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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파노-수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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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파노-수이자(Hispano-Suiza)
히스파노-수이자(Hispano-Suiza)

히스파노-수이자(Hispano-Suiza)는 1904년에 스페인에 설립된 자동차 제조사 겸 방위산업체이다. 이스파노-수이자라고도 한다. 창업자는 마크 비르키트(Marc Birkigt)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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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히스파노-수이자는 스위스 출신의 엔지니어 마크 비르키트(Marc Birkigt)와 스페인 은행가 다미안 마테우(Damian Mateu)가 1904년에 설립한 스페인의 자동차 회사이자 엔지니어링회사였다. 승용차, 고급 차, 항공기선박 엔진 등을 제조했다. 20세기 전반기 스페인프랑스에서 자동차를 생산했다. 이 회사에서 선보인 차량으로 T49, J12, K6 등이 있다. 스페인의 알폰소 8세가 이 회사의 차를 몇 대 소유했다. 7.4리터 4기통 엔진과 대형 6기통 엔진 등 신형 엔진을 생산했다. 잇달아 새로운 승용차와 고급 차를 선보였다. 1911년 파리 교외 지역에 공장을 설립하고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1914년 규모가 더 큰 공장으로 이전하면서 프랑스의 자회사 이름을 히스파노-프랑스에서 히스파노-수이자로 바꾸었다. 히스파노-수이자는 1920년대에서 1930년대 계속해서 더 정교한 고급 차를 출시했다. 스페인의 히스파노-수이자는 1946년 자동차 사업부 전체를 ENASA(Empresa Nacional de Autocamiones S.A.)에 매각했다. 에나사(Enasa)는 스페인의 자동차 회사로 페가소(Pegaso) 트럭과 스포츠카를 제조했다. 프랑스의 히스파노-수이자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항공우주 부문의 회사가 되었다. 이후 터빈, 변속기, 제트엔진용 부속 장치 등을 제조했고, 프랑스 기업 스네크마(SNECMA, Société nationale d'études et de construction de moteurs d'aviation)의 사업부가 되었다. SNECMA는 상용 및 군용 항공기 엔진 제조업체이다. 2005년 SNECMA와 프랑스의 첨단기술기업 사젬(SAGEM, Société d’Applications Générales de l’Électricité et de la Mécanique)이 합병해 사프란(Safran, Safran S.A.)이 탄생하였다.[1]

주요 인물[편집]

마크 비르키트(Marc Birkigt)

마크 비르키트는 1878년 3월 8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났다. 루소 거리에 있는 재단사의 아들인 그는 제네바 공예 학교 엔지니어 분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졸업 후 시계 제조를 위한 기계와 도구를 제조하는 회사를 거쳐 군대에서 무기의 내구성을 증진하는 일을 했다. 1989년에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이주하여 소규모 전동차 회사인 라쿠아드라(La Cuadra)에 입사한다. 그러나 급속히 발전 중인 자동차에 관심이 많던 비르키트는 1901년 카스트로(Castro)라는 자동차 회사에 입사한다. 내연기관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1,000km를 주행한 4.5hp 단일 실린더 및 7.5마력 가솔린 자동차를 선보였고 기계 특허를 출원했지만, 회사의 자금난으로 파산했다. 다미앙 마테우(Damien Mateu)가 이끄는 스페인 투자그룹은 그의 기술력을 높게 평가해 1904년 히스파노-수이자 자동차 회사를 설립하고 마크 비르키트를 수석 엔지니어로 임명했다. 회사를 설립할 때 마테우는 비르키트의 국적을 존중하여 새 회사의 이름을 히스파노 수이자 자동차회사(La Fabrica de Automoviles La Hispano-Suiza)로 했다. 히스파노는 스페인을 뜻하고 수이자는 스위스를 의미한다.[2] 그들은 내연기관으로 10마력 1,873cc 트윈기통, 14마력 2,535cc 4기통 섀시를 가진 자동차를 제조했다. 하지만 돈이 없어서 생산이 중단되었다. 마크 비르키트는 1907년 전시회에서 4기통 40/45마력과 11리터의 배기량을 가진 6기통 60/75마력을 가진 두 개의 새로운 섀시를 선보였다. 911년 1월, 마크 비르키트는 르발루아에 새로운 공장을 가지고 파리로 이사했고 1914년 보이스콜롬베에 전 세계의 에이전시와 함께 이사했다. 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그는 파리로 돌아와 히스파노-수이자 H6와 같은 고급 자동차에 헌신했다. 1930년대에 그는 미슐랭(Micheline)과 협력하여 유명한 철도 차량을 만들었다. 마크 비리키트는 150개가 넘는 특허를 출원한 후 1953년 03월 15일 75세 나이로 사망했다.[3]

