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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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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우크라이나어: Чорнобиль, 러시아어: Чернобыль)은 우크라이나 북부의 옛 도시이다. 체르노는 '검은'이라는 뜻이고 빌은 '잎사귀', 즉 '검은 잎사귀'라는 뜻이다. 키이우주에 속하며 벨라루스 국경 근처이다.

체르노빌은 원래 키이우 루스의 땅의 일부였다. 처음 언급된 것은 1193년 헌장으로, 크냐지 류리크 2세 로스티슬라비치의 사냥꾼 숙소용 오두막으로 기술되었다. 13세기에는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크라운 빌리지였다. 이 지역은 1759년 폴란드 왕국으로 넘어갔다가 나중에 1793년 러시아 제국에 합병되었다.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 북서쪽 14.5㎞에 있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일어난 참사로 인해 폐쇄되었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편집]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위치

발전소는 체르노빌 북서쪽으로 18킬로미터, 우크라이나벨라루스의 국경으로부터 16킬로미터, 키이우 북쪽으로 대략 100킬로미터에 위치하고 있는 프리피야티에 있다. 발전소는 프리피야티 중심가로부터 동쪽으로 약 4킬로미터에 있으며, 냉각수 공급을 위한 인공 호수와 접하고 있다. 발전소 부지 면적(인공 호수를 포함 하지 않음)은 4평방 킬로미터이다.

현재는 발전소를 중심으로 한 '10킬로미터 존(zone)', '30킬로미터 존'의 중심부이기도 하다. 또, 총면적 4800평방 킬로미터에 다다르는 출입 금지 구역의 거의 중심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출입 제한 구역 및 강제 퇴거 구역'으로 지정했으며, 벨라루스 정부는 '국영 포레이시 방사선 환경 관리구'로 지정했다. 이는 현재 정식 명칭이다.

사고 전[편집]

발전소 건설은 1970년대에 시작해, 1977년에 원자로 1호기가 준공한다. 1978년에는 원자로 2호기가 준공되었으며, 1981년에는 3호기가, 그리고 1983년에 4호기(사고가 난 원자로)가 준공한다. 게다가 각각 1GWe를 발전할 수 있는 5호기와 6호기가 사고 당시 건설중이었다. 발전 개념은 모두 RBMK-1000의 형태였다.

원자로 4개는 각각 1기가와트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었다. 열로 환산했을 때 이는 약 3.2기가와트가 되며, 이는 소련 원자력 발전량의 15%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헝가리로의 에너지 수출의 80%를 차지하고 있었다. 4호기는 우크라이나 전력의 대략 10%를 생산하고 있었다.

이 발전소를 포함한 체르노빌이나 프리피야티 등은 오직 원자력 발전을 위해 근무하는 사람이나 그 가족을 위해서 만들어진 도시였기 때문에, 당시 세계 지도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기밀도시였다.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원자로 건설 설계도에는 내열성의 건설 자재를 쓰라고 요구했지만, 실제로 건설될 때는 가연성의 재료를 사용했다. 이는 소련 원자력 발전 기념일에 맞추어 완공시키기 위해 가연성 재료를 사용했다고 여겨진다. 이 때문에 원자로에는 결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고[편집]

1986년 4월 26일 오전 1시 24분에, 체르노빌 발전소의 원자로 4호기의 비정상적인 핵 반응으로 발생한 열이 냉각수를 열분해시키고, 그에 의해 발생한 수소가 원자로 내부에서 폭발함으로써 생긴 사고이다. 폭발은 원자로 4호기의 천장을 파괴하였으며, 파괴된 천장을 통해 핵 반응으로 생성된 다량의 방사성 물질들이 누출되었다. 누출된 물질에 의한 방사능의 총량은 약 5.3엑사베크렐로 추정되며, 국제 원자력 사고 척도(INES)에 의해 분류된 사고 등급 중 가장 심각한 사고를 의미하는 7등급에 올라 있다.

이 외에도 1982년과 1992년도에 3호기에서 화재사고가 발생했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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