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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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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adal (토론 | 기여)님의 2021년 2월 28일 (일) 19:08 판 (주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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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산(NISSAN)
닛산(NISSAN)
르노(RENAULT)

닛산(Nissan)은 일본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자동차 제조회사이다. 토요타(Toyota), 혼다(Honda)와 함께 일본 3대 자동차 회사 중 하나로,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 군수 산업을 담당한 전범기업이기도 하다. 소유주는 프랑스의 르노(Renault) 사로 지분 43.4%를 보유하고 있고, 한국의 르노삼성자동차㈜에 승용차의 기본모델을 제공하고 있다. 한편 닛산은 2014년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이 매출액 기준으로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 순위에서 61위를 차지했으며, 세계 6위 자동차회사에 이름을 올렸다.

개요

닛산은 1999년부터 일본의 닛산과 미쓰비시자동차가 프랑스의 르노와 제휴한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2016년 미쓰비시 가입)에 가입해 왔다. 2013년 현재 르노는 닛산 지분 43.4%를 보유하고 있고, 닛산은 르노 지분 15%를 보유하고 있다. 닛산은 2016년 10월부터 미쓰비시자동차의 지분 34%를 보유하고 있다. 닛산은 2013년 토요타, 제너럴모터스(GM), 폭스바겐그룹, 현대자동차그룹, 포드 등에 이어 세계 6위의 자동차 업체였다. 합치면 르노-닛산 연합은 세계 4위의 자동차 회사가 될 것이다. 닛산은 중국, 러시아, 멕시코에서 일본 브랜드로 손꼽힌다. 2014년 닛산은 북미에서 가장 큰 자동차 제조업체였다. 닛산은 세계 최대 전기차(EV) 제조사로 2018년 4월 기준 전기자동차 글로벌 판매량이 32만대를 넘어섰다. 자동차 메이커의 완전 전기 라인업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차량은 전기자동차인 닛산 리프(Nassan REF)이며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리는 고속도로용 플러그인 전기자동차(PHEV)이다. 2018년 1월 사이카와 히로토 닛산 최고경영자(CEO)는 2021년부터 출시한 인피니티 차량은 모두 하이브리드 차량이나 전기자동차가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1]

역사

하시모토 마스지로(山本路)는 1911년 7월 1일 도쿄도 아자부히로 지구에서 가이신샤 자동차 워크스(快進社自動車, 좋은 회사 자동차 제조업체)를 설립했다. 1914년에, 그 회사는 DAT라고 불리는 그것의 첫 번째 자동차를 생산했다. 이 새 차의 모델명은 이 회사 투자자들의 성의 약자였다. 덴 겐지로 , 아오야마 로쿠로, 다케우치 메이타로 등이다. 1918년에 가이신샤 자동차 주식회사로 개칭되었고, 1925년에 다시 DAT 지도샤 주식회사로 개칭되었다. DAT 모터스는 DAT와 닷산 승용차 외에 트럭을 만들었다. 당시 승용차에 대한 거의 존재하지 않는 소비자 시장과 1923년 간토 대지진의 결과로 인한 재해 복구 노력 때문에 생산량의 대부분은 트럭이었다. 1918년부터 최초의 DAT 트럭이 군사 시장을 위해 생산되었다. 이와 함께 지쓰요 지도샤(지쓰요는 실용적 사용이나 효용을 의미한다)는 부품과 미국으로부터 수입된 소재를 이용해 소형 트럭을 생산했다. 일본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동안 상업적 작전은 보류되었고, 회사는 전쟁 노력에 기여했다. 1926년에 도쿄에 본사를 둔 DAT 모터스는 오사카에 본사를 둔 지쓰요 지도샤 주식회사와 합병했다. 지쓰요 지도샤 세이조(1919년 쿠보타 자회사로 설립)는 1932년까지 오사카에서 DAT 지도샤 세이조가 되었다. 1923년부터 1925년까지 이 회사는 라일라라는 이름으로 경차와 트럭을 생산했다. 1931년, DAT는 "DAT의 아들"이라는 뜻의 첫 번째 "Datson"인 Datsun Type 11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소형 자동차를 출시했다. 이후 닛산 그룹 자이바츠가 DAT모터스를 장악한 1933년, "아들"은 일본어로도 "손"을 의미하기 때문에 "닷산"(ダトサン, Dattosan)이라는 명칭이 "태양"으로 바뀌었다.

1933년, 회사명을 지도샤 세이조로 일본화하여 요코하마로 이전하였다. 1928년 아이카와 요시스케(닉네임:기이스케/아유카와 구이스케)가 지주회사 니혼상요(日本 産業, 일본공업 또는 니혼공업)를 설립했다. 닛산이라는 명칭은 1930년대에 니혼상요 도쿄 증권거래소에서 사용된 약어로 유래되었다. 이 회사는 토바타 캐스팅과 히타치가 포함된 닛산 '자이바츠'였다. 이때 닛산은 주조 공장과 자동차 부품 사업을 지배했으나 아이카와씨는 1933년까지 자동차 제조에 들어가지 않았다. 자이바츠는 결국 74개의 회사를 포함하게 되었고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일본에서 네 번째로 큰 회사가 되었다. 1931년 DAT 지도샤 세이조는 토바타 캐스팅에 소속되어 1933년 토바타 캐스팅에 합병되었다. 토바타 캐스팅은 닛산 회사였기 때문에, 이것이 닛산의 자동차 제조의 시작이었다. 1934년 아이카와씨는 토바타 캐스팅의 확장된 자동차 부품 부문을 분리해 새로운 자회사로 편입시켰고, 닛산자동차(日産自動車)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신기업의 주주들은 일본의 자동차 전망에 열광하지 않아, 아이카와씨는 1934년 6월에 토바타 캐스팅 주주(니혼 산업의 자본을 이용)를 모두 매수했다. 이때 닛산자동차는 사실상 니혼상요와 히타치가 소유하게 되었다. 1935년에 요코하마 공장의 건설이 완료되었다. 닷산는 아시아, 중남미로 운송되었다.

