 되었다. 시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시나노가와(信濃川) 하구부에는 예로부터 항구가 개항되어, 시나노가와(信濃川)·아가노가와(阿賀野川) 수계의 하천 교통과 해상 교통의 네트워크가 교차하는 결절점으로서 기능해왔다. 에치고평야를 배경으로 농산물이 집산되고 상업이 매우 성하다. 시나노강 동안(東岸)에는 조선·기계·철강·금속·비료·제지·섬유를 중심으로 하며, 중요한 임해 중공업도시를 형성하고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쌀 산지인 에치고평야에 있으므로 떡, 부꾸미 등 쌀로 만든 식품의 생산이 번성한 한편, 바다와 접하고 있으므로 어묵의 생산도 번성하다. 또 튤립, 배와 같은 특산품도 있다.
개요[편집]
- 지방: 중부지방, 호쿠리쿠 지방
- 도도부현: 니가타현
- 시청소재지: 니가타현 니가타시 주오 구 学校町通一番町602-1
- 면적: 726.45km²
- 인구: 772,388명(2023년10월 1일 추정)
- 시장: 나카하라 야이치 (中原 八一)
- 정부 공식 홈페이지: https://www.city.niigata.lg.jp/multilingual/
역사[편집]
니가타의 역사는 에치고평야(越後平野)가 형성된 조몬시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니이츠구릉(新津丘陵)을 기준으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사냥 및 채집을 통해 살아가기 시작하였다. 이는 니이츠구릉에서 발굴된 여러 석기 사냥 도구들을 통해 증명된바 있다. 에치고 평야는 조몬시대에 해수면이 상승되면서 운반된 토사들이 퇴적되었고, 이것이 낮고 평평한 평야가 된 것이었다. 약 6000년 전 조몬시대 전기에 코난구(江南区), 미나미구(南区), 니시칸구(西蒲区) 지방에 취락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확장되기 시작하였다.
야요이시대에 니가타시지역은 북진하고 있던 서일본의 문화와 동북지방의 문화가 만나는 지역으로 발전하였다. 이 시기에는 주로 니이츠구릉(新津丘陵)과 카쿠다산록(角田山麓) 등 고지에 취락이 형성되었는데 이는 야요이시대에 오랫동안 진행되었던 왜국대란(倭国大乱)을 피하기 위한 방책이었다. 이중 니이츠구릉에 형성된 후루츠하치만산유적(古津八幡山遺跡)은 지금도 일본해 측 최북의 대규모 고지성 취락으로 알려져 있으며 니가타시의 대표 유적지중 하나이다.
중세시기로 넘어오게 되면 니이츠구릉과 카쿠다산록에 산성과 사산관들이 만들어지게 되며 카지씨(加地氏)・카나츠씨(金津氏)・니이츠씨(新津氏) 등의 재지무사들이 실권을 가지고 니가타지역의 평야를 개발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장원의 개발로 이어졌고 주요 무사들을 준심으로 장원이 발달하였다. 12세기 말 가마쿠라 막부가 성립되자 에치고국(越後国)의 장원에 막부 휘하의 무사들이 이주해왔고 무사들에 의하여 가네츠호(金津保) 등이 시역으로 개발되었지만 아시누마(芦沼) 등의 하류지역은 개발되지 못한상태로 남게 되었다.
니가타의 지명이 기록에 나타난 시기는 일본의 전국시대였던 1520년이다. 시나노카와의 우안에 칸바라노츠(蒲原津)와 아카노카와(阿賀野川)의 하구(현재 츠우센카와(通船川)하구)우안의 눗타리항(沼垂湊)에 시나노카와(信濃川) 하구 좌안의 니가타진(新潟津)가 더해져 미카즈(三か津)라고 불려졌다. 다만, 칸바라노츠가 이후 항구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자 니카다진이 시나노강과 아가노강의 하구를 대표하는 항구가 되면서 이 지역 이름이 니가타로 불려지게 되었다. 이 지역은 센고쿠 시대에 우에스기 겐신의 지배하에 번영하였다. 17세기에 니가타의 주섬에 운하 시스템이 건설되었다. 이 기간에 시나노 강과 아기노 강의 유로는 점차 변화하여 같은 위치해서 동해로 흘러들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니가타는 항구 마을로써 번영하게 되었고 동해를 가로지르는 일본의 교역선들을 위한 항구 역할을 하였다.