역사[편집]

설립[편집]

마르크 비르키트는 에토레 부가티(Ettore Bugatti), 페르디난트 포르쉐(Ferdinand Porsche)에 비견될 정도의 혁신적이고 뛰어난 기술자였다. 당시 스위스는 전기자동차 분야에서 앞서 있었다. 비르키트는 고향인 제네바에서 전기차 기술을 익혀 1898년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건너가 라쿠아드라(La Cuadra) 전기자동차 회사에 취직했다. 내연기관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1901년 라쿠아드라에서 가솔린 자동차를 선보였으나 2년 뒤 자금난으로 파산했다. 다미앙 마테우(Damián Mateu)가 이끄는 스페인 투자그룹은 그의 기술력을 높게 평가해 1904년 히스파노 수이자 자동차회사를 설립하고, 비르키트를 수석 엔지니어로 임명했다. 이들은 현대적인 기업가 모델, 큰 열정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자동차와 항공 기술 분야에서 굴지의 기업이 될 사업을 일으켰다. 회사는 주로 혁신, 투자 및 개발에 초점을 맞췄다. 비르키트는 새 회사에서 SOHC 구조로 흡배기 효율을 높인 신형 엔진을 개발했다. 이 엔진을 장착한 경주용차가 1909년 스페인 및 프랑스 몽블랑 산악경기 등에서 우승을 차지해 전 유럽에 이름을 떨치게 됐다. 명성과 자금을 확보한 히스파노 수이자는 1911년 당시 자동차의 중심지였던 프랑스 파리의 근교 르발루아 페레(Levallois-Perret)에 두번째 공장을 세우고 고급차를 만들었다. 히스파노-수이자는 최고급 자동차의 수요가 훨씬 많은 시장을 찾아 국외 공장을 파리 근처에 세우고 브랜드명을 히스파노-프랑스(Hispano France)로 바꾸고, 바르셀로나 공장에서는 보급형 차를, 프랑스 공장에서는 최고급 차를 생산했다. 1912년에는 작고 가벼운 스포츠카 타입 15T를 발표했다. 첫 모델을 스페인 국왕 알폰소 13세가 구입하자 사람들은 이 모델을 알폰소(Alfonso)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국왕은 차에 자신의 이름을 쓰도록 허락해줬다. 알폰소 모델은 662kg밖에 안되는 가벼운 차체에 4기통 3,616cc 64마력 엔진을 얹고 120km/h 속도의 놀라운 성능을 자랑했다. 1914년 스페인에 새 공장을 지으면서 다시 히스파노-수이자로 돌아갔다.[4][5]

