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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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아비브(히브리어: תֵּל אָבִיב, 영어: Tel Aviv)는 이스라엘 서부 지중해 연안에 있는 도시이다. 이스라엘의 실질적 수도이며, 국제법적 수도이다. 공식 명칭은 텔아비브 야포(Tel Aviv-Jaffa)이다. 시내 인구는 405,300명으로 예루살렘 다음으로 많다. 대도시권의 인구는 3,850,000명에 달하며 이스라엘 최대의 대도시권을 형성하고 있다. 이스라엘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텔아비브 도시권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스라엘의 경제적인 중심지가 되어 있다. 텔아비브는 히브리어로 봄의 언덕을 뜻한다.[1]
개요[편집]
텔아비브는 이스라엘 중북부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다. 1909년 최초의 유대인 도시로 세워진 후 이스라엘 최대 도시로 성장했다. 텔아비브는 벤구리온 국제공항이 위치한 이스라엘의 관문 도시이자 경제, 문화, 테크놀로지, 관광의 허브 역할을 하는 글로벌 도시이다. 텔아비브는 주요 국가 기관, 해외 공관, 기업이 밀집해 있는 이스라엘의 행정수도이다. 1880년대 유대인 이주자들이 물가가 비쌌던 야파(아랍어: يافا)를 대체할 곳으로 시작되었지만 점점 텔아비브의 규모는 커졌고 2007년 중동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도시가 되었다. 건축상으로 텔아비브는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건설된 화이트 시티로 잘 알려져 있다. 텔아비브에서 하얀 색상의 건물이 많기로 알려진 화이트 시티는 2003년 유네스코에서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나치 독일을 탈출한 건축가들이 모던주의의 영향을 받아 건물들을 전부 바우하우스식이나 국제주의식으로 지었다. 1960년대 급속도로 늘어났던 이민자들을 위해 지어진 낡은 건물들이 자취를 감추면서 초고층빌딩의 숫자는 더욱더 늘어나고 있다.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마천루는 샬롬 타워와 아즈리엘리 센터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 텔아비브 대학과 바일란 대학으로 유명하다. 텔아비브 대학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대학이며 두 대학의 학생 숫자를 합치면 5만 명이 넘는다. 텔아비브는 이스라엘의 문화 수도로 여겨진다. 이스라엘은 1인당 박물관이 가장 많은 나라인데 이 중 대부분이 텔아비브에 위치해있다. 고고학 유적을 모은 에레츠 이스라엘 박물관과 텔아비브 미술 박물관이 유명하다. 텔아비브대학 캠퍼스에 있는 디아스포라 박물관도 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동성애자 축제가 이곳에서 열린다.[2]
지리 및 기후[편집]
텔아비브는 모래 언덕에 지어져서 농업에 적합하지 않다. 예루살렘은 텔아비브의 동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거리는 대략 60km 정도 된다. 하이파는 90km 정도 떨어져있으며 텔아비브의 북쪽에 위치해있다. 전형적인 지중해 기후를 소유한다. 여름은 덥고 봄과 가을은 맑은 편이며 겨울은 시원하고 비가 자주 온다. 계절에 상관없이 습기가 높고 비는 주로 10월에서 5월사이 온다. 겨울에는 평균 기온이 10°C에서 15°C 사이라서 주로 5°C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다. 여름에는 기온이 26°C로 올라간다. 연간 평균 강우량은 530mm이다. 더운 날씨 때문에 1년 중 300일 정도로 맑은 날이 많은 편이다. 봄과 가을은 짧은 편이다.