근세 시대에 들어오게 되면 병농분리가 이루어져 마을관리인을 중심으로 촌락이 운영되는 시기가 시작되었다. 시나노강과 아가노강의 하류는 이시기에 개발이 진행되어 메이지 시대 이후까지 촌락 개발과 시가지화가 진행되었다. 1730년에 아가노 강 수계에 마쓰가사키 운하가 건설하였으나 1731년의 홍수로 파괴되었고 강의 유로는 현재와 같이 바뀌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니가타 항으로 흘러드는 물의 양이 줄었고 매립지의 개발로 개간이 진행되었다. 1858년에 미일수호통상조약에 따라 요코하마항, 하코다테항, 고베항, 나가사키항과 동시에 개항장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항구의 수심이 얕아서 사실상의 개항은 1869년까지 미루어졌다. 1869년 1월 1일에 메이지 신정부는 니가타항을 개항하고 1870년 스이바라현(水原県)을 니가타현으로 고치고 니가타쵸(新潟町)를 현청소재지로 선정하였다. 현의 범위는 1871년 폐번치현을 거쳐 1886년 현재의 현역으로 완성되었다.
이와 더불어 1879년 군구정촌편제법을 실시하여 니가타현은 4개의 군으로 나뉘었고, 시역의 정촌을 북부, 중부, 서부관할로 나누고 니가타초를 현내의 유일한 구(니가타구)로 선정하였다. 1886년, 시나노 강에 반다이 교가 세워져 동쪽의 니가타와 서쪽의 눗타리가 상호 연결되어 시역이 확장되었으며 1889년에는 시정촌제를 실시하여 1구 600여 정촌을 1시 123정촌으로 통합하여 니가타구는 니가타시로 승격하였다. 이후 1914년에는 눗타리 정을 합병하여 니가타시의 영역은 더욱 확장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니가타는 수도인 도쿄도와 동해를 연결하는 전략적인 위치로서 군인과 이민자들이 만주국을 포함한 아시아 대륙으로 가는 주요 지점이었다. 1945년에 전쟁이 끝나갈 무렵에 니가타는 히로시마, 고쿠라, 나가사키와 함께 일본이 항복하지 않을 경우 원자폭탄을 투하할 후보지 중 하나였다. 니가타 현 지사는 폭탄 투하가 임박했다는 소문을 듣고 주민들을 피난시켰고 한동안 도시는 완전히 버려졌다. 기상 조건이 좋지 않았던 덕에 원폭 투하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대신 나가사키에 투하되었다.
1950년에 니가타역이 완공되면서 반다이교의 시가지는 확대되었다. 전쟁때 폭격으로 인한 피해는 심하지 않았지만, 1955년에 화재가 발생해 도심이 파괴되었으나 얼마 후 복구되었다. 1964년에 도시 곳곳의 운하를 매립해 도로를 만들었다. 1964년 6월 16일 7.5의 지진이 발생해 29명이 사망하고 1,960채의 건물이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6,640채가 일부 파괴되었다. 1965년에 니가타를 흐르는 아가노강이 쇼와 전공의 화학 공장에서 나온 메틸수은에 오염되었다. 690명 이상의 사람들이 미나마타병 증상을 보였고 니가타 미나마타 병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1982년에 조에쓰 신칸센의 니가타역-오미야 역 구간이 개통하였고 1985년에는 우에노역까지 연장되었다. 1991년에는 도쿄역까지 연장되었다. 니가타 스타디움에서는 2002년 FIFA 월드컵 때 3개의 경기가 열렸다.