1935년, 통합 조립 시스템에 의해 제조된 최초의 자동차가 요코하마 공장에서 라인에서 굴러 떨어졌다. 닛산은 일본 제국군을 위해 트럭, 비행기, 엔진을 만들었다. 1937년 11월, 닛산의 본사는 만주국의 수도인 싱킹으로 이전되었다. 12월에 그 회사는 이름을 만주 중공업 개발 주식회사로 바꾸었다. 1940년, 최초의 녹다운 키트가 MHID의 회사 중 하나인 다우아 지도샤 코교(도와 자동차)로 조립을 위해 선적되었다. 1944년 본사를 도쿄의 니혼바시로 이전하고, 회사명을 닛산중공업으로 변경하여 1949년까지 유지하였다.[1] DAT는 쿠보타의 수석 디자이너인 미국 엔지니어 윌리엄 레이건 고햄(William Reagan Gorham)에게 상속되었다. 이는 아이카와 씨의 1908년 디트로이트 방문과 함께 닛산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치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의 첨단 자동차 제조 기술을 이용하는 것이 언제나 아이카와 씨의 의도였지만, 이 계획을 실행한 것은 고햄이었다. 대부분의 기계와 공정은 원래 미국에서 왔다. 닛산이 1937년 '닛산' 브랜드로 대형 차량을 조립하기 시작했을 때 디자인 계획과 플랜트 시설의 상당 부분은 그레이엄-페이지 컴퍼니에서 공급했다. 닛산도 승용차, 버스, 트럭 등이 만들어지는 그레이엄 면허를 갖고 있었다. 할버스탐은 데이비드 할버스탐의 1986년 저서 <추계>에서 "기술 면에서는 고햄이 닛산 자동차 회사의 창립자였다"면서 "그를 만나본 적이 없는 젊은 닛산 엔지니어들이 그를 신으로 여기고 회사에서의 그의 세월과 그의 많은 발명품들을 자세히 묘사할 수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1934년부터 닷산은 라이선스 하에 오스틴 7s(Austin 7s)를 짓기 시작했다. 이 작전은 오스틴의 세븐의 해외 라이선스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고, 데이썬의 국제적인 성공이 시작된 계기가 되었다. 닛산은 1952년 오스틴과 법률협약을 체결해 일부 조립된 수입 세트에서 2000개의 오스틴을 조립해 오스틴 상표로 일본에서 판매하기로 했다. 이 협정은 닛산이 3년 안에 모든 오스틴 부품을 국산화하도록 요구했는데, 닛산이 충족시킨 목표였다. 닛산은 호주를 7년간 생산해 판매했다. 이번 협약은 닛산이 자체 개발한 다트선 라인의 엔진 개발에 사용한 오스틴 특허 사용권도 닛산에 부여했다. 1953년에 영국에서 제작된 호주가 조립되어 판매되었지만, 1955년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닛산에 의해 건설되고 새로운 1489 cc 엔진이 탑재된 오스틴 A50이 일본에서 시판되었다. 닛산은 1953년부터 1959년까지 2만855개의 오스틴을 생산했다. 닛산은 오스틴의 특허를 활용해 오스틴의 A-와 B-패밀리 디자인이 제공하는 것을 지나 그들만의 현대적인 엔진 디자인을 더욱 발전시켰다. 오스틴에서 파생된 엔진의 정점은 1966년 새로운 디자인 A 시리즈 엔진이었다. 1967년 닛산은 신형 4기통 오버헤드캠(OHC) 닛산 L 엔진을 선보였는데, 메르세데스-벤츠 OHC 디자인과 유사하지만 닛산이 설계한 완전히 새로운 엔진이었다. 이 엔진은 전 세계 세단 시장에서 닛산의 존경을 받은 새로운 데이썬 510에 동력을 공급했다. 그 후, 1969년에 닛산은 닛산 기계(닛산 코키 주식회사)에 의해 개발된 L 시리즈 엔진의 6기통 변형을 사용한 닷산 240Z 스포츠카를 선보였다. 240Z는 즉각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닛산을 자동차 시장에서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한국전쟁 당시 닛산은 미 육군의 주요 차량 생산국이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일본에는 상당한 수준의 반공 감정이 존재했다. 닛산의 노동력을 조직한 노조는 강성하고 전투적이었다. 닛산은 자금난에 시달렸고, 임금협상이 오자 회사는 강경책을 취했다. 노동자들은 감금되었고, 수백 명이 해고되었다. 일본 정부와 미국 점령군은 몇몇 노조 지도자들을 체포했다. 노조의 파업자금이 바닥나 패퇴했다. 새로운 노조가 결성되었는데, 시오지 이치로는 그 지도자들 중 한 명이다. 이치로는 하버드 대학에서 미국 정부 장학금을 받고 공부했었다. 그는 임금 삭감을 2,000명의 일자리를 구하는 것과 맞바꾸자는 생각을 발전시켰다. 이치로의 생각은 생산성을 우선시하는 새로운 노조 계약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1955년과 1973년 사이에 닛산은 노조에 의해 지원되고 종종 제안되는 기술적 진보에 기초하여 빠르게 확장되었다고 말했다. 이치로는 일본자동차노동조합총연맹 회장이 됐고 일본 노동운동의 우파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1966년 닛산은 프린스 자동차 회사와 합병하여 스카이라인과 글로리아를 포함한 더 많은 고급 자동차를 선택으로 끌어들였다. 프린스라는 이름은 결국 포기되었고, 잇달은 스카이라인과 글로리아스는 닛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프린스'는 일본 닛산 대리점 '닛산 프린스샵'에서 1999년까지 사용하다가 '닛산 레드 스테이지'가 이를 대체했다. 닛산 레드 스테이지 자체가 2007년 현재 교체됐다. 스카이라인은 인피니티의 G시리즈로 살아가고 있다.

주요 인물

카를로스 곤(Carlos Ghosn, カルロス・ゴーン)

아이카와 요시스

아이카와 요시스케(Yoshisuke Aikawa, 1880년 11월 6일 ~ 1967년 2월 13일)는 일본의 기업가, 사업가, 정치인으로,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일본의 가장 강력한 기업집단 중 하나인 닛산 자이바쓰(1931~1945)의 설립자 겸 초대 회장이다. 아이카와씨는 현재 야마구치 현 야마구치 시의 일부인 곳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메이지 시대 겐로 이노우에 가오루의 조카딸이었다. 1903년 도쿄제국대학 공학과를 졸업하고 도시바의 선구자인 시바우라 세이사쿠쇼에서 일하게 되었다. 비록 그의 보수는 매우 낮았지만, 아이카와씨는 미국으로 여행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절약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융통성 있는 주철 기술을 공부했다. 일본 귀국 후, 이노우에 가오루 등 전 조슈 정치인들의 후원으로 1909년 기타큐슈에 토바타 주조 공장을 설립하였다. 이 회사는 현재 히타치 킨조쿠(히타치 금속회사)로 알려져 있다. 1928년, 아이카와씨는 형부 구하라 후사노스케로부터 인수해 구하라 광공업(현재의 닛산 광공업)의 사장이 되어, 줄여서 니혼상요, 즉 닛산이라는 지주 회사를 만들었다. 구하라는 미래의 다나카 기이치 총리를 비롯한 정치군사 지도자들과 관계를 맺으며 정치계에 종사했고, 이후 이 관계를 아이카와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게 되었다.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주식시장 붐이 일면서 아이카와씨는 닛산 자회사 132개사의 지분 다수를 매입해 닛산 그룹(日本 그룹, 닛산 콘체룬, '닛산 우려')을 새로 만들었다. 닛산자동차, 이수즈, NEC공사, 닛산광업지주회사, 닛산화학, 히타치, 니치유상사, 니치유상사, 니치아이리상사, 닛산해상보험, 닛산상생보험 등이 포함됐다. 이 그룹에는 당시 일본에서 가장 기술적으로 앞선 기업들도 포함됐다. 1937년 친척 기시 노부스케의 초청으로 만주국으로 건너가 일본 관퉁군의 신디칼리스트 경제 비전과 만주국을 위한 중앙집권적 산업발전계획에 합의했다. 닛산의 본사를 만주국으로 옮기기도 했는데, 그곳에서 새로운 만주국 자이바쓰라는 만주산업개발회사의 핵심이 되었다. 아이카와씨는 사장 겸 회장으로 있던 자리에서 만주국에서의 모든 산업 노력을 지도하면서, 1930년대에 군 이념가 호시노 나오키의 경제 산업 비전에 따른 두 개의 5개년 계획을 실행했다. 그러나 아이카와씨는 보다 독점적인 접근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호시노의 원래 개념과는 달랐다. 그는 만주국의 경제 상태가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허용하기에는 아직 너무 원시적이라고 주장했다. 아이카와씨는 만주국 경제를 지원하기 위해 미국의 철강산업자들로부터 은행 대출을 받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불인정' 정책으로 상당한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그의 경제관은 일본 제국주의 육군정책과 일맥상통했지만, 그의 정치적 견해는 그렇지 않았다. 아이카와씨는 삼자협정의 강력한 반대자였으며, 총전이 발발하면 결국 영국과 프랑스의 세력이 나치 독일을 이기기 시작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만주국에 유대인 난민 정착 프로젝트인 푸구 계획을 지지했다. 1942년, 관퉁군의 선동으로 아이카와씨는 만주 산업 개발 회사의 회장을 사임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일본의 항복 이후 에이카와씨는 미국 점령당국에 체포되어 A급 전범 용의자로 20개월간 스가모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는 그의 사건이 재판에 회부되기 전에 풀려났지만, 이 기간 동안 닛산 자이바츠는 해체되었다. 아이카와씨는 석방 후 일본의 전후 경제 재건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상업은행을 매입해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정리했다. 데이코쿠 석유회사와 일본석유 탐사회사 사장을 지냈으며, 1953년 일본 중의원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기시 노부스케 당시 총리의 도움으로 1960년대 중소기업중앙회가 된 압력단체인 추세이렌의 리더로서 경제통제법과 정책을 실천하는 데 목적을 달성했다. 아이카와씨는 1967년 급성 담낭염으로 사망했다. 그의 묘소는 도쿄 외곽의 타마 묘지에 있다.[2]

