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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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아(포르투갈어: Praia, 문화어: 쁘라야)는 아프리카 세네갈 서쪽 대서양에 있는 섬나라인 카보베르데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이다. 도시 이름은 포르투갈어로 "해변"을 뜻한다.[1]
개요[편집]
프라이아는 동대서양 마카로네시아, 아프리카 대륙 서안의 베르데곶에서 서쪽으로 약 500km 떨어져 있는 산티아구섬의 남쪽 해안에 놓여있으며 프라이아 지방자치단체의 행정 중심지이기도 하다. 항구로 기후풍토는 건강에 적합하지 않으나 아프리카 서안의 다카르에서 서쪽으로 약 640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대서양상의 교통, 통신상의 요지이다. 1460년 포르투갈인들에 의해 발견된 이후 포르투갈인들이 앙골라, 기니 등에서 수입해온 노예들이 정착하였다. 기근과 인구 과잉 문제가 있던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다르게 인구 변동 문제가 심각했던 포르투갈 사정상 백인 정착민이 얼마 되지 않는다. 종종 프랜시스 드레이크 등 영국 해적들이 이 지역을 해적 기지로 삼기도 했다. 1858년 마을에서 도시로 승격되었으며 이후 폭발적인 인구 증가로 1920년대 당시 인구가 21,000여 명으로 카보베르데 전체 인구의 30%에 달했다. 섬의 페리호 항구이자 카보베르데에 있는 세 개의 국제공항 중 하나가 들어서 있는 곳이다. 그리스 경제위기의 후폭풍으로 인해 청년실업률 때문에 일부 포르투갈인 청년들이 사업차로 이민오는 경우도 있다. 포르투갈 내에서도 카보베르데 사업 연합체가 있다. 중심 업무 지구는 작은 고원 상에 위치에 있고 고원으로 알려진 상태이다. 프라이아는 카보베르데의 가장 큰 도시이자 상업의 중심이며 커피, 사탕수수, 열대과일들을 선적하는 항구이다. 프라이아는 또한 낚시 산업을 가지고 있으며 근처에 휴양지가 있다.[2]
지리 및 기후[편집]
지리적으로 프라이아는 고원과 그 주변 계곡으로 묘사할 수 있다. 이들 고원은 일반적으로 아카다(Achada)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중앙 고원은 플라토(Pato)라고 부른다. 도시 정착지는 대부분 이러한 고원 위나 계곡을 따라 이루어졌다.
오랫동안 고원 만이 도시로 간주되었고 고원과 항상 긴밀한 관계(인민 이동, 상품 및 서비스 교류 등)를 유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지역은 주변 교외 지역으로 전락되었다. 이것이 고원만이 이전에 자체 인프라 구조를 갖춘 상대적으로 잘 발달된 도시화를 가졌던 이유이다. 나머지 지역들은 더 유기적이고 혼란스러운 방식으로 발전했다.
독립 후에야 고원은 다른 동네와 합쳐져 현재 프라이아시로 여겨지는 곳을 구성했다. 당시 도시 전체에는 충분한 기반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도시화는 독립 직후에 시작되어 북쪽으로 확장하려고 했다.
프라이아는 짧은 우기와 길고 뚜렷한 건기가 있는 사막 기후(쾨펜: BWh)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8월, 9월, 10월을 제외하면 프라이아에는 강수량이 거의 없다. 도시의 연간 평균 강수량은 약 210mm이다. 가장 추운 달은 18°C를 훨씬 상회하기 때문에 온도 패턴은 열대 기후와 유사하지만, 그렇게 분류할 만큼 충분한 강수량은 부족하다. 기후가 건조하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프라이아는 산티아고 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매우 덥거나 매우 춥지는 않다. 온도는 따뜻하고 일정하며, 평균 최고 기온은 27°C이고 평균 최저 기온은 22°C이다.[3]
역사[편집]
1460년에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의 탐험가·항해사였던 안토니오 데 놀리(António de Noli)가 이 섬을 발견했으며 그 곳에 군사 기지를 건설하고 "히베이라그란드"(Ribeira Grande)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산티아구섬은 카보베르데에서 사람이 처음 살기 시작한 섬이 되었고 1462년에는 시다드벨랴가 건설되었다.
대륙을 횡단하는 노예무역이 활발해지면서 시다드벨랴는 당시 포르투갈이 보유하고 있던 식민지 가운데 2번째로 부유한 도시가 되었지만 포르투갈 외에도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스페인 등이 노예무역에 나서게 되면서 해적들이 급증하게 된다. 1712년에 시다드벨랴가 해적들의 공격을 받으면서 수도로서의 기능을 잃게 되었고 프라이아 평야 지대로 수도를 이전하게 되었다. 이곳은 점차 시다데 벨라를 대체하여 카보베르데의 가장 중요한 정착지가 되었고, 1770년에 카보베르데의 수도가 되었다. 포르토 프라야 해전은 1781년 4월 16일 프라야 항에서 벌어졌는데, 포르투갈은 중립이었기 때문에 영국과 프랑스가 참여했고, 전술적 무승부와 프랑스의 전략적 승리로 끝났다. 프라이아는 1832년 찰스 다윈이 HMS 비글과 함께 항해한 첫 번째 기착지였다.