2001년부터 2005년까지의 연이은 합병으로 니가타 시의 인구와 면적은 증가하였다. 2005년 3월 21일에는 주변에 있었던 니쓰시(新津市), 시로네시(白根市), 도요사카시(豊栄市), 고스도정(小須戸町), 요코고시정(横越町), 가메다 정(亀田町), 이와무로촌(岩室村), 니시카와정(西川町), 아지카타촌(味方村), 가타히가시촌(潟東村), 쓰키가타촌(月潟村), 나카노쿠치촌(中之口村)을 편입했으며, 더욱이 2005년 10월 10일에는 마키 정(巻町)을 편입함으로써 인구가 80만명을 넘었다. 2007년 4월 1일에 니가타 시는 일본의 동해안 도시 중에서는 처음으로 정령지정도시가 되었다.
지리[편집]
니가타는 혼슈섬 니가타현의 북부에 위치한 도시로 북쪽으로 동해와 닿아있는 해안 도시이다. 지형은 전체적으로 평탄하다. 시나노강(Shinano River)과 아가노강(Agano River)이 만든 삼각주에 위치해 비옥한 해안평야가 드넓게 펼쳐져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후쿠시마가타(Fukushimagata) 습지와 같은 여러 습지가 곳곳에 분포해있고 특히 사카타(Sakata) 습지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95년 람사르 협약에 따른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로 등록되어 있다.
이처럼 동해와 닿아있고 두 개의 강과 그 지류들이 도시 곳곳을 흐르며 여러 습지가 위치하기 때문에 니가타는 물의 도시라 불릴 정도로 수자원이 풍부하다. 하지만 낮은 고도와 지나치게 풍부한 수자원으로 인해 수해가 자주 발생해 역사적으로 역사적으로 홍수 조절과 간척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니가타의 시가지는 동해 해안과 강을 따라 발달해있으며 나머지는 대부분 풍부한 수자원을 바탕으로 한 경작지가 차지한다.
니가타시는 습한 아열대기후에 속하지만, 같은 기후구분지역에 비해 연간 강설량이 더 많은 것이 특징이다. 겨울철 동해를 통해 불어오는 춥고 습한 바람에 의해 눈이 많이 내리기 때문인데, 바람을 막아주는 사도가섬의 존재와 니가타의 낮은 고도로 인해 니가타현의 다른 도시에 비하면 적설량은 적은 편이다. 니가타의 여름은 평균 23~28℃로 더운 편이고 가끔 35℃를 넘는 고온을 기록하기도 한다. 연강수량은 약 1,700mm로 연중 고른 강수분포를 보이는 편이고 7월에 가장 많은 비가 내리고 11월과 12월에는 눈이 많이 내린다.
행정구역[편집]
교토시는 11개의 구로 구성되었다.
도시구조[편집]
니가타시는 2001년 1월 1일에 구로사이마쵸(黒埼町)와 합병 후, 2005년 3월 21일에 니가타시(新潟市)·니이즈시(新津市)·시라네시(白根市)·토요에이시(豊栄市)·고스도초(小須戸町)·요코고시쵸(横越町)·가메다초(亀田町)·이와무로무라(岩室村)·니시카와초(西川町)·아지카다무라(味方村)·가타하시무라(潟東村)·쓰키가타무라(月潟村)·나카노구치무라(中之口村)의 인근 12시정촌이 합병되고 같은 해 10월 10일에는 마키마치(巻町)와 합병해, 인구 약 81만명의 도시가 되었다.
니가타시의 각구에는 이미지색이 설정되어있다. 이 색은 6,399건의 의견과 나가타시의 도시경관 자문을 참고하여 시민대표와 각구의 대표가 '구의 이미지칼라 조정회의'를 거쳐 결정했다.
- 키타구(北区)의 경우 시골 풍경, 거대한 잎을 펼치는 후쿠시마뻘의 가시연(オニバス),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소나무 숲, 다카모리(高森)의 큰 느티나무 등 풍부한 자연이 대표적이기 때문에 이미지 칼라를 "네이처 그린"으로 설정하였다.
- 히가시구(東区)는 일본해와 일본을 대표하는 시나노강이나 아가노가와, 츠우센카와(通船川), 쿠리노기가와(栗ノ木川) 등 풍부한 수운과 함께 니가타 공항이나 니가타 서항 등, 하늘과 바다의 현관구다. 따라서 이를 상징하는 "아쿠아 블루"로 색을 정하였다.
