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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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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tjsdud6771 (토론 | 기여)님의 2021년 9월 8일 (수) 16:29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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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트라(Tatra)
다프(DAF)

타트라(Tatra)는 코프르지브니체에 있는 체코(Česko) 자동차 제조업체이다. 다프(DAF)의 자회사로 승용차, 트럭, 버스, 무궤도전차 등을 제작하고 있다.

개요

타트라(Tatra)는 코프시브니스의 체코 자동차 제조업체로 오스트라바에 본사를 둔 타트라 트럭 회사가 소유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자동차 회사이다. 이 회사는 1850년에 이그나츠 슈스탈라 앤드 컴퍼(Ignatz Schustala & Comp.)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으며, 1890년 독일 네셀도르퍼 바겐바우-파브리크제셀샤프트(Neselsdorfer Wagenbau-Fabriksegellschaft)에서 마차 및 마차 제조사가 되면서 이름을 바꾸었다. 1897년, 타트라는 중부 유럽에서 최초의 자동차인 프레지던트 자동차를 생산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타트라는 독일의 전쟁 노력을 위한 트럭과 탱크 엔진 생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승용차 생산은 1999년에 중단되었지만, 이 회사는 주로 사륜구동 트럭을 생산하고 있다.[1] 오늘날에는 상용차중장비 전문 제조사로 활약하고 있다. 타트라는 상용차량 뿐만 아니라 군용트럭 등 방위산업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2]

역사

19세기

  • 1850년 : 이그나즈 슈스탈라(Ignaz Schustala)는 네셀스도르프(Nesselsdorf)에서 두 명의 여공과 함께 객차와 코치의 생산을 시작했다.
  • 1858년 : 이그나즈 슈탈라와 콤프는 아돌프 라슈카(Adolf Raška)와 카렐 모슬러(Karel Mosler)가 합류하면서 설립되었다.
  • 1882년 : 철도 트럭 생산 개시하였다.
  • 1886년 : 객차 생산을 시작하였다.
  • 1891년 : 네셀스도르퍼-바겐바우-파브릭스 게셀샤프트(Nesselsdorfer–Wagenbau–Fabriks Gesellschaft)가 설립되었다.
  • 1897년 : 최초의 승용차인 프레지던트를 만들었다.
  • 1898년 : 최초의 트럭을 만들었다.

20세기

  • 1903년 : 최초의 현장 철도용 소형 기관차를 만들었다.
  • 1906년 : 오버헤드 캠샤프트(Overhead camshaft) 밸브 메커니즘과 반구형 연소실을 갖춘 회사 자체 설계의 스파크 점화 엔진을 개발했다.
  • 1907년 : 첫 번째 옴니버스를 만들었다.
  • 1908년 : 최초의 풀 드라이브 견인 차량을 만들었다.
  • 1914년 : 최초의 대량 생산 트럭인 NW-TL2와 NW-TL4를 만들었다.
  • 1915년 : 4개 모두에 브레이크를 장착한 최초의 승용차를 만들었다.
  • 1918년 : 이름을 네셀스도르퍼 바겐바우로 바꾸었다.
  • 1919년 : 처음으로 NW-TL4 트럭에 '타트라' 브랜드를 사용하였다.
  • 1921년 : NW 기업 브랜드가 타트라로 바뀌었다.
  • 1923년 : 타트라 차량 컨셉이 한스 레드빙카(Hans Ledwinka)에 의해 정해졌다.
  • 1924년 : 타트라 차량 개념은 무거운 타트라 T 24 트럭에 처음으로 적용되었다.
  • 1929년 : 최초로 리어 액슬용 에어서스펜션을 사용하였다.
  • 1930년 : 가장 성공적인 중형 트럭인 타트라 27의 생산이 시작되었다.
  • 1934년 : 공기역학적인 폰툰 형태의 차체를 가진 최초의 양산형 승용차인 타트라 77 승용차를 처음 공개하였다.
  • 1935년 : 첫 번째 타트라 T 86 트롤리 버스를 만들었다.
  • 1942년 : 자체 설계로 직접 공랭식 12기통 디젤 엔진을 장착한 3축 대형 트럭의 생산을 시작했다.
  • 1946년 : 타트라는 국영 기업이 되었다.
  • 1946년 : 승용차 타트라 57과 트럭 타트라 T 111의 생산이 재개되었다.
  • 1951년 : 철도 차량 생산이 취소되고 도로 차량만을 생산하였다.
  • 1956년 : 프론트 액슬의 스프링 작용이 토션로드에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 1956년 : 타트라 T 603 승용차의 대량 생산이 시작되었다.
  • 1968년 : 타트라 T 813을 대량 생산하였다.
  • 1968년 : 새로운 폴리곤 시험 선로의 건설이 시작되었다.
  • 1971년 : 코메콘(COMECON)이 타트라가 대형 트럭 생산에 특화될 것이라고 결정하였다.
  • 1975년 : 타트라 T 603 승용차의 생산이 중단되었다.
  • 1982년 : 타트라 T 148 트럭이 생산되었다.
  • 1983년 : 타트라 T 815의 대량 생산이 시작되었다.
  • 1997년 : 타트라 T 815-2는 TerrN°1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 1997년 : 타트라 T 163 보닛 대형 트럭의 생산이 시작되었다.
  • 1997년 : 승용차의 마지막 모델인 타트라 T 700의 생산이 종료되었다.