제1차 세계대전[편집]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히스파노-수이자는 항공기 엔진 설계와 생산으로 눈을 돌려 연합국 공군을 위한 비행기 엔진을 제작했다. 이 기간 동안 또 다른 엔지니어는 스위스 출신 루이 마수거(Louis Massuger)였다. 전통적으로 항공기 엔진은 별도의 강철 실린더를 가공한 다음 이러한 조립품을 크랭크케이스에 직접 볼트 처리하여 제조되었다. 마크 비르키트의 새로운 해결책은 하나의 주물 알루미늄 조각으로 엔진 블록을 형성하고 그 안에 얇은 강철 라이너를 고정할 것을 요구했다. 이런 방식으로 엔진을 제조하면 구조가 단순해지고 가벼우면서도 내구성이 강한 엔진이 탄생한다. 마크 비르키트의 새로운 건설 방법은 최초의 실용적인 엔진이 되어 오늘날 주물 블록 엔진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알루미늄 주조 블록 V-8 설계는 오버헤드 캠샤프트, 프로펠러 감속 기어 및 1920년대 후반까지 경쟁사의 엔진에 함께 나타나지 않았던 기타 바람직한 특징들을 통합한 것으로도 주목했다. 8C 버전은 중 경량 발사체가 중공 프로펠러 샤프트를 통해 발사될 수 있도록 특별히 설계되었으며, 이는 향후 히스파노-수이자 군용 엔진에 사용되는 기능인 동기화 기어의 필요성을 없애준다. 자체 공장에서 생산되고 허가를 받은 히스파노-수이자의 에어로 엔진은 프랑스와 영국 공군에서 가장 흔히 사용되는 에어로(Aero) 엔진이 되어 동맹의 전투기 절반 이상을 움직이게 했다. 1916년 32HP 모델이 개발되었다. 히스파노-과달라하라 공장은 과달라하라 모델로 알려진 자동차를 생산했고, 아프리카 스페인 육군이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트럭을 생산했다.[6] 전쟁이 끝난 직후인 히스파노-수이자는 자동차 제조업으로 복귀했고 1919년 비르키히트는 비행기용 직렬 6기통 엔진을 얹은 고급차 H6를 파리모터쇼에서 발표했다. H6는 V8 알루미늄 제1차 세계대전 항공기 엔진의 특징을 바탕으로 인라인 6기통 오버헤드 캠샤프트 엔진을 장착했다. H6는 주행성능이 뛰어나 불로뉴(Boulogne) 경주에서 2차례나 우승했다. 이 모델로 히스파노 수이자는 영국 롤스로이스(Rolls-Royce)를 능가하는 럭셔리카 브랜드로 성장했다. 더불어 히스파노-수이자 특허에 대한 라이선스는 전 세계의 고급 자동차 제조업체들로부터 많은 수요가 있었다. 롤스로이스 또한 다수의 히스파노-수이자 특허를 사용했다. 1923년, 프랑스 자회사인 히스파노-수이자는 스페인 모기업인 소시에테 프랑세즈 히스파노-수이자(Société Française Hispano-Suiza) 주식 자본의 71%를 보유하면서 합병되었다. 프랑스 자회사는 디자인과 생산 방향을 주요 시장과 더 가깝게 접촉시키기 위해 상당한 수준의 재정과 프로젝트 독립성을 부여받았지만 전반적인 방향은 바르셀로나에 머물러 있었다. 이 협정은 히스파노-수이자의 최고급 자동차 공장으로써 파리 근처의 보이-콜롬브 공장의 중요성을 증가시켰고, 스페인 사업부는 대부분 작고 저렴한 모델인 고급차를 계속 생산하는 동안, 스페인에서의 생산은 몇몇 공장의 버스, 트럭, 항공기 엔진 생산으로 점점 더 옮겨갔다.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대공황으로 유럽 최고급차 시장도 크게 위축됐다. 하지만 비용을 계산하지 않는 완벽주의 엔지니어였던 비르키트는 어려운 상황을 개의치 않고 오히려 스페인 투자자들로부터 51%의 주식을 사들여 회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1931년 V12 9,400cc 엔진을 얹은 J12 모델(타입 68)이 파리모터쇼에서 발표됐다. 이 차는 섀시 20만 5,000프랑, 이탈리아 카로체리아에서 제작한 차체 4만 7,800프랑 등 25만프랑이 넘는 비싼 차였다. 대공황의 끝자락에 놓인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이 차는 유럽의 왕실과 거부들의 필수 소장품으로 인식되어 만들기가 무섭게 팔려나갔다. 한편 1935년 다미안 마테우는 병으로 72세 나이에 사망한다.[5]

스페인 내전[편집]