- 주오구(中央区)는 북으로는 일본해, 중앙과 동쪽에는 강이 흐렀기 때문에 발달한 수운으로 인한 물자가 풍부한 지역이었다. 국가의 중요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주오구가 목표로 하는 컨셉 "도심이 활기찬, 사람들이 모여, 교류하는 물가의 거리"를 상징하는 "워터 프론트 블루"로 선정하였다.
- 코난구(江南区)는 주변 6개의 구와 경계를 접하고 있으며 물류의 거점지역이었다. 물과 초록으로 둘러쌓인 대지가 조화를 이루는 지역으로 이를 상징하는 벼나무의 신록 "스프링 그린"으로 선정하였다.
- 아키하구(秋葉区)는 "꽃과 초록에 둘러싸인, 쾌적하고 활기찬 거리"를 구의 장래상으로서 설정해, 시골이나 구릉에 둘러싸인 풍부한 자연 환경을 살린 마을 만들기를 진행하는 지역이다. 사계절마다 풍경과 색을 바꿔가는 초목과 꽃들을 상징하는「플로럴 그린」을 구의 색으로 선정하였다.
- 미나미구(南区)는 비옥한 농지에서는 쌀, 야채, 과일 등이 생산되어 사계절 동안 꽃이 피는 경관이 있는 도시로 여러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자연의 대지와 강에서불어오는 상쾌한 바람, 하늘을 나는 연을 상징하는 "브리즈(소요풍) 블루"로 색을 정하였다.
- 니시구(西区)는 도시와 농촌이 공생하는 지역으로 사람과 환경에 친화적인 지역이다. 특히 일본해를 바라보는 석양 라인의 전망이 유명하며 매년 석양 콘서트를 개최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 구민의 활력을 느끼게 하는 이 석양의 색 "선셋 오렌지"선정하였다.
- 니시카마구(西蒲区)는 가쿠다산(角田山)·다호산(多宝山)·에치고시치우라(越後七浦)해안 등 풍부한 자연 관광 자원이 있는 도시이며 사계절마다 풍경과 색조를 바꾸어가는 논을 가지고 있는 지역이다. 가을에는 황금빛 벼 이삭이 구 전체를 감싸고 있다. 이러한 풍광을 "하베스트(수확) 옐로우"로 상징하였다.
니가타시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후루마치(古町)를 중심으로 하는 좌안측(니가타섬)은 1655년 이후 니가타의 업무·상업·음식 등의 복합적 중심지로서 기능하였다. 후루마치도리(古町通), 혼마치도리(本町通), 니시호리도리(西堀通)등이 상업시설, 상점가 등이 밀집되어있다. 한편 하쿠산공원(白山公園) 주변에는 시청이나 니카타현민회관, 니카타시민예술회관 등 공공시설, 문화시설들이 모여 있다. 니카타섬지역은 예로부터 시가지로 발달하였으며 대규모공습을 받지 않아 많은 건물이 유지되었지만, 1955년 니카타대화재로 인해서 소실된 건물들이 복구되지 못하였다. 또한 니가타 대학, 니가타현청의 교외 이전은 니가타섬 자체의 인구 감소를 추동하였다.(1965년 약 13만명에서 2005년 약 6만명으로 반감), 이외에도 시나노강(信濃川) 우안측의 택지 개발 등에 의한 시 전체의 인구 분포 변화의 영향도 있어, 상업 기능은 만대(万代) 등 다른 지역이 담당하고 있다.
우안측의 만대는 후루마치(古町)・혼마치(本町)와 니가타역 만대구의 중간지점에 위치하는 지역이다. 다이쇼 말기 오코즈(大河津)분수로통수에 의해 좁혀진 시나노가와(信濃川)의 유로터가 매립되면서 개발된 지구로, 1929년 도시 개발이 시작되어 전후부터 본격적으로 개발이 진행되었다. 1970년대 전반부터 니가타 교통의 노선버스의 운행 거점 재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인접하는 반다이(八千代)지역 내에 대형 상업 시설이 집중하는 상업지구인 "만대 시테이(万代シテイ)"와 "만대 시 테이 버스 센터(万代シテイバスセンター)"가 정비 되어 주로 젊은층을 위한 상업지로 개발되었다. 니가타역 남쪽 출구에서 도야노가타(鳥屋野潟周) 주변에 걸친 지역(사사데선(笹出線) 무라토리선(紫鳥線), 벤텐선(弁天線), 바이패스 연선(バイパス沿線))은 니가타 바이패스가 개통한 1970년대부터 도시 개발이 본격화되었다. 니가타역 북쪽의 만대구 주변은 1958년 니가타역 이전 후부터 개발이 시작되어 1964년 니가타 국민체육대회까지까지 급속히 시가지화가 진행되었다. 1982년 조에쓰신칸센(上越新幹線) 개통에 맞춰 남쪽 출입구가 개설된 것을 전후해 플라카 니가타(プラーカ新潟)의 개업 등 급속히 시가지화가 진행되어 상업 거점이 되었다.