윌리엄 레이건 고햄

윌리엄 레이건 고햄(William Ragan Gorham, Gohamu Katsundo, 1888년 1월 4일 ~ 1949년 10월 24일)은 일본으로 이주한 미국 태생의 일본 자동차 엔지니어였다. 고햄은 일본의 신생 자동차 산업의 기술과 역량에 상당한 기여를 하였고, 아이카와 요시스케에 의해 결국 닛산 자동차 회사에 합병될 많은 회사들과 함께 일했다. 고햄은 제1차 세계대전 중 1918년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는 처음에는 항공산업에 관심이 있었으나 1년 만에 성공하지 못하고 자동차산업으로 관심을 옮겼다. 일본 최대의 농기계 제조업체로 발돋움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를 설립하고 이끈 성공한 기업인 쿠보타 곤시로는 자동차 시장 진출에 열심이었다. 당시 일본 자동차 제조업체는 이즈즈, 하시모토 마쓰지로가 설립한 가이신샤가 유일했다. 쿠보타는 고햄을 수석 디자이너로 고용했는데, 고햄은 차량을 디자인하고 고햄의 3륜 자동차 제조 공장을 세웠다. 다른 일본인 투자자들과 함께 쿠보타, 고럼은 고럼으로 삼륜차를 제조할 지쓰요 지도샤, 그리고 고럼이 디자인한 4륜자동차를 라일라로 찾아내곤 했다. 지쓰요 지도샤와 가이신샤는 나중에 닛산 자동차의 전신으로 합병되었다. 지쓰요 지도샤, 토바타 캐스트링스, 니혼상요 등 닛산자동차의 전임자들과 함께 1936년 출발하여, 후에 히타치로 합병될 자신의 회사인 고쿠산 세이키를 찾았다. 1941년 5월, 고햄 부부는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일본 시민으로 귀화했다. 전시상황이 외국인에 대한 규제를 증가시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들은 일본에 남아있을 수 있도록 이것을 선택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고럼은 멀티컷 선반과 제트 엔진에 초점을 맞추어 히타치에서 엔지니어링 작업을 계속했다. 종전 후, 미국 정부는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일본 시민이 되었기 때문에 그를 반역죄로 기소하는 것을 거절했다. 한편, 그는 산업 문제와 관련하여 더글러스 맥아더 연합군 최고사령관 본부와 연락 직책을 맡게 되었다. 1940년대 내내, 그는 또한 그들의 조달 및 공장 관리 관행과 관련하여 캐논 사의 컨설턴트로 자주 활동했다.[3]

카를로스 곤

카를로스 곤(Carlos Ghosn, カルロス・ゴーン)은 일본 닛산 회장 겸 프랑스 르노 회장을 지냈다. 르노는 닛산의 주식을 44% 인수하여 최대주주가 된 후에 카를로스 곤을 닛산에 CEO로 파견했다. 카를로스 곤은 입사 5개월 만에 닛산 리바이벌 플랜(NRP)을 세워 200억 달러에 달하는 비용을 삭감하고, 구조조정을 단행하여 그에게 ‘코스트 커터’라는 비아냥조의 수식어가 붙었다. 당시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서 5개의 공장이 문을 닫고 총 직원의 15%인 21,000명을 감원했다. 이렇게 닛산은 카를로스 곤 사장의 회생계획을 통하여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등 뼈를 깎는 노력 끝에, 2001년 3,720억 엔의 순익을 기록하며 부활했다. 이에 사람들은 카를로스 곤 사장을 가리켜 얼어붙은 상황을 멋지게 타개했다는 의미로 아이스 브레이커(icebraker)로 불렀다.

모델

닛산 타이탄

닛산 타이탄(タイタン, Nissan Titan)은 닛산이 북미 시장을 위해 미국에서 제조한 풀사이즈 픽업트럭이다. 그리스 신화의 티탄족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 1세대
닛산 타이탄 1세대
타이탄의 개발은 1999년 9월에 시작되었는데, 다이앤 앨런의 설계 작업으로 시작되었다. 지오바니 아로바의 TA60 외관은 2000년 말 선택되었으며, 2001년 7월 최종 생산이 동결되었다. 미래형 트럭의 디자인 언어는 앞서 2000년 11월까지 개발했던 2001 디트로이트 오토쇼에서 보여준 2001년 알파 T 개념으로 미리보였다. 생산은 2003년 9월 21일에 시작되었고 판매는 2003년 12월 1일에 시작되었다. 타이탄은 닛산의 신형 풀사이즈 F-알파 플랫폼을 사용했다. 이 새로운 플랫폼은 닛산 무적함대, 인피니티 QX56 SUV와 공유되었으며, 세 가지 모두 미국 미시시피 주 캔턴에서 제조되었다. 1세대 타이탄은 2015년까지 대대적인 재설계 없이 계속됐다. 모든 모델에는 32V, 5.6L 엔진인 VK56DE가 표준 장착되었는데, 이 엔진은 317hp (236 kW) (2004–2006 모델의 경우 305 hp 또는 227 kW)와 385 lb³ft (522 N⋅m)의 토크를 발생시킨다. 1세대 타이탄은 완전 박스형 사다리 프레임을 장착했으며, 5단 RE505A 자동변속기와 결합된 후륜 구동 또는 비행중 4륜 구동 시스템 중 하나로 이용이 가능했다. 자동 브레이크 제한 슬립(ABLS) 시스템은 모든 타이탄에서 사용할 수 있었다. 1세대는 일반 택시가 제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킹택시(확장택시)나 뒷좌석이 풀사이즈인 승무원택시로 이용할 수 있었다. 킹 캡은 6피트 7인치(2.01m)의 침대를, 승무원들은 5피트 7인치(1.70m)의 침대를 가지고 있었다. 2008년, 더 긴 축간거리 모델은 킹 캡의 8피트 3인치(2.51m) 침대 또는 승무원의 카브의 7피트 3인치(2.21m) 침대로 제공되었다. 원래 사용할 수 있는 트림 수준은 S, SV, Pro-4x, SE, LE 등 4가지였다. SE와 LE 트림은 결국 럭셔리 SL 트림으로 대체되었다. S는 기본 모델, SV는 기능이 더 많은 중급 모델, PRO-4X는 오프로드 지향 버전, 최상위 SL에는 20인치 알로이 휠과 같은 기능이 표준 장비로 제공되었다.
  • 2세대
닛산 타이탄 2세대
2세대 타이탄은 가볍게 가죽을 벗기고 다시 붙이는 닷지램이 될 예정이었으나, 그러한 계획은 2008년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와 함께 무산되었다. 닛산은 2015년 북미국제오토쇼에서 2세대 타이탄을 공개했다. 이 회사는 5%의 시장점유율 즉 미국에서 연간 10만 개의 매출을 목표로 삼았다. 2016년 판매량은 2만1880대에 달했다. 표준 엔진은 5.6L V8 가솔린 엔진이다. 엔진은 이전 모델에 비해 출력이 증가해 7단 자동에 연결된 390hp(290kW)와 394lblbft(534N⋅m)의 토크를 생산했다. 또한, 2세대 타이탄은 2019년 말까지 거의 555lbft(752 N (m)의 토크를 생산하는 310마력(230kW) 컴민스 5.0L 터보레이델 V8을 제공했다. 이 엔진은 ISV라고 불린다. 2세대 타이탄은 일반형과 XD의 두 가지 형태로 이용 가능하다. XD 버전은 닛산의 상용차 라인을 기반으로 한 중형 프레임에 구축되며 옵션으로 컴민스 디젤 엔진을 포함하고 있다. 그 플랫폼은 닛산 NV와 공유된다. 타이탄과 타이탄 XD에는 2도어 일반 택시, 4도어 킹(확장) 택시, 4도어 승무원 택시 등 3가지 택시가 있다. 네 개의 문이 달린 승무원 택시 모델들이 첫 선을 보인 트럭이었고, 킹 택시와 일반 택시가 그 뒤를 이었다. 타이탄과 타이탄 XD의 트림 수준은 S, SV, Pro-4X(4X4만 해당), SL 및 플래티넘 리저브(Platinum Reserve)이다. 일반 택시는 S 또는 SV 트림 레벨 중 하나로만 이용할 수 있는 반면 킹 택시는 S, SV 또는 PRO-4X로만 이용할 수 있었다. 승무원 택시는 모든 트림 레벨로 이용할 수 있었다. 모든 타이탄과 타이탄 XD 모델에는 A2DP를 통한 핸즈프리 호출 및 무선 오디오 스트리밍을 위한 블루투스, 에어컨, 키리스 엔트리, 전동 윈도우 및 도어 잠금 장치, 푸시 버튼 점화, 백미백미 백업 카메라 시스템 등의 표준 장비가 장착된다.
옵션에는 GPS 내비게이션이 장착된 터치스크린 오디오 시스템(2019년용 표준 장비), SiriusXM 위성 라디오, 키리스 액세스, 전자 잠금식 리어 테일게이트, 원격 시동, 알로이 휠, 난방 및 환기 기능이 있는 가죽 트림 시트, 파워 프론트 시트, 프리미엄 오디오 시스템, 목재 내부 트림, 트레일러 견인 팩 등이 포함된다.통합 트레일러 브레이크 컨트롤, 크롬 프론트 및 리어 범퍼 및 프론트 그릴이 있다. 2019년 한해 동안 모든 타이탄과 타이탄 XD 모델은 GPS 네비게이션, 시리우스XM 위성라디오, 애플 카플레이, 안드로이드 오토 스마트폰 통합 등이 특징인 새로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표준 장비로 공급받았고, 옵션인 록포드-포스게이트 프리미엄 오디오 시스템을 새로운 펜더 프리미엄 오디오로 교체했다.[4]