하지만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한 후, 스페인 제2공화국을 대표하여 카탈루냐 지방정부는 히스파노-수이자의 스페인 공장들을 집단으로 통제하고 회사를 전쟁체제로 만들었다. 회사는 항공기 엔진과 대포, 자동차와 트럭 그리고 기계 공구 세 구역으로 나뉘었다. 1년 후인 1937년, 프랑스 정부는 전쟁 재료 제공을 위한 자본의 51%의 지분으로 히스파노-수이자의 프랑스 자회사를 장악하고, 그 회사의 이름을 히스파노-수이자로 바꾸었다. 1938년, 프랑스 회사는 자동차 생산을 중단하고 항공기 엔진 생산에 집중했다. 그 당시, 히스파노-수이자는 새로운 수랭식 V-12 엔진을 선보였고, 히스파노-수이자 12Y는 사실상 모든 종류의 프랑스 항공기에 대한 엄청난 수요가 있었다. 하지만, 스페인 공장 없이, 히스파노-수이자는 빠르게 성장하는 프랑스 공군을 위한 충분한 엔진을 공급할 능력이 부족했다. 1940년 파리를 점령한 독일군의 포격으로 공장이 완전히 파괴됐다. 스페인 공장도 군용트럭 생산공장으로 바뀌었다. 종전 후엔 스페인의 히스파노-수이자는 전쟁으로 경제가 황폐해지고 동맹국들이 부과한 무역 금수 조치의 심각한 영향을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스페인 공장이 독재자 프랑코 정권에 의해 국유화됐다. 결국 1946년, 히스파노-수이자는 스페인 자동차 자산을 국립 산업 연구소에 소속된 국영 회사인 에나사(Enasa)에 매각했다.[3] 히스파노 수이자는 파괴된 프랑스 공장을 재건해 1950년 이후 비행기 엔진 기술을 살려 비행기, 선박, 원자력발전소 등에 들어가는 터빈 회사로 변신했고, 1968년 프랑스의 항공엔진그룹 SNECMA(현 사프란)에 합병되어 히스파노-수이자 프랑스 자회사는 주로 독립적인 항공 우주 회사로 계속되었다. 회사의 관심은 점점 터빈 제조에 쏠렸고, 1968년에 그것은 인수되어 SNECMA의 사업부가 되었다. 1999년, 히스파노-수이자사는 동력 전달과 제트 엔진의 부속 시스템을 위해 원래의 공장을 사용하여, 파리 외곽의 베존스에 있는 새로운 공장으로 터빈 공장을 옮겼다. 2000년 히스파노-수이자는 고급스러운 2인승 슈퍼카 HS21 시제품을 제작하기 위해 마젤엔지니어링(Mazel Engineering)과 브랜드 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HS21은 같은 해 제네바에서 첫선을 보였다. HS21이 진화된 형태인 K8과 HS21-GTS 모델이 2001년과 2002년에 각각 공개됐다.

최근[편집]

마테우 가문은 4세대에 걸쳐 회사 설립 후 끊임없이 가문의 브랜드에 추진력과 활력을 불어넣고, 이 위대한 유산을 지켜나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현 사장의 증조부인 데미언 마테우(Damian Mateu)가 회사를 설립했고, 그의 아들 미겔 마테우(Miguel Mateu)가 뒤이어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면서 최고 수준의 훌륭한 자동차를 만들었다. 그의 사망 이후, 그의 딸 카르멘 마테우(Carmen Mateu)가 사장으로 임명되어 브랜드의 정수를 지키고자 하는 목표에 따라 다양한 활동을 수행하며 부친의 작업을 이어갔다.[7] 한편 2005년에 SNECMA는 SAGEM과 합병하여 사프란을 형성하였다. 이 브랜드는 에르빈 레오 힘멜과 제휴한 회사가 2010 제네바 모터쇼에서 모델을 선보이면서 자동차 부문의 부활을 시도했지만, 계획된 생산은 실현되지 않았다. 히스파노-수이자 자동차 브랜드의 부활을 위한 또 다른 시도는 2019 제네바 모터쇼에서 전기 스포츠카인 히스파노-수이자 카르멘를 처음 선보였다. 이 차는 히스파노-수이자 창업자 다미안 마테우의 후손인 수퀘 마테우(Suqué Mateu) 가문이 소유한 페랄라다 그룹과 관련된 회사에서 선보였다. 이 차의 디자인은 1938년식 히스파노-수이자 H6B 듀보넷 제니아(Dubonnet Xenia)의 영향을 받았다.[3]