후루마치(古町)에서 니가타역 만대구까지의 도심축은 마치야코지(柾谷小路)·만대교거리를 따라 형성되어있다. 이들을 연결하는 루트로는 기간버스인 “'반다이바시 라인(萬代橋ライン)”이 있다. 니가타역을 경계로 남북으로 시가지가 따로 발전해 왔기 때문에 젊은 인구가 많은 역 남쪽까지 직통으로 가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다. 이로 인해, 니가타역의 연속입체교차 사업과 버스망이나 기간 도로의 재편이 행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부도심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지정은 되어 있지 않지만, 니가타섬 측을 도심, 우안측을 부도심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 최근에는 니가타현청이나 나라의 합동청사를 중심으로 하는 신코마치(新光町) ·미사키초(美咲町) 지구에 행정, 업무 기능이 집중되어 있어, 이곳을 부도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오구는 도시고속도로에 준하는 니이가타시 바이패스망으로 교외와 연결되어 있으며, 인터체인지 근처를 중심으로 교외형 상업거점들이 형성되어있다.
경제[편집]
니가타시의 시내 총생산은, 2019년 기준 3조 2,666억엔이며 경제성장률은 -0.8%, 1인당 시민 소득은 302.5만엔으로 책정되었다. 다른 정령도시에 비해 시역 내에 논 등의 경작지가 많지만, 1차산업의 비율은 1% 정도로 전체를 차지하는 비율은 낮다. 그럼에도 쌀 생산량과 튤립 재배가 일본 내에서 제일 많은 생산량을 차지한다. 3차산업이 전체의 약 80%를 차지하고, 다음으로 2차산업이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1차산업을 살펴보면 우선 니가타시 지역은 시나노 강과 아가노강 하류부에 위치하여 평지가 많고 해안부에는 모래언덕이 발달해 있기 때문에 농업에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시역의 약 절반정도가 논·논밭 등 농지가 차지하고 있으며, 농업도 기간 산업 중 하나이지만 그 경작비율은 매우 낮은 편이다. 시역내의 농가의 호수는 13,797호(2005년)로, 경지 면적은 34,100ha(2008년)이며 특히 논 면적은 29,400ha로 전국의 시읍면에서 가장 넓으며 시즈오카현, 돗토리현, 고치현의 경작면적과 비교하면 많은 경작지를 보유하고 있다. 농업 산출액은 655.3억엔(2006년)으로 전국시읍면 3위, 정령시로서는1, 2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식량 자급률은 63%(2005년)으로 이 또한 정령시중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자랑한다. 이러한 자원을 바탕으로 니가타시는 「전원형 정령시」를 표방하여 도시의 미래상으로 도시 기능과 풍부한 농업 자원을 융합시키고 있다.
이러한 시의 특징에 따라 니가타시는 2014년 3월 28일에 국가 전략 특별 구역「대규모 농업의 개혁 거점」으로 지정되었다. 이에 2015년 6월 5개의 농업생산법인들이 선정되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코난구(江南区)에 「로손팜니가타」, 주오구(中央区)에「니카타 구보타」,「아이스 에프넷 라이프 니가타」, 아키하구(秋葉区)에「WPPC」, 히가시구(東区)에「ars-dining」이 농업개혁거점사업에 참여중에 있다.