닛산 알티마

닛산 알티마(アルティマ , Nissan Altima)는 닛산이 1992년부터 제조한 중형차다. 1955년부터 시작된 닛산 블루버드 라인의 연속으로 알티마는 역사적으로 닛산 센트라보다 크고 강력하며 고급스러웠지만 닛산 맥시마보다는 덜했다. 1세대부터 4세대까지의 자동차는 미국에서 독점적으로 제조되었고 중동, 호주와 함께 북미와 남미에서 공식적으로 판매되었다. 다른 시장에서는 닛산이 알티마와 맥시마 사이인 닛산 티아나라는 관련 중형 세단을 판매했다. 2013년, 티아나는 5세대 알티마의 재입고 버전이 되었다. 알티마라는 이름은 원래 1986년 일본 시장용 닛산 레오파드의 톱 트림 라인에 적용되었고, 그 후 1992년 이전 중미와 카리브해에서 판매된 닛산 로렐 중형차에 적용되었다. 닛산은 1992년 닛산 블루버드 복제품이었던 스탠자를 단종시켜 미국에서 만든 알티마로 대체하고 소형차는 그대로 뒀다. 최초의 알티마는 1992년 6월에 1993년형 모델로 제작되었다. 모든 알티마 모델은 2004년 6월까지 테네시주 스미르나에서 제작되었으며, 이때 닛산의 캔튼, 미시시피 공장도 높은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 모델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중형차 부문 경쟁사는 혼다 어코드, 도요타 캠리, 마쓰다6, 현대 쏘나타, 기아 옵티마, 스바루 레거시, 포드 퓨전(2020년 단종 예정), 쉐보레 말리부, 폭스바겐 파사트(NMS) 등이다.