텔아비브는 봄과 가을에 비해 여름과 겨울이 뚜렷한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Csa)에 속한다. 여름은 6월부터 10월까지 약 5개월간 지속되고 가장 더운 달인 8월 평균 최고 기온은 약 30℃, 평균 최저 기온은 약 23℃에 달한다. 지중해의 영향으로 가장 높은 순간 온도도 35℃를 넘는 일이 드물다. 11월부터 3월까지 이어지는 겨울이 가장 기온이 낮다. 겨울철 평균기온은 약 16℃를 기록하며 온화한 날씨가 이어지고 기온이 5℃ 이하로 떨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 역사적으로 텔아비브에서 기록된 최고 기온은 1916년 5월 46.5℃이며 가장 낮은 온도는 1950년 2월의 영하1.9℃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약 580mm로 대부분 겨울철에 호우 형태로 내린다. 겨울이라도 영상의 온도를 유지하므로 눈을 보기에는 매우 어렵다. 여름에는 강수가 거의 내리지 않지만,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습기와 뜨거운 기온으로 인해 고온다습한 날씨가 이어진다.[3]
역사[편집]
텔아비브는 기원전 1,800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항구 도시 야포(Jaffa)의 북쪽에 1909년에 세워진 근대 도시이다. 오스만 제국의 통치기인 1909년 유대인 66가구가 야포 북쪽의 땅을 유대 기금(Jewish National Fund)의 지원을 받아 매입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1910년 5월 '텔아비브'로 명칭을 변경하고 메이르 디젠고프(Meir Dizengoff, 재임기간 1921~1936)를 초대 시장으로 선출했다. 1918년에 시작된 영국의 통치 아래 텔아비브는 빠르게 성장했다. 팔레스타인으로 오는 유대인 이주자들이 늘어나면서 아랍인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결과로 유대인들은 야파를 떠났고 텔아비브의 인구는 서서히 늘어났다. 1915년 텔아비브 인구는 2,679명에서 1922년 15,185명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이 중 15,065명이 유대인, 78명이 무슬림, 42명이 기독교인이었다.
유대인이 증가하면서 아랍-유대 갈등이 촉발되어 1921년 5월 1일 '야포 항쟁(Jaffa riots)'이 발발했다. 당시 아랍인 48명과 유대인 47명이 사망했으며 각기 73명과 146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야포에 거주하던 유대인 대부분이 텔아비브로 이주한 결과, 1925년 텔아비브 인구는 34,000명으로 증가했다. 1930년대에는 나치스의 박해를 피해 유럽에서 온 유대인 이민자 다수가 텔아비브에 정착했다. 1937년 야포의 아랍인은 69,000명, 텔아비브의 유대인은 대략 15만 명으로, 팔레스타인 내 전체 유대인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수였다.
1923년 팔레스타인에서 전기가 들어온 최초의 지역인 텔아비브는 이스라엘 최대의 근대화된 도시이자 상업·문화의 중심지로 빠르게 성장해 나갔다. 건국 전부터 시온주의 운동의 교두보 역할을 했던 텔아비브는 1934년, 야포에서 독립하여 자치행정 시(municipality)의 지위를 받아 본격적으로 '유대인의 도시'로 구축되기 시작했다. 1945년 아랍이스라엘분쟁 시기에 텔아비브 유대인과 야포의 아랍인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야포가 함락되면서 1948년에 야포의 많은 아랍인이 피난을 갔다. 이후 텔아비브는 서서히 야포를 흡수하기 시작해서 1950년 4월에 완전히 통합하였고, 도시명을 '텔아비브 야포(Tel Aviv-Jaffa)'로 변경했다. 야포를 통합한 이후, 야르콘강 북쪽 지역까지 통합하면서 텔아비브는 빠르게 성장했다.
1970년대 초 높은 물가와 주택난, 제4차 중동전쟁의 영향으로 인구의 20%가 페타티크바, 레호보트 같은 인근 소도시로 유출되었다. 하지만 텔아비브는 이민자의 유입으로 인구가 증가하면서 대규모 개발 계획을 추진했다. 급속한 도시화를 이루며 '논스톱 시티(Nonstop City)', '잠들지 않는 도시(Sleepless City)', '월드시티(World City)', '화이트시티(White City)'로 브랜드화 되었다. 텔아비브 시네마테크(Tel Aviv Cinematheque)(1973년), 이스라엘 최초의 쇼핑몰인 디젠고프센터(Dizengoff center)(1983년), 수잔 델랄 센터(Suzanne Dellal Center)(1989년) 등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상업·문화 시설과 기관이 텔아비브에 위치한다. 1980년대 초에는 국제연합(UN)의 조치에 따라 예루살렘에 있던 대사관 13곳이 텔아비브로 이전했다.