어업의 경우에도 바다와 2개의 하천을 기반으로 발달하였다. 니가타항 서항구의 반다이섬(万代島)의 어항구가 연안 어업·해안 어업의 기지로 활용되고 있으며, 가에츠지방(下越地方) 의 해면어업의 중추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그 외, 시역에는 4개소의 어항(松浜漁港, 新川漁港, 巻漁港, 間瀬漁港)이 소재해, 모두 해안 어업을 실시하고 있다.
2차산업의 경우 정유산업이 주로 발달하였다. 니가타시 지역은 예로부터 원유와 천연가스의 매장지로 알려져있었다. 아키하구(秋葉区) 니쓰지구(新津地区) 남동부에 있는 유전에서 예로부터 원유의 채취가 이루어졌는데, 메이지시대부터는 근대화가 진행되어 시추에 의한 채굴이 시작되었으며 구니쓰시에서는 대기업 및 중소기업을 포함한 많은 사업자가 유전과 정유소를 두었다. 다이쇼 시대로 넘어와서는 일본에서 제일 많은 산유량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전쟁 후 자원이 고갈되어 여러 기업들이 철수하기 시작했으며 1996년에 모든 채굴을 끝낸 상황이다. 1950년대 이후 니가타 서항구에 대기업들이 석유정제플랜트를두고 원유의 수입과 정제를 담당하고 있다가 이 또한 1990년대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제조업의 경우 기계공업, 금속공업, 제지업, 화학공업, 식품제조업 등 다종다양한 공업이 발달되어있으며 주로 호쿠리쿠공업지역(北陸工業地域)을 중심으로 공장이 밀집되어있다.
니가타시의 산업 중 80%의 생산액을 책임지고 있는 3차산업의 경우 정보통신업, 출판업, 상업, 백화점 등의 산업들이 있는데, 그중 특기할 것은 컨텐츠제작회사들이다. 특히 애니메이션제작회사로 알려진 프로덕션 아이지(プロダクション・アイジー)와 매직버스(マジックバス)가 니가타에 위치하고 있다.
교통[편집]
니가타시와 그 주변은 혼슈 니혼카이 측의 교통 결절점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철도에서는 JR 동일본 의 조에쓰 신칸센 을 비롯해 니가타역 을 중심으로 니가타현 내의 조에쓰 지방이나 나카에츠 지방, 도호쿠 지방 등을 연결하는 특급 · 쾌속열차 가 운행되고 있다. 도로 교통에서는 고속도로 가 니가타시를 중심으로 호쿠리쿠 자동차도로(北陸自動車道), 이와고시 자동차도로(磐越自動車道) , 니혼카이도호쿠 자동차 도로(日本海東北自動車道)가 방사상으로 퍼져 반다이시 테이 버스 센터(万代シテイバスセンター)를 거점으로 고속 버스 노선망이 현내외의 주요 도시를 연결하고 있다.
특히 현내선 고속버스 노선은 시내 중심부의 번화가나 주요 시설에 직접 접근할 수 있는 이점을 살려 각 노선 모두 많은 빈도로 운행되고 있다. 나아가 국도·현도 등 일반 도로에서도 교외를 경유하는 우회도로망이 발달되어 있어 시내외 각지로의 이동 및 도시 간 수송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니가타 공항의 경우 니가타시 히가시구에 해있으며 국가가 관리하는 국영 공항이다. 북측은 일본해, 동쪽은 아가노강의 하구, 서쪽은 시나노강 하구부근에 면하고 있다. 동서 냉전기였던 1973년 6월, 당시의 소련의 하바롭스크노비공항과 아에로플로트와 일본항공(주)의 공동정기편을 취항하였고 니가타항과 함께 동일본의 창구가 되었다. 1979년에는 한국의 김포국제공항과 정기항공편을 취항하는 등 국제선이 비교적 빠른 단계에서 개설된 지방공항 중 하나이다. 냉전 종결 후에 러시아 항공사와 나리타국제공항 사이에 탑승이 자유화되어, 러시아 항공사의 탑승은 없어졌지만, 현재도 서울이나 타이베이, 상하이나 하얼빈 사이의 항공편이 취항되어있다.