주요 사업[편집]

자동차 부문[편집]

알폰소 13[편집]

알폰소 13(Alfonso 13)

알폰소 13(Alfonso 13)은 히스파노-수이자의 기술자 마크 비르키트가 1913년 최초로 과급기를 장착한 스포츠카이다. 알폰소 13세는 1909년 바르셀로나의 외곽지 시트케스에 226마일의 카타란(Catalan) 컵 자동차 경주를 창설했다. 히스파노-수이자도 이 경주에 참여하기 위하여 T 헤드 밸브 방식의 4 실린더 엔진을 얹은 날렵한 차를 제작했다. 제1회 대회 때 우승은 푸조(Peugeot)의 차지였으며, 히스파노-수이자는 4위였다. 제2회 경주에서는 기술자였던 추카래리가 운전한 히스파노-수이자 쿠페가 우승을 차지했다. 히스파노-수이자 쿠페 스펙은 직렬 4기통, 배기량 2,646cc였다. 새로운 자동차 경기규칙이 시행되었던 1910년 이후부터 가볍고 성능 좋은 새 엔진 개발을 위하여 제3회 경주는 출전을 포기했다. 이 무렵 화가였던 아메데 오장팡(Amedee Ozenfant)이 설계에 참여하여 완성된 경량의 히스파노-수이자는 설계자의 이름을 붙여 히스파노 오잰판트라 불리기도 했다. 당시에 프랑스 푸조는 엔진 제작 기술자가 필요했다. 히스파노-수이자의 신형 엔진 제작 소식을 들은 푸조는 곧바로 핵심 기술자인 추카래리를 스카우트했다. 이로 인해 푸조는 연구 개발 중이었던 혁신적인 흡기, 배기 방식인 DOHC 엔진을 히스파노-수이자 더 먼저 완성해 발표할 수 있었고 1912년 세계 최초로 DOHC를 세상에 탄생시켰다. 알폰소 13세의 이름을 따 만든 이 스포츠카는 4기통 3,620cc, 64마력, 중량 660Kg의 스펙을 가진다. 스페인의 알폰소 13세는 히스파노-수이자를 너무 좋아해서 황실 전용차를 히스파노-수이자로 바꿀 정도였으며 모두 30여 대를 소유했다. 엔진기어박스를 일체식으로 만들어서 부피를 줄인 것이 알폰소 13의 특징이다. 또한 압축펌프를 흡입 측에 설치했는데 이것은 오늘날의 과급기와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당시에는 매우 놀라운 발상이었다. 여기서 과급기, 슈퍼차저, 터보차저 등으로 불리는 이 시스템은 고속 회전 시 부족한 공기량을 공급하기 위해 설치했다. 작동방식으로 공기압축기를 사용한 것 외 배기가스를 이용했다. 배기밸브 측에 터보차저를 부착하였고 배기가스 분출의 힘으로 작은 터빈을 돌리면 연결된 반대쪽 흡입 측에도 터빈이 있어 흡입 측에 밀도 높은 압축공기를 공급하는 방식이다.[8]

H6[편집]

