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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살리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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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위치

테살리아주(그리스어: Θεσσαλία)는 그리스 북부에 위치한 주이다.[1][2]

개요[편집]

테살리아주의 면적은 14,036.64㎢이며 인구는 732,762명(2011년)이다. 주도는 라리사이다. 북쪽으로는 서마케도니아주, 서쪽으로는 이피로스주, 남쪽으로는 중앙그리스주, 동쪽으론 에게해와 접하고 있다. 라리사를 비롯하여 볼로스, 트리칼라, 카르디차, 티르나보스 등의 도시들이 위치하고 있다.

테살리아는 4세기 반 동안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은 후 1881년에 현대 그리스 국가의 일부가 되었다. 1987년부터 현재까지 13개 지역 중 하나를 형성하고 있으며 2011년 칼릭라티스 개혁 이후 5개 지방 자치체와 25개 지방 자치체로 세분화되어 있다.

자연환경[편집]

올림포스산이 테살리아와 서마케도니아의 경계에 있다. 높이 2,917m인 올림포스산은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를 비롯한 12신이 있는 장소로 여겨졌다. 트리칼라는 라리사와 함께 테살리아주의 중앙 평원에 형성되었다. 트리칼라 지역은 곡창지대이다. [3]

역사[편집]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테살리아라는 지역명의 어원은 이아손의 아들 테살로스다. 그는 어머니 메데이아가 자식들을 학살할 때 유일한 생존자였는데, 훗날 이올코스의 왕이 된 후 자신의 이름을 따 그 지역 일대를 테살리아라 칭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 시기에는 평야가 드물었던 남부 지역에 비해 평야가 많은 이유로 기병으로 유명했다. 특히 알렉산드로스 3세 휘하의 테살리아 기병들은 기병 전력이 부족했던 그리스-마케도니아 군에 큰 보탬이 되었다. 이 지역의 대표적인 폴리스로는 라리사, 크라논, 파르살루스가 있었다. 다만 해당 지역은 남부 아카이아 일대나 이오니아 일대에 비해서 무역과 상공업이 덜 발달하고 가난한 편이었다. 페르시아 전쟁 와중에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가 이 지역을 침공하고 점령했으나 그리스인들이 이 지역을 회복하였다. 이후 마케도니아 왕국의 영토가 되었으며, 테살리아 기병들은 알렉산드로스를 따라 종군하며 페르시아 전역을 정복했다. 이후 고대 로마가 마케도니아 왕국을 정복하면서 이 지역도 로마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로마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이 지역에서 내 파르살루스 근교 평원에서 파르살루스 전투가 벌어졌다. 전투는 카이사르 측의 승리로 넘어가고 로마는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넘어간다.

이후 테살리아 지방은 다른 지역에 밀리며 로마 제국 내에서 별 볼일 없는 그저그런 지방으로 전락했다. 제정 확립 이후 고대 지중해 세계의 중심지는 그리스 반도에서 아나톨리아 동부와 시리아, 이집트 등으로 이동하는 추세였고, 로마 제국 유럽 영토에서도 히스파니아 등이 더 중요한 지역이 되었다. 이미 많은 테살리아인들이 지중해 동부로 이주한 상황이었다.

이후 고대 로마 제국이 기독교화되고 동서로마로 분열되면서 이 지역은 동로마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서기 6세기에는 아바르 칸국과 슬라브족의 침공을 받고 슬라브인 인구가 대거 정착하였다. 이후 동로마 제국이 국력을 회복하고 니케포루스 1세 시기에 이 지역을 재점령하면서 테살리아 지역의 슬라브족들은 상당수 그리스인들과 동화되었다. 동로마 제국에 반항적인 슬라브족 군인 상당수는 아나톨리아 반도 국경 지대의 테마로 강제 이주 당했다.