2세기

  • 2000년 : 회사 자체 설계의 공랭식 엔진이 유로 3 배기가스 사양에 부합했다.
  • 2002년 : ROSS R 210 지적재산권 및 생산서류를 구입했다.
  • 2006년 : 유로 4 SCR 배기 가스 사양이 적용된 타트라의 자체 엔진을 설계했다.
  • 2006년 : 체코 육군의 타트라 T 810을 만들었다.
  • 2008년 : 유로 5 SCR 배기 가스 사양이 적용된 타트라의 자체 엔진을 설계했다.
  • 2010년 : 타트라 T 810과 타트라 T 815-7의 민간 부문을 적용했다.[3]

주요 인물

이그나츠 슈스탈라(Ignaz Schustala) 설립자
한스 레드빙카(Hans Ledwinka) 엔지니어

이그나츠 슈스탈라

이그나즈 슈스탈라(Ignaz Schustala)(1822–1891)는 어린 시절부터 마차에 관심이 많았다. 말년에 그는 마차를 생산하는 공장을 성공적으로 설립했다. 그는 빈(Vienna)에 있는 궁정 마차 제조사에서 무역을 배웠다. 그는 수년 간의 여행과 실력 향상을 거쳐 모라비아-실레시아 지역의 코피브니스로 돌아와 동생의 집에서 마차를 만드는 작은 작업장을 열었다. 그의 사업은 번창했고 그는 견습생들을 고용하고 고급 역마차와 화물 및 우편 마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또한 그는 수많은 특허를 등록했다. 1870년, 그의 회사는 1,200대의 객차를 생산했다. 그는 러시아, 갈리시아, 인접 프로이센, 그리고 대양을 가로지르는 수입 증가로 해외 진출을 결정하면서 라티보, 브로츠와프, 빈, 프라하, 베를린, 체르노비체, 키예프 등에 지점을 개설했다. 1860년 그는 주식회사 코피브니카 보조브카를 설립했다. 불행하게도, 그는 그것이 더 발전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1891년 1월 29일에 사망했다.[4]

한스 레드빙카

한스 레드빙카(Hans Ledwinka)(1878-1967)는 한스 레드빙카는 1878년 2월 14일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빈 인근의 클로스터노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에 삼촌 밑에서 견습생으로 기계 관련 기술과 지식을 익히기 시작했다. 이후 빈에서 학업을 마치고 나서 1897년에 네셀스도르프에 있는 네셀스도르프 철도차량 제조에 제도사로 취직하면서 본격적인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여러 젊은 엔지니어들과 마찬가지로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회사 소유주에게 자동차 개발에 나설 것을 제안했다. 사주는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고, 회사 내에 소규모 자동차 개발 부서를 만들었다. 그는 정부 지원금을 철도차량 부문 투자에 집중하고 자동차 부문을 포기하겠다는 회사 방침에 반발해, 1916년에 다시금 다른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그가 새롭게 둥지를 튼 곳은 빈의 슈타이어(Steyr)로 그는 그곳에서 전 직장에서 마무리하지 못했던 대형 승용차 개발을 계속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네셀스도르프 차량 제조공장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독립한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에 속하게 되었다. 아울러 본사를 프라하로 옮기며 체코슬로바키아를 대표하는 산맥 이름인 타트라를 새로운 브랜드 이름으로 삼았다. 자동차 사업을 재개하기로 하면서 인재가 필요했던 타트라는 그를 다시 영입하려고 했다. 그러나 회사와 여러 차례 불화를 겪었던 그는 자신이 제시한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일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했고 타트라와 레드빙카 사이의 협상은 1년 남짓 이어졌다. 결국 그는 자신의 요구를 관철할 수 있었다. 슈타이어의 컨설턴트 자리를 지키면서 타트라의 자동차 설계 책임자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5]

