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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비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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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비아강

감비아강은 서아프리카 중부를 흐르는 강이다.

개요

  • 감비아강은 서아프리카의 강. 세네갈, 감비아, 기니에서 흐르는 강이며, 특히 감비아가 이 강을 둘러싸고 있다. 주로 하류는 감비아가, 중류는 세네갈이, 상류는 기니가 위치해 있다. 길이는 총 1,300km이다. 옛날에는 "감브라 강(gambra river)"로 알려지기도 했었다. 소설 뿌리(소설)의 무대라서 이 강이 언급되기도 한다.[1]
  • 감비아강은 길이는 1,120km이다. 기니의 푸타잘롱산지에서 발원하여 세네갈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흐르다가 대서양으로 들어간다. 아프리카에서도 운행하기 좋은 강에 속하며, 우계에는 강어귀에서 280km 상류에 있는 조지타운까지 외항선(外航船)이 거슬러 올라간다. 내륙지방에서 생산되는 땅콩·밀랍·모피 등을 실어내는 중요한 교통로이며, 승객과 우편물을 수송하는 데도 큰 몫을 한다.[2]
  • 감비아강아프리카의 대형 하천이다. 기니 북쪽의 푸타 잘롱(Fouta Djallon) 고지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1,300km 이르는 유역에 걸쳐 흐르고 있다. 이 강의 하구는 감비아의 수도 반줄에서 대서양과 접하고 있으며, 하구에서부터 총 유역의 절반까지는 배로 항해할 수 있다. 이 강은 아프리카에 가장 작은 나라인 감비아로 인해 유명한데, 감비아는 강의 하류 부분 절반과 두 개의 하구를 영토로 하고 있다. 강의 하구인 Juffure 근처에는 노예무역에 사용된 제임스섬이 있는데, 이곳은 UNESCO의 세계유산으로 선정되었다.[3]

감비아 지역의 지리와 기후

  • 바하마 또는 미국의 코넥티컷주보다 작은 면적인 감비아서아프리카에서 가장 작은 나라 중에 속한다. 경계는 내륙의 길고 넓은 길이의 감비아 강이 35km의 넓이와 300km의 길이를 갖고 있어 감비아에서 가장 쉽게 눈에 띠는 지형적인 특징물로 국토를 둘로 나누고 있다. 감비아의 서부 국경은 대서양이며 반대방향은 세네갈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감비아강 유역의 지형은 평평하고 감비아강이 꼬불꼬불 흐르고 있으며 고도가 겨우 10m 밖에 안 된다. 감비아강의 생택학은 강어귀와 민물지역으로 쉽게 구분되며 주변의 식물군에 큰 영향을 미친다. 바닷물은 상류 150km 지점까지 유입되며 건기인 11월에서 6월 사이에는 칸타우르(Kantaur)까지도 유입된다.
  • 저지대 감비아강어귀는 망그로브가 자라는 강변지역으로 갈대 지대가 사이에 위치한다. 물이 신선한 지역은 산림이 늘어선 걸 볼 수 있다. 강을 벗어나면 감비아는 남부 사헬로 사하라 사막 남부의 반 불모지다. 자연의 식물군은 건조한 녹지와 사바나 지역에 한정해 나타난다. 560종 이상의 조류가 감비아강 유역에 분포하는데 작은 크기인 새들을 보호하기 위해 감비아 정부가 노력을 집중하고 있다. 아부코 자연 서식지(Abuko Natural Reserve)는 반줄 근교에서 조류 관찰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며, 그 외 5곳의 국립공원과 서식지도 풍부한 동물군이 분포한다. 해안에 있는 탄지 조류 서식지(Tanji Bird Reserve)는 철새들의 중요한 경유지가 된다. 특히 매년 겨울 유럽에서 이동한 물새들이 많다. 아부코와 감비아강 국립공원은 원숭이와 침팬지가 서식한다. 감비아의 기온은 길고 건조한 계절(11월에서 5월)과 짧은 우기(6월에서 10월)로 구분되며, 8월이 비가 가장 많이 내리는 시기다. 평균 낮 기온은 12월에서 2월 사이가 24도, 6월에서 9월 사이가 30도를 나타낸다. 해안지역은 온도가 온화하고 내륙으로 들어갈수록 비 오는 기간이 줄어든다. 습도는 우기가 시작하기 전인 6월에 높게 나타난다.