서기 977년 테살리아는 불가리아 제1제국의 침공을 받기도 했으며, 동로마 제국에서는 이 지역을 방어하기 위해서 아르메니아인 상당수를 이 지역 테마에 이주시켜 군인으로 삼았다. 불가리아와 동로마 제국 사이의 국경 지대이던 이 지역은 이후 불가리아 제1제국이 동로마 제국에 병합되면서 번영을 누렸으나, 4차 십자군으로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당하며 동로마 제국이 몰락하고 불가리아 제2제국이 흥기하면서 이 지역도 다시 잦은 전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동로마 제국은 아나톨리아 지역 영토 곡창지대 상당수를 상실한 이후 테살리아의 인구와 농업 생산에 의지하게 되었다. 이후 동로마 제국이 카탈루냐에서 불러들인 카탈루냐 전우회가 1305년 반란을 일으키고 미하일 9세의 동로마 중앙군을 무찌른 다음 아테네 공국으로 남하하면서 트라키아와 테살리아 일대를 초토화시키자 동로마 제국은 국력이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14세기 말에는 오스만 술탄국이 이 지역을 정복했으며 이후 오스만 행정 체계가 도입되면서 이 지역은 오스만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1821년 오스만 제국에 항거하는 그리스인들의 봉기가 일어났으나 진압되었고, 이 지역은 1881년 콘스탄티노플 조약으로 최북단 엘라소나 지역와 올림포스 산을 제외한 테살리아 전체가 그리스의 영토가 되었다. 1897년 그리스-튀르크 전쟁 때 오스만 제국이 재점령했으나 열강의 압력으로 일부 국경선을 오스만에게 유리하게 조정하는 것으로 다시 물러났고 1912년 발칸 전쟁 당시 그리스군이 엘라소나와 올림포스 산까지 점령하면서 테살리아 전체가 그리스 영토가 되었다. 2차 대전 당시 잠시 이탈리아가 이 지역을 점령했으나(1941~1943) 그리스군의 반격에 밀려 패퇴하고 이후 나치 독일이 1944년 이 지역을 잠시 점령하다가 패전 후 다시 그리스의 영토가 되었다.

교통[편집]

고속도로 E65, E92, E75 등이 테살리아를 지난다. 고속도로 E65는 북쪽으로 서마케도니아주의 코자이로 이어진다. E92는 테살리아 서부 도시 트리칼라를 동부에 위치한 항구 볼로스와 연결한다. 철도는 아테네-테살로니키 노선이 통과한다. 주도 라리사가 교통의 중심지이다.

볼로스는 테살리아의 유일한 항구이다. 볼로스 항구는 그리스 항구 중에 가장 최근에 건설되었다.

카르디차는 테살리아주의 서부에 위치한다. 자전거 도로를 잘 갖추고 있어, 그리스에서 자전거 친화 도시로 손꼽힌다. 아테네 국립공대의 분석에 따르면 자전거는 카르디차 도시 교통의 약 30%를 담당한다.

산업[편집]

테살리아주는 그리스의 주요 농업 지역으로 곡물과 견과류를 생산하고, 가축을 사육한다. 라리사는 그리스에서 인구 당 음식점과 술집의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이다. 그리스에서 매장이 가장 많은 마켈 커피 체인이 이 도시에서 창업되어 현재 본사가 여기에 있다. 볼로스는 그리스의 주요 공업도시로 철강산업과, 시멘트산업이 발달했다. 볼로스는 연구 활동도 활발해, 그리스 5대 연구소 중 하나인 바이오 경제와 농업 기술 연구소(iBO)가 이곳에 있다.

관광[편집]

내륙은 어정쩡한 위치로 인해 별로 관광객이 없는 편이고, 이웃 마케도니아 주 테살로니키 시 주민들이 여름에 스포라데스 군도의 스키아토스 섬과 스코펠로스 섬으로 자주 놀러간다. 테살로니키에서 해당 섬들로 가는 페리가 운행된다.

라리사[편집]

라리사는 그리스 테살리주의 주도로 그리스 농업의 중심지다. 그리스에서 인구 당 음식점과 술집의 비율이 가장 높고, 그리스 최대인 마켈 커피체인이 이 곳에서 창업했다.