바다를 면하고있는 니가타의 특성상 니가타항은 해상교통의 요충으로서 국제거점항만, 핵심국제항만, 일본해측 거점항 중 종합적 거점항으로 지정되어 있다. 1858년 미일수호통상조약을 통해 개항된 5항구 중 하나로 지정되었으며 현재까지도 혼슈 일본해측의 해상 교통의 요충의 하나가 되고 있다. 부문별로는 국제해상 컨테이너와 액화천연가스의 2부문 거점항으로 지정되어 있다.
인구[편집]
2023년 4월 1일 기준 니가타시의 인구는 774,383명이며 세대수는 347,437세대이다. 니가타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시이며 우라니혼(裏日本,일본의 동해 빗면지역에 대한 호칭)에서도 가장 큰 도시이다. 남성인구는 372,371명, 여성인구는 402,012명으로 여성의 인구수가 더 많으며 세대수는 347,756세대이며 레이와시대(2019년 이후)에 들어와서는 세대수에 큰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 2015년 국세조사에 따르면 니가타시의 인구 총수는 정령도시들 가운데 15위를 차지하였다.
구별 인구를 보면 주요 행정시설들이 밀집되어있는 주오구(中央区)의 인구가 130,928명으로 가장 많으며 다음으로 니시구(西区)가 158,498명, 히가시구(東区)가 130,928명으로 다음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구들은 모두 인구가 10만명이 안되는 소도시로 아키하구(秋葉区) 73,370명, 키타구(北区) 70,979명, 코난구(江南区) 67,584명, 니시칸구(西蒲区) 52,577명, 미나미구(南区) 42,225으로 구성되어있다.
니가타시의 노동인구는 총 391,863명으로 농업과 어업종사자수가 많은 지역의 특성상 1차산업과 2차산업, 3차산업의 종사자 수를 구분해보면 농업이나 임업, 어업에 종사하는 1차산업 노동자수는 13,773명이며 가공업, 제조업, 건설업 등 2차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수는 83,531명으로 1차산업에 비해 많은 수를 차지한다. 이외의 3차산업 종사자는 280,010명으로 3차산업 종사자들 중에는 특히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만화가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저명한 만화가들을 니가타시에서 많이 배출하기도 하였다.
총인구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니가타시의 인구는 전반적으로 매년 감소하는 추세에 있고 니가타시의 중심구인 주오구(中央区)와 니시구(西区)만이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5년동안 니가타시의 인구는 70만명정도가 감소하였으며 감소세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니가타시의 인구감소를 추동하는 원인은 아동인구에서 유아 출생률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시민들이 다른 도시로 유출되는 것이 원인일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출생률 자체가 감소하고 있는 경향이 반영된 것이다.
2015년 국세조사에 따르면 니가타시와 관련된 흥미로운 통계는 자가소유자 비율과 단독주택 비율이 20개의 정령도시중 니이가타시가 각각 66%와 64.6%로 가장 높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여성의 비율이 많은것과 비례하여 맞벌이 부부의 비율도 20개의 정령도시중에서 니이가타가 51.4%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였다. 반면 외국인의 비율과 인구밀도는 낮은 순위를 기록하였다.
외국인의 경우 2023년 4월 기준 5,795명으로 전체인구의 0.7%를 차지하고 있으며 남성은 2,887명, 여성 2,908명으로 비슷한 비율로 거주하고 있다. 총 세대수는 3,792명이고 주오구(中央区)와 니시구(西区)에 사는 외국인의 비율이 각각 1,799명(31%), 11,157명(20%)로 전체 인구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문화[편집]
조몬 시대부터의 역사를 지닌 니가타지역은 역사문화 관광지로부터 현대 도시형관광지까지 많은 관광자원을 가진 지역이다. 2017년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니가타시의 관광객 입장수는 1,863만명으로 추정되는데, 문화행사와 축제에 참가한 관광객이 682만명(37%), 도시형관광객이 483만명(26%), 역사 및 문화관광객이 372만명(20%), 스포츠 레트레이션 관광객이 127만명(7%), 온천관광객이 100만명(5%), 자연풍광을 즐기는 관광객이 54만명(3%), 기타 관광객이 45만명(2%)로 책정되었다.