* 1세대

닛산 알티마 1세대
이전의 스탠자와 마찬가지로, 1989년 닛산의 캘리포니아 디자인 그룹(앨런 플라워즈 아래의 블루 스튜디오)에서 독창적인 스타일링이 나왔지만, 원래의 알티마는 닛산 블루버드 SSS(섀시 모델 U13)의 수출 버전이었다. 당초 이 차의 공식 명칭은 초기 소유주 설명서에 나오는 '스탠자 알티마'였다. 1993년식 모델들은 트렁크 뚜껑에 있는 알티마 엠블럼의 오른쪽에 작은 글씨로 "Stanza"라고 쓰인 스티커로 볼 수 있다. 모든 알티마 모델은 5단 수동 또는 4단 자동(가속 성능: 자동의 9.4초 0–100 km/h), 수동의 8.2에 매칭된 닛산의 150 hp(112 kW) KA24DE 직선-4 DOHC 엔진을 사용했다. (대조적으로, 일본의 톱 트림 패키지 블루버드 SSS는 닛산의 SR20DET 엔진과 4륜 구동 장치에 장착할 수 있다.) 서스펜션은 양쪽 끝에 스태빌라이저 바가 있는 스트럿으로 구성되었으며 스포티하고 만족스러운 핸들링(그리고 단단한 승차감과 적당한 도로 소음)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모든 휠은 15인치였다. 알티마는 더 큰 소형차들 중 한 대였기 때문에, 비록 그 차체가 다섯 대로는 너무 좁았지만, 네 명의 어른들을 꽤 편안하게 앉힐 수 있었다. 트림 라인은 벗겨진 XE, 중간라인 GXE, 스포티한 SE, 럭셔리 GLE로 구성되었으며, 골드 엠블럼 패키지, 몰딩 머드 가드, 핀 스트라이프 등이 옵션으로 포함되었다. 모든 모델은 라디오 아래 작은 컵 홀더와 1998년 재설계 때 개선된 작은 글러브 박스를 가지고 있었다.
베이스 XE(rare)에는 수동 창문이 있었다. 미드 라인 GXE에는 파워 윈도우, 파워 리트랙션 안테나, 패스 through 후면 팔걸이, 디지털 대시보트(1995년 모델의 경우 옵션), 컬러 매칭 플라스틱 스피커 그릴 등이 탑재됐다. XE 및 GXE 모델에는 고정식 간헐 와이퍼 스위치만 있었다. SE는 GXE 기능 외에도 서스펜션, 안개등, 3-레그 마운트 리어 스포일러(1993년식 LED 브레이크 등이 선명한 모델), 사이드 스커트(1994~1995년 표준 선루프 포함)를 장착했다. 4륜 디스크 브레이크도 장착했는데, 안티록 브레이크가 주문될 때 다른 트림 라인에서 나왔다. GLE의 향상된 기능에는 MPH 또는 KM/H로 속도를 표시하는 디지털 자동차 헤드업 디스플레이(1993년과 1994년에 한함)와 방향 지시등, 윈드실드에 만들어진 독특한 미러링 패치의 다양한 경고등이 포함되었다. 1989~94년 맥시마와 240SX는 기술은 비슷했지만 속도만 보였다. 다른 특징으로는 퓨즈 패널 커버에 내장된 코인 홀더(1993년과 1994년에만 해당), 앞좌석의 조절 가능한 허리 지지대, 자동 디지털 실내 온도 조절 시스템, 알람을 포함한 키리스 엔트리(옵션), 플로어 매트, 컬러 매칭 사이드 미러, 코너링 라이트, 선루프, 6X9 r를 포함한 고출력 6스피커 카세트/CD 스테레오 등이 있다.검은색 금속 "능동 스피커" 그릴을 장착한 이어 스피커, 금속 색상이 현관 스피커를 위한 "능동 스피커" 그릴과 일치했고(1993년과 1994년만 해당), 한 쌍의 A 필러 트윗은 모두 후면 데크 아래에 장착된 두 개의 공장 암프로 구동된다. 1997년에 표준 가죽(기존 선택적)과 교환하여 위의 모든 것을 포기하였다. 모든 SE와 GLE 모델에는 알로이 휠과 가변 간헐 와이퍼가 장착되었다. 1993년 알티마스는 로즈우드 컬러의 대시 트림을 달고 나왔으며 운전석 측면 에어백과 자동 숄더 벨트(허리 벨트를 수용하기 위해 센터 콘솔이 더 얇았다)만 결합되어 있었다. 1994년형 알티마는 더 어두운 버울 목재 대시 트림, 플러시 마운트 조수석 에어백, 일반 안전 벨트를 얻었다. 1993년과 1994년 모델에는 크롬 내측 도어 손잡이가 표준 장착되었으며, 조수석 측에는 자동 도어 잠금/잠금 기능이 적용되었다.
1995년 내부 도어 손잡이를 컬러 매칭 플라스틱으로 변경하고, 조수석 자동 도어 잠금/잠금 해제 기능이 있는 플러그를 교체했다. 1993년과 1994년 모델도 1⁄2 팔걸이 뚜껑이 얇았지만, 가죽 팔걸이를 옵션으로 선택하면 높이가 약 4.5인치(110 mm)까지 올라갔다. 1995년 동안, 모든 팔걸이 뚜껑은 더 두꺼웠고 키는 약 4.5인치(110 mm)이었다. 1995년 모델 연도(1994년 도입)에도 새로운 베네치아 블라인드 모양의 그릴, 새로운 미등(빨간색 및 투명) 및 SE용 빨간색 LED 브레이크등이 장착된 2개의 레그 마운트 스포일러가 새로 도입되었다. 다른 변화들로는 평평한 후면 데크를 위한 후면 스피커 그릴의 제거, 보다 저렴한 천 내부, 후면 재떨이를 대체하는 플라스틱 커버, 그리고 이제 대시 시계의 디지털은 선택사항이었다. 1995년 3월, 1995년 3월 3일 이후 생산에서 새로운 인플레이터가 장착된 상승된 마운트 조수석 에어백이 도입되었다. 1996년 기본 모델에 새로운 휠 커버를 도입하였다. 1997년 모델 연도 동안 GXE는 알로이 휠, 키리스 엔트리, 알람, 플로어 매트, 앞바퀴 근처의 양쪽에 있는 리미티드 에디션 스티커 등을 포함한 새로운 "리미티드 에디션" 패키지를 획득했다. 대부분의 최종 연도인 알티마 모델은 "1997.5" 모델로 불리며 1997년 측면 충격 표준을 충족하는데 필요한 추가 충돌 보호를 의미한다.
  • 2세대
닛산 알티마 2세대
2세대(섀시 모델 L30)는 미국 시장 전용 버전으로, 1994년 더그 윌슨 산하의 닛산 캘리포니아 디자인 센터(1995년 디자인 동결)가 다시 스타일링했다. 새로운 인테리어(Diane Allen에 의해)는 수정된 글로브 박스와 컵 홀더, 폴딩 백 시트(XE 제외), 그리고 감압된 에어백을 가지고 왔다. 일본 국내 시장인 닛산 블루버드 U14는 일본 정부 차원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 앞쪽과 뒷쪽 끝이 다르고, 너비 치수가 약간 좁아졌다. 총 부피는 108입방피트(3.1m3)로 동일하지만, 대부분은 더 잘 분포되어 있다고 느꼈고, 약간 더 넓은 느낌의 오두막으로 귀결되었다. 부정적인 면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모델의 더 평범한 스타일링과 값싼 인테리어로 실망했다. 몇몇은 또한 가스 페달이 너무 가볍게 부풀어 올랐다고 느꼈다. 트림 라인은 벗겨진 XE, 대량 판매되는 GXE, 스포티한 SE, 럭셔리 트리밍 GLE이었다. SE는 차체 색상의 그릴, 안개등, 리어 스포일러, 알로이 휠 및 백면 게이지로 구별할 수 있다. 이 알티마 세대에서는 모든 GLEs가 가죽 시트 표준을 가지고 있었다.1999년 카세트/CD 스테레오는 새로운 페이스 플레이트를, GXE와 SE 모델은 가변적인 간헐적 와이퍼를, GLE는 표준 알로이 휠을 얻었다. 대부분의 변화는 2000년 모델에서 왔다. 엔진은 4방향 스파크로 150마력에서 160마력으로 출력이 증가했고, 0~60mph 시간도 8.7초에서 8.4초로 개선했다.
양쪽 변속기에서 기어비 및 최종 구동비가 단축되었고 스태빌라이저 바가 두꺼워졌으며 스티어링이 작동되었다. 또한 SE와 GLE 모델은 로우 프로파일 타이어가 장착된 16인치 휠, "가속 감응 스트럿 밸빙"이 장착된 새로운 먼로 스트럿, 스포티한 핸들링을 위한 프론트 스트럿 타워 브레이스(모두 GXE의 경우 옵션임)로 업그레이드되었다. 알티마는 약간 길어져 더 깊은 전면 그릴과 턴 시그널이 통합된 원피스 헤드램프와 표준형 저속 코너링 램프, 올레드 타이라이트, 데크 뚜껑에 플라스틱 트림을 받았다. 내부에는 운전석 높이 조절 장치가 있는 새 앞좌석, 뒷좌석용 컵 홀더(자동 변속기 모델만 해당), 수정된 시트 천, 디지털 주행 기록계가 장착된 새 계기판, 새 리어 윈도우 안테나, 그리고 키리스 엔트리 리모컨이 트렁크 릴리즈를 포함했다. 사이드 에어백은 GLE에 새롭게 표준 장착되었으며 GXE와 SE에 장착할 수 있다. 2001년 알티마 GXE는 다시 리미티드 에디션 패키지인 파워 드라이버 시트, 알람과 바닥 매트가 있는 키리스 엔트리 패키지를 획득했다.
  • 3세대
닛산 알티마 3세대
3세대 알티마(섀시 모델 L31)는 2002년 모델로 데뷔했다. 닛산의 신형 FF-L 플랫폼에 구축된 최초의 대중시장 제품이었는데, 이는 북미 특유의 제품이었고 일본 내에서는 동등한 모델이 없었다. 아시아 닛산 티아나는 동남아시아 시장 요구사항에 맞춰 디자인된 유사하지만 전혀 동일하지는 않다. 세 모델 모두 같은 플랫폼을 공유했다. 알티마는 이 세대 동안 내부 부피가 118.8입방피트(3.36m3)까지 확장되면서 크게 성장했다. 알티마의 내부 치수는 심지어 고급 2000-03 맥시마를 능가했기 때문에 2004년 맥시마는 실물 크기의 브라켓으로 더욱 고급스럽게 이동되었다. 또한 학급에서 가장 큰 것은 알티마의 20 US 갤(76 L; 17 imf gal) 연료 탱크였다. 게다가 알티마는 후면 서스펜션을 멀티링크 타입으로, 브레이크는 4륜 디스크로 업그레이드했다. 이것이 V6 엔진을 내놓은 첫 세대였다. 2003–2004년 모델은 2톤 대시 색상을 받았고, 3.5 SE는 토크가 246 lb³ft(334 N nm)로 유지되었지만 240 hp(179 kW)에서 245 hp(183 kW)로 마력 업그레이드를 받았다. 수동 변속 장치가 장착된 2002-2004 모델은 V6(4DR) 차량 중 가장 가볍다. 2.5리터 4기통 엔진은 시속 97km(0~60mph)에서 8.6초 만에 세단을 가속시켰다. 2005년형 닛산 알티마는 전면 그릴, 전면형 올레드 선라이트, 재설계된 인테리어, DVD 기반 내비게이션 옵션 등 페이스리프트를 받았다.
V6는 현재 250 hp(186 kW)의 정격으로, 토크 정격은 249 lblbft(338 N⋅m)로, 5단 자동변속기를 이용한 0.2초의 0~60mph의 시간이다. 또한 V6의 토크 버전 260 hp(194 kW)와 251 lbft(340 N³)의 SE-R 모델, 6단 수동 변속기(자동 스틸 옵션), 업그레이드된 브레이크, 18인치 휠, 3.5 SE의 그것보다 더 단단한 서스펜션, 그리고 높은 흐름의 배기가스가 새로웠다. 차량과 운전자는 SE-R을 테스트하여 6.1초 만에 97km/h(0–60mph)를 기록했다. 모터위크 에피소드 #2432는 5.8초의 0~60mph 시간을 생성하는 자동변속기가 장착된 SE-R을 시험했다.
  • 4세대
닛산 알티마 4세대
2006년 4월 12일 뉴욕 오토쇼에서 4세대 닛산 알티마(섀시 모델 L32A)가 발표되었다. 소형 닛산 D 플랫폼을 사용한 최초의 차량으로, 새로운 전면과 업그레이드된 리어 서스펜션이 적용되었다. 휠베이스는 3세대 알티마보다 1인치(25㎜) 짧지만 내부 공간은 대부분 변화가 없었다. 맥시마와 무라노도 2009년 모델부터 이 새로운 플랫폼을 사용했다. 이전 세대와 마찬가지로 아시아 시장 상황에 따라 구축된 닛산 티아나와 기계와 플랫폼을 상당 부분 공유한다. 4세대 알티마는 3세대 모델의 엔진의 개정판을 사용했다. VQ35DE 3.5 L V6 엔진은 270 hp(201 kW)와 258 lblbft(350 Nmm)의 토크를, QR25DE 2.5 L 직선4는 175 hp(130 kW)와 180 lbbft(244 N⋅m)의 토크를 생산한다. 6단 매뉴얼이 기본이고, 연속 가변 변속기가 기존의 자동 변속기를 옵션 변속기로 대체했다. 이 세대 알티마는 표준 스마트 키(Nissan Intelligent Key)와 휴대 전화용 블루투스 기능, 주차 카메라 등 신기술이 시대적으로 패키지로 출시됐다. 대시보드는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더 큰 버튼과 센터 콘솔 앞에 2개, 뒷좌석 팔걸이에 2개, 각 문에 20온스 컵 홀더 1개 등 총 8개의 컵 홀더가 설계됐다. 여러 개의 숨겨진 컴파트먼트가 추가되었고, 글로브 컴파트먼트 공간은 두 배가 되어 0.46입방피트(13L)가 되었다. 2008년에 모든 Altima 모델은 전자식 제동력 분배와 함께 ABS를 받았다.
2008년에는 2.5라는 새로운 기본 모델이 알티마의 보다 저렴한 버전으로 출시되었다. 비용 절감을 위해 2.5에는 공장 라디오가 포함되지 않았지만 애프터마켓 헤드 유닛을 위해 미리 연결된 4개의 현관문과 대시보드에 장착된 공장 스피커, 공장 A/M-F/M 라디오 안테나가 모두 사전 설치되었다. 2.5호기의 다른 비용 절감 방안으로는 닛산 인텔리전트 키 시스템의 도어 핸들 장착 터치 센서(키리스 엔트리 및 푸시버튼 점화도 포함), 키리스 엔트리 리모컨에서 파워 윈도우를 낮추거나 올릴 수 있는 기능, 표준 컵 홀더 일부, 오버헤드 싱글 등이 있다. ass 보관함 및 리어 트렁크 리드 내부의 카펫 트림 2.5 모델은 또한 차량의 리어 트렁크 뚜껑에 2.5 레터링을 포함하지 않았다. 싱글존 수동 실내 온도 조절이 가능한 에어컨, 스플릿 폴딩 리어 벤치 시트, 벨루어 천 시트 트림, 키리스 엔트리, 푸시버튼 점화 등의 기능이 베이스 2.5 모델에서 여전히 표준 장비로 포함되었다.
  • 5세대
닛산 알티마 5세대
재설계된 알티마는 2013MY를 맞아 2012년 뉴욕국제오토쇼에 데뷔해 2012년 여름부터 판매에 들어갔다. 캠리와 어코드처럼 3.5L V6를 레인지 토퍼로 탑재한 기본형 4기통 엔진을 계속 공급한다. QR25DE 2.5리터 16밸브 DOHC 인라인4 엔진 사양은 182hp(136kW)와 180lbbft(244Nm)이며, VQ35DE 3.5리터 24밸브 DOHC V6는 270hp(201kW)와 258lbft(350N⋅)이다. 닛산은 8lbs 경량화한 세련된 CVT 덕분에 2.5L 연비는 27 city/38 hwy, 3.5L V6는 22 city/30 hwy로 추정했다. 이 세대의 주요 기계 부품은 대부분 이월되어 있다. 외관 스타일링의 상당 부분이 닛산 맥시마로부터 친숙한 특징을 끌어내는 것 같다. 스페셜 에디션과 2016년 페이스리프트는 모두 무라노, 막시마, 로그와 비슷한 인테리어를 갖고 있다. 처음으로 수동 변속기를 사용할 수 없다. 이전 모델에 비해 알티마의 크기가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알티마는 무게가 약 120파운드 줄었다. 알티마는 동급에서 가장 가벼운 중형 세단이다. 이는 대부분 트렁크, 후드, 지붕과 같은 분야에서 고강도 강철과 알루미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프런트 엔드는 2012년 베르사르와 동일한 새로운 기업 그릴을 공유하며, 베르사르의 둥근 헤드라이트보다 더 각진 헤드라이트를 사용한다.
1960~70년대 유행했던 외형인 '코크병 스타일링'이 당시 닛산이 사용했던 외형으로 복귀하면서 스타일링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닛산은 알티마를 5개의 다른 트림으로 제공한다. 2.5, 2.5 S, 2.5 SV, 2.5 SL 그리고 3.5 SL 3.5 S와 3.5 SV는 2015년 모델 연도에 단종되었다. L33 알티마 세단과 함께 이전 세대인 L32 알티마 쿠페가 계속 판매될 예정이다. CVT와 결합한 토크 175hp(130kW) 및 180lb³ft(244 Nftm)의 QR25DE 2.5L 4기통만 쿠페가 제공된다. 판매 부진으로 인해 알티마 세단에서는 더 이상 6단 수동 변속기를 사용할 수 없다. 한때 알티마 2.5 S의 장비 패키지였던 SL 모델은 이제 별개의 모델이 되었다. 또한 기존에 설치될 애프터마켓 헤드 유닛, A/M-F/M 라디오 안테나, 현관문 및 대시보드 장착 스피커 등을 위한 프리워닝 기능을 탑재한 베이스 2.5 모델에는 싱글디스크 CD/MP3 플레이어와 보조 오디오 입력, 블루투스 핸즈프리 전화 시스템이 표준 장비로 탑재된 A/M-F/M 라디오가 제공되었다. (이전처럼 패키지에 리어 스피커가 포함되지 않았다.)2016년 모델에서는 SR 성능 모델이 반환되었다. 4개 또는 6개의 실린더 엔진과 함께 제공되며, 18인치 알로이 휠, 스포츠 데클리드 스포일러, 시트에 파란색 배관이 있는 독특한 스포츠 인테리어, SR 로고 플로마트, 가죽으로 포장된 스티어링 휠 및 기어 변속 레버가 장착된다.
닛산 알티마 6세대
  • 6세대
이 차는 188hp(140kW)의 자연 흡기식 직분사형 4기통 엔진이나, 이전 세대 V6 파워트레인을 대체하는 248hp(185kW)의 가변 압축 터보차지형 4기통 엔진으로 구동할 수 있다. 세계 최초의 생산 준비형 가변 압축 터보 엔진이다. 모든 엔진은 연속 가변 변속기에 연결된다. 4륜 구동은 2.5리터 엔진 모델에서만 가능하다. 6세대 알티마는 프로파일럿 어시스트, 닛산 인텔리전트 어라운드 뷰 모니터, 보행자 감지 시스템을 갖춘 자동 비상 제동, 지능형 차선 개입 등이 포함된 닛산 인텔리전트 모빌리티를 탑재했다. 이 차는 2018년 10월 미국의 딜러점과 2019년 5월 멕시코 닛산 대리점에 각각 도착했다. 2018년 8월 24일 닛산 스미르나 공장에서, 2018년 9월 27일 미시시피 주 캔턴에서 생산을 시작했다.[5]