전설에 따르면 아킬레우스가 이 곳에서 태어났고 전해진다. 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히포크라테스의 묘지가 1826년에 발견되었다. 라리사에는 BC 3세기에 건축된 극장의 유적이 있다. 극장이 지어진 때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후대의 마케도니아 왕인 안티고누스 고나타스가 재위한 시기였다.

라리사는 그리스에서 인구당 음식점과 술집의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이다. 그리스에서 매장이 가장 많은 마켈 커피체인이 이 도시에서 창업되었고, 현재 미켈의 본사가 여기에 있다.

라리사의 유대인 공동체는 BC 2세기에 형성되었다. 2차대전 때 라리사는 나치 독일에 점령되었고 유대인 공동체는 홀로코스트를 피하지 못했다. 현재 유대인 예배당과 홀로코스트 기념관이 있다.

라리사는 고전기 그리스의 도시국가 중 하나였다. 고전기 그리스는 BC 5세기와 BC 4세기에 걸친 약 200년을 가리킨다. 시기를 좁히면 민주주의 체제가 들어선 BC 510년 경부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숨진 BC 323년까지를 말한다. 라리사는 민주적인 법과 제도를 운영했고, 이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BC 431~BC 404) 때 라리사가 아테네 동맹에 가담한 배경이 되었다. 아테네 동맹은 스파르타 동맹에게 패배했고, 이후 라리사는 테베에 지배되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부터 약 100년 뒤 그리스 도시국가 동맹은 북쪽의 마케도니아 왕국에 패배했다. 이에 따라 라리사는 BC 344년에 필리포스 2세의 마케도니아에 병합되었다.

라리사는 BC 196년에 로마의 동맹이 되었고, 이곳에 테살리 동맹의 본부가 차려졌다. 앞서 BC 197년에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5세가 로마와의 전쟁에서 패배했다. 라리사는 AD 5세기 말에 동고트족에 의해 약탈되었다가 동로마(비잔티움)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재건되었다. 8세기에는 그리스 문화를 기반으로 한 대도시로 성장했다. 986년 불가리아에 점령되기도 했다. 제4차 십자군 원정 이후 테살로니키의 왕이었던 몬테라토의 보니파치오가 라리사를 롬바르드 남작들에게 양도했다. 그들은 1209년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라틴 제국 플랑드르의 앙리 황제에게 진압되었다. 이후 에페이로스 전제공국이 라리사를 차지했다.

라리사는 1386~87년과 1390년에 오스만 제국에 정복되었다가, 1423년 이후에는 450여년 동안 지배를 받았다. 그리스가 독립하면서 라리사가 속한 테살리는 1881년에 그리스에 속하게 되었다.

라리사는 테살리주의 중앙평원 지형에 형성되었다. 테살리주는 아테네의 북쪽, 마케도니아의 남부에 자리잡고 있다. 라리사는 인근 60km 거리에 있는 네아안키알로스 공항을 통해 유럽 곳곳으로 연결된다. 교통 요지로 테살로니키, 아테네, 그리고 테살리 주의 유일한 항구인 볼로스와 도로 및 철도로 연결된다.

지중해성 기후를 띠는데, 내륙지방에 있어 겨울에 아테네보다 춥다. 1월 일중 최저기온의 평균이 0.7도로 아테네보다 7도 가까이 낮다. 7월 일중 최고기온의 평균은33도로 아테네보다 1.5도 낮다. 연평균 강수량은 413mm다.[4]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테살리아주〉, 《위키백과》
  2. 테살리아〉, 《나무위키》
  3. 유럽지명사전 : 그리스 테살리아주〉, 《네이버 지식백과》
  4. 유럽지명사전 : 그리스 라리사〉,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동남유럽 같이 보기[편집]

동남유럽 국가
동남유럽 도시
동남유럽 지리
동남유럽 섬
동남유럽 문화
동남유럽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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