1990년대는 팔레스타인의 반(反)이스라엘 저항운동인 인티파다의 발발 이후, 텔아비브 시내에 테러가 빈번하게 발발했지만, 위기를 빠르게 극복하여 눈부신 경제 성장과 발전을 이루었다. 1993년에는 남부텔아비브에 이스라엘 최대 규모의 '텔아비브 중앙 버스터미널(Tel Aviv Central Bus Station)'이 들어서면서 이스라엘의 중심 도시로서 기능을 더욱 확대해 나갔다. 텔아비브는 페이스북, 구글 등 글로벌 IT기업과 벤처기업이 집중된 하이테크 중심지로 급부상했으며, 활발한 부동산 시장의 형성으로 국내외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텔아비브는 문화 다양성과 관용, 혁신 도시의 이미지를 구축하며 이스라엘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현대적인 도시로 자리 잡았다.
2010년대 들어 텔아비브-야파는 종종 혼란을 겪고 있다. 2016년 1월에 이스라엘 아랍인의 총기 난사로 3명이 사망하고 7명이 다치는 사태가 터졌다. 6월에도 팔레스타인인의 총기 난사가 또 벌어져 4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했으니, 텔아비브 시내도 분위기가 좋지 못한 형편이다. 특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개전 이후 하마스가 걸핏하면 쏘아대는 까삼 로켓이 틈만 나면 떨어지다 보니 대피령도 자주 내리는 판국이다. 2020년대 들어서는 헤즈볼라와 후티, 이란 역시 텔아비브 공격을 종종 언급한다. 2024년 5월 2일, 이란의 시아파 민병대인 이슬람 저항군이 미사일을 날리기도 했다.[4]
경제[편집]
이스라엘 경제 중심지인 텔아비브는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2015년에는 글로벌 금융 센터 지표(GFCI) 25위에 오른 바 있다. 텔아비브는 세계에서 19번째로 물가가 높으며, 중동에서는 물가가 가장 높은 도시이다. 텔아비브에 1947년 설립된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 거래소인 텔아비브 증권거래소(Tel Aviv Stock Exchange)가 위치한다. 2016년 기준 다이아몬드는 이스라엘 전체 수출의 23.2%를 차지하는 최대 수출 품목이다.
텔아비브 북쪽에는 세계적인 수준의 IT 연구 개발 및 벤처기업 중심지로서 '중동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실리콘 와디(Silicon Wadi)가 있다. 인텔, 애플, 페이스북 같은 다국적 기업의 R&D 센터, 첨단 분야 벤처기업,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Startup Accelerater), 벤처 투자자들이 집중되어 있으며 스타트업의 중심지로 유명하다. 해외 투자의 68%가 텔아비브 소재 회사에 집중적으로 투자되고 있다. 2012년 텔아비브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이어 하이테크 스타트업의 성지로 선정되었으며, 2013년에는 아메리칸 뉴스페이퍼(American Newspaper)와 보스턴글로브가 동시에 스타트업 도시 2위로 선정한 바 있다.
교통[편집]
텔아비브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규모가 큰 텔아비브 중앙 버스터미널(Tel Aviv Central Bus Station)이 위치한 교통의 중심지이다. 텔아비브 중앙 버스터미널은 전국을 연결하는 고속버스, 시내버스, 합승택시 쉐루트(Sherut)의 출·도착지이다. 버스와 기차는 교통카드인 라브카브(RavKav), 쉐루트는 현금으로 탑승할 수 있다. 쉐루트를 제외한 모든 대중교통은 안식일과 주요 명절에 운행이 중단된다. 현재 텔아비브는 세계 최초로 대중 전기차 운행을 위한 무선전기도로를 구축 중이며 2023년 완공을 목표로 경전철(LRT, light railway transit)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2011년 4월에 360km가 넘는 자전거 도로를 구축한 뒤 2,000대 이상의 자전거를 대여하는 텔오펀(Tel-O-Fun)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5]
관광[편집]
관광은 이스라엘의 주요 소득원 중 하나이다. 이스라엘은 성지 순례의 목적지로 잘 알려 있지만, 다채로운 문화가 응축된 흥미로운 여행지이다. 특히 텔아비브는 일 년 내내 인기 있는 지중해 휴양지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아름다운 지중해변을 따라 5성급 호텔과 호스텔이 자리하고 있으며, 스쿠버 다이빙, 윈드서핑, 요트, 수상스키 같은 다양한 해상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2000년대 초반 텔아비브는 도심 경관을 재정비하여 '걷기 좋은 도시'로 조성하고, 북부 텔아비브항구와 야포 기차역 같은 역사적인 산업 지역을 레저 명소로 탈바꿈시켰다. 텔아비브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로, 지중해 음식을 비롯해 다양한 지역의 음식을 제공하는 레스토랑과 카페, 바(bar)가 무수히 많다.