닛산 리프

닛산 리프는(リーフ, Nissan Leaf)는 소형 5도어 해치백 배터리 전기차(BEV)다. 2010년 12월 일본과 미국에서 선보였고, 2017년 10월 일본에 2세대가 도입됐다. 제품 수명 주기 동안, 몇 가지 사소한 개선을 통해 점진적으로 리프의 전체 충전 범위는 117 km (73 마일)에서 243 km (EPA 정격)로 증가했지만, 주로 더 큰 배터리 팩을 사용했다. 다른 상들과 표창들 중에서, Leaf는 2010년 그린 카 비전 어워드, 2011년 올해의 유럽 자동차, 2011년 올해의 세계 자동차, 2011~2012년 올해의 일본 자동차를 수상했다. 2020년 5월까지 전 세계 판매량은 47만 리프가 넘는다. 2019년 12월 현재 유럽은 최대 시장(15만 개)으로 미국(14만 1,907개), 일본(14만 개에 육박)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유럽 시장은 노르웨이(약 6만2000명)가 주도하고 있다. 리프는 2019년 12월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플러그인 전기차에 이름을 올렸다. 테슬라 모델3는 2020년 초 리프(Leep)를 제치고 2020년 3월까지 50만 대 이상이 납품되는 신기록 베스트셀링 전기차가 됐다.