니가타는 쌀농업 생산량이 일본에서 가장 많은 지역으로 그만큼 곡식으로 만든 술 또한 이지역의 특산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니가타의 특징을 살려 이 지역에서는 2004년부터 매년 니가타탄레(新潟淡麗)술 박람회를 열고 있다. 니가타현주조조합이 중심이 되어 진행하고 있는 이 행사는 독일의 옥토버페스트에서 힌트를 얻어 착안한 것이라고 한다. 첫 행사 참석자의 수를 수천명정도로 예상했지만, 실행위원회의 예상을 훨씬 웃도는 5만명이 참석하여 이후 COVID-19로 인해 중지된 2020년 2021년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행사가 이어져오고 있다.
이외에도 조에쓰 신칸센(上越新幹線)개통을 계기로 시작된 일본해 일본 콘서트도 니가타의 대표적인 이벤트라고 할 수 있다. 1986년당시에는 쥬오구의 세키야하마에서 개최되기 시작하였는데 1989년부터 개최장소가 니시구의 아오야마 해안으로 변경되었다. 개최장소가 변경되면서 매년 8월 6일에 하던 행사가 8월 10일에 하는 것으로 변경되었고 2007년부터는 2째주 토요일에 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이 콘서트 또한 COVID-19로인해 행사가 중지되기 전까지 매년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니가타는 지역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시내에 국가중요문화재로 지정된 건축물이 여러곳에 분포되어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반다이교(萬代橋)로 니가타의 시나노강에 가교된 최초의 다리로 1886년 준공되었다. 교량이 처음 설치되었을 때는 차도의 중앙부에 노면 전차 궤도와 도로가 함꼐 있는 병용궤도교량으로 설계되었지만 결국 실현되지는 못하였다. 도로는 상하차선으로 4차선의 도로로 완성되었다. 쇼와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대규모 콘크리트 아치교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니가타시의 상징으로서, 또 랜드마크의 하나로 알려져있다.
한편 도시관광을 대표하는 니가타의 시설은 NEXT21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주오구에 있는 초고층 빌딩으로 현재 NEXT21이 세워진 장소는 본래 니가타 봉행소 → 니가타현 청사 → 니가타시 관공서가 입지해있던 곳이었다. 에도 시대부터 일관되어 니가타의 행정의 중심지가 되어 있었지만, 시설이 점차 노후화되어 1989년 시청은 교외로 이전되었다. 행정의 중심지이자 주오구의 중심가인 후루마치 지구였기 때문에 신속하게 재개발되게 되어나갔다. 일건설계 와 다이세이건설 의 JV에 의한 설계·시공으로 1993년 4월에 준공하였고 5월에 그랜드 오픈하였다. NEXT21이 니가타의 대표적 랜드마크가 된 이유는 지상 19층 101m의 높이에 위치한 전망대 때문이다. 전망대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16-18층은 음식점 등의 시설이 입주해있다.
니가타는 일찍이 항구가 발달하였기 때문에 문화교류도 활발하게 이루어져왔다. 특히 에도 시대부터 키타마에선(北前船)을 통한 문화가 유입되어 음악과 예능이 번성한 지역이기도하다. 이러한 배경하에 니가타시는 2011년 「니가타시 문화 창조 도시 비전」(2012~2016)을 계획하여, 문화 예술의 창조성을 살려 도시의 활성화를 도모하는 정책을 마련해왔다. 이러한 비전의 결과 인구 감소, 저출산·초고령 사회의 도래에 대한 대안마련 및 도쿄 2020 올림픽·패럴림픽 경기 대회의 개최 결정, 글로벌화의 한층의 진전 등, 책정 당시의 상정을 넘는 새로운 움직임을 모색해나가고 있다. 니가타지역에서 열리는 축제로는 매년 8월 초 반다이지역에서 열리는 개항기념 축제인 니가타 축제(新潟まつり)와 6월 하순 열리는 가마하라 축제(蒲原まつり), 9월 초에 열리는 카츠라카 축제(葛塚まつり)가 대표적이다.
지도[편집]
※ 지도 위 글자를 클릭하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
※ 지도 위 글자를 클릭하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
※ 지도 위 글자를 클릭하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
※ 지도 위 글자를 클릭하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