H6

H6은 1914년 출시한 알루미늄으로 만든 V12기통 항공기 엔진을 얹은 자동차이다. H6B의 엔진은 매우 가볍고 견고할 뿐만 아니라 강력한 출력을 만들어냈다. 게다가 4개의 바퀴 모두 요즘의 유압 디스크 브레이크를 달아 탁월한 제동 성능을 발휘했다. 이렇게 프랑스에서 고급차로 성공을 거두면서 1919년 파리모터쇼에 최고의 럭셔리 카 히스파노-스위자 타입6B의 콘셉트카를 내놓게 된다. 비르키트는 H6B에 얹은 V12기통 엔진을 더욱 개선 발전시킨 6기통 알루미늄 엔진을 얹은 섀시를 만든 후 새차 모델6B를 도로상에서 위용과 성능을 선전하기 위한 차체 제작을 단골 차체 제작 업체이며 당시 프랑스항공이 세운 앙드레 듀보네 코치빌더에게 주어 가장 멋있고 합리적 보디를 주문했다. 코치빌더인 앙드레 듀보네는 프랑스 코냑 재벌의 후예로서 뛰어난 비행기 조종사에 레이싱카 드라이버 였다. H6C의 차체제작 주문을 받은 앙드레 듀보네는 속도를 높이자면 공기저항을 적게 받는 차체라야 한다는 결론아래 튜립 나무로 수천개의 은빛도금 리벳 못을 사용해 어뢰형 바디를 만들어 얹은 날씬하고 번쩍이는 로드스터를 1924년에 만들어 냈다. 이 차가 바로 히스파노 스위자 H6C 튜립우드 톨페도이다. 이 차는 곧 코치빌더인 앙드레 듀보네가 운전, 당시 유럽의 유명 카 레이스인 이탈리아의 타가 프로리오 경주에서 6, 5, 1위를 차지해 히스파노 스위자의 명성 높였다. 6기통 8.0ℓ 200마력엔진으로 최고시속 150km를 냈다.

J12[편집]

J12

J12는 H6의 후속 모델로 1931년 파리모터쇼에서 발표되었다. J12는 섀시 20만 5,000프랑, 이탈리아 카로체리아에서 제작한 차체 4만 7,800프랑 등 25만프랑이 넘는 비싼 차였다. J12는 푸시로드로 작동되는 오버헤드 밸브와 7베어링 크랭크샤프트가 있는 9,425cc 60°V12라는 거대한 엔진을 얹었고 여기에 3단 변속기를 조합했다. 보어 및 스트로크가 모두 3.9인치이고 엔진 압축비는 5.0:1인 경우 3,000에서 220hp를 전달했다. 배기량이 11.3L이고 250hp를 제공하는 장행정 엔진이 장착된 두 대의 자동차가 장착되었다. 각 엔진 블록은 단일 700lb(318kg) 빌렛으로 가공되었다. 대공황의 끝자락에 놓인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이 차는 유럽의 왕실과 거부들의 필수 소장품으로 인식되어 만들기가 무섭게 팔려나갔다. 1931~1938년까지 생산됐고 히스파노-수이자는 항공기 엔진에 집중하기 위해 1938년에 자동차 생산을 중단했다.[5][9][10]

카르멘[편집]

카르멘(Carmen)

카르멘(Carmen)은 1938년에 나온 히스파노-수이자 듀보넷 제니아(Hispano Suiza Dubonnet Xenia)에서 영감을 받았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막한 2019 제네바 모터쇼에서 공개됐다. 히스파노-수이자는 카르멘을 보도자료를 통해 사전 공개했다. 히스파노-수이자는 1968년 회사 파산 이후 처음으로 군주와 귀족들이 선호할 130만 파운드, 한화로 19억 3천만 원의 차를 선보였다. 이는 2차대전 종전 이후 한때 인기였다가 파산한 히스파노-수이자가 70년 만에 처음 내놓는 모델이다. 이 후륜 구동형 슈퍼카 카르멘은 3초 내에 시속 100km까지 달리는 전기자동차로서 최고 시속 250km를 자랑하는 1,005마력짜리 차다. 서브프레임에는 경량 탄소섬유가 사용됐고 1920년대의 클래식한 디자인을 반영한 것이 돋보인다. 카르멘은 주로 탄소섬유로 만들어져 전적으로 전기로 구동되는 경량 슈퍼카다. 콘셉트 단계인 이 자동차는 1968년에 원래 파산한 이래 이 회사가 70년 만에 내놓는 첫 번째 생산 차종이다. 제조사들에 따르면 길이 4.7m인 2인승 카르멘은 하이퍼카 성능과 최고급 럭셔리함이 결합한 차로서 신흥 하이퍼럭셔리카(Hyper Lux Car)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카르멘에는 전기자동차들이 경주하는 경기인 포뮬러 E에서 사용되는 배터리를 사용해 시속 250km로 달리며 후륜구동 자동차이다. 이 차는 가벼운 내부 소재와 탄소섬유 프레임으로 만들어져 무게가 불과 1,690kg이다. 히스파노-수이자는 이 신형 모델이 세계에서 가장 탄소섬유 집약적인 자동차라고 주장한다. 카르멘은 온전히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본사를 둔 QEV 테크놀로지에 의해 설계되고 만들어졌다. 이 회사는 또한 전기자동차 경주 시리즈인 포뮬러 E에서 마힌드라(Mahindra) 팀을 관리하는 전기자동차를 연구하고 개발한다.[11]