  • 1세대
닛산 리프 1세대
닛산은 리프가 익숙한 5도어 해치백 디자인을 선보이며 주류 운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도록 만들려고 했다. 차체는 크고 위로 기울어진 헤드라이트가 도어 미러에서 떨어져 나가는 공기를 가르며 방향을 바꾸는 날카로운 V자 모양의 디자인을 하고 있으며, 차량 하단은 공기역학적 팬케이블을 갖추고 있다. 대부분의 전기자동차 중 가장 무거운 부분인 배터리는 좌석과 뒷발 공간 아래에 위치하여 무게중심을 최대한 낮게 유지하고 기존의 5도어 해치백보다 구조적인 경직성을 더 높여준다. 리프는 80kW(107hp)와 280Nm(207ftlb)가 앞바퀴를 구동하는 전기 동기식 모터로 구동된다. 리프에는 처음에는 24 kWh 리튬 이온 배터리가 장착되었고, 나중에는 30 kWh로 늘어났다. 배터리는 자동차 에너지 공급 공사에서 제조한다. 8년 또는 10만 마일 동안 보장된다. 배터리 팩의 능동 냉각은 없고 방사선에 의한 수동 냉각만 있다. 일본에는 배터리 리퍼레이션 프로그램이 있지만 미국에는 없다. 보증 다이렉트의 2015년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에서 판매된 3만 5천 리프 중 3개가 배터리 고장을 일으켰는데, 내연 엔진 자동차의 고장률이 25배 더 높았다.
닛산은 2011년 리프의 드래그 계수가 cd=0.29이고 2013년형 cd=0.28이라고 보도했다. 리프는 일반적으로 휘발유와 하이브리드 자동차보다 작동 비용이 저렴하다. 그러나 Leaf는 유사한 가솔린 엔진 차량보다 훨씬 더 비싸기 때문에 플러그 인 전기차에 대한 정부 인센티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료 절감으로 인해 증가한 초기 비용이 취소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차체는 측면 미러로부터 바람을 유도하여 끌림과 소음을 줄여주는 불룩한 헤드램프 엔클로저를 특징으로 한다. 일부 트림에는 처음에 텔레매틱스 시스템 카윙스가 장착되었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이것은 2G 셀룰러 네트워크를 사용했다. 2G는 새로운 네트워크를 사용하기 위해 텔레매틱스 제어 장치를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많은 분야에서 해체되었다. 리브랜딩 닛산커넥트2016년 EV는 연도와 트림에 따라 장착 시 소유자에게 무료로 제공한다. 2017년 현재 그것은 라우팅과 충전소 위치 파악을 위한 GPS 데이터를 제공한다. 또한 온도 조절 시스템의 원격 제어가 가능한 차량과의 양방향 통신과 충전 상태 모니터링을 제공할 수 있다.
  • 2세대
닛산 리프 2세대
닛산은 2017년 10월, 2018년 모델을 위해 신세대 리프를 일본에서 출시했고, 2018년 2월부터 미국과 유럽에서의 배송이 시작됐다. 2018년 글로벌 판매량은 8만7149대로 테슬라 모델3와 BAIC EC 시리즈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기계적으로 2세대 리프는 1세대와 비슷하면서도 사거리는 더 길고, 힘은 더한다. 스타일리시하게 전작과 크게 벗어난 것이다. 내부에는 안드로이드 오토&애플 카플레이가 추가됐다. EPA 등급 범위가 243km(151마일)인 40kWh 배터리 팩을 탑재하고 있다. 전기 모터는 110 킬로와트(147 hp), 320 뉴턴 미터(236 lbft)의 토크를 생산한다. 6.6 kW의 일반 플러그(미국/일본의 SAE J1772 또는 EU 국가의 제2형 커넥터) 또는 50 kW CHAdeMO를 통해 충전하며, 그리드에 전력을 다시 보낼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차선 센터링 시스템인 프로필로트 어시스트는 가장 높은 두 가지 트림 수준에서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 있으며, 일부 시장에서는 자동 주차 기능을 갖추고 있다. 이 자동차는 운전자가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않아도 차량이 완전히 정지할 수 있을 정도로 가속 페달을 천천히 밟으면 상당한 회생 제동이 발생하는 원 페달 브레이크를 제공하여 차량을 제자리에 고정시킨다. 2019년부터는 리프 e+(북미의 리프플러스) 변종이 제공되고 있다. EPA 범위인 364km(226마일)를 제공하는 62kWh의 대형 배터리와 33% 더 많은 전력을 제공하는 150kW의 새 모터를 장착했다. 최대 100kW까지 CHAdeMO 충전기를 사용할 수 있다.[6]

관계사

럭스젠자동차

럭스젠자동차(Luxgen Motor)는 중화민국의 자동차 회사이다. 먀오리 현 싼이향 시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위롱 자동차 회사가 100% 지분을 가지며 자회사로 2009년 1월 설립했다. 생산은 항저우 시에 있는 동펑 위롱 자동차 회사가 2010년 하반기부터 생산하고 있다. 럭스젠 제품들은 위롱 자동차 회사의 또 다른 자회사인 HAITEC에서 개발하고 있다. 럭스젠에서 생산하는 자동차는 내수용과 수출용으로 판매되고 있으며, 회사의 슬로건은 "Think Ahead"이다. 럭스젠(Luxgen)과 닛산은 자회사인 닛산자동차필리핀사(Nissan Motor Philippines Inc. (NMPI))와 필리핀에서 차량 조립을 위해 파트너 관계를 맺고 있다.[7]

포드

포드(Ford)는 승용차, 트럭, SUV 등의 자동차를 제조 판매하는 다국적 기업으로 미시간 주 디어본에 본사가 있다. 2010년 현재 전 세계 34개국에 생산 및 조립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1만 5000개의 유통업체를 가진 세계적인 기업이다.[8] 1989년과 1992년 사이 호주에서는 닛산 핀타라 버전이 포드 코르세어, 포드 팔콘 버전이 닛산 유테로 판매되는 등 정부가 지원하는 버튼 플랜(Button Plan)으로 알려진 합리화 계획에 따라 닛산 호주는 포드 오스트레일리아와 모델을 공유했다. 닛산 순찰대의 변종은 1988-94년 모델 동안 포드 매버릭으로 팔렸다. 북미에서 닛산은 1993년부터 2002년까지 포드사와 제휴하여 오하이오주가 건설한 머큐리 빌라거와 닛산 퀘스트를 시판했다. 그 두 미니밴은 외관상 차이 외에는 사실상 동일했다. 2002년 닛산과 포드는 협정 중단을 발표했다. 유럽에서는 닛산과 포드 유럽이 손잡고 닛산 테라노 2호와 배지엔지니어링이 가능한 닛산자동차 이베리카 S에서 생산된 중형 SUV 포드 매버릭을 생산했다.스페인 바르셀로나의 A(NMISA) 공장. 매버릭/테라노 2세는 유럽과 오스트랄라시아 전역에서 판매된 인기 차량이었다. 닛산 모델이 닛산 미스트랄로 시판되는 등 일본에서도 포획 수입으로 판매됐다.

폭스바겐

폭스바겐(Volkswagen)은 1937년 독일 노동당 전선이 설립한 독일 자동차 회사로, 비틀스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으며 볼프스부르크에 본사를 두고 있다. 2016년과 2017년 전 세계 최대 자동차회사인 폴크스바겐그룹의 대표 브랜드다. 그룹의 최대 시장은 매출과 이익의 40%를 전달하는 중국에 있다. 폭스바겐은 독일어로 '국민차'라는 뜻이다. 이 회사의 현재 국제 광고 슬로건은 "볼스바겐"에 불과하며, 이 명칭의 의미를 언급하고 있다. 닛산이 폭스바겐과의 완전한 제휴를 목적으로 일본 시장용 산타나 생산을 계획하고 있었고,1981년부터 협상이 진행되었다.협상의 결과로 1984년 2월 일본 가나가와 공장에서 산타나의 라이센스 생산이 진행되었다.차량의 코드명은 M30이었으며,가격은 폭스바겐에서 판매되는 산타나보다 저렴한 편이었다고 한다.닛산에서 생산하는 산타나는 일본 시장의 우핸들 운전 방식 때문에 새로운 본닛과 외이퍼 연결 방식이 변경되었다. 닛산의 산타나는 폭스바겐에서 생산하는 차량보다 폭이 5mm 정도 좁았는데, 이는 폭 1700mm 이하인 차량만 달 수 있는 5넘버 규제를 맞추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가솔린 엔진은 1.8L I4 엔진과 2.0L I4 엔진이 있었으며,1.6L I4 엔진은 디젤 터보 방식이 적용되었다.변속기는 5단 수동변속기와 3단 자동변속기가 적용되었다.1985년 5월에는 Xi5 아우토반(Autobahn) 트림이 추가되었는데 벨벳 스포츠 시트,전자식 선루프,14인치 알로이 휠이 적용되었다.1987년 1월에는 범퍼의 크기가 커지는 일종의 페이스리프트를 거쳤으며,1.6L 터보 디젤 차량은 단종되었다.1.8L 엔진의 출력은 91PS로 감소했으며,Li 트림과 Gi5 트림에 들어간 편의장비 수도 감소하였다.Xi5 버전의 경우에는 DOHC 방식의 2.0L 엔진이 적용되었다.1989년에 닛산은 산타나의 생산을 중단했으며,1990년 5월에 재고 차량을 모두 판매하면서 단종되었다.이후 닛산에서는 라이센스를 얻고,닛산의 딜러망을 통해 3세대 폭스바겐 파사트를 판매했지만,폭스바겐이 토요타와 협력을 강화하면서 닛산을 통한 폭스바겐 차량의 판매도 중단되었다.[9]