감비아강의 역사

  • 15세기 중반 말리제국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말린케족의 무리가 감비아강의 계곡으로 이주했다. 이슬람과 함께 이주했으며 만딩카족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15세기 초반은 포르트갈의 헨리 왕자는 당시 포르투갈 재정의 기초가 됐던 아랍과 무슬림이 주도적인 사하라 횡단 금 무역로를 획득하기 위한 서아프리카 해안지역에 대한 항해를 시작했다. 감비아와 유럽과의 최초의 접촉은 1456년 바다에서 강 상류에 있는 제임스 섬에 항해사가 도착하면서부터이다. 포르투갈은 정착지를 형성하진 않았으나 16세기까지 서아프리카 무역에 대한 독점을 실시했다.
  • 포르투갈인의 무역항에서 소금, 철, 그릇, 무기, 화약이 상아, 흑단, 밀납, 금, 노예와 교환됐다. (감비아강의 유래는 포르투갈어로 뜻이 '교환하다' 또는 '무역'인 감비오에서 유래된다)1530년 포르투갈은 브라질에 정착지를 건설했고 그 후 70년간 커다란 상업적인 사유지를 위한 노동력을 서아프리카에서 충당했다. 수 세기동안 아프리카에 노예가 존재해 포르투갈인은 방대한 규모로 무역을 확대하고 영국이 무역에 참여하기 전인 16세기 중반까지 독점을 유지했다. 1650년에는 프랑스와 영국에 의해 포르투갈의 영향력이 상당 부분이 사라졌다. 감비아에 최초로 정착한 유럽인은 발틱 게르만으로 1651년에 제임스 섬에 성을 건설했다. 1년 후 프랑스 선박, 해적, 아프리카 본토의 왕들로부터 위협을 받던 영국이 섬을 차지했다. 감비아강의 입구인 바르라(Barra)와 바투르스트(Bathurst, 현재의 반줄)에 신설한 성은 제임스 섬의 전술적인 매력을 상실했으며, 선박의 이동을 통제하기 유리하게 됨으로써 무역이 붕괴될 때까지 노예를 수집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 영국은 감비아강을 영국 보호령으로 1820년 선포하고 수년 동안 시에라 리온으로부터 감비아강을 지배했다. 1886년에 감비아는 식민지가 되고 다음 해에 프랑스영국은 세네갈(프랑스 식민지였음)과 감비아에 국경을 나누었다. 노예무역이 종료되면서 영국은 새로운 부유한 요소로 강을 따라 땅콩의 경작을 실시해 보호령을 지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1965년 감비아가 독립(영국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가 명목상의 국가대표로 남아있었음에도)이 됐으며 공식적인 설명 없이 국명에 'The'가 추가되었다. 독립 후 10년간 땅콩의 국제가격이 현저하게 상승해 감비아의 GNP는 거의 3배가 늘어난다. 감비아의 두 번째 이벤트는 감비아가 여행자들이 선호하는 행선지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감비아

  • 감비아(Gambia)는 모든 것을 감싸고 있는 이웃인 세네갈과 주변의 거대한 국가에 비해 아프리카의 다른 면에 있는 작은 조각처럼 보인다. 감비아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작은 국가에 속하지만, 매력은 매우 밝게 빛나며 눈에 띄는 얼굴을 하고 있다. 수도인 반줄(Banjul)의 부산한 시장은 독특한 아프리카의 경험을 하게 하고 충분한 거리의 문화는 현혹적인 도시의 휴가를 쫓아내기에 충분하다. 겉에서 얼핏 보기에 '전통적인' 외형은 강 상류로 짧은 이동으로 감비아의 핵심으로 이동해 컬러풀한 시장과 망그로브가 우거진 지류를 보게 한다. 진흙으로 만든 집들이 있는 마을을 자전거로 여행하다 보면 당신의 시간과 감상을 충족시켜 준다.
  • 감비아를 자연적인 요소에 의해 확연히 구분하는 감비아강은 국토를 흐르며 인구의 대부분이 살고 있는 대서양 해안 리조트의 황금 해변을 갖고 있으며, 감비아의 문화와 친절함은 일상생활 속에서 매일 느낄 수 있다. 거리의 커피숍에서 대화를 하거나 주말의 레슬링 시합에서 소리를 지르거든 간에 감비아인이 여행자에 대해 보여주는 따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반줄

  • 반줄(Banjul)은 아프리카에서 작은 수도 중의 하나이며 감비아강의 입구에 위치한 섬으로 본토와 작은 지류로 인해 분리된다. 감비아에서 유럽에서 보이는 해변을 보기 보다 아프리카를 느끼고 싶다면 대서양의 리조트보다 반줄을 여행하는 편이 좋다. 반줄의 활력 넘치는 핵심은 앨버트 시장(Albert Market)으로 의류, 신발, 과일, 야채, 가정용품, 수공예품을 쇼핑하거나 두 세시간을 거닐기에 적당한 곳이다. 색채가 넘치고 생동감 있고 혼란스러운 반줄 시장의 모습은 아프리카에서 최고다. 근교에 있는 맥카티 광장(MacCarthy Square)에는 전쟁 기념관과 영국 조지 4세의 1937년 대관식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분수가 있다. 일부 전시품을 둘러보기엔 감비아 국립 박물관이 적당한데 사진, 지도, 고고학과 관련한 문서들이 전시돼 있고 감비아에서 가장 높은 35m 건물인 아치 22(Arch 22)가 있다.

주푸레

  • 주푸레(Jufufeh)는 감비아의 반줄에서 강을 따라 북쪽으로 25km 지점인 감비아강의 강안에 위치한다. 200년 전 아메리카로 노예로 팔려간 작가의 조상인 쿤다 킨테에 대해 묘사한 뿌리가 1970년대 출판된 이후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 되고 있다. 주푸레는 아직도 여행자들이 들리는 곳으로 반줄에서 쉽게 도착할 수 있으며 하리의 책이 출판되고 신선한 반응을 얻을 때처럼 사람들이 북적거리지는 않는다. 가장 큰 볼거리는 프랑스인이 17세기에 노예무역을 확장하기 위해 건설한 폐허가 된 '공장'이다. 인접한 곳에 있는 작은 상점에선 감비아에서 생산되는 양질의 바티크를 판매하며, 작은 박물관에는 감비아강에 있는 노예들의 역사가 전시되어 있다.

지도

동영상

각주

  1. 감비아 강〉, 《나무위키》
  2. 감비아강(Gambia R.)〉, 《두산백과》
  3. 감비아강〉, 《위키백과》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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