이스라엘은 1인당 박물관이 가장 많은 나라로, 200개 이상의 박물관 중 절반이 텔아비브에 집중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에라츠 이스라엘 박물관, 텔아비브 미술관, 그리고 텔아비브 대학교에 소재한 디아스포라 박물관(Nahum Goldman Museum of the Jewish Diaspora)이 있다.
텔아비브 시내에는 텔아비브의 역사적 발자취로 남은 상징적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1930년대에 세워진 바우하우스나 국제고딕양식의 건축물 4천여 채가 네베체덱(Neve Tzedek)에서 디젠고프 광장(Dizengoff Square)에 이르는 광범위한 구역을 중심으로 분포해 있다. 텔아비브는 이러한 양식의 건축물들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밀집된 장소로 '화이트시티(White City)'라는 명칭이 붙여졌으며, 2003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야포(Old Jaffa)는 텔아비브 시내의 근대적 경관과 대비되는 오래된 도시의 역사성을 드러낸다. 텔아비브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모스크로 추정되는 야포 지중해변에 있는 자마 알 바흐 모스크(Jama Al Bahr Mosque)가 있다. 설립 시기는 미상이지만 최소한 1675년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1997년에 재건축되었다. 1916년 오스만 제국 건축양식의 영향을 받아 세워진 하산 벡 모스크(Hassan Bek Mosque)는 야포 거주 아랍인의 상징적 건축물이다. 이외에도 1904년 네오고딕 양식으로 건축된 루터교 임마누엘 교회(Immanuel Church)가 있다.
텔아비브대학교[편집]
텔아비브대학교(Tel Aviv University)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규모가 큰 대학교로 텔아비브에 있다. 1956년 설립되었다. 당시 텔아비브 법경학교, 자연과학연구소, 유대학연구소 등 세 연구기관을 통합해 출범했다. 초기에는 텔아비브 지방자치정부에 의해 운영되다가 1963년부터 자율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그 해 라마트아비브 캠퍼스가 설립되었다. 텔아비브 대학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규모가 큰 대학으로 히브리 대학과 더불어 이스라엘 최고의 명문대학으로 손꼽힌다. 이스라엘의 문화, 금융, 산업 중심지에 위치해 있으며, 교육 및 연구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인문학부, 사회과학부, 법학부, 경영학부, 정밀과학부, 생명과학부, 공학부, 의학부, 예술학부를 포함한 여러 학부와 대학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98개 학과가 있으며 경영학, 유대학, 외교안보, 환경학, 사회사업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석사학위를 수여한다. 예술학부에 들어 있는 영화·텔레비전학과는 1971년 설치되었고, 이스라엘에서 영화 및 텔레비전 분야의 학과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 이 대학은 미국, 프랑스, 브라질 등 해외 각지에서 온 교사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유대학에 관련된 특별 교과과정을 운영한다. 법학부는 미국의 코넬 대학교, 한국의 서울대학교를 비롯해 해외 14개 대학과 학술교류를 시행하고 있다.
캠퍼스는 이스라엘 텔아비브 북부의 라마트아비브에 있다. 0.69㎢의 면적에 강의동, 강당 등 여러 건물과 각종 시설을 갖추고 있다. 부속기관 및 시설로 도서관, 대학신문사, 미술관, 박물관, 스포츠센터 등이 있다. 부설연구소로 히브리문학연구소, 아랍·유대인협력센터, 문화연구소, 평화연구소 등 120개 이상의 연구소가 있다. 2011년 영국의 대학평가기관인 QS(Quacquarelli Symonds)가 발표한 세계 대학 순위에서 173위, 국내 2위를 차지했다. QS는 연구, 교육, 졸업생, 국제화의 4개 부문을 주요 지표로 세계 대학을 평가한다.[6]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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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텔아비브〉, 《위키백과》
- 〈텔아비브〉, 《나무위키》
- "Tel Aviv", Wikipedia
- 〈텔아비브〉, 《요다위키》
- 〈텔아비브(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텔아비브대학교〉,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레반트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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