르노

르노(Renault)는 프랑스의 자동차 제조사이다. 닛산은 1999년 극심한 자금난을 겪으면서 프랑스의 르노S.A.와 제휴를 맺었다. 1999년 3월 27일 체결된 르노-닛산 연합은 일본과 프랑스 자동차 제조업체가 참여한 최초의 동맹으로 각각 고유한 기업 문화와 브랜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2000년 봄, 일본의 수입차 판매 1위 업체인 야나세가 르노와의 라이선스 계약을 취소하고, 닛산이 단독 사업자로 인수했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는 수년 동안 닛산 지분 43.4%를 르노가 보유하고 있고, 닛산이 르노 지분 15%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진화했다. 이 동맹 자체는 네덜란드 법에 따라 2002년 3월 28일에 설립된 르노-닛산 B.V.로 통합되어 있다. 르노-닛산 B.V.는 르노와 닛산이 똑같이 소유하고 있다. 곤 CEO의 "닛산 부흥 계획"(NRP)에 따라, 이 회사는 많은 주요 경제학자들이 역사상 가장 화려한 기업 턴어라운드 중 하나라고 여기는 것에서 반등하여 닛산을 수익 기록으로 만들고 닛산과 인피니티 모델 라인업의 극적인 활성화로 이끌었다. 곤 회장은 일본 경제가 침체된 가운데 회사가 회복세를 보인 것으로 일본에서 인정을 받아왔다. 곤과 닛산 턴어라운드가 일본 망가와 대중문화에 특색 있게 등장했다. 닛산 재활성화에 대한 그의 업적은 2004년 일본 정부가 그에게 블루리본과 함께 일본 메달을 수여한 것에 의해 주목받았다. 다임러 AG는 2010년 4월 7일 보유 지분 3.9%를 닛산과 르노로부터 모두 3.9%로 교환했다. 이 3중 동맹은 기술 및 개발 비용의 공유를 증가시켜 글로벌 협력과 상호 발전을 촉진한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는 2012년 12월 12일 러시아 최대 자동차 회사이자 국내 최대 판매 브랜드 라다의 소유주인 에이브토바즈의 장기 지배주주가 될 목적으로 러시아 테크놀로지스(Aliance Rostec Auto BVV)와 합작회사를 설립했다. 이번 인수는 2014년 6월 완료됐으며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두 회사는 얼라이언스 로스테크의 지분 67.1%를 모두 인수해 아보바즈 지분 74.5%를 인수해 르노와 닛산이 러시아 제조사를 간접 지배하게 됐다. 곤 회장은 2013년 6월 27일 에이브투바즈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됐다.

미쓰비시

미쓰비시(Mitsubishi)는 일본 미쓰비시그룹의 자동차 제조회사이다. 1999년 3월 27일에 경영난을 겪고 있던 일본 닛산 자동차의 지분을 프랑스 르노가 54억 달러에 인수하며 닛산의 1대 주주가 되었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효시이다. 2016년에 닛산은 연비 조작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미쓰비시 자동차의 지분 34%를 22억 달러로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르노-닛산의 얼라이언스는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의 삼자 체제로 변경되었다.[10]

알파로메오

알파로메오(Alfa-Romeo)는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고성능 자동차를 주로 생산하는 자동차 회사이다. 1983년부터 1987년까지 닛산은 알파 로메오와 협력하여 아르나를 건설했다. 알파가 패밀리 해치백 시장 부문에서 경쟁하고, 닛산이 유럽 시장에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였다. 피아트의 알파 로메오 인수 이후 차와 협력이 모두 중단됐다.

제너럴모터스

제너럴모터스(General Motors)는 미국의 자동차 제조업체이다. 유럽에서는 GM과 닛산이 경상용 차량인 닛산 프리마스타를 공동 운영했다. 하이루프 버전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NMISA 공장에서 제작되며, 로우루프 버전은 영국 베드포드셔의 보홀 모터스/오펠의 루턴 공장에서 제작된다. GM은 2013년 닛산 NV200 상용 밴을 2014년 말까지 선보일 2015MY 시보레 시티 익스프레스 모델로 재입고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GM의 호주법인 홀덴은 1984년부터 1989년 사이에 닛산 펄서 버전을 홀덴 아스트라로 판매했다.

LDV

LDV(Leyland DAF Vans)는 버밍엄주 워시우드 히스에 본사를 둔 영국의 밴 제조사이다. LDV 그룹은 1996년부터 2001년까지 배지공학적 경형 상용차인 닛산 세레나 버전을 LDV Cub로 판매했다. 닛산 동급 제품은 닛산 밴넷 카고(Vannett Cargo)로 시판됐다.[11]

현황

닛산 자동차는 전기차 '리프'의 생산 누계 대수가 50 만대에 도달했다고 발표했다. 리프는 2010 년 초대 모델 출시 이후 전 세계적으로 많은 유저로부터 평가를 얻고 월드 카 오브 더 이어 2011 유럽 카 오브 더 이어 2011, 2011 - 2012 일본 카 오브 더 이어 등을 수상했다. 그 후에도 운전 지원 기술 "프로 파일럿 '과'e- 페달」등 많은 선진 기술을 탑재하여 안심하고 편안하게, 뜻대로 운전을 제공하여왔다. 누계 생산 50 만 번째 리프는 "세계 EV 데이 '에 앞서 올 여름 영국 선더랜드 공장에서 생산되었다. 이 공장은 2013 년에 리프의 생산을 시작했다. 50 만 번째 리프는 노르웨이에 거주하는 구매자 얀센 씨의 곁으로 곧 출고 될 예정이다. 출고를 기다리는 마리아 얀센 씨는 "남편과 나는 2018 년에 리프를 구입하고 너무 마음에 들었다. 이번에 50 만 번째 리프의 소유자가 될 수있는 것은 매우 영광스럽고 매우 흥분하고 된다. 주행 거리가 길어 최신 기술이 탑재 된 리프는 바로 우리의 요구에 부응하는 자동차다. "라고 말했다. 또한 닛산 자동차의 유럽 부문은 6 월 18 일, "리프 e +"(Nissan Leaf e +) 수주 대수가 발매로부터 약 반년 만에 8000 대를 초과했다고 발표했다. 리프 e +는 신개발 EV 파워 트레인을 채용하여 성능과 항속을 향상시키고있는 것이 특징이다. "e +"의 명칭은 에너지 밀도가 늘어난 배터리와 더 강력한 파워 트레인에서 유래한다. 닛산에 따르면, 유럽 사양 차의 주행은 최대 385km (WLTP 측정)을 실현하고 있다고한다.[12] 뿐만아니라, 닛산 자동차의 유럽 사업부는 향상된 신형 'e-NV200'(Nissan e-NV200)의 유럽 수주가 1 만대를 돌파, 유럽의 상용 EV 가장 대량으로되었다고 발표했다. e-NV200은 다목적 상용 밴 'NV200'(일본 명 : 「NV200 바넷 토 ')를 기반으로 개발 된 EV이다. 2018 년 2 월에 유럽에서 발매 된 개량 신형은 2014 년 가을 발매 후 첫 본격 개선점 된 모델이다. 신형 「리프」의 노하우를 도입하면서 실용성의 향상을 도모했다. 향상된 신형 e-NV200의 하이라이트는 항속의 연장이다. 축전 용량 40kWh의 신형 리튬 이온 배터리를 탑재한다. 이는 유럽의 측정 모드에서 최대 300km의 항속을 실현했다. 이는 기존 모델 대비 60 % 이상의 항속 확대된다. 신형 리튬 이온 배터리는 배터리의 크기에 변화는 없다. 상용차에서 중시되는 적재 공간과 적재 능력은 종래대로했다. e-NV200은 자신의 양방향 충전 기능을 탑재한다. 이에 따라 e-NV200 고객은 전기를 저장하거나 가정용으로 전력을 공급하고 잉여 전력을 판매 할 수있다.[13][14]

각주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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