제품

승용차

타트라 11(Tatra 11)
타트라 77(Tatra 77)
타트라 87(Tatra 87)

타트라11

타트라 11(Tatra 11)은 1921년에 타트라로 복귀한 한스 레드빙카는 슈타이어에서 일할 때 설계를 시작한 차의 개발을 계속해, 1923년에 완성된 제품이다. 공랭식 수평대향 2기통 엔진으로부터 동력을 얻은 타트르11과 그 뒤를 이은 타트르12는 여러 혁신적 설계가 돋보였다. 앞에 놓인 엔진과 변속기의 동력을 뒤 차축으로 전달하는 프로펠러 샤프트(propeller shaft)를 속이 빈 튜브 형태의 백본 안으로 통과시키는 백본 섀시를 선보였고, 뒤 차축은 스윙 액슬(Swing Axle) 독립 서스펜션 구조로 만들었다. 스윙 액슬 서스펜션은 1903년에 에드문트 룸플러가 특허를 냈던 기술이었기 때문에 한스 레드빙카의 독창적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엔진과 변속기를 직접 결합한 구조 역시 에드문트 룸플러에 의해 시도된 것이었다. 그러나 기본적인 설계를 구체화해 제품에 반영한 것은 한스 레드빙카의 아이디어였다. 이 기술과 아이디어를 백본 섀시와 결합한 것 역시 한스 레드빙카의 아이디어였다. 타트라 11과 타트라 12에서 가능성을 입증한 이 개념은 이후 이와 같은 기술 요소의 조합은 '타트라 섀시 콘셉트'로 불리며 여러 타트라 차에 이어졌다. 현재 생산 중인 타트라 트럭과 군용차에도 토크 튜브를 활용하는 백본 섀시 개념이 쓰이고 있다.[5]

V570

V570은 타트라 57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한스 레드빙카는 에리히 위버라커(Erich Überlacker)와 자신의 아들 에리히 레드빙카(Erich Ledwinka)와 함께 새로운 개념의 설계에 도전했다. 작은 크기의 차체에 넉넉한 실내 공간을 갖추고, 가볍고 연료를 적게 소비할 수 있는 해법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일반적 설계로는 목표를 이루기 어려웠기 때문에,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다. 그들의 해법은 1931년에 만든 프로토타입 V570으로부터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겉모습은 평범했지만 엔진과 구동계 배치는 전혀 달랐다. 백본 프레임 구조는 이어받았지만 새로운 공랭식 엔진은 차체 앞쪽이 아닌 뒤쪽에 놓였다. 공랭식 엔진은 냉각수 순환을 위한 장치가 필요없어 작고 가벼웠다. 엔진을 뒤로 옮기면서 앞 서스펜션 설계의 자유도도 높아졌다. 동력을 뒷바퀴로 전달하기 위한 프로펠러 샤프트가 사라진 것도 중요한 변화였다. 무게를 줄일 수 있었을뿐 아니라 프로펠러 샤프트가 차지했던 공간을 실내를 넓히는 데 쓸 수 있었다. 시험 결과, 일반적인 차체 형태로는 뒤쪽에 있는 공랭식 엔진을 충분히 냉각시킬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에리히 위버라커와 에리히 레드빙카는 차체를 더 키워 엔진 주변 공간을 넓히도록 한스 레드빙카를 설득했다. 한스 레드빙카는 에드문트 룸플러의 영향을 받아 관심을 두었던 공기역학적 디자인을 접목하기로 했다. 한스 레드빙카는 공기역학적 디자인의 선구자인 파울 야라이(Paul Jaray)에게 자문을 구해 프로토 타입에 유선형 차체를 올렸다.[6]

타트라 77

타트라 77(Tatra 77)은 최초로 직렬로 생산된 진정한 공기역학적으로 설계된 자동차이다. 타트라 77은 한스 레드빙카와 제플린(Zeppelin)의 공기역학 엔지니어인 폴 자레이(Paul Jaray)에 의해 개발되었다. 1934년에 출시된 타트라77은 타트라의 트레이드마크인 튜브형 섀시가 아닌 프레스 박스 섹션 강철 백본이 있는 플랫폼 섀시로 제작되었으며, 후면 장착형 2.97리터의 공랭식 V8 엔진에 의해 구동되며 이후 직렬은 75마력의 3.4리터 엔진으로 증가했다. 오버헤드 밸브, 반구형 연소실, 드라이 섬프(dry sump), 완전히 독립적인 서스펜션, 리어 스윙 차축 및 엔진, 변속기, 서스펜션 및 차체에 경량 마그네슘 합금을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등의 고급 엔지니어링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타트라77의 1:5 모델의 평균 항력 계수는 0.2455로 기록되었다. 후기 모델인 타트라77A는 예외적으로 낮은 항력 계수를 제공하는 진보된 공기역학 설계로 최고 속도가 150km/h를 넘는다.[7]