카르멘 불로뉴[편집]

카르멘 불로뉴(Carmen Boulogne)

카르멘 불로뉴(Carmen Boulogne)는 카르멘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카르멘은 럭셔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불로뉴는 히스파노의 레이싱 헤리티지를 담았다. 트윈모터로 구동되는 전기 파워트레인은 94hp 늘어난 1,100hp의 출력을 발휘하며, 최고속도는 290km/h로 늘었다. 제로백은 2.6초이다. 카르멘 불로뉴는 카르멘보다 60kg이 줄어든 1,632kg의 무게를 가지고 있다. 뒷바퀴를 가리는 커버를 제거해 무게를 줄인 것이 눈에 띈다. 카르멘은 1938년 히스파노-수이자 두보네 제니아(Dubonnet Xenia)를 기리기 위한 은색으로 칠해졌지만, 카르멘 불로뉴는 탄소 섬유를 그대로 드러내는 투명 코팅과 브론즈 액센트로 마무리되었다. 실내는 우드 트림 대신 블랙 알칸타라와 스웨이드가 차지했고, 크롬 장식은 오렌지색 아노다이징 처리된 부품으로 바뀌었다. 수작업으로 만든 가죽과 알칸타라를 씌운 카본 시트는 그대로다. 카르멘 불로뉴는 대부분의 차량 구조물에 카본을 사용했다. 카본 모노코크 섀시의 무게는 195kg에 불과하다. 차량 중앙에 배치된 T자형 배터리팩은 진동을 줄이기 위한 질량 댐퍼 역할도 한다. 온도 조절 시스템이 통합된 배터리는 700개의 셀이 연결되어 80kWh의 용량을 가진다. 1회 충전 시 주행가능 거리는 유럽 NEDC 기준 400km, 미국 EPA 기준 280km다. 카르멘 불로뉴는 스페인에서 설계, 개발되었고 부품의 75%를 스페인에서 생산한다. 2022년까지 총 5대의 차량이 제작될 예정이고 가격은 165만 유로, 약 22억 원이다.[12]

항공기 엔진 부문[편집]