19세기 동안, 고원은 거대한 식민지 시대의 건물과 저택들이 늘어선 그리드 계획에 따라 완전히 도로로 재개발되었다. 1858년 공식적으로 도시(cidade)가 되었고, 카보베르데의 수도로서의 지위를 확보하여 정치, 종교, 55 경제적 역할을 집중하였다. 1920년대 초, 인구는 약 21,000명이었다.
군도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1950년대에 포르투갈의 통치에 대한 저항이 일어났다. 기니비사우처럼 공공연한 독립전쟁은 없었다. 1974년 포르투갈의 카네이션 혁명과 그로 인한 포르투갈 식민지 전쟁의 종결 이후, 카보베르데는 1975년 7월에 독립을 선언했다. 독립 후, 프라이아는 모든 섬들로부터 이주 운동을 받으면서 인구통계학적 붐을 겪었다. 그 결과 카보베르데 전체 인구의 56%가 산티아고에 거주하고 있으며, 29%는 프라이아에 거주하고 있다. 인구는 151,436명(2015년)에 달했다. 1985년 6월 28일, 프라이아는 국제 조직인 루소 – 아프리카-미국-아시아 수도 도시 연합인 UCCLA의 회원이 되었다.[4]
카보베르데[편집]
카보베르데(포르투갈어: Cabo Verde, 영어: Cape Verde)는 아프리카 대륙 서안의 베르데곶(串)에서 서쪽으로 약 500km 떨어져 있는 국가이다. 정식 국명은 카보베르데공화국(포르투갈어: República de Cabo Verde, 영어: Republic of Cape Verde)이다. 영어로 케이프버드(Cape Verde)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카보베르데는 아프리카 서쪽 해안에 위치한 나라로서 10개의 큰 섬과 약 8개의 작은 섬으로 군도를 이루고 있다. 크게 북쪽의 바를라벤투 제도(Barlaventos)와 남쪽의 소타벤투 제도(Sotaventos)로 나뉜다. 수도 프라이아는 소타벤투 제도의 산티아구섬(Santiago)에 위치한다. 15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구성된 카보베르데는 바를라벤투 제도와 소타벤투 제도로 불리는 두 군도로 나뉜다. 이 가운데 5개의 섬은 무인도이다. 몇 개의 섬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화산활동과 침식에 의하여 생성된 섬으로 암석산지이고, 포구섬의 피코화산은 해발고도 2,829m로 최고봉을 이룬다. 대부분의 섬들은 대륙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와 고온건조한 기후이며 5∼10월의 우기를 제외하면 비가 적다. 연평균 강수량은 해안에서 200mm 내외, 산지에서 1,000mm 정도이다. 연평균 기온은 24℃인데다가 화산재가 표층을 덮고 있기 때문에 토양도 비옥하지 않아 개발이 늦어지고 있다. 세이셸, 모리셔스 등과 함께 아프리카에서 몇 안 되는 치안이 안정된 국가 중 하나이다.
유럽 사람들이 방문하기 전까지 이곳은 무인 지대였고 1456년경에 제노바 공화국과 포르투갈 왕국의 항해자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무인도이기는 했지만 고대로부터 페니키아인, 아랍인, 무어인 및 인근 서아프리카의 부족들이 이 섬들을 방문했다고 한다. 1462년에는 열대 지방으로는 드물게 산티아구섬에서 포르투갈인의 이주가 시작되어, 히베이라그란드(Ribeira Grande, 나중에 시다드벨랴(Cidade Velha)로 이름을 바꿈)라는 정착촌이 건설되었다. 16세기 경에는 노예 무역이 번성하였으나, 때때로 해적의 습격을 받기도 하였다. 노예 무역의 결과, 수많은 아프리카인들이 카보베르데로 끌려왔으며, 이들이 오늘날 카보베르데인의 조상이다. 노예 무역의 쇠퇴 이후에는 대서양 항로의 중간 거점항, 보급항으로서 번성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아프리카에서 민족주의 열풍이 거세지면서 기니-카보베르데 독립 아프리카당이라는 조직을 중심으로 한 독립 운동이 전개되었다. 1974년 포르투갈에서 일어난 카네이션 혁명 이후에는 이들의 독립이 가시화되었다. 1975년 7월 5일,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했다. 언어는 공용어가 포르투갈어이며, 크레올어도 비공식적으로 사용된다. 카보베르데는 프랑스어사용국기구(프랑코포니)의 정회원국이다. 1999년 11월 23일자 헌법 9조 1항에 "공용어는 포르투갈어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5]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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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프라이아〉, 《위키백과》
- 〈카보베르데〉, 《위키백과》
- "Praia", Wikipedia
- 〈프라이아〉, 《요다위키》
- 〈프라이아(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서아프리카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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