타트라87

타트라87(Tatra 87)은 타트라77의 설계와 디자인을 더 발전시켜 1936년에 출시됐다. 타트라77을 조금 줄인 차체는 타트라77의 과도기적 스타일에서 벗어나 펜더와 차체가 부드럽게 이어지는 모습을 갖췄다. 다른 유럽과 미국 자동차 업체들은 이런 형태의 차체를 갖춘 차를 1940년대에 들어서야 만들기 시작했다. 차체 디자인의 새로운 시대를 연 타트르87은 한스 레드빙카가 가장 좋아한 차로 알려져 있다. 거대한 모터 오버헤드 캠샤프트(Overhead camshaft, OHC)는 85마력의 힘을 만들어 냈고 타트라 160km/h의 속도에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고속에서 특정 차량 섀시 때문에 숙련된 운전자가 필요했다.[8] 타트라는 타트라87과 함께 좀 더 작은 크기의 타트라97도 함께 생산했는데, 타트라97의 앞모습은 2년 뒤에 나온 Kdf-바겐과 놀라울만큼 닮아 있었다. 독일이 주데텐란트를 합병하고 2차대전을 일으키면서, 타트라는 1939년에 승용차 생산을 중단했다.[6]

트럭

타트라 T 810(Tatra T 810)
타트라 815-7(Tatra 815-7)
타트라 TerrN°1(Tatra TerrN°1)
타트라 피닉스(Tatra 158 Phoenix)

타트라 T 810

타트라 T 810(Tatra T 810)은 체코의 타트라사가 만든 중형 트럭으로 1950년대에 도입되어 2008년까지 운행된 체코에서 인기 있는 프라가(Praga) V3S를 대체했다. 2002년 타트라사는 R210 트럭의 모든 모델이 대형 트럭급이기 때문에 중형 트럭의 시장 진입을 위해 R210 트럭에 대한 문서와 권리를 구입했다. 원래 계획을 현대화하려는 의도였고, 마침내 체코 육군이 4,000대의 프라가 V3 함대를 대체하기를 희망했다. 타트라는 다른 회사들과 제휴를 맺어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프라가는 기어 박스와 포털 차축을 제공하고 다른 구성 요소는 르노가 납품하기로 했다. 2005년 체코 정부는 2005년 8월에 T810 트럭 인수를 승인했고 2008년 4월에 인도 되었다. 다른 타트라 트럭과는 달리, 타트라 T 810은 백본 섀시와 스윙 하프 액슬의 전통적인 타트라 개념을 사용하지 않고, 전통적인 프레임을 가진 관습적인 트럭 구조를 사용했다.[9] 액체 냉각된 6기통 엔진, 수동 변속기, 트랜스퍼 케이스 및 레벨 1 탄도 보호 기능을 갖춘 강화 장갑 바닥을 갖춘 현대적인 3인승 캡, 총기 운반 시스템을 위한 개조된 지붕, 루프 해치 및 기타 특수 또는 군사 목적을 위한 부분 개조를 갖추고 있다. 차량에는 윈치와 중앙 타이어 팽창 시스템이 있다. 프론트 액슬은 코일 스프링에 의해 기계적으로 매달려 있고 리어 액슬은 로커 리프 스프링에 의해 매달려 있다. 민간용 버전 타트라 T 810-C는 2010년에 도입되었으며, 타트라는 최대 중량이 15.5톤인 트럭 중 유일하게 3개의 구동 차축을 가지고 있다.[3]

타트라 815-7

타트라 815-7(Tatra 815-7)은 타트라가 2008년부터 생산한 중군 물류 차량이다. 표준 NATO C-130 헤라클레스 항공기에 의해 수송될 수 있는 능력, 표준화 협정에 따른 추가갑옷의 가능성, 과압 NBC 보호 키트의 사용, 포차 시스템 장착 가능성 등 특수 군사력의 모든 요건을 준수하는 표준화된 범위의 특수 차량이다. 섀시는 타트라 차량 설계를 기반으로 합니다. 모든 차축은 프레임 아래에 배치된 고무 공기 벨로우에 의해 매달려 있습니다. 리어 액슬의 경우 킹 프레임 결합 서스펜션 시스템도 사용할 수 있다. 차량에는 로우 캡이 장착되어 있고 사용 가능한 엔진은 타트라가 디자인한 공랭식 엔진이거나 해외의 다른 제조업체에서 만든 엔진이다. 변속기의 경우 수동 또는 자동일 수 있다. 타트라 815-7 제품군에는 사륜구동이 장착된 4x4, 6x6, 8x8 ~ 10x10 모델 버전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차량은 주로 군사 부문용으로 제작된다. 그러나 낮은 높이와 소형성 덕분에 이동식 크레인, 사다리가 있는 소방차 및 구조 차량과 같은 민간 부문에서도 널리 사용된다.[3]