히스파노-수이자는 1914년에 1차 세계대전동안 항공기용 로터리엔진 생산에 주력했고, 스패드S.7과 같은 프랑스 전투기에 탑재되었다. 전간기에는 수냉식 V12 엔진인 12Y를 개발했다. D.520, M.S.406, VG.33, 아스날-델란 10, VB 10(12Z엔진 탑재)같은 프랑스 공군기에 장착되기도 하였고, 소련에 라이센스를 줘서 클리모프 설계국에서 M-100이라는 이름으로 생산했으며, 훗날 이를 기반으로 클리모프 M-105를 개발하게 된다. 2차 세계 대전동안 스페인 내전과 프랑스의 함락으로 12Y 엔진과 그 개량형인 12Z 엔진은 나치 독일의 손에 넘어갔다가 루프트바페가 성능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사장시켜버렸다. 전후 롤스로이스 제트엔진을 라이센스 생산하다가 1968년 스네크마와 합병되었다. 잠깐이나마 독자 항공기 모델을 개발하기도 했다. 1930년에 처음으로 E-30이라는 복좌 복엽 훈련기를 개발하여 스페인 공군에 납품하였는데 스페인 내전 당시, 스페인 공화파 해군 항공대에서 공격기로 사용되기도 했다. 또한 이의 개량형인 E-34가 발주되었으나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여 중도에 생산이 중단되었고 이후 히스파노-수이자가 3개로 분해되면서 히스파노-수이자의 이름을 사용한 독자 항공기 개발 생산의 명맥이 끊긴다. 스페인 내전 중에는 이탈리아에서 도입된 CR.32를 면허 생산하여 HA-132L 라는 제식명으로 실전에 투입하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 또다른 항공기 제작사인 까사(CASA)도 히스파노-수이자 엔진을 달아 브레게19, SM.62 등 여러 기체를 생산했다. 스페인 내전이 종료된 후, 스페인 남부에 남아있던 히스파노-수이자 차량, 항공기 부문들을 합쳐 히스파노 아비아시옹(Hispano Aviación)이 설립되었고 Bf109의 설계도를 받아 히스파노 수이자 12Z 엔진을 달아 스페인 버전 Bf-109인 HA-1109를 라이센스 생산하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여기다가 롤스로이스 멀린 엔진을 장착하고 HA-1112를 만들어 스페인 공군이 사용하였다. HA-1112-M1L 뷰촌(Buchon)은 bf-109 계열 기체중 가장 마지막까지 운용되었고, 퇴역 기체들도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여러 2차대전 매체에서 bf-109의 대역으로 활약하고 있다. 이후 빌리 메서슈미트를 영입하여 전금속제 복좌 훈련기 HA-100 트리아나를 제작하였고, 1955년 제트 훈련기겸, 공격기 HA-200 사에타의 초도비행에 성공하여 1962년부터 양산에 돌입해 스페인 공군에 납품되었다. 히스파노 아비아시옹은 최종적으로 1972년, 같은 스페인 항공기 제작업체인 까사에 합병되었다.[13]

방위산업 부문[편집]

HS.404 같은 항공기 탑재 기관포가 유명하다. 이 가스작동식 20mm 기관포는 탁월한 성능을 인정받아 여러나라의 항공기에 탑재되었다. 또한 이를 기반으로 좀 더 위력이 센 탄을 적용한 HS.820이 개발되었다. 1970년 스위스 오리콘사가 히스파노-수이자의 방산 부문을 인수한 뒤 HS.820은 오리콘 KAD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13]

각주[편집]

  1. 히스파노수이자〉, 《네이버 지식백과》
  2. 최고관리자, 〈Hispano-Suiza (이스파노 수이자)〉, 《홀스리스비클》, 2017-10-10
  3. 3.0 3.1 3.2 Marc Birkigt〉, 《Wikipedia》
  4. 채영석 기자, 〈세기 초월의 명 클래식 카, 이스파노 스위자 (3)〉, 《글로벌오토뉴스》, 2011-12-27
  5. 5.0 5.1 5.2 탑기어, 〈롤스로이스를 능가했던 최고급 자동차, HISPANO-SUIZA〉, 《네이버 포스트》, 2017-11-02
  6. 히스파노-수이자 공식 홈페이지 - https://www.hispanosuizacars.com/
  7. (PRNewswire) Hispano Suiza - 신화의 재탄생, 다시 한 번 부상하는 브랜드〉, 《연합뉴스》, 2018-10-30
  8. 세상의 자동차 이야기 , 〈프랑스 자동차 역사 스페인 제작 히스파노 수이자〉, 《티스토리》, 2021-09-08
  9. 한상기 , 〈13 유럽(3) - 뮐루즈의 국립 자동차 박물관 방문〉, 《글로벌오토뉴스》, 2013-07-09
  10. Hispano-Suiza J12〉, 《Wikipedia》
  11. 이재구 기자, 〈(글로벌-Biz 24) 스페인판 롤스 로이스 '카르멘'으로 귀환...70년만에 제네바모터쇼에〉, 《글로벌이코노믹》, 2019-03-10
  12. (해외소식) 더 강력해진 전기 럭셔리 하이퍼카 `카르멘 불로뉴` 공개〉, 《보배드림》, 2020-03-04
  13. 13.0 13.1 이스파노-수이자〉,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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