타트라 TerrN°1

타트라 TerrN°1(Tatra TerrN°1)은 타트라가 생산하는 트럭 제품군 중 하나이다. 1989년에 타트라는 타트라 815를 현대화하고 새로운 타트라 815-2를 선보였는데, 1994년에 추가 업그레이드를 받았다. 불과 3년 후인 1997년에 새로운 TerrN°1이 도입되었다. 2000년에 이어 또 다른 페이스리프트가 이루어졌는데, 그 중에는 새로운 계기판 부착장치도 포함되었으며 액체로 냉각된 엔진의 장착 옵션이 처음으로 적용되었다. 2003년 배기 가스 요구사항 변경으로 인해 타트라는 유로 III을 준수하기 위해 모든 신형V8 엔진 T3C를 개발하였고, 다시 한번 공기 냉각 설계를 적용하였다. 더 개발된 T3D 엔진은 2006년에 선택적촉매환원법(Selective Catalytic Reduction; SCR)과 유로 IV를 준수하여 도입되었다. 캡오버 엔진(COE) 섀시, 플랫폼 트럭 및 팁퍼는 민간 부문에서 사용하도록 설계되었다. 킹 프레임 이름은 기계식 리프 또는 코일 스프링고압 공기 벨로우스로 구성된 결합된 서스펜션을 나타낸다. 이 차량 범위는 타트라 T 815-2 유로 II 상용 범위의 직접적인 후속 모델이다.

타트라 158 피닉스

타트라 158 피닉스(Tatra 158 Phoenix)는 타트라가 다프(DAF) 트럭 회사와 협력하여 개발해 2011년부터 생산한 대형 트럭이다.[10] 입증된 타트라 섀시에 구축된 타트라 피닉스 유로 6는 강력하고 효율적이지만 환경 친화적인 파카르(PACCAR Inc) 엔진이 엄격한 유로6 배출 제한을 충족함으로써 가장 험난한 지형을 통과한다. 고유한 섀시 설계에는 티퍼 본체를 장착하기 위한 추가 서브프레임이 필요하지 않다. 조립 부품을 사용하지 않고 다른 상부 구조의 설치가 간단하다. 에어 쿠션이 있는 하프 액슬을 독립적으로 매달아 운송 속도를 높이고 총 운송 용량을 늘릴수 있다. 오프로드에서 안전하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차량에는 모든 액슬 및 액슬 간 디퍼렌셜 잠금 장치가 장착되어 있다. 장착 가능한 전륜구동 기능을 사용하면 주변 조건이 필요할 때마다 사륜구동 차량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으며, 포장된 도로에서는 전륜구동 없이 주행하면 차량 작동을 간소화할 수 있다. 섀시의 공기 시스템은 전자 관리 시스템을 통해 새롭게 제어되므로 공기 소비량과 압축기 작동을 최적화하고 연료 소비량을 줄인다. 조향식 차축은 최대 10톤까지 적재할 수 있으며, 비조향식 차축은 최대 하중이 16톤이다.[3]


각주

  1. Tatra (company)〉, 《Wikipedia》
  2. 모토야 , 〈우리에겐 아직 낯선 '체코'의 자동차들〉, 《모토야》, 2020-04-02
  3. 3.0 3.1 3.2 3.3 타트라 공식 홈페이지 - https://www.tatratrucks.com/
  4. Ignaz Schustala, founder of a company that later became Tatra, born 130 years ago〉, 《Radio Prague International》, 2021-01-24
  5. 5.0 5.1 류청희 칼럼리스트 , 〈전설의 엔지니어들 - 한스 레드빙카 (1)〉, 《라라클래식》, 2021-05-18
  6. 6.0 6.1 류청희 칼럼리스트 , 〈전설의 엔지니어들 - 한스 레드빙카 (2)〉, 《라라클래식》, 2021-06-18
  7. Tatra 77〉, 《Wikipedia》
  8. Martin, 〈History of Tatra 87〉, 《Auto-zine.》, 2015-02-26
  9. Tatra 810〉, 《Wikipedia》
  10. Tatra 158 Phoenix〉, 《Wikipedia》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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